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적 사랑의 허구에 대해 처음으로 들었던 고미숙선생님이었다. 근대로 들어서면서, 남녀간의 불꽃 튀는 찰나의 사랑이 어떤 방식으로 이상화되었는지 설명하셨는데, 사랑의 절대적 힘을 맹신하고 있던 당시에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사랑이 만들어진 것이었다니. 사랑이라는 허상에 대해 정희진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랑은 사랑하는 자의 결핍이나 욕망에 대한 자기 판단, 회계(대차대조표), 자기 확신의 활동이다.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절대로 사실을 잊어서는 된다. 사랑받음은 내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상대방의 자기 혼란이다. 사랑은 내가 타인의 상태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달려 있다. 본인이 매력적이고 잘나서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38)  




사랑 없는 삶이 흔하더라도 혹은 바로 이유 때문에 사람들은 사랑 없이 없다고 말한다. 사랑을 갈구한다. 사랑하기를, 사랑 받기를 원한다. 핑크빛 기류, 강렬한 눈맞춤, 격정적인 몸짓, 뜨거운 손길, 거부할 없는……. 하지만, 모든 것은 내가 아니라 나를 사랑한다는 말하는 그의 자기 혼란에 근거하고 있다고 정희진은 말한다. 사랑한다 말하는 그도, 사랑받고 있다고 믿고 있는 나도, 오해하고 있는 셈이다. 사랑을 역사적 산물로 이해하는데  『낭만적 사랑과 사회』(재클린 살스비),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울리히 , 엘리자베트 -게른스하임), 『현대 사회의 사랑 에로티시즘』(앤서니 기든스) 도움이 거라 하시니, 찾아보아도 좋겠다. (민음사의 『낭만적 사랑과 사회』는 검색이 되지 않는다.)





















영화에 대한 감상과 생각을 모아둔 글이라 혹시나 내가 영화가 있나 목차를 살펴보았지만 역시나.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나를, 나는 이미 알고 있지만,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싶다. 아는 영화가 없다. 나는 영화를 모르고 산다. 영화가 하나도 없는데, 정희진의 영화평을 읽는다. 꼼꼼히 읽는다. 제일 좋아하는 문장은 19쪽에 있다. 




영화는 나의 세계를 확장할 있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인생 문제가 영화에서대부분해결되기 때문에, 나는 그다지 타인이 필요치 않게 되었다. 나만의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나는 외로움을 원한다. (19) 




정희진은 영화를 경험 너머 새로운 앎의 세계라고 말한다. 고급 도서관을 통째로 가진 기분이라 표현한다. 내게 영화는 그렇지 않은데, 화려한 영상과 웅장한 음향, 구성과 편집으로 숨겨놓은 단서를 찾아가는 작업이 내게는 무겁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 말한다면, 영화가 이렇듯 인생 문제의 대부분을 해결해 있다면, 그래서 (어느 순간에는) 타인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로 나를 이끌어준다면, 나는 영화를 보고 싶다. 왜냐하면 내게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외로움을 원한다. 나는 외로움을 원한다. 나는, 외로움을 원한다. 



아침에는 『랩걸』을 마쳤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열정적인 과학자이자 아들을 위해 호랑이로 변신하는 약을 제조하는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오후에는 『제2 성』을 읽었다. 생각보다 훨씬 많이 남아 있어 깜짝 놀란 스스로를 진정시키며 읽었다. 마칠 것을 알기에, 마무리해야 새로 시작할 것을 알기에, 차분히 , 장을 넘겼다. 


저녁에는 아침에 주문해 오후에 배송된 『혼자서 영화』를 읽었다. 내게 정희진은 언제나 ///이기에 단어를 하나씩만 따라가며 천천히 읽었다. 



충분히 외로운 날이었다. 

후회 없이, 충분히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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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2-23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저는 이거 사서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는 참인데 단발님은 역시!!벌써!! 읽으셨군요!!!

단발머리 2018-02-23 09:43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페이퍼 보고 신간 나온것 알았어요. 땡투를 그대에게^^
책이 작아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18-02-23 09:52   좋아요 0 | URL
아니!! 제 페이퍼를 보고 알았는데 저보다 빨리 읽으셨다구욧??!!!!!!!!!!

단발머리 2018-02-23 10:04   좋아요 0 | URL
제가 집 근처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똬악! 신청을 해놓고요.
아, 안 되겠다 싶어 아침에 주문했는데, 저녁 먹기 전에 도착하더라구요.
부지런한 다락방님과 바지런한 알라딘 당일 배송의 협동과 조응^^

유부만두 2018-02-23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분히 외로우셨군요.
저도 외로움이 고픕니다.
혼자 어딜 가고 싶은데... 혼자 영화 보러 갈까봐요.

단발머리 2018-02-24 11:45   좋아요 0 | URL
저는 혼자서 뭐든 잘하는데, 혼자 영화는 아직이예요.
유부만두님은 혼자 영화도 가능하시군요.
이제 며칠 안 남았어요. 곧 성수기가 끝나고, 개학이 열립니다^^

꿈꾸는섬 2018-02-25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 영화보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에요.^^
사랑이 만들어진 허상이라고 해도 저는 사랑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그게 삶의 원동력이구요.ㅎㅎ

단발머리 2018-02-26 12:33   좋아요 0 | URL
제가 아직 안 해 본게 혼자 영화보기인데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영화관에 사실 자주 안 가거든요.
그런데도 이 책은 재미있게 잘 읽었네요.

저도 사랑이 좋아요. 사랑이 없으면.... 이 삭막한 삶을.... 어찌....ㅠㅠ
 



153쪽. 흙은 참 묘하다.



[랩 걸]은 참 묘하다. 맥도날드 치즈버거를 해동시켜 한 사람당 3개씩 (레바에게도 3개) 먹으면서 실험에 전념하는 과학자의 일상과 생각이 특별하고 새롭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러고 있는가.
왜 뒤돌아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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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18-02-19 17: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맥도날드 햄버거!!!ㅋㅋㅋ


근데 왜 뒤돌아 보시는걸깡??

단발머리 2018-02-19 21:50   좋아요 0 | URL
마무리하지 못한 책이 <읽고 있는 책>의 뒷덜미를 잡고 있어요.
어서 끝내야하는데.... 하면서 표지만 보고 있습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북유럽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멀고도 감정적인 거리는 어려서 형성되기 시작해서 날마다 강화된다. 누구에게도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물어볼 없는 문화에서 자라는 , 상상해 적이 있는가? ‘어떻게 지내니?’하는 일상적인 인사도 아주 개인적인 질문이어서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문화 말이다. 자신을 괴롭히는 문제를 무슨 일이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 훈련을 받는 동시에 다른 사람의 문제는 사람이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절대 입에 올리지 않고 기다려야 한다고 배우는 문화 말이다. 완전히 고립된 공간에서 식량을 비롯한 자원이 점점 고갈되어가는 길고도 어두운 겨울을 지나면서, 불필요하게 서로를 죽이는 일을 피하기 위해 침묵을 지켜야 했던 바이킹 생존 전략의 흔적인지도 모른다. (24) 




명절마다 마주치는 기사는 정해져 있는데, 고부갈등, 가사분담, 명절 증후근, 고향에서 기다리는 부모님들, 선물 상자를 들고 재촉하는 귀성행렬 그리고 귀경행렬 등이다. 최근에는 친척들로 북적이는 집을 피해 카페 혹은 호텔로 대피 아닌 대피를 하고 있는 2030 대한 기사도 자주 보인다. ‘듣기 싫은 질문이라는 기사도 단골인데, “사귀는 사람은 있니? 언제 결혼할거니?”, “월급은 얼마니?”, “취업은 언제 할래?”등의 질문이 듣기 싫은 질문이라고 한다. 자주 만나지 못해 공통의 화제를 찾기 어렵다 보니, 인류 공통의 화제를 찾으려 하다가, 쉽게 답을 찾기 어렵고, 금방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게 되는 싶다. 



아버지 삼형제는 같은 동네에 살았는데, 가까이는 1, 멀어도 15 거리였기에 이런 중차대한 질문을 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어렸을 때는 사촌오빠, 언니들을 열심히 따라다녔지만, 점점 커가면서 역시나 공통의 관심사를 잃어버리고, 명절에도 친구를 만나 노는 것이 재미있어졌으니 언니, 오빠들과도 그렇게 멀어져 갔다. 큰댁에서의 시간들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힘들지는 않았지만, 아주 재미있지는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듣기 싫은 질문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6개월이 아니라, , 이내라도 새로운 소식들은 금방 업데이트 되곤 했다. 



인용한 문단을 읽을 때는 묘한 감정이 몰려왔다.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멀고도 감정적 거리를 느낀다는 , 또한 그런 문화에 익숙해지며 성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전통적으로 우리 사회는 농경사회였고, 원인과 결과로서 공동체 의식이 강조되었다. 산업화를 겪으며 인구 밀집이 더욱 심각해졌고, 개인의 입신은 가정의 성공, 가문의 영광으로 이해되었기에 성공에 더욱 집착하게 되는 순환 고리에 묶였다. 하지만 개인주의의 확산으로 마음을 터놓을 있는 친구, 의지할 있는 선배, 용기를 주는 직장동료를 찾아보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 역시 사실이다. 마지막 보루가 가정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자녀가 부모에게, 언니가 동생에게, 오빠가 동생에게, 동생이 누나에게 의지가 되어야 한다는 혹은 있다는 기대는 각박해진 현대 사회 속에서 마지막 희망이다. 그런데, 북유럽 가정은 어떠한가. 바이킹의 후손들은 어떤가. 작은 마을에 살면서도 년씩 외삼촌과 이모들을 만나지 않고, 집에 사는 오빠들과도 며칠씩 서로에게 아무 말도 하고 지내는 문화 말이다.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물어볼 없는 문화. 침묵을 공기처럼 받아들이며 그에 익숙해지며 성장하는 문화. 



우리는사실은 관심이 없으면서도 기왕에 만났으니 무언가 말해야하기에 일생일대의 중요한 결정,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중차대한 결정에 대해 가볍게 묻는다. 하지만, 질문은 대답을 듣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말하고 싶어서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공부해라, 취직해라, 결혼해라, 애낳아라, 일생일대 4 강령을 향해 돌진하는 삶을 독려하기 위해서다. 



바이킹 후손들의 문화, 완전히 고립된 상황에서 극도로 예민한 상태에서의 어떠한 분쟁도 피하기 위해 형성되고 굳어진 침묵의 문화를 떠올리며, 무엇이 사람을 힘들게 할까 생각해 본다. 실패의 기억과 도전의 무게 사이에서 절망하는 사람에게그래서 언제 취직할거니?”라고 묻는 것이 나은가, 아니면 며칠씩 말하지 않고, 춥고 겨울의 밤들을 혼자, 완벽하게 혼자서 견디는 것이 나은가. 무엇이 사람을 힘들게 할까.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쓸쓸하게 할까. 



큰조카를 집에 데려와서는 맛난 것을 하나도 주지 않은 못된 큰엄마의 행태를 반성하며,  

토요일 아침에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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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8-02-17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반 (무많이) ..라고 대답하고 싶어요. 간섭하고 싶어서 던지는 뻔한 질문들 너무 예의 없고 싫지만 긴긴 겨울 동안 혼자 벽만 보고 살기도 싫어요;;;;

설 잘 쇠셨나요? 조카 먹거리 너무 신경 쓰지 마시고요, 문화상품권을 퉁~ 하셔요. ㅎㅎ
그런데 문상으로 책 대신 아이들은 게임 아이템을 사겠죠?

단발머리 2018-02-18 08:34   좋아요 0 | URL
저도 두 개 다 무섭더라구요. 한 집에 사는 데 며칠씩 말을 안 한다는게 사실 상상하기 어렵기도 하구요.

조카는 아직 어려서 문상으로 상품권사는 것보다 그냥~~ 먹는 걸 좋아한답니다.
설 전날 밤에 와서, 설 아침 일찍 시댁으로 가는 코스여서 사실 식사를 할 시간도 없었지만....
그래도 미안하더라구요. 쌀쌀한 큰엄마.....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책읽는나무 2018-02-18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절 기름진 음식 입에 물려 울애들은 밖의 음식 사주면 더 좋아하던데~ㅋㅋ
울집은 라면 끓여 주면 애,어른 완전 행복해 합니다.(대신 엄마는 라면을 퍼지게 끓이는 바람에 꼬들거리게 끓이는 아빠 라면을 더 선호하구요.참 바람직한 현상이죠ㅋㅋ)
큰엄마의 위상은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암튼 명절 잘 보내셨나요?
단발머리님도 빠른 원기회복 부탁드립니다^^

단발머리 2018-02-18 08:35   좋아요 0 | URL
라면, 라면 완전 행복하죠. 저희도 명절음식 해장은 꼭 얼큰한 라면으로 한답니다.
라면이면 아빠죠~~ 저희집도 라면은 아빠 담당이예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도 명절 잘 보냈습니다.
책읽는나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오늘 홀가분하게 좋은 시간 되세요~~

순오기 2018-02-18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바이킹족의 후예들에겐 그런 문화가 있군요. 어쩌면 우리도 점점 그렇게 되어가는 중일지도... 침묵도 견디다 보면 견딜만해지긴 하더만요.ㅋㅋ

큰조카 데려다 맛난 것도 해주지 않은 큰엄마~^^

이 책 궁금하긴 하던데 아직 사진 않아서 주민센터 도서관에서 빌려볼까 생각중...

단발머리 2018-02-19 21:54   좋아요 0 | URL
네, 둘 중의 하나를 굳이 고르라면 저도 침묵이 나을것 같기는 한데요. 요즘같은 쌀쌀한 날씨 정도가 아니라 극한의 지역에서라면 잘 모르겠어요.

조카에게는 미안하지요. 동서는 작은아이 먹으라고 돼지갈비를 해서 보냈더라구요.
제가 이런 큰엄마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도 도서관 책으로 읽고 있어요, 지금이요^^
 



















<작가의 요즘 > 알라딘 ebook인데 무료로 다운받을 있다. 나는 김연수편을 다운받았는데, 자매품으로 정유정편, 조남주편 등이 있다. 김연수 작가의 요즘 책은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의『시대의 소음』이라는데, 권력 앞에 맞선 예술가의 고뇌를 다룬 작품으로 소설 힘을 주는 작품이라는 설명이다. 



작가의 요즘 보다 눈길이 가는 김연수의 단편 <사월의 , 칠월의 >이다. 김연수의 소설보다 산문집을 좋아해, 제목은 눈에 익어도 실제로는 읽지 않은 작품인데, 인터뷰하는 신준봉 기자의 질문, “지금까지 많은 작품 가운데 어떤 가장 눈에 밟히느냐 물음에 김연수가 꼽은 소설이라 바로 책을 대출해 왔다. 슬럼프에 빠졌을 자신을 구제해준 작품이라는 말도 덧붙여졌다. 


젊은 시절에는 굉장히 미인이셨죠. 지금도 선생님 말씀하는 분들 많으세요.”

조카라면서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이 그가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니, 이모는 워낙 서구적인 미인이신데, 제가 국문과를 나왔거든요.” 

그는 다시 나를 쳐다보더니, 음식을 시키자고 말했다. 그가 메뉴판을 들고 이모에게 이런저런 요리들에 대해 설명했다. 그가 살갑게 굴자, 이모는 의자를 그쪽으로 옮겨가면서 함께 메뉴를 골랐다. 

국문과는 김치에 먹을 거지?” 

이모가 내게 말했다. 

국문과도 한자 공부는 많이 하거든요.” (94) 



거실을 치우다가 잠깐 자리에 앉아 자리에서 읽어버린 <사월의 , 칠월의 > 사랑의 기억과 사랑의 도피와 사랑의 흔적과 사랑의 소리를 불러내는 단편이다. 화자이든, 주인공이든, 주인공 친구이든 소설을 끌고 가는 힘은 어디까지나 인물의 매력에 빚지는데, 그런 점에서 보자면 서구적인 미모의 이모는 100 만점에 98점의 매력을 소유한 사람이다. 



발렌타인 데이, 전전날이며, 2018 2 14 수요일. 

모두 잠든 아침에

<김어준의 뉴스공장> 들으며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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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8-02-14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썰렁하고 무해한 농담...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좋아해요. ^^

단발머리 2018-02-14 08:59   좋아요 1 | URL
농담 없는 삶이야말로 썰렁하죠. 전, 농담을 좋아해요. 그리고 김연수도요.

물론이예요, 전 유부만두님을 좋아해요^^
유부만두님 덕분에 롱고 커피까지 좋아할 참입니다~~~

jeje 2018-02-14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오랜만에 김연수작가의 책이 읽고 싶어지는 글입니다 ^^

단발머리 2018-02-14 09:21   좋아요 0 | URL
jeje님께 그런 느낌을 전했다면 아주 만족스럽네요.
저도 무료 이북 덕분에 오랜만에 김연수 작가를 읽었거든요^^

icaru 2018-02-14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한참 전에 비밀독서단이라는 프로그램 공개 녹화에서 초대작가로 나오는 걸 티비로 봣었는데요... ㅎㅎ;; 그 자리가 긴장되는 자리였을텐데 소심하면서 편안한 ㅋ (뭔말이죠... ) 모습이 또 상당히 인상적이더라거여 ㅎ

단발머리 2018-02-14 11:13   좋아요 1 | URL
아, 예전에 저도 비밀독서단 몇 번 본 적 있는데, 김연수 작가편은 놓쳤네요.
소심하면서 편안한~~ 이 딱 정확한 표현 같아요.
실제로 보진 않았지만, 조근조근 자기 할 말 다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예요 ㅎㅎㅎㅎ

icaru 2018-02-14 1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네..생글생글 수줍어하는 듯 하면서 자기할말 다하는 ㅋㅋㅋㅋ

단발머리 2018-02-14 14:15   좋아요 0 | URL
ㅎㅎㅎ 생글생글 자기 할 말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네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할 말은 하는~~ 그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즐건 설연휴 되세요~~~~^^

라로 2018-02-14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연수 작가를 영화에서 만났는데,,,저도 소설보다는 <청춘의 문장들>같은 책을 좋아해요. 소설은 단편 읽어본 적 있는 듯. 이 책 무료로 다운이 된다니 얼렁 받아야겠어요. ㅎㅎㅎㅎ

단발머리 2018-02-18 08:31   좋아요 0 | URL
네, 무료에 이북인데 13페이지 정도라 금방 읽으실 수 있을거예요.
저도 <청춘의 문장들>을 좋아한답니다^^

서니데이 2018-02-15 16: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단발머리 2018-02-18 08:32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즐거운 설연휴 보내셨나요? ㅎㅎㅎ
서니데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복된 한 해 되시길요~~~~^^
 
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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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지구상에서 굶주림, 질병, 폭력의 문제를 대략적으로 해결했으며, 이제 인류의 다음 목표는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것이라 전망한다. 인간이 2200년에는 죽음을 극복할 거라는 전문가들의 예언과 생화학적 조작을 통한 행복 추구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약물을 이용한 행복 추구는 시작일 뿐이다. 뇌에 대한 전기자극을 통해서나 유전자 조작을 통해 인간은 더 행복해질 수 있다. 혹은 더 행복하다고 느끼게 된다. 마지막으로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인조인간 만들기) 그리고 비유기체 합성으로 인간은 신으로 업그레이드 된다.(69) 인간이 신으로 변신한다.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세계로 빠르게 돌진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누군가 제동을 걸어주기를 바라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왜 행복과 불멸로 만족하지 않을까? 적어도 초인적 힘을 추구하는 무시무시한 시도를 왜 내려놓지 못하는가? 그것이 나머지 둘과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다리가 마비된 환자들을 다시 걷게 해주는 생체공학 다리를 개발한다면, 같은 기술로 건강한 사람들의 다리 성능도 높일 수 있다. 당신이 노인의 기억상실을 멈추는 방법을 알아내면, 같은 치료로 젊은이의 기억도 향상시킬 수 있다. 어디까지가 치료이고 어디부터가 성능 향상(업그레이드)인지 명확한 선은 없다. 의학은 언제나 표준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을 구하는 일로 출발하지만, 그 다음에는 같은 도구와 노하우로 표준을 뛰어넘을 수 있다. (81)


지금 상황에서 유전자 조합의 선택으로 만들어진아기를 생산한다는 건 비윤리적인 일이며, 보통의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에서 부상자들의 얼굴 상처를 치료하면서 성형수술이 발달하게 된 것이나, 불임부부를 위한 시험관 아기를 생각해보라. 쌍꺼풀 수술은 수술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될 만큼 일상화 되었고, 시험관 쌍둥이들은 도처에 있다. 치료를 위해, 불가피하게 시작되었던 흔히 않던 예들이 이제는 우리 생활에 적잖이 스며들어 있다. 선택과 대체 그 다음 순서는 수선. 위험한 돌연변이 유전자를 제거하려는 시도가 시작될 것이다. 더 강한 면역체계, 평균보다 높은 기억력, 남들보다 밝은 기질을 가진 아이를 원합니까? 이 유전자 아기 카달로그를 보세요.(85) 저자의 예측이 맞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1부에서는 유인원 한 종에 불과한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는지를 추적한다. 사피엔스는 독립적인 생태구역으로 나뉘던 장벽을 깨뜨려 지구를 단일한 생태적 단위로 만들었다.


수만 년 전 석기시대 조상들이 동아프리카에서 지구 곳곳으로 퍼져나가면서 오스트레일리아에 살던 대형 동물의 90퍼센트, 아메리카에 살던 대형 포유류의 75퍼센트, 지구의 모든 대형 육상 포유류의 약50퍼센트를 멸종으로 내몰았다. 이 모든 멸종 사건들은 그들이 최초의 밀밭에 파종하고, 최초의 금속 도구를 만들고, 최초의 글을 쓰고, 최초의 동전을 주조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다. (110)


인간은 어떻게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는가. 저자는 인간이 특별하다는 믿음이 성경에서 왔다고 본다. 원시시대 수렵채집인들이 인간과 여타 다른 동물들을 나누는 본질적 간극이 없다고 믿었던 것과는 달리(111), 성경은 애니미즘을 거부하고 우리 안의 동물성을 부정함으로써 인간이 신의 특별한 창조물이라는 생각을 공고히 했다는 것이다. 또한 전통적인 일신교는 사피엔스만이 불멸의 영혼을 가졌으며, 이는 실험실에서 이루어진 실험들을 통해 확인되었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점은 동물뿐 아니라 사피엔스 역시 영혼을 지니고 있다는 과학적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데 있다는 데 있다.(147) 보통 우리가 말하는 영혼은 분리되지 않고 변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되는 어떤 것을 의미하는데, 그런 실체는 단계적 진화를 통해 생길 수 없다는 말이다. (151)


2부에서는 인간이 만든 세계와 인간의 세계 지배에 대한 역사적 탐구와 인본주의에 대한 고찰이 이어진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자신에게 충실해라, 자신을 믿어라, 자신이 좋다고 느끼는 것을 해라,는 인본주의의 외침은 의미의 최종 원천이 인간임을 천명한다. (309) <지식=성경X논리>라는 중세 유럽의 지식 공식의 변환 또한 눈길이 간다. 과학혁명의 발로로 지식 공식은 <지식=경험적데이터X수학>으로, 인본주의의 지식 공식 <지식=경험X감수성>으로 변환되었다는 것이다.


동물들의 실험 뿐 아니라, 사피엔스의 실험에서도 영혼이라는 실체가 발견되지 않았기에, 인간에게 영혼은 없다는 주장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자아에 대한 설명 부분이다. 근대의 영향 아래 살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자아라는 내적 본질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자유주의가 성립하려면 나는 오직 하나의 진정한 자아를 가져야만 한다.(399) 하지만, 생명과학은, 개인이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생각은 생화학적 알고리즘들의 집합이 지어낸 허구적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자유의지를 지닌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419) 자유주의에 대한 믿음이 붕괴하는 현장이다.


개인주의에 대한 자유주의의 믿음

생명과학의 주장

나는 분리할 수 없는 존재이며 단일한 본질을 지니고 있다. 내 안 깊숙한 곳에서 단 하나의 분명한 내적 목소리가 바로 진정한 나이다

유기체는 알고리즘이고, 인간은 분리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여러 알고리즘들의 집합으로, 단일한 내적 목소리 또는 단일한 나는 없다

진정한 나는 완전히 자유롭다

인간을 구성하는 알고리즘들은 유전자와 환경의 영향을 받고, 자유의지가 아니라 결정론적으로 또는 무작위적으로 결정을 내린다

다른 누구보다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잘 안다

외부의 어떤 알고리즘이 나보다 나 자신에 대해 훨씬 더 잘 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시스템은 이미 우리 곁에 와 있다. 페이스북이 의뢰한 최신 연구는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이미 한 사람의 성격과 기질을 그 사람의 친구나 부모 또는 배우자보다 더 잘 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465) 10개의 좋아요만으로 알고리즘은 직장동료보다 실험 참가자를 더 잘 예측했다. 친구보다 잘 예측하기 위해서는 70개의 좋아요가 필요하고, 가족보다 더 잘 예측하기 위해서는 150개의 좋아요, 배우자보다 더 잘 예측하기 위해서는 300개의 좋아요가 필요했다. 클릭한 좋아요300개가 넘는다면 페이스북 알고리즘은 내 남편보다 나의 견해와 욕망을 더 잘 예측한다는 뜻이다. (466)


이렇게 자유주의는 세 가지 실질적 위협에 처했다. 첫째는 인간이 가치를 완전히 잃게 된다는 것이고, 둘째는 인간이 외부 알고리즘의 관리를 받게 된다는 것이며, 셋째는 일부 사람들은 업그레이드되어 필수불가결한 동시에 해독 불가능한 존재로 남아 소규모 특권집단을 이룰 거라는 점이다. (474)  


대중의 시대가 끝나고, 인간 병사와 노동자들이 알고리즘에 밀려나면, 잠들지 않고 아프지 않고 멈추지 않고 일하는 로봇들이 일자리와 전쟁터에서 활약하는 그 때가 되면, 가난뱅이 대중에게 투자할 필요가 무엇인가. 권력의 향배를 결정할 투표권을 대중에게 허락할 이유가 무엇인가. 업그레이드된 사피엔스, 초인간들이 보통의 인간, 자연 그대로의 인간을 이미 유행이 지난 버린 개인의 존엄과 평등이라는 20세기의 시선으로 바라볼 것이라 감히 추측할 수 있는가.  


전 지구적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 전지전능해지는 만큼, 시스템과 연결되는 것이 모든 의미의 원천이 된다.(529) 우리의 경험을 분주하게 데이터로 전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추세의 문제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이다. 우리는 자신이 여전히 가치 있다는 것을 자기 자신과 시스템에 증명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데이터로의 전환에 있다.(530)


유발 하라리는 세 개의 질문으로 이 책을 마무리한다.(544)



유기체는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데이터 처리 과정일 뿐이며, 이 세상에는 의미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지능과 의식 또한 그러하다는 주장. 자아라는 개념 역시 특별한 역사적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라는 주장, 우리보다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곧 출현할 것이며,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고 있는 알고리즘의 지배 아래 있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바로 눈 앞에 있다.


솜씨 좋은 유발 하라리의 설명과 논증에도 불구하고 의미에 대한 내 집착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만약 그러하다면,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한 데이터 처리 과정의 일환으로 이 세상에 유기체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유발 하라리라는 알고리즘은 왜, 세상에 이 책을 내놓았는가.


, 과거 속 사피엔스의 발걸음을 추적하고 미래의 인간에 대해 예상하려 하는가.


, 기술 인본주의의 도래와 데이터교의 위험에 대해 초인간이 되지 못할 현재의 인류에게 경고하려 하는가.


, 도대체 왜, 이렇게 두꺼운 책을 썼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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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행복하자 2018-02-13 2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라리도 몰라서 독자에게 물어보려고 아니면 스스로에게 계속 되물어보려고 하는걸까요? 어느정도 예측은 가능하되 어느것도 확실하지 않은 시대의 지식인들은 나름의 극한직업일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라리의 뇌를 살짝 들여다 보고싶습니다^^

단발머리 2018-02-14 08:24   좋아요 0 | URL
책 거의 끝날 부분에요. 하라리가 그러더라구요.
미래를 예측할 수 없지만, 이 책에 제시된 시나리오를 예언보다는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단 하나의 예상보다 지평을 넓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의 스펙트럼을 넓혀보자.....라고요.
하라리가 예측한 미래사회가 오히려 천천히 왔으면 좋겠다, 전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어요. ㅎㅎㅎㅎㅎ
하라리 뇌는 저도 좀 보고싶네요~~~
즐건 설 되세요, 지금행복하자님~~~~~^^

징가 2018-02-19 0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생각에 동의합니다. 님 말씀처럼 의미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규정짓는 것자체가 무의미를 정의하는 것이고, 무의미를 정의하기 위해선 의미가 존재해야한다는 모순적 결론에 도달하게 되네요... 결국 인간은 과거를 통해 미래라는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상하는 알고리즘에서 벗어날수 없는 건 아닐는지요. ‘오늘의 천재가 내일의 바보를 능가할수없다’ 는 말이 생각나네요

단발머리 2018-02-19 21:52   좋아요 0 | URL
새로운 형태의 신인류에 대한 유발 하라리의 설명을 듣다보니 어디까지가 인간인가,에 대한 질문이 멈돌았습니다.
어쩌면 저는 유기체는 알고리즘이라는 전제 혹은 명제에 동의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