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지 않았지만 반쪽으로 나뉘는 특별한 역사를 가지게 된 나라, 한 쪽의 미사일 발사로 다른 한 쪽이 들끊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태어나 한민족 단일언어, 서로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 틈에서, 다른 나라 심지어 다른 지역에서도 살아보지 못한 내가.

그런 내가, 로맹 가리를 생각한다.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삶을 살았던, 그런 삶으로 살아졌던 그의 삶을 생각한다.

그를 생각한다.

그의 소설을 읽기도 전에 나는 자꾸 가슴이 뜨거워진다.

나는 아마도 그를...

아마도...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하늘의 뿌리], [유럽의 교육]

 

 

  

  

 

 

 

 

 

 

 

 

 

 

 

그래서 어머니를 만나려고 니스로 갔습니다. 메르몽 호텔에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지금까지도 친구로 지내는 르네 아지드 교수와 그의 부인 실비아, 그리고 그의 형제 로제 아지드로부터 어머니가 이미 3년 전에 세상을 뜨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2백여 통의 편지를 써서 스위스에 있는 폴란드 친구분에게 맡겨두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죠. 어머니는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탯줄이 계속 작동하게 해두었던 겁니다. (55쪽)

이 책(『하늘의 뿌리』)으로 내가 거리낌 없이 요구하고 싶은 것, 그것은 바로 자연보호와 환경보호에 관한 중요한 소설을 쓴 최초의 작가라는 지위입니다. 소설의 관점에서 볼 때 나는 프랑스 최초의 생태주의자였습니다. 제 자랑처럼 보여도 어쩔 수 없습니다만, 나는 내가 그런 자격을 주장할 만하다고 생각하며, 또 자긍심을 느낍니다. (61쪽)

이 대담 초반부에서 나는 우리가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삶에 의해 살아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내 삶에 의해 살아졌다는 느낌이 듭니다. 내가 삶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삶의 대상이 되었다는 느낌입니다. 분명 우리는 삶에 조종당합니다. (109쪽)

나와 여성들의 관계는 무엇보다 나를 위해 희생한 내 어머니에 대한 존경과 숭배였고, 물론 성을 포함한 모든 차원에서 여성에 대한 사랑이었다고 말입니다. 만약 내 책들이 무엇보다 사랑에 관한 책이라는 사실, 거의 언제나 여성성을 향한 사랑을 얘기하는 책이라는 이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내 작품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1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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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로 적다보니 길어져서 따로 페이퍼로 씁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릅니다. 크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해서는 상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가끔 제 리뷰에서 제가 말한 의도를 다르게 이해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경우 댓글을 달지 않습니다. 제 글을 읽고 다르게 이해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일이지 저의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렇게 쓰기 시작합니다.

4월 19일 페이퍼 '자꾸 왜 이러세요'  http://blog.aladin.co.kr/798187174/8438826

에 대한 feel6115님의 댓글 전문

 

우연히 글을 보고 그냥 지나갈까 하다 글을 남겨봅니다.

분위기로 봐서 좋은 소리 못 듣겠지만..

 

저는 성평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정의에 따른다면 페미니스트에 속한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언급하신 위의 글들을 보고 자꾸 왜 이러세요라고 하시는 단발머리님의 반응은 조금은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들어가는 말에서 아내의 부정을 알고 폭력을 행사한 남편이 동정을 받을 것이라는 점에 관해서는,

작가가 말 그대로 동정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쓴 것이지 그것이 꼭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이야기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동정 정도는 받을 수도있다고 생각하구요.

사실 나에게 잘못을 한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것은 상당히 보편적인 감정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읽고 프랑켄슈타인을 동정하기보다 그의 피조물에게 연민의 감정을 느끼는 것 아니겠습니까?

죄질로만 따지면 프랑켄슈타인은 죄가 없고 그의 피조물은 전혀 동정조차 받아서는 안 될 대상이 됩니다. 후자만 살인을 수없이 저질렀으니까요.

하지만 자신의 창조자에게 버림받고,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받았다는 점을 알기에 그의 행위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 측면에서 생각을 한다면 - 다소 꺼림칙한 건 사실이지만 - 오다시마 유시라는 작가의 글이 그렇게 매도할 수준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여성 분들 중에는 티비에까지 출연해서 공공연히 여자의 외도를 남편 탓으로 돌리고 정당화하는 분들도 적잖습니다.

글쓴 님의 생각대로라면 남편이 잘해주지 않았다 해서 부인이 바람을 피운 게 정당화될 수 없기에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오히려 공감을 사는 게 현실이지요.

(물론 님께서 그런 생각을 가지고 계시리라 생각지는 않습니다만..)

 

다음으로 사노 요코라는 분의 글과 관련해서는 솔직히 무엇이 문제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제가 저 책을 다 보지 않아 섣불리 판단하는 게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습니다만, 언급하신 부분만 봤을 땐 그저 한 여성이 남편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점을 이야기한 것뿐이니까요.

만일 작가 혹은 다른 등장인물이 그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뭐라는 식으로 반응을 했다면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만, 그점에 관해 위에서 어떤 가치판단을 내리는 부분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위 글에서 청자는 왜 헤어지지 않았냐는 식으로 여성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펼치는 책마다 가정 폭력, 남편에 의해 아내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미화되고, 이해되고, 동정되고, 서술된다.˝는 글쓴 님의 생각은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남녀 불평등에 직접 기여한 세대는 아니지만(오히려 저도 왜곡된 성 역할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겠네요), 여성들이 저런 내용에 화가 날 수 있는 점 이해합니다.

다만 그럴수록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제대로 비판을 하는 게 성차별을 조장하는 사람들에게 더 확실하게 어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들어 몇 자 남겨봤습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하구요.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길 바랍니다.

    

 

1. 오다시마 유시의 처음 읽는 셰익스피어에서, 제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부분은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편의 경우, 아내의 부정을 알고 미친 듯이 노한 상태였음이 드러나면 동정을 받을 것입니다.”라는 대목입니다.

feel6115님은 댓글에서,

작가가 말 그대로 동정을 받을 수 있다는 취지로 쓴 것이지 그것이 꼭 정당화될 수 있다는 의미로 이야기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 동정 정도는 받을 수도있다고 생각하구요.“ 라고 썼습니다.

feel6115님은 아내의 부정을 알고 폭력을 행사한 남편이 동정 정도는 받을 수도있다고 생각하시는 것이구요.

저는, 페이퍼에 썼듯이, 부정한 아내라고 해도 아내에게 폭력을 가한 남편의 행동은 동정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동정이라는 단어에 다른 의미가 있나 찾아보았습니다.

1 . 남의 어려운 처지를 자기 일처럼 딱하고 가엾게 여김.

2 . 남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베풂.

feel6115님이, 아내의 부정을 알고 미친 듯이 노한 상태에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사람의 처지를 자기 일처럼 딱하고 가엾게 여기며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도움을 베푸신다면, 그에 대해 제가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동정정도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하는 제가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미국 중년 여성 외상의 제1원인이 교통사고가 아니라 가정 폭력이라는 점에서, 더 많은 수의 여성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 채, 가정 폭력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그 원인이 아내의 부정이라면,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이 동정 정도는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은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굳이 하나의 의견을 더하자면, 아내의 부정을 의심해서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아내가 살림을 못 한다고, 아내가 음식을 못 한다고, 아내가 아이들을 잘 돌보지 못한다고, 아내가 돈을 적게 벌어 온다고, 아내가 돈을 많이 벌어온다고, 아내가 퉁명스럽다고, 아내가 너무 싹싹하다고, 이 중의 어떤 이유를 가지고서도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폭력은 해답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폭력은 미화될 수도, 이해될 수도, 동정 받을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2. 사노 요코의 에세이에 대해서는

남편에 의해 아내에게 가해지는 폭력이 미화되고, 이해되고, 동정되고, 서술된다.“는 저의 문장 중, ‘서술된다만 사노 요코의 글과 관련이 있습니다.

저는 오다시마 유시의 <머리말> 속 문장들이 아내에 대한 폭력을 미화하고, 이해하고, 동정하는 관점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사노 요코의 문장과 관련해서는 서술된다만 해당됩니다.

 

3. 저는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제가 자란 독특한 배경이 있고, 환경이 있고, 그래서 지금의 제가 있습니다.

알라딘서재, 나의 서재 속, 제 글들은, 어디까지나 저의 생각입니다.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제대로 비판을 하는 게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의견이 객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겠구요. 저는, 저의 주관적인 의견만 밝힐 수 있습니다.

아내의 부정을 이유로 흥분한 상태에서 아내에게 폭력을 가한 사람은 동정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동정정도도 받을 수 없습니다. 동정 받아야 할 사람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의 남편에게 폭력 행위를 당한 피해자입니다. 이게 저의 주관적인 의견입니다.

성차별에 반대합니다. 그와 동일하게, 가정 내 폭력 행위에도 반대합니다. 저는 여자입니다. 여자인 제가, 성차별에 대해 의견을 말할 때, 어떤 면에서도 제 의견은 객관적으로 해석되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그건 남자라도 마찬가지구요.

다만 여성과 남성의 동등한 권리를 믿는 사람으로서, 남편의 부정을 알고 미친 듯 흥분해서 폭력을 휘두른 아내가 동정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동일하게, 아내의 부정을 알고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편도 동정 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 feel6115님의 댓글에 제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지만, 하는 일은 잘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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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6-04-29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eel6115님이 우연히 제 글을 보셨다던데, 댓글에 댓글이 안 달리네요.

다락방 2016-04-29 16: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댓글 쓰다가 튕겨나갔어요... 다시,

이 페이퍼에 제가 따로 덧붙일 말은 없고요, 다만 객관적이란 것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왜 여성이 여성주의에 대해 말할 때, 남성들(혹은 어떤 여성들 포함)이 `객관적`이 되라고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본인들은 객관적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이 세상에는 아무도, 숨 쉬고 살아가는 그 누구도, 객관적인 사람이 없.습.니.다. 누구나 자기가 살아온 환경이 있고 그 안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았습니다. 그렇기에 `나의 상식`과 `너의 상식`이 `상식`이란 이름이 붙었어도 충돌하는 것이고요. `문유식` 판사도 자신의 책 [개인주의자 선언]에서 `아무리 객관적인 척 논리를 펴도 결국 인간이란 자신의 선호, 자기가 살아온 방법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고 말한 바 있죠. 세상엔 객관적인 사람이 없고요, 객관적인 시각 자체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게속되는 불평등에 `이제 그러지좀 말라고 쫌!!` 하고 버럭하니 `그렇게 화만 내지 말고 객관적이 좀 되어봐`라고 하다니, 거기에 객관적이라는 단어 자체를 쓸 수 있다는 게 이미 기득권이라 가능한 것임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아요. 본인이 객관적이라 생각된다면, 그건 본인이 객관적이어서가 아닌 겁니다. 객관적인 줄 착각하는 겁니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쪽이 분명히 존재하고, 약한 쪽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아파하는 쪽이 분명히 존재하는데, 여기에 어떻게 `객관`이 끼어듭니까.

단발머리 2016-04-29 17:05   좋아요 1 | URL
이 세상, 아무도, 숨 쉬고 살아가는 그 누구도, 객관적인 사람이 없.다.는 다락방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지역/나이/문화/성별을 초월한 사람만이 충분히 `객관적`일 수 있는대요. 우리 중에 그런 사람은 없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말해라, 생각해라, 하던데...

맞아요. 다락방님이 지적해 주신대로, 일정 부분에서의 기득권층이 이 `객관적`이라는 말을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해요. 한국이라고 한다면, 서울/청장년/주류문화/남자겠죠.

서울에 사는 중년 여성인 내가 말하는 것들은 `주관적`인 것으로 이해되고 해석되겠죠. 이 뭐....

꿈꾸는섬 2016-04-29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력은 그 어떤 것에도 동정받거나 이해받거나 미화될 수 없다에 전적으로 공감요.
아무리 아내가 부정을 저질렀다고해도 그러시면 안되는거죠!

단발머리 2016-04-29 17:39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폭력은 어떤 경우에도 동정받거나 이해받거나 미화되서는 안 되죠.
아이에 대한 부모의 폭력이 그런것처럼, 남편에 대한 아내의 폭력, 아내에 대한 남편의 폭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내의 부정을 의심해 아내에게 폭력을 가한 남편의 경우에 관해서라면,
남편이 가해자이고, 아내가 피해자죠. 폭력에 대한 가해자, 폭력에 대한 피해자.
동정을 받아야 할 사람은 피해자입니다.
아내라서 동정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폭력 행위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동정받아야 합니다.

2016-04-29 17: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4-30 10:47   좋아요 1 | URL
어떤 이유에서라도 폭력에 대해서는 동정도, 이해도 안 됩니다. 저도 동감합니다.

아내에 대한 폭력, 가정폭력이 이해되거나 동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불륜을 저지른 이유 중의 일부가 자신에게 있지 않나 스스로 돌아보는 행동에 대해서는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그럴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남편의 아내도 무언가 부족함을 느껴 부정을 저지를 수 있으니까요.
문제는 아내의 부정을 이유로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느냐, 그 행동이 동정받을 수 있는가, 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

그거슨인생 2016-04-29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잘 읽었습니다.
제가 본의 아니게 여러 분들의 심기를 많이 거스른 거 같네요.
조금 해명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객관적`이라는 말.. 저는 객관적이기 어렵다 해서 객관적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여러 분들의 의견을 보니 조금 더 주의해서 그 단어를 써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다만 어떤 분의 말씀처럼 여자인 님께서 하필 여성주의를 얘기해서 남자인 제가 객관적이 되라고 했던 건 아닙니다.
첫 댓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도 한편으로는 왜곡된 성 역할의 피해자입니다.
기득권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합니다.

그리고 `동정`이라는 말과 관련해서는, 제 의도가 잘 전달이 안 된 것 같긴 합니다만..
저는 그랬습니다.
전에 중국에서 부인이 외도한 남편의 성기를 잘랐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요.
당연히 그런 행위는 지탄받아야 하지만, 그 배신감 자체에는 어느 정도 공감이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배우자의 외도를 경험한 것과 배우자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을 구별해서 접근한 것입니다.
동정의 정의가 `남의 어려운 처지를 자기 일처럼 딱하고 가엾게 여김`이라 말씀해주셨는데요.
(이 사안에서 동정이 `도움을 베푸는 것`까지 포함한다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네요)
성기를 자른 부인이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과 별개로, 남편의 외도를 경험한 어려운 처지에 한정해서는 딱하게 여길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오다시마 유시의 글에서도, 특별히 남성이라서 동정받을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배우자의 외도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동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어찌 보면 모순된 감정이 공존하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제 의견은 그렇습니다.

쓰고 나서 든 생각인데, 제 생각이 있고 님 생각이 있는 건데 제 생각을 기준으로 님의 생각에 대해 과하다고 평가한 것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점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누차 말씀드리지만 제 의견이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건 결코 아님을 다른 분들께서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배우자에게 폭력을 휘두른 사람은 당연히 콩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발머리 2016-04-30 10:49   좋아요 1 | URL
제가 말하는 건, ˝여자˝가 객관적이라고 말하는 것과 남자가 ˝객관적˝이라고 말할 때 그 의미에 차이가 있다는 뜻이예요. 남자들이 ˝사태를 객관적으로 봐˝ 라고 말할 때 대부분의 남자들은 스스로를 남자/여자의 ˝남자˝가 아니라, 자신을 ˝인간˝으로서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문제에 초월했는데, 나는 (남자가 아니라) 인간인데, 나는 객관적인데...
너는 여자야. 그러니까 네가 흥분했지. 상황을 좀 객관적으로 봐. 이렇게 말입니다.

feel6115님이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렇게 느껴졌다는 거예요.

외도한 남편의 성기를 자른 여성의 행동은 지탄받아야 하고, 그 여성을 동정하느냐 마냐는 님의 선택이지만,
제가 문제 삼은 문장을 다시 한 번 보세요.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편의 경우, 아내의 부정을 알고 미친 듯이 노한 상태였음이 드러나면 동정을 받을 것입니다.” <처음 읽는 셰익스피어, 머리말>

저는, 이 문장을 문제 삼은 거예요.
아내의 부정을 알고 미친 듯이 화가나서 아내에게 폭력행위를 한 남편.
그 남편이 화난 이유가 아내의 부정 때문이라면,
그래서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이라면 동정을 받을 수 있는가.
동정받는 것이 옳은가.

제가 문제 삼은 건, 이것 뿐입니다.
동정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가 아내의 부정이든 아내의 잘못이든,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남편은 동정받아서는 안 됩니다.
 

 

 

 

 

Q1. 언제, 어디서 책 읽는 걸 좋아하십니까?


언제 어디서나 책 읽는게 좋지만,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는 한적한 지하철 안이요. 집중이 너무 잘 됩니다. 

 


 

Q2. 독서 습관이 궁금합니다. 종이책을 읽으시나요? 전자책을 읽으시나요? 읽으면서 메모를 하거나 책을 접거나 하시나요?

주로 종이책을 읽어요. 전자책은 아이패드로 읽어봤는데, 눈이 많이 피곤하더라구요.

읽으면서 메모를 합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는 줄을 그을 수 없기 때문에 좋아하는 페이지와 인상 깊은 문장을 메모합니다. 메모 전용 노트가 있어요. 구입한 책이라면 줄을 그으면서 책을 읽습니다. 줄을 그을 때마다 문장의 최초 발견자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집니다.

  
 

Q3. 지금 침대 머리 맡에는 어떤 책이 놓여 있나요?

 

침대 머리맡에는 책을 두지 않지만, 가장 가까이에 두고 있는 책을 말하는 거겠죠?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네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야전과 영원]

 

 


 

 

 

 

 

 

 

 

 

 

 

 

 

 

 

Q4. 개인 서재의 책들은 어떤 방식으로 배열해두시나요? 모든 책을 다 갖고 계시는 편인가요,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인가요?

철학/역사/세계문학, 이런 식으로 정리했던것 같은데, 요즘에는 그냥 빈 곳을 찾아 꽂기 바쁩니다.

도서관의 책들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책을 많이 구입하지 않습니다.

간소하게 줄이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그래도 저쪽 방의 책들은 70%이상 처분해야 합니다.


 

Q5. 어렸을 때 가장 좋아했던 책은 무엇입니까?

 

[제인 에어]예요.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읽었고, 그 때도 지금도 최고의 책입니다.

 

 

 

 

 

 

 

 

 

 

 

 

 

 

 

 

 

 

Q6. 당신 책장에 있는 책들 가운데 우리가 보면 놀랄 만한 책은 무엇일까요?

[시크릿 가든]입니다. 한참 현빈에 빠져있을 때 구입했죠. 드라마의 각 장면의 배우의 모습과 대사를 만화처럼 편집한 책입니다.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저의 과거이기에 그대로 받아들이렵니다.

 

 

 


 

 

 

 

 

 

 

 

 

 

 

 

 

 

Q7. 고인이 되거나 살아 있는 작가들 중 누구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나고 싶습니까? 만나면 무엇을 알고 싶습니까?


필립 로스요.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상상만으로도 흥분됩니다.

무엇을 알고 싶냐고요? 나는 그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 그가 말한 것만 알 수 있으니까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만난 말 아침에 뭘 드셨는지, 그걸 묻고 싶습니다.

 


 

Q8. 늘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읽지 못한 책이 있습니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Harry Potter and the sorcerer's stone]


 

 

 

 

 

 

 

 

 

 

 

 

 

 

 

 

 

Q9. 최근에 끝내지 못하고 내려놓은 책이 있다면요?

[행인], [오베라는 남자]


 

 

 

 

 

 

 

 

 

 

 

 

 

 

 

 

Q10. 무인도에 세 권의 책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시겠습니까?

 

이게 제일 어려운 질문이죠.

 

1. 성경 (중에서, 유진 피터슨 목사님의 'The Messages')

2. 제인 에어  

3. 유령 퇴장 

 

 

 

 

 

 

 

 

 

 

 

 

 

 

 

 

 

 

 

한 권 더 고를 수 있다면, 요즘 제게 제일 핫한 그녀. 레베카 솔닛의 [The Faraway Nearby]를 가져가렵니다. 

 

 

 

 

 

 

 

 

 

 

 

 

 

 

 

 

 

 

이 이벤트 좋은데요~~~ 재미있어요.

당첨되면 더 좋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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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기후 2016-04-23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크릿가든이 왜요! 엄청 재밌었는데... 한번씩 팬질도 할 수 있는 거지 그 뭐 부끄러운 일인가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6-04-24 20:33   좋아요 0 | URL
제가 정말 부끄러운건.... 사랑이 변해서인것 같아요.
현빈-김수현-송중기 라인입니다.

그게 부끄러워요. 부끄부끄...ㅎㅎㅎㅎ

해피북 2016-04-23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두 건조기후님 댓글에 공감하는걸요. 저는 애니메이션 관련 책도 많고 만화책도 많은걸요.

그리고 무인도에 가지고 갈 세 권의 책이 인상적이예요. 저는 어떤 책을 가져갈 수 있을까 싶은!

단발머리 2016-04-24 20:35   좋아요 0 | URL
저는 만화책은 별로 없구요.
저는 배우보다 김은숙 작가를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해요.
김은숙 작가의 대사를요.

심심할때 한 번씩 봅니다. ㅎㅎ 재밌어요.

순오기 2016-04-23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오베를 내려놓으셨다니...재도전을 권합니다. 첨에 뭔 얘기인가 싶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오베의 매력에 빠져들어요.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어...나도 요렇게 생을 마감하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어요!^^

단발머리 2016-04-24 20:36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이 권하시니 바로 오베를 다시 시작해보렵니다.
오베의 매력에 빠져보고 싶어요.

생을 마감하는 이야기가 나오는군요. ㅎㅎ 급궁금하네요~~~~~

나와같다면 2016-04-23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하철에서 책 읽다가 내릴 역 지나친적 있으시죠..? ^^

단발머리 2016-04-24 20:37   좋아요 0 | URL
아주 많아요. 지나친 적...
차라리 지나치면 좋은데 앉아있는데 문이 열리고 나서 내릴 역이라는 걸 알 때가 있어요.
그 때는 참...ㅎㅎㅎ

붉은돼지 2016-04-23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인도 책 취향은 저랑 비슷하군요...저도 성경 골랐습니다.^^

단발머리 2016-04-24 20:38   좋아요 0 | URL
무인도 성경 고르신분 아주 많더라구요.
아무래도 길고 내용도 다양하고 하니까 그러신것 같아요.

저는 여러 성경 번역본 중에 `메시지`를 골랐어요.
아주 쉽고 재미있거든요.
갑자기, 추천해 드립니다~~ 붉은돼지님~~~

페크pek0501 2016-04-23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1 때 제인에어를 읽으신 것, 부럽습니다.
저와 비교해서 읽으니 재밌습니다...

단발머리 2016-04-24 20:39   좋아요 0 | URL
네, 이 이벤트 반응이 정말 좋네요.
다른 분들 이야기도 재미있구요.
책 많이 읽으시는 분들이라 그렇것 같아요.

제인에어를 추천해준 친구에게 이 영광을... 돌립니다. ㅎㅎ

꿈꾸는섬 2016-04-24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인에어~저도 중1때~^^ 정말 최고죠!
시크릿가든~~책으로 나온줄 저는 몰랐는데ㅎㅎ 현빈 좋아요♡

단발머리 2016-04-24 20:40   좋아요 1 | URL
아하... 꿈섬님도 중 1때 읽으셨군요.
빨간 표지의 제인에어를 책상 밑에 펼치고 읽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제가 수업 시간에 읽은 유일한 책이지요.

시크릿 가든, 정말 좋아요. 이런 책은 드라마 끝나고 바로 나오는데 늦게 구하려 하면 없습니다.
ㅎㅎ 한 번 보여드려요?

꿈꾸는섬 2016-04-24 22:03   좋아요 0 | URL
ㅎㅎㅎ옛기억이 새록새록해지겠네요. 시크릿가든 구경 시켜주세요.^^
나쁜남자 로체스터..저도 사랑했어요.ㅜㅜ

단발머리 2016-04-24 22:07   좋아요 1 | URL
이번주에 가져갈께요~ 현빈의 매력에 퐁당 빠져 보아요 ㅎㅎ

2016-04-24 0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인에어 전 중2 여름방학에ㅎ 재작년 가을에 다시 읽고 푹 빠짐♡

단발머리 2016-04-24 20:41   좋아요 0 | URL
로체스터는 나쁜 남자의 전형인데, 너무너무 멋있어요.
멋지지 않은 외모의 남자가 멋있을 수 있다는 유일하고 확실한 증거지요.
사랑합니다, 로체스터!!!

북깨비 2016-07-0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인을 내려놓으신 이유를 알고 싶어요. 지금 현암사 소세키 전집을 한권씩 모으는 중인데 돈이 궁해서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중이랍니다.. ^^;;; 일단은 도련님과 마음을 사놓고 읽고 있어요.

단발머리 2016-07-04 09:01   좋아요 1 | URL
아.... 북깨비님~
이것은 소세키 때문이 아니라 저 때문입니다. ㅠㅠ
<행인>은 내려놓았지만 다시 꼭 읽을 예정입니다.
저는 <그후>가 참 좋았어요. 소세키는 다 사고 싶은데 저도 중도 포기했어요. 에궁..
 

 

  

 

 

 

 

 

 

 

 

보통은 소설을 먼저 읽고, 그 소설가를 좋아하게 되서 소설가의 에세이나 전기 등을 찾아보는 게 일반적인 순서다. 로맹 가리의 작품을 한 권도 읽지 않았는데도 그의 개인적 독백 내 삶의 의미를 먼저 집어든 것은 도서관 신착 코서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이 작은 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리뷰를 너무 많이 읽어서 읽은 걸로 착각하게 하는 자기 앞의 생도 한 몫 했고, 최근에 자주 올라오는 게리 쿠퍼여 안녕도 작가에 대한 호기심을 북돋았다.

 

[내 삶의 의미]

 

 

 

 

 

 

 

 

소설 속 작중화자 혹은 소설 속의 가 소설을 쓴 작가와 동일인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여러번 듣고 또 들어도, 나는 서투른 독자라 자꾸 소설 속의 와 작가를 관련해 생각하고, 연관시키고, 결혼시키고, 이혼시킨다. 로맹 가리는 친절한 사람이라 소설 속에 그려진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직접 소설의 제목을 말해주기도 했다.

로맹 가리의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는 그의 어머니진 세버그가 아닐까 한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자신의 삶의 이유가 자식 그 자체인 이 유대인 아주머니를 이해하기 쉬운 건, 내가 필립 로스를 읽었기 때문이라고 멋대로 생각한다.

 

넌 위대한 작가가 될 거야. 프랑스 대사가 될 거다.” 이따금은 몹시 곤혹스러웠습니다. 어머니는 자존심이 아주 강한 분이라 계단에서 이웃과 말다툼이 벌어질 때마다 여덟 살인 나를 데려가 밖에 나와 있던 이웃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으니까요. “내 아들은 프랑스 대사가 될 거예요. 위대한 프랑스 작가가 될 거라고요.” 나는 창피해서 죽을 것만 같았지요. 우리가 아직 폴란드 동부의 작은 마을에 살 때의 일이니 이런 일이 내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지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내 삶의 의미, 18)

 

'폴란드인도 러시아인도 리투아니아인도 유태인도', 그리고 엄밀한 의미에서 프랑스인도 아니었던 로맹 가리의 개인사적 특수성은(가면의 생, 알라딘 책소개) 방랑자로서 어울리는 그의 외모와 함께 그의 삶을 조금 더 설명해준다.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 뒤에 숨었을 때 쏟아지는 대중의 환호, 스스로의 이름을 버리면서 얻게 된 알 수 없는 쾌감. 거짓말과 연극, 진 세버그와의 숨 가쁜 사랑(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그리고 자살.

말하고자 했던 것을 모두 말했던가. 모두 다 말했기에 그는 침묵하기로 선택한 것인가.

그의 말을 들어야 해서, 그의 책을 골라 본다.

 

[새벽의 약속], [유럽의 교육],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마지막 숨결], [하늘의 뿌리], [흰 개]

 

 

 

 

 

 

 

 

 

 

[그로칼랭], [레이디 L], [여자의 빛]

 

 

 

 

 

 

 

 

 

[이 경계를 지나면 당신의 승차권은 유효하지 않다], [밤은 고요하리라], [인간의 문제]

 

 

 

 

 

 

 

 

 

[별을 먹는 사람들], [게리 쿠퍼여 안녕]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다. 나도 최근에야 알았다.

[자기 앞의 생], [가면의 생], [솔로몬 왕의 고뇌]

  

  

 

 

 

 

 

 

 

 

어제는 결석률이 자그만치 40%로 결석생이 많았다. 지난주에 써 갔던 시를 다듬어서 들고 갔는데, 선생님은 한 연 또는 두 연을 더 써오면 좋겠다고 하셨다. 마지막에 한 단어만 잘못 써도 폭싹 망하는게 시인데, 두 연이나 더 써야 한다니, 머리가 띵하니 아파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수업 마지막에는 5월쯤 창비에 연재하실 거라는 선생님의 미발표 시 두 편을 들을 수 있었다. 진지한 선생님의 시세계와 청소년시가 과연 어울릴까 의문스러웠는데, 나지막한 목소리에 실린 시어들이 그 모든 생각들이 잘못된 것임을 알려줬다.

<독서실><안녕, 옆구리>. 좋은 시 두 편에 우리는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새의 간절함으로 다같이 좋아요~’를 연발했다. 할 수 있는 말이 좋아요~ 밖에 없나. 좋아요~와 정말 좋아요~ 뿐인가.

경복궁 채부동 잔치국수와 굴전, 굴무침과 소주와 생수를 먹고 마시며 건배, 또 건배하느라 사진을 못 찍은 것이 아쉽다. 굴전은 바삭했고, 굴무침은 주인공인 굴보다 무가 더 맛있었다. 웃고 말하고 떠들고 그리고 또 웃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선생님과 둘이 걸었다

선생님은 키가 커서

한국 여성 평균키보다 10센티나 키가 큰 나는

허리를 쭉 펴고 걸을 수 있었다

지하철역 계단을 걸어 내려와

이런 저런 시시한 이야기를 하며

3호선에 올랐다

 

시인은 시인의 집으로

나는 우리집으로 돌아왔는데

시인과 돌아오는 그 길이

내내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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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6-04-22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내,
내내,


뭡니까?!


내내
내내


로 끝내놓으니 한 편의 시네요, 단발머리님!


참고로 저는 로맹 가리의 작품을 여러권 읽었고 다 좋아하는데 [새들은 페루에가서 죽다]를 그중 가장 추천합니다. 단편들이 하나같이 주옥같아요. 와- 진짜 대박이에요!!

단발머리 2016-04-22 11:2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궁금하죠?

저번주에 시수업에서 제가 쓴 시 (시라 부르면 시라 할 수 있지만, 시도 아닌 것을 시라 하기 뭣하지만) 아무튼 제가 쓴 시를 보시고는 선생님이 그러셨어요.
기승전결로 안정적 구도를 가지고 있고, 무난한 마무리를 하고 있지만... 있지만
결론에서 긴장감이 확 떨어지고 쉬운 결론으로 마무리가 된다.
`마무리`에 대한 강박을 버려라....

그러시더라구요. 그래서 이렇게 써봤어요.

내내
내내

저는 참... 잘 따라가는 학생이네요. 다락방님이 궁금했다면 성공입나당!!

저는 로맹 가리 작품 이제 시작할려구요. 일단 추천하신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부터요.
다 읽고 또 물어볼꼐요. 대박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내내
내내

ㅎㅎㅎ

blanca 2016-04-22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낭만적이네요.

단발머리 2016-04-22 13:16   좋아요 0 | URL
지하철역으로 걸어가 카드를 태그하고 3호선을 타고 집으로 오는데 그 길이, 그렇게 낭만적이더라구요.
시인과 함께해서랄까요? ㅎㅎㅎ

다락방 2016-04-22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 큰 단발머리님 너무 멋져요! >.<

단발머리 2016-04-22 15:57   좋아요 0 | URL
아하하... 내가 다락방님 좋아해요. >.<

제가 멋짐을 맡을께요.
다락방님은 예쁨 담당인거 알죠? ㅎㅎㅎ

2016-04-22 14: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움... 마구마구 막 상상됨요 (^-^)v

단발머리 2016-04-22 16:00   좋아요 1 | URL
가는 길에 말이지요.

버스를 탈까, 택시를 탈까 하면서 신호등 건너서 반대쪽으로 걸어가는데
J님이랑 ㅆ님 안 계셔서 아무도 선생님을 쟁탈하지 않으려 해서...
은근 심심했어요.
이 장면도 그려주세요. 마구마구.... ㅎㅎㅎ

건조기후 2016-04-22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 세버그! 고다르의 영화 네 멋대로 해라에 나오는 그 배우가 로맹 가리의 모친이었다니... (왠지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처음 듣는 것 같기도 하고 혼자 막 혼란스러운 와중에ㅎ) 놀라워요. 대학시절 프랑스문화 수업 때 저 영화로 발표도 했었는데.. 로맹 가리를 낳고 키운 사람이 그 사람이라니. ㅎ

안녕, 옆구리 라는 시 제목이 인상적이네요. 요새 제 옆구리의 존재감이 너무 격렬해서 감당을 못 하고 있는데 ;; 저 안녕이 만남의 안녕이 아니라 헤어짐의 안녕이었으면 좋겠어요. 안녕... 옆구리.

로맹 가리의 에세이를 읽고 시 수업 듣는 평균키보다 10센치나 더 큰 단발머리님은 정말 좀 많이 멋지네요 ㅎㅎㅎ

단발머리 2016-04-22 16:05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건조기후님^^

저... 지금 댓글 달다가, 건조기후님 댓글 2번 보고있어요. ㅎㅎ

<안녕, 옆구리>의 시적 화자는 고딩 여학생이라고 할 수 있는대요. 한국에서 입시를 준비하며 옆구리가 늘어나는 경험을 했던 모든 여성이 이해하고 공감할 만합니다. 아주 좋아요.

멋지다고 해주시니, 부끄러워요.
부끄럽지만, 전... 사실 멋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멋진 사람^^

건조기후 2016-04-22 1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어쩐지... 뭐가 계속 이상한데 내가 정말 모자관계인줄을 몰랐던 건가 싶어서 그것만 계속 생각했는데. 어머니`와` 진 세버그를 어머니`인` 진 세버그로 잘못 읽은 거였네요. 하... 어이없음이여 ;;; 진 세버그가 어머니면 숨가쁜 사랑은 뭐가 된단 말인가요 ; 아이고 이 정신머리... ㅜ

단발머리 2016-04-22 16:06   좋아요 0 | URL
급하게 읽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 ㅎㅎㅎ
전 그런 일이 숱하게 많아요.
특히 알라딘, 제가 좋아하는 알라딘 서재에서요... ㅎㅎ

숨가쁜 사랑은 우리 모두가 원하는 바입니다.
언제나요~~~~~~~~ forever love!!!

수이 2016-04-22 16: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러울 줄 알았는데 내 질투심이 다 사그라진걸 보니 선생님에 대한 애정도가 0으로 ㅋㅋ
즐거운 시간 보내셨다 하니 다행 :)

저는 저를 포근히 안아주는 남자의 품에 안겨서 걸었으니 코코_


단발머리 2016-04-22 16:11   좋아요 0 | URL
이러면 안 되죠~~

굳은 사랑의 맹세와
환호와
미소를...
어떻게 할려구요.

그리고 `선생님, 사랑해요~`를
어찌할려고요.

수이 2016-04-22 16:14   좋아요 0 | URL
사랑해_라고 하면 묵묵부답인 선생님을 계속 사랑할 인내심이 제게는 없어요. 저는 표현하는 남자가 좋아요. ㅋ

단발머리 2016-04-22 16:15   좋아요 0 | URL
선생님께 전할께요~~*^^* ㅎㅎㅎ
선생님~~~~~~~~~~~~~
야나님이요~~~~~~~~~~

2016-04-22 16:18   좋아요 1 | URL
모든 선생님은 나쁜 듯 합니다ㅎ

수이 2016-04-22 16:20   좋아요 0 | URL
전해봤자 소용없어요_ 그분의 마음은 돌과 같아서 변하지 않을 테니 ㅋㅋㅋㅋ

수이 2016-04-22 16:21   좋아요 1 | URL
쑥님_ 좋은 선생님이 되려면 어쩔 수 없이 모두 나쁜 선생님이 될 수밖에 없나봐요. 만일에 제가 선생님이라고 한다면 제자와는 사랑할 수 없을 거 같아요. 그러니 저절로 쌀쌀맞아질 수밖에_

단발머리 2016-04-22 16:42   좋아요 1 | URL
쑥님/ 우리 선생님 빼고요. 선생님은 나빠요. ㅎㅎㅎ
야나님/ 아무렴요. 제자와의 사랑은 아니되죠. 우리, 선생님의 행복을 두 손 모아 빌어보아요.
선생님 팬 중에 어여쁜 처자와의 .... 띠로롱~~
 

 

 

 

 

 

 

 

벤저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

 

 

 

 

 

 

 

 

 

듬성듬성한 백발에 희뿌연 긴 턱수염을 가진 일흔 살 노인의 모습으로 태어난 벤저민 버튼은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산다. 그에게는 시간이 거꾸로 간다. 호호백발 노인에서 믿음직스러운 장년으로, 활기 넘치는 청년의 때를 거쳐 종잡을 수 없는 청소년기를 보낸다. 어린이가 되고, 아기가 된다. 달콤한 잠, 소멸의 시간으로 빠져드는 아기에 대한 묘사는 죽음에 대한 그것과 유사하다.

그는 조금 전에 마신 우유가 차가웠는지 따뜻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했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도 분명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그저 아기 침대와 낯익은 나나가 있을 뿐 그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배가 고프면 울었고, 그게 전부였다. 낮과 밤이 흐르고 숨을 쉬웠다. 그 위로 그의 귀에 간신히 들리는 웅얼거림과 간신히 식별되는 냄새와 빛과 어둠이 있었다.

모든 것이 어두워졌고 그가 누운 하얀 아기 침대와 위에서 움직이던 희미한 얼굴들, 따뜻하고 달콤한 우유향이 그의 뇌리에서 모두 사라져 버렸다. (89)

 

죽음이 다가오는 찰나, 그 순간에 대한 묘사로는 스토너를 빼놓을 수 없다. 집에는 이 책 밖에 없어서, 조금만 인용해 보면 이렇다.

 

Stoner

 

 

 

 

 

 

 

It hardly mattered to him that the book was forgotten and that it served no use; and the question of its worth at any time seemed almost trivial. He did not have the illusion that he would find himself there, in that fading print; and yet, he knew, a small part of him that he could not deny was there, and would be there. ...

The fingers loosened, and the book they had held moved slowly and then swiftly across the still body and fell into the silence of the room. (288)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인생을 받아들이는 태도와 크게 관련이 있다고 본다. 욕심이 많은 사람, 탐욕적인 사람들이 삶에 대한 애착 또한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용감하게 죽기 바라는 사노 요코의 죽음에 대한 인식은 발랄하고 명랑하다.

 

남은 날이 2년이라고 했을 때, 다케에몬은 내 형편없는 마작을 자주 상대해 주었다.

다케에몬에게 2년보다 더 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더니 멍청아, 안 죽는 거야?”하고 웃었다. 그 후로는 마작을 하자고 불러도 오지 않았다. 그때 암은 폭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용서해 주세요, 여러분. (35)

 

지금이 인생 중 가장 행복하다.

일흔은 죽기에 딱 적당한 나이다.

미련 따윈 없다. 일을 싫어하니 반드시 하고 싶은 일도 당연히 없다. 어린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죽을 때 괴롭지 않도록 호스피스도 예약해두었다.

집 안이 난장판인 것은 알아서 처리해주면 좋겠다. (63)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것을 핑계로 친구를 불러 마작을 두는 사람, 2년보다 더 살게 될 거라는 의사에게 큰일 났어요. 돈이 다 떨어졌어요.”라고 말하는 사람, 지금이 죽기 딱 적당한 나이라고 말하는 사람, 그 사람이 사노 요코다.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전혀 새로운 일, 인생의 다른 경험과 달리 그 느낌과 감각에 대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경험인 죽음이 다가왔을 때, 자신에게 다가올 때, 자신과 가까운 사람이 죽음에 스러지는 모습을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그녀는 다르다. 어린 시절, 동생 둘과 오빠의 죽음을 목격해서일까. 사노 요코에게 죽음은 자연법칙 그대로다. ‘죽지 않는 사람은 없다.’(198, 옮긴이의 말)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나는 기독교적 세계관에 근거한 또 다른 세계를 믿는다. 내가 두려워하는 건 죽음이 아니라, 죽음에 이르기 전의 무기력한 삶이다. 스스로의 몸도 가눌 수 없는 희망 없는 상태, 질병으로 인한 고통, 무력한 육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의 시선. 그것이 진정 내가 두려워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다지도 기분 나쁜 두통은 처음이다. 바늘 1000개를 다발로 만들어서 뇌를 찌르고 끊임없이 흔들어대는 느낌이었다. 두통약을 먹어도 전혀 듣지 않았다. 두통은 2년 반 동안 한순간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종이를 넘기는 소리에 펄쩍 뛰어오를 정도로 머릿속이 울렸다. 밥그릇이 부딪치는 소리에도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그리고 몸의 왼쪽이 저려왔다. 그 때문에 나는 다리를 절뚝거렸다. 꼬집어도 바늘로 찔러도 아프지 않았다. 손가락을 만지면 얼음물에서 갓 꺼낸 듯이 차가웠다. .... 그런데 이번에는 몸의 왼쪽이 아니라 앞쪽이 저려왔다. 얼굴을 꼬집어도 아프지 않았고, 입 부근은 치과에서 마취를 한 것만 같았다. 덤으로 침까지 나왔다. 입이 새의 부리처럼 앞으로 늘어나는 느낌이었다. (124)

 

이토록 명랑하고 씩씩한 사노 요코도 이 엄청난 고통 앞에서는 도대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그녀는 잘 생긴 의사 아카와씨가 진료해주는 호스피스에 들어간다. 친절한 간호사들의 보살핌을 받는다. 죽음을 앞두고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삶을 사는,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진다.

내가 웃었다고, 그녀를 보고, 그녀를 읽고 웃었다고 그녀가 나를 싫어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오히려 그녀는 내가 웃기를 바랬을 거라 믿는다.

사는 건 뭐고, 죽는 건 뭘까. 인생은 뭐고, 죽음이란 또 뭘까. 이 심각한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게. 하하호호가 아니라, 크크크큭 웃으면서 할 수 있게 해줬다.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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