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페미니즘은 인문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인문학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건데, 페미니즘은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나누면서 갈등을 만들잖아요? 여성주의가 인문학이 되려면, 앞으로 시간이 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아직 여성주의는 인문학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군요. 저는 인문학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공부라고 생각하거든요. 내가 누구인지 고민할 때, 자신의 성별을 모르고 가능할까요? 여성주의는 성별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해 인간과 사회를 공부합니다. , 참 그리고, 이게 가장 잘못 알려진 건데요.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는 사고 방식은 여성주의가 아니라 가부장제입니다.” (『낯선 시선』, 9-10)




페미니즘에 대한 책들을 읽어가면서 얻게 된 위안 아닌 위안이라면, 남성과 여성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불평등과 여성혐오가 우리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막연히 우리 나라의 전통 문화(라고 불리우며 여성과 여성의 능력을 억압하는 문화), 양반은 물론, 일반인들의 생활을 강력하게 지배했던 유교 지배 이데올로기가 여성의 삶을 억압하는 도구로 기능했다고 생각했다. 유교 전통의 특수성이 우리나라 남녀 불평등의 토양이자 근본일 것이라 예상했다. 일정 정도 그건 사실일 것이고, 고려시대의 여성들이 조선시대, 특히 조선후기의 여성들보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자유로웠던 점을 상기한다면, 한국 사회 속 남녀 불평등에 대해서는 유교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성을 가정의 테두리 속에 가두어 두고, 여성의 경제력을 제한하고, 여성의 성을 억압하고, 여성을 사람이라 여기지 않는, 그런 생각, 그런 신념은 전 세계에 통용되었다. 가장이 강력한 지배권을 가지고 가족을 통솔하며, 아내와 자녀 등 가문 구성원에 대한 인신구속권을 가지는 제도, 남성만이 가장이 될 수 있는 가부장제의 창궐은(‘창궐’, 실수가 아니다. 나는 정확히 이 단어를 선택한다. ..) 가히 전 세계적이다.







가부장제는 거의 모든 농경 및 산업 사회에서 표준이었다. 가부장제는 정치적 격변에도, 사회적 혁명, 경제적 대변화에도 끈기 있게 버텨냈다. 예컨대 이집트는 수십 세기에 걸쳐 수없이 많이 정복당하여 아시리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로마, 아랍, 맘루크, 터키, 영국에게 점령당했지만, 이집트 사회는 늘 가부장제를 유지했다. 이집트는 파라오의 법, 그리스 법, 로마 법, 무슬림 법, 오토만 제국 법, 영국 법의 통치를 받았지만, 이 모든 법은 진정한 남자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을 차별했다. (『사피엔스』, 224)





가부장제는 어떻게 거의 모든 농경 및 산업 사회에서 표준이 되었을까. 자유롭고 평등했던 여자와 남자, 남자와 여자의 관계가 왜 변하게 되었을까. 왜 남자가 더 중요한 존재라고 여겨졌을까. 이게 바로 페미니즘의 물음이다. 여성주의 시작점 중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어떻게 여성들은 억압받는가?






페미니즘 문헌들이 방대하고 다양하기는 하지만, 이들의 우선적인 관심사는 대략 세 가지 주요한 질문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번째 질문은 페미니스트들의 공통된 관심의 원인을 분석하려는 시도로 “왜/어떻게 여성들은 억압받는가?”이다. 여성과 남성의 권력차를 결정하는 구성원리에 대한 연구가 있어 왔다. ‘가부장제’ 관련 이론들(Eisenstein, 1979; Walby, 1990), 또는 성/젠더 체계(Rubin, 1975) 내지 ‘젠더 체제’ (Connell, 1987) – 이렇게 부르는 것을 선호하는 이들이 있다 – 관련 이론들은 그 시작부터 페미니즘 이론의 중심에 있었다. (『젠더와 민족』, 21쪽)





2의 성에서 시몬 드 보부와르는 말한다.





가부장제의 승리는 우연도 아니고 폭력적 혁명의 결과도 아니었다. 인류의 태초부터 남성은 생물학적 특권 때문에 자기들을 지배적 주체로 확립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이런 특권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106)








농업 혁명, 사유재산의 시작과 함께 노예와 토지의 주인이 된 남자는 여자 또한 자신의 소유로 인식한다. 같이 사냥하며 함께 들판을 누비던 여자들은 이제 집 안에 갇혀 남자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남자의 생산 노동 앞에서 여자의 가내 노동은 그 의미가 퇴색되었다. (82) 아버지의 권리가 어머니의 권리를 대치하고, 영지는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상속되었다.



도구를 사용하면서부터 농업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증대되었고, 과학 기술의 발전을 통해 인류는 더 넓은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다. 자신과 다르게 생긴 객체도 인간으로 인정하게 되었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차이 보다 공통점에 조금 더 주목하게 되었다. 봉건적 가치관이 지배하던 시대에 왕이나 먹었을 법한 귀한 음식들을 보통 사람들도 일상적으로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왕이나 가지고 있었을 법한 정보를, 아니 그보다 훨씬 많은 정보들을 스마트한형태로 손 안에 쥘 수 있게 되었다.  1,000년전, 100년전 아니 30년 전의 삶이 아득하게 멀리 느껴질 만큼 인류의 삶은 이렇게 혁명적으로 변화되었지만, 인류가 처음 농사를 지었던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한 가지는 그대로이다



남자는 여자를 지배하고, 여자는 남자의 지배 아래 있다. 



이성애에 기반을 둔 가부장제 사회가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했고, 그 구별의 권력이 성차별을 가능케 했다. 그러므로 페미니즘은 근원적으로 그 구별(젠더)에 반대하지만, 그 구별이 만들어낸 효과(차별)로서 젠더가 작동하는 현실을 문제 삼는다. (『낯선 시선』,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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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7-11 09: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대부분 대학 커리큘럼에 여성학은 교양과목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여성학=교양’이라는 편견을 만드는 원인으로 생각합니다. 여성학이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한 과목 또는 학문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남성 학부생들은 여성학을 공부해야 할 진짜 이유를 알지 못합니다. 여성학을 교양으로 생각하는 남성은 연애나 결혼을 위해 여성학을 배우려고 합니다. 이건 여성학을 잘못 이해하고 접근한 태도입니다.

단발머리 2017-07-12 15:47   좋아요 1 | URL
대학에서의 교육도 중요하지만,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의 양성평등 교육이 더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어떤 남성이 연애나 결혼을 위해 여성학을 배우려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남성이 있다면 기특하다고 생각해야 할지.... 잘 모르겠군요.

oren 2017-07-11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부장제, 장자상속권, 일부다처제 등은 인류의 오랜 불합리한 전통들이었죠. 노예제도처럼요. 최근에 치누아 아체베의 소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읽었는데, 주인공 오콩코가 ‘강한 남자 숭배 이데올로기‘에 광적으로 집착하다가 결국 파멸하고 마는 이야기가 다시 생각납니다. 그 소설을 읽는 동안 예전에 딱 한 번 가봤던 아프리카 이집트에서 직접 봤던 ‘이상한 풍경들‘도 계속 떠오르고요. 거기선 아직도 ‘여러 부인들을 두는 일‘을 남성들의 ‘능력 문제‘로 여기는 듯합니다. 여성을 마치 ‘재산‘처럼 ‘지배‘하고 ‘소유‘하는 걸 너무나 당연시하고요. 아프리카 땅이 ‘노예무역의 발상지‘라는 사실만 해도 인류 역사의 비극인데 말이지요. 예전에 말씀드렸던 스티븐 핑커의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보면 ‘진화심리학‘ 측면에서 ‘여성의 위치‘가 어떤 변천을 겪어왔는지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습니다. 그 책에서 읽었던 흥미로운 몇 대목을 덧붙여 봅니다.

* * *

결혼이란 관습 719

호모사피엔스는 어떤 종류의 동물인가? 우선 포유동물이므로 여자의 최소 투자분이 남자의 최소 투자보다 훨씬 많다. 여자는 아홉 달의 임신과 (자연 환경에서)2∼4년의 수유를 투자한다. 남자는 몇 분의 섹스와 소량의 정액을 투자한다. 남자는 여자보다 약 1.15배 크다. 이것은 남자들이 진화 과정에서 몇 명의 남자는 몇 명의 여자와 짝을 짓고 몇 명의 남자는 아무와도 짝을 짓지 못하는 식으로 경쟁을 벌였다는 것을 말해 준다. 단독생활을 하고, 일부일처제이고, 비교적 섹스가 적은 긴팔원숭이와는 달리 인간은 다수의 남녀가 큰 집단을 이루고 살면서 끊임없이 짝짓기를 할 기회를 만난다. 남자는 신체 대비 고환의 크기가 침팬지보다는 작지만 고릴라와 긴팔원숭이보다는 크다. 그것은 조상의 여성들이 터무니없이 난잡하진 않았지만 항상 일부일처로 지낸 것도 아니었음을 의미한다. 아이들은 무력하게 태어나고 상당한 기간 동안 어른에게 의존하는데, 그것은 인간의 생활방식에 지식과 기술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부모 투자를 필요로 하는데, 남자들은 사냥으로부터 고기를 얻고 그 밖의 자원들을 얻기 때문에 투자 여력을 갖고 있다. 남자들은 신체 구조가 허락하는 최소 투자분을 훨씬 초과하여 자식들을 먹이고, 보호하고, 가르친다. 이 때문에 남자에겐 배우자의 서방질이 관심사가 되고 여자에겐 남자의 투자 의지와 능력이 관심사가 된다. 남자와 여자는 침팬지들처럼 큰 집단을 이루고 살지만 새들처럼 남자도 자식에게 투자를 하기 때문에, 인간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번식을 위한 동맹을 맺고 제3자의 성적 접근과 투자를 제한하는 결혼이란 관습을 발전시켰다.

* * *

서열과 지위 761

인간에겐 엄격한 서열이 없지만, 모든 사회에서 사람들은 특히 남자들 사이에 일종의 서열 관계가 있음을 인정한다. 서열이 높은 사람은 의견의 우선권이 있고, 공동의 결정에서 발언권이 크고, 대개 공동의 자원을 더 많이 분배받고, 아내와 애인을 더 많이 거느리고, 다른 남자들의 아내와 더 많이 성관계를 맺는다. 남자들은 지위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동물학 교과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방법들과 인간에게 고유한 방법들을 이용해 지위를 획득한다. 싸움을 잘하는 남자들은 더 높은 지위를 얻고, 외모가 매력적인 남자들도 높은 서열을 얻는다. 자칭 이성적 동물이라는 종 사이에서도 큰 키는 의외로 강력하다. 대부분의 식량수집사회에서 ‘지도자‘라는 단어는 ‘큰 사람‘을 의미하고, 실제로 지도자들은 대개 큰 사람들이다. 미국에서 키가 큰 사람들은 고용이 더 잘 되고, 승진이 더 잘 되고, 더 많이 벌고(1인치당 연봉600달러), 대통령으로 더 많이 선출된다. 1904년부터 1996년 사이의 대통령 선거에서 키가 큰 후보가 스물네 번 중 스무 번이나 당선되었다. 신문의 개인 광고란에서 여자들은 키 큰 남자를 원한다. 수컷들이 경쟁을 하는 다른 종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남성이 여성보다 크고, 낮은 목소리나 턱수염처럼 실제보다 더 커보이게 만드는 방식들을 진화시켰다.(턱수염은 머리를 더 커 보이게 만든다. 턱수염은 사자와 원숭이에게도 독립적으로 진화했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는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눈썹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세계 어디서나 남자들은 머리(모자, 투구, 머리 장식, 왕관)와 어깨(어깨심, 보드, 견장, 깃털 장식)의 크기를 과장하고, 몇몇 사회에서는 성기의 크기를 과장하기도 한다.(불룩한 바지 앞덮개나 성기 씌우개를 착용하는데, 어떤 씌우개는 길이가 1야드나 된다.)

단발머리 2017-07-12 15:57   좋아요 2 | URL
제가 최근에 읽은 진화심리학 책에서는... 남녀 공히 인간은 난잡한 성생활을 즐겨왔다고 주장하더군요.
인간 남자는 생물학적 차이로 여자를 규정하고, ‘구애하는 남자, 선택하는 여자‘의 프레임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읽었구요. 과학적,이라는 말이 얼마나 자주, 얼마나 교묘하게 남자의 입장을 대변해 주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장자상속권, 일부다처제, 노예제도 등 인류의 오랜 불합리한 전통들은 모두 사라지거나 약화되고 있죠.
하지만 가장의 주인이 남자이고, 남자에게 유리한 대로 해석되고 설명되는 ‘가부장제적 문화‘는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여자가 세상의 반이나 차지하고 있는데도 말이죠.

2017-07-11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12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책의 부제는 창조, 진화, 지적설계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들이며, 과학과 기독교의 핵심 이슈들에 대해 다양한 과학적 견해와 신학적 견해들을 살펴본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자신을 인간에게 계시할 때,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고 본다. 자연을 통한 자연계시와 성경을 통한 특별계시가 그것이다. 자연계시는 세계관, 정치에 영향을 받는 과학을 통한 인간의 해석을 뜻하며, 특별계시는 신학과 교회의 전통에 영향을 받는 성경을 통한 인간의 해석을 뜻한다. 자연과 성경 그 자체는 갈등이 없지만, 과학과 성경 해석, 세계관과 신학 사이에서는 잠재적 갈등이 있다고 본다. (83)


창세기 1장에 대한 일치론적 해석과 비일치론적 관점에 대한 논점이 아주 잘 정리되어 있고, 현재까지 밝혀진 과학 지식을 토대로 젊은 지구론을 반박한다. 대륙의 이동, 빙하층, 방사성연대측정 등을 통해 오랜 지구론이 현대의 과학 지식과 일치함을 주장한다. 100억광년 너머에 있는 우주의 존재, 달과 행성들, 소행성 공전 궤도, 운석의 방사성연대측정, 성단에 대한 연구를 통해 우주의 오랜 역사를 증명한다.

 


제일 관심이 가는 부분은 우주와 생명의 시작, ‘기원에 대한 것이다.

 


1940년대와 1950년대의 몇몇 천문학자들은 무신론적 세계관 때문에 정상우주론을 빅뱅 모델보다 선호했다. 그들은 우주에 시작점이 있었다는 생각에 반감을 드러내면서 빅뱅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했다. 반면에 당시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빅뱅 모델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선구자 중 한 명이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ltre)라는 벨기에 성직자로, 그는 우주 팽창을 설명하는 최초의 수학 모델을 발전시켰다. 그러다가 1965년에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되고 난 다음부터는 세계관과 상관없이 모든 천문학자가 빅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87)

 

 

우주의 시작, 빅뱅에 관해서라면, 이 책, 이 문단이 떠오른다.




물리학자들은 우주가 무한에 가까운 고밀도에, 크기도 없는 순수한 에너지로 시작했다는 데 동의한다. ‘특이점이라 부르는 이 상황에서는 물리학 법칙들이 무너진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과학자들도 대폭발이 일어나던 그 첫 순간, 즉 처음 10-43초 동안 일어난 일을 해석하지 못한다(10-43초는 1초의 100만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0만 분의 1 10분의 1초다.) (<신의 언어>, 71)

 







『김상욱의 과학공부』 의 김상욱도 똑같이 말한다.

 




빅뱅이론을 이야기하면 반드시 나오는 질문. 첫째,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나요? 물론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공간이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시간조차도 없었다는 말이다. 솔직히 나도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아마 대부분의 물리학자들도 비슷할 거다. (<김상욱의 과학공부>, 35)

 

 






이렇게 만들어진 우주에, 태양계에,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것 역시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호킹 박사는 말했다.

 




우주가 왜 꼭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어야 했는지, 우리 같은 인간을 탄생시키려는 신의 의도적인 행위로밖에는 달리 그 이유를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신의 언어>, 80)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에서는 이렇게 표현한다.  



우주는 몇 가지 기본적인 상수들을 통해 우주의 운명이 어떻게 바뀔지 결정된다. 가장 중요한 상수들은 6개를 꼽아볼 수 있다. 전기력과 중력의 비율이라든가, 우주의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들의 결합력과 그 중력의 비율, 우주 안에 들어 있는 총 질량, 우주 상수 등 6개가 주요 논의의 대상이다. 이 상수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어떤 특정한 값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 6가지의 상수 값들이 초기 우주에 아주 조금, 가령 0.00000001%만 변하면 우주의 역사는 확연하게 바뀌어버려 지금과는 매우 다른 우주가 되었을 것이다.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327)

 



 



현재까지의 과학 지식, 인간이 알아낸 정보와 지식만으로는 이 세계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지 못 한다. 우주의 변두리에 속하는 태양계 속, 지구에 생명체가 살 수 있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못 한다. 더 알 수 없는 것은, 왜 우주가 시작되었는가의 의문이다. 왜 우주는, 이런 방식으로, 이런 형태로, ‘시작되었는가.

 

 

진화에 대한 설명 역시 구체적으로 이어지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 지식과 교회에서 반복적으로 들었던 창조론 사이의 차이와 간극을 발견했던 사람이라면, 그 문제로 고민했던 사람이라면, 의문의 많은 부분이 해소될 것이다. 물론, 소진화의 범위를 넘어서 종의 멸종과 새로운 종의 등장, 공통조상과 관련된 부분은 보통의 기독교인이라면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다.

 


 

진화론과 진화주의에 대한 비교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대부분의 과학자가 생각하는 진화론(theory of evolution), 무작위적 돌연변이와 차별적 번식성공도를 통해 수세기 동안 종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소진화)과 수백만 년을 주기로 이뤄지는 큰 변화를 모두 아우르는 용어다. (203) 이에 반해 진화주의(evolutionism)는 과학이 아니라 일련의 세계관적 신념을 가리킨다. 진화론을 이용해 무신론적 신념을 뒷받침하려는 진화주의는 이렇게 주장한다.



l  세계를 돌보는 창조자는 없다

l  인간은 신의 인도나 다스림 없이 순수하게 자연적 과정만을 통해 발생했다.

l  인간 존재에 고상한 목적 같은 것은 없다.

l  인간의 도덕성은 유전과 환경의 결과물일 뿐이므로, 절대적인 도덕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주장들은 과학이 아니라, 철학적이며 종교적인 진술이다. (204) 진화론은 과학적 연구를 통해 입증될 수 있지만, 진화주의는 신념의 문제다. 의미와 목적의 부재. 처음부터 끝까지,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오직 우연에 기대는 진화주의환원주의적 무신론에 다름 아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다. 인간이 유인원과 공통조상을 가졌다는 화석학적, 유전학적, 해부학적 증거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공통조상이나 진화론에 동의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모순되지 않는다. 인간이 유인원이나 다른 동물들과 같은 공통조상을 가진다 할지라도, 어떤 시점에서부터 인간의 계보는 다른 동물들의 계보에서 떨어져 나왔다. (304) 인간은 다른 동물과 특별히 다르게 만들어지지 않았을지 몰라도, 인간이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는 방식은 (우리가 아는 한) 이 태양계 안에서는 특별함 그 자체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우주 공간 속에서 인간은 먼지처럼 보잘 것 없고 하찮은 존재지만,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크고 위대하다. 하나님의 눈에 인간은 특별하고 중요한 존재이다. (305)

 

 

과학은 이제 절대자의 자리에 앉았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실험으로 확인된 정보와 지식에 대해서는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이를 의심하거나 거부하는 사람은 무지몽매한 사람으로 취급받기 일쑤다. 과학은 그 영역이 점점 더 넓어질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의심 없이 신봉될 것이다. 하지만, 과학이 답할 수 없는 수많은 의문에 대해서는 질문이 계속될 것이다.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우주는 왜 이런 식으로 시작되었는가.

지구는 어떻게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완벽한 환경으로 조성되었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왜 태어났는가.

죽음 이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나는 누구인가.

도대체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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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다녀와서 바둑학원 가기 전에 30분 정도의 시간이 있는데, 아롱이는 그 시간에 꼭 게임을 하고 싶어한다. 보통 <클래시로얄>과 함께하는데 부수고 때리고 깨뜨리는 소리가 너무 커서 소리를 좀 줄이라고 했다. 설마 들릴 소냐. 두번째로 좋아하는 간식 비요뜨 초코링을 밀어 두고 게임 삼매경이다.


내가 읽고 있던 부분은 바로 여기다.



임신하면 처음 몇 달 동안은 흔히 식욕부진과 구토가 따른다. 이런 일은 다른 어떤 가축의 암컷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현상은 유기체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종에 대한 유기체의 반항을 나타낸다. 유기체는 인, 칼슘, 철분이 결핍되는데, 결핍된 철분은 나중에 보충하기도 곤란하다. 과도한 신진대사 활동은 내분비계통을 자극하고, 자율신경계통은 흥분상태가 된다. 혈액은 그 비중이 감소되어 빈혈증을 초래하고, ‘단식하거나 굶주린 사람, 연속 채혈을 한 사람이나 회복기 환자 등의 혈액’과 비슷해진다. … 출산 그 자체가 고통이요 위험이다. 육체가 종과 개체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다는 점이 이런 위기에서 가장 명백히 드러난다. (57쪽)




새삼 내가 이 모든 과정들을, 시간들을, 고통들을 잘 견뎠다는 게 놀랍다. 나는 입덧도 심하지 않았고, 잘 돌아다녔고, (하나둘 영차!하고는) 잘 낳았고, 15개월을 모유 수유까지 했는데. 내 주위의 엄마들은 모두 다 그렇게 잘 했고, 잘 해냈고, 다들 그렇게 아이를 낳는 거라 생각했는데. 무미건조하게 사실과 현상만을 나열한 이 문단을 읽는데, 문득 내가 이 시간들을 이미 겪었다는 것이, 이 일들이 내 몸을 통과했다는 것이, 다시금 놀랍고 조금, 아주 조금 대견하기도 하다.




내 앞에 앉은 아이가 아롱이라서 그런 것 같다. 

언젠가, 나는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특권이며, 내가 너희들을 낳았다는 걸 난, 정말 기쁘게,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두 아이에게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지만.

그리고 그 생각에는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이 문단을 읽고 있는 내 앞에, 만약 딸롱이가 앉아 있다면, 난... 

이어갈 수 없는 그 모든 말들을 말줄임표 속으로 집어넣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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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6-30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조금이 아니라 아주 많이 대견해하셔도 돼요, 단발머리님.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단발머리 2017-06-30 19:00   좋아요 1 | URL
네, 그럼 조금만 더 대견하게 여길께요. ^^

다락방님께서 <멀고도 가까운>에서 인용해주셨던 그 문단이 생각났어요. 이 부분이요~~~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들은 아주 희미하고, 예측할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가까스로 탄생한다. 우리가 사랑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은 좀처럼 만나지지 않고, 숲에서 길을 찾는 것은 어렵고, 하루하루의 대혼란에서 살아남는 것도 힘들다. 근원으로 올라가면 두 사람이, 본인들이 바랐든 바라지 않았든 우연히 함께 있었다. 둘은 서로의 유사함에 혹은 차이에 끌린다. 각자의 두려움과 한계를 오랜 기간 극복하고, 두 세포가 하나로 합쳐지는 바로 그때 우리는 생겨난다. 수백 만 개의 정자가 하나의 난자 안에서 헤엄치고, 어찌어찌해서 여정을 완수한 단 하나의 정자가 역시 단 하나의 어머니 세포와 만나 우리를 낳는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가냘픈 그 짝짓기. 다른 사람들도 모두 어머니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그 혼란을 겪은 후 지상에 나오게 된다. 그런 일을 겪지 않고 세상에 나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뿐만 아니라 너무나 연약한 유년의 몇 해 동안, 단 한순간이라도 어머니가 한눈을 팔았더라면 당신은 촛불처럼 훅 꺼져 버렸거나, 욕조에서 익사했거나, 바닥에 떨어진 단추를 삼키다 목이 막혀 죽었을 것이다. (106쪽)


그런 일을 겪지 않고 세상에 나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에서 저는 정말 철퍼덕 했어요. 아빠도 고생하셨겠지만, 엄마가 무던히도 생각나는 구절이예요.

저는.... 효녀가 될까봐요. 앞으로....

다락방 2017-06-30 19:01   좋아요 1 | URL
아아 이 부분 정말 너무나 좋죠! 저도 읽다가 너무 좋았던 부분 ㅜㅜ 그런 일을 겪지 않고 세상에 나오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아아 정말 좋습니다 ㅜㅜ

단발머리 2017-06-30 19:05   좋아요 1 | URL
그런 일을 겪지 않고 세상에 나오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고,
우리는 모두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나은 사람도,
더 못한 사람도
없다는 생각이요. ㅎㅎㅎㅎㅎ

cyrus 2017-06-30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임산부들이 겪게 되는 힘든 일이 많지만, 그 중에 임산부 입장에서 가장 힘든 일이 먹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뱃속에 있는 태아의 건강을 위해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먹고 싶어도 참아내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요.

단발머리 2017-06-30 19:04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먹는 일이 힘들지요. 그런데... 정말 힘든 건요. 먹고 싶은걸 참는 게 아니라, 먹고 싶은데, 배고픈데...
헛구역질이 나서 먹을 수 없는 거예요. 먹고 싶은데 못 먹는 거요.

태아의 건강을 위해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이 있다고는 하던데, 그것도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 같아요.
태아의 건강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뭐랄까. 그것도 문화의 영향이 있겠지만, 예쁜 아기를 낳아야한다는 강박이
임산부의 식생활까지 제재하는 느낌이요.
요즘에는 가리지 않고 그냥 임산부가 먹고 싶은 걸 먹는것 같더라구요.^^

비로그인 2017-06-30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은 정말 감동적으로 대단한 일을 해내신 거예요 모유수유만 해도 얼마나 힘든데요 ㅠㅠ
저도 두아이 출산해 돌보면서 여러번 유체이탈... 지금도 내영혼은 어딨는지.....
(저희집소년은 아레나10이라며 언제 같이 한판 뜨자는 ㅋㅋㅋㅋㅋㅋㅋ)
바둑학원이라니 멋져요~~♥

단발머리 2017-07-01 15:03   좋아요 0 | URL
아른님~~ 참말로 감사합니다 😊
저는 낳는 수고는 그럭저럭 잘 해냈는데 아직도 먹이는게 넘 힘들어요 ㅠㅠ
아른님 건강밥상이 너무 부럽고...
우리는 같은 물품을 사용하니 언젠가는 나도... 하는 생각에 작은 희망의 끈을 꼭 잡고 있습니다. 그나저나 저희집 아롱이가 아른님댁소년의 점수가 어떻게 되는지... 간곡히 물어보고 있어요. ㅎㅎㅎㅎㅎㅎㅎㅎ

Jeanne_Hebuterne 2017-07-01 0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하는 책상, 멋져요!

단발머리 2017-07-01 15:05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원래 용도라면.. 저희집 식탁이예요~~
하지만 제가 책을 펴면 금방 공부하는 책상이 됩니다 ㅎㅎㅎ

2017-07-03 22: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5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유부만두 2017-07-04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잡고 공부하시는 겁니까?!!!! 시험도 보시구요?!
요점정리 노트 공유좀 부탁하구요~~~ ㅎㅎㅎㅎ

단발머리 2017-07-06 15:19   좋아요 0 | URL
각은 잡았는데 저기 저 페이지에서 한 쪽도 못 나갔다는... 슬픈 소식입니다 ㅠㅠ 혼자 하는 거라 시험은 없구요 (야호!)
요점 정리는 해볼까 하고 있는데...
어떻게~~~ 열심히 해볼까요?! ㅋㅋㅋ
 
에이미와 이저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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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다는 건 중요한 일일까. 모든 사람에게, 항상 좋은 일일까. 읽는다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 아니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많은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이, 다양한 사실들을 외운다는 것이, 그 사람이 훌륭한 사람임을 보장해 주지 않는 것처럼, 그 사람이 읽는 무엇인가가 그 사람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읽는 것이 곧 그 사람이다라는 표현 역시 마음에 가까이 와닿는다. 어떤 사람이 읽고 있는 무엇때문에 어떤 사람은 우아해 보이고, 대단해 보인다. 우리가 읽는 무언가는 가끔 곧 우리 자신이 되기도 한다.




에이미가 불쑥, 젖은 얼굴로 엄마를 쳐다보며 소리질렀다. “세상이 어떤 곳인지 모르는 사람은 엄마죠! 엄마는 어디에 가지도 않고 다른 사람과 말도 하지 않잖아요! 책도 읽지 않고……” 여기서 에이미는 잠시 물러서는 듯했지만, 스스로 격려하듯 손을 옆으로 저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바보 같은 <리더스 다이제스트>만 빼면요.” (290)

 

 

『햄릿』. 이저벨은 카펫 위로 걸어가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햄릿』에 대해서는 당연히 들어보았다. 어머니와 미쳐버린 여자친구가 등장했다. 어쩌면 그녀가 뭔가 다른 작품을 착각한 건지도 몰랐다. … 하지만 턱에 듬성듬성 금발 수염이 난 젊은 점원이 계산대에서 삑삑 소리를 내며 심드렁하게 책값을 입력하자 그녀는 기뻤다. … 오후 내내 그녀는 자기도 유식한 사람이 된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따. 벨트코 서플라이어스 회사에 보낼 편지를 타자하면서 이저벨은 누군가에게 그걸 보니 『햄릿』의 한 장면이 떠오르네요하고 가볍게 말하는 순간을 그려보았다. (150)

 

 

그리고 그때, 빈사 상태의 자주달개비 아래, 책꽂이에 꽂힌 책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플라톤 전집』, 그녀가 제목을 읽었고 그 옆으로 『존재와 무』라는 하얀 책에는 커피 얼룩이 동그랗게 묻어 있었다. 고개를 돌리기 직전에 그녀는 『예이츠 시 선집』을 보았다. (302)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는 자신에게서 벗어나고자 『햄릿』을 사고 읽는 이 사람은, 『플라톤 전집』을 읽는 사람 앞에서, 자신이 분노를 쏟아내야 마땅한 그 사람 앞에서 주눅들고 만다. 자신은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읽는데, 그 사람은 『플라톤 전집』을, 『존재와 무』를 읽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햄릿』을 산 후에 흐뭇해하는 이저벨과 『햄릿』을 읽기 힘들어하는 이저벨.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미워하고, 『플라톤 전집』과 『존재와 무』 앞에서 당황하는 이저벨을 보면서 읽는다는 것’, 무언가를 읽는다는 것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했다.


 

이 소설 속의 사건과 기억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에이버리와 에마에 대해서, 수학 선생님 토머스 로버트슨에 대해서, 뚱뚱이 베브와 도티에 대해서, 스테이시와 그녀의 아기에 대해서, 폴 벨로스와 데비 케이 돈에 대해서, 제이크과 에벌린 커닝햄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 그리고 예이츠와 키츠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다.

 

 

이 소설은 내게 기쁨과 즐거움을 줬지만, 당혹감과 슬픔도 줬다. 이 책을 읽은 후, 난 엘리자베스 스타라우트를 좋아하게 됐지만, 이 소설을 읽는게 힘들었다. 어쩌면 나는 제대로 읽은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이틀 동안 이저벨이 되어 혼자 아이를 키우는 젊은 싱글맘의 슬픔과 분노에 함께 몸을 떨었으니. 어쩌면, 나는 제대로 읽은 것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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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7-06-30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기 전에 꼭‘ 읽어봐야 할 것만 같은 책들을 마주치면 괜히 움찔할 수밖에 없는 게 ‘책 읽는 사람들의 숙명‘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영화 <버킷 리스트>에서 누가 그러더군요. ˝단테의 신곡은 읽어 봤냐?˝고요. 그냥 한번 툭 던지는 농담 같은 말에도 괜히 움찔했던 순간이었죠. 그 대사가 상식이 풍부한 늙은 자동차 정비공(모건 프리먼役)의 말인지, 재벌 사업가(잭 니콜슨役)의 말인지 어느새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직도 ‘단테의 신곡‘은 오래도록 기억에 뚜렷이 남아 있으니, 이런 게 ‘명저의 압박‘인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단발머리 2017-06-30 12:45   좋아요 0 | URL
‘책 읽는 사람들의 숙명‘이라는 말씀에 저도 동감합니다. 아무도 내주지 않은 숙제인데도, 어쩌면 마음 속에 그걸 ‘숙제‘로 간직하고 사니까요. 근래에는 그럴 필요 없다는 이야기, 그러니까 필독 도서에 집착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리지만....
단테의 신곡,이라면 압박받을 수 있죠.
압박받고 또 가끔은 압박을 즐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ㅎㅎㅎ

수이 2017-06-30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의 명성은 익히 들어보았어요. 하지만 아직은. 헌데 플라톤 읽고있는데 뭔가 찔리는 이 기분은 뭐지요;; 읽는 그것이 그를 대표한다는 단발머리님의 말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 있지만 저를 보아도 그렇고 주변인들을 보아도 그렇고 읽는다는 일이 그렇게 대단하게 느껴지지는 않아요. 요즘 읽는 작업에 대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보는데 읽기는 잘 읽지만 그것을 정리하고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소개해야할지 자주 머뭇거리게 되니 입은 더 꾸욱 닫혀지고_ 이래저래 생각이 많습니다. 그냥 나 혼자만 읽고말면 되는거지 뭐_ 싶기도 하고. 말이 길었습니다. ^^;;

단발머리 2017-06-30 13:03   좋아요 0 | URL
저역시 책 읽는게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자주 들어요.
어떤 사람은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드라마를, 어떤 사람은 만화를, 어떤 사람은 그냥, 책을 좋아할 뿐이라는 생각이요. 어차피 좋아서 읽고, 또 그냥 읽고.... 혼자 읽고 하는 거니까요. ㅎㅎㅎㅎㅎㅎㅎㅎ

그래도 이런 글을 읽을 때면, 제가 좋아하는 그 일이 ‘읽기‘라는 사실이 웬지..... 다행이라 생각되기는 합니다.


반복합니다. 책을 읽고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은 그런 정도의 일입니다. 자신의 무의식을 쥐어뜯는 일입니다. 자신의 꿈도 마음도 신체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일체를, 지금 여기에 있는 하얗게 빛나는 종이에 비치는 글자의 검은 줄에 내던지는 일입니다. (87쪽)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

다락방 2017-06-30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읽고싶은 책이고, 그래서 제 방 책장에 꽂혀있는 책이고, 얼른 읽어야지 하는 책인데 역시 또!! 단발머리님이 저보다 먼저 읽으셨네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책을 읽고 그 책에 대해 이야기해주는 걸 워낙 좋아하긴 하지만, 단발머리님의 페이퍼나 리뷰를 읽는 일은 정말이지 큰 기쁨입니다. 단발머리님은 지금처럼 계속, 멈추지말고 읽고 써주시길 바랍니다. 진심으로요. 그리고 저도 이 책을 읽고 단발머리님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아 좋아 ♡

단발머리 2017-06-30 13:02   좋아요 1 | URL
저는 다락방님의 <올리브 키터리지> 페이퍼를 읽고, 유부만두님 댓글을 통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읽어야할 작가‘로 여기고는 ㅎㅎㅎㅎㅎ 보통은 <올리브 키터리지>를 먼저 읽고 데뷔작인 이 책을 찾아 읽는다고 하더라구요.
전, 이 책을 먼저 읽었고, 이제 <올리브>로 가야하는데, 아.... 맘이 넘 아플것 같아서.... ㅠㅠ
(나는 다락방님의 리뷰를 샅샅이 읽었답니다.)

이 책이 참 좋아~~하면서 권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있어서, 더구나 다락방님이 그런 친구라서 저도 참 좋아요.
새로 올라온 다락방님 글을 읽는 일은 언제나 씐나는 일이예요.
저도 다락방님께 그런 작은 즐거움을 드릴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제 기쁨이죠.
우리 같이 읽고, 그리고 쓰고, 이야기 나눠요.
더 나눌 거 뭐, 없을까요?
어떻게......
사랑 나눌까요? 쪼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17-06-30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읽기 시작했는데 도중에
그만 뒀어요. 뭐 이유는 알 수가 없고요.

올리브 키터리지 읽고 나서 나름 활기차게
도전했는데, 미처 다 읽지 못했네요.
리뷰를 보니 아쉽네요.

단발머리 2017-06-30 18:35   좋아요 0 | URL
아... 그러시군요.

전 아직 <올리브 키터리지> 읽기 전인데,
읽고 싶은 마음 반, 걱정되는 마음 반입니다.
훅 파고드는 작가의 손길을 감당할 수 있을런지요. ㅠㅠ

유부만두 2017-06-30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뽀뽀해 주세요;;;; 근데 제가 요새 읽는중인 스트라우트의 최신작 anything is possible도 역시 아파요.... 전 에이미가 욕망대로 움직이는 아이라서 그나마 나았어요. 막 희생만 하거나 참기만 한게 아니고 어리지만 헉 할만큼 자신의 몸과 욕망(욕심?욕구?)를 알아가는 것 같아서...그런데 아픈 이야기를 헤비듯 다 써놓는 작가는 참...독하죠?

단발머리 2017-06-30 18:47   좋아요 0 | URL
유부만두님꼐서 anything is possible 읽고 계신 건 알고 있었는데.... 그것도 아픈가요? ㅠㅠㅠ

전 에이미와 이저벨이 처음 작품이니까요. 어떤 기대나 예상을 하지 않은, 정말 백지 상태로 읽으면서 따라갔는데,
섬세한 듯 하면서도 강렬한 부분들이 있어... 전 좀 당황했어요.
훌륭한 작가들은 다들 그렇게 독한가요~~~ 그런가요~~~~

참, 제 뽀뽀 여기요~~
유부만두님, 이쪽 보시고요~
쪼오옥!!!

AgalmA 2017-07-03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을 읽어도 이 사람은 이렇게 이해하고 저 사람은 저렇게 이해하는 걸 보며 저는 책 자체보다 이해하는 폭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많이 읽어도 유아독존식 사고방식이면 그 사람이 훌륭해 보이지 않더라는~

단발머리 2017-07-04 12:09   좋아요 0 | URL
네 그러게요~~~
이 책은 이야기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서 오히려 쓸 수가 없더라구요.
책을 많이 읽으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건지, 이해하는 폭이란 건 원래 타고나는 건지...
저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기는 해요^^
 
욥의 노래 민음사 세계시인선 리뉴얼판 3
김동훈 옮김 / 민음사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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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시인선 3, 『욥의 노래』는 구약성경 <욥기>의 다른 번역본이다. 구약성경에 속하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사랑의 노래>와 함께 시가서로 분류된다. ‘은 고대 족장 시대 에돔 사람으로 히브리 구전문학에서 구약 시대를 대표하는 선한 사람이자 시련과 인내의 대명사이다.<책날개> 의로운 사람 욥이 사탄의 시험에 의해 자식과 건강을 잃고, 그런 환경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며 후에는 그의 의로움이 인정받았다는 것이 주된 내용인데, 이것은 <욥기> 1장과 2장 그리고 42장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3장부터 41장까지는 무슨 내용일까.

 

 


2장 후반부, 욥을 위로하기 위해 멀리에서 찾아온 세 명의 친구 엘리바스(데만 사람), 빌닷(수아 사람), 소발(나아마 사람)은 비참한 욥의 모습을 보고 이레 밤낮 입을 떼지 못 한다. 욥의 비참함이 그토록 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4장부터 친구들의 고소가 시작된다. 엘리바스는 죄 없이 망하지 않으며, 정직한 자 망하는 법이 없다는 세간의 확률을 근거로, 욥이 죄 있는 자임을, 정직하지 않은 자임을 천명한다.(4)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하는 욥. 언제까지 그딴 식으로 말하냐고 고발하는 빌닷의 오만한 충고(8). 항변하는 욥. 그 분은 거짓된 사람들을 전부 다 아시니 거짓을 식별하신다는 소발의 조롱(11). 소리치는 욥.

 


 

기운도 쇠하고 살날들도 다 가니 나를 위한 것은 무덤뿐.

나를 조롱하는 자들 없었다면 좋을 텐데, 반감 속에 뜬 눈으로 밤 지새우네. (17)


 



 




위로하겠다고 찾아온 세 친구들은 욥을 책망한다. 지금의 이 고난은 너의 숨겨진 죄 때문이라며, 어서 그 죄를 자복하라고 말한다. 무죄하다는 너의 주장 그 자체가, 죄의 증거라고 말하는 친구들. 욥은 하늘에서도 땅에서도, 신에게서도 친구에게서도 위로 받지 못한다. 자신의 출생을 저주하는 욥을,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 가운데 있는 욥을 친구들은 고소한다. 위로하겠다고 먼 길을 찾아와서는 욥에게 손가락질한다. 너의 죄 때문에, 네가 악인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말한다.


 

 





38. 드디어 신이 나타난다. 내가 땅의 기초 놓았을 때 너 어디 있었는가? 로부터 시작해 계속해서 이어지는 신의 위엄과 능력에 대한 질문 앞에 욥은 항복한다. 그리고 말한다.

 

 



욥이 주께 대답했다.

당신은 전능하시고 당신 계획에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지한 말로 계획은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라고 하셨지요. 이처럼 제가 깨닫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말했습니다.

너는 들어라 내가 말하리니 묻는 말에 대답하라.”라고 하셨지요.

제가 당신에 대해 귀로 듣기만 했는데 이제는 눈으로도 보는군요.

할 수 없이(그러므로/그래서) 티끌과 재 위에서 나를 탓하며 조아립니다. (42 : 1-6)

 

 


강유원의 『문학 고전 강의』에서 강유원은 마지막에 제시된 욥의 말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하나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신에 의한 것이라는 것. 나는 나의 결백을 확신하지만 내가 고난을 겪는 것 또한 나의 의지대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65)

 

 

 

지난 두 주 동안은 마음이 불편했다. 불편함이 극단까지 치밀어 오른 정도는 아닌 모양이어서, 아무튼 나는 그 일에 대해 일기장에 하소연하지 않았다. 나는 여기에 이렇게 쓴다. 두 주간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3개월, 1년이 지난 후에 이 글을 읽고는 그 때, 내가 왜 마음이 불편했는지 기억하려 노력할 정도로 그 일을, 잊어버렸으면 좋겠다.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님에도 받는 오해, 확신에 찬 오해 앞에서, 나는 강하게 부인하지도, 소리 지르지도, 원망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냥 그렇게 멍하니 서서, 이런 오해의 발생과 발전에 내 잘못이 있는가 가만히 생각해 봤다. 엉켜버린 실타래 같은 오해를 풀어야 할 책임이 내게 있나 그렇지 않은가를 생각하는 시간이 힘들었다. 아무튼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나는 좀 괜찮아졌다.

 


그 시간을 나는 『욥의 노래』을 읽으면서 지나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 친구들의 조롱. 이 모든 것은 나의 작디 작은 사건사고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지만, 여하튼 나는 위로 받았다


그 시간들을 지나왔다.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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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7-06-27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아지셨다니 다행입니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
가끔은, 충분한 대화가 필요할 때가 있더라구요.
현명한 분이니 잘 해결하시리라 믿어요^^

단발머리 2017-06-30 11:40   좋아요 0 | URL
네... 이제 좀 괜찮아졌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아니지만.... 아니면 현명한 사람이 아니라서...
좀 더 현명한 사람이 되고 싶기는 합니다.
댓글 감사해요, 세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