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딸아이의 좋은 모델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 통탄한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아쉽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안타깝게 생각한다. 유감이다.


나는, 내가 딸아이의 좋은 모델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내 모습에 크게 불만은 없지만, 다른 모습의 나를 딸아이가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딸아이 정도로 나와 가까이 있어야 내가 가졌을지도 모를 성공과 실패의 이야기를 확실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사회적 고용관계 속에 포함되어 나의 노동과 시간이 어떤 식으로든 평가받는 삶을 살았더라면, 그것이 나에게도 또한 딸아이에게도 좋았을거라 생각한다. 직장에서 자신이 맡은 업무를 통해 노력한 만큼, 수고한 만큼 그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받고, 그러면서도 말이 통하는, 바쁘지만 다정한 엄마가 되었더라면 좋았을거라 생각한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힘들지만, 힘든 상황을 어떤 방식으로든지 헤쳐나가는 워킹우먼의 삶을 딸아이에게 보여주었으면 좋았을거라 생각한다. 압박과 긴장을 이겨내고 능력 있는 워킹맘으로서의 삶을 딸아이에게 보여주었으면 좋았을거라 생각한다. 그러한 여성의 표본이 나였으면, 딸아이의 엄마인 나였으면 좋았을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는 예전의 결정,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전적으로 돌보기로 한 결정을 후회하는가. 글쎄, 잘 모르겠다. 만약 내가 『당신 인생의 이야기』 속 외계인 헵타포드처럼 결과를 알고 현재를 선택할 수 있다면, 이미 알고 있는 결과를 위해 원인으로 충분한 결정을 현재에 내려야 한다면,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까. 직장생활을 계속했을까.



글쎄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마, 난 회사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나는 현재와 똑같은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같은 학교에서 같은 공부를 하고 같은 직업을 갖고 있는데, 저는 만신창이가 되고, 남편은 아무런 손실도 입지 않은 채 어엿한 4인 가구의 가장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제 모성애로부터 막대한 수혜를 입었습니다. 남성이라는 것 자체가 이토록 강력한 권력이라는 것을 저는 처절하게 깨달았습니다. 모성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서 아이를 24시간 어린이집에 맡겨도 괜찮으면 좋으련만, 도저히 그렇게는 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대부분의 엄마가 경력 단절 여성이 되는 이유이고, 절차입니다. ([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59)





나는 모성이 부족한 사람이다. 아직도 누구 엄마?”라고 부르면 바로 반응하지 못 한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부르는 것 같아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학기 초에 총회를 왜 안 갔냐는 친한 집사님 질문에, 솔직히 대답했더니 좋은 엄마이자 천성이 착하디 착한 집사님의 눈이 완전 동그래졌다. “저는, 아이 학교 생활이 사실 별로 안 궁금해요. 담임 선생님도 좋은 분 같고. , 특별한 일도 없는 것 같고, 아침에 신나게 달려가는 거 보면 학교가 아주 싫지는 않은 모양이예요. 저는 그냥 그 정도면 만족해요.”



이런 내가, 아이들에게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방목에 가깝게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내가, 그 때는 그런 결정을 했다. 회사를 그만뒀다. 직장을 때려 쳤다. 나를 알아가려는, 나를 좋아하는, 나를 통해 세상을 배우고 싶어하는 아이의 또렷한 눈망울이 내 걸음을 붙잡았다.





불안을 다룰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솔직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일하는 엄마라면 '나는 사회적 성취와 경제적인 것이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아이를 일보다 덜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스스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전업주부인 엄마도 '나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람이구나'라고 인정하고, 이렇게 살면 자신의 삶이 도태될 거라는 오해는 버려야 한다. 인정하고 오해하지 않아야 불안이 해결된다.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 236쪽)




나처럼 모성이 부족한 사람도, 아이를 두고 일하러 가지 못 했다. 나는, 친정과 시댁에서, 양쪽 부모님들이 서로 아이를 봐주겠다고 하는데도, 그럴 수 없었다. 아이를 맡길 수 없었다. 내 아이를, 쫑알쫑알 말하고, 하루 종일 노래하고, 온몸으로 사랑하고, 뽀뽀하고 달려드는 내 아이의 순간 순간을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나의 계획과 미래보다 컸다. 나는 그걸 인정해야 한다. 그 순간, 그 때의 그 결정이, 내게 최선이었다는 걸 말이다.





“당신이 그렇게 차분할 수 있는 건 남들보다 ‘이상적인 엄마’에 가깝다는 자신감이 있어서가 아닐까요? 그러자 그래프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 같은 일하는 엄마들은 죄책감을 느끼면서 ‘나는 괜찮은 엄마인가?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까’라는 걱정을 하죠. 나 같은 전업주부 엄마들은 날마다 이런 질문을 던져요. ‘이 정도로 충분한가? 내 선택이 과연 옳은 걸까? 나도 일을 할 걸 그랬나? 내가 받은 교육은 다 무슨 소용이람?’ 양쪽 다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거죠. 그렇다. 엄마들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으며, 자신이 포기한 ‘저편의 삶’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낀다. ([타임 푸어], 281)



워킹맘도, 전업주부도 일정 정도의 죄책감, 또한 얼마만큼의 후회를 안고 산다. 자신이 포기한 저 편의 삶에 대해 아쉬워한다. 자신의 결정이 옳은 것이었는지 생각한다. 아이 준비물을 챙겨 보내지 못한 워킹맘이 생각하고, 뭐든 엄마가 해달라는 철부지 아이와 실랑이하는 전업주부가 생각한다. 엄마가 직장생활을 해서 아이 공부 습관을 제대로 잡아 주지 못했으니 학원에 보내야겠다고 워킹맘이 생각하고, 공부 습관 잡아주려고 아이와 이렇게 싸우느니 차라리 학원에 보내는게 낫겠다고 전업주부 엄마가 생각한다. 양쪽 다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다. 엄마,라는 이름을 가진 이상 워킹맘도, 전업맘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과거의 내 결정을 후회하지 않기로 했다. 내 딸아이에게, 훌륭한 역할 모델이 되어 주지 못한 것이 내심 아쉽기는 하지만, 내 결정으로 인해 아이들이 약간의 혜택을 입었다는 사실마저 모른 척 하지 않기로 했다.



내 삶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더 이상은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것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속 모성이 내린 결정을 존중하고,

작지만 소중한 모성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내가 아이를 돌봤던 시간이 길었다는 이유로

아이의 성취와 성공을 내 것으로 주장하지 않으면서,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징징대지 않고,

건강한 자아, 건강한 개인으로서의

나를 살기로 결정했다.



, 엄마이고 또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나로,

살기로 결정한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7-05-15 12: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단발머리님이야 말로 따님께 훌륭한 역할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계시니까요. 그것보다 더 좋을 게 있을까요? 그런 단발머리님의 모습을 계속해서 보고, 따님도 계속 생각하고 고민하고 공부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된다면 좋겠어요. 제겐 그보다 더 훌륭한 역할모델은 없어 보입니다.

좋은 글이에요, 단발머리님. 있는 힘껏 응원합니다.

단발머리 2017-05-16 00:33   좋아요 2 | URL
댓글 감사해요, 다락방님.

사실 이 글은 한달 전쯤에 써 놓았는데, 제 마음도 좀 시끄럽고 해서.... 올리지 않다가 오늘, 용기를 내서 올렸습니다.
제 딸아이에게만 좋은 모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지만, 저를 가까이에서 잘 아는, 또 어쩌면 어느 순간, 저의 ‘페미니즘‘에 제일 가까이 접근하게 될 사람이 딸애라는 생각에, 딸애에게 좋은 모델이 되고 싶었습니다.

후회와 미련이 아주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계속 생각하고 배워가는 사람이 되어 볼려구요.
더 성장하는.... 키는 다 컸는데 ㅎㅎㅎㅎㅎㅎㅎㅎ
응원 진심 감사합니다. *^^*

비연 2017-05-15 1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응원합니다, 단발머리님.
이런 고민 하는 엄마, 흔치 않고 롤모델이 되기에 충분을 넘친다고 생각합니다~^^

단발머리 2017-05-15 12:54   좋아요 1 | URL
고민을 넘어서서 좀 근사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오늘의 모습은 고민하는....
딱, 거기까지 같아요.
일단은 거기까지 인정하고 또 한 발을 떼야겠다 생각합니다.

좋은 말씀 주셔서,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연님~~~~~~ *^^*

아무개 2017-05-15 14: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내 삶에 대해 후회하지 않고, 더 이상은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것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속 모성이 내린 결정을 존중하고,

작지만 소중한 모성의 감정을 부정하지 않고,

내가 아이를 돌봤던 시간이 길었다는 이유로

아이의 성취와 성공을 내 것으로 주장하지 않으면서,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징징대지 않고,

건강한 자아, 건강한 개인으로서의

나를 살기로 결정했다.


나, 엄마이고 또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나로,

살기로 결정한다. ˝

나는 나로 살겠다고 말할수 있는 엄마라니
너무 멋지신거 아닙니까!

단발머리 2017-05-16 11:34   좋아요 0 | URL
맘 속에 담아두고 고민했던 이야기인데, 이렇게 격려를 받네요.
감사합니다, 아무개님.

제가 지금 그렇게 멋진 사람이 아닌 것 확실하지만,
아무개님 말씀처럼 지금보다 조금 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네요. ㅎㅎ

clavis 2017-05-15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좋은 글 고맙습니다

단발머리 2017-05-16 11:35   좋아요 0 | URL
clavis님~~ 댓글 감사합니다.

꿈꾸는섬 2017-05-16 0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분히 멋지고 훌륭한 엄마 아니 여성..단발머리님~^^
따님도 단발머리님을 자랑스러워할걸요.^^

단발머리 2017-05-16 11:37   좋아요 0 | URL
저는 딸을 자랑스러워하는데, 딸롱이는 저를 딱히 ㅎㅎㅎㅎ
사춘기가 와서 그런지... 우리 서로 사랑하지만, 생각이 다를 수도....
이런 이야기를 자주하는 요즘입니다.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꿈꾸는섬님~~

심야책방 2017-05-16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기엄마로서 너무 절절하게 공감되는 글이에요.

단발머리 2017-05-17 11:4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오랫동안 아기 엄마였고 이제 학부모가 되었는데도 고민은 계속되는 것 같아요.
댓글 감사합니다, 심야책방님^^
 















 

두번째 토론회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할말은 1등에게만 있다며 1 : 4 로 작심하고 달려든 대선후보 토론회 혹은 달님 대통령 청문회 다음날 아침, 나는 그냥 정의당 홈페이지에 들어갔을 뿐이다. 로그인을 해야 글을 남길 수 있다 해서, 로그인 이전에 회원가입을 해야하는 수고까지는 감당하지 못 하고, 그냥 올려진 최신 글들의 제목만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게 다다.

 

문재인 후보 열성 지지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아 이번 대선에서 나는 비교적 조용히 있는 편이다. 정확히는 시선이 곱지 않아서 라기보다는, 여기에서 한 발짝 더 나간 열성적 지지가 혹 그 분에게 누가 될까 싶어서다. 친한 선배언니들에게 (아직) 전화하지 않았고, 친구들에게 (아직) 카톡하지 않았다. 안찰스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친구들에게 협박 및 회유의 글을 보내지 않았고, 사촌 동생들에게 전화해 어떻게 할거냐 다그치지 않았다.

 

아직 수신제가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10년 넘게 진보정당을 지지해온 투표권 있는 1인과 투표권은 없으되 심상정 후보를 강력 지지하는 1인과 함께 사는 나는, 가장 편안해야할 집에서조차 협공당하는 나는, 수줍은 문재인 지지자다. 나는 문빠다.  

 

자꾸 깜빡깜빡하지만, 이번 대선은 탄핵 때문에 이루어지는 보궐 선거다. 안민석 의원과 주진우 기자의 외로운 싸움이 없었다면, 결정적 증거인 태블릿 피씨가 발견되지 않았더라면, 그 태블릿이 손석희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해졌더라면, 박근혜가 1차 담화에서 최순실과의 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더라면, 새누리당 의원들 일부가 탄핵안에 찬성하지 않았더라면, 헌법재판소 재판정 안밖에서 박근혜 변호인들이 그런 헛소리를 계속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매주 토요일 밤 이번주가 분수령이라는 기록을 연달아 갈아 치웠던 위대한 촛불의 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직 박근혜의 통치, 예측할 수 없고, 설명되지 않는 박근혜의 통치 아래에 있었을 것이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된다고 금방 좋은 세상이 오겠는가. 유시민의 말처럼 문재인과 더불어민주당이 여당이 되면, 정치권력, 딱 청와대 권력만 바뀌는 것이다. 무소불위의 언론권력도, 행정부, 사법부를 마음대로 주무르는 재벌권력도 모두 그대로다. 이제는 책임 있는 자리에 있게 됐으니, 이 모든 일이 네 책임이다, 라고 할 것이다. 오른쪽과 왼쪽에서, 좌와 우에서, 위와 아래에서 이 모든 일의 책임이 네게 있다고, 너 때문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진보언론에게조차 노무현과 문재인은 공격받고 있다고, 공격받았다고 말하는 이 책이 소중하다. 이렇게 집요하고 지속적인 공격 속에서도 문재인이 굳건하게 지지율 1위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한줌 같은 문빠들 때문인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언론의 보호와 격려, 낯간지러운 칭찬으로 버무려졌던 반기문과 안철수는 어쩌다 그렇게 가버렸는가. 탄핵이 만들어준 구도와 정권교체에 대한 강한 열망, 청와대에서의 국정 운영 경험과 대통령을 두 번 배출한 당의 전폭적인 지원 역시 중요한 요소이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문재인이라는 사람 그 자체, 문재인의 인생에서 보여지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동질감과 그들을 돕고자 하는 그의 진실한 마음이, 그를 여기까지, 그렇게 싫다고 도망쳤던 그를 여기까지 밀어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바꿔보자. 새로운 시대를 열어보자. 라고 말한다.

그래서 투표합시다. 내일 꼭 투표하세요. 라고 말한다.


마음 속 자막은 물론 투명으로 처리된다.

투대문. 투표해야 대통령 문재인 된다.

압도적 정권교체로 그에게 힘을 실어주자.

한 표, 꼭 부탁드립니다. 꾸벅.

한 번 더. 꾸우벅.






좌우 언론은 역대 가장 민주적이었던 노 대통령에게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프레임을 사용해 비판했고, 그러면서도 동시에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한미 FTA 체결로 노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 50%가 넘는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최장집 교수는 노 대통령이 국민이 반대하는 FTA를 밀어붙였기 때문에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비판했다. 심지어는 1970년 남미의 독재자들에게 사용하던 위임민주주의 delegative democracy라는 말까지 언급하기도 했다. 그 반대편에서는 좌파 언론, 지식인, 정치인, 지지자들이 노 대통령이 양극화를 일거에 해결하지 못했다고, 정치검찰을 척결하지 못했다고, 주어진 권력을 행사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다시 말해서 제왕적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고 비판한 것이다. 노무현은 도대체 어느 쪽 칼끝에 맞춰서 춤을 췄어야 하나? (90쪽)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아의서재 2017-05-08 15: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파파이스 유시민편 들으셨군요. 저도 들으면서 참여정부시절 유시민이나 문재인, 고 노무현 대통령의 어려움과 회한이 진심으로 느껴지더라구요. 우리가 이제 어떻게 문재인을, 대한민국을 지켜야 하는지를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되었어요. 유시민이 총리자리를 마다하면서(물론 국민들의 열망이긴 하지만도) 어용지식인이 되겠다, 하는 것 역시 큰 싸움판을 앞에 둔 이순신의 결기 못지않아 보여 무겁고 장엄하게 느껴졌어요. 뭐랄까.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앞에서 흘렸던 그 통한을 늘 가슴이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숙명이라고나 할까요.. 물론 이번 대선에 임하는 저 역시 노무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도 하고요. 생각하면 늘 눈가의 근육들이 경직되고 아픈. 늘 다시 그 시간 근처를 서성이는 느낌. 이번 대선으로부터 정말 한 발 내딛어야겠다는. 아.. 떨리고 두려운 하루입니다.

단발머리 2017-05-09 09:14   좋아요 2 | URL
우리가 이제 어떻게 문재인을, 대한민국을 지켜야 하는지에 대해서.... 달걀부인님과 같은 마음의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당선되시고 출구조사 결과 보고 소리를 지르면서 다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젠 됐다. 이젠 됐어!!!˝
그 분께만 너무 큰 짐을 지웠던 것 같아, 몰라라 했던 긴 시간들이 자꾸 떠올라 괴로웠는데, 오늘은 마음껏 기뻐하고 싶어요. 그 결심만은 마음에 간직하고요.
저 책에서 조기숙 교수님은 만약 그 때, 지금처럼 sns 가 활발했다면, 노무현 대통령님을 그렇게 보내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말씀하시더라구요. 언론이 좌우에서 덤벼들어 물고 뜯을 때, 그 저주의 말들이 모두 옳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그 공기가 얼마나 살인적이었던지를 기억하면 맞는 말씀 같기도 해요.

떨리고 두려운, 기대되고 즐거운, 그러면서도 슬픈.... 그런 하루예요.
전두환이 6시에 투표하고 갔다고 하고, 이명박도 투표 마쳤다네요.
서둘러야겠어요, 저도 이제 나갑니다. ㅎㅎㅎㅎ

오거서 2017-05-08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주변에도 샤이 문재인이 많더라구요. ^^

단발머리 2017-05-09 21:46   좋아요 2 | URL
네. 문재인 후보는 돼지 발정제도, ˝실망입니다˝도 아닌데, 저는 샤이네요.
샤이 문재인~~
모든 샤인 문재인이신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오늘 모두 커밍아웃합시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cyrus 2017-05-08 2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정치인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나중에 언제 그랬냐는듯이 갑자기 돌변해서 자신이 지지했던 정치인을 비난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단발머리 2017-05-09 08:46   좋아요 0 | URL
네..... 그러게요.
근데... 어쩌면 진심으로 지지한게 아닐 수도 있을 거 같아요.
지지하는 척 하다가 금방 자신의 진심을 드러낼 수도.... ㅠㅠ
 













 



어디야?”라고 물었다.

 

이전 상황에 대한 아무런 설명없이 박형식이 전화해 어디야?”라고 물었다는 건, 내 꿈 속에서 박형식과 나는 아무때나 전화해서 어디야?”라고 묻는 사이라는 이야기고, 곧 연인이라는 뜻이겠다.

박형식이 또 물었다. “하와이야?”

내가 말했다. “아니, 태국.”

하아…” 수화기 저 너머에서 박형식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태국이든, 하와이든암튼… ”

그 다음은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일년에 2-3번 정도 꿈을 꾼다. 더 많이 꿈꾸겠지만 기억나는 게 일년에 2-3번 정도다. 잠잘 때는 오직 자는 일에만 집중하느라 꿈꾸지 않는 내게, (비록 목소리만 출연했지만) 박형식이 찾아와서는 어디야?”라고 연인처럼 혹은 연인의 포스로 물어봐줬다. 내용과 형식, 의의 또는 의미와 상관없이 어제의 우울함이 단번에 날아갔다.



 

 








모두들 바삐 자신의 자리를 찾아 떠나고, 출발하고,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가는 아침. 혼자 남아 청소기를 돌리고 머리를 감고 외출 준비를 하는데, 자꾸 어디야?”가 생각났다. 나는 혼자 웃었는데, ‘큭큭큭웃지 않고 허허허하고 웃었다. 자꾸만 큰 소리로 웃게 됐다. “어디야?”

 


너무 두꺼워 간신히 읽기를 마친 『여성의 신비』를 반납하고, 도서관 앞 작은 커피숍에 들어갔다. 서민 교수님, 혹은 마태우스님은 기발하고 발칙한 유머 포인트를 갖고 계시기에 이미 만반의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9쪽에서 빵 터졌다. 약한 마음 갖지 마시고 빨리 사서 읽으시라.

 

 


게으른 나를 말없이 기다려 준 생각정원 출판사 박 대표님께 감사드리고, 책이 나오면 인세를 받지 않을까 기대에 들뜬 아내에게도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부탁해 본다. 마지막으로 독자분들께 말씀드린다. ‘조금 있다가 읽어야지하는 약한 마음을 갖지 마시고 빨리 사서 읽으시라고. 탄핵으로 인해 대선이 빨라졌고, 대선이 끝나면 정치 책을 읽는 일에는 시들해지니 말이다. (9)

 

 


연휴 아닌 연휴, 방학 아닌 방학에 아껴가며 조금씩 읽으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저자의 충고를 전격 수용, 미루지 말고 부지런히 읽어봐야겠다. 신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7-04-28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작하셨군요!
저도 바로 시작하고 싶은데 지금 읽고 있는 책 진도가 너무 안나가서..너무 늦게 읽히고 제가 요즘 독서에 집중도 못해서 지금 읽고 있는 책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네요. 빨리 마태우스님 책 읽고 싶은데..

근데 단발머리님, 사진에 저거, 커피 옆에 저거, 뭐예요? (궁금궁금)

단발머리 2017-04-28 14:00   좋아요 0 | URL
맞아요. 맘은 급하고 읽고 싶은 책은 많을 때, 우리는 스스로를 원망하죠.
아~~~~~~~~ 더 빨리 읽고 싶다 ㅠㅠ

사진에 저거, 커피 옆에 저것,은 ˝애플팬˝입니다.
저도 오늘 처음 먹어보는 거였는데, 구성은^^
맨 밑에 사과절임, 그위에 소보루(네, 맞습니다. 그 추측. 소보루빵의 그 소보루), 그리고 그 위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입니다. 저는 단 거 엄청 좋아하는데, 애플팬은 커피랑 같이 먹어야 할 듯 해요. 마지막에 좀 달아서...
그래도 다 먹었지만요~~~ㅎㅎㅎㅎㅎ

다락방 2017-04-28 14:19   좋아요 0 | URL
아.. 맛있을 것 같아요 ♡.♡

단발머리 2017-04-28 14:24   좋아요 0 | URL
아주 맛있었고 아주 달콤한 시간이었어요.
<오늘의 선택>
달콤한 금요일엔~~ 따뜻한 애플팬^^/

해피북 2017-05-03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가끔 꿈을 꾸는데요. 제 기억으로는 유느님이 나와서 이야기한 꿈이었는데 꿈꾼날 아침이면 저도 모르게 허허하고 실없이 웃게 되더라고요. ㅋㅋ 그리고 요즘 휴일도 좋고 징검다리도 좋은데... 배송이. 책 배송이 날짜를 잘못만나면 토요일이나 혹은 화요일에 받을 수 있겠더라고요. 휴일은 좋은데요ㅜㅜ

단발머리 2017-05-08 11:5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런게 좀 아쉽기는 해요. 근데, 또 배송하시는 분들도 쉬시기는 해야겠구요.
그래서, 연휴 이전에 e-book 대여 및 판매가 활발하더라구요. 그게 참 좋은 것 같아요.
저도 아직은 e-book 에 손이 잘 안 가기는 하지만요.

해피북님 꿈에 유느님이 나타났단 말이예요? 우왕~~~ 부러워요.
박형식은 제 꿈에 목소리만 나왔잖아요. 흐흐....
 











 



무언가를 배우는데 정해진 나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나이가 있고, 망설여지는 나이가 있다. 서른 아홉에 피아노를 배우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서른 아홉에 피아노를 시작했다면 무슨 일인지, 무엇 때문인지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최근에 나온 『나이 들어 외국어라니』가 생각난다.










 






저자 서진은 부산대 전자공학과 박사과정을 중퇴하고 캘리포니아를 유랑하던 중 소설을 쓰리라 결심한다. 2007년 세번째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힘들고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 여행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2년간 캘리포니아에 거주했던 경험 이후로 잠들어 있던(?) 방랑벽이 살아났다. 결혼 전에는 캘리포니아와 뉴욕 등지, 결혼 후에는 하와이와 동남아시아, 로마 등지에서 두세 달씩 살고 있다. 2015년 봄부터 제주에서 문어를 잘 잡는 여자, 늙은 강아지와 함께 살고 있다. 어쩌면 지금은 제주집을 비워두고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을 수도 있다.

 


 

이상했다. 나는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세상은 유유히 잘 돌아가고 있다니. 인생의 중대한 고비도 그러한데 내가 소설을 완성하든 말든 세상은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이 당연했다. 결국 나는 3년째 잡고 있던 소설을 실패라고 인정하고 집필을 중지했다. 오피스텔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억울하고, 아쉽고, 슬프고, 바보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가뿐한 기분이 들었다. 어쨌든 결말을 지었으니까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겠지. (25)

 


 

실패는 나의 것이다. 내가 원하는 일, 내가 바라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실패는 내 것이다. 세상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내 실패를 알지 못 한다. 세상은 내 실패를 모른 채 그냥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잘만 돌아간다. 그렇다면, 그 실패가 나만의 것이라면, 그렇게 많이 낙심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렇게 많이 절망하지 않아도 되겠다. 실패는 나만의 것이고, 뼈아픈 실패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물론 다시 시작할 무언가가 무엇일지 찾는 게 우선이겠지만 말이다.

 


화창한 오후다. 나만의 실패와 실랑이하다가 하늘을 올려다본다.

실패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바뀌는 순간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17-04-27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두 문장은 절창인데요!!♥^^

단발머리 2017-04-28 13:38   좋아요 0 | URL
히이잉~~~~ 감사해요 순오기님^^
저도 하트하트 뿅뿅을 순오기님께 날립니다.*^^*

해피북 2017-05-03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패가 나만의 것이라면 그렇게 많이 절망하지 않아도 되겠다. 실패는 나만의 것이고, 뼈아픈 실패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다시 시작하면 되니까. ‘

이 부분이 참 좋네요. 다시 시작하면 된다는. ㅎ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읽고 있어서인지 마음에 훅 들어왔어요~~잘 읽고 갑니다^~^

단발머리 2017-05-08 12: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해피북님이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시고 그래서.... 더 즐겁네요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그 다음날 마셨구요.
저도 오늘은 따뜻하게 한 잔 해야겠어요. ㅎㅎㅎ
 
행복한 주부 여주인공
내가 미친 게 아닌가 하고 궁금했다
WAM (Wives and Mothers)
여성의 신비 이매진 컨텍스트 6
베티 프리단 지음, 김현우 옮김 / 이매진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완벽한 교외 주택 단지에 거주하며 행복한, 혹은 행복해 보이는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는 전업 주부들. 여성의 가장 큰 가치와 유일하게 전념해야 할 목표는 가정 안에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완성이라고 가르치는 여성의 신비에 사로잡힌 전업주부들에 대한 면담과 연구를 통해 저자 베티 프리댄은 여성의 신비시작점과 그것이 사회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과정, 그리고 여성의 신비 신화의 직접적인 수행자이자 피해자인 여성들의 삶을 조망한다.


677, 이 책을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많은 수의 10대 소녀들이 조혼을 통해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소녀들은 고등학교만 졸업한 채로, 혹은 대학을 다 마치지 못한 상태로 결혼했다. 아이를 낳았고, 계속해서 또 아이를 낳았다. 행복한 주부 여주인공으로 살고 있는 여성들은 생각보다 행복하지 못한 스스로를 발견하고 괴로워했다. 우울감을 호소했고, 공허함을 느끼고, 불완전하다는 기분이 드는 자신을 설명할 수 없었다. 진정제를 복용하기도 하고, 감정이 격해져 아이들에게 심하게 화를 내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했다. 왜 그럴까. 교외 전원 주택, 능력 있는 남편과 귀여운 아이들, 안정적인 소득이 주는 경제적인 만족감, 자유로운 여가 시간. 그럼에도 왜 그녀들은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무력감에 빠져드는 것일까.



오늘날 여성 문제의 핵심은 성적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에 관한 문제, 즉 여성의 신비 때문에 영속화된 성숙을 방해하고 기피하는 문제라는 것이 내 논제다. 또 빅토리아 시대의 문화가 당시 여성들로 하여금 기본적인 성적 욕구를 인정하거나 충족시키지 못하게 했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의 문화 구조가 여성으로 하여금 인간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 발전시키려는 기본적인 욕구, 즉 성역할에 의해서도 전혀 제한 받을 수 없는 욕구를 인정하거나 충족시키지 못하게 막고 있다는 것이 내 논제다. (150)



저자는 여성의 신비로 인해 가정과 가족들에게만 그 임무가 인정된, 오직 그 임무에만 한정된 여성으로서의 삶이 그녀들을 옥죄고 있다고 판단한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어머니로서만 그 정체성이 규정될 때, 삶의 무력감, 인생에 대한 깊은 회의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녀들에게 이런 여성의 신비를 가르치고 유통시킨 건, 그녀들의 유일한 읽을거리였던 여성지였고, 대부분의 여성지는 이제 막 전쟁터에서 돌아와 따뜻한 가정의 품을 원했던 남자 편집자들의 이상형을 그려내는 방식으로 극대화되었다.(111) 여성의 신비가 갖는 힘은 프로이트의 사상에서 나왔다. (196) 프로이트는, 여성은 남성의 사랑을 받기 위해, 그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남자의 사랑에 의해 존재하는 어린아이 같은 인형으로 보았다.(203) 프로이트 이론은 미국의 현실에 나타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보여줬고, 프로이트 이론에 의해 과학적인 종교로 격상된 여성의 신비는 여성을 단순화시키고, 과잉 보호하고, 생활을 제한시키고, 미래를 부인하게 했다. (228)


소녀들은 대학에 진학했지만, 대학에서는 소년들과 다른 교육을 받았다. 여성지향적 교육자들은 소년들을 잠재력을 가진 사람, 문화 속에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격려했지만, 소녀들에게는 성적 판타지를 자극했다. 여성성의 이미지, 즉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며, 순응적인 사고 및 행동을 소녀들에게 강요했으며, 여성 정체성 결핍의 해결책으로 조기 결혼을 제안했다.(290)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인식,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고민과 노력 없이 가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던 여성들은 물건을 구입함으로써, 주체성, 목표, 창조력, 자아실현, 심지어 여성에게 부족한 성적 희열까지도 얻게 된다는 이야기를 믿게 된다. 반짝반짝 빛나는 순은의 주방용품을 사용할 때, 특별한 가스렌지 세척제를 사용해 티없이 깨끗한 가스렌지를 새롭게 창조해냈을 때, 자신의 가치도, 인생의 목적도 찾게 되리라 믿게 되었다.



나는 페미니즘의 이유와 여성의 좌절이 생기는 실제 이유 모두가 주부의 역할에서 오는 공허감 때문이라고 여겼다. 사회의 중요한 역할과 그 결정은 집 밖에서 일어나고 있고 여성은 이 역할에 참여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으며, 그 권리를 찾기 위해 투쟁했다. (402)



전업주부 여성들이 하루 종일 몰두하는 주부의 역할, 집안일이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무한히 계속되는 일이다. 누구나 하기 싫은 일이며, 하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다. 여성이 하는 일, 즉 가사는 그녀에게 어떤 지위도 줄 수 없다. 그것은 사회의 어떤 일보다 낮은 지위이다.(447) 집안일의 피로에 대한 주부들의 호소에 대해 의사들은 피로가 아니라, ‘권태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416) 인간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채, 가정이라는 좁은 벽 속에서 제한된 일을 반복하게 되었을 때, 여성들의 허탈감은 오히려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조사결과가 이어졌다. 아이들을 더 사랑해야 한다는 강박이 자녀에 대한 지나친 집착으로 이어지고, 어머니의 과잉 보호 때문에 응석받이로 자란 아이들에 대한 보고 또한 있었다. (338)


그녀들을 고통 속에 몰아 넣는 건 일상이다. 지루하게 끝없이 이어지는 똑같은 일상 때문에 그녀들은 공포를 느낀다. (513) 인간으로서의 욕구, 즉 먹이와 성, 생존의 욕구처럼 지극히 본능적인 지식의 욕구와 자아 인식의 욕구가 계속해서 거부당하기 때문이다. (514)


편안한 포로수용소에 갇혀 어제와 똑같은 오늘, 오늘과 똑같은 내일을 사는 여성들에게 저자는 새로운 인생 계획을 시작하라고 제안한다. 자율성과 자기인식, 그리고 독립성, 개성, 자아실현을 위한 욕구를 가진 여성으로 살아가라고 말한다. (530) 인간사회에 공헌하는 창조적인 과업을 수행하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라고 말한다. (543) 인간의 전 생애라는 관점에서 인생을 새롭게 설계하라고 제안한다.



한 인간의 전 생애라는 관점에서 설계의 첫번째 단계는 가사가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즉, 하나의 직업이 될 수 없고, 가능한 빠르고 능률적으로 해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다음 단계는 여성 지향적 교육의 산물인 여성으로서는 가장 힘든 것인데, 결혼에 대한 여성다움의 환상적 틀이 부과한 과잉 찬미의 장막을 걷어 버리고 진정한 실체를 보는 것이다. (557쪽)



저자는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무급지도자 혹은 자원봉사 지도사로서 일하기 보다는 석사학위나 박사학위를 가진 전문가가 되라고 제안한다. 또한 여성에게 금지된 일, 즉 예술이나 과학, 정치나 전문직을 장기적인 차원에서 계획하고 계속 그 일을 해나가는 여성들은 이름을 붙일 수 없는 문제로 고통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566) 하지만, 그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여성들에게는 냉정한 충고를 건넨다.



자신의 작품을 다른 사람들이 듣고 보고 읽는 데에 돈을 내기 싫어하는 수준인 아마추어나 동호인들은 그 사회 내에서 실질적인 지위를 얻을 수 없으며, 실질적인 인격적 주체성도 갖지 못한다. 그런 지위나 주체성은 노력하고 지식을 얻고 전문가가 되려고 하며 전문적 지식을 쌓는 이들에게 돌아간다. (567)



저자는 직업여성이 갖는 죄의식 증후군과 다른 주부들의 적의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올가미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교육뿐이라고 말하며,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교육은 정규대학과 종합대학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588) 이를 위해 대학의 학부과정이나 석사과정이 시간제로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것이야말로 주부들이 단순히 아마추어로 끝나지 않게 하는 유일한 교육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602) 완전히 자유롭게 되어 진정한 자신이 되라고, 남성, 어린이와 함께 정원과 생물학적인 역할 뿐 아니라, 인간의 미래를 창조하는 일과 인간의 모든 지식에 관한 책임과 열망 또한 나누어 가지라고, 여성 자신에 대한 탐구를 이제 시작하라고, 그녀는 말한다.



대학을 졸업한지 20년이 지난 여성들에게, 20대 초반의 대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시작하라는 저자의 마지막 제안은 조금 충격적이기까지 한데, 그녀가 그 어렵고 힘든 일을 해냈다는 점에서, 어쩌면 이 책의 마지막 제안은 독자를 향한 것이라기 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주문과 같다. 그녀의 주문은 마법 주문이어서, 그녀의 책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그녀는 예전의 자신, 교외의 전업주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살고 있던 지역에서 따돌림을 당해 도시로 이사가야 했고, 결국에는 완벽하게 바뀌어 버린 자신의 삶처럼 사회를 바꾸기 위한 여성운동에 뛰어들었다. 성적 차별에 반대하는 법률을 강제하지 않는 회사에 대항해 싸웠고, ‘NOW (National Organization for Woman)’을 창설했다. 이후 중산층 백인여성 중심의 자유주의 페미니즘 또는 개량주의 페미니즘이라는 비판이 있었지만, 고전으로서 이 책이 가지는 가치는 조금도 감소되지 않았다. (옮긴이, 676)



이 책이 오늘날까지 빛나는 이유는, 책 속의 인용 부분, 가정이라는 벽에 갇혀 절망하고 방황하는 숱하게 많은 여성들의 고민과 갈등이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고민들이 바로 내 것이기 때문이다.








집에서 미술이니 조각이니 문학 등의 창조적인 일을 하고 있는 행복한 주부상은 여성의 신비에 물든 환상 중의 하나이다. 그렇게라도 할 수 있는 남자와 여자가 있다. … 그것은 여성에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만약 자신의 직업에 대해 진지하다면,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집이 아닌 다른 장소를 찾아야 한다. 또는 자기 아이들에게 그녀의 일을 방해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성급하게 프라이버시의 공간과 시간을 요구하다가는 귀신 같은 존재가 되어버릴 수 있음도 감수해야 한다. … 차라리 9시부터 5시라는 시간의 확실한 구별이 직업과 가정을 양립시키는 데 있어 더 훈련하기 쉽고, 덜 외로울 것이다. 전문직업 세계의 일부로 나타나는 어떤 자극과 새로운 친교 관계는 집안에서 가정주부라는 물리적 제한에 얽매여 놓으려는 여성에게는 있을 수 없다. (570쪽)

사회의 주류에 참여함으로써, 그 사회를 형성하는 모든 결정을 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발언권을 행사함으로써 여성이 완전한 인간의 잠재력에 도달하기 위해서 여성에게는 오로지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완전한 정체성과 자유를 갖기 위해 여성은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 (621쪽)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7-05-06 0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한 주부 여주인공> http://blog.aladin.co.kr/798187174/9264441
<내가 미친 게 아닌가 하고 궁금했다> http://blog.aladin.co.kr/798187174/9270294
<WAM (Wives and Mothers)> http://blog.aladin.co.kr/798187174/9299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