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배우는데 정해진 나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있고, 망설여지는 나이가 있다. 서른 아홉에 피아노를 배우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서른 아홉에 피아노를 시작했다면 무슨 일인지, 무엇 때문인지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최근에 나온 『나이 들어 외국어라니』가 생각난다.










 






저자 서진은 부산대 전자공학과 박사과정을 중퇴하고 캘리포니아를 유랑하던 중 소설을 쓰리라 결심한다. 2007년 세번째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힘들고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 여행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2년간 캘리포니아에 거주했던 경험 이후로 잠들어 있던(?) 방랑벽이 살아났다. 결혼 전에는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지, 결혼 후에는 하와이와 동남아시아, 로마 등지에서 두세 달씩 살고 있다. 2015년 봄부터 제주에서 문어를 잘 잡는 여자, 늙은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어쩌면 지금은 제주집을 비워두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을 수도 있다.

 


 

이상했다. 나는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세상은 유유히 잘 돌아가고 있다니. 인생의 중대한 고비도 그러한데 내가 소설을 완성하든 말든 세상은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이 당연했다. 결국 나는 3년째 잡고 있던 소설을 실패라고 인정하고 집필을 중지했다. 오피스텔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억울하고, 아쉽고, 슬프고, 바보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가뿐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결말을 지었으니까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겠지. (25)

 


 

실패는 나의 것이다. 내가 원하는 일, 내가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실패는 내 것이다. 세상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 실패를 알지 못 한다. 세상은 내 실패를 모른 채 그냥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잘만 돌아간다. 그렇다면, 그 실패가 나만의 것이라면, 그렇게 많이 낙심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렇게 많이 절망하지 않아도 되겠다. 실패는 나만의 것이고, 뼈아픈 실패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물론 다시 시작할 무언가가 무엇일지 찾는 게 우선이겠지만 말이다.

 


화창한 오후다. 나만의 실패와 실랑이하다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실패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바뀌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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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7-04-27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두 문장은 절창인데요!!♥^^

단발머리 2017-04-28 13:38   좋아요 0 | URL
히이잉~~~~ 감사해요 순오기님^^
저도 하트하트 뿅뿅을 순오기님께 날립니다.*^^*

해피북 2017-05-03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패가 나만의 것이라면 그렇게 많이 절망하지 않아도 되겠다. 실패는 나만의 것이고, 뼈아픈 실패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

이 부분이 참 좋네요.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ㅎ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읽고 있어서인지 마음에 훅 들어왔어요~~잘 읽고 갑니다^~^

단발머리 2017-05-08 12: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해피북님이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시고 그래서.... 더 즐겁네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그 다음날 마셨구요.
저도 오늘은 따뜻하게 한 잔 해야겠어요. ㅎㅎㅎ
 
행복한 주부 여주인공
내가 미친 게 아닌가 하고 궁금했다
WAM (Wives and Mothers)
여성의 신비 이매진 컨텍스트 6
베티 프리단 지음, 김현우 옮김 / 이매진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완벽한 교외 주택 단지에 거주하며 행복한, 혹은 행복해 보이는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는 전업 주부들. 여성의 가장 큰 가치와 유일하게 전념해야 할 목표는 가정 안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완성이라고 가르치는 여성의 신비에 사로잡힌 전업주부들에 대한 면담과 연구를 통해 저자 베티 프리댄은 여성의 신비시작점과 그것이 사회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과정, 그리고 여성의 신비 신화의 직접적인 수행자이자 피해자인 여성들의 삶을 조망한다.


677, 이 책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많은 수의 10대 소녀들이 조혼을 통해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소녀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한 채로, 혹은 대학을 다 마치지 못한 상태로 결혼했다. 아이를 낳았고, 계속해서 또 아이를 낳았다. 행복한 주부 여주인공으로 살고 있는 여성들은 생각보다 행복하지 못한 스스로를 발견하고 괴로워했다. 우울감을 호소했고, 공허함을 느끼고, 불완전하다는 기분이 드는 자신을 설명할 수 없었다. 진정제를 복용하기도 하고, 감정이 격해져 아이들에게 심하게 화를 내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했다. 왜 그럴까. 교외 전원 주택, 능력 있는 남편과 귀여운 아이들, 안정적인 소득이 주는 경제적인 만족감, 자유로운 여가 시간. 그럼에도 왜 그녀들은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무력감에 빠져드는 것일까.



오늘날 여성 문제의 핵심은 성적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에 관한 문제, 즉 여성의 신비 때문에 영속화된 성숙을 방해하고 기피하는 문제라는 것이 내 논제다. 또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가 당시 여성들로 하여금 기본적인 성적 욕구를 인정하거나 충족시키지 못하게 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문화 구조가 여성으로 하여금 인간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 발전시키려는 기본적인 욕구, 즉 성역할에 의해서도 전혀 제한 받을 수 없는 욕구를 인정하거나 충족시키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것이 내 논제다. (150)



저자는 여성의 신비로 인해 가정과 가족들에게만 그 임무가 인정된, 오직 그 임무에만 한정된 여성으로서의 삶이 그녀들을 옥죄고 있다고 판단한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로서만 그 정체성이 규정될 때, 삶의 무력감,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들에게 이런 여성의 신비를 가르치고 유통시킨 건, 그녀들의 유일한 읽을거리였던 여성지였고, 대부분의 여성지는 이제 막 전쟁터에서 돌아와 따뜻한 가정의 품을 원했던 남자 편집자들의 이상형을 그려내는 방식으로 극대화되었다.(111) 여성의 신비가 갖는 힘은 프로이트의 사상에서 나왔다. (196) 프로이트는, 여성은 남성의 사랑을 받기 위해, 그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남자의 사랑에 의해 존재하는 어린아이 같은 인형으로 보았다.(203) 프로이트 이론은 미국의 현실에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보여줬고, 프로이트 이론에 의해 과학적인 종교로 격상된 여성의 신비는 여성을 단순화시키고, 과잉 보호하고, 생활을 제한시키고, 미래를 부인하게 했다. (228)


소녀들은 대학에 진학했지만, 대학에서는 소년들과 다른 교육을 받았다. 여성지향적 교육자들은 소년들을 잠재력을 가진 사람, 문화 속에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격려했지만, 소녀들에게는 성적 판타지를 자극했다. 여성성의 이미지, 즉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며, 순응적인 사고 및 행동을 소녀들에게 강요했으며, 여성 정체성 결핍의 해결책으로 조기 결혼을 제안했다.(290)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인식,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고민과 노력 없이 가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여성들은 물건을 구입함으로써, 주체성, 목표, 창조력, 자아실현, 심지어 여성에게 부족한 성적 희열까지도 얻게 된다는 이야기를 믿게 된다. 반짝반짝 빛나는 순은의 주방용품을 사용할 때, 특별한 가스렌지 세척제를 사용해 티없이 깨끗한 가스렌지를 새롭게 창조해냈을 때, 자신의 가치도, 인생의 목적도 찾게 되리라 믿게 되었다.



나는 페미니즘의 이유와 여성의 좌절이 생기는 실제 이유 모두가 주부의 역할에서 오는 공허감 때문이라고 여겼다. 사회의 중요한 역할과 그 결정은 집 밖에서 일어나고 있고 여성은 이 역할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으며, 그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했다. (402)



전업주부 여성들이 하루 종일 몰두하는 주부의 역할, 집안일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무한히 계속되는 일이다. 누구나 하기 싫은 일이며,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다. 여성이 하는 일, 즉 가사는 그녀에게 어떤 지위도 줄 수 없다. 그것은 사회의 어떤 일보다 낮은 지위이다.(447) 집안일의 피로에 대한 주부들의 호소에 대해 의사들은 피로가 아니라, ‘권태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416) 인간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채, 가정이라는 좁은 벽 속에서 제한된 일을 반복하게 되었을 때, 여성들의 허탈감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조사결과가 이어졌다. 아이들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강박이 자녀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이어지고, 어머니의 과잉 보호 때문에 응석받이로 자란 아이들에 대한 보고 또한 있었다. (338)


그녀들을 고통 속에 몰아 넣는 건 일상이다. 지루하게 끝없이 이어지는 똑같은 일상 때문에 그녀들은 공포를 느낀다. (513) 인간으로서의 욕구, 즉 먹이와 성, 생존의 욕구처럼 지극히 본능적인 지식의 욕구와 자아 인식의 욕구가 계속해서 거부당하기 때문이다. (514)


편안한 포로수용소에 갇혀 어제와 똑같은 오늘, 오늘과 똑같은 내일을 사는 여성들에게 저자는 새로운 인생 계획을 시작하라고 제안한다. 자율성과 자기인식, 그리고 독립성, 개성, 자아실현을 위한 욕구를 가진 여성으로 살아가라고 말한다. (530) 인간사회에 공헌하는 창조적인 과업을 수행하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라고 말한다. (543) 인간의 전 생애라는 관점에서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라고 제안한다.



한 인간의 전 생애라는 관점에서 설계의 첫번째 단계는 가사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즉, 하나의 직업이 될 수 없고, 가능한 빠르고 능률적으로 해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여성 지향적 교육의 산물인 여성으로서는 가장 힘든 것인데, 결혼에 대한 여성다움의 환상적 틀이 부과한 과잉 찬미의 장막을 걷어 버리고 진정한 실체를 보는 것이다. (557쪽)



저자는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무급지도자 혹은 자원봉사 지도사로서 일하기 보다는 석사학위나 박사학위를 가진 전문가가 되라고 제안한다. 또한 여성에게 금지된 일, 즉 예술이나 과학, 정치나 전문직을 장기적인 차원에서 계획하고 계속 그 일을 해나가는 여성들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문제로 고통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566) 하지만, 그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여성들에게는 냉정한 충고를 건넨다.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들이 듣고 보고 읽는 데에 돈을 내기 싫어하는 수준인 아마추어나 동호인들은 그 사회 내에서 실질적인 지위를 얻을 수 없으며, 실질적인 인격적 주체성도 갖지 못한다. 그런 지위나 주체성은 노력하고 지식을 얻고 전문가가 되려고 하며 전문적 지식을 쌓는 이들에게 돌아간다. (567)



저자는 직업여성이 갖는 죄의식 증후군과 다른 주부들의 적의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올가미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교육뿐이라고 말하며,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교육은 정규대학과 종합대학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588) 이를 위해 대학의 학부과정이나 석사과정이 시간제로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것이야말로 주부들이 단순히 아마추어로 끝나지 않게 하는 유일한 교육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602) 완전히 자유롭게 되어 진정한 자신이 되라고, 남성, 어린이와 함께 정원과 생물학적인 역할 뿐 아니라, 인간의 미래를 창조하는 일과 인간의 모든 지식에 관한 책임과 열망 또한 나누어 가지라고, 여성 자신에 대한 탐구를 이제 시작하라고, 그녀는 말한다.



대학을 졸업한지 20년이 지난 여성들에게, 20대 초반의 대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시작하라는 저자의 마지막 제안은 조금 충격적이기까지 한데, 그녀가 그 어렵고 힘든 일을 해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 책의 마지막 제안은 독자를 향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주문과 같다. 그녀의 주문은 마법 주문이어서, 그녀의 책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그녀는 예전의 자신, 교외의 전업주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살고 있던 지역에서 따돌림을 당해 도시로 이사가야 했고, 결국에는 완벽하게 바뀌어 버린 자신의 삶처럼 사회를 바꾸기 위한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성적 차별에 반대하는 법률을 강제하지 않는 회사에 대항해 싸웠고, ‘NOW (National Organization for Woman)’을 창설했다. 이후 중산층 백인여성 중심의 자유주의 페미니즘 또는 개량주의 페미니즘이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고전으로서 이 책이 가지는 가치는 조금도 감소되지 않았다. (옮긴이, 676)



이 책이 오늘날까지 빛나는 이유는, 책 속의 인용 부분, 가정이라는 벽에 갇혀 절망하고 방황하는 숱하게 많은 여성들의 고민과 갈등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고민들이 바로 내 것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미술이니 조각이니 문학 등의 창조적인 일을 하고 있는 행복한 주부상은 여성의 신비에 물든 환상 중의 하나이다. 그렇게라도 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 … 그것은 여성에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자신의 직업에 대해 진지하다면,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집이 아닌 다른 장소를 찾아야 한다. 또는 자기 아이들에게 그녀의 일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성급하게 프라이버시의 공간과 시간을 요구하다가는 귀신 같은 존재가 되어버릴 수 있음도 감수해야 한다. … 차라리 9시부터 5시라는 시간의 확실한 구별이 직업과 가정을 양립시키는 데 있어 더 훈련하기 쉽고, 덜 외로울 것이다. 전문직업 세계의 일부로 나타나는 어떤 자극과 새로운 친교 관계는 집안에서 가정주부라는 물리적 제한에 얽매여 놓으려는 여성에게는 있을 수 없다. (570쪽)

사회의 주류에 참여함으로써, 그 사회를 형성하는 모든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발언권을 행사함으로써 여성이 완전한 인간의 잠재력에 도달하기 위해서 여성에게는 오로지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완전한 정체성과 자유를 갖기 위해 여성은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6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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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7-05-06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주부 여주인공> http://blog.aladin.co.kr/798187174/9264441
<내가 미친 게 아닌가 하고 궁금했다> http://blog.aladin.co.kr/798187174/9270294
<WAM (Wives and Mothers)> http://blog.aladin.co.kr/798187174/9299364
 
여성의 신비 이매진 컨텍스트 6
베티 프리단 지음, 김현우 옮김 / 이매진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5 장 프로이트의 성적 유아론>

 

 


여성의 신비가 갖는 힘은 프로이트의 사상에서 나왔다. 프로이트주의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여성의 신비를 강화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기는 쉽지 않다. 여성에 대한 새로운 신화가 교육이나 사회과학에 의해 유포됐고, 프로이트 사상의 특징이 이 문제를 반박하기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96)

 


프로이트가 보편적인 인간성의 특질로 묘사했던 것들은 단순히 19세기 말 어느 유럽 중산층의 남자와 여자의 특성일 뿐이다. (200) 사회과학자로서 자신이 속한 시대의 과학적인 틀 안에서 관찰한 것만을 설명할 수 있다는 한계는 프로이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프로이트는, 여성은 남자를 사랑하기 위해, 그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남자의 사랑에 의해 존재하는 어린아이 같은 인형으로 봤다.(203) 또한 여성의 남성에 대한 시기를 성적인 질병으로만 보았으며, 평등에 대한 여성의 갈망은 남근 선망으로만 이해했다.(218) 프로이트와 그 후계자들은 여성은 신에 의해서 주어진, 변경할 수 없는 열등한 특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219) 결과적으로 프로이트 이론의 적용은 미국에 사는 오늘날의 여성이 빅토리아 시대의 여성과 다르지 않다는 오해에 사로잡혀 있다.(220) 일반에까지 확대된 프로이트의 틀은 한 가지 대답만을 반복한다. , 교육, 자유, 권리가 여성에게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225)

 


미국에서 프로이트 이론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프로이트 이론이 객관적인 현실에 나타나는 문제들을 해결했기 때문이다. (226) 전쟁 이후 불경기가 지난 다음 프로이트 심리학은 인간의 행동과학 이상이 됐다. 미국의 이데올로기와 새로운 종교가 되었고, 프로이트의 이론은 성서가 되었다. 또한 대중매체의 작가나 편집자, 광고대행업소, 그들의 뒤를 이은 대학과 대학교에 있는 프로이트 사상의 번역자나 보급자들의 창조물에 의해 여성성 신화가 강화되었다. (227)

 


프로이트 이론에 의해 과학적인 종교로 격상된 여성의 신비는 여성을 단순화시키고, 과잉 보호하고, 생활을 제한시키고, 미래를 부인하게 했다. (228) 여성의 신비 속에 여성을 가두어 버렸다.

 

 

 


<6장 기능주의적 고착, 여성성 주장, 마가렛 미드>

 

 

기능주의자들은 해부학이 모든 운명을 결정한다는 프로이트의 학설을 전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여성은 사회가 말하는 대로 존재한다는 한정된 규정을 받아들였다. (243)

 


기능주의와 여성성 주장 모두의 관점에서 현대 여성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을 준 사람은 마가렛 미드였다. 한 사람의 사회과학자로서, 여성으로서 그녀는 오랜 생활 속에서 봐온 여성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고 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연구는 프로이트의 신체상의 유사점에 근거를 두었기 때문에, 여성의 신비를 찬미함으로써 여성에 관한 자신의 관찰이 갖는 가치를 삭감시켰다. (258)

 

 

 


<7장 여성 지향적 교육자들>

 

 


한 소녀가 1945년에서 1960년 사이에 대학에 갔다면, 꼭 배우게 되어 있는 제1과는, 그녀가 정상적이고 행복하길 원하며 순응하고 여성적이며 성공적인 성생활을 원한다면 결혼 뒤 자녀를 갖는 것 이외에 다른 일에 흥미를 가지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275)

 


유능한 여성에게 새로운 영역과 넓은 세계를 열어주는 대신, 여성 지향적인 교육자는 가정과 자녀의 세계로 여성들이 적응하도록 가르쳤다. 과거의 편견에 대항할 수 있는 진리 또는, 편견에 맞설 수 있는 비판적 사고방식을 가르치는 대신, 여성 지향적 교육자는 모든 전통적인 행위나 금기보다, 장래의 영혼과 편견에 더욱 맹목적이고 비판력이 없는 훈련과 육감, 소소한 이야기들로 소녀들을 교육시켰다. (277)     

 


어떤 유명한 여자대학은 방어책으로 우리는 여대생을 학자가 되도록 교육시키지 않는다. 다만 부인과 어머니가 되도록 교육시킨다는 슬로건을 채택했다(그 여대생들은 이 슬로건을 반복하는 데 지쳐서 그 슬로건을 ‘WAM (Wives and Mothers)’이라고 단축했다). (279)

 


여성지향적 교육자들은 소년들이 잠재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문화 속에서 인정받는 직업 세계에 대해 꿈꾸기를 기대한다. 반면, 소녀들에게는 자율성을 위한 잠재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대신, 성적 판타지를 자극했다. (290)

 


여성성의 이미지란 여성은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며 순응적이어서 결정적인 생각이나 사회에 독창적인 공헌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309)

 


여성의 정체성 결핍으로 이끄는 여성 지향적 교육은 조기 결혼으로 가장 쉽게 해결될 수 있다. (312)

 

 

 


<8장 잘못된 선택>




 공황에 이은 전쟁 직후, 여성의 신비가 신봉된 시기는 전쟁의 공포, 외로움이 지배하던 때였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남성들은 따뜻한 가정을 그리워했고, 여성들 역시 쉽게 여성의 신비에 빠져들었다. 전쟁 후에는 항상 아기들이 많이 태어났지만, 미국의 상황은 특수했다. 미국 여성들은 아이를 서너 명 가진 사람이 20년 동안에 배로 늘어났고, 전후에 교육을 받은 여성들은 아기를 더 많이 가지라고 다른 여성들에게 권했다. (318) 메트로폴리탄 생명보험회사의 통계에 따르면 1940년에서 1957년 사이에 십대가 낳은 아이들은 165퍼센트 증가했다고 한다. (318) 대학에 갈 나이가 된 소녀들이 결혼을 하는 것도 여성의 신비를 믿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319)

 


전쟁이 끝나자 군인들은 다시 돌아와서 그동안 여자들이 다니고 있던 직장이나 대학교로 다시 복귀했다. 그래서 얼마 동안은 남녀 사이에 경쟁이 늘었고, 케케묵은 여성에 대한 반감이 되살아나 여자들이 직장을 구하거나 승진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이런 점이 확실히 여성들에게 다시 결혼과 가정으로 돌아가게 했다. (320)

 


프로이트의 현미경을 통해 가족에 대한 개념이 새로이 나타났다. … 이제 모든 것은 어머니 책임이라는 것이 갑자기 발견됐다. 문제아, 알콜중독자, 자살자, 정신분열증 환자, 정신병자, 노이로제에 걸린 어른, 발기불능, 동성애자, 불감증 여인, 위궤양 환자, 천식환자 등 모든 비정상적인 사람이 있으면 이제는 전부 어머니에게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325)

 


정신 분석학자인 데이빗 레비는 유명한 모성의 과잉 보호에 관한 매우 유명한 연구에서, “어머니의 과잉 보호, 유아화와 응석받이로 아이들을 망쳐놓은 20명의 어머니들을 아주 세밀하게 살펴보았다. (338)

 


애정의 결핍이 노이로제의 원인일까, 아니면 아이의 독립적인 자아를 지나치게 흡수해 아이가 지나친 사랑의 기대를 갖게 하는 중산층 부모의 과잉보호가 그 원인일까?(342)

 

 



<9장 성과 판매술>

 



미국 주부들은 물건을 구입함으로써 주체성, 목표, 창조력, 자아실현, 심지어 여성에게 부족한 성적 희열까지도 얻게 된다고 한다. (353) 백화점은 이러한 학습의 장이며, 소비 활동, 즉 순은의 주방용품, 가스렌지 세척제, 욕실용 화장지 등의 구입을 통해 여성이 속한 가정이라는 세계가 완전하고 아름답다고 선전한다.

 


상품을 구매하는 행위는 가정과 가족이 해결해 줄 수 없는 욕구를 충족해 준다 주부가 갖는 자기 이외에서 일체감의 대상을 찾으려는 욕구”, “삶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하는 목표를 타인과 더불어 추구하려는 움직임”, “개개인이 자기의 노력을 헌신할 수 있는 확실한 사회 목적등도 구매행위를 통해 이루어진다. (378)

 

 



<10장 무한히 계속되는 집안일>



 

여성의 신비가 내포한 이중적 기만이란… 1. 여성이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에 알맞은 역할을 박탈당할수록, 집안일과 어머니로서 해야 할 일, 아내로서 해야 할 일은 늘어난다. 그리고 더욱 더 집안일이나 어머니로서의 일을 끝내려 하지 않고 할 일을 남겨두려 할 것이다. (여성도 분명히 인간의 본성대로 진공상태를 혐오한다.)  2. 집안일을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그녀가 하고 있는 다른 일이 해볼만한 가치가 있느냐에 따라 반비례해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가사일 외에 특별한 흥밋거리가 없는 여성은 그녀의 순간 순간을 사소한 집안일에 바칠 수밖에 없게 된다. (401)

 

 

나는 페미니즘의 이유와 여성의 좌절이 생기는 실제 이유 모두가 주부의 역할에서 오는 공허감 때문이라고 여겼다. 사회의 중요한 역할과 그 결정은 집 밖에서 일어나고 있고 여성은 이 역할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으며, 그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했다. (402)

 

 

미국의 주부들이 갖고 있는 딜레마는 자신이 정말로 관심이 있는 것을 추구할 자신이 없고, 설령 혼자만의 시간과 장소가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데 있다. (411)

 


주부들의 피로에 대한 호소에 대해 의사들은 피로가 아니라 권태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사들은 그 원인이 주부와 어머니로서의 역할"에 있다고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시된 치료법은 남편들의 더 많은 칭찬과 감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416)

 

 



<11장 성을 추구하는 사람들>

 



결국, 지위란 남자들이 사회에서 하는 일에서 획득되고 찾아지는 것이다. 여성이 하는 일, 즉 가사는 그녀에게 어떤 지위도 줄 수 없다. 그것은 사회의 어떤 일보다 가장 낮은 지위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여성이란 주부에 불과하다라고 정의될 때 집과 물건들은 그녀와 동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남편과 심지어 아이들까지도 지위의 상징이 되는 것이다. (447)

 

 



<12장 비인간화의 증대 편안한 포로수용소>

 

 


아이들을 더 사랑하게끔 어머니들을 타이르는 것을 멈추게 해야 할 때이다. 또한 여성은 가정과 아이들에게 완전히 자기 자신을 바쳐야 한다는 신비의 요구와 현재 소아과 병원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그 어머니들이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의 관심거리를 갖도록 도와줄 때에만 해결된다. (499)

 


여성들이 자기의 힘을 완전히 사용하도록 허용될 때, 또 여성 자신이 완전한 노력으로 성장하도록 허용될 때에만 여성의 신비는 일소될 것이며, 아이들의 인간성 상실의 현상이 그칠 것이다. (499)

 


여성의 신비라는 관념 속에 사는 여성들은 자신을 가정이라는 좁은 벽 속에 가두어 놓지 않았는가? 그들은 생물학적인 역할에 적응하도록 배웠다. 그들은 의존적이며 수동적이 됐고 어린 아이같이 됐다. 즉 그들은 음식이나 물건과 같은 낮은 수준에서 살기 위해서 인간으로서의 삶의 틀을 포기했다. 그들이 하는 일은 성인으로서의 능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고 지루한 것이고 보상이 없는 것이다. (503)

 


미국의 주부들은 올가미 속에 갇혀 있고 거기에서 벗어나야 하며 댄서처럼 결국에는 자신의 인간적인 자유를 행사해 자아의식을 회복해야 한다. 미국의 주부들은 자신의 선택에 따라 다시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고 이름없고 비인간적으로 조종당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성장해야만 한다.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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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여성의 신비‘에 맞서고자 할 때
    from 책이 있는 풍경 2017-05-12 13:50 
    완벽한 교외 주택 단지에 거주하며 행복한, 혹은 행복해 보이는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는 전업 주부들. 여성의가장 큰 가치와 유일하게 전념해야 할 목표는 가정 안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완성이라고 가르치는 ‘여성의신비’에 사로잡힌 전업주부들에 대한 면담과 연구를 통해 저자 베티 프리댄은 ‘여성의 신비’ 시작점과 그것이 사회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과정, 그리고 여성의 신비 신화의 직접적인 수행자이자 피해자인 여성들의 삶을 조망한다.677쪽, 이 책을 거칠게
 
 
2017-04-24 16: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4 16: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피북 2017-05-03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저 고교시절에 가사 수업이 있었네요. 가사실습이라고 해서 바느질하고 음식만들고 다도를 배웠던 기억이 납니다. 왠지 좀 억울해지네요. 그리고 여성 잡지가 유일한 정보지였던 시절. 편집장의 성향에 따라 사람들 인식이 바뀔 수 있다는 것도 좀 무섭다는 생각이 들고요. 또 프로이드의 이론을 학창시절에 대충 배우긴 했는데 여성에 관해 이런 인식이 있었던 것은 몰랐어요. 프로이트도 다시 만나봐야 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2017-05-05 2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미니즘은 성별(남성성/여성성)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성별에 대한 비판만으로는 성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 어떠한 사회 문제도 젠더나 계급, 나이 등 한 가지 모순으로 작동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낯선 시선>, 14)



페미니즘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위키백과에는 여성주의 또는 페미니즘여성 억압의 원인과 상태를 기술하고 여성 해방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운동 또는 그 이론이라고 정의해 두었으나, 내게 더 쉽게 다가왔던 페미니즘 정의는 아래와 같다.




페미니즘은 사람들 간에 무수한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차이보다는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훨씬 크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차이에 주목하기 때문에 차이가 커 보이지만, 공통점에 주목하면 공통점이 훨씬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40)








남자와 여자라는 차이보다 인간이라는 공통점에 주목하는 생각들이 페미니즘이라는 주장이다. 더 간단한 것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페미니즘 정의다.




여자도 사람이다(이게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생각이라는 것, 나도 안다). 여자도 털이 난다. 여자도 땀이 난다. 여기에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다. 잘못된 것은 우리가 타고난 신체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도록 길들여졌다는 것, 그리고 그 때문에 우리의 건강과 행복이 공격받고 있다는 것이다. (<여자다운게 어딨어>,  212)







누군가 내게 페미니즘이 도대체 뭐냐고 묻는다면, 페미니즘이란 여자도 사람이다라는 주장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니, 도대체 누가 여자를 사람이 아니라고 했는가. 당연히 여자도 사람이다.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여자는 사람이지만 아직 사람이 아니다,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예컨대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민주사회에서 자궁을 가진 개인은 독립적인 법적 지위를 가지지 못했으며 평의회 의원이나 판사가 되는 것을 금지당했다.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사업을 하거나 철학적 논의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 아테네의 정치 지도자, 위대한 철학자, 웅변가, 예술가, 상인 중에 자궁을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피엔스>, 214)







지금 상황은 기원전 5세기 아테네와 다른가. 여성은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인정받고 있는가. 내가 가진 여러 정체성 중에 여성은 여러 정체성 중 하나다. 나는 여성이고, 한국인이다. 딸이고 아내이고 엄마이고 며느리다. 시민이고 주민이고 교회공동체의 구성원이다. 친구고 언니이고 동생이다. 나의 여러 정체성 중에 여성이라는 정체성만 강조한다면, ‘여성이라는 정체성만을 강요한다면, 그건 개인으로서의 나를 무시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나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제는 페미니즘을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남녀평등이 이루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정말 그런가.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남녀 임금 격차(gender wage gap)를 발표한 2000년부터 부동의 1위를 지켜 왔다. 2014년도 역시 압도적 1위였다. 한국 여성은 남성보다 36.7퍼센트 덜 받는다(2위 에스토니아는 26.6퍼센트). 2015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 지수에서도 한국은 29개 조사국 중 29위를 기록했다. 세계경제포럼의 성차별 지수 역시 145개국 중 115위다. (<낯선 시선>, 257)



그러니까, 위의 통계로만 이해하면, 한국의 여성은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36.7 퍼센트의 임금을 덜 받는다. 키가 작다는 이유로, 얼굴이 잘생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피부색의 이유로, 머리카락 색깔의 이유로 차별을 받는 건 옳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생식기의 차이 때문에, 자궁이 있다는 이유로, 여성은 똑같이 일하고 남성보다 적게 받는다. 지금도 그렇다.



물론, 페미니즘은 여성 문제만 다루는 것은 아니다. 페미니즘은 성별, 즉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기는 했지만, 그 구별(젠더)가 만들어낸 효과로서 젠더가 작동하는 현실을 문제 삼는다. (<낯선 시선>, 14) 또한 지식의 형성 과정, 권력의 작동 지형과 역사를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는 학문이자 실천 방식이 바로 페미니즘이다. (<페미니즘의 도전>, 11) 여성이 처한 환경과 상황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해 모성과 여성 혐오, 자본주의 하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고민은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성 정체성에 대한 사고로, 노동과 과학 그리고 환경으로 관심 범위가 확대된다.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의 목차 그대로다.







마지막으로,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페미니즘의 가치는 자기 성찰이다.



그렇게 다양한 측면에서 본 사람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 자신이 본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 자신의 무지를 알아 가는 과정. 바로 이러한 소통과 연대가 제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입니다.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24)  





내게는 이번 여행이 내 안의 부족함을 들여다보고 다시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과거의 나를 부끄러워하고 지금의 나 역시 완벽하지 못한 인간임에 절망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사실을 깨닫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 이번 여행의 또 다른 수확이다. 그래, 내가 그동안 공부를 해왔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어. 만약 내가 공부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가 이렇게나 분명하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음에도 나는 알아채지 못했을지도 몰라. 그래서 나는 더 읽고, 더 보고, 더 듣고, 더 이야기하고, 더 써야겠다고 새삼 결심했다. (<잘 지내나요?>, 157)  






자신이 본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 자신의 무지를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 자신이 완벽하지 못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럼에도 또 다시 공부하겠다고, 알아가겠다고 결심하는 것, 나는 이것이 페미니즘을 통해 개인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성과라 생각한다.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 내가 생각없이 무심코 뱉은 말이 다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알아챌 수 있는 감각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이라 생각한다. 페미니즘이라는 하나의 시선을 통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자신과 조건, 상황이 다른 인간을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고 믿는다.


나는 여성으로서 차별과 차이 속에 살아왔지만, 이성애자이기에 성정체성과 관련해 불편을 겪은 적이 없다. 나는 전업주부로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소외되어 있지만, 직장일과 가사 노동, 이중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어려움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다. 나는 40대로서 대학에서 학점에 목매며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도 (어디든, 어떤 직장이든) 정규직으로 취업했던 세대로, 취준생과 비정규직의 절망을 잘 알지 못했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으로 서울 중심의 사고를 당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여성으로서 내가 겪었던 불합리와 모순을 인식하게 되면서, 그리고 그 거짓말들이 다른 상황에서 다른 모양으로 변용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됐다.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왜 여성주의가, 페미니즘이 그 시작점이냐는 질문은, 바보 같은 질문이다. 전 세계 인구의 절반은 여자이고, 예전부터 지금까지 여성은 한결같이 차별의 대상이다. 여성,이라는 성별 때문이다.



알려진 모든 인간 사회에서 최고로 중요한 위계질서가 하나 존재한다. 바로 성별이다. 사람들은 어느 곳에서나 스스로를 남자와 여자로 구분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곳에서 남자가 더 좋은 몫을 차지했다. 적어도 농업혁명 이후로는 그랬다. (<사피엔스>,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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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7-04-21 16: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의 글을 읽으니 문득 첫 직장에서의 일이 생각납니다. 저와 입사 동기였던 남자사원의 급여명세서를 정말 우연하게 본 일이 있거든요. 보니까 기본급 부터가 다른거예요. 제가 물었죠. 왜 차이가 나는거냐고. 그랬더니 정말 당연하단 표정으로 ‘남자잖아‘라고 이야기 하더라고요. 그때 그 표정과 말투는 아직까지 잊혀지지가 않아요 .

모든 문제의 출발이 단발머리님 말씀처럼 ‘같은 사람‘이라는 인식의 부재에서 출발하는거 같아요. 나도 너랑 같은 사람이까 같은 혜택을 주면 되는데 ‘너는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는 인식이 차별을 만들고 불평등을 낳아버리는거라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의 시작은 ‘여성‘에서 시작했지만 결국 사회문제, 세계 문제와 귀결되는 아주 폭넓은 이야기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이 글을 읽고나니 갑자기 두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갑니다 ㅋㅂㅋ~~

단발머리 2017-04-24 14:57   좋아요 1 | URL
저도 같은 경험이 있는대요. 저는 급여 설명해주시는 대리님과 마주 앉아서 이야기듣다가 깜놀표정 지었더니, 그 분이 저를 위로해 주시더라는... ㅠㅠ

제가 페미니즘 책 읽어가면서 느끼는 건, 겉으로는 아니라는 거예요.
시작은 똑같아요. 그래, 여자도 사람이지. 여자도 인간이야. 하다가요....
그 다음부터 다른 말을 합니다.
그래도 네가 여자잖아. 아니지, 그건 여자가 할 일이지. 이러면서요.
여성문제에서 시작해서 노동문제, 환경문제로 점점 넓혀가더라구요. 페미니즘이요.
손에 바짝 힘 넣고.... 아자아자 파이팅!

AgalmA 2017-04-22 08: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캠에서 ˝여성청년 고용의무 할당제˝ 공약 내놓고 또 페미니즘, 역차별 논란 화력이 활활이던데... 기술 발전되어서 성별이 무의미해지는 시대 되면 또 뭘로 싸울라나 싶어요 ㅎ; 결국 소수의 기득권-다수의 피지배 계층 이 구도 속에서 이뤄지는 거겠죠.

단발머리 2017-04-24 15:00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제가 토요일에 조기숙 교수님 북콘서트 다녀왔는데, 조기숙 교수님은 문캠이 여성 공약문제에 대해 조심하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구요. 예를 들어 여성청년 고용의무 할당제나, 여성 장관 몇 프로... 이런 공약은....
대통령 되시고 그냥 하시라고~~~~ 지금 말하지 않아도 되는데....
부동층 남성 20대 이야기 하시더라구요. 여러 모로 고민되는 요즘입니다.
 
잘 지내나요? - 나, 너, 우리를 향한 이해와 공감의 책읽기
이유경 지음 / 다시봄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글에는 글쓴이가 보인다. 글을 읽으면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글쓴이에 대해 알게 된다. 의식하던 의식하지 않던, 글쓴이는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드러낸다. 글이라는 수단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소설가 이승우씨가 그랬던가. 소설을 쓴 이후로 나는 일기를 쓰지 않습니다.


글을 읽으면 글쓴이를 만난 것과 마찬가지다. 소설이라면 그(그녀)가 만든 세계 속에서 주인공 혹은 등장인물 중 하나로 변신한 작가를 만나고, 에세이라면 좀 더 가까이에서 글쓴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글쓰기 책에서 배우는 글쓰기 비법은 소용없을 때가 많은데, 글쓰기 책에 쓰인 대로 글을 쓴다고 해서 재미있고 의미 있는 글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가…) 어디까지나 글은, 글쓴이가 가진 매력에 근거해 존재한다. 소설 속 주인공의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면, 소설 속 주인공이 매력적이지 않다면, 에세이 속 작가의 말이 설득력이 없다면, 그 글은 제대로 읽힐 수 없다. 글은 어디까지나 글쓴이가 가진 매력에 빚진다.



공감의 작가 이유경의 두번째 책  『잘 지내나요?에서 그녀가 읽어낸 다양한 책들과 그녀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그녀가 소개한 책들을 읽고 싶어진다. 그녀의 말에 더 귀 기울이게 되고, 그녀의 제안에 고개 끄덕이게 된다.



그래, 그래서 사랑은 고백해야 한다. 널 사랑해,라고 고백해야 한다. 늦지 않게. 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말해야 한다. 좋아하니까 사귀자거나 같이 자자는 게 아니어도, 내가 너를 좋아한다는 사실쯤은, 내가 당신에게 반했다는 사실쯤은 상대에게 기억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나 또한 내 마음을 전하지 못한 채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그것은 더한 슬픔이 아니겠는가. (186)



기나긴 짝사랑의 기억 때문에 나는 한결같이 고백에 부정적이다. 응답 받지 못한 사랑, 대답을 듣지 못하는 사랑의 지루하고 서글픈 시간과 시간들을 나는 미워한다. 하지만, 그녀의 글을 읽고, 고백하라는, 고백해야 한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생각이 바뀐 나를 본다. 내 사랑이 응답 받지 못했던 건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고백하지 않아서가 아닌가,하는 엉뚱한 생각이 고개를 든다. 맞다. 좋아하니까 사귀자는 이야기는 아니었어도, 좋아한다고, 좋아하고 있다,고 까지는 말했어야 했다. 사랑을 아는, 그녀가 내게 말한다. 사랑받는 일에도, 사랑하는 일에도 망설이지 말라고.



이런 얘기라면 또 어떤가. 『타이베이의 연인들』 속 하루카는 헤어지면서 에릭에게 받은 전화번호가 적힌 쪽지를 잃어버린다. 서로 연락할 방법을 찾지 못했던 두 사람은 상대가 있는 곳으로, 실은 정확히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면서 그 먼 거리를 움직인다.(39) 결국 두 사람은 9년전 헤어진 호텔의 로비에서 재회한다. 그들에게,  9년 동안 전 세계를 무대로 서로를 찾아 헤맨 두 사람에게, 그녀는 말한다.



아니, 그러니까 나는 답답한 거다. 소중하잖아. 소중한 번호잖아. 그 사람 꼭 다시 만나고 싶잖아. 그런데 내가 아는 게 그가 쪽지에 적어준 전화번호뿐이라면, 그걸 좀 더 잘 다뤄야 하잖아. 쪽지는 잃어버리기 쉽다는 걸 누구나 다 알잖아. 그렇다면 그 쪽지만 가지고 있지 말고, 전화번호를 다른 곳에도 잘 적어둬야 하는 거 아냐? 왜 그 당연한 걸 안 하지? 쪽지는 잃어버리기 쉬우니까 수첩이나 가지고 있던 책, 아니면 일기장이든 어디든 적어둬야 하잖아. 어쩌면 그렇게 딸랑 쪽지 하나만 믿을 수가 있지? 그러니까 9년 동안 만나지 못하고, 파리에 가도 만나지 못하잖아. ~ 사람들 신중하지도 못하고 꼼꼼하지도 못하네. (38)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은 쉽지 않다. 인간이 문자를 발명해 사용한 것이 5,000년 정도 됐다고 하니, 무척 오래된 것 같지만, 사실 독서는 인간에게 익숙한 일이 아니다. 특별한 정신 집중이 필요하다. 하물며 문을 열고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랴. 이 고도의 지적 작업도, 공감의 작가 이유경과 함께라면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녀를 따라가 보자.



일단 밤을 새며 계속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그때의 너희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 나는 요즘 열 시만 되면 졸려…. 자야 돼. 낯선 도시를 호감이 가는 이성과 함께 걷는다는 건 나의 로망이지만, 그렇게 하루 종일 걸으면 쌍코피 터져…. 나는 어서 빨리 이들이 안정적인 호텔로 들어가 깨끗이 씻고 자기를 원했다. 너희들 하루 종일 양치도 안 했잖아. 그런 상태로 먹고 마시고 키스하고 먹고 마시고 키스하고…. (15)



하하하. 그녀의 글을 읽고, 기다리고, 또 읽고, 기다리는 1인으로서, 그녀가 소개하는 책을 눈여겨 보는 1인으로서의 감상이라면, 그녀의 글은 언제나 읽는즐거움을 준다. 가까이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쾌활하고 다정하다. 숨길 수 없는, 숨겨지지 않는 그녀만의 매력이 그녀의 글을 더욱 빛나게 한다.



다시 독서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 책읽기가 힘든 사람, 소설이 어렵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나라면 어땠을까, 그녀의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그녀처럼 소설 속 주인공과 함께 걷고 이야기하고 말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이게 읽는 즐거움이구나,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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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7-04-19 1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샀는데 아직 배송전이에요. 언제 우리끼리 사인회라도?ㅋㅋ

단발머리 2017-04-19 13:4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그러게요~~~
다락방님 신간 기다리는 두근두근한 시간 맘껏 즐기시길요^^

레와 2017-04-1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사한 리뷰입니다! 하트뿅뿅 ♡

단발머리 2017-04-19 13:39   좋아요 0 | URL
부끄럽습니다. ㅎㅎㅎ 이 책이 넘 좋아서, 저는 더 근사한 리뷰를 쓰지 못하는 스스로를 원망했더랬죠.
감사해요~ 하트뿅뿅 ❤️

2017-04-19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목차를 보니 전 거의 안읽은 책이더라구요. 저의 독서력을 한탄했다는 ㅠ.ㅠ 넘 다정한 리뷰 잘 읽었어요. 다락방님 책도 곧 읽어볼게요~~😍😍

단발머리 2017-04-20 16:58   좋아요 1 | URL
저도 아직 안 읽은 책이 아주 많사옵니다. 독서력 한탄은 저와 함꼐 해주세요~~~ ㅎㅎㅎ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리뷰가 다정하다고 해 주셔서 매우 심히 많이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17-04-19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의 신간이군요.^^
오늘도 좋은하루 보내셨나요.
단발머리님, 좋은 저녁시간 보내세요.^^

단발머리 2017-04-20 17:01   좋아요 2 | URL
네~~~ 다락방님 따끈따끈한 신간입니다. 즐거운 독서 시간 되시길요^^
올려주시는 꽃 사진..... 참 좋아요.
서니데이님도 오늘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래요~~~~~

해피북 2017-04-21 1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핫. 아니 ‘이유경‘이란 작가님의 이름이 낯설지 않은거예요. 책의 표지. 뒷모습만 보이는 저 표지까지 익숙해 보이는거 있죠. 그랬더니 역시나 다락방님 신간이었군요 ㅎㅎ이번에는 소설로 돌아오셨더란 말이죠 우앙~~소설 쓰고싶다 셨던 기억이나는데 드디어 꿈을 이루셨는가봐요 ㅎ 참 멋지세요~~그리고 쑥님 댓글처럼 다정한 리뷰도 잘 읽고 갑니닷^~^

2017-04-21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해피북 2017-04-21 16: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푸앗. 제가 착각했네요~~ 소설에서 책 이야기가 어울어진거라 착각을 했어요ㅋㅋ그러니까 마지막 사진에서 발췌문에 확신을 갖었다니요.저 바보인가 봐요 ㅋㅂㅋ~~

단발머리 2017-04-24 15:01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요~~~~ 절대절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