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chinko : The New York Times Bestseller (Paperback, 영국판) - 애플TV 드라마 '파친코' 원작
이민진 / Head of Zeus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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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를 읽었다. 전체적인 줄거리 말고 제3권의 챕터 8에 대해서만 쓰고 싶다.

 


노아는 대학을 마치지 않은 채, 가족을 떠나 다른 도시로 잠적한다. 어디에 사는지 알리지 않고 열심히 일해서 모은 돈을 꾸준히 선자에게 보낸다. 자신만의 삶을 일궈가는 노아를 마침내 한수가 찾아낸다. 한수는 노아를 찾았다고 선자에게 알리면서, 멀리서만 그를 보라고 말한다. 그가 선택한 삶 속에서 살게 하자고, 그걸 존중해 주자고 말한다. 선자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차문을 박차고 나가며 선자가 외친다. “노아야!”

 

노아의 불행을 선자의 탓이라고 할 수 없다. 선자는 최선을 다했다. 지옥에서 자신을 구해준 남편에게 신의를 지켰고, 투옥된 남편을 위해 생활을 책임졌고, 늦은 밤 고된 일을 마치고서도 노아의 옷을 깨끗하게 세탁하고 다림질해 입혀 보냈다. 선자는 자신의 모든 삶을 걸고 두 아들을 지켜냈다. 하지만 그녀의 지극한 사랑이, 그녀의 선의가 항상 그에 맞는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 골몰할 때면, ‘선녀와 나무꾼이야기가 떠오른다. 앞부분은 대부분 비슷하지만, 뒷부분은 동화책에 따라 약간씩 다른 내용이다. 나무꾼이 하늘나라에서 선녀와 세 아이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우리 집 아이들과 함께 읽었던 판본에서 결말의 나무꾼은 인간이 아닌 수탉이다. 하늘나라에서의 행복한 시간 속에서도 효심이 지극한 나무꾼은 땅에 살고 있는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선녀는 천마에 나무꾼을 태워 보내며 절대 땅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간곡히 당부한다. 반가운 아들의 목소리에 달려 나온 어머니는 아들과 손을 맞잡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아들은 천마에서 내리지도 못한 채, 이제 곧 하늘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뭐라도 먹이고 싶은 어머니(어머니는 먹이는 사람이다)는 아들에게 팥죽을 권한다. 그러나 팥죽이 너무 뜨거운 나머지, 팥죽이 든 그릇을 손에서 놓치고, 깜짝 놀란 천마는 나무꾼을 떨어뜨리고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 버린다. 어머니는 나무꾼에게 따뜻한 팥죽 한 그릇을 먹이고 싶었을 뿐이다. 그녀의 의도는 아들을 붙잡아 두려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결과론적으로 나무꾼은 하늘로 돌아가지 못했고, 하늘을 바라보며 구슬피 홰를 치는 수탉이 되고 말았다. 괴로워하는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을까. 그녀는 아들의 불행을 원치 않았다. 하지만 결국 일은 그렇게 되고야 말았다. 나무꾼은 어머니와 함께 머물고 있으나 그의 마음은 자신이 속하지 못한 머나먼 세계를 끝없이 떠돌고, 탄식과 아쉬움, 슬픔과 원망이 그의 마음을, 아니 수탉의 마음을 가득 채웠을 것이다.

 

 


노아를 대하는 한수와 선자의 태도에는 차이점이 분명하다. 한수는 노아의 결정을 존중한다. 그렇게 살기로 한 노아의 결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물론, 한수에 대한 노아의 증오심이 훨씬 더 컸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한수는 자신이 노아에게 요구할 수 있는 작은 권리마저 포기했다. 노아를 더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선자는 달랐다. 대학을 그만두고 가족을 떠난 이유를 이미 오래전에 설명했음에도, 그렇게 긴 시간 동안 가족에게 돌아오지 않았음에도, 선자는 노아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 그의 절망이 그에게 얼마나 큰 짐인지를 감히 예상하지 못했다. 그를 그렇게 사랑하면서도, 그를 그렇게 아끼면서도, 선자는 몰랐다. 알지 못했다. 우리 집으로 가자. 선자가 말한다. 여기가 제 집이에요. 노아가 답한다.

 


“Noa and Mozasu. They’re my life”, “I’ve lived only for them.” (421)이라고 말할 때의 선자를 이해한다. 내가 그런 엄마여서가 아니라, 그런 삶을 사는 엄마들을, 여성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을 위해 사는 어머니들, 자식만이 삶의 이유인 어머니들,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 혹은 많은 것을 희생한 어머니들. 그런 어머니 앞에서 자식은 ‘a good boy’일 수밖에 없다. 선자를 사무실로 안내하고 차를 내주고 다음 주에 찾아가겠다는 다정한 말을 건네는 소년 노아. 그런 어머니 앞에서 자식은, 그 아들은 a good boy일 수밖에 없다. 어머니는 자식의 어떠함을, a good boy의 절망을 끝내 알아채지 못한다.

 

한수는 무책임했고, 사람 좋은 옆집 아저씨 같았지만, 그는 노아를 알았다. 노아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 한 발짝 물러설 줄 알았다. 노아를 만나고 돌아와 기분이 좋은 선자에게 “You should not have seen him.” 이라고 말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선자는 노아를 사랑했고, 노아를 위해 살았고, 노아를 위해 자신의 젊음을 다 바쳤지만, 선자는 노아를 몰랐다. 노아가 어떤 사람인지를 몰랐다. 노아를 더 사랑한 선자보다 노아를 덜 사랑한 한수가 오히려 노아를 더 깊이 이해했다는 데 생각이 닿으면 슬퍼진다. 그렇게 보인다. 더한 사랑이, 더 진한 사랑이 결국 노아를 밀쳐버렸다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가장 큰 고통이 선자의 몫으로 남겨졌다. 너무나 가슴 아픈 대목이다.

 



호의와 선의와 사랑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꼼꼼히 생각하고 사는 건 너무나 피곤한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일을 한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 도움을 주고, 또 도움을 받는다. 지나친 사랑은 건강에 해롭습니다. 이 결론이 자식에게도 해당된다는 데 인생의 숨은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노아를 그냥 그대로 살게 하는 것, 나와 멀리 떨어진 도시에 살게 하는 것, 그리운 마음에 찾아가더라도 몰래 숨어서 노아를 훔쳐보는 것에 만족하는 것. 그런 게 사랑이라는 나만의 결론에 또다시 마음이 쓸쓸해진다. 하지만 어린 자녀를 사랑으로 품어주는 것이 사랑인 것처럼, 장성한 자녀를 떠나보내는 것도 사랑일 테니. 출생 후 지금까지 한결같이 여전히. 모성이 부족한 채로 살아왔던 이 매정한 엄마는 한 번 더 생각한다. 과유불급. 넘치지 않도록, 넘치지 않도록 하자. 내 사랑이 넘치지 않게 하자. 보내주자. 놓아주자. 기다려주자. 멀리 가게 하자. 그래서 날아가게 하자. 저 혼자의 힘으로 날아가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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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로에게 져주는 것도 사랑이라는 건 좀 어려운 문제지
    from 의미가 없다는 걸 확인하는 의미 2022-09-29 12:24 
    밥 먹기를 명심하며 토스트를 우물거리면서 마감을 마친 자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쓴다. 오늘은 <디지털…>만 다 읽으면 되는 널럴한 날이다. 원래는 운동 다녀와서 페란테로 *알파수컷* 쓸려고 했는 데, 파친코 2권 어제 다 들었고 운동가기 싫으니까 이거 써야지. 근데 쓰기도 전 부터 너무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마음아픔 주의다. 아, 내 마음 아픔이지 나 빼고 다른 사람은 안 아플 것 같다. 그리고 이 글을 읽기 전에 꼭 단발머리님의 파친코 리뷰
  2. To 쟝쟝님 (부제 : 노아의 선택, 그 불가항력과 결정론의 함정 또는 변명의 문제)
    from 책이 있는 풍경 2022-10-03 07:38 
    이 글(https://blog.aladin.co.kr/jyang0202/13969259)에 대한 댓글을 쓰다가 길어져서 먼댓글로 씁니다. 댓글이어서 댓글처럼 씁니다^^ 제가 쟝쟝님의 글을 오독했을 가능성을 전제하고, 제 나름으로 다시 한번 써봅니다. 노아가 자신이 받은 최고 최대의 사랑이 엇나갓음을 알고, 보답할 수 없음을 알고 나서 그가 했던 선택에 대해, 쟝쟝님은 필연적이라고 썼습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저 역시, 노아는 자살할 수밖에 없
 
 
얄라알라 2022-05-01 18: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파친고 한글판은 중고가가 4만원대더라고요. 영문판을 데려오긴 했는데 아직 엄두가 안 나서, 단발머리님의 리뷰로 중간 내용을 짐작해봅니다.

˝그냥 그대로 살게 하는 것˝

쉬울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혹시 제가 8장까지 이르게 된다면 단발머리님 말씀 새기면서 천천히 넘겨야겠어요

단발머리 2022-05-01 20:46   좋아요 2 | URL
한글판 인세 관련 협의가 마무리 되었다는 기사를 본 것 같아요. 책이 다시 나올것 같기는한데, 우아~~ 4만원이라니 놀랍네요.

저도 내용을 하나도 모르고 읽기 시작했는데, 중간 중간 놀란 부분이 많았어요. 얄라알라님도 즐거운 시간 되시길 바래요^^

다락방 2022-05-01 19:3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은 글입니다, 단발머리님. 저희가 잠깐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단발님은 모자관계 얘기를 하고 저는 자아에 대한 얘기를 했죠. 그건 우리의 접근 관점이나 성향의 차이일 수도 있겠지만 원서로 읽는 것과 번역본으로 읽는 것의 차이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저는 이 책을 사러 교보문고로 가는 버스 안이라는 겁니다. 지금 시간은 일요일 저녁 19:37 이고요.

그럼 이만..

단발머리 2022-05-01 19:42   좋아요 3 | URL
지지지지지….. 지금이요?
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락방님? 🙄🙄🙄

그레이스 2022-05-01 22: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문판 난이도는 어떨지 궁금하네요

단발머리 2022-05-01 22:26   좋아요 3 | URL
짧은 문장으로 쓰고요. 사건을 시간순으로 서술하는 방식이어서 쉽게 느껴지는 편입니다^^

다락방 2022-05-02 08: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 님, 어제 저녁에 교보까지 다녀왔음에도 불구하고 단발머리 님께 땡투하고 이 책 알라딘에서 샀습니다. ㅋㅋㅋ 부자 되시길 바랍니다. 제가 드리는 땡투로 책 더 많이 사시고 글 더 많이 쓰세요. 그럼 이만..

단발머리 2022-05-03 16:55   좋아요 2 | URL
입금하신 100원은 잘 적립되었으며 앞으로도 양질의 페이퍼와 리뷰로 찾아뵙겠습니다.
변함없는 사랑과 후원과 관심과 애정에 깊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수이 2022-05-02 1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노아를 선자의 남편으로 착각하고 엉뚱한 소리를 하고 말았네요 -_-;;;; 좀 알려주시지! 전 한글판 읽는 동안에 정신없이 읽어버리는 바람에 이렇게 세세하게 바탕을 보지 못했던 거 같아요.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그런데 손꾸락은 왜 그래요 ㅠㅠ 왜 다쳤어요! 뭐 하다가!

단발머리 2022-05-03 16:56   좋아요 1 | URL
그 때쯤 저도 딴 생각하고 있어서 말을 못했나 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손꾸락은 ㅋㅋㅋㅋㅋ 원래 요리 잘 안 하는 사람이 칼에 손 잘 베인다고 해요. 다 나았어요. 헤헤

독서괭 2022-05-03 12: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래서 영어공부를 해야 하는 거군요.. 이 책 읽고 싶은데 품절이라 못 읽는구나, 하고 말았는데 원서로 읽으면 되는 거였다니.. 흑흑 ㅠㅠ 독해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합니다.
˝내 사랑이 넘치지 않게 하자˝라는 말씀 멋져요. 아이 키우면서 정말 명심해야 할 말 같습니다. 희생한 만큼, 사랑한 만큼 놓아주기는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 희생을 최소화 하려고 합니다..쿨럭.
좋은 글 잘 읽었어요, 단발머리님♥

단발머리 2022-05-03 16:59   좋아요 2 | URL
많이 꼬인 문장이 없어서 비교적 잘 읽히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미리보기 함 읽어보시고 결정하시면 좋을 거 같아요. 또 영화랑 같이 봐도 되니까요. 배경 알고 읽으면 더 잘 읽힐 것 같아요.
희생을 최소화하겠다는 다짐.... 넘 멋져요. 저도 한결같이 그 다짐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면 더 쿨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식들한테.....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는 건 충분히 알려줄 테지만 많이 앵기지는 않으려고 해요. ㅋㅋㅋㅋㅋㅋ

얄라알라 2022-06-05 1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파친코 드라마가.아닌.원문.읽으며 다시.읽으니.단발머리님 이글 절절히 와닿아요. 더욱

- 2022-09-29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굿 보이… 아ㅜ영어로 읽었어야 했구나… 팥죽 ㅠㅠㅠ 단발님은 천재다 ㅠㅠㅠㅠㅠㅠ

- 2022-09-29 15: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님… 이 글이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아서 다시 왔어요… 한수는 노아를 이해하지만 선자는 노아를 이해못한다는 지점이 무슨 말인지 너무 알 것 같아요. 아… 찐 좋은 글이다 진짜… 먼댓글 한 독후감에도 썼지만, 저는 정말 저희들 다 키우려고 부모님이 너무 고생 많이 하셨기 때문에 사랑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자신을 상처내는 아키코-하나 는 알듯 말듯 모르겠더라고요.

다만 부모님을 저도 사랑했기 때문에, 정말 ‘잘’ 살아야 한다는 욕망(?)이 있었는 데, 그건 일본인이 되고 싶다나 자수성가하고 싶다가 아니라, 제게 그건 어떤 양심껏 헌신하면서 사는 삶였던 거 같아요. 근데 내가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 혹은 내가 그렇게 살려고 할 수록 양심에서 멀어진다는 걸 견딜 수가 없이 괴로웠던 적이 있었거든요?… 뭔가 내 삶뿐만 아니라 내 부모의 삶까지도 다 부정 당한 것 같은 세계의 상실이 있었어요. 아.. 이건 뭐라고 설명이잘 안되는데… 어쨌든 노아를 너무 제 방식으로 읽어가지고ㅋㅋㅋ 무튼 헌신하는 사랑이라는 게 너무 아파요. 저는 아직도. 엄마가 ‘너 자신을 살아’라고 한번이라도 말해줬다면 어땠을까요?… 마지막에 노아가 엄마한테 책 주는 것도… 저는 거의 완벽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는 데…

독후감이 혼란의 도가니탕이지만… 동시에 단발님이 이렇게 선자의 마음과 한수가 본 것에 대해서 쓴 글을 읽지 못했다면, 저는 노아만 내 방식대로 이해하고 말았을 것 같아요 ㅎㅎ 다시 한번 읽고 쓰고 감상을 나누는 힘을 느낍니다.. ㅋㅋㅋ
 
나를 발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나를 분리해내야 했다
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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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회학자 디디에 에리봉의 회고록이다. 자신이 속했던 노동자 계급을 떠나고 가족을 떠났던 에리봉이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과거와 가족의 계급적 과거를 탐색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무슨 말을 더할까. 에리봉의 책을 읽기 전 혹은 읽은 후, 읽는 도중에도 100% 유용할 것이 분명한 쟝쟝님의 글을 링크해 둔다.



https://blog.aladin.co.kr/trackback/jyang0202/13492598 


<먼댓글(트랙백) : 나를 발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나를 분리해내야 했다>

 



탈출. 어떤 상황이나 구속 따위에서 빠져나옴. 탈출이라면, 더 낮은, 더 열악한, 더 후진 상황에서 더 높은, 더 쾌적한, 더 고급의 상태로의 이전을 말할 것이다. 계급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결혼. 부의 축적. 교육. 계급을 초월한 결혼은 이루어지기 어렵다.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훨씬 더 가능성이 낮다. 왕자님의 숫자는 정해져 있고, 모두 다 신데렐라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공주님과 온달의 경우도 마찬가지. 초단위로 변화하는 세계에서 축재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를 구현할 수 있는 기술력이 필요하다. 이 역시 4차 산업 혁명을 앞둔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 그나마 가장 쉽고 용이한 것이 교육을 통한 상층 계급으로의 진출이다. (요즘은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걸, 통계가 보여준다) 교육은, 그 어렵고도 고단한 계급 탈출을 낮은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가능하게 한다.

 



이 세계들을 분리하는 경계선들은 각 세계의 내부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존재하고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무엇을 기대할 수 있고 또 없는지를 근본적으로 다르게 상상하고 지각하도록 규정한다. 더욱이 우리는 일이 다른 식으로 진행될 수 있음을 알지만, 그것은 접근불가능한 저 멀리 있는 세계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동떨어진 사회적 영역에서 매우 명백한 규칙을 구성하는 것에 접근할 수 없을 경우,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 됐든 배제되었다거나 박탈당했다고 느끼지 않는다. 이는 단지 사물의 질서일 따름이며, 그것이 전부다. 우리는 그 질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려면 스스로를 외부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삶과 타인들의 삶에 대해 내려다보는 시각vue en surplomb³을 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말하는 바로 그 지점, 그 시각 때문에라도 되돌아가는 것은 탈출한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외부에서 바라볼 수 있는 위치성, 그 관점이라는 건, 자신을 먹이고 키웠던 그 시간과 장소를 벗어나야만 가능한 것이고, 가난과 절망, 잔소리와 폭력을 서술할 도구를 이미 쥐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것이 꼭 학위여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필요한 단 한 가지는 목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출간되고 다른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다는 건 다른 층위의 문제다. 그가 가난했고 노동자 계급에서 왔으며 성소수자로서 겪었던 고충을 축소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는 충분히 고통받고 그 고통 때문에 자신의 가족, 고향과의 단절을 선택했으며, 그렇게 30년 이상을 살아왔다. 동시에 그는 파리 근교에서 태어나 프랑스어가 모국어였으며, 브르디외, 푸코, 뒤메질을 직접 만날 수 있는 문화적 특권을 누렸던 사람이었다. 교수가 되었고, ‘지식인계급이라고 불릴 만한 자리에 자신을 위치시켰다. 탈출한 사람만이 되돌아갈 수 있다. 가난을 극복한 사람에게는 가난도, 가난의 유산조차도 자원이 될 수 있다.

 



커피, , 과일, 과자에 더해 밥통에 가득한 밥까지. 필요한 게 다 있다. 이 집에는 아무도 없고, 나를 방해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굳이 집을 나선다. 빨래를 돌려놓고, 아침 설거지를 마치고, 머리를 감고,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전원/시작 버튼을 누른다. 혼자 있고 싶은 나는, 오래오래 혼자이고 싶은 나는, 혼자이기 싫어서 집을 나선다.

 


요즘은 중학교에도 사물함이 있어서 아이들 책가방이 무겁지 않은데 나는 사물함이 없으니까. 아이들 가방보다 무거울 게 분명한 검은 가방을 메고 걷는다. 반팔티(큰애꺼), 후드집업(작은애꺼)에 찢어진 청바지. 내 신발 중에 제일 비싼 운동화를 신고 도서관을 향해 걸어간다. 디디에 에리봉을 생각하면서 걷는다. 자기 자신을 재발명하기 위해 노동 계급 가족에게로 돌아온 사회학자. 극단까지 밀어붙인 자기 분석. 불굴의 정직성과 비상한 통찰력(이상, 책소개) 내가 속했던 계급에서, 난 탈출했는가. 난 이제 그 계급에 속하지 않는다고 자신 있게 혹은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가. 내가 속했던 계급을, 솔직하게 대면할 수 있는가. 우리 집은 가난했다, 라고 쓸 때, 가슴 한 켠이 따끔거리는 이 느낌은 그렇지 않음을 말하는 것 아닌가. 얼마나 가난했는지 쓸 수조차 없다면 (혹은 쓰고 싶지 않다면), 심정적으로는 여전히 그 상태에 사로잡혀 있는 것 아닌가. 3월과 4, 이 세상 누구보다 시간 부자인 나는 계급 탈출에 성공한 것 아닌가. 시간, 복장, 장소를 내 마음으로 조정할 수 있다면, 이전과 다른 계급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나는 성공했는가. 내가 속했던 계급에서, 탈출했는가. 탈출에 성공했는가. 되돌아갈 수 있는가. 랭스로, 나의 랭스로 돌아갈 수 있는가.




"지배 메커니즘에 관해서는 그렇게나 많은 글을 써댔던 내가, 사회적 지배에 관해서는 왜 쓰지 않았을까?" 혹은
"예속화assujettissement와 주체화subjectivation 과정에서경험하는 수치의 감정에 그토록 중요성을 부여했으면서, 왜 사회적 수치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런 글도 쓰지않았던 것일까?" 결국 이렇게 질문을 바꾸어야 했다. "파리에 정착한 뒤, 나는 나와는 다른 사회 계층 출신의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고, 종종 그들에게 내 출신 계급을 거짓말로 둘러대거나 진실을 고백하며 마음속으로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내 출신 환경에 대한 수치, 사회적 수치를 경험했다. 그런데 나는 왜 책이나 논문에서 이 문제를 다뤄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을까?" 이것을 다음과 같이 진술해보자. 내게는 사회적 수치에 관해 쓰는 것보다 성적 수치에 관해 쓰는 것이 훨씬 쉬운 일이었다. - P23

공부를 계속하지 못했다는 어머니의 좌절감은 모두 이런 식의 분노의 폭발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이는 다른 형태로 이어졌다. 내가 살짝 비판적인 의견을 내거나 가볍게 이견 표시만 해도 다음과 같은 대꾸가 튀어나왔다. "네가 고등학교에 다닌다고 우리 위에 있는 건 아냐" 라든지 "네가 뭐라도 되는 줄 아니? 우리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제우스신의 넓적다리"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소리를 몇 번이나 들었던가? 하지만 어머니가 가장 자주 입에 올린 것은, 내가 자유롭게 얻을 수 있는것을 그녀는 박탈당했다는 사실을 내게 상기시켜주는문장들이었다. "나는 결코 ~할 수 없었단다"라거나 "나는 결코 가질 수 없었단다"라는 말, 아버지는 자신이 "가질수 없었던 것들을 우리에게 끝없이 상기시켰다. - P93

어머니의 노동은 내가 고등학교에서 몽테뉴Michelde Montaigne나 발자크Honoré de Balzac에 관한 강의를 들을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것, 그리고 내가 대학에 가고나서는 내 방에 몇 시간씩 틀어박혀서 아리스토텔레스나 칸트Immanuel Kant를 해독할 수 있도록 해주기 위한 것이었다. 어머니가 새벽 4시에 일어나기 위해 밤에 잠들어 있는 동안, 나는 동틀 녘까지 마르크스KarlHeinrich Marx와 트로츠키Leon Trotsky, 보부아르Simone deBeauvoir와 주네를 읽었다. 여기서 나는, 아니 에르노가 동네에서 작은 식품점을 운영하던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 쓰면서, 이 난폭한 진실을 표현했던 단순한 방식을 참조할 수밖에 없다. "난 어머니의 사랑과 그 부당성을 확신했다. 그녀는 내가 플라톤 강의를 들으러 대강당에 앉아 있을 수 있게 하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감자와 우유를 손님들에게 내놓았다." - P95

내가 보기에는 계급 소속감의 부재가 부르주아의 유년기를 특징짓는다는 점이야말로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지배자들은 그들이 특정한 세계 안에 위치지어져 있다는 것을 지각하지 못한다(이는 백인이나 이성애자가 스스로 백인이나 이성애자로서의 자의식을 갖고 있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이러한 언급은 있는 그 자체 명백한 의미를 갖는다. 즉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기술하고 있을 뿐이면서 사회학을 하고 있다고 믿는 어떤 특권층 인사가 내놓은 순진한 고백인 것이다. - P112

어머니의 인종주의와 어머니(이민자의 딸!)가 이주 노동자들 일반과 특히 ‘아랍인들’에 대해 공공연히 드러내는 지독한 경멸은 혹시, 열등하다는낙인이 찍힌 사회적 범주에 속하는 어머니가 자기보다 더 심하게 박탈당한 사람들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는 하나의 방편이 아니었을까 하고 말이다. 그것은 타자의 가치에 대한 평가절하를 우회 수단으로 삼아, 스스로에 대해 가치 있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하나의 방식, 그러니까 자기만의 시선으로 존재하는 한 가지 방식이었는지도 모른다. - P167

나는 보부아르가 『회고록』에서 묘사한 모든 것들에 매혹당한 나머지, 그녀와 그녀의 지인들이 자주 다니던 장소들, 그녀가 말한 거리들, 그녀가 말한 구역들을 모두 가보려고 했다. 오늘날 나는 그것이 일종의 전설이며, 신화화된 시각으로 채색된 것임을 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이 전설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지적인 삶의 시대, 그리고 그러한 삶이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삶과의 관련 속에서 우리를 자석처럼 끌어당기고, 사유의 세계에 참여하려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시대였다. 우리는 위대한 지식인들을 떠받들었고, 그들과 스스로를 동일시했으며, 그러한 창조적 활동에 참여하고 싶어 안달했다. - P215

우리는 지식인의 형상에 미래의 자기 모습을 투사했다. 책을 쓰고, 다른 사람들과 열띤 토론을 하며 아이디어를교환하고, 이론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도 정치에 개입하는 사람 말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책들과 동성애자로서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 내가 파리에 정착하게 만든 두 가지 큰 이유였던 것 같다. - P216

그렇다, 짐작하겠지만, 이 책은 바로 사르트르의 『성 주네Saint Genet다. 물론 두 책의 차이는 매우 크다. 푸코의 경우에, 그리고 정신의학적·정신분석학적 심문에 반대해 그가 관여한 투쟁의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자신이고 그의 경험이다. 또 그가 확인하는 것은 오직 자신의 목소리이고, 그가 방어하려는 것은 자신의 삶이다. 반면 사르트르는 타자에 관해 글을 쓴다. 그는 감정이입을 통해 완전히 몰입한 채로 다른 이[장 주네]의 궤적을 분석하고 이를 통해 지배 메커니즘과 자기발명의 과정을 설명하려고 한다. - P254

따라서 사르트르의 주네에 관한 책에 나오는 다음 문장이 내겐 핵심으로 다가왔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행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우리에게 행한것을 가지고서 우리가 스스로 하는 것이다." 그것은 금세 내 존재의 원칙을 구성했다. 자기에 대한 자기의 작업으로서 수행의 원칙.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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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4-28 15: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떠나서 다시 그 전의 계급을 되돌아본다는 것만으로 이 분 대단한 듯 합니다. 대부분 뒤도 돌아보기 싫을텐데요. 가장 잔인한 경계선은 보이지 않는? 누가 줄을 긋기 시작했을까요 땅에도 마음에도 사람에도. ㅠㅠ 단발머리님 찢청은 누구 소유인지 그 와중에 궁금한 ㅎㅎㅎ 순간 저인줄 알았어요. 아이에게 작아진 반바지와 티셔츠. 카디건만 제꺼네요 ~~ 관심 두고 있는 책인데 유익하게 잘 읽었어요 ~~

단발머리 2022-05-01 20:49   좋아요 1 | URL
책 속에서.... 자기가 떠나온 계급에 대해 거짓말했다 아니면 아닌 척 했다, 이런 이야기가 자주 나와요. 정말 되돌아가기 싫은데 이제서야 되돌아볼 수 있었다고 할까요. 정말 대단한 작가인 것 같아요. 찢청은 저만의 것으로서, 너무 많이 찢어져서 ㅋㅋㅋㅋㅋㅋㅋㅋ 수선하는 집에서 양쪽 끝은 약간 손질을 했습니다. 더 찢어지지 말라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언제 한 번 미니님과 아이들 옷 배틀 한 번 해야겠는데요^^

청아 2022-04-28 15: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태그 재밌습니다.ㅋㅋㅋㅋㅋㅋㅋ쟝쟝님 빨리 이 리뷰 보셨음 좋겠어요 태그도 꼭이요!!
저는 요즘 스터디카페 알아보는 중이예요. 공부자극도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단발머리 2022-05-01 20:51   좋아요 1 | URL
뭐랄까요. 태그는 진짜 저의 진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쟝쟝님도 이 리뷰를 다 보셨을 거에요. 근데 태그는 모르겠네요.
좋은 스카 발견하시면 저도 좀 알려주세요. 미미님 열공 모드 저도 따라하게요!!

다락방 2022-04-28 17:3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탈출한 사람만이 되돌아갈 수 있다.
저는 영화 <매드맥스> 생각이 납니다. 여성들은 단순히 애낳는 도구로 보던 곳에서 기어코 그 성노예 여성들을 데리고 탈출했는데, 그러나 낙원이 있을줄 알았던 사막 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결국 정말 필요한 건 있던 곳으로 돌아가 그곳을 뿌리째 바꾸는 일이었죠. 이미 그곳에 도착해있던 나이든 여성들을 마주하는 샤를리즈 테른을 보면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최선이다‘ 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단발머리 님 리뷰 보니까 그 영화 생각이 납니다.

돌아가기 위해선, 탈출이 우선이어야 하죠. 그건 불변의 진리입니다.

- 2022-04-28 21:19   좋아요 3 | URL
아. 여기서 어떻게 매드맥스를 떠올립니까.....ㅜㅜ 진짜 그 영화 너무 개 띵작이죠. 근데 그걸 여기에다가 어떻게 엮어버려욧!!!!!! 다락방님은 정말.... ㅜㅜ 찐이야....
다시 돌아가는 것 역시 떠나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리고 돌아간 거기서 다시 시작해야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힘주어 말할 수 있는 어떤 굳건함.
저는 우리 모두에게 그런 자원이 있다고 생각해요. 삶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그 어떤 누구라도.
굳이 어려운 언어와 말들이 아니라도.
그렇습니다. 탈출하려면 내가 갇혀있다는 것을 봐야하기도 하죠. 그렇네요. 증말...

단발머리 2022-05-01 20:59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 / 저는 영화 매드맥스를 안 봐서요. 영화 정리한 유투브 살펴보았는데 아... 왜케 무섭죠. 명작이라고 하는데 겁이 많이 나네요. 탈출한 곳으로 돌아간다는 거 너무 어려운 일인데, 그게 최선이라고 하니까요...... 탈출을 해야죠. 일단 탈출이 먼저입니다.

쟝쟝님 / 쟝쟝님도 그 영화 아시는군요. 저는 사진 보다가 놀라가지고.... 우아, 개 띵작 어떻게 알고 있었냐 말이죠. 두 분은...
과거에 대해 솔직하게 대면하는 작가를 보고 좀 많이 놀랐구요. 그걸 해석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데 부러움도 느꼈구요. 쟝쟝님 덕분에 좋은 책 읽었어요. 땡큐!!

책읽는나무 2022-04-28 17:0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의 옷을 입는 단발머리님!!ㅋㅋㅋ
저도 요즘 애들이 안입는 옷 아까워서 제가 입고 다니거든요...혼자 웃었어요.^^
집에 모든 것이 갖춰져 있어도 굳이 도서관 같은 곳을 찾아 나서는 것은 모두 비슷한가 봅니다.

탈출했는데 다시 되돌아가는 심정은 어떨까?싶기도 하네요. 특히나 너무나도 탈출하고 싶었던 그 계급으로..
나 같으면??
그냥 탈출하여 더 상향 조정된 계급에 속해 있다면 굳이 되돌아가지 못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암튼 에리봉의 책은 단발머리님의 리뷰를 읽으니 공쟝님의 글을 읽을 때와 느낌이 확 다르네요? 같은 책인데도 다른 책을 접하는 느낌이랄까요?
결론은 읽어봐야 아는 거겠죠?^^

단발머리 2022-05-01 21:01   좋아요 2 | URL
우리 모두 애들 옷 입는 거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넘 재미있고 신기하네요. 저도 집보다는 도서관이 좋아 집을 나서는데 내일 월요일이라 큰일 났습니다. 갈데가 없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에리봉 책 처음이었는데 좋았어요. 원래대로라면 쟝쟝님 같은, 자서전 같은(?) 글을 쓰고 싶었는데 우아... 그게 진짜 어려운 일이더라구요. (쟝쟝님 짱!) 그래서 저는 나름의 간단 리뷰를 올리고 말았습니다. 책나무님 버전도 기대해볼게요^^

- 2022-04-28 17:3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아 저 ㅠㅠ 이거 꼭 집에가자 마자 태그까지 해서 읽어볼께요 💕 오늘 모처럼 외근나와서 ㅋㅋㅋ 이동중에 폰으로 글쓰고 ㅋㅋㅋ 북플에 올리려고 들어왔더니 이런 귀한 글이 암튼 행복해요 ㅋㅋ

단발머리 2022-05-01 21:02   좋아요 1 | URL
에리봉은 사랑입니다.💕💕💕

- 2022-04-29 11:2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 자서전을 씁시다. (갑자기 몰리님 소환하기!)
여성이라는 계급. 아줌마라는 계급. 읽고 쓰는 언어라는 도구로.. 그냥 그럽시다. 그렇게 하십시다! 아직 못 가신거 아니예요. 떠나오셨을 거예요. 맞아요... 어쩌면 탈출할 수 없어요. 하지만 도망치고 싶어했던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서 맨날맨날 그 자리에 선 것 같은 느낌일지라도. 그런데도 달라요. 다른겁니다. 그 부분에서 저는 확신합니다. 힘내요. 단발님, 힘내요! 영화 매드맥스 한번 더 봐야겠어요. 아. 뭐지. 나 왤케 벅참? 지금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5-01 21:06   좋아요 2 | URL
저도 첨에 읽을 때는 쟝쟝님 같은 글을 쓰고 싶었거든요. 근데 머리는 엄청 복잡한데 그게 잘 안 잡히더라구요. 전, 아직 탈출 전인것 같기도 하고, 아님 탈출했는데 돌아가기 싫은 것 같기도 해요. 무엇보다 에리봉 같은 솔직함이 저한테는 없다고... 전 그렇게 느꼈어요.
여성이라는 계급, 아줌마라는 계급 속에서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어떤.... 의미를 전한다기 보다는, 그 일, 그 행위 자체가 바로 저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도 하고요. 어마어마하게 먼 훗날의 일일 수 있겠지만....
우리 자서전을 씁시다. (몰리님 대환영!) 우리도 자서전을 쓰자고요!!!

서니데이 2022-05-07 17: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단발머리 2022-05-07 17:33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덕분에 좋은 소식을 알게됐어요. 넘넘 감사합니다!!
 






 












1. Beach Read /36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 작별인사



한동안 로맨스 금지를 선언했는데, 이 책을 또 읽어버렸다. 다른 인종 간의 로맨스를 소설로 읽는 건 처음인데, 그가 혹은 그녀가 다른 피부색인 것이 사실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뻔한 진실을, 이 책을 통해 확인한다. 우리 인간이 얼마나 중층적인 존재인지, 유혹당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유혹에 저항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결론이 정해져 있는 이런 장르의 소설을 통해서도 관계의 오묘함을 재발견할 수 있다. 좋았던 문장은 여기.

 


I didn’t shower, barely ate, chugged water and coffee but nothing harder. (303)


 

여남 주인공 둘 다 작가인데, 슬럼프에 빠져있던 여자 주인공이 쓰기의 탄력을 회복한 순간, 그녀는 말 그대로 먹지도 씻지도 않고 쓰기만 한다. 초인적 집중력이 쓰기로만 발휘되는 장면이다. 자연스레 김영하의 <옥수수와 나>와 겹치는데 그 단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쓰기와 섹스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유쾌 발랄한 쓰기와 섹스의 완벽 하모니. 집에 책이 없군. 다시 읽고 싶다. 김영하 신간도 나왔다고 하던데 그 책도 궁금하다.





 

 















2. 초인적 힘의 비밀 / 진리의 발견 / 길 위에서

 


무슨 이유인지 나는 이 책이 운동에 관한 책일 거라 예상했다. ‘초인적 힘에서 나도 모르게 에 강세를 주었던 듯하고, 표지도 한몫 했을 거라 추측하는데, 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하지만, 정확히는 운동력보다는 창조력에 대한 책으로 보는 게 정확하다. 저자가 즐겨했던 혹은 도전했던 운동/활동은 스키, 달리기, 초월명상, 가라테, 요가, 자전거 타기, 고강도 인터벌 트레이닝 등이다.

 




책 중간에 마거릿 퓰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진리의 발견』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앨리슨 벡셀이 들려주는 마거릿 퓰러 이야기도 무척 흥미진진할 듯싶다. 저자가 책 전반에 가장 중점적으로 다룬 작가는 잭 케루악. 『길 위에서』라는 책으로 무명 작가에서 일약 비트 제너레이션의 주도적 작가로 주목받았다고 한다. 내 스타일은 아닐 것 같은데 일단 링크해 놓고 기억해 두기로 한다.

 

 

















3. 어떻게 지내요 / 우리가 사는 방식 / 친구 / 그 부류의 마지막 존재  

 


모험? 모험이라면, 우리는 서로 다른 두 모험에 나선 것이었다. 친구의 모험은 나의 모험과 완전히 달랐고, 앞으로 아무리 함께 생활을 한다 해도 우리는 다분히 혼자일 터였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적어도 둘이 있지만, 떠날 때는 오로지 혼자라고 누군가 말한 적이 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모든 인간 경험을 통틀어 가장 고독한 경험으로, 우리를 결속하기보다는 떼어놓는다. (149쪽)

 


1월에, 2022년 상반기 도서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페미니스트』를 골랐을 때, 알라딘 친구는 내게 너무 성급한 것 아니냐고 물었는데, 그 말이 맞았다. 너무 성급했다. 올해 상반기의 책, 새로운 후보가 나타났으니 그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머릿속으로는 이미 이 책의 리뷰를 세 번 정도 쓴 것 같은데, 실제로는 리뷰를 쓰지 못했다. 꼭 리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 리뷰는 나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죽음을 앞둔 친구의 부탁. 가족과 친구에 관한 이야기다. 욕하면서 읽는 즐거움. 내가, 누구에겐가 이런 사람(친구 같은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감정적 거리와 솔직함이 주는 충격.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큼 정직해야 하는지, 얼마큼 인내해야 하는지. 그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저자의 다른 책을 기다리고 있다.

 


















4. 의식의 기원

 


요즘 제일 재미있게 있는 책은 이 책이다. 60쪽 정도 읽었고, 구매해서 읽으려고 지금은 읽기를 중단한 상태다. 친구 중에 철학책을 잘 읽는 친구가 있다. 『비철학자를 위한 철학 입문』, 이런 책들을 아주 편안하게 읽어버린다. 친구 중에 소설을 잘 읽는 친구가 있다. 나는 아직도 소설 읽기 전 마음 준비가 필요한데, 친구는 소설이 최고라는 말과 함께 소설 읽기의 즐거움을 매분 매시간 설파한다. 친구 중에 사회학 도서를 잘 읽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사회학 도서를 잘근잘근 씹어낼 뿐만 아니라, 푸코를 결혼 안 한 막내 삼촌 대하듯 그의 사상을 놀리고 골린다. 관심과 흥미가 각각 제각각이다. 나는 이런 책에 흥분한다. 이런 부분.

 


의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의식을 의식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 이 의식의 의식을 의식이 무엇이냐에 대한 대답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것은 제대로 된 대답이 아니다. (46)

 


의식의 의식, 의식의 출현, 양원적 정신, 목소리의 위치와 기능, 신의 음성, 죽은 자의 말, 산 자의 대답, 천사들의 기원, 시간의 공간화, 길가메시, 시와 노래, 정신분열증, 과학이라는 복신술. 내가 궁금해하는 것들, 나를 펄쩍 일어나 앉게 만드는 것들이 이 안에 다 있다. 의식을 찾아 떠나는 신나는 과거 여행 혹은 의식을 찾아 떠나는 신나는 과학 여행. 기대 만발, 개봉 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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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2-04-24 21: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beach read를 bread read로 처음에 잘못 읽고 라임 맞춰 제목 쓰신 줄 알았어요.

책 분야별로 읽기 특화된 친구분들이 많으셔서 좋은 말씀,추천 많이 받으시겠어요. 그 중에서도, ˝푸코를 결혼 안 한 막내 삼촌 대하듯 그의 사상을 놀리고 골리는˝ 친구분, 와! 어떤 분이실까?

저는 엘리슨 백델이 엄마아빠에 대해 쓴 그 두 권은 올해 정말 재밌게 읽었는데 [초인적 힘의 비밀]은 미지 영역이네요.
제가 사는 지역 도서관 전체에 한 권의 소장도서도 없으니 중고에서 뒤져봐야하나^^:;

단발머리 2022-04-25 09:21   좋아요 3 | URL
푸코를 결혼 안 한 막내 삼촌 대하듯 하는 친구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얄라님도 아실텐데 그 이름도 아름다운 공쟝쟝님입니다. 쟝쟝님은 푸코를 사랑하면서 놀리는데요, 그 균형이 참으로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초인적 힘의 비밀>은 희망도서로 신청하시면 어떨까요. 저도 도서관에 신청해서 읽게 되었거든요^^

거리의화가 2022-04-25 09: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022년 상반기 최고의 책~이 바뀌셨군요^^ 저는 아직 결정을 못했습니다 아직 두어달 남았으니 바뀔수도 있어서 천천히 생각해보려구요. 특화된 분야가 있다는 것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전 철학이나 문학 장르를 잘 읽는 분들이 참 부럽더라구요 원래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탐낸다고 하잖아요^^; 단발머리님이 현재 재밌게 읽고 계신다는 책이 저도 눈에 들어와서 찜하겠습니다! 즐건 한주되세요^^*

단발머리 2022-04-25 09:19   좋아요 2 | URL
글쎼요. 저는 후보라고 하고 싶군요. ㅎㅎ 후보책 한 권이 더 늘었습니다. 거리의화가님 말씀처럼 아직 두어달 남았으니 더 놀라운 책이 등장할 수도 있겠구요.
저도 제가 잘 못 읽는 분야의 책을 술술 읽어대는 친구들이 참 놀랍고 신기합니다. 친구들 추천 따라 읽다가 금맥을 발견할 때가 많아서요, 전 친구들의 선택을 엄청 신뢰하거든요. 거리의화가님 추천도 눈여겨 보겠습니다^^ 이번주도 화이팅하세요!

- 2022-04-28 19: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앗! 🙏 단발님 혹시이 <침묵의 세계>읽어보셨나요? 저는 요즘 얘를 읽어요. 그리고 단발님을 생각해요. 의식의 의식…🤗 신의 말… 자명한 존재보다 더 자명한 무… 뭐 이런 것들… 되게 아득해져서… 음악도 아무것도 안듣고 그냥 침묵속에서 요즘 일해요..🤫

단발머리 2022-05-01 21:09   좋아요 0 | URL
저 <침묵의 세계> 안 읽어봤구요. 책내용 소개랑 목차 보고 왔는데... 뭐에요, 왜케 어려운 책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거 자꾸 권하면, 반사!!! 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요즘 <의식의 기원> 읽어요. 난 지금 메소포타미아에서 함무라비랑 이야기 나누고 있으니까 나 보고 싶으면 그리로 오세요.
저도.... 아무 것도 안 듣고 침묵 속에 있는 거 좋아해요. 난 음악 틀면, 음악만 듣거든요.

책읽는나무 2022-05-01 06:5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가 볼땐 특정분야에 특화된 친구들을 구별해 내고 감탄하시는 단발머리님이 오히려 더 위에 있는 특화된 분이 아닐까? 전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정말 다양하게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근데 또 깊숙하게 즐기며 읽으시는 분 중 한 분이십니다. 오늘도 김영하 작가 신작 링크해서 들어왔다가 우와~ 이곳에서 도대체 몇 권의 책을 소개 받는지 동공이 확장됩니다.^^ 늘 그랬어요. 단발머리님의 서재에선 말이죠!!!

단발머리 2022-05-01 21:12   좋아요 2 | URL
아이고, 책나무님이 저를 좋게 봐주셔서 그런 겁니다. 제게 특화된 분야가 있다면 우리 알라딘 친구들에게 책소개 받는 것과 도서관에서 대출해 오는 것이지요. 반드시!!! 다양한 장르를 즐겁게 깊이 있게 읽고 이해하는 단발머리가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그리고 더 좋은 책소개 페이퍼로 돌아올게요! 좋은 말씀, 격려의 말씀 감사해요, 책나무님!!

서니데이 2022-05-07 17: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단발머리 2022-05-07 17:34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축하 인사 감사해요. ㅎㅎㅎ 즐겁고 편안한 주말 되시길요^^

thkang1001 2022-05-07 19: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되시길 기원합니다!

단발머리 2022-05-07 20:11   좋아요 1 | URL
thkang1001님 감사합니다.
편안하고 즐거운 주말 되시길요^^
 





 














『파친코』를 읽는다. 예전에 사두었는데 드라마가 인기라고 해서 덩달아 읽는다. 화면 전체가 이민호로 가득 채워질 때, 미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한국의 애달픈 역사가 이렇게 아름다울 일인가 싶다. 윤여정은 두말할 것도 없고 젊은 선자역의 김민하도 매력적인데, 애플 티비를 신청할 건 아니어서 영상을 몇 개 보고 책을 읽는다.

 

내용을 전혀 모르고 시작한 읽기라 흔히 소개되듯 일본의 수탈과정에서 겪는 한국인의 고통’, 특별히 일본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이야기라 예상했다. 그런 이야기는 맞는데 이런 부분이 가슴에 울린다.

 


남편이 투옥된 선자는 경희(형님)와 같이 만든 홈메이드 김치를 시장에 내다 판다. 슬슬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시내의 커다란 레스토랑 사장은 경희와 선자에게 식당에 취업할 것을 권한다. 입이 딱 벌어지게 만드는 월급, 각종 편의를 무조건 다 봐주겠다는 사장의 제안에 경희와 선자는 허락을 받고 오겠다고 말한다. 남편의 허락, 시숙의 허락.

 


Seeing that Kyunghee looked more agitated than pleased at this job offer, which would change everything, Sunja said, “We have to ask. For permission –“ (190)


 

시숙은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는 평범한 조선 남자다. 그는 자신의 가족들을 책임지고 싶어 하고 그것이 그 남자가 품위를 유지하는 방법이다. 동시에 그는 식민주의 시대 피지배 계급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왕국 내에서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자 한다. 집이 온통 김치공장으로 변해버려 종일 양념 냄새가 진동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예쁘고 다정한 아내를 레스토랑의 식당에 들여보내는 일을 허락’ 할 수 없다. 하지만, 선자에게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선자에게는 투옥된 남편이 있고, 고기를 먹여야 하고, 깨끗한 옷을 입혀야 하는 아들이 둘이나 있다. 경희와 선자는 식당에서 일하게 된다.

 

 

경술국치, 한일병합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었을 때, 한국 황제로부터 전권을 부여받은 이완용과 일본 황제의 전권 위원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협정은 바로 그 시간부터 강제력을 가지게 되었고, 이는 한반도 전체와 인근 지역에서 생활하는 모든 한국인의 삶을 규정했다. 선자의 모든 불행이 나라를 잃은 것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선자의 불행 중 일부분은 나라를 잃음으로써 선명해졌다. 일본 땅, 오사카에서 사는 조선인의 삶이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 개인의 삶이 전체 사회 구조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주조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개인의 불행은 개인만의 잘못이 아니듯, 한 사람의 행복 역시 노력의 결과만은 아니다. 하지만 매일 일상의 삶을 사는 우리로서는 거대한 구조 속에서 자신의 삶을 조명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한 걸음 떨어져 살펴보기 위해서는 한 걸음 내디딜 만큼의 물리적 기반이 필요한데, 그것 역시 경제적 요건과 깊은 관계가 있다. 오늘을 살아가기에도 버거운 삶 속에서 거대한 구조의 음모와 비밀을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레이디 크레딧』 읽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이 책의 추적과 연구와 결론이 그래서로 귀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매매에 대한 도덕적 판단, 성매매 업소를 즐겨 찾는 남성 심리에 대한 성토, 성매매 업소 내의 외모를 통한 등급화가 성매매업소에서 오랜 기간 일해왔던 여성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겠는가, 라고 생각했다. 결국은, 그들이 성매매업소를 탈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자활의 역량을 강화하는 것만이 유일한해결책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든다.

 


여성학 지식 생산에 있어 인식과 실천은 변증법적 관계다. 실천을 통해 갱신된 인식은 변화를 저지하는 세력을 밝혀냄으로써 대안적 지식 생산에 기여하며, 이는 다시금 과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관철하는 실천이 된다. 이러한 페미니스트 인식론은 노동자계급의 입장과 자본주의 비판의 자원이 실천적인 행동 속에서 비로소 발견될 수 있다는 마르크스주의에 의거한다. 이 책이 다루고자 하는 질문은 이렇게 분리될 수 없는 여성주의 인식과 실천의 과정에서 도출되었다. 여기서는 성매매 문제를 새롭게 보기 위해 왜 경제적 요인에 주목하고자 하는지 문제의식이 발전된 과정을 밝히고자 한다. (69)

 


오랜 시간 활동가로 일해오면서 성매매업소의 여성들과 가깝게 지내며 그들을 돕고, 같이 생활하기도 했던 저자가 이 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한 여자아이 혹은 젊은 여성이 성매매업소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다시는 그 업계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막는 거대한 구조와 산업, 그리고 자본의 움직임을 고발하고자 하는 저자의 진심이 이 챕터 전체를 통해 전해진다.

 


당장의 작은 도움, 지금 당장의 현실적 필요를 채워주어야 하겠지만,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하나의 부품처럼 쓰다 버려지는 성매매업 종사자 여성들의 삶을 보고하는 것 역시 꼭 필요한 일임은 분명하다. 그들의 불행과 고충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지배하는 검은 자본의 흐름을 밝혀내는 것, 불법과 탈법의 현장을 고발하는 것. 이것이 지금 그녀가 하고 있는 일이다. 용감하고, 위대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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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4-21 11:5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남편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경희와 선자를 보면서 사실 <한국남성을 분석한다> 뭐 이런 책이 생각났거든요. <맨박스> 생각도 났고요. 가난하게 살면서 그렇게나 고되고 힘든데도 불구하고 돈을 벌 수 있는 여성들을 용납하지 못하는 가장이란 무엇인가. 남성성이란 무엇인가.
아직 파친코 완독 다 못하신거죠? 한수 라는 인간에 대해서도 아주 할 말이 많아집니다, 단발머리 님.
사랑은 무엇이고, 자식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결혼은 또 뭐란 말입니까.

단발머리 2022-04-21 12:16   좋아요 3 | URL
저… 단발머리…..
유…… 다락방님……
저한테 다락방님이라 하신 분 몇 분 되지만 저더러 다락방님이라고 하는 다락방님…
위에꺼 수정하지 마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22-04-21 11:58   좋아요 5 | URL
수정했어요. 아 얼굴 빨개짐. 누구로 써놨나 했더니 제가 저를 부르고 있었네요? 아 멍충이. 아직 몸이 회복이 안돼서 그래요. 아 진짜 부끄럽기 짝이없다. 내가 나보고 다락방 님이래 ㅋㅋㅋㅋㅋㅋㅋㅋ 유체이탈인가요... ㅋㅋㅋㅋㅋ (수정하고 이 댓글 쓴 뒤에 단발머리 님 댓글 봤네요 ㅋㅋ)

단발머리 2022-04-21 11:59   좋아요 4 | URL
벌써요? ㅋㅋㅋㅋㅋㅋ 단발님! 수정하지 마시라니까요! 어디가요! 단발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22-04-21 12:19   좋아요 3 | URL
다락방님 진정한 사랑의 화신. 유체이탈, 물아일체를 넘어 친구한몸의 경지에 이르르다. 하트뿅뿅! 😍😍😍

잠자냥 2022-04-21 13:11   좋아요 4 | URL
다부장 코로나 후유증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유체이탈 등 극심한 증상

수이 2022-04-21 13:22   좋아요 3 | URL
유체이탈은 저도 처음 듣는 후유증인데 음 넘 걱정되어서 어쩌지 얼른 삼겹살에 소주 사주며 몸보신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걱정하고 있습니다 단발님 아니아니 락방님 아니아니 잠자냥님

수이 2022-04-21 12: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글 잘 읽었습니다. 파친코도 다시 읽어보고 싶군요. 레이디 크레딧은 엄청 많이 남았는데 4월이 얼마 남지 않았네요-.- 라고 다시 보니 단발님 글이네요?! 🤗

단발머리 2022-04-21 12:59   좋아요 3 | URL
쟝쟝님 댓글 감사합니다 ㅋㅋㅋㅋ 다락방님도 파친코를 읽으셔서 지금 여기는 <파친코 세상>이구요. 오늘은 4월 21일이라고 합니다. 전 지금 <레이디 크레딧> 읽고 있구요🤪

수이 2022-04-21 13:20   좋아요 2 | URL
비타야 비타야 나는 쟝쟝이다 비타는 일하고 있니? 쟝쟝이는 지금 라떼에 우유식빵 뜯어먹고 있습니다 딸기쨈 왕창 발라서 💪

단발머리 2022-04-21 13:25   좋아요 2 | URL
영상으로 보니 우리 비타님은 못 보던 새 머리카락이 많이 자라 백설공주와 같은 칠흙같은 흑단의 생머리로 돌아왔더이다.
비타야… 잘 살고 있더구나. 영상으로라도 우리 얼굴 자주 보자꾸나.

- 2022-04-28 19:29   좋아요 1 | URL
뭐얔ㅋㅋㅋㅋㅋ 여기서 뜬금없이 제가 왜 나옵니까? 라고 할랫다가 이 놀이에 동참 못한게 너무 한스럽다 ㅠㅠ 비타야 왜 이때 안놀았니 ㅠㅠ 너 북플 열심히 하라구!!!

다락방 2022-04-21 13: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여기 어떡해요 어쩜 좋아요. 혼란의 도가니다… 🤪

단발머리 2022-04-21 15:39   좋아요 2 | URL
단발님! 단발님! 저 파친코 읽고 있는데 한수 나왔어요. 그 식당이 그 식당이래요.
세상에, 이런 일이! 😳😳😳

다락방 2022-04-21 15:57   좋아요 2 | URL
그러니까요, 그 식당이 그 식당이라니까요. 한수 이노므 시키... 이 시키 뭐죠.

단발머리 2022-04-21 15:59   좋아요 1 | URL
지금 이노므 시키가 선자 대피 훈련 시키고 있어요. 아흐….

그렇게혜윰 2022-04-21 19: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락머리라고 불러냐 하나 남의 정체성 혼란이 파친코급...이라 하기엔 제가 파친코 못 읽은....ㅋ 원서로 읽으신 거군요!

단발머리 2022-04-21 19:46   좋아요 2 | URL
다락머리 괜찮네요, 다락방님께 전해드려야겠어요. 친구한몸체의 결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파친코는 저도 이제 막 시작해서요. 늦게 발견하는 기쁨도 있군요.

수이 2022-04-22 13:22   좋아요 3 | URL
다락머리!!!!!!

책읽는나무 2022-04-21 2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여긴 도대체 어딘가요???ㅋㅋㅋㅋㅋ
감명깊게 글을 읽고....댓글들에 빵 터졌다가....나중엔 혼돈의 도가니!!!!

전 지난 주, 확진 걸려 완쾌한 친구와 다른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헤어질 때, 안녕~하고 아파트를 벗어났는데 친구 전화 와선 ˝니 가방 가져가랏!!! ˝...아....다시 올라갔다가 진짜로 안녕~ 인사하고 내려오니 그 친구가 옆에서 지켜보더니 ˝확진은 내가 됐었는데 바보는 니가 됐군! 니 내몰래 확진 됐었지?˝그러더군요~ 약속 잡을 때부터 카톡 상대 바뀐 줄도 모르고 열심히 적어 보냈더니 ˝나 아니다.˝....😲😲
모두의 실수들이 다 비슷해 보이네요ㅋㅋㅋ
그래서 위안 받을 수 있는 안도감!!!
이렇게 좋은 이곳, 또 어디에 있을까요??ㅋㅋㅋ

단발머리 2022-04-23 14:15   좋아요 2 | URL
혼돈의 도가니 덕분에 웃음과 안도감을 얻으셨다면 다행이에요. 시작은 매우 미미하였으나 이렇게 커다란 혼돈을 불어올줄은 다락방님도 저도 몰랐을텐데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좋은 이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ㅋㅋㅋㅋ 책나무님, 우리 오래오래 같이 읽고 이야기 나누고 커피 마시고 간식 먹기로 해요!!

그레이스 2022-04-21 20: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여성학 지식 생산에 있어 인식과 실천은 변증법적 관계다˝👍👍👍

단발머리 2022-04-23 14:12   좋아요 3 | URL
저도 이 문장에 엄지척을 날렸습니다.
여성학 지식 생산에 있어 인식과 실천은 변증법적 관계다.
 



















질문은 단순하다. 여성들의 성매매 참여를 만들어내는 경제적 요인의 구체적 형식은 무엇이며, 이것은 성매매 산업에서 어떻게 구성되어 작동하는가? (34쪽) 






한편 성매매에 존재하는 구조적 강제‘를 강조하는 입장은 여성들의 경제적 기대는 성매매를 통해 충족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는 현장에서 여성들을 만나 상담 및 지원을 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양적 데이터가 제시된다. 이들에 따르면 성산업에서 여성들에게 제공되는 돈은 곧 ‘부채다. 업소 여성들에게 불리하게 계산되는 임금 시스템, 선불금이라는 족쇄, 물품 강매 등 다양한 종류의 불공정 거래가 여성들의 빚을 만들어내는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 P28

여기서 성매매 여성들의 낡은 경제적 태도는 ‘자활이라는 명목 아래 신용 교육이나금융 기법에 대한 교육을 통해 교정된다. 하지만 그런 교육은 성매매 여성이기 때문에 오히려 신용이 부여되고 있는 현재의 자본주의적 계산, 대출 양식을 간과하고 있다. 성매매 경제와 시장경제가착종, 공모, 절합articulation, 혹은 통합되어 있는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매매 경제에서의 부채를 해결하고 ‘합법적 경제에서 신용을 달성하려는 불완전한 자활 시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동시에 성노동론자 또한 여성들이 ‘아가씨‘이기 때문에 업소를 순환하는 다양한 종류의 부채에 잠식되는 현실을 고려하지 못하고있다. - P33

질문은 단순하다. 여성들의 성매매 참여를 만들어내는 경제적 요인의 구체적 형식은 무엇이며, 이것은 성매매 산업에서 어떻게 구성되어 작동하는가? - P34

예를 들어 드워킨(Dworkin, 1988: 229)은 ‘수탈하다’, ‘점령하다’라는 뜻의 라틴어 rapere‘에서 유래한 ‘강간ape‘과 성매매를 연결하면서, 성매매는 여성으로부터 "수탈한 것을 파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결국 이러한 연구들은 성매매 산업에서의 돈을 여성들의 수입으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에 기여한다. - P40

이러한 빈약한 문제 설정은 성매매 문제를 여성주의 정치학이 그토록 결별하고자 했던 도덕의 문제로 다시금 귀결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성매매 문제는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인권의 문제‘라는 슬로건은 1980년대 이래 여성주의의 ‘진보성’을 드러내는 가장 중요한 명제였다. - P43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최초의 기계는 증기기관이나 시계가 아니라 바로 인간의 신체인데(Federici, 2011[2004]: 218), 클라우디아 폰 베를호프의연구 이래 최초의 기계인 신체는 성별을 갖게 되었다. 그에 따르면 원시적 자본축적에서 여성의 신체와 섹슈얼리티 역시 토지와 함께 수탈되었다(von Werlhof, 1985; 2000에서 재인용), 페미니스트 학자들에 의해 "축적 전략으로서의 신체"(Harvey, 2001[2000)가 노동 분업, 성역할 분리를 통해 만들어진 ‘성별화된 신체’임이 드러난 것이다. - P59

앞서 언급한 페미니스트들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 노동의 비노동화, 여성의 가정주부화, 나아가 매춘화는 ‘자본주의적 가부장제 사회‘를 조직하는 원리다. 여성은 주부 또는 매춘부로, 이들의 노동이 교환되는 비자본주의적 외양이야말로 자본주의를 위해 기능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다(Fortunati, 1997[19951: 69), 현재 글로벌 자본주의 아래 친밀성의 상품화가 강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돌봄, 섹스, 가사 노동의 연속선에 자리하는 친밀한 노동 intimatelabors"이 고용 문제가 될 때 이들의 노동은 노동으로서의 지위를 얻을 수 없으며 누구나 할 수 있는 미숙련 노동으로 간주된다(Borisand Parreñas, 2010).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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