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엘리트의 탄생
임미진 외 4인 지음 / 북바이퍼블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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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세계 최대의 화장품 기업이 한국의 모 여성 의류 온라인 쇼핑몰의 지분의 70%를 약 4000억 원에 사겠다고 나서서 화제를 모았다. 이 온라인 쇼핑몰의 대표는 2005년 스물두 살 때 자신이 입으려고 동대문에서 산 옷을 인터넷으로 팔기 시작했고, 그렇게 시작한 사업은 13년 만에 1조 원 대의 규모로 불어났다. 13년을 하루 종일 책상 앞에서 일해도 1조는커녕 1억도 수중에 넣기 힘든 화이트칼라의 현실에 비하면 대단한 성공이다.


'화이트칼라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뉴칼라의 시대다.' 북바이퍼블리에서 펴낸 <새로운 엘리트의 탄생>을 읽으며 다시 한 번 강하게 확신했다. 이 책은 로봇과 인공지능이 이끄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존의 화이트칼라를 비롯한 엘리트 집단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경고하며, 새로운 가치관과 기술로 무장한 새로운 엘리트 집단인 '뉴칼라'가 부상할 것을 예고한다. 


뉴칼라는 미국 IBM의 지니 로메티 회장이 2017년 초에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 소개한 용어로 '디지털 기술을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이들'을 의미한다. 뉴칼라의 조건은 크게 다섯 가지다. 기술이 바꿀 미래를 내다보는가. 디지털 리터러시가 있는가. 세상을 바꾸고 싶은가. 끊임없이 변화하는가. 손잡고 일하는 법을 알고 있는가. 이 책에는 뉴칼라의 다섯 가지 조건이 부상하게 된 경제, 기술, 산업적 배경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고, 뉴칼라의 다섯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한국의 뉴칼라 8인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왜 이렇게 치킨집이 많을까요. 결국 같은 얘기로 다시 돌아가요. 기업에서 사람들을 성장시키지 못했기 때문이죠. 전문성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경력을 살린 재취업이 불가능해요. 은행 지점장을 하다가 아파트 경비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그렇잖아요. 지점장을 할 때까지 쌓은 역량이 없었다는 얘기죠. (148-9쪽)


이 책에 참여한 한국의 뉴칼라 8인은 비바리퍼블리카 이승건 대표, 한국신용데이터 김동호 대표, 아트벤처스 문효은 대표, 알토스벤처스 박희은 대표, 삼성SDS 인공지능개발팀 이치훈, 서울와이즈재활요양병원 김치원, 셀레브 임상훈 대표, 1인 마케터 김태용 등이다. 


간편 송금 서비스 '토스(TOSS)'를 만든 비바리퍼블리카 이승건 대표는 치과 의사 출신이다. 안정된 전문직을 버리고 험난한 스타트업 창업에 뛰어든 건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비전과 모바일 혁명에 참여하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 이런 시대에 의사나 변호사 같은 직업이 높은 수익을 보장하고 평생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믿는 건 어리석다. 스스로 경쟁에 뛰어들고 부지런히 역량을 쌓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시대가 온다. 


아트벤처스의 문효은 대표는 불문과 출신으로 드물게 IT에 뛰어들었다. 불문과 출신의 문과생이 IT 업종에서 일할 만한 자리가 없어서 창업을 택했고, 첫 번째 창업이 두 번째 창업으로, 두 번째 창업이 세 번째 창업으로 이어져 현재는 IT와 문화예술을 결합한 아트토이 사업을 하고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요. 축구 시합을 준비했는데 막상 경기를 하러 나가 보니 야구 경기가 열리는 경우와 같아요." 문 대표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코딩 역시 얼마 후엔 죽은 언어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새로운 기술을 남들보다 빨리 습득하는 것은 좋지만, 그 또한 변화하고 사라지고 대체될 수 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된다. 


일단 우리 사무실에는 늘 가요 인기순위 100곡을 틀어 둬요. 거기서 시작한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면 최소 100곡은 늘 들어야 해요. 당장은 이해되지 않아도 그게 나중에 결과물로 나오니까요. 저는 무조건 많이 봐요. 패션, 디자인, 인테리어 잡지, 각종 정보, 시사 정보까지 닥치는 대로 찾아 봐요.` (283쪽)


동영상 콘텐츠 제작사 셀레브의 임상훈 대표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뉴칼라의 조건 중 하나로 '최신 트렌드에 밝을 것'을 든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면 유행하는 패션, 디자인, 인테리어 등은 물론이고 최신 가요 인기순위 100 정도는 항상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최신 트렌드와 정보 습득은 임 대표 외에 다른 인터뷰이들도 입을 모아 강조하는 요소다. 인터넷, SNS만 하지 말고 자신의 관심 분야에 해당하는 책을 꾸준히 찾아 읽으라는 조언도 여러 번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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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편 전쟁 - 회사에서 유난히 인정받는 그 사람의 사소한 습관
다카기 고지 지음, 정지영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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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일하러 오는 곳이지 친목을 다지는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업무 실적을 올리고 원하는 직책이나 업무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내편'이 꼭 필요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 나한테 오게끔 하는 권한을 가진 건 상사이지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편 전쟁>은 사내 인맥의 고수가 되어 회사 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 다카기 고지는 일본의 대기업 리크루트에서 6년 연속 톱 세일즈를 기록하며 회사 역사에 남을 전설의 세일즈맨으로 이름을 올렸다. 저자는 자신이 회사 내에서 뛰어난 실적을 거둘 수 있었던 비결로 '내편 전략'을 든다. 상사뿐 아니라 동료, 부하 직원까지 자신의 아군으로 끌어들이면 업무 성과를 늘리거나 원하는 업무나 자리를 손에 넣기가 아주 쉬워진다. 


이 책에는 저자가 직접 실천해 효과를 본 내편 전략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다. 말솜씨가 없어도 약간의 질문이나 잡담으로 내편을 늘리는 기술. 협력을 이끌어내는 부탁의 기술, 영향력 강한 핵심 인물을 아군으로 끌어들이는 기술, 능숙하게 자신을 알리는 퍼스널 브랜딩 기술, 내편 전략이 작동하는 구체적인 사례, 내편 전략의 달인이 되는 힌트 등 전략의 내용과 방법도 다양하다. 


말솜씨가 없는 사람은 자신이 직접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대신 상대가 이야기하게 만드는 전략을 사용해보는 것이 어떨까. "잘 지내?", "점심 어디에서 먹었어?" 같은 사소한 질문도 괜찮다. 상대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을 때는 귀찮아하지 말고 끝까지 경청해주는 것이 좋다. 잠자코 들어주는 것만으로 상대의 호감을 살 수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게 된다. 상대에게 가정 환경이나 학력 같은 민감한 사항이나 연애, 결혼 여부, 자식 유무 등을 묻는 것은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으므로 삼가는 것이 좋다. 


상대에게 부탁을 하거나 도움을 청할 때는 "당신이니까 부탁하고 싶다."라는 어필을 하는 것이 좋다. "이 분야에선 역시 00씨 만한 분이 없죠.", "이 분야에 대해 생각했을 때 맨 처음에 떠오른 것이 00씨였습니다." 같은 말로 상대의 장점을 확실히 높게 평가하고 자신감을 자극하면 상대가 부탁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아지고 기대에 부응하고자 하는 책임감도 가진다. 단, 부탁을 지나치게 자주 하거나 부탁을 한 다음 책임을 피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업무가 잘 되었을 때에는 공을 함께 나누는 것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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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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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로 스웨덴은 물론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를 강타한 작가 프레드릭 배크만의 신작이 나왔다. 제목은 <베어타운>. 깊은 산속에 있고 어두운 숲이 있고 눈이 내렸다 하면 어깨까지 쌓이는, 이름 그대로 곰이 출몰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베어타운이라는 마을이 배경이다. 베어타운에는 한때 많은 인구가 살았지만, 산업이 쇠퇴하고 일자리가 급감한 지금은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이 줄줄이 떠나서 빈집이 늘고 마을 분위기도 침체되었다. 


베어타운 사람들의 유일한 희망은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제법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베어타운 아이스하키 청소년팀이다. 페테르 단장과 다비드 코치가 이끄는 현 청소년팀은 역대 최고 수준의 기량을 가지고 있어 베어타운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아이스하키 천재로 불리는 케빈과 그에 못지않은 환상적인 기량을 갖춘 벤야민의 콤비 플레이는 언제나 팀을 승리로 이끈다. 여기에 이민자 가정 출신의 날쌘돌이 아맛까지 더해져 베어타운 사람들의 기대는 점점 더 커진다. 


그런데 삼월 초의 어느 날 밤. 베어타운 아이스하키 청소년팀의 운명을 바꿀 '대사건'이 일어나고, 이를 알게 된 베어타운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싶은 거짓과 알고 싶지 않은 진실 사이에서 전자를 택하는 우를 범한다. 베어타운의 미래를 짊어지고 있던 아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의 더러운 민낯을 보게 되고, 그동안 자신들을 감싸고 있었고 지켜주었던 명예니 영광이니 정의니 우정이니 하는 말들도 모두 다 빈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술과 마리화나에 대해 물을 것이다. 영원히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바닥 모를 공포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평생 벗어나지 못할, 전축과 포스터가 있는 이 방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것이다. 어딘가로 굴러간 블라우스 단추와 평생 그녀를 따라다닐 두려움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깔린 채 소리 없이 흐느끼고 그의 손으로 입을 틀어막힌 채 침묵의 비명을 지른다. (245쪽) 


<베어타운>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오베라는 남자>와 마찬가지로 유쾌한 분위기의 소설이 아닐까 멋대로 짐작했다. 페테르와 그의 딸 마야의 가정을 보아도, 케빈의 가정을 보아도, 벤야민의 가정을 보아도, 마야의 친구 아나의 가정을 보아도, 마야를 짝사랑하는 아맛의 가정을 보아도 가족 구성원의 상실이나 부모의 무관심, 학대, 폭력 같은 어두운 그림자가 일관되게 보였지만, 이는 어느 가정에나 있는 어두운 일면에 불과할 뿐이고 훗날 커다란 재앙과도 같은 사건으로 확대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더욱이 이들을 뒤흔드는 사건의 피해자는 어느 사회 공동체 내에서든 가장 약하고 힘없는 존재인 어린 소녀다. 누가 보아도 가해자가 피해자보다 훨씬 힘도 세고 공동체 내에서 가지는 지위도 높은데, 그러니 가해자가 피해자를 겁박하는 게 피해자가 가해자를 유혹하는 것보다 훨씬 쉬운 일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끔찍한 일을 당한 피해자의 편을 들지 않고 끔찍한 일을 저지른 가해자에게 동조한다.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으로부터는 눈을 돌리고, 어떻게 하면 가해자에게 빌붙어 떨어지는 콩고물을 받아먹을까 궁리한다(가해자에게 동조하는 사람도 가해자입니다). 


이 아이들을 키운 장본인이 하키가 아니라 당신들이라는 걸 언제쯤 인정할래? 자기들이 멍청한 짓을 저질러놓고 자기들이 창조한 쓰레기 탓으로 돌리는 남자들은 어딜 가나 있다니까? 종교 때문에 전쟁이 벌어진다는 둥, 총기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는 둥, 다 똑같은 개소리잖아! (중략) 염병할 남자들 같으니라고! 당신들이 문제야! 종교는 싸우지 않고 총기는 죽이지 않아. 그리고 씨발, 똑바로 알아두라고. 하키는 지금까지 아무도 강간한 적이 없어! 그런데 누가 그러는지 알아? 누가 싸우고 죽이고 강간하는지 알아? (445-6쪽) 


지난밤에 앉은 자리에서(정확히는 침대에 누워서) 560여 쪽을 한달음에 읽고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서 조만간 한 번 더 읽어볼 생각이다. 케빈이 프레드릭 배크만의 전작 <브릿마리 여기 있다>에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그 책도 읽어봐야지. <베어타운>을 읽고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등장인물인(적어도 나는 그렇다 ^^) 벤야민의 이야기는 이대로 끝일까, 아니면 역자의 예상대로 후속편에도 등장할까.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을 읽으며 올봄을 보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절대 슬프지 않습니다! 절대로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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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흉기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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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 언제부터인가 작품 자체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신작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그의 작품을 읽었는데 모처럼 책을 손에서 떼기 힘들 정도로 흥미진진한 작품을 만났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오랜만에 명성에 걸맞은 신작을 쓴 줄 알았더니 출간 연도가 1992년. 이거 실화냐...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를 지금의 인기 작가 반열에 올려놓은 <비밀>이나 <백야행>, <용의자 X의 헌신> 등이 나오기 수년 전에 쓰인 소설임을 감안하면 대단한 완성도다. 


소설은 한 여성이 남성의 지도에 따라 열심히 트레이닝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트레이닝이 끝날 때쯤 건물 안으로 낯선 사람이 들어왔다는 신호가 울리고, 남자는 여자를 방 안에 가둔 채 밖으로 나간다. 장면이 바뀌고 세 남자와 한 여자가 어두운 밤중에 한 건물 안으로 침입하는 모습이 나온다. 운동선수 출신인지, 그 어떤 기구나 장비의 도움을 받지 않고 높은 벽을 타고 건물 안에 들어온 네 사람은 때마침 등장한 키 작은 남자를 총으로 쏘고 건물에 불을 지른 뒤 자리를 벗어난다. 


한편, 화재인 줄 알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총상을 입은 시체를 보고 수사에 착수한다. 한 순경이 화재가 일어난 건물 옆에 튼튼해 보이는 창고가 있어서 무심코 들어갔다가 살해를 당하는데, 경찰은 사건 현장 감식을 통해 순경을 살해한 자가 이 창고에 갇혀서 훈련을 받고 있던 의문의 육상 선수이자 인간의 신체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탄생한 괴물 같은 존재, 즉 '타란툴라'임을 알아낸다. 


이야기는 하룻밤 사이에 자신을 일본에 데려온 스승을 잃고 혼자가 된 타란툴라가 스승의 복수를 위해 스승을 죽인 범인들을 찾아 나서는 과정, 타란툴라가 자신들을 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범인들이 타란툴라를 피해 도망치는 과정, 경찰이 이들의 관계를 파악하면서 이들의 행방을 찾는 과정, 이렇게 총 세 가지 갈래로 진행된다. 


이 중에 타란툴라의 이야기가 단연 압권이다. 여자인데도 190cm가 넘는 장신이며 오랜 기간 동안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받았고 스승으로부터 '악마의 실험'까지 받아서 가히 초인적인 능력을 지니게 된 타란툴라는 자전거 하나로 야마나시 현에서 도쿄까지 가는 정도는 가뿐하고, 사람 하나쯤은 손바닥 하나로 죽일 수 있다. 영화로 만들어져도 손색이 없는 작품인데 영화화되지 않은 걸 보면 타란툴라의 연기를 할 만한 배우를 찾기 힘들어서가 아닐까(영화화가 힘들면 애니메이션화는 어떨지). 


성적만 중시하는 엘리트 체육 문화와 이를 둘러싼 인간의 욕망을 자세하게 묘사한 점도 인상적이다. 국제 대회 성적과 메달 개수에만 집착하고, 정작 선수 개개인의 인권이나 생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히려 인권을 억압하고 말살하는 문화는 한국만의 것이 아닌가 보다. 올림픽 같은 큰 국제 대회가 있을 때마다 논란이 되는 도핑 문제를 언급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남을 짓밟고 올라가는 것만 가르치고 남과 더불어 사는 것에는 무관심한 분야가 어디 스포츠뿐일까. 잘못된 경쟁, 어긋난 사랑, 비뚤어진 열정의 결말을 보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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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 10인의 과학자들이 뽑은 내 마음을 뒤흔든 과학책
강양구 외 지음 / 바틀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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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이 이렇게 글을 잘 쓰면 문과 출신은 어쩌란 말인가요!'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을 읽으며 여러 번 탄식했다. 이 책은 강양구, 김범준, 김상욱, 송기원, 이강환, 이은희, 이정모, 이지유, 정경숙, 황정아 등 열 명의 과학자 및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한 해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과학과 비과학 분야의 책을 각각 한 권씩 선택해 쓴 서평을 모았다. 20편의 서평이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좋은지. 이렇게 글솜씨 좋은 과학자들이 많으니 한국 과학계의 미래가 밝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문과라는 핑계로 과학 기본서 한 번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내가 부끄러웠다(반성합니다 ㅠㅠ). 


지식 큐레이터 강양구는 다이앤 애커먼의 <휴먼 에이지>를 소개하며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예측이 판치는 이 시대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에 대한 기대와 긍정적인 자세를 잃어선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한다. 서울시립과학관 관장 이정모는 일본의 농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가 쓴 <수컷들의 육아분투기>를 소개하며 생태계에서는 강한 수컷일수록 육아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인간과 달리 암컷이 독박육아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강조한다(그러면서 저자 자신의 반성문을 적어내렸는데 참으로 눈물겹다). 


'하리하라'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과학 커뮤니케이터 이은희는 과학밖에 모르는 과학자와 과학에 무지한 비과학자 사이의 간극을 메울 수 있는 책으로 데이비드 헬펀드의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을 소개한다. "역사를 모르고 정치에 무관심하며 예술을 즐기지 않으면 '교양 없다'고 손가락질하지만, 물리적 법칙을 모르고 화학 반응에 무관심하고 진화에 대해 부정해도 다들 그러려니 한다"는 문장에 가슴이 뜨끔.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황정아가 쓴 <로켓 걸스> 서평을 읽으면서는 여성 과학자들이 겪는 편견과 고난을 생각하며 눈물을 찔끔 흘렸다(이 책 읽으며 많이 울었다. <과학자를 '울린' 과학책> 아니랄까 봐...). 





과학자가 읽은 비과학 분야의 책은 <섬에 있는 서점>, <미스 함무라비>,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바깥은 여름>, <냉정한 이타주의자>, <파크애비뉴의 영장류>,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달리기의 맛>, <현대미술은 처음인데요>, <힐빌리의 노래> 등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픽션부터 묵직한 울림이 있는 논픽션, 사회과학, 미술 교양서까지 분야와 주제가 다양하다. 불우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회한, 후학을 가르치고 연구하며 겪는 고충, 대한민국에서 워킹맘으로 사는 일의 어려움,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추모 등 책을 고른 이유도 다채롭다. 


과학 분야의 서평을 읽을 때는 필자의 사회적 얼굴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면, 비과학 분야의 서평을 읽을 때는 필자의 민낯, 맨얼굴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다들 이렇게 생기셨군요 ^^). 과학 외에 다른 분야의 전공자들을 모아 놓고 같은 기획을 시도하면 어떤 책을 고를지 궁금하다( <수학자를 울린 수학책>, <경제학자를 울린 경제학책> 등 다음 시리즈를 기대해봅니다). 쉽게 읽는 과학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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