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정리하다가 찾았는데 새 책인 줄 알았다. 그렇게나 아껴서 읽었던가. 『Becoming Jane』의 제인은 제인 오스틴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라고 하는데 동명의 영화와 같은 내용이다. 동네 유지의 조카 위즐리는 가난한 목사의 딸 제인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어머니를 포함한 가족들은 은근히 제인이 청혼을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하지만 제인의 마음은 잠시 시골에 내려온 도시 남자 톰 르프로이에게 가 있다. 내 글을 무시하는 듯하지만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남자. 내 글에 진심인 남자. 내 글의 가능성을 알아봐 주는 남자. 말이 통하는 남자.

 

제인과 톰은 그들의 인생을 걸고 도박을 감행하지만, 그 일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두 사람 중 한 사람만이라도 경제적인 압박에서 벗어났더라면 둘의 사랑은 이루어졌을 것이다. 제인에게 넉넉한 지참금이 있었더라면 그녀는 기꺼이 톰의 가족을 부양했을 것이다. 직장 상사이자 후원자인 삼촌의 돈을 받지 않아도 되었더라면, 톰은 망설임 없이 제인을 아내로 맞았을 것이다. 하지만, 제인에게는 돈이 없었고, 톰에게는 돈이 필요했다.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제인은 톰을 돌려보낸다. 둘의 사랑이 다른 사람들을 망치게 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고통이 인내를 낳는다던가 고통을 통해 자기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은, 고통에서 벗어난 후에야 할 수 있는 말들이다. 고통의 회오라기 한 가운데서는 고통을 견디는 일 말고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난 삼촌에게 저항할 수 없어요, 난 가족들을 모른 척 할 수 없어요, 라고 톰이 말했던 그 밤의 고통은 제인만의 것이다. 그 고통을 살아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즈음 제인 오스틴은 두 쌍의 남녀 주인공에게 해피 엔딩을 선사하는 소설 『오만과 편견』의 집필을 시작한다. 그래서 오늘의 문장.

 


Neither Jane Austen nor her sister Cassandra ever married. Jane completed six very successful books before dying at the age of forty-one.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문장이 나란히 연결되어 있다.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인 오스틴이 훌륭한 소설을 남길 수 있었던 건 아닐 것이다. 어찌 되었든 그녀는 썼을 것이고, 그리고 소설을 완성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의 도피를 만류했던 카산드라의 말, “글 쓰는 건 어떻게 할 거니?”라는 말 역시 진실의 한쪽 면이다. 톰과의 결혼. 농장의 갖가지 일들. 아이가 여섯 혹은 일곱. 10여 년에 가까운 임신, 출산, 수유, 육아. 그 많은 식구를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다시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는 가사노동에 지쳐 예전의 총명함을 모두 잃어버리고 동네의 그저 그런 아줌마가 되어간다. 나도 한때는 그랬었지, 라고 말하는 사람이.

 

 


다음 주가 부활절이고 그래서 이번 주는 고난주간이다. (하여) 새벽에는 교회에 다녀왔다. 신디사이저를 칠 때는 그렇지 않은데 피아노 앞에 앉으면 자꾸 긴장하게 된다. 어제는 아주 어려운 곡도 아닌데 오랜만이라 그런지 더 긴장이 돼서 반지를 빼 가방에 넣어두었다. 집에 돌아와 아침 준비해서 식구들을 다 내보내고 은행에 갈 일이 있어 정류장으로 걸어가는데 왼손 네 번째 손가락을 더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반지가 없다. , 반지는 가방에 있다.

 

남편이 연애할 때 사준 반지, 좋은 반지도 비싼 반지도 편한 반지도 아닌데. 오래되어서, 시간이 이만큼 흘러서 이제는 내 몸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반지가 있었던 자리, 반지가 남긴 흔적을 자꾸 더듬는다. 익숙해진 것에서 무언가 하나, 작은 것 하나를 바꾸려고 할 때, 자꾸 의기소침해지는 내가 여기에 있다. 반지의 흔적을 더듬는 나, 익숙한 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 오늘의 일을 자꾸 내일로 미루는 나.

 


익숙한 것에서 작은 것 하나를 바꾸려 하고 있다. 반지의 흔적을 더듬는 일을 그만두려 하고 있다. 요즘 책을 많이 못 읽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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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4-13 15: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꼭 봐야겠네요!! 영화에 대한 감상도 이렇게 깊이있게 글로 풀어내시는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22-04-13 16:37   좋아요 2 | URL
제인 오스틴의 이야기야 뭐 말할 것도 없이 넘 좋지만 배우들 연기도 좋아요.
좋은 시간 보내시길요^^

거리의화가 2022-04-13 15: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반지에 대한 이야기 곱씹게 만드네요. 사실 무얼 하든 반지를 끼고 있으면 불편할텐데 저조차 이게 몸의 한 일부분이 되서 반지가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습니다. 얽매이고 구속하는 건 제 자신이 아닌가 싶네요.

단발머리 2022-04-13 16:39   좋아요 2 | URL
저 왜 이렇게 긴 글 쓴 거죠? 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님의 댓글이 제 글보다 훨씬 좋아요.
허전한 마음의 구석과 이면을 좀 연구해 보려고 해요. 얽매이고 구속하는 건 제 자신이 맞는 것 같아서요^^

수이 2022-04-13 19: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왜 허전해요? 단발님, 허전해 말아요. 허전하면 줄넘기 해요 전 그래요. 그럼 좀 나아져요. 와인 마시면 기분 좋아지는데 단발님은 술 안 마시니까 라떼랑 케이크 할까요?

단발머리 2022-04-18 15:19   좋아요 1 | URL
반지 끼었던 자리가 허전해요 ㅋㅋㅋㅋㅋ 더 큰 반지를 껴서 메우지 않고 손가락에 근육 키워서 허전한 맘 채울게요.
그리고 라떼랑 케이크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수이 2022-04-13 19:28   좋아요 1 | URL
파스타 라떼 케이크 레몬에이드 모조리 다아!!!! 💪💙🥂

책읽는나무 2022-04-13 1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까 이 글을 읽고, 댓글 썼는데 날아가버린..ㅜㅜ
비커밍 제인 아직 다 보진 못했지만, 앤 헤서웨이 좋아해서 딸이랑 중간까지 보고 있어요. 빨리 오만과 편견 집필 장면 봐야 하는데 딸이 나 혼자 보지 말래서....ㅜㅜ
반지는...전 반대로 집에 있을 땐 일 할때 걸리적거려서 반지나 악세사리를 잘 안하거든요. 근데 외출할 때는 멋부린다고 반지를 끼고 나가는데 그럼 전 그게 너무 익숙치 않아 계속 반지를 만지작 만지작...손가락도 무겁고???ㅋㅋㅋ
근데 단발님의 반지는 연애할 때 받은 반지라면, 평생을 함께 해 온 분신 같은 느낌일 것 같아요. 그래서 더욱 없으면 허전함을 느낄 것 같아요. 모든 간절함이 반지에서 나올 것 같은 존재이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어떤 날은 반지를 낄때 소원을 빌면서 끼기도 하거든요ㅋㅋㅋ 이루어져라,이루어져라~~하면서요. 이거 너무 절대반지 비스무리한 버전이 되어가고 있어 댓글의 마무리를 짓기가 애매모호 해지고 있네요??ㅋㅋㅋ
암튼 애써 반지의 부재에 신경쓰이신다면, 평소에 끼지 않다가, 외출할 때만 끼는 걸 습관화 해보시면 나중엔 반지를 껴보시면 아...반지의 존재감이 좀 다르게 다가오실 수도 있을껍니다ㅋㅋ
그리고 허전함을 다른 무엇으로 대체해 보시면 기분 전환 되시겠어요. 그게 달달함이라면 더욱더!!!^^

단발머리 2022-04-13 21:42   좋아요 2 | URL
세상에나… 이럴 수가! 책나무님 댓글이 날아갔다고 하니 알라딘 1:1 문의라도 넣어야겠어요!!
비커밍 제인은 따님이랑 꼭 한 번 보세요. 전 주인공 배우 둘 다 완전 좋아해서 더 재밌게 봤답니다 ㅋㅋㅋㅋ 제 반지는 이제 제 자리를 찾아서 저는 아무런 허전함을 느끼지 않고 있어요. 이 반지가 절대 반지였음 좋겠는데 이 반지는 절대반지처럼 평범해 보이나 절대반지는 아니어서 ㅋㅋㅋㅋㅋ 달달한 그 무엇으로 허전함을 달래야 한다는 책나무님 의견에 완전 동의합니다!!!

2022-04-13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4-13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4-13 2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4-13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04-14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자작가들은 부엌식탁에서 대부분 등단한다던가 하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집안일을 마무리하고 식탁에 앉는 밤, 꿈을 뒤쫓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겠죠. ㅎㅎ 반지라 ㅠㅠ 저흰 결혼할때 너무 가난해서 ㅋㅋ 악세사리 같은 반지를 나눠가졌는데 쇠독이 올라서 ㅎㅎ 간직만 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결혼 20주년에 물방울 다이아로 준다더니 개뻥이더군요 ㅎㅎ 그러니 꼭 각서를 받고 공증도 해야한다는 교휸을 얻었습니다 ㅎㅎ 좋은 수필 한편 읽은거 같아요 단발머리님 *^^*

단발머리 2022-04-15 08:07   좋아요 2 | URL
결혼반지는 원래 보관하는데 의의가 있잖아요. 저도 결혼반지는 보존만 할뿐이구요. 비싸지 않은 반지가 편해서 내내 끼고 있었는데 벌써 20년 넘었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혼 20주년은 지났지만 21주년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ㅋㅋ 미니님 댓글 감사해요, 덕분에 저 활짝 웃었어요. 오늘 좋은 날 되세요!!

꼬마요정 2022-04-14 0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커밍제인.. 너무 좋아하는 영화에요. 제임스 맥어보이랑 앤 해서웨이 너무 잘 어울리고ㅠㅠ 특히 무도회씬에서 톰이 없어 실망한 제인의 표정이랑 톰이 나타난 후 제인의 표정 너무 좋아요!!! 예전에 본 bbc 드라마에서 제인이 말하던 게 너무 와닿았어요. 자신에게 청혼했던 톰, 해리스, 브룩… 그들이 자신을 제법 행복하게 해줬겠지만 자신이 원하는 건 제법 행복한 게 아니라구요. 아마 말씀하신대로 결혼하고 농장일 하고 아이를 낳고… 글을 쓸 수 없었겠죠ㅠㅠ 제인은 멋진 여자에요. 그럼에도 톰이랑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서 슬펐죠. 아, 또 봐야겠어요^^

단발머리 2022-04-15 08:12   좋아요 2 | URL
제임스 맥어보이랑 앤 해서웨이의 그 눈빛 말이죠!! 둘이 사귄다고 해도 믿을만한 그런 진실한 ㅋㅋㅋㅋ 눈빛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그 장면도 인상적인 장면이구요. 제인이 돼지 먹이 주러 나가고 제인 엄마 감자 캐는거 보는데.... 아... 삶이란 우리네 상상보다 훨씬 팍팍하지... 그런 생각 들었어요. 이루어지지 않은 자신의 사랑을 소설 속에서라도 이루어지게 만드는 제인을 생각하면 마음 한 켠이 참 안타깝고 그래요. 물론 독자로서는 행복하지만요. 저도 한 번 더 보려구요. 명작입니다^^

그레이스 2022-04-14 0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화 잘 안보는 저도 이건 봤네요^^

단발머리 2022-04-15 08:09   좋아요 1 | URL
저도 좋아하는 영화라서요. 이 글 쓰고 나서 댓글 쭈욱 읽는데 한 번 더 보고 싶어지네요^^

라로 2022-04-14 17: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저는 쭉 읽어 내려오다가 사진 보면서 옆에 한좌석 띄어 앉기도 책인 줄;;; 늙는 다는 거 이런 건가,, 싶은...

단발머리 2022-04-15 08:04   좋아요 1 | URL
저 안내판이 유독 깔끔하기는 하죠. 책보다는 조금 큰 사이즈이기는 하지만요 ㅎㅎㅎㅎ

독서괭 2022-04-16 2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왕 이 영화 보고싶어지네요. 제인이 결혼을 했으면 예상되는 삶의 모습을 보니 결혼 안 해서 대작가가 된 게 맞는 것 같네요.. ㅠㅠ 거실?응접실?에서 글 썼다는 제인오스틴이라면 그 와중에도 훌륭한 작품을 썼으려나요..

단발머리 2022-04-17 18:47   좋아요 1 | URL
응접실에서 쓰다가 다른 사람 들어오면 다른 걸로 덮었다는... 그런 이야기 들었던 것 같아요. 여자가 글을 읽고 쓴다는 걸 이상하게 여기는 사회를 살았으니까요. 톰이랑 결혼했으면 우리는 엘리자베스 못 만날 거 같애요. 아무래도 그럴 거 같아요, 그죠?

유부만두 2022-04-18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맨마지막에 톰이랑 딸이 나오는 장면이 별로였어요. 그동안 함께 살고 아이도 낳은 톰의 부인은 어쩌라고 (이미 사망한 후라지만)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도 매커보이 좋아함. 많이 좋아해서 ˝어톤먼트˝ 보면 맴이 찢어지고요.

단발머리 2022-04-21 10:04   좋아요 0 | URL
그니까 말이에요. 나는 항상 널 그리워했어, 그래서 딸 이름이 제인이다. 이런 맘인지 어쩐지.... 영화라서 그런거라고... 그렇게 생각해보려 합니다. 저도 매커보이 좋아하는데 ‘어톤먼트‘에서 맴찢해서 이 영화에서의 매커보이가 더 좋습니다^^
 





 













이 책의 존재는 알라딘 이웃 레삭매냐님의 서재를 통해서 알게 됐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작가 이름조차 생소한 시그리드 누네즈. 시그리드 누네즈를 읽는다. 어제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고 나오면서 뒷면을 보니 신형철의 추천사가 있다. , 신형철이 추천했구나.

 


추천사를 읽고 나니 아그렇지, 추천사는 이렇게 써야지. 절로 감탄이 나온다. 첫 문장이 이렇다. ‘타인을 평가할 때는 그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말을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 본회퍼라니요. 너무 멀리 가신 거 아닌가요. ‘당신의 고통은 무엇인가요? (Quel est ton tourment?)’에 대한 소설적 실천. , 여기는 괜찮고요. 

 


하지만 나를 사로잡는 문장은 전혀 다른 것이었으니, 바로 여기. ‘(신형철)는 근래 드문 집중력을 발휘해 이 소설을 두 번 연달아 읽었고 그러고도 성에 차지 않아 이 작가가 쓴 수전 손택 회상기까지 내처 읽었다.’ 두 번 읽을 만하다는 거야? 이 작가가 수전 손택 회상기를 썼다고? 이미 대출한 책에 한 번 더 반하게 만드는 추천사.



첫 장면은 잘난 척하는 남성 작가를 까는 것으로 시작된다. 어찌 아니 기쁘랴.

 


사이버테러리즘, 바이오테러리즘, 불가피하게 또다시 닥쳐올 팬데믹. 그에 대해 역시나 불가피하게, 우리는 전혀 대비되어 있지 않다고 그가 말했다.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으로 인한, 치료법이 없는 치명적 감염병. 전 세계적인 극우 정권의 발흥, 선전선동과 속임수가 정치 전술과 정부 정책의 기반이 되고, 그것이 정상으로 여겨지는 상황. 전 지구적 지하디즘을 제압하지 못하는 무능. 생명과 자유 - 문명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것은 무엇이든 - 에 대한 위협이 만연하고 있습니다. 반면 그에 맞설 수단은 턱없이 부족하고……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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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4-08 17:5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선한 영향력이라니...
고저 감사하네요.

전 오늘 이번 주에 벌쓰데이였던
지인 분에게 이 책을 날려 보냈
답니다. 모쪼록 즐거웁게 읽으시길.

두 분 모두.

그레이스 2022-04-08 18:01   좋아요 4 | URL
저도 찜이요
두분께 감사! ㅎㅎ

단발머리 2022-04-13 16:39   좋아요 4 | URL
레삭매냐님/ 좋은 책 추천 감사드려요. 친구와 죽음을 키워드로 꼽으신 것에 마음이 동했습니다. 몇 장 넘기다가 위의 남자 정체 밝혀져서 저 혼자 완전 웃었답니다^^

그레이스님/ 저도 감사합니다. 즐건 독서여행 기대됩니다^^

독서괭 2022-04-08 19: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러 분들이 이 책 얘기 하셨던 것 같은데 그래서 담아둔지는 오래이나.. 단발님 글 보니 급 읽어보고 싶네요 ㅠ 정말 두번 내처 읽을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단발머리 2022-04-08 21:27   좋아요 2 | URL
저 완전 재밌게 읽고 있고요. 작가 유머도 제 스탈이라서 기대만발입니다!!

다락방 2022-04-08 22: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거 아세요? 저 이 책 있어요 ㅎㅎ

독서괭 2022-04-08 22:48   좋아요 3 | URL
없다고 하시면 더 놀랐을 듯요…

단발머리 2022-04-08 23:04   좋아요 3 | URL
자매품 : 잘 지내나요? (by 이작가님)

책읽는나무 2022-04-09 08: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신형철 님 추천사....끄덕끄덕!!!
음...수전 손택??? 음....🤔🤔
진지모드로 가다가 허걱!!! 꺄악~~
서브웨이!!!!!!!🤤🤤🤤
지금 식전인데 넘 배고파 갑자기 꼬르륵~
식구들은 일어날 생각도 없고, 혼밥이라도 해야겠군요. 아~~서브웨이 먹고 싶다!!!!
책이랑 서브웨이라니......

단발머리 2022-04-13 14:45   좋아요 2 | URL
서브웨이... 맛있더라구요. 주인공은 역시 책이 아니라 간식인 걸까요? 입을 크게 벌려야 돼요. 아아아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매품 : 책이랑 햄버거, 책이랑 모카롤, 책이랑 초코파이 기타등등)
 





 














프랑스어 책읽기 모임의 책이다. 매일 정해진 분량의 한글책을 먼저 읽고 원문을 같이 읽는데 (정확히는, 책 두 권을 나란히 두고 단어를 맞춰보는데), 이 책은 저절로 책장이 넘겨져 이 문단까지 오게 됐다.

 


그녀는 글을 쓴다. 온갖 색깔의 노트에다, 온갖 피로 만들어진 잉크로, 글은 밤에 쓰는데, 그렇게밖에 할 수 없다. 장을 보고, 아이를 씻기고, 아이의 학과 공부를 돌봐준 뒤이다. 그녀는 저녁상을 치운 뒤 같은 식탁에서 글을 쓴다. 밤늦도록 언어 속에 머무른다. 아이가 깜박 잠이 들거나 놀이에 빠진 사이, 그녀가 먹이는 이들이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된 순간에 글을 쓴다. 이제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그녀 자신이 되어 있는 순간 그녀는 홀로 종이 앞에 앉는다. 영원 앞에 나와 앉은 가난한 여자이다. 수많은 여성들이 얼어붙은 그들의 집에서 그렇게 글을 쓴다. 그들의 은밀한 삶 속에 웅크리고 앉아. 그렇게 쓴 글들은 대부분 출간되지 않는다. (83)

 


읽는다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혹은 대단하지 않은지에 대해 자주 생각하지 않는다. 읽는 일이 즐겁고, 내게 필요한 건 그것뿐이다. 읽고, 다른 세상을 만나고, 똑똑하고 혹은 멍청한 저자를 만나고, 그들이 만들어낸 세상, 그 세상 속 사람들을 만나는 일이 즐거울 뿐이다. 그것으로 만족한다.

 

쓰는 일은 다르다. 근사한 작업실에서 멋진 노트북을 펼쳐놓고 쓰는 삶이 아니라, 그냥 쓴다는 것. 쓰는 일 자체가 던져주는 두려움이 떠오르고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든다. 자판 위에 글씨가 새겨지고 그리고 지워질 때, 내가 모르는 내가 튀어나올 때 얼만큼 후련하고 딱 그만큼 두렵다.


 

이 문단을 읽으면서는 그런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쓰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떠올리게 됐다. 큰아이 낮잠 시간에 나란히 누워 끄적였던 나의 쓰기를, 고양이를 벗으로 삼아 외로움을 이겨냈던 친구의 하염없는 쓰기를, 아이를 재워야 비로소 쓸 수 있다는 젊은 엄마의 쓰기를. 출간되지 않겠지만 멈춰지지 않는 외로운 쓰기를 떠올려본다. 쓰지 않았으면 견디지 못했을 시간을, 혼자가 된 뒤에야 쓸 수 있는 쓰기에 대해 생각한다.

 


보뱅을, 보뱅을 더 많이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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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4-07 09: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노랗고 두꺼운 건 사전인가요? 책이 놓인 책상은 넘나 아름답네요 😍

단발머리 2022-04-07 10:39   좋아요 0 | URL
저 노랗고 두꺼운 건 프랑스어/영어 사전인데요. 많이 사용하지는 않지만 제가 겁나 사랑하는 사전인 것입니다^^
저 책상 아래 의자에는 아름답지 않은 모습으로 책들이 쌓여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4-07 11:03   좋아요 1 | URL
사전 사야지. (꿈지럭꿈지럭)

단발머리 2022-04-07 14:13   좋아요 0 | URL
움하하하하하! 절대 찬성입니다^^

- 2022-04-07 09: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러니 우리는 읽고 쓰는 근사한 사람들 💕 왜 난 눈물이 글썽거려지는 가….

단발머리 2022-04-07 10:40   좋아요 1 | URL
읽고 쓰는 근사한 사람들이 여기 이 동네에 항상 우글우글 했으면 좋겠어요.
눈물이 글썽거릴 때도 즐거울 때도 달리고 난 뒤에도 배부를 때도 배고플 때도... 우리 같이 해요, 쟝쟝님!!!

유부만두 2022-04-18 11:35   좋아요 1 | URL
나도 낑가 줘요

단발머리 2022-04-18 11:56   좋아요 1 | URL
이쪽으로 오세요, 이쪽이요!!
여기 한 자리 남아 있어요!! 😘😘😘

- 2022-04-18 15:13   좋아요 1 | URL
그르게요 딱 유부님 자리는 미리 비워뒀습죠~ ㅋㅋㅋㅋ 함께해요 >0<

수이 2022-04-07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초코파이 즐겨 드시나요? 단발머리님 저는 초코쿠키! 보뱅 좋아요 저도 오늘 더 읽을래요!

단발머리 2022-04-07 10:41   좋아요 0 | URL
저는 초코파이, 나초, 후렌치파이, 오감자, 새우깡(매운맛), 꼬깔콘(군옥수수맛)을 좋아하고, 초코쿠키도 당근 좋아합니다.
보뱅 좋아요. 책이 이쁜데 내용도 좋아서 개이득!!

프레이야 2022-04-07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랑스어 책 읽기 보뱅 책이면 더 좋은 거 같고 막 멋집니다. 블라인드 틈새로 스미는 빛살이 책상 위를 더 아름답게 비추네요. 초코파이랑 커피 잘 어울려요 ^^

단발머리 2022-04-07 11:28   좋아요 0 | URL
블라인드 틈새로 스미는 빛살 때문에 책등이 모두 누렇게 변색되어서 저는 한낮에도 집을 어둡게 하고 있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멋지다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난티나무 2022-04-07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벽한 책상 사진!!!
후렌치파이!!! ㅎㅎㅎ 추억 돋고요.
책등 변색 아 저도 싫어합니다….^^

단발머리 2022-04-07 18:24   좋아요 0 | URL
재작년에 이사하고 꿈의 책상 구입했는데요. 물건 쌓아두고 사진 배경으로 주로 쓰다가 요즘에 좀 치우고 있습니다.
후렌치파이는 사과맛과 딸기맛이 있고요.
담에 사진 한 장 올려볼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4-07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의 요 책상, 요 색상 블라인드가 있는 요기 요 장소 사진 늘 그리웠다는~ㅋㅋㅋ
이젠 북플친님들이 늘 본인의 책을 읽고, 공부하는, 정해진 장소에서의 사진들은 눈에 익어 정겹습니다.
저렇게 정리된 듯한 편안한, 여백 많은 책상에 앉아서 공부 절로 하고 싶어지는군요.
하지만 프랑스어라서 더 다가갈 수가 없겠군요ㅋㅋㅋ
초코파이랑 커피랑 필기구에 혹해서 자리에 앉았을 뻔 했겠어요. 나 이틀 전에 딸아이가 남겨둔 초코파이 냉장고에 숨겨뒀다가 먹었어요ㅋㅋㅋ 근데 필기구도 이쁘군요?^^

쓴다는 행위에 대해 좀 더 진중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시는군요^^

단발머리 2022-04-08 17:17   좋아요 1 | URL
요 책상, 요 색상 블라인드가 저의 픽쳐존입니다. 옆쪽, 뒤쪽 엄청 지저분한데 다 자르고 요기만 찍어봅니다.
자기만의 책상, 자기만의 방, 자기만의 공간은 참 중요한 거 같아요. 저는 아직도 식탁이 편하지만 제가 식탁에 있으니 가족들이 다 식탁으로 모이는 기이한 현상. 제가 책 들고 쇼파로 가면 또 거기가 우글우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초코파이는 넘나 맛있는 것으로서 항상 대기하고 있어요. 필기구 중에 저기 저 연필이, 요즘 저의 최애 아이템입니다^^
 






 














책 많이 사는 사람 아닌데 3월이라 책 샀다.

 

『엔드 오브 타임』은 대선 끝나고 한반도를 떠나 우주로 가야만 해서 구입했던 책이다. 지적인 면에 있어서 도전을 불러일으키는(모르는 거 엄청 많이 나옴) , 극찬받는 이유를 충분히 수긍하고도 남는다.


 

『레이디 크레딧』은 여성주의 책 같이 읽기 4월의 도서라 미리 구입했다. 『비폭력의 힘』은 이 페이퍼의 주인공 같은 책이다. 친구님 서재에서 책과 머그잔을 보고 찜해 놓았는데  다음날 아침 결제하려고 하니 머그컵이 품절되어서 큰 실망을 했더란다. 혹시나 하고 지난 금요일에 다시 들어가 보니 머그컵이 돌아왔다!!! 머뭇대는 사이 없어질까 급하게 주문하느라 이 책만 단독배송 (택배기사님, 죄송합니다) 크고 가볍고 예쁜 머그컵을 손에 넣고 나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Crying in H mart』는 내용도 모르면서 친구에게 선물했던 책인데, 나도 궁금해서 구입했다. 『Where the crawdads sing』은 초대박 베스트셀러로만 알고 있었는데, 테일러 스위프트가 영화 OST 작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테일러 왕팬이 읽어야 한대서 구입했다. 『작은 파티 드레스』와 『Une petite robe defête』는 프랑스어 책읽기 이웃님들과 같이 읽는 책. 진도 밀려서 얼른 가서 숙제해야 한다

 



3월이 이렇게 다 간다. 새 학기는 아이에게도 엄마에게도 벅찬 시간인데, 올해는 대선이 있어 더 힘들었다. 한 주를 호되게 앓고 나니 벌써 31. 다시 계획을 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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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2-03-31 09: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머그 내일 4월에 사겠어요!
(이미 책이 아니라 머그를 산다고 말한다)

단발머리 2022-03-31 09:41   좋아요 3 | URL
머그 사는 거 너무 좋죠. 그럼 책이 따라 오더라구요^^ 일석이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이 2022-03-31 11:33   좋아요 2 | URL
이미 갖고 있는 저도 또 사고싶은!!!

단발머리 2022-03-31 13:52   좋아요 1 | URL
수하님은 되고 비타님은 안 돼요!! 🤭🤭🤭🤭🤭

라로 2022-04-01 16: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Where the crawdads sing은 뒤로 갈수록 별로였어요, 저는. 이런 말 할 필요는 없는데 아무래도 제가 오늘 베베 꼬였나 봐요. 이해해주시는 거죠?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22-04-01 16:58   좋아요 0 | URL
네, 그럼요 ㅋㅋㅋㅋㅋㅋ 어차피 저는 안 읽을 거 같아서요. 전혀 괜찮습니다^^

psyche 2022-04-06 03:01   좋아요 0 | URL
사실은 저도 왜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되었어요. 자연 묘사는 아름다웠다는 거 말고는 저도 별로....
 
엔드 오브 타임 - 브라이언 그린이 말하는 세상의 시작과 진화, 그리고 끝
브라이언 그린 지음, 박병철 옮김 / 와이즈베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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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였다. 머리 속 생각을 떨쳐내려 아무리 노력해도 불가능했다. 할 수 있는 방법을 차례로 시도하며 활활 타오르던 마음이 좀 수그러들었을 때. 그 때, 우주로 나갔다. 우주, 그 자체를 생각했다. 이 광대한 우주 속, 숱하게 많은 은하계. 구석 은하계의 구석, 그 한쪽 귀퉁이 태양계 속의 지구를 머리 속에 그렸다. 그 지구 속의 내 모습이 얼마나 작을지 생각했다. 달에서 볼 때 지구가 얼마나 작을지 상상했다. 한반도는, 서울은, 그리고 나는. 내 안의 그 고민과 갈등은, 어쩌면 생각보다 훨씬 더 작은 것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 자신을 우주로 보내 버림으로써, 지구를 떠남으로써 나는 문제를 다르게 바라보려 했다.

 


주변에 무언가 물질이라 부를 만한 것을 발견한다면 그 자체로 기뻐해야 한다. 생명체는 지구에서만 발견되는 아주 특별한 물질이다. 내 주위에 생명체가 있다면 이것은 놀라워해야 할 일이다. 더구나 그 수많은 생명체 가운데 나와 같은 종을 만나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다른 인간을 사랑해야만 하는 우주론적 이유이다. (『김상욱의 과학 공부』, 13

 


며칠 전 한겨레 연재 기사에 김상욱 교수의 인터뷰가 소개되었던데 김상욱 교수의 여러 저서 속 수많은 문장 가운데 기자가 이 부분을 발췌한 것을 보았다. 그 때. 내가 우주로 가고자 했을 때, 인간에게 실망했을 때, 그리고 미움이 내 안에 차오를 때 내가 의지했던 문장들이다. 이 넓은 우주 가운데, 생명체로서 만난 존재를 사랑하자. 나와 같은 종으로 만난 것을 환영하자. 반가워하자. 다시, 사랑하자. 4-5년전 일이다. 그 때와 지금 나의 생각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지만, 그 때는 나름대로 힘들고 고생스러웠다. 이제서야, 이만큼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그래, 그럴 수 있지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우주에 다녀온 뒤에야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게 됐다.

 

대선 결과가 확정되고 암울하고 속상했던 그 날 밤. 나는 또 우주로 가기로 했다. 서울을 떠나, 대한민국을 떠나, 한반도를 떠나, 지구를 떠나 우주로 가 보기로 했다. 책이 도착하자마자 다른 일을 접어두고 이 책만 읽었다. 제일 좋아하는 두꺼운 색연필을 꺼내 놓고 줄을 치며 읽었다. 누워있을 때도 언제든 볼 수 있게 바로 옆에 책을 놓아 두었고, 외출할 일이 있을 때는 많이 읽지 못할게 뻔한데도 굳이 책을 들고 나갔다. 그렇게 우주 속을 거닐면서 시간을 보냈다. 우주 속에서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게 했다.

 

 

시작은 언제나 죽음이다. 죽음을 영혼과 육체의 분리라고 규정했을 때, 부패되어 재배열되는 육체와 달리 영혼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다. 더 정확히는 영혼의 존재조차 불명확하다. 영혼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육체 내에 영혼의 자리가 없음을 그 증거로 삼는다. 해부학적 연구 결과가 축적된 상태에서 영혼이라는 기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또한 진화의 과정 중에 영혼이 등장했던 순간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것도 근거 중의 하나가 된다. 질문은 이어진다. 영혼은 정신과 어떻게 다른가. 영혼과 마인드의 경계는 어디인가. 의식은 어떻게 다른가. 뇌의 인지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가’. 의식은 무엇인가. 나 자신을 통합된 자아로 인식하는 것을 뇌의 속임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질문은 이렇게 수렴된다.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우주의 시작은 어떠한가. 죽음 이후에 우리의 삶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컬럼비아대학교의 물리학과 및 수학과 교수이자 초끈이론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이론 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도 같은 지점에서 출발한다. 첫 문장이다.

 


모든 생명은 때가 되면 죽는다. (19)

 


물리학자로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은 섬세하고 조심스럽다. 기원과 엔트로피에 대한 탐구가 그렇고 생명과 마음, 언어와 두뇌에 대한 언급이 그러하다.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 속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총동원해 생명 현상을 설명하려 했던 슈뢰딩거가 자주 언급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론 물리학자이자 수학자, 과학자인 저자가 우주의 저-엔트로피 상태에 대해, 빅뱅 직후 원소량의 변화와 태양계의 기원에 대해, 생명 정보에 존재하는 통일성에 대해, 의식과 스토리텔링에 대해 설명할 때, 세세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평범한 독자조차도 놓칠 수 없는 구체적이고 논거가 확실한 정보가 빼곡하다. 시험 봐야 해서, 외워야 해서 읽는 게 아니고, ‘읽는 행위그 자체로서 즐겁게 읽히는 책이다. 발견의 기쁨이 가득하다. 새로운 지식의 발견 뿐 아니라 내가 얼마나 무식한지를 발견할 수 있어서 그렇다. 의식과 양자물리학에 대한 고찰이 특히 그렇다.

 


양자계가 외부로부터 자극을 받으면 (자극을 가한 주체가 의식이건, 의식이 없는 도구이건 간에) 양자적 확률 구름이 걷히면서 명확한 하나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지난 세월 동안 실행된 수많은 실험이 이 관점을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명확한 하나의 현실이 나타나는 것은 의식이 아닌 상호 작용 때문이다. 물론 이것을 증명하거나 반증하려면 의식이 개입되어야 한다. 나의 의식이 개입되지 않으면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양자적 과정에서 의식이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없다. 그러나 명백하게 다른 두 미스터리의 피상적 구별을 뛰어넘은 정교한 접근법에서도 양자 세계와 의식의 연결 관계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211)


 

현실과 양자역학의 수학 체계에서 해결의 열쇠가 의식인 경우 여러 개의 가능성 중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의 가능성은 현실에서 지워진다.(211) 하지만 양자역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육체와 두뇌를 포함한 모든 미시물리학적 과정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의식이 양자역학의 범주 안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관찰자의 시선 혹은 광자의 개입 이외의 변수가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인지, 동시에 존재하는 두 개의 사실 혹은 진실이 가능하다는 건지, 점점 더 궁금해진다. 입자의 집합으로서의 와 자유의지간의 연결 관계에 관한 서술 역시 흥미롭다. 나를 구성하는 입자의 행동이 곧 나의 행동이다. 나를 구성하는 각각의 입자들이 지금의 나, 현재의 나를 구성한다.

 


임의의 순간에 ''는 입자의 집합이며, 입자의 특별한 배열을 나타내는 약칭이다(이 배열은 역동적으로 변하고 있지만, 개인의 정체성을 유지할 정도로 충분히 안정적이다. 그러므로 나를 구성하는 입자의 행동이 곧 나의 행동이다. 그 저변에서 물리 법칙이 나의 입자를 제어하고 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의 행동(입자의 거동)은 자유의지와 무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특별한 입자 배열(유전자, 단백질, 세포, 뉴런, 연접부의 네트워크 등의 고유한 배열 상태)은 나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라는 거시적 서술이 퇴색되지는 않는다. 당신의 행동과 반응, 생각이 나와 다른 이유는 입자의 배열 상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224)

 


신화와 종교의 발생 원인에 대한 부분에서는, 내면에서 겪은 일의 원인을 바깥 세상에서 찾는 인간의 경향을 지적한 부분이 흥미롭다. 지난하고 오랜 기간 축적된 사고 과정 가운데서, 인과론의 사슬을 완벽하게 끊어낸 자유로운 인간이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시적인 불멸이란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다.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예술적 성취를 통해 영원에 이를 수 있다는 주장인데, 물론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은 지금도 살아서 우리의 마음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그의 어떠한 의도와 상관 없이, 즉 그것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기쁨, 통찰과 상관 없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삶은 그 자체로 종결되었다. 우리가 향유하는 감동과 환희, 그리고 고마워하는 마음이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닿지는 않는다. 인간으로서 피할 수 없는 필멸의 삶, 그리고 계속되지 않고 결국 그 끝을 보게 될 우리 우주의 운명. 과학자의 결론은 이러하다.

 


그렇다. 우리는 무상하기 그지없는 일시적 존재다. 그러나 우리가 존재하는 짧은 시간은 우주의 역사를 통틀어 매우 희귀하고 특별한 시간이다. 이 시간 동안 우리는 자기 성찰을 통해 만물에 가치를 부여하고, 형이상학적 가치를 창출했다. 영원히 변치 않을 유산을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이미 우주의 타임라인을 조망한 우리는 그것이 이룰 수 없는 목표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소규모의 입자들이 모여서 현실을 인지하고,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이 얼마나 단명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연결 관계를 확립하고, 우주의 미스터리를 풀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455)

 


오랫동안 무신론자였다가 나이 든 후에 불가지론자로 바뀐 줄리언 반스의 잘 모르겠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 역시 내가 가진 신념의 범위를 쉽게 벗어나지는 못할 것 같다. 입자의 합으로서의 나와 느끼고 생각하는 나, 통합된 자아로서 기능하고 있는 나. 그런 나에게 가장 험난하고 거친 난제는 무의미성 그리고 무목적성이 아닐까 싶다. 아무 이유 없이, 아무 목적 없이 그냥 이렇게 아름답고 완벽하게 존재하고 있는 이 광대한 우주를, 나는 아무렇지 않게 바라볼 수가 없다. 나의 죽음으로 이 우주는 얼마만큼 종말을 맞게 되겠지만, 그것이 전부라는 이야기는 아직도 내게 낯설다.


 

존재하지 않는 과거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를 미래 사이에서, 지금 바로 현재가 가장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은 과학자가 아닌 인문학자의 말처럼 들린다. 백만장자라면 최첨단 냉동기술로 죽음의 순간을 한동안 유예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평범한 인간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광활한 우주 속, 먼지보다 작은 우리 인간은 우주의 시작과 죽음의 신비를 밝혀내기 위해 또 다시 한 발을 내딛는다. 지금 당장, 우리가 원하는 혹은 진실에 가까운 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답을 찾으려는 노력을 멈출 수는 없다.

 


우주에서 돌아왔더니 곧 용산시대가 열린다고 한다. 교통지옥이라 쓰고 용산시대라 읽는다. 다시 우주로 나가야 하나. 브라이언 그린의 다른 책이 있나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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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간, 달리기와 음악의 힘으로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2-10-25 21:25 
    오후 3시 51분. 막 『An American Bride in Kabul』 읽기를 마치고 그냥 덮으면 잊어버릴까, A4 한 장 안 되는 분량으로 감상을 썼다. 이제 좀 놀아볼까. 한 시간 전에 너무 졸려서 잠 물리친다고 서가를 거닐다가 가져온 책 『상상하기 어려운 존재에 관한 책』을 펼쳤다. 책을 뽑기 전, 책 등만 보았을 때는, 이 책이 지구 이외의 행성에 사는 외계 존재에 대한 책일거라 추측했다. 그게 이 책을 뽑아 든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목
  2. ‘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무엇인가’의 사이에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3-04-17 21:18 
    결국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무엇인가’이고, 해답은 그사이 어디쯤 존재할 것이다. 나는 그 해답 사이의 간극에 관심이 있다. <인생 수업>을 읽고 있다. 현대 물리학(현대 물리학 잘 모르는 사람)에서 원자의 발견은 가장 혁신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지구 문명이 모조리 파괴되었을 때, 후세를 위해서 딱 한 마디만 남길 수 있다면 무슨 말을 남기겠냐는 질문에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답했다. “모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인
 
 
거리의화가 2022-03-29 09: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리뷰 잘 읽었습니다. 안 그래도 이 책을 읽어볼까 하던 참이였어요. 물리학자가 넓은 범위를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의식과 불멸에 대한 생각도 궁금해집니다. 읽는 행위 자체로 즐거움을 주는 책이라니. 저도 책을 통해 우주로 떠나보고 싶습니다!

단발머리 2022-03-31 09:45   좋아요 2 | URL
모든 걸 이해하려는 게 아니니까 ㅎㅎㅎ 읽는 것 자체가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저의 우주여행은 만족스러웠습니다.
거리의화가님도 그런 좋은 시간 되시길요^^

얄라알라 2022-03-29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첫문단에서의 ˝우주로 가다˝ 단발머리님을 걱정하며 읽었는데, 중간 이후에서 대선 이후에도 우주 다녀오셨다는 마음에 그래도 안도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무식한지 발견할 수 있어˝ 기쁘시다고 말씀하시는 단발머리님, 진정한 공부의 재미를 아시는 분! 저는 어제오늘 메타버스 책 보는데 제가 초등생보다 모른다는 걸 알았어요^^:;;;;; 기쁘지 않고 뒤쳐지는 우울한 느낌인데...ㅋ기뻐야겠습니다

단발머리 2022-03-31 09:46   좋아요 1 | URL
아직도 새롭게 발견할 게 많이 남아 있어서 (사실 어마어마하게 많이 남아있지요) 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발견의 기쁨을 함께 나누어요, 얄라알라님!!!
참, 저도 메타버스는 완전 초대박 무식이라서요, 얄라님 글 읽고 공부하려고요. 헤헤!

책읽는나무 2022-03-29 12: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시게 되더라도 너무 오래 머물진 말고, 빨리 돌아오셔요^^

단발머리 2022-03-31 09:47   좋아요 2 | URL
저 방금 지구로 돌아왔다는 소식입니다^^ 책나무님 반가워요!!

책읽는나무 2022-03-31 10:00   좋아요 1 | URL
반갑습니다^^
다녀오시더니 뭔가 새로운 분위기를 가득 안고 돌아오신 듯 합니다. 더 똑똑해져서 돌아오신 듯도 하고???
거기 위치가 어딥니까?
저도 좀 그 기운 받으러, 한 번 다녀오고 싶네요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03-31 10:01   좋아요 1 | URL
모쪼록 몸도 마음도 건강한 단발머리님 계속 유지하시길요♡

단발머리 2022-03-31 10:06   좋아요 2 | URL
반겨주셔서 감사해요, 책나무님!!
제가 다녀온 곳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브라이언 그린네였습니다. 열역학 제2법칙과 양자역학, 그리고 DNA와 인간의 의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한 곳이어서, 전 잠시 지구 관련 문제를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답니다. 내일부터 4월이라 하니 화이팅 하나 더 필요했는데 책나무님 댓글이 제 화이팅이네요!!! 감사합니다^^ from 과학책을 읽으며 마음껏 자유로워진 어느 문과졸업생

라로 2022-03-29 23: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저는 시작했다가 멈췄어요. 어려워서.^^;;
님의 리뷰 읽고 다시 저도 정신을 모아모아 읽어 봐야겠어요.
브라이언 그린의 초끈이론으로 유명한 책 엘레건트 유니버스 읽으셨나요?
그거 저는 사놓기만;;;
근데 많이들 좋다고 해요,, 저는 다른 책에서 추천해서 사놓긴 했는데... 이 책도 어려울 것 같고요.

단발머리 2022-03-31 09:50   좋아요 1 | URL
저는 이해한다는 생각을 아예 내려놓고 시작해서 그런지 맘 편히 잘 읽었습니다.
브라이언 그린 책 추천 감사해요. 여러권 있던데 어떤게 좋을까 생각중이었거든요^^

psyche 2022-04-06 03: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 매일 뉴스보기가 두렵네요. 뉴스를 안 보려 하는데 그래도 또 보게 되고 보면 속이 답답하고 열불이 나고. 에고고

단발머리 2022-04-07 14:17   좋아요 0 | URL
저는 아직도 뉴스 끊은 상태에요. 음악 듣고 영화 보고 드라마 보고.... 그러고 있어요. 에휴 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