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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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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었으니까 선글라스를 챙겼다. 책을 두 권 넣고, 아이패드와 이어폰도 챙겼다. 미루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여름 내내 미루고 미루던 일이었다. 더는 미뤄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집을 나섰고, 그 곳에 도착했다.

세월호 사건 진상 규명을 요청하는 광화문 광장. 한쪽에 가서 이름을 적고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작은 천을 받아왔다. 앞쪽은 옷핀으로 달 수 있었지만, 등은 누군가 도와주어야 했다. 저쪽을 보니 두 명의 여자분이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광화문 광장 스티로폼 장판이 아니라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있어야 어울릴 법한 차림새였다. 다가서며 말했다. “저, 죄송한데 이것 좀 달아 주시겠어요?”

두 명 중 한 명이 쾌히 도와주었다. 사람이 별로 없는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3시간을 앉아있었다. 둘째가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 종일 단식을 한 건 아니었다.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지만,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진상 규명을 원하는 국민들이, 일반 국민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알아야 할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조금이나마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정말 힘들게, 힘들게 읽었다. 여러 번 책을 덮었고, 그리고 여러 번 눈물이 났다. 이 글을 썼던 사람들, 이야기했던 사람들에 비하면 힘들었다는 내 말은, 너무 사치스러운 말일지도 모르겠다. 자식을 잃은 이 분들의 고통에 비하면.

체육관에서 한사람 한사람 줄어가는데 그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초조하고...... 내 딸이 유실됐나, 인원이 줄어드니까 머릿속이 온통 다 그런 생각밖에 안 나. 막상 내 딸이 나왔는데 나머지 유가족들을 못 보겠더라고. 여기 누구 엄마, 여긴 누구네, 여긴 선생 그다음에 나, 이렇게 넷이 다 같이 모여 있었어. 그중 나만 나왔어. 생각해 봐. 다 안 나온 중에 나만 나왔다니까. 그날 미지 데리고 오는데 그간 동고동락했던 사람들 얼굴을 볼 수가 없더라고. 미안하고 죄스럽고. 지금도 다 안 나왔어. 그 사람들이 어깨 툭툭 치면서 축하한다고 그래. 근데 거기서 축하한다는 인사를 받을 수 있냐고, 그 상황에서.“ (53쪽, 2학년 1반 유미지 학생의 아버지 유해종 씨 이야기)

 

옛날에 어른들이 자식 앞세우곤 못 산다고 했는데 그 말이 다 맞아요. 공원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건강하게 오래 사시겠다고 운동하는 걸 보면 우리 아이들은 열일곱에 죽었는데 하면서 분노가 막 치밀어올라요. 누가 마흔살에 죽었다고 하면 아 20년만, 우리 딸로 23년만 더 살았으면, 그렇게밖에 말이 안 나와요. 우리 승희는 없는데 세상은 아무 일도 없는듯 돌아가고 사람들이 웃으며 돌아다니는 걸 보면 화가 나고. 억울하고 용납이 안 돼요. 왜 하필 내 딸이 그 나이에 죽었는지.... (78쪽, 2학년 3반 신승희 학생의 어머니 전민주 씨 이야기)

 

 

 

설마했던 부모들은, 끝까지 국가를 믿었던 부모들은, 망망대해 넓은 바다에서, 골든타임(이제는 아무나, 아무 상황에서나, 자기 편한대로 사용하는 단어가 되어 버려 그 사용이 꺼려지는 그 골든타임) 동안 아무 일도, 정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국가를 본다. 해경과 언딘. 그리고 거짓말하는 언론을 본다. 지상최대의 구조작전,이라고 쓰는 언론을 본다. 구조하지 않고, 구조하고 있다고 말하는 국가와 언론. 

자식이 죽었을거라고, 이제는 죽었을 거라고 생각한 부모들은 자식의 ‘몸’을 기다린다. 마지막으로, 단 한 번 마지막으로 아이의 모습을 눈에 간직하고 싶어, 부모들은 자식을 기다린다. 아들과 딸을 기다린다. 그리고, 아이가 나온 부모에게 말한다. 축하한다고, 축하한다고 말이다.

땡볕에 부모들은 거리로 나온다. 청와대로, 국회로, 그리고 광화문으로 나간다. 대통령은 외면하고, 여당은 거짓말을 지어낸다. 야당은 무능하고, 국민들은.... 사람들은 이제 그만 하라고 말한다. 이제 그만큼 했으면 됐다고, 다들 그렇게 살지 않냐고. 왜 너만 유난을 떠느냐고 말이다.

한 학교가, 한 마을이, 한 동네가 완벽하게 붕괴되었다. 하나의 완벽한 우주, 완전한 하나의 우주인 아이들이 그렇게 죽었는데도, 억울하게 죽었는데도, 구조를 받지 못 해 죽었는데도, 시키는대로 했다가 죽었는데도, 이 나라는 꿈쩍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한다.

이제는 그만하라,고 말이다.

<416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은 옆에서 많이 기다리고 기다렸다. 분향소와 단원고, 장례식장을 오가며, 가끔 진도도 다녀오면서 그렇게 말없이 부모들과 함께했다. 그들의 아픔을 함께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기에 유가족들도 그들에게 마음을 열 수 있었을 것이다. 많이 아프고 힘든 이 시간들은, 잊혀져서는 안 되기에, 기억되고 또 기억되어야 하기에 이렇게 책으로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읽는 시간 내내 많이 어렵겠지만, 힘들고 고통스러운 이 시간들을 통해, 그 절절한 시간들을 통해 아이를 잃은 부모들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한다. 온 세상을 잃어버린 부모들이 다시 환하게 웃지는 못한다 할지라도 그들이 더 이상 절망가운데 있지 않도록 힘을 보탰으면 한다. 그것은 이제 영영 떠나버린 그들의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모순덩어리의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으면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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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아의서재 2015-03-21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호 1년 이 얼마남지않았습니다.

단발머리 2015-03-23 09:34   좋아요 0 | URL
네, 달걀부인님~~
정말 1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봄이 오네요. 아무 일도 해결이 안 됐는데, 벌써 봄이예요....
아이들한테... 미안해요.
 

사건 개요 :

북풀에서 작성한 글이 `비공개`로만 설정되어 내게만 보였던 상황

사건 이유 :

카테고리를 따로 선택하지 않은 경우, 새로 쓴 글이 맨 위의 카테고리, 즉 현재 `비공개`로 설정되어 있는 카테고리 안으로 들어가, 새로 작성한 글이 `비공개` 되었음

해결 방법 :

글 작성 전에 `공개` 카테고리 선택

감사 말씀 :

말로 다 할 수 없어라~~! 어쩜, 진단과 처방이 이리도 정확하실까~

북풀 댓글 100개로도 그 사랑 다 갚을 수 없어라~!
땡큐, 오케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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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다.

 

미세먼지 주의보의 서울과 확연히 대비된다. 오늘 아침 봄비로 서울의 하늘도 이렇게 깨끗해지기를...

 

깨끗한 바닷물은.... 그건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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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3-18 0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왠일인지 낯설지가 않아요~~^^

아~ 바다 가고 싶어요!!!!!!!

단발머리 2015-03-18 12:35   좋아요 0 | URL
익숙하시죠~~~ 역시!!!
아무개님은 우리별 지구에 사는 게 분명합니다. ㅋㅎㅎㅎㅎ
이곳은 괌, **** 비치입니다.

저도, 바다.... 가고 싶어요~~~

수이 2015-03-18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바다!

단발머리 2015-03-18 12:36   좋아요 0 | URL
바다에 가면 너무 좋은데, 가는 길이 너무 멀어요. 멀어요, 진짜~~~
눈으로만 바다 가요.
같이 가요, 야나님~~

다락방 2015-03-18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거였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괌 괌 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5-03-18 12:37   좋아요 0 | URL
ㅋㅎㅎㅎ 이 사진은 제가 10년 전에 괌에 갔을 때 찍은 게 아니구요.
곱디고운 어떤 예쁜 님이 괌 갔을 때 찍은 사진이예요.
저는 핸폰을 열고 닫을 때 괌에 갑니다. 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해피북 2015-03-18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따라 비 내리는 후드득 소리 참 운치 있네요 ㅎ

단발머리 2015-03-18 12:37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아침에 아이들 우산 챙겨 보냈는데, 지금은 비가 안 오네요.
비가 와야, 미세먼지 씻기는데요.
아.... 기다립니다. 운치 있는 빗소리요^^

icaru 2015-03-18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이 바로 에메랄드빛 바다이죠잉~~ ㅎㅎ
마음이 넘실넘실 하네요~~

단발머리 2015-03-18 12:38   좋아요 0 | URL
색이 정말 너무너무 예쁘죠.
아무리 훌륭한 화가라해도 이런 예쁜 색깔 만들기는 어려울거예요. 그쵸?
저도 물결따라 넘실넘실~~~~~~~~

cyrus 2015-03-18 2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구는 밤이 되니까 비가 그쳤어요. 내일 날씨가 어제처럼 따뜻해진다고 하네요. 미세먼지 가득한 맑은 어제보다 내일이 더 기대됩니다.

단발머리 2015-03-23 09:51   좋아요 0 | URL
cyrus님, 아..... 오늘은 날씨가 조금 개었어요. 미세먼지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어서요.
이틀간 문을 안 열었더니, 집안 공기가 더 안 좋은 것 같아요.
맑은 날을 기대합니다... 대구도 서울도요*^^*
 

 

 

 

 

 

 

 

나는 한 작가의 작품을 여러 권 읽지 못하는데 한 작가의 책을 모두 읽기에는 이 세상 천지 읽지 못한 책이 너무 많아서이고, 앞으로 읽을 책이 매우 많아서이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위대한 작가의 훌륭한 작품들을 모두 다 읽을 수 없으니, 위대한 작가, 그들 중 일부의 작품을 ‘하나씩’이라도 읽겠다는 거였다.

일테면, 카뮈의 『이방인]은 읽고, 『페스트]는 미뤄두었다.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는 읽고 『생의 이면』은 제쳐두었다. 하루키는 『상실의 시대』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읽었고, 나머지는 남겨두었다.  

 

 

 

 

 

 

 

쿤데라는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농담』, 『정체성』을 읽고, 『불멸』, 『생은 다른 곳에』는 미뤄 두었다. 이응준은 『내 연애의 모든 것』을 읽고, 『밤의 첼로』는 다음을 기약했다. 박민규는 『삼미슈퍼스타즈』, 『지구영웅전설』을 읽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미뤄두었다. 줌파 라히리는 『저지대』는 읽었지만 아직 단편집은 시작하지 못 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읽는 내내 쾌활한 느낌이 좋아 『오만과 편견』, 『설득』, 『엠마』를 읽었고, 이번에 『이성과 감성』을 읽게 됐다. 나빴다고는 할 수 없지만, 완전 좋았다고도 할 수 없다. 내게는 『오만과 편견』의 등장인물들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엘리자베스와 다아시의 조합 말이다. 뭐, ‘굳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뭐, ‘굳이~~’ 이런 걸 좋아라한다.

오만과 편견 > 설득 > 엠마 > 이성과 감성   

컵 때문에 책을 산 것이 아니라고는 못 하겠으나, 생각보다 책의 겉장이 얇아 많이 실망한 것도 사실이다. 같이 구매한 『오만과 편견』이 얼마나 당당한 매력을 뽐내는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당신 가족 모두에 대한 저의 존경은 정말로 진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제가 느끼던 이상의, 혹은 표현하고자 했던 것 이상으로 어떤 믿음을 불러일으켰다면, 그런 존경을 표현하는 데 좀 더 신중하지 못했던 저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28쪽) 

 

엘렌쇼에서 엠마 왓슨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영국 남자애들은 옷도 잘 입고 매너도 좋지만, 절제하는 편이라고. 연애 전 단계에서는 그 애가 나를 좋아하는지 어쩐지 알게 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하지만, 미국 남자애들은 그렇지 않다고. 그 애들은 몇 일만에 ‘너를 좋아한다’고 고백하고, 데이트를 신청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쪼리를 신는다, 그것까지 좋아하게 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엠마 왓슨은 그것이 ‘컬쳐쇼크‘였다고 말했다.

메리앤이 겪고 있는 상황이라는 건, 엠마왓슨의 컬쳐쇼크에 다름 아니다. 메리앤이 보낸 편지에 대한 연인 윌러비의 답신이다. 그는 말한다.

당신 가족 모두에 대한 저의 존경은 정말로 진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제가 느끼던 이상의, 혹은 표현하고자 했던 것 이상으로 어떤 믿음을 불러일으켰다면, 그런 존경을 표현하는 데 좀 더 신중하지 못했던 저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228쪽) 

 

그러니까 이런 말이다.

“당신 가족에 대한 존경은 사실이나, 제가 느끼던 감정인 존경 이상의 감정 즉, 사랑에 대한 어떤 믿음, 즉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면 그것은 나의 불찰이다.”

다시 말해 이런 뜻이다.

“당신의 가족을 존경하나 당신에 대해서는 사랑의 감정이 없다. 오해가 있었다면 미안하다.”

정말 그랬을까? 윌러비의 행동에는 메리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전혀 없었을까. 이 모든 것이 메리앤의 오해였을까. 아니다. 윌러비는 남자가 연정을 품고 있는 여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일을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있었고, 아직 물려받지 않았지만 곧 자신의 것이 될 것이라 예견된 자신의 저택을 보여주려 했다. 그녀에게 머리카락을 달라고 애원했고, 잠시도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그녀를 모른 척 하는 거다. 연회장에서 만났을 때도 형식적인 인사를, 그것도 먼발치에서만 할 뿐, 그녀에게 다가오려고조차 하지 않는다. 메리앤은 병이 나고 말았다. 편지를 보냈고, 답을 받았다.

“당신에 대해서는 사랑의 감정이 없다.”

메리앤의 절망이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사랑을 잃었고, 명예를 잃었고, 미래를 잃었다. 사랑하는 남자의 변심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그와 함께 이 모든 것을 잃었다. 남자가 떠나고, 모든 것이 변했다.

이 책을 읽어가던 중 알라딘에서는 이런 질문이 유행했는데, “무인도에 이상형의 남자와 살게 된다면 구조요청을 할 것인가”는 거였다. 거기에 대해선 각자 개인적이고,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답이 존재했을 텐데, 나는....

어떤 남자와 단둘이 있을 것이냐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보았더랜다. 많이 좋아하지만 김수현은 사실, 좀 부담스럽다. 현빈도 좋은데, 조금 있으면 금방 지루해 질테고. 노래도 불러주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주는 성시경도 좋긴 하지만, 재미있는 걸로 하면 유희열이 딱 내 스타일이다. 남자를 바꿔가며 이런 저런 생각을 끝도 없이 이어가던 찰나, 이런 문장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메리앤, 한 사람에게 한결 같은 애정을 갖는다는 생각이 매력적이긴 해도, 그리고 자신의 행복이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말이 일리가 있긴 해도, 꼭 그래야만 한다는 건 맞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아. (324쪽)

 

맞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단다.

남자에게만 방점을 찍던 나에게, ‘내’가 필요하며, ‘나’도 필요하다고 말해주었던 어떤 고운님이 떠올라 혼자 또 미소짓는다.

그 생각이 매력적이긴 해도, 일리가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래야만 한다는 건 맞지도 않고, 가능하지도 않다. 이제 생각을 고쳐먹은 나로서도 ‘그렇단다’에 한 표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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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3-17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책도 무섭게 읽고 글도 무섭게 쓰시네요. 단발머리님의 글쓰기가 지금 절정의 시기에 도래했달까요? 훗 :)

단발머리 2015-03-17 19:21   좋아요 0 | URL
아직 갈 길이 멀었지요. 근래 2-3년이 제 인생에서 제일 책을 많이 읽는 시간인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정말 얼마나 안 읽었던지요~~~ㅋㅎㅎㅎㅎ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알라딘 서재가 있어서, 격려해주신 분들이 있어서 신나게 달려가고 있네요 : )

icaru 2015-03-17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이 쓰시는 페이퍼 서체가 뭐예요? 어디서 이런 서체(굴림체??)만 봐도 아,,, 단발머리서체다(서체를 운운할 때는 `님`생략입니돠~) 하며 친근해합니다. ㅋㅋㅋㅋ

굉장히 많이 읽으시네요~~ 독서가의 아우라를 듬뿍이~~
생의이면,,, 아,,,`찐득하고 끈적한 생의 본질`이라고 말하면서 밀크캬라멜을 떠올리고 있는 것은,,,사진속 센스앤센서빌리티라는 큐트한 머그잔에 담긴 음료가 뭘까 상상하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단발머리 2015-03-17 19:28   좋아요 0 | URL
아하~~ 저는 `맑은고딕체`를 쓰고 있어요. 한글에서 쓸 때도 그걸로 쓰거든요.... 제꺼로 여겨주신다면 그냥 제꺼로 하겠습니당*^^* 위의 책은 4-5년치를 묶어놓은 거예요. 많이 부끄럽네요~~~저는 진짜 앞으로 읽을 책이 많은 사람입니다, 에헴~~~

<생의 이면>은 읽으려 벼르고는 있는데 언제 시작하게 될지는 저도 @@입니다. 참, 예쁜 잔속의 음료는 아실랑가 모르겠네요, 요구르트입니다. 사진으로는 잘 안 보이는데 완전 예쁩니다. 아침부터 제가 요구르트 한 잔 했습니다^^

cyrus 2015-03-17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 작가의 책을 모두 읽으려는 전작 독서를 선호해요. 그런데 쉽지 않은 일이에요. 시도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읽고 싶은 책이 너무 많아요. ^^;;

단발머리 2015-03-18 07:52   좋아요 0 | URL
맞아요, cyrus님~~ 저도 전작 독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서요.
저는 그래서 일단 작품수가 적은 작가를 공략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은 제인 오스틴(6개중 4개 읽었네요.)과 김승옥입니다. (집에 있는 문학동네 김승옥 전집은 5권짜리네요.)

그런데, `전집`이라고 나온 게 그 작가의 작품 전부는 아닐텐데, 그렇죠? 그게 조금 헷갈립니다^^

보슬비 2015-03-18 0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만과 편견`을 읽었는지, `엠마`를 읽었는지, 아니면 둘다 읽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거려요.^^
아니면 `엠마`는 영화로 봤나... ㅎㅎ

책양장도 호감이 가지만, 잔이 너무 귀여워요. 에스프레소 잔인가요?

단발머리 2015-03-18 07:53   좋아요 0 | URL
사실, 제인 오스틴 책은 서로 약간씩 비슷하지요. 저는 그래도 `오만과 편견`이 제일 좋네요^^

잔이 너무 귀엽지요? 다른 잔을 옆에 두면 더 귀엽습니다. 원래는 에스프레소 잔인것 같아요.
저는 보리차를 부어 마시거나, 요구르트를 담아서 먹습니다. 설거지할 때도 조심조심.... 헤헤

아무개 2015-03-18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의 이면>도 좋지만, 이승우의 단편집 <일식에 대하여> 강력 추천입니다.
저와 다락방님이 이승우에게 빠지게된 단편이 실려있어요.
전 그 단편을 읽으면서 질질 짰어요 ㅜ..ㅜ


단발머리 2015-03-23 09:40   좋아요 0 | URL
<일식에 대하여> 완전 읽고 싶어요.
다락방님과 아무개님의 이승우 물결에 저도 빠질래요.
질질은~~ 아, 진짜....
전 잘 우는 사람인데, 저한테, 진짜 이러지 마세요~~~~~~~ : )

yamoo 2015-03-18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단발머리님 처럼 읽다가 어느 순간 전작주의로 가더라구요...에코가 그랬고, 쿤데라가 그랬으며, 우엘벡이 그랬습니다. 키냐르도 마찬가지였지요. 하지만 이렇게 전작 주의로 꽂히는 작가가 그리 많지 않아서, 모르는 작가 찾기 위해 요즘 다시 단발머리님과 비슷한 방법을 다시 사용하고 있습니다.ㅎㅎ 요즘 모던 클래식 시리즈와 세계문학의 숲 시리즈에서 몇 작가를 발견해서 읽고 있는데, 도통 다른 작품이 번역된게 없더군요..OTL

저도 아무개님 의견에 동감합니다. 이승우의 장편은 <생의 이면>이 대표작이고(이승우 하면 생의 이면!) 재미면에서는 단편집들이 좋습니다. 저도 일식에 대하여...강추합니다!

단발머리 2015-03-23 09:38   좋아요 0 | URL
네, yamoo님~~ 저도 물론 전작주의를 추구합니다. 추구는 하고 싶은데, 쉽지는 않더라구요.
에코나 쿤데라는 저도 한 두 권씩 읽어봤는데, 우와~~ 우엘백이나 키냐르는 정말 처음 듣는 이름이예요. 읽을 책도 많고, 정말 훌륭한 작가들도 많아요. 저는 완전 갈 길이 멀어서, 정말~~ 좋아요*^^*

<일식에 대하여>는 표지만 아는 책인데, 서둘러 찾아봐야겠어요.
완전 감사해요*^^*

초록장미 2015-08-1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왜 <이성과 감성>을 끝까지 읽지 못할까요. ㅠㅠ <오만과 편견>은 푹 빠져서 두 번이나 완독하고 영화도 봤는데 <이성과 감성>은 두 번 도전했건만 두 번 다 중간에 덮었어요. 기왕 산 책이니까 어떻게든 끝까지 읽으려고 했는데 말이죠. 주인공들이 별 매력이 없어서 그런 건지...... 제인 오스틴의 작품에는 연애와 결혼 이야기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걸 알지만 남자주인공이나 여자주인공이나 다들 무미건조해서 끝까지 읽지를 못하겠어요. 그런데 단발머리님의 리뷰를 읽어보니까 애초에 감상 포인트를 잘못 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언제 한번 다시 도전해봐야겠어요!

단발머리 2015-08-18 13:1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초록장미님.
저도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성과 감성>을 끝까지 읽기까지 몇 번의 고비가 있었습니다. 저 역시 <오만과 편견>은 아주 좋았는데요. 저도 주인공을 탓했습니다.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매력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위의 페이퍼, 제가 쓴 페이퍼를 다시 살펴보니, 제인 오스틴 작품 중에서는 <이성과 감성>이 꼴찌네요.
ㅎㅎ 초록장미님이 다시 도전하신다니, 제가 소박하나마 저의 화이팅을 전합니다. 화이팅!
 
대성당 (무선) - 개정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9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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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나는 잘 우는 편이다. 내 이야기를 하면서도 쉽게 눈물을 글썽이고, 다른 사람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금방 눈물을 글썽인다. 혼자서도 잘 울고, 다른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도 잘 운다. 교회는 다른 곳보다 ‘눈물’에 대해 관대한 편이지만, 나는 보통 사람들보다도 훨씬 더 많이 우는 편이라 눈물대비용 손수건을 항상 챙기는데, 언젠가는 2층 유아예배실에서도, 4층 본당에서도 화끈하게 울어버리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요즘에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하야~~ 나이가 들어서) 예전만큼은 아닌데, 이 단편을 읽다가 그만 눈물이 쏙 나고 말았다. 책을 읽던 장소는 지하철이었는데, 나는 손에 책을 들고 있어 급하게 탈출하는 눈물들을 어쩌지 못해 혹시 내가 아끼는 이 소중한 책이 눈물에 젖을까 순간 당황했다.

눈물을 쏙 뺀 구절은 이렇다.

그는 아이들이 태어난 뒤의, 중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처음으로, 그러니까 아일린은 열여덟, 그는 열아홉 시절의 일들, 한 소년이 한 소녀를 만나 사랑에 불타오르던 시절로 돌아갔다.

그는 이마를 닦기 위해 말을 멈췄다. 그는 입술을 적셨다.

“계속해요.” 웹스터 부인이 말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나는 알아요. 계속 말하세요, 칼라일 씨. 때로는 그렇게 다 말하는 게 좋을 때가 있어요. 때로는 말해야만 하는 거라우. 게다가, 나도 듣고 싶어요. 다 말하고 나면 기분이 한결 가벼워질 거예요. 나한테도 있었던 일이니까요. 당신이 말하는 그런 일. 사랑이라는 거. 바로 그 얘기 말이우.” (253쪽)

 

칼라일은 홀아비다.

칼라일은 버림받은 홀아비다.

칼라일은 아이가 딸린 버림받은 홀아비다.

어려서 만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알콩달콩 행복하게 지내던 어느 날, 아내는 자신의 직장 동료와 눈이 맞아 집을 나간다. 아이들을 돌볼 사람이 없어 애를 태우던 칼라일은 사정을 전해 들은 아내의 친절한(?) 주선으로 아내 새애인의 어머니 집안일을 돕던 웹스터 부인을 소개받고 그녀에게 아이 돌보는 일을 부탁한다. 그녀 덕분에 엉망이었던 집은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칼라일은 돌연 가슴이 조이고 머리가 아파왔다. 그리고 열이 난다.

웹스터 부인이 챙겨준 약을 먹고, 웹스터 부인이 가져다준 시리얼을 먹고 나서, 일어날 힘을 회복한 칼라일은 그녀에게 말한다. 자신과 자신의 아내는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고, 이 세상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많이 사랑했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떠났다.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로 가 버렸다.

여름 동안, 아일린은 아이들에게 몇 장의 카드들과 편지들과 자기 사진들과, 집을 나간 이후에 그린 펜화 몇 개를 보냈다. 그녀는 또한 칼라일에게 이 문제 - 이 문제 -를 이해해달라며, 하지만 자신은 행복하다는 내용의,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행복. 마치 행복만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투로군, 이라고 칼라일은 생각했다. (227쪽) 

 

세상 누구보다 더 사랑하고, 세상 누구보다 더 아끼는 자신의 유일한 그 사람이 “이제 내 인생을 찾겠다”고 떠나갈 때, 그 사람을 아직 사랑하는 사람의 실망이란 어떠할까. 떠나버린 사람에 대한 분노와 스스로에 대한 수치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사람을 기다리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때의 절망이란 어떠할까.

칼라일, 떠난 아내의 빈자리를 채우려고 애쓰는 남자.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아이들 옷을 세탁해서 다리고, 아이들을 차에 태워 근교로 나가 기름종이에 싸온 샌드위치도 먹고 같이 꽃도 따는 칼라일. 아이들을 슈퍼마켓에 데려가 사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고르게 하는 사람, 칼라일. (225쪽) 자기 혼자 행복하겠다고, 행복을 찾아보겠다고 자신을 떠나버린 아내를 기다리는 칼라일.

칼라일은 아내가 돌아올거라 믿었다. 아니, 그녀가 돌아오기를 바랬다. 그녀와의 사랑은 너무나 소중해서 그것을 버려두고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이제 자신의 집을 더 이상 돌봐줄 수 없다는 웹스터 부인을 앞에 두고, 이제 곧 헤어지게 될 웹스터 부인을 앞에 두고 칼라일은 말하고 싶어한다. 그는 말하고 싶어한다. 자신과 자신의 아내에 대해, 그들의 사랑에 대해 말이다.

웹스터 부인은 칼라일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다. 바로 그때, 창가에 서 있을 때, 그는 그렇게 뭔가가 완전히 끝났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일린과 관계된, 이전의 삶과 관계된 그 무언가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든 적이 있었던가? 물론 그랬을 것이다. 그랬다는 것을 안다. 비록 지금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하지만 그는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이해했고 그녀를 보낼 수 있다고 느꼈다. 그는 자신들이 함께한 인생이 자신이 말한 그대로 이뤄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 인생은 이제 지나가고 있었다. 그 지나침은 - 비록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그는 맞서 싸우기까지 했지만 - 이제 그의 일부가 됐다. 그가 거쳐온 지난 인생의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254쪽)

 

웹스터 부인에게 자신의 심정을 모두 털어놓고 나서, 그녀에게 손을 흔들고 나서 칼라일은 비로소 이제 모든 게 끝났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이젠 끝났다. 행복했던 순간과 마찬가지로 지옥 같은 이 순간도 이렇게 지나가 버렸다. 그는 이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내가 자신을 떠나갔다는 것을, 이제 그 자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칼라일의 아내를 이해한다. 그녀에게는 완벽한 하나의 사랑이 있었고, 그리고 또 하나의 완벽한 사랑이 그녀를 찾아온 것일테다. 그 사랑 역시 열병처럼 그녀에게 찾아왔을 것이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를 이해한다. 이해는 하지만, 그녀의 뻔뻔한 모습은 정말 별로다. 아이를 버려두고 떠난 그녀는 너무 당당하다.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어 아쉽다. 그녀가 얄밉다.

칼라일은 이제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웹스터 부인 덕택이다. 그녀는 많이 배운 사람도, 실연당했을 때 이루어져야 하는 치료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녀는 칼라일이 이 어려운 시기를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아스피린 한 개와 시리얼 한 그릇,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는 마음이 그에게 힘을 주었다. 말하고 싶어하는 칼라일에게 귀기울이는 마음이 그에게 인생의 새로운 시간을 열어 주었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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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5 04: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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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15 07: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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