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여성은 서로에게 심리적·사회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서로에게 너무 많이 바라는 경향이 있다.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하찮은 실수, 가장 사소한 실망은 종종 확대되어 분개로 이어진다. (『여성과 광기』, 35)  

 


『여성과 광기』에서 위 문장을 읽었을 때, 나는 그녀가 말하는 바를 바로 알았다. 그녀의 이 문장이 놀라웠던 이유는, 그녀가 이야기하는 진실을 내가 모르던 것이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이처럼 명시적으로말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페미니즘 책을 이만큼(혹은 요만큼) 읽어왔던 내가, 그 진실을 책 속의 문장으로 대하는 것이 처음이어서, 나는 적잖이 당황하고 적잖이 놀랐다.

 


가부장제는 여성이 태생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다는 생각을 전제로 한다. 인간 남성을 기준점으로 상정하고, 여성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그에 부족한상태의 인간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부장제다. 가부장제 하에서 여성은 노력을 통해 남성에 도달할 수 없다. 여성과 남성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핵심이 생물학적 차이이기 때문이고, 자연적인 인간 여성이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여성의 운명이란 자신의 한계 안에서살아가는 것일 수밖에 없다. 또한, 가부장제는 여성에게 모성을 비롯한 여성성을 강요함으로써,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정서의 극한을 요구한다. (어머니인 여성이 자신의 안위와 자식의 생존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남성보다 부족한여성에게 남성을 초월한감정적 기대를 요구하는 것이 가부장제다. 따라서, 가부장제를 살아가는 남성과 여성은 모두 여성에게 엄격할 수밖에 없는데, 여성은 남성보다 불리한 위치에서 각고의 노력을 해야만 비로소 남성에 가까워진 인간상으로 구현될 수 있다. 여성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를 나는 이렇게 이해했다.

 


한편으로는 이 책을 읽어가면서, 그때의 위대한 페미니스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하게 됐다. 일반 여성뿐 아니라, 저명한 페미니스트들조차 가족으로부터 학대당하고, 무시당하며, 억압받았던 개인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있어 어머니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며, 동시에 그들을 미치게만드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를 떠나지 않고서는, 어머니로 상징되는 가부장제의 억압에서 탈출하지 않고서는 그들의 새로운 이상을 밝혀낼 수 없었다. 가장 큰 사랑을 원하는 어머니에게 가장 큰 실망을 안겨주고, 가장 큰 조력자가 되어야 할 사람이 가장 강력한 억압의 주체가 될 때, 그들은 어머니를 떠나고, 부모를 떠나고, 가정을 떠나고, 함께 살던 남자에게서 떠났다.

 
















페미니즘의 기본을 아주 쉽게, 동시에 아주 선명한 언어로 밝혀주는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에는 이런 문단이 나온다.

 


아무튼 페미니즘이 비아프리카적이라고 하니까, 나는 이제 스스로를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친한 친구 하나가 나더러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로 일컫는 것은 남자를 미워한다는 뜻이라고 말해주더군요. 그래서 나는 이제 스스로를 남자를 미워하지 않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더 나중에는 남자를 미워하지 않으며 남자가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서 립글로스를 바르고 하이힐을 즐겨 신는 행복한 아프리카 페미니스트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14)

 


이 문단을 특히 좋아했던 건, 내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남자를 좋아하고, 남자와 함께 살며, 아들을 둔 어머니이며, 미니스커트와 롱원피스를 입고, 핫핑크 립스틱을 즐겨 바르는 페미니스트인데, 나의 이런 선택 혹은 성향이 페미니즘의 중요한 가치들과 충돌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을, 이 문단이 단번에 날려 주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볼 수 없는 문제라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이러한 정의 역시 페미니즘을 말하는 중요한 정의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 그 나름의 한계를 한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나는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이런 제안이 충분히 의미 있다고 보았다.

 

 

재능 있는 여성들을 공격하는 것은 페미니즘 운동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기량이 뛰어나고 표현에 능통한 여성들 - 유명하고, 기명 기사를 쓰고, 출간 계약을 하고, 그야말로 어떤 것이든 능력있는 여성들 - 은 혁명에 대한 반역자라는 공격을 받았다. 이는 내게도, 케이트 밀릿에게도, 나오미 웨이스타인에게도 일어났던 일이다. (110)

 


위대한 선배 페미니스트들은 달랐다. 그들의 상황은 지금처럼 녹록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제까지만 해도 마녀', '창녀였고, ‘정신병자였으며, ‘사회 부적응자였다. 그들은 다른 그 무엇보다 미친 년’ 이었다. 새로운 세대를 열어가는 그들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 곁에는 오직 자매들뿐이었다. 이 세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미친생각을 공유하는 그들은 서로에게 아버지였고, 어머니였으며, 언니였고, 동생이었다. 남편이었고, 애인이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자매였다. 피를 나눈 자매보다 훨씬 더 강력한 연결 고리로, 그들은 서로에게 묶여있었다. 그래서, 그들 간에 이견이 발생할 때, 그것을 의견의 차이로 해석할 만한 여유가 그들에게는 없었다. 그들은 다른 생각, 다른 의견을 개인적인 공격으로 받아들였다. 또한 서로 간에 평등해야 한다는 강박이 그들 사이에 공고했기에, 책을 내거나 명성을 쌓은 여성들은 배신자라는 비난을 견뎌내야 할 뿐만 아니라, 친구 어쩌면 가장 가까운 친구를 잃을 수도 있었다. 천재, 천재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일이었다.

 


베티는 자기 자신을 3인칭으로 자주 썼다. 우리가 전부 눈을 아래로 깔거나 다른 곳을 쳐다보거나 당황하거나 기분이 더러워진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도 베티는 본인 모습 그대로 존경받을 자격이 있었다. 역사를 바꾼 수많은 남자들이 그랬듯, 베티 역시 까다로운 사람이었다. 성미가 고약하고 난폭하며 거칠고 말도 안 되게 집요했다. 그리고 통제 불능의 술꾼이었다. (220)


 

천재란 어떤 사람들일까. 천재는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는 못하는 그 무언가를 먼저이해하고, ‘먼저말하는 사람들이다. 그것을 천재의 특성이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특별히 동시대 사람들은 천재의 천재적인 면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천재의 생각 중 극히 일부를 대중이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했을 때, 사람들은 그 천재에게 열광하고, 그에게 합당한 찬사와 명예를 그에게 돌려줄 것이다. 2세대 페미니즘 물결이 거세게 밀려올 때, 많은 천재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했다. 각성의 결과로, 그들은 억압받았던 여성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볼 수 있었다. 나름의 설명과 해법을 가지고, 지구상 가장 큰 소수집단인 여성의 해방과 성차별 해소를 위해 그들은 힘을 합쳤다.

 

하지만, 그들은 천재였다. 그래서 그들은 천재들이 할 법한 기이하고 이해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부정적인 언행의 상당 부분을 자매들에게 쏟아부었다. 자매애에 대한 기대와 천재 페미니스트들의 행동은 여성 간의 연대와 성장에 커다란 해악이었다. 안타까운 마음이 그지없지만, 어찌하면 좋겠나. 그들도 똑같았다. 그들도 남성 천재가 그러했던 것처럼, 이기적이고 독단적이고 고집불통이었다. 자신 아닌 다른 사람에게 대중적 관심이 옮겨져 가는 것을 참지 못했고, 억울해했고, 그리고 싸웠다. 의견이 다른 것을 이유로, 지지를 표명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은 계속 싸웠다. 안타깝고 또 아쉬운 대목이라 하겠다.

 


이 부분은 꼭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어 적는다. 지금은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저명인사이지만, 『여성과 광기』가 출간되었을 때만 해도 체슬러는 그냥 평범한 정신의학자였다. 그녀와 그녀의 저작을 주의해서 보는 사람도, 매체도 없을 때였다. 그때 에이드리언 리치가 서평을 쓴다.

 


한 달쯤 지날 무렵, 《여성과 광기》에 대한 에이드리언 리치의 극찬이 담긴 긴 서평이 《뉴욕 타임스 북 리뷰》 표지에 실렸다. 내 세대에 그토록 화려한 칭찬을 받은 페미니즘 작품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판매 부수가 급증했고 담당 편집자는 승리의 냄새를 맡았다. 그렇다. 신문 하나가 그 정도의 결정권과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 이유로 나는 에이드리언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다.

 

에이드리언, 당신이 어디에 있든, 나는 당신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삶이 변화된 수백만 명의 여성들이 그렇듯이요. 당신이 쓴 서평 때문에 그들은 내 책을 읽게 됐을 테니까요. (163)

 


필리스 체슬러는 20년 뒤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지면에 주디스 루이스 허먼의 대표 작품트라우마』를 소개하며 마음의 빚을 갚았다고 말했다. 체슬러는 또한 페미니즘의 전설 앤드리아 드워킨의 책을 수시로 소개하며 그의 책이 널리 읽히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에이드리언 리치와 필리스 체슬러, 그리고 앤드리아 드워킨의 연결이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마치 픽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서로간의 질시와 반목이 만연하던 시대, 서로를 미칠 듯 사랑하면서도 죽일 듯 미워하던 시대에, 이들이 보여준 연대와 지지, 사랑과 헌신이 너무 아름다웠다. 환상처럼 느껴졌다.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사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훌륭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부러워지는, 그런 순간이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인덱스를 다 떼고 반납해야 한다. 바로 한 번 더 읽으려고 똑같은 책을 주문했고, 원서도 주문했다. 바다 건너, 지금 내게 오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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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강제적 이성애와 무성애의 섬 (feat. 수하님)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3-02-05 22:58 
    <강제적 이성애와 레즈비언 존재>를 다 읽었다. (53쪽밖에 안 된다. 이 책 안 사신 분, 한 분도 안 계시길!!) 다 읽지 않은 상태에서 썼던 글(강제적 이성애와 정희진 만세!, https://blog.aladin.co.kr/798187174/14315994)에서의 내 예상이 옳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어서 기뻤다. 끝부분에는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 활동가이자 학자인 앤, 크리스틴, 샤론과 에이드리언 리치와의 서신이 포함되어 있는데, 상대방
 
 
수이 2022-02-02 15: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바다 건너에서 주문할래요!

단발머리 2022-02-02 16:14   좋아요 3 | URL
2주, 14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하트하트)

2022-02-02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02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02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22-02-02 16: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지금 저는 막 벨 훅스의 <사랑은 사치일까>를 읽었는데 비슷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상 페미니스트의 자매애에서 문제가 되는 저 시기와 질투같은 건 페미니스트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자체의 문제라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부장적 문화속에서 살아오면서 더 증폭되는거 아닌가 같은 생각도 하고요.
농담삼아 하는 말 중에 어떤 사람이 나를 어느정도 사랑하는지를 알려면 내게 나쁜 일이 생겼을 때 그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하는가가 아니라, 좋은 일이 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는가로 봐야한다지요. 실제로 후자가 더 어렵습니다. 심지어 가족끼리도요.

단발머리 2022-02-02 19:30   좋아요 3 | URL
저도 바람돌이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여자들만 그렇다거나 페미니스트들만 그런 게 아니라 인간 자체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안타까운 건 천재들이 대거 등장했던 제2 페미니즘의 시대에 여성들이 자신들의 ‘그러함‘을 인지하지 못했던 점입니다. 너무 순진했다고도 볼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그들의 삶이 너무나 처절했기에 그정도의 여유도 없었다고, 전 생각합니다.
벨훅스의 책에서, ‘페미니즘은 자기의 것이라 우겨대는 백인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흑인 페미니스트들의 분노‘가 기억나네요.

좋은 일이 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는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다른 사람에게만 그런게 아니라 저 자신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부럽다~~ 를 넘어서 어머, 잘됐네~~ 라고 진심으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그런 관계가 진짜 친구이고, 우정이겠죠.

독서괭 2022-02-02 18: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너무 훌륭한 글이어서 나중에 피씨로 다시 읽고 댓글 다시 달려고요. 저도 남편 두고 아들 둔 페미니스트로서 매우 공감합니다. 단발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단발머리 2022-02-02 19:32   좋아요 3 | URL
독서괭님이 다시 읽어준다 하시니 감사하고 또 부끄럽네요. 앞으로도 우리 나눌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요.
연휴가 다 지나갔네요. 뭐, 홀가분하게 기뻐해야 하는 시간인가 싶습니다. 독서괭님, 새해 복 많이많이 받으시길요^^

다락방 2022-02-03 08:3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지난 시간을 살아오면서 제가 가장 미워한 사람들 중에 당연히 여성들도 있었지만 또 제가 늘 감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도 여성이 다수를 차지합니다. 저를 가장 지지하는 사람들 중에도 여성이 훨씬 더 많고요. 물론 저를 미워하는 사람들 중에도 여성이 있지만요. 그리고 제가 페미니스트라고 해서, 제가 여성의 편에 서려고 한다는 걸 이유로 그걸 붙잡고 늘어지며 저를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저는 그게 너무 끔찍한 경험이었어서 정말 오래 그 일로 괴로워했고,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고 정체화하는 걸 하지 말자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모든건 행동이 말해줄것이다, 하면서요.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떤 말이나 행동에 실망하게 됐을 때, ‘너는 페미라면서 왜..‘ 라는 말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도 더 냉혹한 잣대를 여성에게 드리운 적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저 자신에게 실망하기도 했고요. 지금은 저 사람과 내가 같은 방향을 보고있다 해도 저 사람의 우선순위와 나의 우선순위가 다르고,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익히고 배우고 있습니다.

단발머리 님의 이 글이 너무 좋아서 책장에서 오래 잠자던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를 오늘 꺼내왔어요. 출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서문에서부터 좋아요. 70이 넘은 여성이 글을 쓰고 기록한다는게요. 지난 시간을 돌이키며 이런 기록을 남겨준게 너무 좋네요.

단발머리님, 우리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 읽고 쓰기를 멈추지 맙시다. 우리 계속 기록하기로 해요, 필리스 체슬러 처럼요!

단발머리 2022-02-04 19:31   좋아요 1 | URL
‘여성이라서‘에 반대하는 것이 페미니즘인데 ‘너는 페미라면서‘가 다시금 여성들을 옥죄는 현실이 참... 그렇습니다. 서로간에 완벽하게 같은 생각일 수 없겠지요. 의견 차이를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기는 하고요. 하지만, 저로서는 그럼에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어떤 지점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도 또 복잡한 마음이 끼어들기도 하구요. 큰 틀에서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전 생각합니다. 포르노 논쟁으로 페미니즘 운동 전체가 타격받았던 걸 생각하면 더욱 그렇구요.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계속해서 읽고 쓸 수 있을 거에요, 우리는요. 철분제 잘 챙겨먹고 요가 열심히 해서 꼬부랑 할머니가 되지 말자구요!!!

난티나무 2022-02-03 17: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단발머리님의 이 글 다시 읽을 거예요!
정올않페, 저도 사서 갖고 있는데 아직 시작 전이라 두근두근 ~~~~~^^

단발머리 2022-02-04 19:32   좋아요 1 | URL
예상보다 훨씬 놀랍고 감동적인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난티나무님을요^^

독서괭 2022-02-03 22: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부장제, 이를 떠받치고 있는 남성집단이라는 이 거대한 적을 상대로 똘똘 뭉쳐야 하다보니, 너무 이상적인 페미니스트상을 만들어놓고 개별성을 무시하게 된 거 아닌가..그런 생각이 드네요. 단발님 말씀대로 다양성을 포용할 만한 여유가 없었던 것 같고요. 너무 절박했다고... 그렇게 생각하니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네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의 저 대목 저도 기억나요. 여성들이 더이상 집단으로서만 평가되지 않고 개별성이 존중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단발님 좋은 글 감사해요^^ 책장에서 잠자던 책을 꺼내오게 만드는 리뷰라니 얼마나 훌륭한지!!

단발머리 2022-02-04 19:42   좋아요 2 | URL
서로에게 더 많이 기대고 의지할 수 밖에 없었던 제2세대 페미니스트들을, 저는 쪼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구요. 그 전에 대략적으로 들었을 때는, 왜 그렇게 싸웠나, 왜 그렇게 서로를 미워했나, 이런 식으로만 생각했는데, 상황을 기억하는 체슬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이해되는 순간이 있더라구요. 한편으로는 그들의 피나는 경험에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많이 부족하고 두서 없는 글인데 워낙 좋은 책이라 그런지 책장에서 잠자던 책을 꺼내시기도 하시네요 ㅎㅎㅎ
독서괭님 격려 말씀에 더 열심히 쓰고 싶어지네요! 좋은 밤 되세요!!

- 2022-02-08 14:07   좋아요 0 | URL
2세대 페미니스트들의 박터지는 열정적인 싸움과 갈등이 저는 아쉽지 않고 되려 좋아요! (그 안에서 개개인의 정서적 소진과 상처는 안타깝지만..) 그 운동과 논쟁들이 지금의 더 풍성하고 경합하고 또 더 다분히 나름의 무언가를 또닥또닥 만들어나가는 자양분이 된 것도 같고요. 갈등이 싫어서 대충 봉합한 뒤에 눈^^ 이렇게 하고 아무 문제 없는 척하는 것보다는 진지하게 치열하게 논쟁하는 방법도, 그 안에서 멋지게 싸우고도 자신을 잃지 않는 방법도 앞선 세대의 페미니스트들을 통해 배웁니다. 체슬러의 책을 읽겠습니다!!! 아무래도 여수에서 책을 못읽었더니 너무 온 몸이 근질거려요!!!!

단발머리 2022-02-08 14:34   좋아요 1 | URL
이 책 읽고 나서 또 이야기해 주세요, 쟝쟝님. 전 이 책 읽고 그분들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됐지만, 뭐랄까.
그런 모습들이 약간 ‘진보 진영‘ 내의 노선 갈등과 비슷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보수는 이익을 위해 결집하잖아요. 생각 필요 없이 그냥 나한테 이득이 되면 같은 편이잖아요. 막 서로 봐주고, 이해해주고, 그런단 말이지요. 진보는 안 그래요. 뭐가, 그렇게 참..... 말이 많아요. 저는 그런 거 엄청 좋아하고 완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다가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는 거죠. 건너서는 안 되는 강을, 구명조끼 없이 건너가구요. 물에 빠지고. 그럼 이쪽에서 못 구해줘. 그렇게 빠이빠이.
나중에 우리 또 이야기해요^^

- 2022-02-08 15:14   좋아요 1 | URL
보수쪽 사람들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고 어디서 자주 들었던 것 같아요 ㅋㅋㅋ 정치적 색이 인격적 성숙을 담보하진 않는 것 같기도 하고 ㅎㅎㅎ 그러고 보면 변화를 바라고 더 나아가고자 하는 (문자의미 그대로의)게 진보라면 상처와 분열은 필연일 지도 모르겠네요. 구명조끼 서로 입힌채로 투닥투닥 했음 좋긴 하겠다 ㅎㅎㅎㅎ
오늘 뉴스는 윤과 안이 갈등(?)하던데 말이죠ㅋㅋㅋ 좀 고소하기도 하네요?

단발머리 2022-02-08 15:39   좋아요 1 | URL
보수쪽 사람들이 그렇게 좋다고 하신 분은 모르겠지만, 보수 쪽 분들이 그렇게 따뜻하다고 하신 분은 알아요. 알라디너셨는데.... 안타깝네요. 어디서든 행복하세요 ㅠㅠㅠ 안녕히 가세요... 정치색이 인격적 성숙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훌륭한 보수주의자를 찾기가 어렵다. 물론 훌륭한 진보 인사도 그렇겠죠. 문제는 사람들은 보수가 그런거는 용서를 잘 해줘요. 걔네들 다 그렇지 뭐. 기준 자체가 낮으니까요. 진보에게는 택도 없는 일이구요.
전.... 구명조끼 입은채로 서로 말다툼하는 거 괜찮다고 봅니다. 아름다운 광경 아니더라도 그럴 수 있죠. 문제는 구명조끼 안 입고 혼자 강에 뛰어들면.... 어쩔라고 그래요?ㅠㅠㅠ
윤과 안의 갈등을 고소해하기에는 사태가 너무 엄중해서. 전 아직 고소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흐미....

2022-02-10 12: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위계적 세계관은 기술의 세계와 자연의 세계에서 하위의 것은 항상 상위의 것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102)이고, 이에 따르면 길들여진 동물이나 남성 노예, 그리고 여성은 2의 자연이 되어 1의 자연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107), 이것이야말로 이들의 존재 이유이다. 지배와 착취가 제도적으로 이데올로기적으로(107) 분명하게 설명되는 지점이다. 노동의 전유와 노동자의 노예화가 노예제의 실행과 여성의 예속화로 확정될 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것을 자연스럽고 필요한 것으로 보았다. (108)    

 


아리스토텔레스는 한 복합체의 지배하고 지배받는 요소들을 타인에게 두는 자연의 경향이 가져온 결과라고 설명하고, 아렌트는 인간이 필요를 지배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면 언제든 타인에게 폭력을 행사할 권리가 있다는 놀랄 만한 주장을 편다. (111

 


육체와 육체적 필요 사이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폭력에 대해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아렌트의 주장은 이러한데, 이는 결론적으로 오이코스에서 일어나는 지배와 폭력을 자연화’(112)하고 이 지배를 옹호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슬로건 속에 '가정 내 폭력'에 반대하던 제2 페미니즘 운동이 아리스토텔레스는 물론이고 아렌트의 해석과 충돌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형상이 훼손된 남성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악명 높은 여성 묘사는 우발적인 여성 혐오 이상의 의미가 있다. (131)  

 


그리스인에게 자연에 대한 전투와 여성 혐오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132)

 


여성 혐오의 발명을,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그리스인들은 남성 자신을 자연에 대항하는 존재로 보았다. 그는 인간인 자신과의 대척점에 동물(야생의/길들여진)을 두었다. 자연을 정복하고, 동물을 다스리며, 질서를 회복하고, 비합리에 맞서 싸우는 합리적이고 덕스러운 존재(132)로 자신을 상정했다. 그들에게 여성은 불가해한 존재였다. 여성은 알 수 없는 이유로 피를 흘렸고, 어느 순간 배가 부풀어 올라 자신과 똑같은 존재를 스스로, 혼자 만들어냈다’. 그 일들은 남성이 흉내 내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고 또한 어떤 방식으로든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 생명에 대한 경이감, 그리고 여성에 대한 불가해함은 남성 자신의 무력함을 드러내는 조건이 되었으며, 이는 죽음에 대한 지속적이고 강력한 환기 장치가 되었다. 여성에 대한 사랑보다 더 강력하게 남성을 지배했던 건 여성에 대한 두려움이었고, 더 정확하게는 여성과의 성적 접촉이었다. 생명력이라는 강력한 힘을 자연에 속한 것으로 강제 배속했을 때, 여성은 남성보다 더 육체에 구속된존재가 되었다. 여성은 생리적 조건 때문에 남성보다 더 동물적인 존재가 되었고, 무능한존재가 되었다. 동물, 자연, 여성이 하나의 카테고리를 형성하게 되면서 여성에 대한 비하와 억압이 강화되었고, 여성에게는 인간의 지위가 부여되지 않았다(131). 여자니까, 여자라는 이유로, 어떻게 여자가, 감히 여자가. 이런 모든 언설, 여성에 대한 억압을 자연화하는 언설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아테네의 남성됨 문화에서 불멸의 문제(143)에 대해서는 마사 누스바움의타인에 대한 연민』의 속 4, <혐오와 배제의 정치학>의 논의가 유용하다고 생각한다.

 



육체에 대한 거부와 육체를 유지하고 만족시키는 데 개입하는 활동에 대한 거부는 정치 영역뿐만 아니라 이런 사안들이 강등되어 밀려간 영역에서도 적지 않은 문제를 일으킨다. 나는 이 문제에 고전 그리스 시대 이래 서구 남성의 정치 기획에서 주요 부분을 구성하기에 충분한 위상과 복잡성이 담겨 있다고 본다. 문제의 핵심은 이렇다. 그리스 시민들이 자연과의 굳건한 관계에서 풀려날 방법을 모색할 때 그리고 그 방법이 인간 종의 삶에 필수적인 생산과 재생산 작업에서 벗어나거나 그 일들을 헐뜯는 것일 때,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존재 및 정체성의 새로운 기반을 어떻게든 찾아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맡아야만 했다. 그들은 자신의 물질적 요구를 들어주는 이들을 제도적으로 착취할 방법을 정당화해야 했을 뿐만 아니라, 목적이 있는 존재로서 자기 존재에 대한 의심을 불식할 사상과 활동을 고안해 내야 했다. (80-1)

 


자연스레 윤석열의 일주일 120시간발언과 아프리카 손발 노동발언이 떠오른다.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

손발로 노동을 하는 것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다.” (출처 : 서울신문, 2021-09-16)

 


일단 일주일에 120시간 바짝 일하지 말라고, 생존 한계선까지 노동력을 착취하려는 자본의 힘에 대항해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낸 52시간제의 사회적 합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육체노동에 대한 심각한 비하 발언 역시 문제적이다. 기사 표현을 그대로 옮겨온다면 정말 경악할 일이다. 이후에도 차곡차곡 쌓아둔 포인트는 한없이 올라가고 있음에도 견고한 윤석열 지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난 정말 모르겠다.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표창장 문제까지 가지 않더라도 임용/취업을 위해 제출한 대부분의 이력서에서 학력과 경력을 위조한 대통령 후보의 아내가, (범법) 행위는 돋보이기 위한 욕심이었다고 말할 때, 사람들은 그 행위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고 있는 것인지 그게 궁금하다. 바로 그 대통령 후보의 아내가 우리 남편은 바보이고, 내가 정권을 잡으면(우리가 아니고 내가라고 말했다)이라고 말하고, 내가 청와대 들어가면 특정 언론사(기자)를 다 처넣을 거라고 말하는 육성 파일이 공개됐는데도,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윤석열을 지지한다고 말할 때, 나는, 내가 사는 세상이, 내가 생각하는 그 세상인가 하고 생각한다.

 


민주당과 정의당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기표소 안)에 민주당 쪽으로 돌아섰던 내 과거를 매섭게 비난하던 어떤 사람은, 며칠 전 여론 조사 결과를 보고는 진지하게 물었다. 아니, . 아니, 진짜 이러면 어떻게 되는 거야? 이대로 가면 윤석열이, 진짜 안 되겠네. 왜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그래? 그래서 내가 기표소만 들어가면 정의당에 미안해!를 외쳤던 거야. (니가 심상정 찍으면 윤석열이 대통령 되는 거야. 그래, 너 때문은 아니지. 너 때문은 아니야. 그런데 대통령은 윤석열이 되는 거야) 마지막 문단은 괄호로, 속마음 토크로 처리했다. 그래야 한다는 걸 안다. 어제도 윤석열이 이재명을 9퍼센트 앞선다는 여론 조사 결과가 있었다. 상대적으로 느슨한 진보 측에 비해 보수 측은 김건희의 녹취 파일 공개 이후 더 결집했다고들 하던데, 그런 녹취 파일이 공개되었는데도 보수는 이렇게 야무지게 움직이나 하는 생각에 역시나 이명박근혜의 대한민국이구나 싶다.

 

윤석열이든 이재명이든 똑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안다. 그런 사람에게는 윤석열이 대통령인 나라가 찾아오겠지. 이재명과 윤석열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잠 못 드는 밤이 계속될 테고. 윤석열이 대통령이 되는 새 아침이 밝아온다면, 나는 윤석열의 공정을 확신하는 사람들보다 윤석열이나 이재명이나 똑같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원망하게 될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정치에 과몰입하는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일은 부조리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오직 남성만이 정치에 적합하다고 주장했고, 아렌트는 (자신이 여성인 것을 잊어버리고) 그 말이 옳다고 믿었던 것처럼, 나 역시, 나의 이런 생각 역시 부조리하다는 걸 안다. 나도 알고 있다.

 



잠 못 드는 밤에는 책이 최고다. 일단 이 책을 마저 읽어야겠다. 오늘이 26일이라고, 아침에 친구가 알려줬다. 2022 126일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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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01-26 23: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커피를 많이 마셔 잠 못 드는 건가? 싶었더니..아!! 잠 못 드는 이유가 있었군요!!ㅜㅜ
어떻게 될런지? 걱정입니다!!!!!
저는 그냥 뉴스 안보고 삽니다. 마음이 계속 언짢아져서 말이죠!!

단발머리 2022-01-27 10:15   좋아요 1 | URL
저도 걱정입니다. 책으로 도망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지요.
그래도 완전히 모른 척 하기에는 너무 중요한 문제라서... 저는 오늘도 뉴스를 강제청취하고 있어요 ㅠㅠ

난티나무 2022-01-27 00: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휴 진짜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단발머리 2022-01-27 10:15   좋아요 0 | URL
진짜 큰일입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휴우

수이 2022-01-27 01: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하는 페이퍼입니다. 명쾌하다!

단발머리 2022-01-27 10:15   좋아요 0 | URL
원하는 페이퍼라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해요, 수연님..... 흐미ㅠㅠㅠ

바람돌이 2022-01-27 02: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다고 하면 이명박과 박근혜시절을 합친 상황이 연출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이 사태를 만든데는 그렇게 국민이 권력을 몰아줬음에도 제대로 된 개혁 하나 이뤄내지 못한, 심지어 도덕성과 공정성에서도 치명타를 날린 지금의 민주당이 제1책임이 있겠지요. 지금의 선거 분위기를 보면 진짜 답답해서 미치겠어요.

단발머리 2022-01-27 10:19   좋아요 1 | URL
이명박근혜 시대보다 더할거라는 생각에 좀 암울하고 그렇습니다. 지난주부터 더 걱정이 많아지고 있어서요. 나라 걱정 다 쓸데없다고 하던데 전 이렇게 나라를 걱정하고 있네요.

민주당 제대로 못한 거를 쓰자하면 위의 글보다 훨씬 더 길게 쓸 자신이 있습니다. 무엇 하나 제대로 못했구요. 정말 문대통령님 개인기로 이나마 버틴 거라고,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민주당에 대한 실망이 국민의힘을 선택하는데로 이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제 걱정의 주요한 맥락입니다.
 


















내가 말 잘하는 남자를 좋아하는 취향인 것을 중학교 즈음에 알아챘다. 그 때 당시 내가 좋아하던 사람은 말 잘하는 남자가 아니었는데도, 난 그걸 알았다. 사람의 매력을 발견하는 각각의 특별한 지점이 있을 테지만, 영화 또는 드라마의 캐릭터이든 실제에서든 나는 말 잘하는 남자를 한결같이 좋아했다. 내가 말하는 말 잘하는이란 청산유수 같은 언변, 위트 가득한 농담을 넘어서서 말이 통하는을 의미한다. 하지만 말이 통한다는 건 어떤 뜻일까. 그건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내가 알아듣는다는 의미이고, 동시에 내가 하는 말을 그가 알아챈다는 뜻이다. 의사소통. 커뮤니케이션.

 


내가 사랑했던 동시에 나를 절망에 빠뜨렸던 필립 로스의 소설유령 퇴장』에는 이런 문단이 있다.

 


그녀     제 어떤 점에 그토록 끌리시는 거예요?

 

        자네의 젊음과 아름다움. 우리가 소통에 들어선 속도. 자네가 말로 만들어내는 에로틱한 분위기


(『유령 퇴장』, 178)

 


사랑에 빠진 사람이 말한다. (당신의 젊음과 아름다움) 그리고 우리가 나누는 소통과 당신이 만들어내는 에로틱한 분위기 때문에, 나는 당신과 사랑에 빠졌다.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나는 이게 사랑을 말하는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걔랑은 말이 안 통해라는 말은 얼마나 모욕적인가. 사랑하는 사람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얼마나 비극적인가. 이 책 『The Love Hypothesis』에서는 서로에게 처음인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 질문과 답을 통해, 그리고 따뜻한 마음과 친절함을 통해 어떻게 사랑을 만들어가는지를 보여준다. 첫눈에 반하는 사랑만큼이나 로맨틱하고 예쁜 사랑의 모습이 그려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사람은 페미니스트 벨 훅스다.

 


여성들은 내게 반복해서 경고했다. 내 남자 파트너는 내가 자신의 섹시하고 반항적인 후배인 한, 그리고 자기가 우월한 멘토가 될 수 있는 한 내 지성에 신경 쓰지 않지만, 내가 그를 능가하고 추월하면 달라질 것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그가 정말로 지지를 거둬들였고, 나는 내가 뭔가를 잘못했다고 느끼는 등 비이성적인 생각에 사로잡혔다. (『사랑은 사치일까』, 187)

 


벨 훅스의 상황과 이 책의 주인공 올리브의 상황은 다르다. 벨 훅스가 실제 상황을 맡고 있었다면, 올리브는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답게 해피 엔딩을 맡고 있다. 벨 훅스와 올리브의 연구 분야도 다르다. 그럼에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academia에 몸담고 싶어 하는 열망을 가진 사람으로서, 정확히는 그런 열망을 가진 여성으로서 두 사람이 겪어야만 하는 경험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오랜 기간의 교습과 훈련, 지도를 받아야만 하는 환경과 그 과정 가운데서 지도 교수에 대한 강요된 충성 같은 부분들이 언뜻 보이기도 했다. 이 세상 어떤 직군이든 경쟁이 치열하지 않을까 마는, 학계 내의 정치와 갈등, 그리고 암투가 흥미롭게 그려진다.

 


fake relationship이라는 장치는 요즘에 흔하게 차용된다. 처음에는 가짜였다가 나중에 진짜가 된다는 설정인데, 평범하다고 할 수 있겠다. 오히려, 두 사람이 서로를 알아가면서 나누는 대화가 흥미롭다. 맞.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 만들어가는 에로틱한 분위기. 신경과학자의 언어로 풀어가는 절묘한 대화. 함께 한 추억을 통해 만들어가는 두 사람만의 농담들. 그걸 읽는 재미가 솔솔하다.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을 뒤로하고 별 다섯을 주었다. 내게 준 기쁨과 즐거움에 대한 소소한 감사 표시다. 페미니즘을 알고 로맨스를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하지만 이번에는 이해와 판단을 잠깐 뒤로하고 읽었다. 외출도 잠깐 뒤로하고, 재활용도 잠깐 뒤로하고, 빨래도 잠깐 뒤로 하고, 설거지도 잠깐 뒤로하고.

 

 


하여 나는 책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이 책의 리뷰를 마쳤다. 여자 주인공은 Olive이고, 남자 주인공은 Adam이다. 표지에 보이는 대로 Olivelab girl이고 Adam은 교수님, 표지가 작품의 8할을 맡고 있다. 과학적 연구법에 대한 부분은 지극히 심오하여, 나오는 족족 건너뛰었다. 좋은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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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5 0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1 2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psyche 2022-01-25 01: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교수와 학생이라니 살짝 멈추게 되었습니다만 책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없이 ‘대화를 통한 에로틱‘ ‘두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농담‘ 이렇게 말씀하시니 막 꼭 읽어야 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마구마구 올라오네요.

단발머리 2022-01-25 01:21   좋아요 4 | URL
같은 과이기는 한데 담당 교수는 아니구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교수/학생간의 권력 관계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습니다만은, 로맨스 소설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하기는 합니다.
저는 며칠동안 파묻혀서 재미있게 읽었는데 혹 읽으실 분들 계실까 내용은 거의 쓰지 않았습니다. 쓰고 싶군요. 푸하하하하.

바람돌이 2022-01-25 02: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보고 만화인줄 알았어요. 재밋어 보이지만 원서니 무조건 패스... ㅎㅎ
그보다는 사랑은 사치일까가 관심이 가네요. 이론서 공부는 못하겠고, 저런 에세이가 더 맘에 훅 들어온다는.... ^^

단발머리 2022-01-25 09:08   좋아요 2 | URL
만화는 아니고 로맨스 소설입니다.
저는 벨 훅스 책이 다 좋더라구요. 어렵지 않게 쓰셔서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되고요. 벨 훅스가 맘에 훅 들어오실것입니다^^

다락방 2022-01-25 06: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교수와 학생이라니 저도 잠깐 멈칫 하게 되네요. 과학적연구법 이야 그렇다쳐도 그들 사이의 소통.. 을 제가 번역서 없이 읽을 수 있을까요? 오고가는 핑퐁같은 대화를 저는 보고싶은데 말예요. 그게 원서 읽는 재미일 것 같은데.. 그런데 집에 사두고 안읽은 원서가..
그런데, 이 책이 그렇게 야하다면서요? 🙄

단발머리 2022-01-25 09:12   좋아요 2 | URL
교수와 학생이라는 관계가 좀 그렇기는 해요. 대학원생도 학생은 학생이죠.
많이 어렵지는 않아서 괜찮을 듯 해요. 특히 핑퐁같은 대화는 아주 짧아서 이해가 더 잘되기도 하구요.
이 책이 야하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뒷부분에 좀 야한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다만 그걸 다 이해하기에는 제 영어실력이 좀 부족해서 저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폈습니다. 하하하하.

책읽는나무 2022-01-25 07: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야해요??
그럼 읽어야 되겠네요?
아...언제쯤 읽게 될까요??ㅋㅋㅋ
교수와 학생..갑자기 빛과 물질에 관한 상대성 이론이란 단편소설 생각나네요? 거긴 교수가 나이가 좀 있어 보이던데 책 표지는 교수가 좀 젊군요!!!
군옥수수 꼬깔콘에 담백한 베지밀 같은 사랑이려나??

단발머리 2022-01-25 09:15   좋아요 4 | URL
읽으신다고 하신다면 제가 뭐, 말릴 수는 없겠습니다만은 주요한 장면들은 ‘핑퐁 같은 대화‘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점 밝혀드립니다.
젊은 교수입니다. 하하하하.
꼬깔콘 군옥수수맛에 베지밀 에이 같은 사랑이라기 보다는 스*** 스콘과 호박 라떼 같은 사랑입니다. 참고 부탁드려요^^

독서괭 2022-01-25 1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위에 분들처럼 저도 교수라는 말에 멈칫 하였으나. 에로틱이라는 말에 또또.. 관심이??ㅋㅋ 핑퐁같은 대화라니 그것도 궁금하네요. 티키타카라고도 하는데 저는 로맨스에서 그런 대화장면 잘 쓰는 작가가 좋더라구요^^

단발머리 2022-01-25 13:16   좋아요 4 | URL
저는 주인공들이 싸우는 장면에 크게 감정몰입하는 1인이며, 말싸움에서 지지 않는 남자를 좋아합니다. (뭐라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핑퐁 같은 대화와 티키타카에 더해 여주인공 속마음 토크까지 준비되어 있습니다.
교수와 대학원생(박사과정)의 일이라 사실 좀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미혼의 34세 남주와 역시 미혼의 26세 여주라는 것을 소심하게 밝혀드립니다.

라로 2022-01-25 15: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령퇴장 안 읽어봤는데 저런 구절이 있군요. 읽어볼까? 싶어지는 궁금한 대화에요.^^;; 저같은 늙은이도 이 책 넘 재밌게 읽었어요,, 그런데 정말 페미니즘을 알고 로맨스를 읽는 것은 정말 너무 힘든 일이라는 말씀 너무 공감합니다. 저는 정말 아담이 올리브 부를때마다 좀 짜증났거든요. 하지만 또 손에서 내려놓지 못하고 쭈욱 읽게 만드는 작가의 힘.

단발머리 2022-01-25 15:47   좋아요 2 | URL
필립 로스에 대해서라면, 특히 저 <유령 퇴장>에 대해서라면 읽은 분들에 따라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는 점 알려드려요. (저는 호감 쪽입니다.) 이 책 속의 여러가지 반박하고 싶은 지점들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걸로도 두쪽은 쓸 수 있을 것 같네요. 근데 저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요. 푹 빠지게 하는 작가의 힘,에 공감합니다.

mini74 2022-01-25 23: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니 왜 아무도 꼬깔콘과 베지밀 이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건가하다가 나무님이 언급하셨군요 ㅎㅎ 야한 사랑보다 먹는 거에 진심인 ㅠㅠ

단발머리 2022-01-27 15:22   좋아요 1 | URL
꼬깔콘이 군옥수수맛이라는 것, 그리고 베지밀 에이가 아니라 ‘B‘라는 점도 중요하거든요. 그나마 책나무님이 알아봐주셔서 감사하네요. 야한 사랑보다 먹는 거에 진심이시라는 거, 꼭 기억해두겠습니다^^
 
The Love Hypothesis (Paperback) - 『사랑의 가설』원서
Ali Hazelwood / Penguin Putnam Inc / 2021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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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은 많지만 할 수 없는….



(궁금한 독자를 위한 찾아가는 서비스)

#Adam #Olive #별다섯 #romance
#Welcome to the acade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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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1-24 2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왜요 왜ㅋㅋ궁금해요 단발머리님! 저는 아주 얇은 친구로 읽고있어요^^

단발머리 2022-01-24 20:59   좋아요 2 | URL
궁금한 미미님을 위해 키워드 나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1-24 21: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악 뭔데요 뭔데요 해줘요 해줘요 😭😭😭😭😭

단발머리 2022-01-24 21:05   좋아요 2 | URL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2탄 곧 준비하겠습니다.

다락방 2022-01-24 21:08   좋아요 1 | URL
언제요? 🙄🙄🙄🙄🙄

단발머리 2022-01-24 21:10   좋아요 1 | URL
내일 아침 출근길에 읽으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이상 무!!!

다락방 2022-01-24 21:48   좋아요 1 | URL
저는 이만 잘 준비를 할터이니 내일 출근길 읽을 때 무리없이 부탁드려요. 흠흠. (포스 작렬하며 마침)

수이 2022-01-24 21:51   좋아요 1 | URL
로맨스로 단결하는 겁니까? 🙄

다락방 2022-01-24 22:17   좋아요 1 | URL
저 술마셨어요 호호(어쩌라고?)

단발머리 2022-01-24 22:20   좋아요 1 | URL
다락방님! 아직도 안 자고 있어요? 월요일인데… 피곤할 텐데요.

단발머리 2022-01-24 22:20   좋아요 1 | URL
단결! 이상무!! 🤭🤭🤭

다락방 2022-01-24 22:21   좋아요 1 | URL
저 이제 잘겁니다. 내일 아침에 눈뜨면 똭 단발머리님 페이퍼가 있는거죠?!

단발머리 2022-01-24 22:23   좋아요 1 | URL
그럼요, 그럼요.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 막 마트 갔다 들어왔어요. 정리하고 바로 준비해서 착오없이!
출근 시간 내가 아니까요! (찡긋)

라로 2022-01-24 21: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주인공도 이름이 올리브! 너드들의 사랑,, ^^;;; 저도 아주 재밌게 읽었는데 (아담이 올리브 부르는 거 말고;;;)이거 시리즈 2번째는 아직 못인데요, 더 재밌다고 하네요. 단발머리님 글 기대됩니닷!^^

단발머리 2022-01-24 22:57   좋아요 1 | URL
라로님, 벌써 읽으셨군요! 저도 아주 재밌게 읽어서요. 시리즈 두번째도 읽고 싶은데 아마도 좀 기다려야되지 싶어요.
기대만발은 감사합니다만 쪼금 걱정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1-24 2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몰까?? 뭐지???
아....궁금해요!!!!
여기도 올리브???? 궁금해요.저 요즘 올리브 사랑에 빠졌어요.

단발머리 2022-01-24 22:58   좋아요 2 | URL
책나무님, 올리브책 읽고 계시지요. 여기도 올리브 나옵니다. 올리브가 사랑에 빠졌지요. 푸하하하하하!
내일 다시 찾아올께요!!

수이 2022-01-24 21: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 언제 올라옵니까? 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두근 10독 가시는 겁니까?

단발머리 2022-01-25 01:22   좋아요 1 | URL
10독은 좀 부담스럽네요. 하지만 한두번 더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빅재미를 가져다 줍니다^^

psyche 2022-01-24 23: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이라니... 로맨스 별로인 저도 끌리네요. 단발머리님 글 기다립니다.

수이 2022-01-25 01:13   좋아요 1 | URL
언니 글 올라왔어요 ㅋㅋㅋㅋㅋㅋㅋ 저 오디오북 막 구매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psyche 2022-01-25 01:18   좋아요 1 | URL
지금 막 읽고 왔습니다. 단발머리님 낚는 솜씨가 끝내주네요!

단발머리 2022-01-25 01:22   좋아요 1 | URL
어떻게요. 이달의 낚시왕 될수 있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2-01-25 01:31   좋아요 1 | URL
언니도 읽으시는 거죠?! ㅋㅋㅋㅋㅋ 낚시왕 낚시 실력이 끝내주는걸요!

psyche 2022-01-25 08:19   좋아요 0 | URL
몰랐는데 엄청 인기인 책인가봐요. 도서관 줄이 장난 아니네요. 9주 기다리래요.

다락방 2022-01-25 09:14   좋아요 0 | URL
9주라니. 그냥 사버려요, 프시케 님!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1-25 09:20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9주라니... 9주는 좀 너무 머네요. 저는 구입해서 읽었습니다. ㅎㅎㅎ
아롱이 음반 사는데 무료배송 하려고 장바구니에 있던 책들 중에 표지가 눈에 띄어 주문했는데 알고 보니 요즘에 핫한 책이더라구요. 저자가 신경뇌과학자여서 그런지 이과대학 대학원생들의 고달픈 풍경이 아주 세세히 잘 그려진 듯 해요.
물론 가장 주요한 흐름은 사랑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간의 ‘아름다운‘ 대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읽었습니다. 푸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인간은 타자를 생각함으로써만 자기 자신을 생각한다고 앞에서 이미 말한바 있다. 인간은 이원성의 기호 아래에서 세계를 파악한다. 이원성은 원래 성적 특성을 지니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을 동일자로 내세우는 남자와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타자의 범주에 분류되었다. 타자는 여자를 포함한다. 여자는 애초에 홀로 타자를 구현할 만큼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2의 성』, 117)

 


이런 주장은 자연스럽다. 세상을 나와 너로 구분하는 건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궁금했던 건 주체와 타자로의 인식에서 남성이 자신을 주체로 인지한 데 반해, 왜 여성은 객체, 타자가 될 수밖에없었냐는 점이다. 여성은 왜 자신을 주체로 볼 수 없었는가. 여성은 왜 타자로서'만' 존재했는가.

 


인간을 정의하는 데 있어, 여전히 여성들은 불완전하고 주변적이어서 일종의 아종으로 규정되었다. 정치적으로 여성들은 가상 투표권이라는 빵조각이라도 대접받을 정도로도 인정을 받지 못했다. 일단 어떤 문제가 사회 문제라고 규정되면, 그 문제를 정치 논쟁이나 투쟁에서 다룰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규정되지 못한 문제는 계속 침묵 당하고, 정치에 끼어들지 못한다. 남성의 규정 능력, 즉 무엇이 정치적인 문제이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가를 규정하는 힘은 결국 여성들의 해방 투쟁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역사 속의 페미니스트』, 24)

 


기나긴 여성 혐오의 역사 속에서 여성의 지위는 지속적으로 추락한다. 여성의 목소리는 지워지고 소수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역사가 지워진 채 하나의 집단으로써 존재한다. 인간의 기본값이 남성인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여성은 그렇게 타자로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여성의 ‘2등 시민화의 근거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찾을 수도 있겠다. 해제 속 정희진 선생님이 표현이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위계적 세계관(28). 아리스토텔레스의 위계적 우주 속에서 여성은 동물보다 우월하지만, 남성보다는 열등하며, 노예근성을 타고난 남자는 여자보다는 우월하지만, 자유롭고 자율적인 인격체를 가진 최상의 남자보다는 열등하다는 식이다. 위계적 우주 속에서 모든 개별 사물에게 각각의 자리가 지정되어 있을 때, 그리고 그러한 생각이 문화의 방식으로 사회를 지배할 때, 일개 개인이 그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별적으로 존재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아렌트가 접촉과 오염을 피하며 지성과 의지도, 욕구와 욕망도, 목적과 결과도 접촉하지 않은, 즉 절대적으로 무를 접촉하는 자유 공간 속에 행동을 두려고 한 데는 위험할 정도로 병적인 측면이 있다. (『남성됨과 정치』, 85)

 


그리스 정치 속에서 이상향을 반드시 발견하고야 말겠다는 아렌트의 열정을 이해하지만, 웬디 브라운의 지적대로 그것은 이미 역사적 패배를 가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관련된 책을 몇 권 찾아 놓았고, 자랑스러운 한나 아렌트 정치사상 세트는 구입했다. 도서관에 상호대차한 책도 받으려 가야 하는데 오늘도 못 나갈 듯싶다.


 
















공허한 정치적 논의만을 이어가기에는 정치 현실이 녹록하지 않다. 고결한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맡겨 두기에는 정치가 우리 삶에 너무나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이기도 하고, 혁명과 전쟁이 저문 이 세대에 변화란 결국 정치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을테니 말이다. 대선, 이른바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한나 아렌트만큼 중요한 우리의 대통령 선거. 마키아벨리 보다 중요한 대선 공약. 베버 보다 중요한 우리의 미래. 정치 그리고 우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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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2-01-22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단발머리 2022-01-22 17:4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바람돌이 2022-01-22 17: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항상 이론보다 현실이 더 복잡하고, 더 어렵고 하지만 더 중요하죠. 이번 대선은 참 여러가지로 생각해볼 지형이 많은듯해요. 무언가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다는, 그 변화가 우리 사회를 좀 더 나은 사회로 바꾸어줄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전의 이념대립이나, 이분벅적 구도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발머리 2022-01-22 17:47   좋아요 2 | URL
이번 판세를 분석하시던 어떤 분이 ‘빚진 게 없는 상태‘로 대선후보를 본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심지어 박근혜 마저도 국민들이 ‘부채감‘ 비슷한 걸 가지고 있었던 듯 하고요. 이번에는 진짜 얼굴(김건희 강세)과 실력(이재명 강세)만으로 대통령을 뽑으면 될 것 같은데.... 텔레비전 토론 한 번 없으니, 앞으로도 쭉 복잡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