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 위의 식사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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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린의 작품을 무작정은 아니지만 대체로 좋아한다. 예전에는 감정 과잉이라 여겼던 적도 있지만 그 과잉의 문장들을 아무나 쓸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이번 작품은 현재의 남자 기현을 통해 과거의 남자 서강주를 추억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액자형 구조를 취하고 있다. 주인공 누경은 과거의 연애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여성으로 그려지는데, '누경'이라는 이름은 '샐 누(漏)'나, '눈물 누(淚)'를 연상시킨다. 그녀는 상처받고 연애로 치유하는 여자다. 열 여섯 살 풀밭 위에서의 기억은 서강주(父性이 다른 외피를 입고 나타난 듯한)를 통해 치유하고, 서강주에게 받은 상처는 기현과의 거리(비어 있는 공간)을 통해 치유받는다.  

이 소설에 나오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그럴 듯하고 멋져서 마치 어른을 위한 하이틴 로맨스 같기도 하다. 말로는 도저히 뱉을 수 없을 것 같은 닭살스럽고 문학적인 대사를 잘도 내뱉는다. 연애에 죽고 사는, 혹은 멋진 연애를 꿈꾸는 여자들에게 꽤 어필할 만한 소설이다.  

묘사나 서술이 때로 너무 감상적이고 추상적이지 않은가 싶지만 이 또한 전경린 소설의 매력인 듯.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식사' 그림을 모티프로 만든 문학동네의 표지는 아름답고 정갈하다. 다음은 이번 작품에 대한 전경린의 인터뷰 내용을 발췌하였다. 

   
  “옷을 갖춰 입은 두 남자 사이에서 온몸을 드러낸 여자가 세상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는 마네의 그림 ‘풀밭 위의 점심’을 오래전부터 좋아했다. 어떤 상황이든 세상을 똑바로 응시하는 용기가 아름답고, 같은 여자로서 해방감을 느꼈다. 이번 소설은 그림 속 여자와 같은 이야기이다. 현실을 똑바로 응시하는, 그래서 상처 들판을 치유의 들판으로 만드는 이야기이다. 나는 주인공이 그렇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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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이기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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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를 이제야 발견했네-라는 느낌? 읽다보니 한국소설에서는 여자 작가들 책을 더 선호하는 취향인지라, 남자 작가는 김영하, 백민석, 박민규 정도만 읽고 있다. 여기에 간혹 윤대녕. 이기호의 소설은 의뭉스러운 분위기는 성석제를 닮았지만 루저들에 대한 블랙코미디라는 점에서는 박민규와도 비슷하다.  

이 발랄한 소설집에는 총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그 중에서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과 '원주통신', '당신이 잠든 밤에'(아줌마가 아침에 길거리에 내던진 쪽파의 행방에 주목하라!)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큭큭큭...' 웃음을 터뜨리게 만드는 이야기들, 그러면서 루저들에 대한 짠한 여운을 남기는. 어쩜 작가는 그리도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을 수 있을까, 그것도 잘 완결된 이야기로 포장하여. 

작가 후기에서 그는 이 소설집에 실린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자전적이라고 고백하고 있으며, '할머니 이제 걱정 마세요'라는 작품에서 그는 많은 이야기들이 글을 모르는 자신의 할머니에게서 흘러나왔다고 내비친다. (이는 <굿바이 파라다이스>의 강지영과 같은 고백임에 주목해본다.) 세상의 할머니들은 참 위대한 것 같다.  

   
 

30) 지상에 올라와 흙을 먹다보니, 세상살이라는 것이, 그게 참 우습게만 여겨졌습니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불철주야 직장생활을 하는 세상 모든 아버지들과, 한푼이라도 아껴가며 저녁 반찬을 준비하는 세상 모든 어머니들,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를 닮기 위해 코피 쏟으며 공부하는 세상 모든 자식들, 그들이 안간힘을 다해 열중하고 있는 그 모든 일들이 그저 덧없고 허망하게 여겨졌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 모두가 열심히 일을 하고, 아껴 쓰고, 공부하는 것은, 결론적으로 다 '밥' 때문이잖아요. 굶지 않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밥을 사두기 위해, 보다 질 좋은 밥을 사먹기 위해, 그렇게 살인적인 노동을 감내하는 것이잖아요. 밥은 한정되어 있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밥을 탐하니까요(분단도 결국 '밥' 때문이 아닌가요?). 한데, 만약 그 밥이 주위에 무한정 널려 있다면, 그냥 삽으로 대충 몇 번 파헤쳐서 해결될 수 있다면, 그러면 그 노동들은 다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리잖아요. 너 그렇게 공부 안 하면 나중에 굶어 죽는다, 그렇게 게으르면 평생 고생하면서 산다, 뭐 이런 말들이 우습게만 여겨지는 거죠. 괜찮아요, 전 그냥 흙 파먹고 살래요. 이런 여유가 없는 것이죠. 아아, 불쌍한 사람들 같으니......                                        -6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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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
온다 리쿠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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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 리쿠표 코미디라- 손꼽아 출간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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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교사
재니스 Y. K. 리 지음, 김안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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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책은 읽고 나면 쓸 말이 별로 없다. 크게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어서일까. 감동도, 재미도 조금은 부족하고 그렇다고 신랄한 비판을 하기는 완성도가 높은 소설.  

2. 영국의 식민지였던 홍콩을 배경으로 2차세계대전 전후의 사교계 주변을 그린 소설. 전쟁의 상흔과 러브 스토리가 잘 어우러졌다. 전쟁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특히 물질적인 부분뿐 아니라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잘 녹여냈다. 

3. 한인 2세라는 타이틀도 이 책을 읽게 만든 요소다. 한국인보다는 외국인 시각의 동양 배경 문학(가령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이라든지) 같은 느낌이 더 진하다.

4. 이런 류의 일러스트 표지는 세련되지 못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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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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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라는 제목에는 많은 함의가 담겨있다.  한가족이지만 각자의 '동굴'을 짓고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어느 가족은 막내딸의 실종이라는 비일상적인 사건 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어떤 의미로 불행한 사건이지만, 그로 인해 동굴에서 나와 소통을 시작한다. 서로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나고 막내딸 유지를 찾기 위해 발버둥치며 서로를 보듬게 된다. 가족 여러 명의 시선으로 교차 편집되어 '너는 모른다'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는데, 이러한 명제는 소설의 끝으로 달려갈수록 점점 해체된다.

전작 <달콤한 나의 도시>가 말 그대로 달콤쌉싸름한 한국의 미혼여성의 삶과 연애를 그렸다면, 이번 작품은 방향이 좀 다르다. '스릴러 요소가 가미된 가족소설' 정도가 맞겠다. 중국 화교의 정체성 문제, (스포일러를 우려해 밝힐 수 없지만) 어떤 사회적인 병리 등에 메스를 들이댄다는 점에서 사회파 미스테리로 볼 수도 있겠다.   

이 소설은 주인공 스무살 혜성의 성장소설로도 읽히는데 이 과묵한, 하지만 가족의 축이기도 한 남자아이의 캐릭터는 꽤 매력적이다. 아빠도 엄마도 누나도 막내동생도 그에게는 그저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이었지만, 사건을 겪으면서 변화는 일어난다.

정이현은 스토리를 구축해 나가는 데 꽤 소질이 있다. 말하자면 다음 챕터를 계속해서 넘기게 만드는, 소설가로서 가장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 손에 잡은 지 3시간 여만에, 무척 재미있게 읽었지만, 초중반부에 비해 후반부의 뒷심이 조금 딸린다고 느꼈다. 아뭏든 그녀의 방향 전환은 꽤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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