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어느 토요일 아침 이제 막 옷을 다 입고 신발 끈을 매고 (이제는 다 컸다. 제 할 일은 다 할 수 있는 소년이다),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가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다 마치고, 이른 아침 봄날 햇빛 속에서 서 있는데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평안과 기쁨을 억누를 수 없는, 황홀한 느낌이었다. 잠시 후 당신은 혼잣말을 했다. 여섯 살보다 더 좋은 건 없어. 여섯은 될 수 있는 나이 중에서 단연코 최고의 나이야. 당신은 그 순간을 3초 전만큼이나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날 아침으로부터 5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당신 안에서 조금도 줄어들지 않게 또렷하게, 당신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기억들 중 그 어느 것보다도 밝게 타오르고 있다. 이렇게 강렬한 느낌을 일으킨 것이 무엇일까? 알 수는 없지만 추측건대 자의식의 탄생과 관계가 있지 않나 싶다. 내면의 목소리가 깨어날 때 여섯 살 무렵의 어린아이에게 일어나는 일, 생각을 하고, 스스로에게 생각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능력. 우리의 삶은 그 시점부터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선다. 그것이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죽는 날까지 끊김 없이 계속될 내러티브를 시작하는 능력을 얻게 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날 아침까지는 당신은 그저 존재했을 뿐이었다. 이제 당신은 당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일단 그렇게 할 수 있게 되자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자기 자신에게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말해 줄 수 있게 된 것이다. (19-20

 

눈에 익은 제목과 표지 때문에 책을 뽑아 들었고 집에 돌아와서야 이 책이 폴 오스터의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소설-에세이의 순서가 좋은데, 요즘엔 자꾸 에세이-소설의 순서로 작가를 만나는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면 작가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고, 에세이를 읽으면 작가가 바로 옆에서 이야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좋다.

여섯 살. 자의식의 탄생을 이야기하는 이 장면이 좋아서 한 번 읽고 두 번 읽고, 계속해서 19페이지와 20페이지를 오가며 읽고 있다. 생각을 하고, 스스로에게 생각이 시작된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능력. 그 때가 바로 삶이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서는 때라고, 작가는 말한다. 자의식이 탄생되고 스스로가 스스로를 인식하던 때.

나 스스로는 그 때가 언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자신을 인지하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며 놀라워했던 기억이 있다. 작은 손, 작은 발, 작은 머리. 작은 입에서 나오는 말들. 엄마를 말하고, 자신이 만든 애칭으로 스스로를 부르던 시간들. 아이가 세상과 스스로를 인지하던 그 때, 나를 처음으로 엄마라고 부르던 그 시절에, 나는 좋은 엄마였을까. 나는 착한 사람이었을까.

 

어린이날에는 파주 지혜의 숲에 갔다.

 

차를 주차하고 가는 길에 길 잃은 거위를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높은 천장 끝까지 가득 채워진 책들이 너무 근사했다.

  

 

 

 

 

 

  

 

넓은 탁자 아무 자리에나 앉아, 좋아하는 책을 아무거나 뽑아서는, 좋아하는 음료 아무거나를 마시면서, 아무 때까지 그냥 마냥 책을 읽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사진 100장을 찍겠다는 내 앞에서 아롱이가 한껏 점프를 한다. 아롱이는 나를 많이 닮아 생김새와 성격은 물론, 고기, , 소시지를 좋아하는 식성까지 판박이인데, 이렇게 점프를 하면서도 코믹한 표정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가히 나를 능가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하트 속 아롱이는 참말로 어린이다

 

 

 

마냥 좋은 어린이날, 하루가 그렇게 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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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5-10 1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어린이날 지혜숲 갔었어요!!!

단발머리 2016-05-10 13:44   좋아요 0 | URL
우앗!!! 진짜요?
저는 10시부터 3시까지 있었어요.
아... 아른님을 만날 수 있었던 건가요?
아이고... 아쉬워라~~~~~~~~~~~

비로그인 2016-05-10 13:48   좋아요 0 | URL
저두 10시부터 있다가 12시쯤 긴급대피했어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ㅎㅎ 옷깃 스쳤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요~~^^

단발머리 2016-05-10 13:55   좋아요 0 | URL
아... 저는...
밥먹으러도 안 가고 한 자리에만 앉아있었거든요.
화장실 먼 곳으로 가느라 한 번 멀리 움직였는데...
그 때, 아른님과 옷깃이 스쳤으면 좋았을텐데...
혹 그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저도 기분이.. 헤에.... .*^^*

2016-05-10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1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읽는나무 2016-05-11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군요!!멋져요!!
마지막 사진도 멋져요
나는 저렇게 카메라 앞에서 멋진 포즈와 멋진 표정을 짓는 아들들이 부럽습니다
울집 아들은 넘 재미없어서요ㅜ
재미없는 부분은 나를 닮은 부분이긴 합니다만^^
파주는 정말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어요!!
지혜의 숲으로 가야하는군요
음~~

단발머리 2016-05-11 17:46   좋아요 0 | URL
멋지다해주시니 감사해요^^
저희는 사진 10장을 찍으면 10장이 다 다르게 나와요. 표정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지혜의 숲, 넘 좋더라구요. 책도 많고 떠들어도 되고 커피도 마시고~~*^^*

해피북 2016-05-19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데 독특한 화자 ,`당신`이라고 자꾸 불러서 처음엔 의아해 했어요.ㅋㅋ 그렇게 차츰 폴오스터 당신에 이야기군요 싶어서 읽고 있다가 혹시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역시 단발머리님의 글이 보였어요 ㅎㅎ 저는 방금 막 발췌하신 부분을 지나치는 중이였고요 ㅎㅎㅎ

그리고 파주!! 늘 동생하고 속닥거리면서 한번 다녀오자고 의기투합하지만 실행이 안되는 곳이라 아쉬워하곤 해요. 이곳에서 파주까지 움직이려면 기차타고 버스타고 4~5시간이 걸리더라고요. 그래도 언젠가는 꼭 그 자리 그곳에서 좋아하는 책과 좋아하는 음료들고서 오래오래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정말 사진도 좋고 글도 좋아서 막 설레였어요^~^

단발머리 2016-05-23 09:00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 그 `당신` 때문에 집중이 좀 안 되더라구요. 근데 특이하고 재미있죠~
아쉬운 건 폴 오스터를 좋아했다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선셋파크> 작품 하나밖에 안 읽어서요^^

파주는 저도 자주는 못 가는데, 좀 멀어도 다녀오면 참 좋고...
근처에 헤이리도 구경할 수 있어서 저도 또 가고 싶네요~~~ㅎㅎㅎ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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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금기와 판단을 넘어서는 영역이다. 쉽게 한 마디로 이야기할 수 없다. 김영하가 그랬던가. 간단히 몇 개의 문장으로 요약되는 소설은 좋은 소설이 아니라고. 그건 나쁜 소설이라고. 동의한다.

다른 사람의 판단에만 의지해서 살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마냥 무시하며 살 수도 없다. 하루키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일본 문단은 한결 같이 하루키를 냉대하고 무시했지만, 하루키는 이제 일본을 넘어 아시아, 미국, 전 세계에서 출간이 기대되는 베스트셀러 작가 중의 하나가 되고야 말았다. 하루키를 좋아한다는 말을 작가들이 내놓고 하기 부끄러워했다는 얘기가 종종 들려오지만, 평일 오전 시간에 사람들을 광화문 교보문고에 줄세울 수 있는 작가로서 유일하다는 이야기 또한 들려온다. 이제는 노벨문학상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결국 하루키의 작품이라는 건 고급 포르노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간단히 정리하는 사람도 있다(내가 좋아하는 사람, 강아무개). 하루키의 많은 작품 중에서 상실의 시대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만 읽었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는 하루키만의 특이점은 성적인 면에 대한 묘사가 불편하게 읽힌다는 점과 우유부단한 남자 주인공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는 거다.

소설을 읽을 때마다 항상 주인공=작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데, 이런 구절이 있었다.

 

일인칭 소설을 쓸 때, 많은 경우 나는 주인공인(혹은 화자인) ‘를 대략 넓은 의미에서 가능성으로서의 나 자신으로 인식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실제의 나는 아니지만 장소나 시간이 바뀐다면 어쩌면 이렇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나 자신의 모습입니다. 그런 형태로 가지를 쳐나가면서 나는 나 자신을 분할하고 있었다는 얘기인지도 모릅니다. (246)

 

그렇다면, 우유부단하지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소설 속의 남자 주인공들은 어느 정도 작가를 투영하고 있다 판단해도 되겠다. 그럼에도 나는 하루키의 소설 속 남자주인공들보다 하루키가 더 좋은데, 그건 이런 구절 때문이다.

 

이사크 디네센은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매일매일 20매의 원고를 씁니다. 아주 담담하게. ‘희망도 절망도 없다는 것은 실로 훌륭한 표현입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 책상을 마주합니다. 하루에 20매의 원고를 쓰면 한 달에 600매를 쓸 수 있습니다. 단순 계산하면 반년에 3,600매를 쓰게 됩니다. (151)

 

어쨌거나 작가에 대해 그런 반세속적인 이상상을 원하시는 분께는 참으로 죄송하지만, 그리고누차 되풀이하는 것 같지만어디까지나 나로서는 그렇다는 얘기지만, 육체적으로 절제하는 것은 소설가를 지속해나가기 위해서는 불가결한 일입니다. (194)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즉 당신이 (안타깝지만) 희유의 천재가 아니라 자신이 가진 (많든 적든 한정된) 재능을 시간을 들여 조금이라도 높이고 힘찬 것으로 만들어가기를 희망한다면, 내 이론은 나름대로 유효성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지를 최대한 강고하게 할 것, 또한 동시에 그 의지의 본거지인 신체를 최대한 건강하게, 최대한 튼튼하게, 최대한 지장 없는 상태로 정비하고 유지할 것그것은 곧 당신의 삶의 방식 그 자체의 퀄리티를 종합적으로 균형 있게 위로 끌어올리는 일로 이어집니다. (200)

 

사람이 어떻게 매일 똑같이 살 수 있겠나. 저번주에는 아이들 봄방학이어서, 중학생은 수요일부터, 초등생은 목요일부터 어제까지 장장 4-5일을 학교에 가지 않았다. 계획을 세워놓지 않아 여행을 가기에는 그렇고, 어버이날도 있고 해서 멀리 갈 수 없었다. 집에만 있으면 핸드폰과 뽀뽀하며 등으로 거실 바닥청소할 게 뻔하기에 나가기 싫다는 애들의 등을 떠밀고 밖으로 나갔다. 규칙적인 생활,이라는 게 쉽게 않다. 항상 소소한 일이 생기고, 신경이 쓰이고, 만나고, 헤어지고, 화를 내고 화해를 한다. 그 와중에도 자신의 일을, 정해진 시간에 꿋꿋히 해나가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가, 보통 생각하는 예술가로서의 소설가라기 보다는 기술자로서의 소설가로 느껴진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 책상을 마주합니다.

 

에서는 장인의 품격을 느낀다. 책상을 마주하고 유투브에서 음악을 듣거나, 팟캐스트(요즘 나의 페이버릿은 정봉주의 전국구’)를 듣거나, 책을 읽거나 하는 건 그래도 쉬운 일.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 보이지 않는 세계를 창조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닐테다. 이 어려운 일을 희망도 절망도 없이 담담하게’, 그것도 매일 해나간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쓴다는 것, 쓰고 있다는 그 사실 만으로도 칭찬받아야 한다.

쉽게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주어진 것을 가지고 있어서, 가지고만 있어서 얻게 되는 기쁨이란 건 크게 부럽지 않다. 진구 구장에서 다카하시가 던진 제1구를 힐턴이 깔끔하게 띄워 올려 2루타를 쳤을 때, 하루키는 그래,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모른다라고 생각했다. 소설을 썼고, 그리고 소설을 출판사에 보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군조> 신인상을 수상했고, 그리고 소설가가 되었다. 간절히 원하지 않았는데도, 마음을 다해 갈망하지 않았는데도 그에게는 이런 일이 이렇게도 쉬웠나. 나는 아주 작게 속으로만, ‘!’했다.

하지만, 그의 말 그대로 소설이라는 장르는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쉽게 진입할 수 있는 프로레슬링 같은 것이다(16). 링에 오르기는 쉬워도 거기서 오래 버티는 건 쉽지 않다. 30년 이상 소설을 쓰고, 게다가 재미있는 소설을 쓰고, 자신을 투영한 주인공을 만들고, 그리고 아침마다 커피를 내리고 네 시간, 다섯 시간 책상을 마주하는 하루키가 특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링에 오를 수 있었던 건 그가 잡은 행운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현역으로 뛸 수 있는 건 불굴의 노력 때문이다.  

이제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남았다.

 

내가 오랜 세월에 걸쳐 가장 소중히 여겨온 것은(그리고 지금도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나는 어떤 특별한 힘에 의해 소설을 쓸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다라는 솔직한 인식입니다. 그리고 나는 어떻게든 그 기회를 붙잡았고, 또한 적지 않은 행운의 덕도 있어서 이렇게 소설가가 됐습니다. 어디까지나 결과적인 얘기지만, 나에게는 그런 자격이 누구에게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주어진 것입니다. 나로서는 일이 그렇게 된 것에 대해 그저 솔직히 감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내게 주어진 자격을 마치 상처 입은 비둘기를 지켜주듯이 소중히 지켜나가면서 지금도 이렇게 소설을 계속 쓸 수 있다는 것을 일단 기뻐하고 싶습니다. 그다음 일은 또 그다음 일입니다.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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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09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은 서너권 에세이는 대여섯권 읽은 것 같아요. 팬도 안티도 아니지만 그의 라이프 스타일을 좋아해요 후훗~

단발머리 2016-05-10 13:59   좋아요 0 | URL
저는 막 찾아서 읽지는 않고 또 사실 읽다가 포기한 작품도 있어서요.
팬이라 할 수는 없는데, 관심이 가는 작가이기는 해요.
소설가 중에서도 좀 특별한 느낌이 있지요.
달리기, 수영, 건강 캐릭터? ㅎㅎ 이런 것들이요^^

2016-05-10 14:28   좋아요 0 | URL
전 와인.섬.뜨내기? ㅎㅎ 이런 것들요^^

단발머리 2016-05-10 14:32   좋아요 0 | URL
오호~~ 저두 그거 좋은대요, 뜨내기요.
그럼 저는 달리기.커피.뜨내기. 요렇게 할께요.

이거 주문하는 거 맞지요? ㅎㅎㅎ

2016-05-11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12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슬픔이 없는 십오 초 문학과지성 시인선 346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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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의 평화

                                                                     심보선

 

 

오늘은 휴일입니다

오전에는 평화로웠습니다

조카들은 톰과 제리를 보았습니다

남동생 내외는 조용히 웃었습니다

여동생은 연한 커피를 마셨습니다

어머니는 아주 조금만 늙으셨습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오후 또한 평화롭습니다

둘째 조카가 큰 아빠는 언제 결혼할거야

묻는 걸 보니 이제 이혼을 아나봅니다

첫째 조카가 아버지 영정 앞에

말없이 서 있는 걸 보니 이제 죽음을 아나봅니다

 

오늘은 휴일입니다

저녁 내내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부재중 전화가 두 건입니다

아름다운 그대를 떠올려봅니다

 

사랑하는 그대를 떠올려봅니다

문득 창밖의 풍경이 궁금합니다

...

 

오늘은 휴일입니다

이토록 평화로운 날은

도무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이를 혼내다 보면 아이는 자신이 혼나고 있는 상황이 억울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 동안 자신에게 불합리했다고 여겨졌던 일에 대해 눈물로 호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둘째가 한참 혼나는 와중에 그럼, 엄마는 왜 어른인데 아빠한테 어린이날 선물 받어?”라고 묻는 게 그런 예다. 둘째를 혼낼 때는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정신을 집중하고 대답했다. “그건, 아빠가 엄마한테 아직 철이 안 들었다고 하니까 그렇지. 엄마는 아직 철이 안 들었어. 엄마는 아직 어린이야. 그러니까 선물을 받는 거지.”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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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6-05-05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나도 동감_ 서방한테 선물 받았지롱 :)

단발머리 2016-05-09 14:33   좋아요 0 | URL
나는 올해 아직 못 받았는뎅...
부러워요.
선물 말해봐봐요~ 뭡니까, 선물 ㅎㅎ

2016-05-05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처지시네요. 저도 매해 어린이날 선물을 받습니다 (^-^)v

단발머리 2016-05-09 14:33   좋아요 0 | URL
쑥님~ 진짜.... 저만 자랑할려고 했는데, 이렇게 선물 받는 사람들이,
어째 제 주위에는 이렇게 많습니까요?

cyrus 2016-05-05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른이날 제정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우리 어른들을 위한 특별한 날을 가져보는 마음가짐이 있어야겠습니다. ^^

단발머리 2016-05-09 14:34   좋아요 0 | URL
우리 어른들을 위한 특별한 날이라...
너무 좋은 의견인대요. ㅎㅎ

다락방 2016-05-09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오빠(응?) 가 어린이날이라고 선물을... ㅎㅎㅎㅎ 책박스가 그것입니다. 우하하하하.

작년에는 어린이날에 애인한테 용돈 받았었는데...(시무룩 ㅜㅜ)

단발머리 2016-05-09 14:51   좋아요 0 | URL
저도 그 오빠... 참 어쩜~~ 넘넘 멋지십니다. 그거 아시죠?
오빠~가 아니라, 오빠아아앙~~ 이라고 끝에 올려야 돼요. ㅎㅎ

작년 어린이는 그대로 어린이인데 아흐... (시무룩 TT)

2016-05-11 2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5-12 18:16   좋아요 0 | URL
저는 ㅅ시인을 보지 못 해서 모르지만서도, 일단 제가 만난 정영효시인이랑 이병률시인은 진짜 참말로 겁나게 완전 멋져요.

정영효 시인은 키가 아주 크고 날씬하셔서(?) 그냥 보기만 해도 모델필이 납니다. 흰 손가락 이야기 아시는지 모르겠는데 엄청 하얗고 긴 손가락에 시집을 끼고는 시를... 낭독합니다.
이병률 시인은 너무 멋지시고 스타일이 좋구요. 아~~ 그래요~ 하면서 이야기에 응대해줄 때는 정말, 이 세상 모든 이야기를 계속해서 하고 싶어집니다.

맞아요. 우리는 멋지고 산뜻한 시인들의 시대를 맞고 있어요. 이제 시를 읽기만 하면 될듯요. ㅎㅎ

 

 

 

 

 

 

 

 

 

 

 

 

 

준다해서 이 책, 저 책, 그리고 요 책을  

 

 

 

 

 

 

 

 

 

 

 

 

 

 

 

 

구입했다. 주기율표 데스크매트가 생각보다 마음에 들어서 딸롱이 친구 선물로 주고.

 

딸롱이 용으로 하나 더 주문했다. 생각보다 근사하다.

 

 

 

 

 

『세상의 모든 원소 118』 <특별판>은 평생에 한 번 볼까 말까한 책인데, 올컬러의 색감이 너무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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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섬 2016-05-03 22: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주기율표 탐나는데요~~

단발머리 2016-05-03 22:24   좋아요 0 | URL
아주 아름답습니다.
저는 화학 안 좋아했는데, 주기율표는 아주 근사하네요.
책은 그림이 완전 멋진데, 내용도 흥미로와요.

예를 들어 제가 좋아하는 원소 79에 대한 설명은 이렇습니다.

< >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만큼 아름답다. 모든 금속 중에서 색이 있으며 동시에 그 색의 광채와 아름다움을 영원히 지니고 있는 것은 < > 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요~~ ㅎㅎㅎ

나와같다면 2016-05-03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등학교때 싫어하던 화학이..
참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발머리 2016-05-09 14:35   좋아요 0 | URL
실제로 보면 훨씬 더 아름다워요.
빛깔이 아주아주 고와요.
아.. 원소의 세계란~ ㅎㅎ

수이 2016-05-04 0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화학자 되는 게 끔이었던 때도 있었으나......아니 꿈!

단발머리 2016-05-09 14:35   좋아요 0 | URL
이제는 불어 원서를 읽고 카페의 주인장이 되었습니다.
화학자보다 더 좋은대요~

2016-05-04 18: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5-09 14: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런 제목의 책이 있다.

내 옆에 있는 사람

아직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눈에 익은 책이고 많이 들었던 책이다.

이 책, 내 옆에 있는 사람저자 옆에 앉았다.

마지막 시의 한 연을 고쳐 가느라, 아니 고쳐야한다고 생각하느라,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옆에 앉을 수도 있다는 걸 까맣게 잊어버렸고, 책을 준비하지 않아 싸인 받을 기회를 놓쳐 버린 것을 야나님 탓으로 돌렸다.

이 자리를 빌어 야나님에게 쏘리를 전한다. 야나님, 쏘리~

 

[내 옆에 있는 사람], [찬란], [눈사람 여관]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어렵다. 어렵다고 느낀다. 그냥 인사하는 정도가 아니라, 애정이 샘솟는, 살갑게 대하고 싶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시창작 수업을 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좋은 사람들,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났던 거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많이 웃었다. 그 시간들이 참 좋았다.

  

  

지지난주였던가. 토요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이 아팠다. 나는 타고난 저질체력이라 몸을 아끼는 편인데, 전날 밤에 흥에 겨워 너무 신나게 연주해서 그런가. 손목, , 어깨에 통증이 느껴졌다. 밥을 준비해서 먹이고 각각 자기의 자리로 보내놓고는 시집을 들고 침대에 누웠다. 시를 다섯 개 읽었다. 너무 많이 읽기에는 어려운 시다,라고 생각했다.

시 다섯 개를 읽고는 잠이 들어서 한 시간을 잤다. 정확히는 50분 정도 잔 것 같은데, 일어나니 몸이 가뿐하니 방금 전의 통증이 거짓말 같았다. 한 시간의 단잠이 몸살을 이기게 했나,라고 생각했다가 침대 머리 맡, 시집에 눈이 갔다.

나를 낫게 한 건, 시였다. 이 시, 아마도 이 시가 아니었나 싶다.

시를 읽고 나았다. 시를 읽고, 나는 나았다.

 

 

 

일어나지 않는 일

 

                                                                       정영효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려고

기분과 눈빛을 함께 이야기하려고

그런 상황을 이해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태어났으면 좋을 사람과 사귀면 건강해지고

가지 못하는 나라의 소식을 듣는 게 오히려 경험적이다

오 분을 먼저 걱정할 때마다 오 분간만 해야 하는 생각

우연히 마주쳤는데 마주치지 않더라도 생기는 일

그런 상황이 나타나는 곳에서 멈춰야 할 순간이 생긴다

하나쯤 붙잡고 싶은 의지라는 것

졸음이 묶인 개의 꼬리를 풀어주고

정오에 들리는 종소리가 누군가를 신실하게 만들 듯

가까이할수록 멀리서 진실이 다가오는

가까운 미래를 바라보며 떨어진 과거를 찾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란 쉽지 않다

유일한 장면을 목격한 것처럼

다만 당장을 불러보면서

이제부터 끝으로 밀려나는 세계를 믿고

문을 잠근 채 누워 있는 너를 친구로 여기고

꿈을 가진 자의 속물을 감춰주는

그런 상황을 기다리며

아무렇지 않게 지나치는 나에 대해서만 말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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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이 2016-05-01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로 사진 올리기가 가능했다면 수십장 올렸을 텐데_ 시인님 시집 내일 입고된다 하오 ㅎ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16-05-01 22:10   좋아요 0 | URL
내 폰에 있음을 감사히 여기기로... (나만 보기로) 했어요. ^^

수이 2016-05-01 22:13   좋아요 0 | URL
그럼 제가 올려야겠습니다 ㅎㅎㅎㅎㅎ 굿나잇❤️

단발머리 2016-05-01 22:15   좋아요 0 | URL
좋죠, 좋아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야나님도 굿밤~~~

꿈꾸는섬 2016-05-01 2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시인님 팔뚝사진ㅎㅎ 정말 숨막히게 멋진분이에요.
근데 정시인님 시 정말 좋네요.♡

단발머리 2016-05-01 22:36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우리가 저런 시를 쓰는 분께 배웠는데...
근데 그걸 몰랐네요. 그 때는...
선생님이 추천해준 시집도 많이 읽고,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그럴 것을...
저는 숙제도 20분 만에 대충대충 해가고, 성의 없이..
후회가 좀 되네요. 좋은 기회였는데... 쩝...

꿈꾸는섬 2016-05-02 05:05   좋아요 0 | URL
대충대충 성의없는 숙제가 참 좋은 시였다는 건 시 쓰기 자질을 타고난 건가봐요.
수업하면서 단발머리님의 타고난 감각이 부러웠어요.^^
노력해도 얻기 힘든 태생적으로 타고난 감각!

단발머리 2016-05-02 10:20   좋아요 1 | URL
아하하.... 오늘 아침 5시 댓글인거예요? ㅎㅎ
완전 부지런한 아침새시군요.

아침에 일어났더니 꿈섬님 댓글이 있어서 저는 시간 확인 안 하고,
와... 꿈섬님 늦게 주무시네~~~ 했거든요.

제가 첫시간부터 하기 싫다, 하기 싫다, 해서 정시인님이랑 선생님들이 칭찬해 주신 거예요.
다정한 칭찬 말씀 감사해요~~~ㅎㅎㅎㅎ

해피북 2016-05-01 2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어렵다. 어렵다고 느낀다`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을 단발머리님 글에서 만나니 너무 좋아요 ㅎㅎㅎ
정말 나이를 먹어갈 수 록 사람을 만나는 일도, 사귀는 일도 또 마음을 주는 일도 버겁고 힘겹게 느껴지더라구요.. 그래도 단발머리님 곁에 좋은 분들이 많으셔서 다행이예요^~^

단발머리 2016-05-01 22:37   좋아요 0 | URL
너무 좋군요. 제 글이 해피북님 생각과 닿아서요.

그러게요. 나이 들수록 새로운 사람 만나는게 어려워요.
시수업 하면서 좋은 분들 만나서 좋았어요.
시간이 여유로웠다면 더 좋았을것을... 아쉬움이 많네요.
해피북님 주변에도 좋은 분들이 많으시기를, 더 많아지시기를... 바래봅니다.^^

2016-05-01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6-05-01 22:34   좋아요 0 | URL
에헤야디야~~ 어야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