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나는 셰익스피어 400주기를 기념하기 위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한가한 고민 한 번 해 보자면, 비교적 최근 번역판인 민음사의 셰익스피어 전집 시리즈 중 몇 권을 골라 읽을까. 아니면 가장 최근판인 문학동네 번역본으로 시작할까, 고민하고 있는 중이라는 거다.

 

[셰익스피어 전집 4 : 비극 1], [템페스트], [베니스의 상인]

 

 

 

 

 

 

 

 

간단한 워밍업으로 이 책을 집었는데, <들어가는 말>에서 이런 문장을 보게 된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사람의 원초적인 감정은 변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기쁨이나 부모를 잃은 자식의 슬픔은 시대를, 국경을 초월해 공감하게 되는 감정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4백 년 전 셰익스피어의 세계는 오늘날 우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편의 경우, 아내의 부정을 알고 미친 듯이 노한 상태였음이 드러나면 동정을 받을 것입니다.

학자로서의 성과나 저자가 가지고 있는 방대한 지식 혹은 작품에 대한 통찰을 넘어서,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이라니. 그런 사람의 책이라니.

부정한 아내에게는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말인가. 부정한 아내에게 가해진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내의 부정을 알고 미친 듯이 노한 상태에서는 폭력을 행사해도 된다는 말인가. 폭력의 이유가 아내의 부정이라면 이해되고 동정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셰익스피어를 그렇게 오래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이,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로 가득한 셰익스피어의 세계에 감탄하는 사람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당연한가. 정말 셰익스피어를 제대로 읽기는 한 것인가. 셰익스피어 입문용으로 쉽게 나왔다고 해서 읽어야지 하고 있는데, 내내 찜찜한 마음이다. 시작부터 마이너스다.

 

그래서, 다른 책을 펼친 것 아니겠나. 죽음에 대한 유쾌한 통찰, 용감하게 죽고 싶다는 사노 요코를 만나려는 것 아니겠나.

 

 

 

 

 

 

 

 

 

그런데 또 이런 문장.

내가 남들한테 말 못한 고생을 얼마나 했는지. 친척이나 형제들한테도,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어서 아무도 모른다우.”

여자 문제예요?”

그건 빙산의 일각이라우. 폭력이 얼마나 심한지, 머리채를 질질 끌고 다녀서 뼈가 부러진 적도 몇 번이나 있었다고. 뼈가 부러져도 의사한텐 넘어졌다고 했지. 얻어맞아서 멍이 들어도 옷장 모서리에 부딪쳤다고 둘러대야만 했고.”

(중략) “왜 안 헤어지셨어요?”

시골은 도쿄랑 달라서 이혼이 가당치 않다우. 아들 혼삿길도 막힐 테고. 나만 참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버틴 거지.”

결혼한 지 얼마나 되셨어요?”

“53

우왓.” (155)

 

진짜 우왓이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 자식을 위해, 가정을 위해 53년을 참고 사는 아내. 마지막 순간에는 아내를 호스피스에 맡겨 놓고는 와 보지도 않는 남편. 그런 삶, 그런 인생. , 인생...

나는 우아하게 셰익스피어를 읽으려는 거다. 나도 인간 본성에 대해 탐구 좀 하고 싶은 거다. 그런데..

이렇다. 펼치는 책마다 가정 폭력, 남편에 의해 아내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미화되고, 이해되고, 동정되고, 서술된다. 나는 셰익스피어에게 가고 싶은데 화가 나서 좀처럼 집중할 수가 없다.

자꾸 왜 이러는지, 내가 읽는 책들이 나한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여보세요, 자꾸 왜 이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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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4-19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쌍욕 나오는데요, 저게 뭐죠. 폭력을 가한 사람에게 동정.. 이라고요? 맙소사...

단발머리 2016-04-19 13:46   좋아요 0 | URL
저자는 오다시마 유시, 일본 사람이죠.
번역가는 제가 좋아하는... 송태욱씨... 어허....

초딩 2016-04-19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본은 어찌되었던 그걸 번역, 출판하는 모든 이들의 가치관을 알고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니

단발머리 2016-04-19 13:4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초딩님~~ (초딩님? ㅎㅎ)
저는 위의 문장을 읽다가 정말 제 눈을 의심하고 그 문장이 아니라 문단을 여러번 읽었었죠.
아주 여러번이요...

아무개 2016-04-19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전 그러니까 서구백인남자들의 책들은
거의 대부분 그런 관점으로
쓰여지고 고전이라 불리웁니다.

페미니즘을 알고나면
그래서 세상이 좀 더
피곤해지는듯요. ㅡ‥ㅡ

단발머리 2016-04-19 13:51   좋아요 0 | URL
그런 고전이 많지요, 사실...

셰익스피어 작품에서도 전 <오셀로> 얼마 전에 읽을 때 `질투하는 오셀로`에만 관심을 두었거든요.
지극한 사랑, 질투에 눈 먼 사랑, 서두르는 복수의 의식,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데스데모나는 오셀로에게 죽임을 당하죠.
앗! 저 구절이 그렇다면 그렇게 이해되는가요?
아내의 부정을 알고 미친 듯이 노한 상태에서의 폭력은 동정된다? 참.... 말이 필요없네요.

프레이야 2016-04-19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하군요.ㅜㅜ

단발머리 2016-04-19 13:52   좋아요 0 | URL
너무 하죠.... 저도 제 눈을 의심했어요. T.T

지금행복하자 2016-04-19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력. 백인우월주의. 유대인비하등등 셰익스피어도 전형적인 제국주의자라는 것을 알았을때의 그 처참함...
지금도 그 기분이 생생합니다 ㅠㅠ

단발머리 2016-04-19 16:02   좋아요 0 | URL
저는 사랑이야기...로 읽고 싶었어요. 비극적 사랑, 엇갈린 사랑, 변치않는 사랑, 이런 코드로요.
근데 위의 <들어가는 말>에서부터 거부감이 드네요. 어쩌나요..
셰익스피어 이렇게 보내나요...

cyrus 2016-04-19 1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못된 성의 고정관념이 무의식적으로 말과 행동으로 나오면 당혹스러워요.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자라면서 습득한 잘못된 성 역할을 지우기가 쉽지 않아요. 여기에 반기를 드는 일이 피곤해도 꼭 겪어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단발머리 2016-04-20 13:54   좋아요 0 | URL
저는 뭐... 뭐, 이래... 하면서 글을 올렸는데, 이게 왜 안 걸려졌는지 그것도 궁금해요.
저자에게 전화해서 물어볼 수도 있었을 것 같거든요.
활자화 되면 다시 돌이키기 어려우니까요.

에이바 2016-04-19 18: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고 보면 베니스의 상인도 인종주의적이죠. 샤일록이 유대인이잖아요. 영미문화를 마주치다 보면 셰익스피어를 피할 수 없고, 또 그 근간이 되기도 하고 그래서 전 일단 마음잡고 읽고 있는데요. 저 들어가는 말은 오셀로 얘기 같군요. 근데 오셀로 얘기를 저렇게 받아들이는 학자도 있나봐요...? 굉장히 당황스러운데요. 주인공들의 심리라던가 인종주의, 여성주의 등을 읽을 수 있고 현대에 맞춰 비판할 수 있는 거리를 주고 동시에 이 시대까지 이어지는 진리 그런게 있어 고전 아닌가요? 이상한 사람... 일본인에 대한 또다른 편견이 강화되는군요... 셰익스피어 읽기 준비하면서 검색 많이 해봤지만 저 책은 첨 보는데요. 단발머리님 이런 책 보이콧합시다! 이거 말고 `셰익스피어 깊이 읽기` 좋아요. `셰익스피어의 책`은 사진 자료랑 인포그래픽이라고 하나요? 그런게 많아서 파악하기 좋고요.

단발머리 2016-04-20 14:01   좋아요 0 | URL
남자/백인/유럽인의 입장에서 읽기 편한게 고전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죠. (from 정희진)
아무리 그렇더라도 에이바님 말씀처럼 다른 부분에서 해석하고 분석할 수도 있을텐데, 그러게요.
저 사람, 아무래도 이상하기는 해요.

저 책은 비교적 최근에 나온 책인대요. 셰익스피어 입문용이라 하던데, 입문이 아니라, 입장에서부터 미끄러질 판이예요. 추천해 주신 `셰익스피어 깊이 읽기`를 찾아볼께요.
저, 저 책 안 샀어요. 메롱입니다. ㅎㅎㅎ

오후즈음 2016-04-20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은밤, 요것만 읽고 자야지 하며 들어 왔다가 잠이 확 달아납니다! 화가 나네요.

단발머리 2016-04-20 14:03   좋아요 0 | URL
위의 글 때문에 화딱지 나신 분들 많더라구요.
괜히 오후즈음님 잠 달아나서.... 어째요. T.T

피곤한 오후 즈음이신가요.....

최장근 2016-04-24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utrurtutru

ty

y
t

그거슨인생 2016-04-29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연히 글을 보고 그냥 지나갈까 하다 글을 남겨봅니다.
분위기로 봐서 좋은 소리 못 듣겠지만..

저는 성평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정의에 따른다면 페미니스트에 속한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언급하신 위의 글들을 보고 `자꾸 왜 이러세요`라고 하시는 단발머리님의 반응은 조금은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들어가는 말에서 아내의 부정을 알고 폭력을 행사한 남편이 동정을 받을 것이라는 점에 관해서는,
작가가 말 그대로 `동정`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쓴 것이지 그것이 꼭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이야기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동정 정도는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구요.
사실 나에게 잘못을 한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것은 상당히 보편적인 감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프랑켄슈타인을 동정하기보다 그의 피조물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것 아니겠습니까?
죄질로만 따지면 프랑켄슈타인은 죄가 없고 그의 피조물은 전혀 동정조차 받아서는 안 될 대상이 됩니다. 후자만 살인을 수없이 저질렀으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창조자에게 버림받고,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았다는 점을 알기에 그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측면에서 생각을 한다면 - 다소 꺼림칙한 건 사실이지만 - 오다시마 유시라는 작가의 글이 그렇게 매도할 수준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여성 분들 중에는 티비에까지 출연해서 공공연히 여자의 외도를 남편 탓으로 돌리고 정당화하는 분들도 적잖습니다.
글쓴 님의 생각대로라면 남편이 잘해주지 않았다 해서 부인이 바람을 피운 게 정당화될 수 없기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오히려 공감을 사는 게 현실이지요.
(물론 님께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리라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다음으로 사노 요코라는 분의 글과 관련해서는 솔직히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제가 저 책을 다 보지 않아 섣불리 판단하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습니다만, 언급하신 부분만 봤을 땐 그저 한 여성이 남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점을 이야기한 것뿐이니까요.
만일 작가 혹은 다른 등장인물이 그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뭐`라는 식으로 반응을 했다면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만, 그점에 관해 위에서 어떤 가치판단을 내리는 부분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 글에서 청자는 왜 헤어지지 않았냐는 식으로 여성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펼치는 책마다 가정 폭력, 남편에 의해 아내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미화되고, 이해되고, 동정되고, 서술된다.˝는 글쓴 님의 생각은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남녀 불평등에 직접 기여한 세대는 아니지만(오히려 저도 왜곡된 성 역할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여성들이 저런 내용에 화가 날 수 있는 점 이해합니다.
다만 그럴수록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제대로 비판을 하는 게 성차별을 조장하는 사람들에게 더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들어 몇 자 남겨봤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하구요.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길 바랍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매순간 아니더라도
매일이 아니더라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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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6-04-16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도 비가 내리네요.... ㅠ.ㅠ

단발머리 2016-04-19 10:14   좋아요 0 | URL
네... 밤에는 비가 아주 많이 내려서....
그래서 더 슬펐어요.

꿈꾸는섬 2016-04-16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을 어떻게 잊겠어요.ㅜㅜ

단발머리 2016-04-19 10:15   좋아요 1 | URL
잊지 않는 방법이.... 저한테는 계속 읽는 일 같아요.
세월호 침몰에 대한 책을 읽고 또 쓰고 하는 일이요.

잊지 않겠다는 약속.... 우리 같이 꼭 지켜요, 꿈섬님~~

몬스터 2016-04-17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멈춰 생각하면 가슴이 탁 막히는 느낌입니다.

단발머리 2016-04-19 10:16   좋아요 0 | URL
옆에서 보기만 하는 우리도 이럴 텐데, 가족들은 얼마나 힘들지 생각하면 더 속상하네요.
추모하려고 줄을 선 시민들이 아주 많더라구요.
같이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얼른 세월호 침몰에 대한 진실이 밝혀졌음 좋겠어요.
 

 

 

 

 

 

 

 

 

가사 노동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을 처음으로 인지하게 되었던 것은 고미숙님의 아무도 기획하지 않은 자유(2004)에서였다. 어떤 철학자의 글을 인용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철학자가 이 책 그림자 노동의 저자인 이반 일리치일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정확한 표현은 모르겠지만 대강의 워딩은 이러했다.

 

 

 

 

 

 

 

 

 

현대인의 노동은 근본적으로 노동 그 자체에서 소외된 것이다. 가사노동은 임금노동의 형태가 아니므로, 노동의 범주에서 한 번 더 소외된다. 가사노동은 이중으로 소외된 노동 형태이다.  

 

가사 노동의 특이점은 무임금과 보완성에 있다. 가사 노동을 위해 인력을 고용할 수 있고, 가사 노동하느라 애썼다고 스스로에게 보수를 지급할 수도 있겠으나, 원칙적으로 가사 노동은 수익을 창출할 수 없는 종류의 노동이다. 가사 노동은 그 자체가 의미 있는 노동이라기보다는 일상적이고 원만한 삶을 위해 수행되어야 하는 것으로, 어디까지나 보조적이다. 돈이 되지 않는 노동 행위이고, 보완적인 노동 행위이다.

예전과 달리 가사 노동의 많은 부분은 기계의 힘을 빌려 비교적 손쉽게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아궁이에 불을 때서 가마솥 올려놓고 불 조절을 해가며 밥 하지 않는다. 전기밥솥이라면 쌀을 씻어 넣고는 버튼을 두 번 누르면 밥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청소는 청소기가 하고 빨래는 세탁기가 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집안일을 해 보지 않은 사람이다. 다 먹은 밥통은 씻어야하고, 청소기가 닿지 못하는 곳은 닦아주고 털어주어야 한다. 빨래는 세탁기가 하되, 샤워 후에 바닥에 나뒹구는 젖은 수건을 세탁기에 집어넣고, 꺼내고 널고 개켜서 각각의 서랍에 넣는 일은 여전히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가사 노동의 어려움에 대한 애달픈 간증, 노명우님의 이야기 잠깐 들어본다.

 

 

 

 

 

 

 

 

 

집안일은 아무리 해도 티가 나지 않는 끝없는 노동이라고 한다. 만일 당신이 남자라면, ‘혼자 산다는 것은 하지 않으면 티가 나고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시시포스의 운명과도 같은 가사노동에 수많은 시간을 투여해야 함을 의미한다. (생략)

최악의 것은 청소죠. 그건 정말 끔찍해요. 매일 해봐야 진짜로 알 수 있을 텐데. 이를테면 당신이 금요일 날 무엇을 닦아 놓아도 다음 주 똑같은 시간, 똑같은 곳에 똑같은 먼지가 앉아 있을 거예요. 그러니 지겹지 않겠어요. 최소한 맛이 가게 하는 일임엔 틀림없죠. (...) 이건 거의 바다 한복판에서 걸레질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요. (96)

 

이반 일리치는 <고용의 그늘에 가린 노동>에서 이렇게 말한다.

상품 집약적 사회에서는 임금 노동의 생산물을 통해서만 기본적 필요가 충족된다. 이 점에서는 주거와 교육이 다르지 않고 교통과 분만이 다르지 않다. 이런 사회에서는 직업윤리마저도 임금을 받는 고용만을 인정하고 독립적으로 먹고 사는 행위는 폄하한다. 그러나 임금 노동의 파급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무급 노동을 두 유형의 상반된 활동으로 갈라놓기까지 한다. 임금 노동이 예전의 무급 노동 영역을 잠식해온 현상은 자주 언급되고 있지만, 새로운 종류의 무급 노동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줄기차게 외면당해 왔다. 즉 산업 노동과 서비스에 대한 보완물로서의 무급 노동이 그것이다. ...

오늘날 가정 부문에서 여성이 겪고 있는 예속은 가장 뚜렷한 사례이다. 우선 가사 노동은 무급이다. 그리고 여자가 하는 대부분의 일은 남자와 합심해 집안 전체를 이용함으로써 갖고 구성원의 생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므로 자급자족 활동도 아니다. 오늘날의 가사는 생산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산업적 일용품들에 맞춰 획일화되었을 뿐 아니라, 여성으로 하여금 여성 특유의 방식으로 임금 노동을 위한 재생산, 재충전 및 자극제 역할을 하도록 강제한다. (28)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이 안 된다는 자각과 내가 하고 있는 노동 행위가 어디까지나 보완적이라는 인식은 두 개의 물음을 촉발한다. 내가 하는 일은 정말 의미가 없는 일인가,하는 물음과 그렇다면 나는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일을 시작해야 하는가,하는 물음이다.

두 가지 물음과 그에 대한 대답을 찾는 과정은 내가 실제로 돈을 벌게 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아이가 가까운 곳에서 직접적인 돌봄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나이가 됐을 때, 빠르게는 아이가 어린이집 종일반으로 들어갔을 때부터 늦게는 초등학교 고학년, 조금 더 늦게는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대부분의 전업주부들은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아이들은 크고 돈은 더 많이 필요한데 어디에서 돈을 벌 것인가.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현실은 녹록치 않다.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불황, 사상 최고치로 치솟는 청년 실업률, 경단녀 말 그대로 경단녀가 설 자리는 없다. 일을 놓은 지 12년 됐다. 회사를 4년 다녔는데, 회사를 다니지 않은 햇수가 그에 3배다. 나는 아줌마고, 늙었고, 뒤쳐졌다. 특별하게 잘 하는게 없고, 새로운 것을 배우기엔 나이가 많다.

좀 더 솔직하게 쓰자면, 나는 살림을 잘 못 한다. 잘 못한다, 정도가 아니라, 그냥 살림을, 막 한다. 대충대충 산다. 먹는 것도, 치우는 것도, 정리하는 것도 보통에 못 미친다.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이런 구절을 읽었기 때문이다

 

 

 

 

 

 

 

 

 

안타깝도다! 펜을 들려고 시도했던

여성은 주제넘은 종으로 여겨지고,

그 과오는 결코 속죄될 수 없다네.

그들은 말하지. 우리가 성과 그 역할을 잘못 알고 있다고.

자녀 양육, 유행, , 의상, 사교,

이것이 우리가 선망해야 할 소양이라고.

글을 읽고 쓰고, 생각하거나 질문하는 일은

시간 낭비일 뿐이며, 우리의 미를 가리고,

꽃다운 우리를 정복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반면 노예처럼 집안 살림을 돌보는 무미건조한 일에는

우리가 가진 최고의 능력을 써야 한다고. (109-110)

 

글을 읽고 쓰는 것, 생각하거나 질문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일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 일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문제는 여성들이 그런 일을 하는 것, 글을 읽고 쓰고, 생각하며 질문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말한다는 데 있다. 자신이 가진 최고의 능력, 자신의 소질과 재능을 집안 살림을 돌보는 일에만 사용하라는 압력이 문제라는 것이다.

집안일을 잘 해서, 반찬을 잘 만들어서, 정리정돈을 잘 해서, 인테리어에 소질이 있어서, 자신이 잘 하는 그 일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 여성들의 이야기도 자주 들을 수 있다. 집안일만 잘해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돈을 벌 수 있다. 문제는 집안일을 잘 못한다는 데 있다.

 

핵가족이든 확대가족이든 가족이 상호보완적이면서 상호배타적인 두 노동, 즉 하나는 주로 남성에게 배당되고 다른 하나는 여성에게 배당된 노동들을 연결하는 수단이었던 적은 역사상 어느 시점에도 없었다. 두 상반된 활동이 가족을 매개로 불가분의 혼인 관계를 맺는 이 공생 현상은 상품집약적 사회만의 특징이다. (45

  

 

 

가끔 방송을 통해 돈 버는 아내와의 역할분담으로 집안일을 하고 있는 남성들의 고충을 들어보면, 그 불만의 내용이 일반 가정의 아내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 가사 노동이 특정한 성을 여성화시켰다기 보다는, 가사 노동의 성격 자체가 그 일의 주체를 무력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가장 큰 슬픔이라면 가사 노동이 여성이라는 성,에 배당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위가 박탈된, 전혀 새로운 계급인 가정주부의 탄생을 1830년대 미국의 역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음식 가공과 저장, 양초와 비누 제조, 실쌈, 제화, 퀼팅, 양탄자 짜기, 소형 가축 기르기, 텃밭 농사 등이 모두 가정 안에서 이루어졌다. ... 가정의 자급자족을 유지하는 데 여성도 남성 못지않게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남성이나 여성이나 집에 가져오는 수입은 비슷했다. 경제적으로 여성은 여전히 남성의 동반자였던 것이다. ...

하지만 1830년이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상업적 영농이 자급농을 대체하기 시작했고, 생활 임금을 버는 일이 상례가 되었으며, 부정기적 임금 노동은 빈곤의 징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여성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정의 안주인에서, 자녀가 일하러 가기 전에 머무는 장소, 또는 남편이 휴식을 취하고 수입을 지출하는 장소의 관리인으로 전락했다. 앤 더글러스는 여성의 이러한 변형을 지위 박탈’(disestablishment)이라고 불렀다. (198-9)

 

요약하자면, 유인원에게 가정의 역할을 투사해 보금자리를 지키는 것이 여성 고유의 역할이라 주장하는 생물학적 신화화와 상품집약적 산업사회의 등장으로 인한 자급자족사회의 붕괴로 가정주부라는 새로운 계급이 탄생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계속 일하고 쉬지 않고 일하지만, 무임금 노동의 그녀들은 자신의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 가사 노동에만 전념하는 한 그녀들에게 주어질 것은 없다. 혜택이 없고, 보상도 없다.

 

여성이 하는 일은 노동이 아닌 것(non-work)이기 때문이다. (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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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마치고 간만에 나들이


우리 동네는 후보가 세 명.
1, 2, 3번 중에 가차 없이.. 퐉!

비례정당 투표에서는 망설이고 망설이고...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에게 미안해요... 속으로 말했다.

간만에 서울랜드. 사람들이 많다.
저는 투표하고 왔어요. 투표하고 오셨어요? 라고 마구마구 묻고 싶다.

어제 통화한 친구에게... 거기가 노원병이야? 노원갑이야? 했더니, 안철수 지역구라 해서 좀 도와달라...
둘째 언니, 둘째 형부, 셋째 언니, 셋째 형부, 친구와 친구 신랑, 친정어머님. 친구의 친구들과 기타 친구들.
야권분열의 책임이 누구한테 있나, 왜 그렇게 생각이 짧나, 욕 좀 같이 해 주시고... 전화 좀 돌려달라 부탁했다.
내가 원하는 결과 나오면 치킨+콜라 쏜다고, 온 가족한테 쏜다니 좋다며, 서둘러 전화을 끊었다.

기다려지면서도 조금 떨리는 그런 시간이, 이제 2시간 15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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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13 2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4-13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30금 쌍담 - 섹스.폭력.정치.종교
강신주.이상용 지음 / 민음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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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을 쌓기 위한, 리더의 자리에 오르기 위한, 성공하기 위한 방편으로서의 인문학만이 각광받는 시대다. 아이에게 책을 읽히려는 이유가 공부를 잘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도구로서의 인문학만이 소비되는 시대다.

삼십금 쌍담이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이 책은 인문학 정신의 근본이 금기에 도전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영화, 감각의 제국, 시계태엽 오렌지, 살로, 소돔의 120, 비리디아나를 통해 섹스’, ‘폭력’, ‘정치’, ‘종교에 대한 사람들의 위선적 태도를 지적하고, 그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항복을 고발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불편했던 건 사진이다. 네 개의 영화 중 한 개의 작품도 본 적이 없어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감독의 느낌과 생각을 이렇게 날것 그대로 표현한 영화들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진들이, 거의 모든 사진들이.... 참....

 

 

 

 

 

 

 

감각의 제국은 신성의 에로티즘까지는 아니더라도, 영화 내내 육체와 심정의 에로티즘을 다루고 있죠. 그런데 왜 인간은 이토록 섹스를 하고, 일체감을 얻으려고 할까요. 바타유는 동물과 인간의 섹스를 구분합니다. 동물의 섹스는 후손을 남기기 위한 생산성을 무엇보다도 중시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섹스는 생산에 관심이 없어요. 우리들 모두 자손을 꼭 남기고 말겠어!’라고 생각하며 섹스를 하지 않잖아요. 오히려 섹스를 통해 쾌락을 추구하죠. 바타유에 따르면 인간은 에로티즘을 통해 쾌락을 추구하는 유일무이한 동물이에요. 그래서 에로티즘과 에로티즘을 통한 쾌락을 이해하면 인간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어요.(41)

사랑의 핵심에는 늘 불륜성이 도사리고 있어요. ... 결국 불륜이라는 건 무리에서 떠나는 행위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불륜을 저주하는 건 고착화된 욕망이에요. 기존의 틀을 유지하겠다는 욕망이 있기 때문이죠.(60)

 

감각의 제국의 주인공들인 사다와 기치의 사랑이 불편했던 건 그들이 불륜이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섹스를 노출하고 싶어하고, 관객에게 자신들의 벗을 몸을 자꾸 노출시키기 때문이다. 나는 사다와 기치처럼 육체노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소극적이지만, 글쓴이가 지적한 것처럼 다른 부분에서의 노출은 즐기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이렇게 리뷰를 써서는 내 컴퓨터에만 저장하지 않고 이 글을 복사해, 나의 서재에 올리고, 사람들의 좋아요좋아하는이런 행위는, 나의 생각과 느낌을 노출해야만 얻어질 수 있다. 내 생각에 대해 지지를 받고, 내 느낌에 대해 공감을 받고, 내 일상에 대해 웃음을 얻고, 또 얻으려한다는 건, 나 자신을 노출하는 행위를 통해서만 받게 되는 보상이다. 노출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서라면 나 또한 사람인지라, 그러하겠지,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의 노출, 나의 벌거벗음이 어떻게, 어느 쪽으로 향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봐야겠다.

섹스에 대해서라면, 후손을 남기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섹스가 아니라, 오로지 즐거움, 쾌락을 위한 통로로서의 섹스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양하게 읽힐 수 있겠다. 섹스를 통한 즐거움이 인간만의 것이라고는 믿지 않지만, 여러 동물 중에 후손을 남기기 위한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쾌락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종은 인간이 유일하다 생각한다. 섹스가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섹스가 아무것도 아니라고도 말하지 못 하겠다.

다만, 마음에 들면 일단 무조건 자고 보라,는 제안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격렬한 호흡과 몸짓으로 서로의 육체를 격하게 더듬으며 탐닉한 후에, 말 그대로 뜨거운 밤을 보낸 후에, 지난 밤 불태운 열정이 성욕이었는지, 아니면 사랑이었는지를 알게 된다(80)는 것인데, 보수적이고 체제 순응적이며, 기혼의 여자사람이라서 그런가. 내게는 인간 수컷의 교묘한(?) 호소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 뜨거운 밤이 지나면 아침이 오고, 마음은 쉽게 변한다.

인간 수컷이 그건 호소가 아니었다고 하면, 그 말도 믿어주겠다. 호소가 아니라면 유혹일 테고, 유혹이 아니라면 유인(誘引). 그것도 아니면 인유(引誘).

 

살로, 소돔의 120는 연합군에 의해 이탈리아 파시스트가 몰락하고 그 잔당들이 모여 수립한 괴뢰 정권의 대표자들인 공작, 주교, 판사, 의장이 자신들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베푼 사악한 연회에서 일어난 추악하고 사악한 일들을 보여준다. 난잡한 성교 파티와 폭력. 잔인한 고문과 살인. 서로에게 을 먹으라 강요하며, ‘최고의 항문을 선정하는 이 미친 사람들의 미친 행동들은 불쾌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것 또한 그것이다. ‘파시즘에 굴복했을 때, 저항을 잃어버렸을 때, 인간은 무참히 짓밟힌다는 것, 똥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는 것 말이다.

피아니스트는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사유를 시도했던 인물이에요. 성에 모인 여러 부류의 인물 중에 오직 그녀만이 숨구멍을 찾아냈죠. ... 파시스트들은 소년과 소녀들을 사물로 취급합니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가 아름다운 엉덩이를 선별하는 장면입니다. 인간을 상품으로 보는 것이죠. 이러한 시선은 파시스트만 지닌 게 아니에요. 돈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강력하게 드러나는 부분이죠.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사물화해요. 그런 면에서 파시즘과 자본주의는 서로 연결됩니다. 인간을 사물처럼 대하는 파시즘은, 생명을 돈으로 환산하는 자본주의와 등가를 이루죠. (165)

그게 파시즘입니다. 무조건 나에게 맞추라는 거죠. 파솔리니는 이 지점에 집중하고 있어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와 같은 힘의 논리는 금기의 명령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한 사회를 지배하는 극한의 금기, 사실 이건 우리 스스로가 불러일으키는 어떤 괴물 같은 존재가 아닐까요. 그런 점에서 한계를 넘어서려는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저항하지 않는 삶은, 인간 대접은커녕 똥만 먹어야 한다고, 장난감처럼 놀리다 버려질 수밖에 없다고 명백히 선언하고 있습니다.(165)

파시즘이 인간에게 미칠 수 있는 해악을 감독은 ’, 사람들이 가장 불쾌해하는 똥으로 표현한다. 그 불쾌함으로 파시즘의 위험성을 경고하려 한다. ‘파시즘을 방치하면 너희들 다 좆 된다.’ ‘파시즘을 따르면 너희들은 똥을 먹게 될 것이다’,(174)라고 말하는 것이다.

 

쎄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두려워하면서도 좋아하는 나와 같은 이중적 기호가 일반적인 것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섹스, 폭력, 정치,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하나같이 자극적이고, 언사는 쎄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절이 종종 있다. 더 솔직히 말하면 꽤 많다.

차 한 잔 곁들이며 우아하게 읽고 싶은 인문학은 어느 새, 섹스와 폭력, 피범벅의 난장판과 근친상간의 위험한 현장으로 일순 변해 버린다. 스스로의 욕망에 충실한 섹스, 악한 것도 선택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 파시즘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힘으로서의 사랑, 그리고 가장 안전한 대상으로서의 신을 거부하는 인간.

나는 인간 본연의 심성, 본래의 성정에 대한 믿음이 적다. 인간은 충분히 사악한 존재라고 믿기 때문에,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대로, 끌리는대로 하라.’는 이야기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금기에 도전하는 삶, 행복하게 살기보다 용감하게 사는 삶, 편안하게 살기보다 자유롭게 사는 삶에 대해 동경한다.

나는 어디까지 와 있나. 지금 나는 어디에 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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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6-04-12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노출`을 은근 즐기는..아니 은근도 아니네요. 제 서재 곳곳에 글이 넘쳐나고 있으니 말이죠 ㅎㅎ 그렇지만 이런 `노출`은 상당히 유쾌하고 즐거운거 같아요. 함께 생각하고 느끼고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니 `육체적 노출`보다 `정신적 노출`이 제겐 더 쾌락(?)적 인거 같아요 ㅎ 그리고 소개해주신 영화나 책을 읽지 못했지만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템테이션>에 <살롬, 소돔의 120일>을 묘사해놓은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 부분을 읽으며 정말 불쾌했던 기억이 많았는데요 그래서인지 커피 한 잔 곁들이며 읽기엔 정말 힘드셨겠구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또 `인간은 충분히 사악한 존재`라는 표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는 `도덕성`과 `이성` 또 `감성`이라는 의식으로 내재된, 억압된 존재들이기 때문인데..만약 그게 풀려버린다면 혹은 그런 통제가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게 된다면 어떻게될지.. 정말 생각만해도 아찔해집니다. 더욱이 전에 읽었던 <세컨드 타임>이나 <오르부아르>라는 소설에서도 아니 그렇게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이 이전에 <눈 먼 자들의 도시>만 봐도 정말 끔찍한 세상이었으니까요.어휴~~ 생각만해도 ~~!!!

그나저나 내일이 벌써 선거일이예요. 지난번 글에 고민하고 계셨는데 결정은 잘 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내일 오전에 비가 온다고 하니 우산 꼭 챙기셔서 멋진 한 표 행사하시길 바래요!! 즐거운 저녁시간 보내세요 ㅎㅎ

단발머리 2016-04-19 10:21   좋아요 0 | URL
더글라스 케네디의 소설, <템테이션>은 제목만 아는 책인데, 은근 관심이 가네요. <살롬, 소돔의 120일> 묘사해 놓은 부분만도 불쾌하군요. 요 위의 책에는 사진이 정말 불쾌합니다.
한 번 이상 보기 어려운 영화라고 하더라구요. ㅎㅎㅎ

투표하러 가서는 기표소 안에서 좀 오래 있었지요. 좋아하는 사람 두 사람에게, 미안하다~ 했어요.
그리고 퐉! 기표했어요. 참, 예상을 많이 빗나간 선거 결과인데, 그래도 새누리 과반 저지에 일단 박수를 치고 싶어요. 이제 마음대로는 못 하겠지요.

해피북님,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고, 좋은 시간 보내시기를요.
또 재미있는 책이야기로 만나요.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