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머리 앤 박스 세트 - 전5권
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 이가라시 유미코 그림 / 미우(대원씨아이)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 지금을 한껏 즐길 거예요. 이렇게 기분 좋은 날이잖아요." 1908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래 전 세계 수많은 아이들과 여성들의 친구가 된 소녀 앤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빨강머리 앤>이 애장판 만화로 출간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애장판은 <캔디 캔디>의 작가 이가라시 유미코가 작화를 맡아 기존의 <빨강머리 앤> 만화 또는 애니메이션과는 또 다른 새로운 매력을 전한다. 이가라시 유미코 특유의 우아하고 화려한 그림체가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앤의 눈에 비친 세상을 더욱 환상적이고 아름답게 묘사한다. 


이번에 출간된 애장판은 총 다섯 권이다. 애장판 다섯 권은 <빨강머리 앤 박스 세트>라는 이름의 박스판으로도 판매 중이다. <빨강머리 앤 박스 세트>는 <빨강머리 앤> PART 1~3권과 4권 <앤의 청춘>, 5권 <앤의 사랑>으로 구성된다. 애장판 다섯 권 외에 그린 게이블의 봄을 전하는 은은한 향이 담긴 향낭이 초판한정 부록으로 제공된다. 






원작 소설 시리즈는 전체 열 권으로, 이 중에 앤의 생애를 다룬 것이 여덟 권, 외전이 두 권이다. <빨강머리 앤> PART 1~3권은 앤 시리즈의 대표격인 <빨강머리 앤(Anne of Green Gables)>가 원작이고, 고아인 앤이 에이번리 섬의 초록색 지붕집에 오고 나서 '마음의 친구' 다이애나를 사귀고 훗날 반려가 되는 길버트를 만나는 이야기를 담는다. 


<앤의 청춘>은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해 에이번리 섬을 떠났던 앤이 매슈가 죽고 나서 적적해 하는 마릴라를 걱정해 에이번리 섬으로 돌아와 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겪게 되는 일을 그린다(이 부분에 해당하는 소설 제목은 <에이번리의 앤>). <앤의 사랑>은 교사를 그만두고 대학에 진학한 앤이 길버트 외의 다른 사랑을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이 부분에 해당하는 소설 제목은 <레드먼드의 앤>). 





원작 소설에는 없는 이 만화의 장점 첫 번째는 앤이 묘사하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이가라시 유미코의 화려한 그림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공상하길 좋아하는 앤은 평범한 가로수길도 '환희의 하얀 길'이라고 부르고, 보잘 것 없는 연못도 '빛나는 호수'라고 이름 짓는다. 그러면 놀랍게도 마법처럼 평범했던 풍경이 색다르게 보이고 전에는 없었던 빛을 발한다. 이런 장면들을 그림으로 볼 수 있으니 즐거울 수밖에. 


원작의 명장면을 다시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빨강머리 앤> 전체를 통틀어 가장 유명한 장면은 뭐니 뭐니 해도 앤이 길버트에게 화가 난 나머지 길버트의 머리를 석판으로 내리치는 장면인데, 이가라시 유미코 특유의 역동적이고 박진감 넘치는 그림으로 보니 장면의 충격이 더 생생하게 다가온다(석판으로 내리쳤는데 석판이 깨지다니... 길버트 머리는 石머리??). 





원작 소설에는 없는 이 만화의 장점 두 번째는 첫 만남부터 예사롭지 않은 우정을 과시했던 앤과 다이애나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빨강 머리와 주근깨, 빼빼 마른 몸이 너무 싫어서 검은 머리의 귀엽고 통통한 여자아이가 되길 간절히 소망했던 앤은 다이애나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하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마음의 친구'가 되어달라고 부탁한다. 착한 다이애나는 무조건 승낙한다. 


착하기만 한 줄 알았던 다이애나는 얼마 후 큰 사고를 치는데, 그것은 바로 앤이 포도주인 줄 모르고 건네준 딸기 주스를 한 병 다 마시고 쓰러지는 바람에 앤이 다이애나 엄마의 미움을 사게 만든 것이다. 앤이 떠드는 동안 다이애나가 "딸기 주스가 이렇게 맛있었나?"라고 혼잣말하며 직접 포도주를 따라 마시는 모습을 다이애나 엄마가 봤어야 되는데 ㅋㅋㅋ 댁의 따님이 10대 초반에 술맛을 스스로 깨쳤습니다 ㅋㅋㅋ 





이 만화의 장점 세 번째는 대다수의 독자들이 소녀의 모습으로 기억하는 앤이 어른이 되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빨강머리 앤> 그 이후의 이야기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소설로는 <빨강머리 앤>과 <에이번리의 앤>밖에 읽지 못했기 때문에 에이번리 섬을 떠난 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지 못하다가 만화 <앤의 사랑>을 보고 그다음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교사를 그만두고 대학에 진학한 앤은 작가의 꿈을 가지게 되는데 보내는 원고마다 번번이 퇴짜 맞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앤이 원고를 보낸 적 없는 출판사에서 상금을 보내오는데, 알고 보니 다이애나가 앤의 원고 일부를 살짝 바꿔 투고했던 것이다(다이애나가 현대에 태어났으면 마케터나 홍보 전문가로 성공했을 것 같다 ㅋㅋㅋ). 


앤은 또한 대학에서 필리파 고든이라는 새 친구를 사귀고 로이 가드너라는 새 연인을 맞는다. 필리파 고든은 첫인상이 별로였지만 알고 보니 착하고 속정도 깊은 친구였고, 로이 가드너는 첫 만남부터 앤을 사로잡았지만 알고 보니 앤에 대한 사랑이 별로 깊지 않은 남자였다. 결국 앤은 길버트만이 자신의 진짜 사랑임을 깨닫는데, 그렇다고 해서 앤과 길버트가 맺어지는 건 아니다(대체 언제쯤 ㅠㅠ). 





<빨강머리 앤>을 비롯해 <플란다스의 개>, <톰 소여의 모험>, <소공녀 세라>, <작은 아씨들>, <키다리 아저씨> 등 해외 아동문학이 원작인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시리즈 <세계명작극장>을 기억하는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이벤트가 있다. 용산역 아이파크몰 팝콘D스퀘어에서 열리는 <세계명작극장전>이다. 지난 주말에 다녀왔는데 추억의 만화를 오랜만에 보니 얼마나 반갑던지. 미야자키 하야오, 다카하타 이사오 등의 원화도 볼 수 있고, 세계명작극장 시리즈의 역대 만화도 알 수 있어 좋았다. <빨강머리 앤>의 초반에 잠깐 언급되는 앤의 어린 시절을 길게 쓴 소설 <빨강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꼬꼬마 앤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조만간 봐야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18-04-03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앤이 길버트를 좋아하기는 해도 그런 마음을 잘 모르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래도 나중에는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살지요 예전에 소설 다 보기는 했는데 그때 앤이 조금 좋아한 다른 사람이 있었는지 그건 생각 안 나요 드라마에는 그런 모습이 있기도 하지만(그것도 아이가 있는 사람)... 거기에는 원작에 없는 것도 나오더군요 길버트가 전쟁에 나가고 앤이 찾아나서는... 앤은 간호사로 가고 길버트 만납니다 그건 예전에 EBS에서 봤습니다 소설에서는 앤 아들이 전쟁에 갔다 돌아와요 그 부분에서 감동스러운 건 아들을 기다리는 게 개라는 거예요 역에서... 개가 오랫동안 기다렸던 것 같아요

예전에 드라마를 어디에서 만들었는지 찾아보니 그건 나오지 않고, 2017년에 만든 드라마가 나오는군요


희선

키치 2018-04-03 07:30   좋아요 0 | URL
저는 소설은 <에이번리의 앤>까지밖에 읽지 않았는데 이 만화 시리즈 중에 <앤의 사랑>을 보니까 앤이 대학에서 로이 가드너라는 멋진 남자를 사귀었더라고요. 앤이 길버트하고만 사귄 줄 알았는데, 길버트 말고 다른 남자도 만난 적 있고 여러 경험 끝에 최종적으로 택한 남자가 길버트란 걸 알고 나니 앤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사실 전 이 작품 볼 때 앤이 만나는 남자들보다도 앤의 성장에 많은 자극을 주는 여자 캐릭터들이 흥미롭더라고요. 어쩜 그렇게 멋있고 당당한 여자들을 잘 골라서 만나는지 ㅎㅎ 말씀하신 전쟁 시기의 앤 이야기도 기대됩니다. 덧글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성학자 정희진의 신간이다. 학문과 글쓰기에만 조예가 깊은 줄 알았더니, 어린 시절 부모님이 주무시는 안방에서 음량을 음소거에 가깝게 해놓고 <토요명화>나 <주말의 명화>를 본 시네마 키드라고. 그때부터 영화는 무조건 혼자서 보는 게 습관이 되었고, 영화를 보고 나면 가급적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바로 집에 돌아와 감상을 글로 적었다. 덕분에 영화에 관한 글이 엄청나게 쌓였고, 그중 28편을 갈무리해 만든 책이 <혼자서 본 영화>다. 


역사학자는 역사 영화만 보고 과학자는 과학 영화만 보라는 법 없듯이, 여성학자인 저자 또한 이른바 '여성 영화'만 보는 건 아니다. <디 아워스>, <문 라이트>, <타인의 삶>, <밀양> 같은 여성주의, 평화, 인권 연구자로서 당연히 봐야 할 법한 영화도 보지만 <맘마 미아!>, <외출>, <YMCA 야구단>,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웰컴 투 동막골>, <머니볼> 같은 대중 영화도 보고, <강철비>, <의형제>, <용의자>, <공조> 같은 이른바 '알탕 영화'도 본다. 


여성학자이기 때문에 영화를 볼 때 일반 관객들은 눈여겨보지 않는 장면을 눈여겨보거나, 일반 평론가들과는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강철비>, <의형제>, <용의자>, <공조> 같은 영화는 북한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라서 특별한 게 아니라 '한국 영화의 주요 소비 계층인 20~30대 여성과 북한 남성의 가상 로맨스'라는 점이 특별하다. 이는 남한 남성에게 실망한 남한 여성이 정우성, 강동원, 공유, 현빈 등이 연기하는 북한 남성을 보면서 대리만족하게 하는, '북한 남성을 대상화'하는 영화들이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대한 해석도 재미있다. 영화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하는 여성 상사가 앤 해서웨이가 연기하는 여성 비서에게 시키는 일은 따지고 보면 대부분의 남성 상사들이 자신의 아내에게 시키는 일이다(옷 가져와라, 커피 사와라, 자식 뒷바라지하라 등등). 여성 리더들은 '아내'가 없기 때문에 비서에게 아내 역할을 대신 수행하게 한다. "여성이라면 결혼하지 않았어야 가능한 성공이, 남성은 결혼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나도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봤는데, 나는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나도 이렇게 섬세하게 영화를 보고 느꼈으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른의 반격 - 2017년 제5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몬드>를 쓴 손원평 작가의 2017년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이다. <아몬드>가 선천적인 이유로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일반적이지 않은' 소년의 이야기라면, <서른의 반격>은 별 볼 일 없는 대학을 나와 별 볼 일 없는 직장에서 별 볼 일 없는 일상을 보내는 '일반적인' 청년의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은 1988년생 김지혜. DM 그룹 산하의 아카데미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나이도 나보다 어리고 직업도 다르지만 지혜의 일상에 공감할 수 있었던 건 나 역시 아카데미 비슷한 교육 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지혜처럼 교육 프로그램 기획이나 마케팅 업무를 배우길 기대하고 인턴으로 들어갔지만, 막상 출근하면 수강생들 오기 전에 책상과 의자 정리하고 칠판 닦고 정수기 물통 채워놓고. 직원들 식사 주문하고 스타킹, 담배 심부름하러 뛰어다니다가 결국 반 년도 못 채우고 그만뒀다.


의자라면 지긋지긋하다는 지혜의 말이 어찌나 내 마음 같던지. 다만 지혜에게는 동갑내기 신입 인턴 규옥과 무명 시나리오 작가 무인, 인터넷 개인방송을 하는 남은이 있고, 지혜는 이들과 손잡고 부당한 세상에 경종을 울리는 사소한 '반격'을 시도한다. 이를테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주겠다고 약속해놓고 1년이 가도록 소식이 없는 상사의 책상에 장난 쪽지를 놓는 것이다. '방귀 좀 뀌지 마. 트림할 때 입 좀 다물어. 머리는 화장실 가서 긁어. 이 가엾은 돼지님아!' 


어찌 보면 유치하다 못해 치졸하게 느껴지는 장난인데 이게 의외로 효과가 있다. 내친김에 지혜와 동지들은 또 다른 반격을 시도하고, 이런 식으로 지혜는 답답한 일상을 버텨낼 힘을 얻는다. 반격이라고 하기에는 강도가 약한 감이 없지 않지만, 이조차도 상상해본 적 없는 (쫄보인) 나로서는 지혜와 동지들의 반격이 그저 용감해 보일 뿐이다. 그나저나 나이 먹고 '방귀 좀 뀌지 마. 트림할 때 입 좀 다물어. 머리는 화장실 가서 긁어. 이 가엾은 돼지님아!' 이런 쪽지를 받는 어른은 되지 맙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모요는 아직 아흔 살
무레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월
평점 :
절판


무레 요코의 다른 작품들에는 못 미치지만, 이런 노년, 이런 할머니상을 소개한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작품인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크리파이스
곤도 후미에 지음, 권영주 옮김 / 시공사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서울 신촌에 미스터리 전문 서점 '미스터리 유니온'이 있다. 이곳의 주인 유수영 씨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이 곤도 후미에의 <새크리파이스>이다. 저자 이름도, 책 제목도 낯설어 책 소개 글을 찾아보니 저자는 1993년에 데뷔해 가부키 시리즈, 사루와카초 사건 수첩 시리즈, 음식 시리즈 등을 썼고, <새크리파이스>는 2007년 서점 대상 2위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런 작가, 이런 작품을 몰랐다니. 어디 가서 일본 소설 '쫌' 읽는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 


이야기는 한 사람이 도로 위로 피를 흘리며 쓰러져 의식을 잃고 있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가르쳐줘. 어디서부터 다시 하면 이런 결과를 피할 수 있는지. 후회하지 않아도 되는지." 장면은 바뀌어 한 청년이 신나게 자전거 페달을 밟는 모습이 나온다. 청년의 이름은 시라이시 지카우. 고교 시절까지 장래가 촉망되는 육상 선수로 활약했지만, 뜻하지 않은 사건으로 인해 육상을 그만두고 로드 레이스 선수로 전향했다. 


선수 개개인이 각자의 기량을 겨루는 육상과 달리, 로드 레이스는 팀원 간의 협력과 조화가 중시되는 종목이다. 에이스의 우승을 위해서라면 동료 선수들이 자신의 성적을 포기하고 서포트를 하는 것이 암묵적인 룰이다. 개인 간의 경쟁에 질려있던 시라이시는 로드 레이스의 이런 문화가 싫지 않다. 에이스의 승리를 위해 자신의 성적을 포기하고 몸까지 바쳐가며 서포트하라는 팀의 요구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물론 모든 선수가 시라이시처럼 에이스의 승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문화를 납득하는 건 아니다. 시라이시가 속한 팀 오지의 차세대 에이스 이바는 자신의 승리를 위해 달리는 선수이고, 이 때문에 팀 내에서 공공연한 질타를 받는다. 현재 팀 오지의 에이스인 이시오 선배와 차세대 에이스인 이바의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일본에서 열린 큰 로드 레이스 대회에서 뜻밖에 시라이시가 주목을 받게 되고 팀 내 분위기는 점점 더 어수선해진다. 


겉보기엔 로드 레이스 선수들의 경쟁과 대결을 그린 소설이지만 본질은 영락없는 추리소설이다. 도입부에 (살인) 사건이 등장하고, 곧바로 탐정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나오고, 몇 명의 용의자를 제시한 다음, 추리에 추리를 거듭한 끝에 진짜 범인을 잡아내는 구성을 취한다. 


종래의 추리소설과 달리 선과 악, 정의와 불의가 아닌 개인과 단체, 천재성과 근성, 조화와 희생이라는 가치에 주목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일반적으로 살인 사건의 동기는 머니 아니면 섹스라고 하는데 희생(을 비롯한 열등감, 자괴감, 모욕감 등)도 여기에 들어갈 만하지 않을까('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라는 명령을 한 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아마 한국인이라면 다 들어봤을 듯), 거기에 굴복해야 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들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