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겠습니다
416가족협의회 지음, 김기성.김일우 엮음, 박재동 그림 / 한겨레출판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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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다 - 김영하에게 듣는 삶, 문학, 글쓰기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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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성장 불황의 시대를 사는 법

그 때가 좋았어, 라고 모든 어르신들은 말한다. 이제 막 4땡의 세계에 진입한 나도 그렇게 자주 말한다. “아~ 나 대학 다닐 때는 진짜 좋았는데.” 그건 그냥 ‘지난 시절’이 좋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때는 진짜 좋았다. (힘든 시대를 살고 있는 현재의 20대들에게 사랑과 위로를...) 말 그대로 그 때는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그 후로는 만고땡의 시절이었다. 학점은 좋아야 하지만, 학점이 좋지 않아도 괜찮았고, 수업에 들어가야 하지만, 수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큰 지장은 없었다. 영어 점수가 필요하긴 했지만, 요즘같이 어마 무시한 점수 정도는 아니었다(라고 나만 기억하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대학 생활과 제일 가까운 단어는 ‘낭만’이나 ‘CC' 또는 ’동아리‘가 아니라, ’알바‘, ’대출금‘ 그리고 ’취업준비 스터디‘ 정도일 테다. 세상이 변했다. 세상이 바뀌었다.

만약 제가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냥 여름 훈련에 참가하고 장교로 임관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뭐든 됐겠지만 아마 작가는 되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에는 분명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습니다. 경제성장률이 10퍼센트를 넘나드는 시절이라 다들 미래를 낙관하고 있었거든요. ... 원래 부모님은 제가 공인회계사 같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원하셨고 작가가 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시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들이 끝내 밥을 굻게 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셨던 듯합니다. 그건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뭐 굶어죽기야 하겠어?’ 그런 마음으로 부모님께 빌붙어 몇 년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 지금 같은 시절에 대학을 다녔다면 저도 20년 전처럼 행동하지 못했을 겁니다. 예를 들어,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이 있고, 안정적인 직장이 없는 부모 또한 아파트 담보 대출을 떠안고 그걸 매달 갚아나가야 하는 처지였다면, 저 역시 습작보다는 취업에 뛰어들어야만 했을 겁니다. (18-9쪽)

 

지금 같은 시절이었다면, 작가의 길을 가지 못했을 거라는, 습작의 시간을 견디지 못했을 거라는 작가의 말은 그 동안 시대가 얼마나 변했는지를, 지금이 얼마나 암울한 상황인지를 보여준다. 작가는 말한다.

이제는 열심히 해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니라 비관입니다. 어떤 비관인가? 바로 비관적 현실주의입니다. 비관적으로 세상과 미래를 바라보되 현실적이어야 합니다. (23쪽)

비관적 현실주의는 인상을 쓰고 침울하게 살아가자는 게 아닙니다. 현실을 직시하되 그 안에서 최대한의 의미,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관적 현실주의에는 개인주의가 필수적입니다. (24쪽)

많이 벌고 많이 쓰고 많이 저장하는 삶은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런 비관적 인식하에 지금 여기에서 어떤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까를 개인적으로, 독자적으로, 개별적으로, 현실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29쪽)

 

돈을 쓰지 않으면서, 지금 여기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찾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돈을 벌면서,라고 쓰면 더 좋겠지만, 당장은 가능하지 않으니, 일단은 돈을 쓰지 않으면서. 지금 여기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을 찾아야겠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2. 친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마흔이 넘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잘못 생각했던 거죠. 친구를 덜 만났으면 내 인생이 더 풍요로웠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술자리에 시간을 너무 많이 낭비했어요. 맞출 수 없는 변덕스럽고 복잡한 여러 친구들의 성향과 각기 다른 성격, 이런 걸 맞춰주느라 시간을 너무 허비했어요. 차라리 그 시간에 책이나 읽을걸, 잠을 자거나 음악이나 들을걸. 그냥 거리를 걷던가. 20대, 젊을 때에는 그 친구들과 영원히 같이 갈 것 같고 앞으로도 함께 해나갈 일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내가 손해 보는 게 있어도 맞춰주고 그런잖아요. 근데 아니더라고요. 이런저런 이유로 결국은 많은 친구들과 멀어지게 되더군요. 그보다는 자기 자신의 취향에 귀기울이고 영혼을 좀더 풍요롭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한 거예요. (38-9쪽)

 

한국 사회,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동양 문화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만약, 내가 이 이야기를 했다면, 내 주위의 사람들은, 내 친구들은, 같은 반 엄마들은,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모두 이상한 사람 취급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김영하는 말한다.

친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어떻게 보면 이런 정도의 이기심, 이런 정도의 자기애가 없다면, 그런 사람은 작가로서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항상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소설가를 생각해 보라. 전화하면 언제나 콜!을 외치는 시인을 생각해 보라. 괴팍한 성격의 작가만을 상상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사람 좋은 작가도 사실 상상이 안 되는 건 마찬가지다.

다시 친구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친구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작가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말해야 내가 정상적으로 보일 거라 믿지만)고 하더라도, 친구에게만 인간관계에만 집착하는 것도 그리 권장할 것은 아닌 듯 싶다.

적어도 나는 우리의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친구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와 똑같은 톤과 강도로, 그럼에도 친구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가족은 너무나 소중하고, 가족으로 인해 얻게 되는 기쁨과 안정감은 어디에도 비길 데 없다. 하지만, 그런 가정에서조차, 즉 남보기에 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생활에서조차 갈등과 어려움은 존재할 테고, 그럴 때는 마음을 툭! 터놓고 이야기 나눌 친구가 필요하다. 가장 안전한 가정에 있을 때조차 사람들에겐 친구가 필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가장 큰 상처를 주는 건 사람일테지만, 그것을 이겨낼 위로 역시 사람으로부터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책상 서랍에 숨겨놓을 수밖에 없는 글

 

선생님이 쓰라는 주제에 대해서만 쓸 때, 아이들은 전혀 즐거움을 느낄 수 없죠. 그렇다면 결국 금지된 것을 써야 해요. 선생님이 쓰지 말라는 것을 써야 합니다. 저는 가끔 학생들에게 그렇게 얘기했었습니다. 책상 서랍에 숨겨놓을 수밖에 없는, 그런 글을 써라. 부모가 보면 안 될 것 같은 글. 반대로 말하자면, 부모한테도 보여주고 싶고 선생님한테도 보여주고 싶은 글에는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거죠. (136쪽)

 

 

 

 

위의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보았던 것인데, 보여줄 수 없는 글에 대해서는 자주 생각하게 된다. 자기를 억압하는 것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는 것, 희열을 느끼는 글쓰기에 대해서 말이다.

‘문학’이 도덕적 판단과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면 어떨까. 문학의 내용과 형식이 모두 교훈적이고, 모두 실용적이며, 모두 합법적이라면 어떨까. 인생의 많은 부분이 그러해야 한다고 말하고, 사실 그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할지라도 문학마저, 문학 너 마저 그러하다면 우리네 인생은 참, 재미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선생님이 쓰지 말라는 것, 부모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것을 쓰게 될 때, 그 때야 비로서 ‘글쓰기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김영하는 말한다. 이 시점에서 잠깐 생각해본다. 보여줄 수 없는 글, 보여주기 싫은 글에 대해서 말이다.

곰곰 생각해보니 내게도 그런 이야기가 하나 있다. 그리고 하나 더. 그런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에 대해 쓸 수 있을지, 아니면 마음에만 간직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 이야기를 쓰게 된다면, 그렇다면 그건 서랍에 넣어두어야겠다. 책상 서랍 속에 잘 넣어두어야겠다.

김영하,라는 이름이 익숙해 그의 작품을 많이 읽은 줄 알았는데, 소설 2권과 산문집 1권을 읽었을 뿐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검은 꽃』,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다음은 2단계 도전리스트다. 언제 만나게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기다리시라. 개봉박두. 

 

                           

 

 

 

 

『너의 목소리가 들려』, 『빛의 제국』,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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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4-25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비관보다 해석 or 결론의 유보가 더 적절하지 않을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비겁이나 우유부단이 되지 않도록 다방면을 살피는 직시가 필요한 터라 이또한 쉽지 않더군요.
비관 자체의 단어를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너무 한면만 생각한다고도 볼 수 있더군요. 니체를 비관주의, 염세주의라 보지만 그걸 도약판으로 종국엔 무엇을 보려 한건가가 중요한 것인데 말입니다.
김영하씨는 비관을 발판으로 현실주의...평소 김영하씨에게 느끼건 이미지와 잘 부합됩니다.

단발머리 2015-04-26 07:37   좋아요 0 | URL
네~ 저도 Agalma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현실이 암울한게 사실이더라도 `해석`과 `결론의 유보`가 더 적절하다고 믿어요.
다만 `비관적 현실주의`의 김영하가 ˝아프니까 청춘이야˝거라 ˝네 노력이 부족해서 네가 힘든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들보다 더 마음에 들어요.
약간 냉정한 듯 보이기는 해도요^^

에이바 2015-04-25 2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디 인터뷰에선가 김영하씨가 지금의 젊은 세대였다면 작가가 되지 못했으리라 한 기억이 나요. 그런 사회를 살아가며... 비관적 현실주의와 개인주의가 함께 갈 수 밖에 없다는 것, 지금은 그 안에서 최대한 즐겁고 의미있게 사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 모두 공감합니다. 이런 현실이 독서인구가 줄어드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사회가 경직될수록 우리의 감성은 부드러워야 하지 않나, 그렇지만 노력하기도 전에 말라간다는 생각에 씁쓸하네요. 이런 얘기도 김영하이기에 좀 더 귀기울여 듣고 공감대를 얻어가는 거겠지요. 지식인들이 좀 더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단발머리 2015-04-26 07:41   좋아요 0 | URL
맞아요, 에이바님.
그런데 암담한 20대, 당장 취직을 해서 대출금을 갚아야하는 20대들이 책을 손에 들만한 시간이 있을지, 마음의 여유가 있을지, 그런 생각을 하면 참 답답하기는 합니다.
이 책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아르바이트생이 돈을 아껴 책을 사서 사장님에게 선물했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사장님이 아르바이트생에게 책을 선물해야 한다면서요.

김영하처럼 영향력있는 사람들이 나서줬으면 하는 마음, 저도 동감입니다.

해피북 2015-04-26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글 읽으니 이 책이 읽고싶어지네요 아직 소설 한 권도 안읽어봤는데 도전해보고 싶어졌어요^~^

단발머리 2015-04-27 12:38   좋아요 0 | URL
네~ 테드 강의랑 다른 곳에서의 강의를 묶어놓은 거라서 아주 슉슉 읽힙니다.
저도 소설을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읽은 책 두 권 다 아주 재미있게 읽었구요.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옥수수와 나`가 아주 색다르게 야하면서 재미있습니다.
추천합니다. 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에 응모합니다!!!

 

이벤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응모는  http://blog.aladin.co.kr/tiel93/7450282 

 

요기, 그렇게혜윰님 방에서 해 주시면 됩니다~

 

 

 

박은정 시인의 시집 출간을 누구보다 기다린 독자로서 자그마하지만 개인이벤트를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 시집을 가까이 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박하나마 진행해 봅니다. 

 

응모방법 : 시집을 구매한 후 본인 서재에 인증샷을 남겨주세요. (남기신 후 이 글에 댓글로 주소를 달아주세요....^;;)


응모상품 : 마노핀 아메리카노 기프티콘 (어른의 상징 커피 한잔? 맥주 한 캔을 드리고 싶었지만 맥주는 기프티콘을 안파네요^^;;;)

<혹시 근처에 마노핀이 없으신 분들과 커피 안드시는 분들께는 원하시면 편의점 빨대꽂아먹는커피나 바나나우유나 다른 차로 보내드릴게요^^ >


응모기한 : 4월 30일 자정까지 (기왕 사실 시집! 커피 한 잔을 기대해 보시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당첨인원 : 10명


당첨방법 : 추첨


더 많은 분께 드리지 못해 송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디 치열한 경쟁률로 제가 미안함을 느낄 정도로 많은 분들이 구매해주시길 바라며 소박한 선물이지만 시인의 첫 시집이 불티나게 팔리길 바라는 독자의 마음, 알라디너들은 이해해 주실거죠? 당첨 안되었다고 삐지기 없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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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4-23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북플이 대세지만, 예전 알라딘 서재 시절에 볼 수 있었던 알라디너님의 이벤트를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

단발머리 2015-04-23 21:4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알라딘 이벤트에 당첨될 때마다 무척 기뻤는데요. 이번에는 이벤트 때문에 시집을 구입하게 되었어요.
기다리던 시인의 시집을 응원하는 그렇게혜윰님 마음에 감동이 되어서요~~
앞으로도 알라디너님들의 이벤트 많이 기대됩니당*^^*

낭만인생 2015-04-23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는 이벤트네요..

단발머리 2015-04-23 21:49   좋아요 0 | URL
네~ 낭만인생님.
응모 방법도 간단하고, 선물로 주신다는 아메리카노 커피전문점도 집에서 가깝고... ㅋㅎ
재미있는 이벤트예요*^^*
 
[조지프 앤턴]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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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유일한 전기는 ‘스티브 잡스’의 것이다. 창의성과 기괴함의 조합이 한 사람 안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잘 보여주는 책이다. 그 두꺼운 책을 읽고 결심한 건 의외로 소박했다. “그래, 나도 꼭! 아이폰을 사고야 말겠어!” 

내가 읽은 유일한 정본 자서전은 ‘김대중 자서전’이다. 굴곡의 한국 현대사와 함께 한 김대중 대통령님의 삶은 말 그대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이전부터 김대중 대통령님을 좋아했는데, 자서전을 읽으면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더해, 탁월한 식견, 국가와 국민, 그리고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열정에 큰 감동을 받았다.

이번에 읽은 자서전은 ‘살만 루슈디’의 것으로, 나는 20세기 최고의 문제작 ‘악마의 시’의 작가라는 소박한 설명만으로 장장 824페이지, 1240g으로의 대장정을 떠났다가, 이렇게 피폐해졌다. (T.T)

 

 

 

 

부커상을 세차례나 수상한 『한밤의 아이들』의 저자 살만 루슈디. 행복한 인생의 한 시절을 보내고 있을 즈음, 1988년 발표한 『악마의 시』라는 소설로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출판 직후부터 예언자 무하마드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이슬람권의 격렬한 비난을 받게 되고, 급기야 이슬람 시아파 루홀라 호메이니가 루슈디에게 처형을 요구하는 종교명령 ‘파트와’를 선포한다. 그에게 현상금이 걸리고, 그는 끝모르는 도피생활을 하게 된다.

이 책의 제목 <조지프 앤턴>은 도피생활 중 필요에 의해 그가 지은 자신의 새 이름이다. 조지프 앤턴.

루슈디는 자기가 사랑하는 작가들을 떠올리고 그들의 이름을 이것저것 조합해보았다. 블라디미르 조이스, 마르셀 베케트, 프란츤 스턴. 그런 식으로 짝을 지어 목록을 만들어 보았는데 모두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그러다가 문득 우스꽝스럽지 않은 조합을 발견했다. 나란히 적어보았다. 콘래드와 체호프의 이름. 바로 그것이 앞으로 11년 동안 쓰게 될 이름이었다. “조지프 앤턴.” (219쪽)

 

루슈디에 대한 살해 위협은 자극적인 선동에 의해 이루어졌고, 강력하고, 지속적인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텔레비전으로 보고, 라디오로 들었다. 

 

자신의 책이 불타는 광경을 바라보며 루슈디는 자연스럽게 하이네를 떠올렸다. (그러나 점잖은 체하든 노발대발하든 브래드퍼드에 모인 남자들과 소년들에게 하인리히 하이네는 아무 의미도 없는 이름이었다.) 책을 불태우는 나라는 결국 사람도 불태우기 마련이다. 나치가 화톳불을 피우기 백여 년 전 [알만조어 Almansor]에 실린 이 예언적인 구절은 나중에 나치가 책을 불사른 베를린 오페라 광장 바닥에 새겨지기도 했다. (176쪽)

 

작가에 대한 적의와 작품에 대한 증오로 인도와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많은 나라에서 『악마의 시』는 금서로 지정되었고, 이를 번역하던 일본의 이가라시 히토시 교수가 살해당했으며, 노르웨이의 출판사 사장도 공격을 받아 부상을 당했다.

루슈디는 영국의 도움으로 도피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는데, 그를 경호하는 런던경찰청 특수부 A부대의 요원들 뿐만 아니라, 많은 문학계 인사들이 그를 도왔다.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내가 기억하는 사람은 ‘수전 손택’과 ‘이언 맥큐언’이다.)  자신들의 집에 그를 초대하고, 지방의 별장들을 빌려 주었다. 그는 전화를 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를 외면하고, 심지어 성난 군중에 기대어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많은 친구들이 그를 도왔다.

 

케블라 방탄조끼를 입어보라는 제안도 받았다. 거절했다. 그리고 차문에서 건물 입구로, 혹은 그 반대로 걸어갈 때마다 의식적으로 천천히 걸었다. 종종걸음을 치진 않으리라. 고개를 높이 들고 당당히 걸어가리라.

그는 이렇게 다짐했다. “경호원들이 말하는 이 세상의 현실에 굴복하면 영원히 그 노예가 되고 포로가 된다.” 경호팀의 세계관은 이른바 최악의 상황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길을 건널 때 벌어질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은 트럭에 치이는 일이고, 그렇다면 길을 건너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날마다 길을 건너는데도 트럭에 치이는 일은 좀처럼 없다.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불안전의 정도가 다를 뿐이다. 앞으로도 계속 길을 건너야 할 테니까. (233쪽)

 

이 책은 일반적인 자서전의 형식을 따르지 않았는데, 먼저는 본인을 ‘그’의 3인칭으로 지칭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일반적인 자서전이 부모 혹은 조부모부터 시작해서 출생, 성장, 결혼등의 순서로 진행되는 것과 달리, 이 책은 사건, 즉 살해위협이 시작된 때부터로 시작해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기술된다는 것이다.

『악마의 시』를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슬람의 분노를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들의 상상력이 지나친 건지, 루슈디의 상상력이 지나친 건지에 대해서 말이다. 작가의 손을 떠난 『악마의 시』는 그래서 아직도 제멋대로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책은 작가를 벗어났다. 작가의 도피생활이 언제 끝나게 될지 이 유명한 책은 알고 있을까.

 

책은 작가의 세상을 떠나면서 변모한다. 아무도 단 한 구절도 읽지 못했을 때부터, 글쓴이 말고는 그 누구의 시선도 스치기 전부터, 책은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일으킨다. 이제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었으니 더는 작가의 소유물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책이 자유의지를 갖게 되었다고 말해도 좋다. 책은 제멋대로 세상을 여행할 테고, 작가가 간섭할 방법은 없다. 작가 자신도 문장 하나하나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이제 남들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문장 하나하나가 달라 보인다. 책은 이미 세상으로 나아갔고 세상은 책을 바꿔놓는다. (129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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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괜찮은 하루]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그래도 괜찮은 하루 (윈터에디션)
구작가 글.그림 / 예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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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라는 단어를 사용하려면, 작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그녀의 ‘그래도’가 얼마나 용기 있는 말인지, 그녀의 ‘그래도’가 얼마나 희망을 주는 말인지, 그녀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 소개: 구작가>

한국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중퇴

싸이월드 스킨작가 2008년~2013년

<내가 되고 싶은 나> 미술 선교 프로그램 진행 2012년~현재

2013년 겨울, ‘망막색소변성증’ 판정 후 책 작업에만 몰두 중

현재는 시력을 잃게 된 이후의 삶을 준비하고 있다.

두 살 때 열병을 앓은 뒤, 소리를 잃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그림이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그림으로 그려서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소리를 못 듣는 자기 대신 소리를 잘 들어주었으면 하고

귀가 큰 ‘베니’ 토끼 캐릭터를 만들었다.

‘베니’ 그림으로 그녀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베니’ 그림으로 그림 작가도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몇 년 전, 그녀는 시력도 잃게 되는 병에 걸렸다.

소리가 없는 조용한 세상에서 살던 그녀는

지금 빛까지 사라지게 되는 세상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슬프지 않다고 한다.

그녀에게는 아직 따뜻한 손이 남아 있고,

아직 말을 할 수 있는 입술,

그리고 좋은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코가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고 한다.

자고 일어나면 다가와 있는 내일이, 너무 간절하고 소중하기 때문에 불행해할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늘 웃고 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해보겠다고 세상에 도전장을 낸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거절에 거절. 잿빛의 세상에서 절망에 빠질 뻔 했던 그녀는 블로그를 열며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많은 이름 중에서 그녀에게 떠오른 이름 하나. ‘구작가!’ 그녀의 소망을 담은 이름, ‘구작가’를 걸고 그녀는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

 

 

 

싸이월드에서의 성공,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 때 누렸던 기쁨도 잠시. 그녀에게는 또 다른 어려움이 찾아온다. 갑작스러운 싸이월드의 하락. 그리고 떠나는 사람들. 무척 바쁘다가 갑자기 한가해진 그녀에게 긴 공백이 찾아온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고,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내가 되고 싶은 나>라는 미술 선교 프로그램을 만들어 활동하던 그녀에게 또 다른 시련이 찾아온다. 이제는 소리도 볼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엄마, 미안해>라는 꼭지는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소리내는 걸 잃어버릴 까 입 주변에 설탕을 발라주며, 딸의 손을 목에 얹고 소리의 떨림을 가르쳐주던 엄마였는데, 이제는 곧 빛을 잃어갈 딸을 곁에서 지켜봐야 한다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절망하고, 세상을 미워하고, 그리고 자신을 그렇게 만든 그 누군가를 원망할 법도 한데, 그녀는 다시 일어선다. 그녀에게 허락된 빛의 날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하다. 버킷리스트 하나하나를 실천하는 그녀는 너무나 멋지고 대견해서, 가까이에 있다면 한 번 안아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녀의 소망 중 하나는 ‘볼로냐 라가치상’을 수상하는 것과 ‘어셔증후군’ 환자를 위한 줄기세포 이식수술을 받는 것이다. 소망이 이루어진 그녀의 그림을 보며 나도 같은 마음으로 간절히 바란다. 그녀의 소망이 꼭 이루어지기를.

 

 

 

 

마지막으로 <한겨레 21>에서 보았던 그녀의 사진을 올려본다. 그 전에는 안 보였던 사진인데, 책이 눈에 들어오니, 그녀의 사진도 눈에 들어온다. 너무도 이쁜 모습의 구작가. 앞으로도 계속 행복하기를, 그녀의 소망이 이루어질 때까지 꼭 씩씩하기를...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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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5-04-22 12: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질문 할수 밖에 없고
˝신따위 됐어!˝ 라고 할법도 한데
오히려 종교에서 많은 힘을 얻은거 같더군요.

술마시고 읽어서 인지, 읽는 내내 통곡(?)을 했었네요.
저는 책을 덮고 쓰담쓰담하고 꼭 안아주었어요.
그 마음이 구작가에게 전해지길 바라면서요....

단발머리 2015-04-23 15:46   좋아요 0 | URL
아.... 그러셨군요. 아무개님은 많이 우셨구나.
저는 진짜, <엄마, 미안해>해서 너무 미안한 거예요.

구작가 어머니께도 미안하고, 울 엄마도 생각나구요.
나두 엄마인데. 나는 왜 이런가 하면서요......
아무개님 예쁜 마음, 구작가에게 잘 전해졌을거예요.
... 그럼요...

cyrus 2015-04-22 16: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님이 정말 대단합니다. 눈이 불편한데도 색칠까지 다 하는 완벽한 그림을 그려내니까요.

단발머리 2015-04-23 15:49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구작가님 이렇게 예쁜 마음이니 병이 천천히 진행되었으면, 치료법이 얼른 개발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그림은 너무 따뜻하고 포근한 거 있죠.

테레사 2015-04-23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슬퍼서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아...못 사고 있어요..

단발머리 2015-04-23 15:51   좋아요 0 | URL
아, 저는 신간평가단을 통해서 이 책을 읽었거든요.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돼요. 뭉쿨한 장면이 여러군데 있지만, 구작가는 얼마나 씩씩한지요.
마지막 장에, 같이 행복하자고, 자기도 행복할 거라 하는데, 정말 많이 고맙더라구요.
구작가한테서 위로받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