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광주는 2002년의 광주다. 대한민국 정당 최초로 도입된 새천년민주당 국민 참여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광주에서 1위를 차지한다. 지지율 2%의 꼴찌 후보가 2위 이인제 후보와 100표 이상의 차이로 압도적으로 승리한다. 노무현 대안론이 노무현 대세론으로 바뀌었고, 광주의 선택으로 탄력을 받은 노무현 후보는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다. 그러니까, 내게 광주는 선택의 도시다. 광주의 위대한 선택 또는 위대한 광주의 선택. 광주 시민들은 아는 사람, 광주를 자기집 안방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표를 주지 않았다. 모든 후보가 자신이 김대중의 진정한 계승자라고 주장할 때, 광주 시민들은 알았다. 김대중 정신을 이어갈 진심과 열정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이 영남 사람이었다 해도 괴이치 않았다. 김대중 정신을 이어갈 만한 인생 역정을 확인했다. 노무현은 그렇게 광주의 선택을 받았다.

  

  

 

 

 

영화 <택시 운전사>에서 광주는 의 도시다. 아버지가, 오빠가, 삼촌이, 옆집 아저씨가, 엄마가, 누나가 그리고 고등학생들이 군인들의 집중 사격에 눈앞에서 쓰러져 가는 것을 지켜 봐야했다. 왜 이러는지 알지 못한 채, 자신들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군인들 앞에 픽픽 쓰러져갔다. 그 모습을 지켜봤다.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아니라, 광주 전체가 그랬다. 언론이 통제되고, 외부와 완전히 유리된 채, 광주 사람들은 그렇게 지옥을 살았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봐야 했던, 그래서 죽지 않기 위해 맞서 싸워야 했던 광주는 의 광주다.

 

눈물 콧물을 닦아내며 영화관을 나서는데 딸애가 묻는다. 정말 저런 걸 쏘느냐고. 최루탄을 사람을 향해 쏘느냐고. 그랬다고, 그 땐 그랬다고 말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거리에 나섰던 날에도 경찰은 최루탄을 쏘았다. 한참 뒤쪽에 있어서 사람을 향해 쏘았는지, 공중을 향해 쏘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날 밤에도, 서울 한복판에서 시위 중에 사람이 죽었다. 대학생이 죽었다. 그렇게 말을 잇는다. 그러게, 정말 세상 바꿨네. 박근혜 탄핵 시위 때는 최루탄이 없었잖아.

 

읽기도 전에 손사레를 쳤던 작품(택시 운전사)을 읽게 된 후, 작품이 가지는 감동과 뜨거움을 많은 분들에게 전하고 싶고, 공유하고 싶은 열망들이 (블랙리스트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했다,고 말하는 송강호씨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감독과 제작자, 출연자들 덕분에 광주의 기억이 오늘에 다시 살아났다.

 

 

  

  

 

 

저번 주말에는 다른 가족들과 잠실 야구장에 갔다. LG와 삼성의 경기였는데, 삼성 쪽에 앉아 (좋아하지 않는) LG를 응원했다. 그 날 경기에 이승엽이 나온다고 했다. 그 이승엽이, 내가 아는 이승엽이냐고 물었다. 맞다고, 그 이승엽이라고 했다. 초반에 점수를 내던 삼성은 뒷심이 부족했던지 엘지에게 역전패했다. 미안해하면서도 얼굴 한가득 웃음을 감추지 못하던 어떤 사람은 무표정해졌고, long face 삐져 있던 다른 사람은 금세 환해졌다.

 

바이, 바이를 하며 헤어지는데, 전에 만났을 때 이 모임을 마치고 광화문에 갔던 기억이 났다. 교회오빠들이자 동네오빠들이 다른 건 몰라도 니 신랑은 네가 잘 지켜라!’ 말하며 웃었던 게 어제 같은데, 벌써 지난 겨울의 일이다. 이 사건이 어떻게, 어느 방향으로 가게 될지 전혀 모르고 사람들은 모이고, 촛불을 들고, 행진을 했다. 그렇게 국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고, 청와대 앞에서 함성을 지르고는 평화롭게 집으로,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 다음 토요일에 다시 모일 때는, 또 다시 핫팩을 준비하고, 장갑을 챙겨서는 그렇게 모이고 또 모였다. 정권교체를 이뤘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있다.

  

  

 

 

 

타석에 선 이승엽을 보며

응원가를 부르는 시간이 좋았다.

그런 평범한 시간들이 좋았다.

다시 거리로 나가야한다면,

행진해야 한다면,

야구를 보고, 바이바이를 하고,

또 다시 거리로 나서겠지만,

하여튼 이승엽을 본 날에는,

웃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평범한 밤이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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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8-25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자리에 다 함께 하셨기 때문에 오늘의 평범한 밤을 만들고 좋을 수 있으셨던 거겠죠.
멋진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17-08-25 12:0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함께 했기에 이런 평범한 밤이 가능했네요.
평범하고 행복한, 어제보다 조금은 더 나은 밤들이 계속되기를 진심 바랍니다.

전 멋진 사람은 아닌데....syo님이 멋지다고 하시니, 그런 사람이 될까봐요^^

유부만두 2017-08-25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전 일요일에 갔다가 우천취소를 현장확인했어요!

단발머리 2017-08-25 13:5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그러셨군요. 그런 경우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오는 거겠죠?
우천취소면 그대로 환불되는 건가요?

토요일 경기에서는 비가 계속 오락가락해서요.
우산을 네번 펴고 네번 접었습니다. ^^

유부만두 2017-08-25 13:56   좋아요 0 | URL
네 경기표는 전액환불이고요 주차비는 반만 환불해주더군요. 그새 우비도 사고 감자튀김도 먹었구요.;;;;

단발머리 2017-08-25 14:00   좋아요 0 | URL
아~~ 글쿤요.
우비는 다음에 쓰면 되니까, 그 날의 주인공은 감자튀김이었군요.ㅎㅎㅎㅎㅎㅎ

저희도 그 날 감자튀김을 먹었습니다. 치킨도 먹었구요.
전에 보지 못했던 삼겹살 부추무침이 있더라구요.
다음에는 그걸 먹는 걸로 예약을 걸고 왔습니다요.^^

유부만두 2017-08-25 14:05   좋아요 0 | URL
그렇죠!!! 야구장엔 먹으러 가는거니까요! ..삼겹살부추..?! 이번 일요일에 저도 한 번 먹어보겠습니다. ...저희집은 엘지팀입니다. ^^;;

단발머리 2017-08-25 14:12   좋아요 1 | URL
아무렴요~~~ 야구장에서는 먹어줘야 합니다!!
삼겹살부추 매장 앞에서는 정말.....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완전 완전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서
파는 곳을 금방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맛나게 드시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희집에도............. 엘지팬이 1인 있습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곧 무언가를 하기 위한 도구를 얻는 것이라는 실용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외국어 공부도 얼마든지 그 자체가 목표인 공부가 될 수 있다.(103)

 

지금처럼 외국어가 실용적인 도구로만 인식되어 인문 교육에서 과거에 차지하던 자리에서 밀려나는 상황에서는 번역 또한 자기 자리를 찾기가 힘들다. 사실 인간의 일상생활의 핵심을 이룬다는 면에서 언어만큼 실용적인 도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어는 인간의 도구인 동시에 인간의 본질이다. 그렇기에 언어가 인문학의 핵심을 이루는 것이다. (107)

 

 

즉 두 개의 언어가 서로 맞닿는 순간 두 언어 사이의 본질적 유사성과 흥미로운 차이들이 드러나고, 그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인간들의 본질과 차이와 관계, 그리고 둘을 넘어선 새로운 제3의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얻게 된다. 번역은 이 과정을 관장하는 작업이고 그 자체로 인간적인 즐거움을 주는 작업이며, 그렇기에 인문학적 작업이라고 부를 수 있다. (107)

 

 

다음 주에 있을 딸롱이 교내 독서 토론회 관련 책인데, 대출해 와서는 내가 먼저 읽었다. 여러 명이 작업하는 공저의 경우에는 아무래도 저자의 이름을 보고 골라 읽게 된다. 정영목님의 <번역의 자리>를 제일 먼저 읽었고, 김고연주의 <청소년 성매매 66>과 김태권의 <영웅은 왜 모두 망했는가>를 읽었다

 

외국어를 배운다는 것, 그 자체가 목표인 공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동의하지만, 특별한 목적 없이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건 흔한 일이 아니라 자꾸 잊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학교 시험을 앞두고, 외국어 점수가 필요해서, 여행을 앞두고 외국어를 공부한다. 해야 할 필요 때문에 공부한다. 의무감이 배우는 즐거움을 압도할 경우, 외국어 공부는 고역이다. 그 자체가 목표인 공부라...

 

    

 

 

 

 

 

 

 

 

 

 

 

개학을 하루 앞두고 숙제에 여념이 없는 한 어린이는 예약 후 상호대차로 집 앞 도서관에 도착한 이 책을 보고는 숙제를 미뤄두고 허겁지겁 읽기 시작한다. 얼른 숙제해라 잔소리 해야 하고, 저녁도 준비해야하는데, 나도 모르게나도, 나도를 외친다억지로 하는 공부는 그 자체가 목표인 공부를 이길 수 없다. 하기 싫은 숙제는 읽고 싶었던 만화책을 이길 수 없다.

 

개학,이라 쓰고

만세,라고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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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8-22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영목님은 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번역가들 중 한 분이세요. 그분이 저렇게 말씀하셨다면 저한테는 진리입니다. 저 책 읽어봐야겠네요 ㅎㅎㅎ

(개학 축하드립니다)

단발머리 2017-08-22 21:48   좋아요 0 | URL
저는 정영목님을 필립 로스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죠. 저 역시 정영목님 좋아합니다.^^
다른 사람의 문장으로만 읽다가 그 분의 글을 읽게 되니, 새로운 느낌이더라구요.

축하 감사드립니다. 개학은 사랑입니다~~~

책읽는나무 2017-08-22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저보다 단발머리님의 방학식이 더 빠르군요.전 담주 월요일이 완전한 방학식이에요.^^
하지만,줄곧 숙제!!숙제!! 그러고 있네요.
울집 초딩들도 WHO 문재인 대통령책 읽고 싶어 하던데 도통 도서관에 비치되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며칠전에 도서관에서 읽지 않았냐고 물으니 그건 노무현전 대통령 책이었다고~~ㅋㅋ
문재인 대통령님이 대세로군요!!

단발머리 2017-08-25 12:49   좋아요 0 | URL
저는 이 시간.... 개학의 기쁨을 만땅 누리고 있습니다.
숙제는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완성도는 좀 떨어져도 일단 개수는 채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문재인 대통령님 책은 인기 폭발입니다.
저는 다른 도서관책을 예약하고 기다리다 상호대차로 받아서... 기쁘게 읽었습니다.
 

 

 

  

본래 언어는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이데올로기지만, 최근 양성평등이라는 말처럼 반대 진영에 의해 완벽히 전유된 경우는 드물다. 그 효과도 엄청났다. 지난 30여 년간의 여성 운동의 경험과 역사는 재검토가 불가피해졌고, 많은 여성 운동 단체들이 전망을 모색하느라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여성주의는 성차별이 있는 현실을 다시 증명해야 할 처지가 되었다. (8)  

 

 

 

 

 

마지막 문장은 우리의 현실이다. 왁싱샵 살인 사건이 그 증거이고, 몰래 카메라 역시 그렇다.

 

강남 왁싱샵에서 혼자 일하던 여성 업주, 여성 사장은 왁싱 시술 후에 미리 흉기를 준비해온 남성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했다. 가해자가 범행 전 봤다는 인터넷 방송에서 BJ는 해당 왁싱샵을 여성 혼자 있는 외진 곳이라 강조한다. "왁싱 도중 섰다"는 자막을 비롯해 피해자를 철저히 성적 대상으로 봤다. 가해자는 범행 당시 성폭행을 시도하기도 했다.

강남 왁싱샵 여주인 피살 피의자 30검거 <서울신문. 2017-07-06>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706500049&wlog_tag3=naver>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호프집 화장실, 여행지 숙소에서 촬영된 몰래 카메라 영상은 성인사이트에서 거래된다. 돈을 내고 여성의 몸을 본다. 성관계 몰카도 있다. 성관계 촬영 및 유포에 동의할 여성이 한 명이라도 있을까. 남성 얼굴만 모자이크 처리하고, 여성의 얼굴은 그대로 노출된다. 성관계 몰카 콘테스트에 자신의 여자친구, 아내와의 성관계 몰카 영상을 올린다. 회원들끼리 평가해 순위를 매기고 영상을 공유한다.

관음의 나라... 몰래 찍고보고관음에 중독된 사회 <한국일보. 2017-08-05>

<http://www.hankookilbo.com/v/0854834a7edb4cdcb875078de1f0f929>

 

사람들은, 남자들은 그렇게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여자라서 죽은 것은 아니라고. 여성 혐오 범죄는 아니라고. 여혐 살인은 아니라고. 서재에 올릴 수도 없는 글이라 링크만 건다.

 

[기자수첩] ‘여혐에 가린 왁싱샵 살인사건 <오피니언 2017-08-04>

<http://news.g-enews.com/view.php?ud=201708041712296812a8b5e7c93c_1&md=20170804171526_F>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다. 피의자는 여성을 혐오해서 살인을 저지른 게 아니고, 사건의 본질은 살인이라는 거다. 사건이 여혐으로 공론화 됐을 때 살인이라는 본질이 가려져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여험이 공론화 되었을 때가 두려운 건 아닌가.

 

몰카를 찍어 올린 가해자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장난이었다고 대답하며 죄책감이 아예 없다고 한다. “자신이 올린 몰카 촬영물에 대한 반응이 쏟아질 때 영웅이 된 듯한 느낌을 즐긴다고도 말한다. 몰카 촬영물은 그대로 돈이 된다. 포르노물보다 더 많은 수요자가 있다고 한다. 유통되는 것은 여성의 몸이다. 돈만 내면 동의 없이’ ‘몰래촬영한 여성의 몸을 볼 수 있다. 이 문제를 간단히 관음의 문제, ‘엿보기 심리라고 말할 수 있는가.

 

강남 왁싱샵의 여성 사장은 처음 본 남자에게 살해당했다. 여자였기 때문에. 여자 혼자 운영하는 1인 사업장이었기 때문에 범죄의 표적이 됐다.

 

성관계 몰카의 피해자 여성은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 사랑한다고 믿었던 남자에게 이용당했다. 여자였기 때문에. 남자를 사랑해 남자를 안고, 자신을 안아주는 남자와 함께했기 때문에 범죄의 대상이 됐다.

 

강남 왁싱샵 사건이 분노를 일으킨다면, 계속되는 몰카 관련 기사들은 절망을 안겨 준다. 생판 모르는 남자에게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남자를, 말 그대로 사랑을 나누는남자를 믿을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여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여자로 태어난, 그 사람들은 어떡해야 하는가.

 

 

여름은 독서의 계절인데, 내게는 독서의 계절이 아니었다. 6월부터 2의 성을 읽고 있는데, 많이 읽은 날은 50, 보통은 10쪽 내외로 읽어가고 있다. 너무 더울 때는 며칠 동안 읽기를 쉬기도 했다. 2의 성을 읽다 보면, 더 덥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니, 진짜 더 더웠다.

 

페미니즘은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도구 중의 하나이다. 페미니즘을 읽고, 새로운 안목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에 대해 배우는 이 시간들이 소중하다. 하지만, 그것에만 매이고 싶지는 않다. 페미니즘 관련 좋은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어 기쁘기는 한데, 워낙 읽는 속도가 느리다 보니 도대체 따라잡을 수가 없다. 다른 책들도 줄 서서 기다리고 있다. , 잊고 있었다.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나는 소설을, 좋아한다. 다른 책들에게 피난을 간다.

  

 

 

 

 

 

 

 

 

 

 

 

 

 

짧은 피서의 끝에 만난 책은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책을 들고는

펴서 읽는다.

멈출 수가 없다.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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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8-18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페미니즘 도서 계속 읽다보니 인류애도 사라지지만 스스로 되게 지치고 우울해지더라고요. 기운을 내기 위해서라도 제가 좋아하는 소설을 더 읽어야 할 것 같아요. 그렇게 기력을 회복하고나면 다시 페미니즘 도서로 가야할 것 같고요.

얼마전에 트윗에서 강남역이나 왁싱샵 살인사건, 여성혐오살인사건에 대해서 ‘남자들은 남자들도 죽이는데 그러면 남성혐오냐, 살인이지 여성혐오가 아니다‘ 이런 개소리(미안합니다, 제 서재도 아닌데)를 보았어요. 와 너무 빻아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생각하는 남자가 많다는 데 너무 절망적이더라고요. 사람들이 아무리 설명해줘도 몰라요....진짜 버릴 건 버리고 가야할 것 같아요. 고쳐쓸 수 없는 건 굳이 고치려 애쓰다가 기운 빠지는 것 같아요.


지치고 힘들고 우울하고 절망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서로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며 함께 나아갑시다. 저 역시도 과거에 진짜 혐오발언 많이 했었고요, 지금도 어느 순간 또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혹시 내가 그러고있진 않나, 자기를 돌아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생각해요. 페미니즘을 공부하면 바로 완벽한 어떤 인간이 되는 건 아니지만(물론 성차별주의자들은 페미니스트에게 완벽을 바라죠),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미 여기까지 온 이상 후퇴할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럴 수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저도 제2의 성 사서 조금씩 읽어볼까봐요.
단발머리님, 제가 여기서 힘차게 응원하고 있다는 거, 잊지 마세요!!

단발머리 2017-08-18 10:26   좋아요 0 | URL
네... 그래서 저도 메인 텍스트는 페미니즘으로 하되^^ 중간 중간 소설도 더 많이 읽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렇게 기력을 회복하지 않으면, 정말 인간사 오만정이 떨어지려고 해요.

여혐,에 대한 남자들의 예민하고 적극적 반대는, 여혐을 인정하는 순간, 예전부터 현재까지 우리 사회에 계속되고 있는 그 동안의 모든 차별과 억압이 수면위로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여혐 살인이 아니고 그냥 살인 사건이라고 말해야, 여혐을 근간으로 하는 대화, 문화, 관습등이 존속될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은 말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참....
그 말을 여자들만 알아듣는 이 상황이 뭐랄까...
분노 7.3, 절망 1.9의 배합으로... 나머지 소수점은 희망으로 남겨두고요 ㅠㅠ

서로에게 용기와 격려를 주며 함께 나아가요.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가요.
사랑한다는 말 뒤로 숨겨진 거짓과 속임을 고발하면서요.
손을 잡아요, 우리^^
다락방님 손은 아기 손 같아.
너무 부드러워.
자꾸 잡고 싶어~~~
손을 잡아요, 우리...

다락방 2017-08-18 10:29   좋아요 0 | URL
자, 여기요. (손을 내민다)

단발머리 2017-08-18 10:32   좋아요 0 | URL
헤헷^^ (내민 손을 잡는다)

syo 2017-08-18 17:54   좋아요 0 | URL
(두 사람이 잡은 손 위에 슬쩍 손을 올려본다. 두 사람이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손을 아랫방향으로 밀면서) 아자, 아자, 화이팅!

단발머리 2017-08-18 22:46   좋아요 0 | URL
(슬쩍 올라온 손을 덥석 잡으며)
아자, 아자, 화이팅!!

블랙겟타 2017-08-18 16: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남성으로 살아온 저는 공중화장실에 들어가 몰카가 설치되어 있는지 의식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밤길에는 누군가에게 ‘조심해서 다니거라‘라고 들은 적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아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누군가에겐 신경이 곤두서고 혹은 두려움에 휩싸인 경험을 한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나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몰지말라며 억울해 하기보다 남자는 이것부터 인정해야합니다.
이 상황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젠더 이슈에 남성쪽에서 오히려 반발이 과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7-08-22 11:30   좋아요 1 | URL
블랙겟타님 같은 남성분이 많지 않을거라 생각해요. 블랙겟타님 본인의 생각이 바른 생각이지만, 사실 희귀한 생각임을 아셔야할것 같아요. ‘보통의 남자‘에게는 급진적인 생각일 수 있을테니까요.
젠더 이슈에 대한 남성들의 반발이 과도하다는 블랙겟타님 지적에 동의합니다. 강한 피해의식을 넘어 여서혐오로까지 발전하고 있으니까요. ㅠㅠ

블랙겟타 2017-08-22 14:48   좋아요 1 | URL
저도 제가 가진 생각이 아직 주류가 아닌 소수라는 걸 인정하고 있어요. ㅜㅜ
제 스스로도 책이나 글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지 못 한채 나이를 먹어왔다면 ˝뭔 호들갑이야..˝ 이라고 치부해버렸을 수도 있었겠구나라는것을 느끼니깐요. 이런 과도한 반발을 보고 있으면 한편으론 건드려선 안되는 ‘역린‘이라도 건드린것인지.. 한꺼풀 벗겨지면 마치 숨겨져있던 나약함이 드러날 것 같은 공포가 오히려 더 폭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단발머리님도 어떤 현상을 접할땐 무척이나 지치기도 하고 답답함을 많이 느끼시겠지만.. 저도 늘 응원 하고 함께 할께요.

단발머리 2017-08-25 12:47   좋아요 1 | URL
현대 사회에서 남성 혹은 개인 소외의 원인은 여성들이 아니지요.
자본주의 혹은 국적없는 힘, 금융 자본의 힘들이 개인들을 억압하고 있구요.
남성들은 자신들의 몰락의 원인을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폭력적으로 비열하게 대응하는 거고요.

보내주신 응원 감사합니다.
남자로서, 소수로서, 페미니스트가 되어 버리신 블랙겟타님께도
제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아자, 아자, 화이팅!
 

 

 

남편이 소유한 재산이 막대할수록 아내는 그만큼 더 가혹하게 예속된다는 점을 주목하자. 언제나 여자의 예속이 가장 확연한 것은 부유계급에서이다. 오늘날에도 가부장제 가족형태가 존속하는 영역은 부유한 지주계급의 가정이다. 남자는 자기가 사회적·경제적으로 강력하다고 느낄수록 더 권위적인 가장 역할을 한다. 반대로 공통의 빈곤은 부부를 평등한 관계로 만든다. (134)

    

 

 

 

  

  

 

 

 

 

 

 

 

 

 

 

 

2의 성의 이 단락을 풀어낸 책이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이다. ‘뉴욕 0.1% 최상류층의 특이습성에 대한 인류학적 뒷담화’. 시간과 돈이 남아도는 고학력자 여성들이 피지크 57 Physique 57과 소울사이클SoulCycle을 광적으로 추종하면서, 직업 대신 완벽한 몸매 가꾸기에 집중하고, 원하는 명품백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아이들의 학업과 학교에 미친 듯이 집착하는 행태를 실제 그 지역에 거주하면서 기록한 보고서다. 저자는 가끔 연구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그녀들처럼 명품백을 얻기 위해 돈과 시간을 들이고, 그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한다.

 

파크 애비뉴 여성들의 특이한 행동의 원인을 저자 웬즈데이 마틴은 두 가지로 추정한다. 첫 번째 이유는 그 지역만의 불균형한 성비 문제다. 남성 한 명에 가임기 여성이 둘인 환경에서, 선호하는 이성과 맺어지기 위해, 또는 내가 선택한 이성이 떠나는 것을 막기 위해 외모에 집착하고, 육아에 올인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지적과 일치한다. 보부아르의 표현대로라면 남편의 막대한 재산에 대한 예속, 웬즈데이 마틴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성 호모 사피엔스의 의존성. 경제적 무능력 혹은 취약성이 여성의 예속을 가능케한다는 주장이다.

 

 

남편 돈으로 생활하는 것이 괜찮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인간과 비인간 영장류에 관한 비교연구에 따르면, 그런 방식으로는 밥벌이하는 자의 권위를 살 수 없다. 이를 잘 알거나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기에, 남편의 권위와 자신의 권위 사이에 있는 심연 같은 차이를 감지하는 것만으로도 생각 있는 여자들은 밤잠을 이루지 못할 수 있다.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 243)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을 곱씹는 게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가끔씩은 그런 생각이 불쑥 찾아 올 때가 있다. 이를 테면, 지금까지 내가 (사회적 고용관계에 의한)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저질체력인 나는 직장과 가정, 회사일과 가사노동 사이를 하염없이 헤매고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 예속되어 있지 않아 남편과 나의 권위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겠지만, 그 차이가 뭘 의미하는지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 너무 바쁠 것이기 때문에. 이중노동의 프레임 속에 갇혔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채, 더 유능한 커리어우먼, 더 부지런한 워킹맘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었을테다.

 

지금의 나는, 2의 성을 통해 경제적 취약성이 여성의 예속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를 통해 남편과 나의 권위 사이의 심연 같은 차이가 존재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돈을 벌어야할 텐데, 일을 찾아야 할텐데, 하고 생각한다. 2의 성,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를 읽고 생각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왼쪽도 오른쪽도, 가고 싶지 않은 길이다.

이쪽도 저쪽도, 피하고 싶은 선택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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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17-08-15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2의성 장바구니 담고 갑니다 :-)

단발머리 2017-08-16 20:58   좋아요 1 | URL
반가운 댓글입니다. 초딩님~~
사유의 깊이와 책두께에 비해 가격은 무척 착합니다. 저와 함께 <제2의 성>의 매력에 빠져보아요~~~^^
 

 

 

 

 

 

 

 

 

 

 

 

 

 

 

 

나는 그 부재하는 공통성을 찾아내야 한다. 위치 A와 위치 B와 나 사이를 삼각측량하듯 가늠해서. 부재하는 공통성은 과연 어떤 것일까? 그 자체로 형상을 지닐까, 아니면 형상은 존재하지 않을까? 만일 후자라면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형상화해야 할까? 

간단한 일 아니겠느냐, 누군가 말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크지는 않지만 또렷한 목소리였다. 모호한 구석이 없다. 높지도 낮지도 않다. 그리고 바로 귓전에서 들린 것 같았다. ...

 

뻔한 일 아니겠느냐, 또 누군가가 말했다. 목소리는 역시 바로 귓전에서 들렸다.

뻔한 일? 나는 나 자신을 향해 따져 물었다. 대체 뭐가 뻔한 일이란 말인가?

멘시키 씨에게는 있고 여기에는 없는 걸 찾아내면 되지 않는냐, 누군가 말했다. 변함없이 또렷한 목소리였다. 마치 무향실에서 녹음된 목소리처럼 잔향이 없다. 소리 하나하나가 명료하게 들린다. 그리고 관념을 구상화한 것처럼, 자연스러운 억양이 결여되어 있다. (310)

 

  

 

And so the prayer narrowed itself down to that simple entreaty Please tell me what to do repeated again and again. I don’t know how many times I begged. I only know that I begged like someone who was pleading for her life. And the crying went on forever. ...

    

Then I heard a voice. Please don’t be alarmed it was not an Old Testament Hollywood Charlton Heston voice, nor was it as voice telling me I must build a baseball field in my backyard. It was merely my own voice, speaking from within my own self. But this was my voice as I had never heard it before. This was my voice, but perfectly wise, calm and compassionate.

 

The voice said: Go back to bed, Liz.

I exhaled. (18p)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에게 들리는 소리는 외부의 소리다. 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다. 나와는 다른 존재의 소리다. 모호한 구석이 없는 또렷한 소리다.

 

Eat  Pray  Love에서 저자가 들은 소리는 자신의 목소리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차분하고 다정한 소리다.

 

두 경우 다 혼자 있을 때, 조용할 때, 다른 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때 들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무언가를 간절히 찾고 있을 때, 온 신경을 다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을 때, 들린다.

너의 목소리 혹은 나의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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