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 영화 - 배혜경의 농밀한 영화읽기 51
배혜경 지음 / 세종출판사(이길안)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책을 읽었다. 배혜경의 농밀한 영화읽기고마워 영화』는 총 51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보았던 영화보다 보지 않은 영화가 훨씬 많은 나는, 보았던 영화에 대한 꼭지부터 읽어 나간다. <우리도 사랑일까>는 좋아하는 벗이 선물해 주어 보게 된 영화인데, 알콩달콩한 사랑의 시작과 쓸쓸한 뒷모습이 한데 엉켜 내내 마음에 남았던 영화였다. 저자는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쓴다.

 



이 영화는 틈, 인생을 살면서 생기는 틈에 대한 이야기다. 사람 사이에 생기는 틈은 물론이다. 틈은 언제나 생기게 마련이다. 그건 허기 같은 것일 수 있는데 허기가 온다고 아무 것으로 배를 채우면 포만감은 잠시이고 환멸감만 더한다. … 틈이란 비우고 있을 수 있는 기회다. 그런 능력이 있을 때 틈은 관계를 더 견고하게 한다. 나와 세상, 타자와의 관계에 완충작용을 해주는 것도 틈이다. (94)

 


나는 마고가 느끼는 삶에 대한 열망, 사랑에 대한 희구가 이라는 단어로 모아질 수 있다는 걸 알지 못 했다. 그녀의 표정을 통해 어렴픗이 짐작만 했을 뿐, 알아채지 못 했다. 그랬다. 마고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을 견뎌내지 못 했다. 틈이 주는 시간, 틈이 주는 거리, 틈이 주는 허기를 극복하고자 혹은 이해하고자 그녀는 그렇게 사랑하고 또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틈이 주는 시간 속에 갇혀 있을 수 없어서. 틈이 주는 시간을 견딜 수 없어서.

 


용서라는 주제를 전면으로 다룬 <오늘>이라는 영화는 감독의 이름을 각인시킬 정도로 강렬하다. 다큐멘터리 PD 다혜는 자신의 행복과 미래를 파괴한 17살 가해자를 용서한다. 가해자를 위해서라고 생각했지만,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에 그녀는 차츰 자신의 용서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심하게 된다. 자신이 쉽게 용서해버린 17살 가해자가 또 한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쉽게 용서를 말하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용서를 강요하는 일이다.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죄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는, 우리 사회는, 우리 문화는,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한다. 이제 그만하라고, 그 정도 했으면 됐다고, 이미 지난 일이 아니냐고.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니, 이제 그만 용서하라고. <혐오 사회> 속 카롤린 엠케의 말이 겹쳐진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뜻이었다. 아우슈비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이제 그만 하라고 말한다. 마치 이 엄청난 일에 대한 단죄에도 요구르트처럼 유통기한이 있는 것처럼.

 


이 책을 읽으면서 제일 관심이 생긴 영화는 기네스 펠트로 주연의 <실비아>이다.  

 


새벽 서너 시, 실비아가 창작에 매달리는 시간이다. 이미 다른 여자에게로 간 남편, 홀로 두 아이를 키우며 미칠 듯이 시를 쓰며 고갈되어가고 있는 그녀가 안쓰러워 가끔 아이를 봐주며 휴식 시간을 주던 아파트 이웃노인이 있었다. … 허름한 복도 천장의 낡은 등을 올려다보며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꿈을 꾸는 그녀. 순간이었다! 생의 결정적인 순간! 똑똑똑… (290)

 


천재 시인 실비아, 계관 시인 테드 휴즈와의 결혼, 파경과 곤궁한 생활. 그리고 자살. 그녀의 이름을 구글에 넣어 검색한 후에는 테드 휴즈가 선택한 다른 여자가 애시어 웨빌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이미 9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자살을 시도했던 실비아 생애의 마지막 불행이 모두 테드 휴즈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실비아를 덜 사랑했다는 것이 그의 잘못일 수는 없다. 하지만,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였던 실비아가 자신의 자리라고 선택한 가정, 사랑과 행복의 자리라고 믿었던 그 자리를 테드 휴즈는 하찮게 여겨 떠나버렸고, 실비아는 가난과 추위와 독감과 우울증과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그렇다면 애시어 웨빌은? 테드가 선택한 또 다른 여자 애시어 웨빌은 그와 행복했을까?

 

She was continually distraught at his seeming reluctance to commit to marrying and setting up a home with her, while treating her as a "housekeeper".Most of Hughes's friends indicate that while he never publicly claimed Shura as his daughter, his sister Olwyn said he did believe the child was his. … On 23 March 1969, Wevill gassed herself and four-year-old Shura in their London home. She had sealed the kitchen door and window, taken and given to Shura sleeping pills dissolved in a glass of water, and turned on the gas stove. She and Shura were found lying together on a mattress in the kitchen. <https://en.wikipedia.org/wiki/Assia_Wevill>

 



실비아도, 애시어 웨빌도, 테드 휴즈와는 행복할 수 없었다. 테드는 자신이 선택한 여자를, 사랑했던 여자를, 자신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이렇게 떠나버렸다. 쉽게 버렸다.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이 책의 마지막이 실비아 이야기여서, 아프면서 슬프다.


사랑이 충만한 시간 크리스마스에 내가 만난 실비아는, 잃어버린 사랑에 절망했으니. 그 누구보다 사랑을 갈구했던 그녀는, 사랑받지 못했다. 그렇게나 열망했던 사랑이 보답 받지 못 했다.

실비아는 그리고 애시어 웨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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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12-23 23: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실비아 책을 샀는데 단발님도 같은 감상을 가진 것 같아 무척 기뻐요 :)

단발머리 2017-12-24 23:06   좋아요 0 | URL
제가 좋아하는 배우가 연기해서 그런가 비극적인 이야기가 더 슬픈거 있죠.
그리고 실비아만큼 불행했던 애시어 웨빌 이야기도 맘에 걸리더라구요.

저도 기뻐요~~ 우리가 같은 감상을 갖고 있다는 게, 그리고 그걸 서로에게 말할 수 있다는게요^^

2017-12-24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4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오기 2018-01-03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제목이 좋으네요~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

내가 본 영화 리뷰만 먼저 골라 읽었어요~13편 뿐이지만...

단발머리 2017-12-27 09:41   좋아요 0 | URL
네~~~~ 정말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책이예요. 영화와 영화읽기가 천생연분처럼 잘 어울려서 저도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물론 저는 본 영화가 거의 없어서~~ 영화 읽기가 주였지만요~~ ㅎㅎㅎㅎㅎㅎㅎ

잘 지내시죠~~~~~
올해도 너무 수고많으셨어요, 순오기님~~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요~~복되고 희망찬 한 해 맞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간만에 도서관에 다녀왔다. 눈길을 헤치고 다녀왔다.

 



Oxford Reading Tree는 엄마표 영어 공부의 바이블 같은 책인데, 동네 도서관에 많이 구비되어 있어 큰아이도 여러 번 대출해서 읽었고, 작은 아이도 그렇다. 요즘은 영어를 워낙 일찍 시키는 추세라 빠른 아이라면 6, 7살 정도면 읽을 수 있겠는데, 우리 집 초등 고학년은 딱 자기 수준이라 여기는지 그렇게나~~ 그림을 열심히 본다. 외부적 보상(게임 시간 3)이 내면적 동기 배양(영어책 읽어야겠다!)에 부정적인 효과를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만, 같은 환경, 같은 조건, 같은 부모 아래서도 다른 성향을 보이는 아이에게 좀 더 유연한 접근 방식이 필요하다는 타협에 굴복, Oxford Reading Tree 1권을 읽으면 클래시 로얄 게임 3분을 허한다. 한 묶음에 6권, 묶음 7개, 3 곱하기 6 곱하기 7은 126. 클래시 로얄 126분을 할 수 있을만큼의 책을 대출해왔다.

 




























<엄마는 페미니스트>는 얇아서,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은 작아서, <윌리를 찾아라! 시간여행>은 윌리를 찾고 싶어서 대출했다. <전쟁과 평화 2>는 올 겨울 장편 프로젝트 대상 도서라 상호대차로 신청한 것을 찾아왔고, 러시아 혁명에 관해서는 <혁명의 러시아 1891~1991>을 먼저 읽고 싶었는데, 박노자의 <러시아 혁명사 강의>를 먼저 찾아서 일단 대출해왔다. <루쉰, 길 없는 대지>는 고미숙님 파트를 읽고 싶어서 대출했고, <주부 재취업 처방전>주부-재취업-나 자신 찾기카테고리의 수많은 책들 중에서 단연 눈에 띄어 대출해왔다. <황인종의 탄생>은 대출하자마자 20여쪽 정도를 읽었는데, 나름 재미있다.











오늘의 기대주라면 단연 <캘리번과 마녀>. 얼마 전 미네님(안녕하세요, 미네님~~^^ ) 서재에서 <혁명의 영점>에 대한 인상 깊은 페이퍼를 읽었는데, 마침 여러 번, 여기 저기에서 마주친 작가라 대표작이며 제목에서부터 눈길을 끄는 <캘리번과 마녀>를 먼저 읽기로 했다.

 










가는 길이 비슷하며,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친구들에게 중간 보고하자면, 하루에 70페이지씩 읽는다면, 크리스마스 밤에는 <2의 성>을 끝낼 수 있을 거라는 기쁜 소식이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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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7-12-19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엔 눈이 많이 왔다죠. ㅎㅎ 미리 축하드려요. 제2의 성, 끝내셔서요

단발머리 2017-12-19 16: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프레이야님^^ 프레이야님의 축하를 등에 업고 저는 부지런히 눈길을 헤치며 전진전진 ㅎㅎㅎ

다락방 2017-12-19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잉.
제2의성 저 아직 2권 시작도 안했는데, 단발님 열심히 가고 계시네요. 저도 가야겠지만...잠깐 쉬고 싶어요. 엉엉 ㅠㅠ

단발머리 2017-12-19 16:46   좋아요 0 | URL
아잉~~~ 다락방님의 마음을 십분 이해합니다. 우리가 가는 길은 외롭고 어려운 길이예요. 힘을 내세요~~ ㅎㅎㅎ
다만 한 가지만 이야기하자면... 어제부터 읽고 있는 <성의 입문> 파트는 너무나 뜨겁고 노골적이라 책장이 빛의 속도로 넘어간다는 점을 알려드립니다.

syo 2017-12-19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하하하 저는 아직 1권도......ㅠ

단발머리 2017-12-19 16:44   좋아요 0 | URL
앗! 뜨거우며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는 <성의 입문> 파트 때문에 syo님에게는 2권을 읽지 말것을 권해드리면...
더 읽고 싶으시겠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7-12-19 16:47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사상 최초로 2권을 먼저 읽는 경험을 할 예정입니다. 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7-12-19 18:06   좋아요 0 | URL
그건 안 되구요~~~ 반대하구요!!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 겨울 밤 # 성의 입문
# 뜨거움 감출 길 없어
# 붉그레진 syo님 얼굴

서니데이 2017-12-19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들고 올 때 많이 무거우셨겠어요.
다음주 월요일이 크리스마스네요. 벌써.
단발머리님, 따뜻한 오후 보내세요.^^

단발머리 2017-12-19 17:14   좋아요 2 | URL
네~~ 조금 무거웠어요 ㅎㅎㅎ
두 군데 도서관에 가져온 책들이라 그렇게 많이는 아니지만요...
서니데이님도 따뜻한 오후 되시구요.
미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요~~~*^^*

서니데이 2017-12-22 20: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2017년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단발머리 2017-12-23 17:34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이 알려주셔서 알게 됐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전쟁과 평화 1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5
레프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겨울엔 장편이고(from 유ㅂㅁㄷ님), 장편은 역시 러시아 장편이 제 맛이다. 문학동네 톨스토이 탐험단이 되어(from A 님 페이퍼) 『전쟁과 평화 1』를 선물 받았다.


톨스토이라고 한다면, 자타공인 세계 최고의 문호이다. 소설가, 시인이라는 설명을 넘어 사상가라는 호칭 또한 당연시된다. 고전은 지금 읽고 있다는 표현이 부적절한, 이미 읽었어야 했던 혹은 이미 읽은 책으로서, <전쟁과 평화>를 다시 읽고 있다고 말해야 옳겠지만.

얼른 가보자. <전쟁과 평화>는 처음이다.



1권은 3부로 이루어져있다. 1부는 각 인물이 소개되고, 화려한 사교계의 면면을 통해 당시의 문화를 보여준다. 2부는 러시아군의 일상이 소개되고, 3부는 모스크바 사교계와 러시아군의 전장을 오가며 그려진다.



소설의 중심에는 베주호프 백작(키릴 블라디미로비치 베주호프)의 아들인 피예르(표트르 키릴로비치[키릴리치] 베주호프, 키릴, 페탸, 페트류샤, 피에르)가 있다. 100여쪽을 읽어가는 동안 주요 등장인물이 소개된 맨 앞장을 연거푸 확인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빈 연습장에 인물이 등장하는 순서대로 등장인물의 이름을 적어보지만, 그런 수고로도 부족할 때가 다반사다. 피예르는 베주호프 백작의 유일한 아들이지만 서자이기 때문에,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홍길동 운명이다. 다른 남자들보다 몸집이 큰 편이라 유독 눈에 띄어, 겁먹은 듯한 태도 역시 화려하고 세련된 예법의 사교계 사람들에게 조용한 놀림감이다. 이랬던 피예르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게 되어 베주호프 백작이 되다니, 그야말로 인생역전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독하나 근심 걱정 없는 신세였던 피예르는 별안간 부유한 베주호프 백작이 되어, 밤에 침실에 들어서야 비로소 혼자가 될 정도로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바쁜 몸이 되었다. .. 전에는 피예르의 존재 따위는 알려고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가 만나고 싶어하지 않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화를 내거나 비관하는 많은 사람을 만나야 했다. (390)



활짝 갠 피예르의 인생에, 태양이 그 빛을 멈추고 어떤 먹구름이 끼게 될지는 다음 권에서



처음에 읽게 되었을 때는, 이런 부분이 좀 이상했다. 안나 파블로브나와 바실리 공작의 대화다.



오늘 축하연은 취소된 것으로 알고 있었어요. 사실 저는 그런 축하연이니 불꽃놀이니 하는 것이 모두 못 견디게 싫어졌어요.”

당신이 그런 기분이란 것을 알았다면 그 축하연은 그만둘 걸 그랬는데요하고 공작은 태엽이 감긴 시계처럼 대답했는데, 그것은 상대방이 믿길 바라지 않는 말을 할 때 나오는 입버릇이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주세요. 그건 그렇고, 노보실초프의 긴급 공문서 건은 어떻게 결정됐죠? 당신은 다 알고 계실 테죠?” (15)



이탤릭체는 무슨 이유로 등장하는가,의 의문. 일러두기를 읽지 않아 생긴 일이다.

<일러두기>

5. 원서의 프랑스어(또는 기타 언어) 부분은 이탤릭체로 처리했고, 강조 부분은 고딕체로 처리했다.



말 중간 중간에도 프랑스어를 섞어서 말한다는 뜻인데, 프랑스와 전쟁을 하고 있는 도중에도 우아한 프랑스어로 말하는, 혹은 말하겠다는 러시아 귀족들의 뜻 모를 도취감이 이탤릭체의 모양 그대로 전해진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나는 겨우 1권을 읽었을 뿐이다. 눈앞에 있는 듯 세심하게 인간 군상을 그려내는 톨스토이의 솜씨에 감탄하고 박수치고 또 감탄한다. 다만 입이 반쯤 벌어진 모습이 예쁜가, 하고 묻고 싶다.



젊은 볼콘스카야 공작부인은 금수를 놓은 벨벳 손가방에 뜨갯감을 넣어가지고 왔다. 엷은 솜털로 약간 가뭇하게 보이는 귀여운 윗입술은 이가 드러날 만큼 짧았으나 오히려 입술이 빠끔히 벌어져 귀여웠고, 어쩌다 가끔 아랫입술에 닿아 입을 다물면 더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더없이 매력적인 여자에게 흔한 일이지만, 윗입술이 짧고 입이 반쯤 벌어진 그녀의 결점은 오히려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여겨졌다. (23)



입이 반쯤 벌어지면 더 예뻐 보이나. 눈에 아무리 힘을 줘도 입을 반쯤 벌리면 사람이 좀 멍해 보이지 않던가. 더없이 매력적인 여자에게 흔한 일이라는데. 미의 기준이 바뀐 것인가 아니면 개인적 취향인가 혹 아니면, 멍해 보이는 여자가 예뻐 보이나. 그런가 혹은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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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7-12-17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환영합니다!!!!! 여긴 겨울의 장편 소설 나라에요~~~~ 천천히 부담 없이 같이 읽어요, 우리....*^^*

단발머리 2017-12-17 22:54   좋아요 0 | URL
유부만두님 서재에서 만났던 아름다운 <전쟁과 평화> 4권과 러시아어 수능 특강이 눈 앞에 아른거리네요~~
오랜만의 장편이라 먼 길 잘 갈수 있을지 조금 걱정됩니다.
유부만두님 응원에 힘입어 달려보렵니다. 화이팅~~!!!

2017-12-18 0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3 17: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12-18 1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서구 남성들은 입을 살짝 벌린 여성에 성적 매력을 느꼈어요.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가 남성 중심의 시선이 많이 반영된 그림이에요.

단발머리 2017-12-23 17:45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그 소녀는 그렇게 멍해보이지는 않던데....
자세히 봐야겠군요, cyrus님처럼^^
 











천재적인 남성이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맘껏 나래를 펼칠 수 있기 위해 필수적인 안정된 가정을 꾸려 나가는 아내로서, 또한 지적으로나 성적으로 영감을 북돋우는 뮤즈로서, 항상 새로운 역작을 만들기 위한 모든 준비 과정을 마련하는 데 여념이 없는 완벽한 비서로서, ‘위대한 작품의 완성에 기여한 이름 없는 동료로서, 그렇게 여성들은 수세기 동안 남성들의 생산 활동에서 항상 일정한 자리를 차지했다. (292) 



부부 사이를 끝없이 이간질했던 친구, 동료, 제자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토 힌체는 끝까지 아내를 신뢰했다. 오토 힌체. 이 한 사람을 제외하고 이 책의 모든 사람들은, 모든 남자들은 아내의 재능을 통해, 연인의 헌신을 통해 천재로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했으며 아내에게, 연인에게 고마워하지 않았다. 나쁜 놈이라고 부를 만한 사람 중에 최고로는 피츠제럴드를 꼽는다. 『위대한 개츠비』를 감명 깊게 읽었더라면 많이 아쉬웠을텐데. 그나마 다행이다. 몇 번을 읽어도 나는, 그 개츠비가 참 별로였다.



스콧의 소설 <저주받은 미인들>에 대해 젤다가 쓴 빈정대는 서평에서는 결혼 생활이 결국 깨어지게 된 갈등을 조롱 섞인 목소리로 암시했다.


한 페이지에서 나는 결혼 직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졌던 옛날 내 일기장의 한 구절을 발견했다. 그리고 비록 심하게 변형되기는 했지만, 몇몇 낯익은 편지 문구도 있었다. 피츠제럴드 씨는(그의 이름을 쓰자면) 표절이란 집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329)




의사들이 젤다와 스콧이 나눈 대화를 적어 놓은 기록에는 두 사람 사이의 이해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 기록은 남편이 자신의 과대망상증을 부인을 희생시켜 해소하려는 두 사람의 관계를 나타내 주는 인상적인 자료들이다. 다음은 대화의 과정에서 발췌한 것이다.


나는 능력과 재능을 갖춘 작가들과 완전히 홀로 싸워야만 하오. 당신은 삼류 여류 작가이며 삼류 무용수일 뿐이오.”

이전에도 당신은 그렇게 말했어요.”


그리고 얼마 후,


나는 수많은 추종자를 지닌 전문적인 작가라오. 나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받는 단편소설 작가요. 나는 여러 번 중요한…….”

그렇다면 당신은 왜 그토록 심하게 삼류 여류 작가를 공격할 필요가 있는 거죠?” (341)




다음 책으로는 『괴델, 에셔, 바흐』를 제치고(당연하다. 괴델, 에셔, 바흐라니…) 『세계문제와 자본주의 문화』가 선정됐다. 1장 소비자의 탄생 중, <미국의 어린이 문화 : 소비자로서의 어린이>에서는19세기 이전에 자본주의 경제에서 노동자로서 역할을 했던 어린이가 20세기 들어 아동노동이 불법으로 규정되는 법안의 승인으로 인해 소비자로서 변신해가는 과정을 추적한다.





그런 사회 운동을 이끈 개혁가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린이들은 과거 노동자였을 때보다 지금 소비자로서 국가경제에 훨씬 더 도움이 되고 있다.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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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를 키운 여자들>은 천재라고 알려진 이들의 아내, 애인, 누나의 이야기다. 그녀들의 재능이 배우자, 애인, 스승, 남동생 등에 의해 어떻게 이용당했는지, 그녀들의 업적이 어떻게 차근차근 감추어졌는지 기술하고 있다.

 


당시의 재능 있는 여성들이 종종 그러했듯, 해답은 처녀 시절의 경험에 있다. 즉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지지했지만, 결혼생활에서는 이 재능을 잘 조절하여 자신의 직업에 잘 유용하게 사용한 남자를 만났던 것이다(208).

 


천재들은 그녀들이 평범한 여자가 아닌 자신과 비슷한 천재과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녀들의 천부적인 재능을 알아보고 결혼 후 자신의 일과 연구, 예술 작업과 창작 활동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자신의 에너지를 배우자, 애인의 작업에 전적으로 쏟아냈던 여성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업적을 쌓아 올릴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다. 그들은 천재로 기억되고, 그녀들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

 


결혼 전에 두 사람은 공동 출판물에 아인슈타인-마리치라고 서명했으나, 결혼 뒤에는 공동서명이 아닌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만으로 대신했다. 밀레바는 이에 별다른 반감을 나타내지 않았으며, “우린 둘 다 하나입니다.”라는 말 뿐이었다(159).

 


아인슈타인의 첫번째 아내 밀레바의 마음이 이해된다. 출생 시부터 눈감는 그 날까지 여성들은 가정으로부터, 사회로부터, 국가로부터 양보를 강요 받는다. 하물며 사랑하는 남자,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서라면 왜 희생을 마다하겠는가. 그들은 자신의 젊음과 지성, 그리고 에너지를 남편과 애인, 스승을 위해 모두 다 바쳤고, 스스로는 그렇게 소진해 버렸다.

 

천재의 배우자였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천재였던 여성들이 자신의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던 이유 중의 또 다른 하나는 아이라고 생각한다. 한 명 혹은 두 명의 아이가 아니라, 많은 아이들. 너무나 많은 아이들의 출산과 양육이 그녀들에게 큰 짐이 되었을 거라 예측한다.

 


게다가 예니 마르크스 개인에게 극도로 어려운 상황도 있었다. 그녀는 일곱 아이들을 출산했는데, 그 중 네 명은 이미 젖먹이 때나 어린아이 때 죽고 말았다. (44)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어렵다. 적어도 4년 혹은 5년 동안은 잠시도 쉴새 없이 아이를 돌보고 보살펴야 한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 그것은 죽을 각오를 무릎 쓰고 낳은 아이, 갖은 정성을 다해 키운 아이의 죽음을 보는 일이다. 아이를 낳았을 때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는 것처럼, 사랑스런 아이를 잃었을 때의 고통 또한 말로 다 할 수 없다.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 가슴에 묻는다는 자식의 죽음을 네 번이나 경험했을 때, 그 사람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너지기 마련이다.

 


다섯 시간 이상 잔 적이 거의 없이, 톨스토이의 원고를 정서하고 수정하며 교정과 편집, 출판에까지 관여했던 소피아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썼다.



오늘 나는 생각했다. 왜 천재적인 여성은 없는 것일까? 작가 중에도, 화가나 작곡가 중에도, 그것은 능력 있는 여성이 자신의 모든 열정과 재능을 가족과 사랑과 남편에게,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이들에게 쏟아 부어야 하기 때문이다. … 아이를 낳아 다 키우고 나면, 예술가적인 욕구가 깨어난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너무 늦어 더 이상 어떤 것도 창조할 수 없다. 결혼하지 않은 여성들은 더욱더 정신적이며 예술적인 재능과 힘을 발전시킨다. (109)

 





주디스 서먼은 『제2의 성』의 소개글에서 이렇게 썼다.

 

Her pious martyrdom indelibly impressed Simone, who would improve upon Virginia Woolf’s famous advice and move to a room of her own – in a hotel, with maid service. Like Woolf, and a striking number of other great women writers, Beauvoir was childless. <The Second Sex, Introduction>



 


그렇지 않은 여성, 그러니까 아이들 낳고 키웠으면서도 위대한 작가의 반열에 오른 여성 작가도 물론 존재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름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아이를 낳고 기르지 않는 남성이거나 혹은 아이를 낳으면서 또는 아이를 낳은 후에 산욕열로 죽게 된 작가이거나….  


 


토요일 밤은 뜨거웠다. 우리가 느끼는 울분과 슬픔은 똑같았지만,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조금씩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완전히 다르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 사이에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건 의식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오랜만에 이루어진 만남의 자리에서 받게 된 선물들은 우리의 미래를 예언한 듯 하다. 우리는, 돈이 우리의 독립성에 꼭 필요한 요소임을 의식하고 있으며(로또), 우리 스스로와 우리의 몸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할 것이라는 사실(타이레놀 콜드), 그럼에도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크리스마스 미니부케) 역시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말이다.  

 

자본의 힘을 인정하지만 굴복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여성과 여성의 몸에 대해 우리의 언어로 말하겠다는 고집, 그리고 사회와 문화가 강요하는 아름다움이 아닌 자연의 아름다움,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끝까지 추구하겠다는 결심들이 우리가 앉았던 자리, 아니 그 너머까지 가득했다.

 


뜨거운 밤이었다.

우리의 모든 말을 담아내기에는 짧은 밤이었지만,

시원한 밤이었다.

우리는 마음 속의 뜨거운 것을 토해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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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12-11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싶은데 절판이라서 제가 지금 이 출판사 저 출판사에 의뢰 넣고 있어요. 이거 개정판 좀 내달라고요. 저도 읽어보고 싶습니다!!

단발머리 2017-12-11 11:54   좋아요 0 | URL
저는 알라디너분이 알려주셔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구입했어요.
혹시 급하게 읽고 싶으시면 제 책을 쏴아~~ 보내드리겠어요. ㅎㅎㅎ

근데, 다락방님 멋져요~~
이 출판사 저 출판사 의뢰를 넣다니요~~ 멋져요, 쫌!!!

다락방 2017-12-11 12:15   좋아요 0 | URL
결국 개정판으로 나와야 멋있는거죠 ㅠㅠ

그리고 뭐가 또 급하게 읽고 싶겠습니까. 제가 지금 제2의 성도 못읽고 있는데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안급해요 안급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읽을 책이 넘나 쌓여있어서 미칠 노릇이에요. 그런데 왜 읽고 싶은 책은 자꾸만 생기는지 ㅠ

단발머리 2017-12-11 12:28   좋아요 1 | URL
혹시 다락방님이 잘 아는 출판사에서 개정판으로 나오게 된다면 제목을 조금 바꾸면 어떨까
제안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천재를 키운 여자들>은 사실이 그렇기는 하지만, 웬지 모르게 엄마 느낌이.... ㅠㅠ
그리고 오자도 몇 개 눈에 띄고요. 문단과 문단 사이에 갑자기 붕 뜨는 지점이 두엇 되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이번 주에는 바빠서요. ㅎㅎㅎㅎㅎㅎ
<제2의성>은 다음주부터 읽을 예정이에요. 그 대신 그 책을 끝낼 때까지 다른 책들과 안녕~~
<제2의 성> 프로젝트 화이팅이요!!

다락방 2017-12-11 12:39   좋아요 0 | URL
혹시 진행이 된다면 꼭 그렇게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다른 출판사를 또 알아봐야 되나 싶어요. ㅎㅎㅎㅎㅎ

단발머리 2017-12-11 13:37   좋아요 0 | URL
우아~~~ 역시 책을 두 권이나 내신 작가의 위용~~~
또 다른 출판사라니~~ 멋짐 폭발입니다~~

뜬금없이...
저는 그 밤에 이 말이 제일 좋았어요.
˝1박 2일 가능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7-12-11 14:12   좋아요 0 | URL
아니 ㅋㅋㅋㅋㅋ 이렇게 들으니까 뭔가 되게 야시시하네요. ㅋㅋㅋㅋㅋㅋㅋ 좋다 댓글 ㅋㅋㅋㅋㅋㅋ 좋은 말이다. ˝1박2일 가능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비밀인데요,
제가 단발머리님을 진짜 엄청 좋아한다고 합니다.
어디가서 소문내시면 안돼요.

단발머리 2017-12-11 14:21   좋아요 0 | URL
원래 이게 삼단구조거든요.

그 날 밤-귓속말로- 1박 2일 가능해요?

요런 식으로요~~~ 엄청 좋죠?
1박 2일 가능해요? 음성 지원도 가능해요. 다락방님 음성으로다가~~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낮에 들어도 좋네요. 댓글로도 좋고~~

제가 다락방님 좋아하는 건 사람들이 다 아니까 비밀 아니지만,
다락방님이 저 좋아하는 건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더 많이 알려야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2017-12-11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1 11: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1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2 10:4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