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에게 배우는 네 글자
이선 지음 / 궁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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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출입이 어려운 요즘. 가까이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식물을 키우며 위로와 치유의 힘을 얻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비단 어제오늘만의 일일까. 예부터 선조들은 꽃을 가꾸고 나무를 돌보며 삶에 거름이 되고 양분이 되는 지혜를 얻었다. 이 책 <식물에게 배우는 네 글자>에 바로 그러한 내용이 담겨있다. 저자 이선은 독일 프라이부르크대학교에서 식물생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전통조경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책은 저자가 오랫동안 식물을 접하며 배운 식물이 살아가는 방식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의 본문은 '서로 사랑하기', '모두 함께 살기', '끝내 살아남기', '다시 돌아보기' 이렇게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챕터에는 각 주제에 해당하는 사자성어와 그에 관한 식물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모두 함께 살기'이다. 식물 하면 심어진 자리에 그대로 자라서 주변과 조화하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미지'가 있다. 실제로는 어떨까. 노지에서 자라든, 집안 베란다에서 자라든, 한곳에 밀집해 자라는 식물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햇빛과 양분을 차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환경에 맞게 자신의 '몸'을 바꾸면서까지 '적자생존'을 도모한다. 이는 인간이 사는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식물들도 '성격'이 제각각이라서, 어떤 식물들은 제 땅에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하게 한다. 호두나무, 소나무, 유칼립투스, 가죽나무, 단풍나무, 양버즘나무 등이 대표적이다(117쪽). 그렇다고 이런 나무들만 땅에 뿌리를 내리고 '각자도생'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보도나 아스팔트 틈 같은 곳을 뚫고 자라는 민들레, 질경이, 중대가리풀 같은 '고진감래'형 식물들이 그렇다. 바위틈에 자라는 소나무나 앙코르와트의 테트라멜레스 등은 작은 뿌리들이 죽지 않고 버텨서 커다란 바위를 뚫고 전 세계인이 찾는 유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살아있는 '수적석천'의 예를 보면서, 우리도 작은 힘이나마 모아보는 것은 어떨까. 


서문에서 저자는 "아무리 인간세상과 식물세상이 흡사하다 해도 '식물국회', '식물정권', '식물정당' 등의 표현은 달갑지 않"다고 밝힌다. 정말 그렇다. 제 기능을 못하는 국회나 정권, 정당을 비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지만, 그것들을 식물에 비유하는 것은 식물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를 드러내는 것이자 식물에 대한 모욕이다. 인간은 식물로부터 배울 수밖에 없고, 배워야 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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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 - 삶의 지도를 확장하는 배움의 기록
이길보라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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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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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지음, 김은령 옮김 / 김영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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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랩 걸>의 저자 호프 자런의 신간이다. 전작이 저자 자신의 삶과 자연의 관계를 유려하게 엮어낸 일종의 자전적 에세이였다면, 이번 신작은 저자가 살고 있고 앞으로도 살아갈 지구 환경의 미래를 걱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전작만큼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잠깐 멈추게 되는 대목마다 그 의미를 곱씹으며 그동안의 행동을 반성하거나 앞으로의 변화를 계획하면 좋을 것 같다. 


이야기는 2009년 저자가 당시 재직하던 대학의 학장으로부터 기후변화에 관한 수업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요청을 받고 수업을 준비하면서 저자는 깜짝 놀랄 만한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뉴스를 통해 기후 위기나 자연 파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직접 데이터를 수집해보고 나서야 그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를테면 오늘날 인간이 10억 톤의 곡물을 먹어 소비하는 동안 또 다른 10억 톤의 곡물이 동물의 먹이로 소비되고 있으며, 그렇게 먹여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1억 톤의 고기와 3억 톤의 분뇨라든가. 1킬로그램의 연어를 얻으려면 3킬로그램의 먹이가 필요하고, 3킬로그램의 먹이를 얻으려면 15킬로그램의 물고기를 갈아야 한다든가. 


인류가 열심히 생산한 식량의 40퍼센트가 쓰레기로 버려진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알게 되었다. 매일 거의 10억 명이 배를 곯는 동안 또 다른 10억 명은 음식을 버린다. 음식이 낭비되는 것도 문제지만, 결국 쓰레기로 버려질 음식을 생산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동과 에너지가 허비되는 것도 문제다. 음식만이 아니다. 인류는 이미 다 같이 충분히 먹고 살 만큼의 자원을 생산하고 있지만, 지구상의 어떤 지역에는 넘치게 분배되고 어떤 지역에는 부족하게 분배되고 있다. 결국 문제는 자원의 생산이 아니라 자원의 분배이며, 분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치인데, 정치적으로 힘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너무 오랫동안 풍요롭게 살아서 남들이 어떻게 살든 지구가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고, 당장 오늘 먹을 것이 없고 해수면이 상승해서 살 곳을 잃을 처지에 놓은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힘이 없다. 


책의 후반부에 저자는 유명 햄버거 체인점 매장을 가진 외과 의사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몸을 고치는 의사가 몸에 안 좋은 음식을 판매하는 매장을 소유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은 일일까. 매일 하는 일의 가치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대상에 투자하는 그의 삶은 만족스럽고 행복할까. 이처럼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자기 자신이 잡히는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할 때 혹은 어떤 기업에 투자할 때 더욱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 것들을 일일이 따지는 삶은 그렇게 하지 않는 삶보다 번거롭고 불편하겠지만, 훨씬 더 많은 생명체들에게 이로울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우리 자신이 가장 행복해지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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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디 - 우리 몸 안내서
빌 브라이슨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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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을수록 몸에 대해 알고 싶다는 열망이 강해지는 것 같다. 이 책도 그래서 읽었다(저자가 빌 브라이슨이라서 산 것도 맞다). 이 책의 전작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로, 우주와 그 안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의 과학을 탐사한 저자는 시선을 안으로 돌려서 인체에 관한 책을 썼다고 한다. 유전자에서 시작해 피부와 털, 미생물, 뇌, 머리, 입과 목, 심장과 피, 호르몬, 뼈, 운동, 균형, 면역계, 심호흡, 음식, 소화, 잠 등등 인체에 관한 '거의 모든 지식'을 다룬 책이라는 점에서 한 번쯤 읽어볼 만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지식이 아주 많다. 탈모는 '디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이라는 호르몬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확실한 대머리의 치료법 중 단 하나는 거세다. 우리는 흔히 '오감'이라는 말을 사용하지만, 실제로 인간은 5개 이상의 감각을 가지고 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외에 균형, 가속과 감속, 공간적인 위치, 시간의 경과, 식욕 등도 감각에 속한다. 이 밖에 알려진 것만 해도 33가지나 된다.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과학 분야에서도 여성의 성취와 업적은 평가절하 되어온 경향이 있다. X염색체 외에 Y염색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아낸 건 미국의 네티 스티븐스라는 생물학자다. 스티븐스는 이 밖에도 여성이 남성보다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는 통념을 반박하는 연구를 많이 했다. 스티븐스가 여성이 아니고 좀 더 오래 살았다면, 비슷한 시기에 Y염색체를 발견한 에드먼드 비처 윌슨이라는 '남성' 과학자가 그 영예를 다 누리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Y염색체는 유전자가 70개뿐이다. 다른 염색체들에는 2,000개까지도 유전자가 들어 있다. Y염색체는 1억 6천만 년 동안 줄곧 크기가 줄어들었다. 현재의 속도로 볼 때 약 460만 년 뒤에는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엄밀히 말해서 성행위를 통해 '재생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재조합'을 한다. 성행위를 하지 않고 종족을 번식하는 생물종은 무수히 많으며, 인간 또한 미래에는 그러한 방식을 따를 수도 있다. 


저자는 의학계에서 남성과 여성이 여러 가지 중요한 측면에서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무시하거나 간과해 왔음을 지적한다. 남성은 파킨슨병에 더 많이 걸리고, 우울증에 걸리는 비율은 낮지만 자살률은 높고, 감염에 취약하다. 여성은 뼈가 더 일찍 약해지고, 알츠하이머에 2배 더 많이 걸리며, 알코올 대사 양상이 달라서 술에 더 쉽게 취한다. 문제는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의사와 제약업계다. 심근경색이 일어났을 때 여성은 남성보다 복통과 욕지기를 느낄 확률이 더 높아 오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남성은 여성의 몸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게 많은 것에 비해 여성의 몸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지하다. 음문, 음핵, 음순 등 여성의 생식기에 관해 명확히 알지 못하고, 생리와 출산 등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도 없다. 과거에 비하면 출산 시 산모의 사망률이 많이 떨어졌지만, 오늘날에도 출산 시에 사망하는 여성의 수는 10만 명당 오스트레일리아는 5.1명, 영국은 8.2명, 덴마크는 9.4명, 프랑스는 10.0명이다. 2013년 유엔인구기금(UNFPA)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산모 사망률은 10만 명당 16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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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곤란한 감정 - 어느 내향적인 사회학도의 섬세한 감정 읽기
김신식 지음 / 프시케의숲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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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정글에 버려져 동물들의 손에 자란 모글리와 같은 처지가 아닌 한, 대부분의 인간은 크고 작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며 성장하고 살아간다. 사회학자 김신식의 <다소 곤란한 감정>은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감정을 사회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저자가 연구하는 감정사회학은 이름 그대로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다양한 감정, 마음, 심리 등을 사회학의 관점에서 채집하고 분석하는 학문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우울과 행복, 차별과 혐오, 사랑, 공감 등의 감정을 나타낼 때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들을 사회학적으로 고찰한다. 상대가 우울감을 드러낼 때 "한때 나도 말이야"라는 말로 운을 떼며 자신도 "앓아봤다"라고 '위로'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당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우울한 사람에게 이런 말은 위로가 아니라 우울감에 대한 '평가'로 들린다. 때로는 너보다 먼저 마음을 앓은 나는 너보다 훨씬 성숙한 상태임을 공표하는, 우월감의 발로로도 여겨진다. 


'내 취향이다.' '취향 존중' 같은 말은 어떨까. 저명한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취향은 무엇보다도 먼저 혐오감, 다른 사람의 취향에 대한 공포감 또는 본능적인 짜증('구역질 난다')에 의해 촉발되는 불쾌감이다." (130쪽) 즉, 취향이란 본질적으로 타인의 취향에 대한 혐오감, 불쾌감을 내재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취향에 대한 지나친 고집이나 집착은 '취향 아닌 것', '취향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배척 또는 차별로 이어질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기만하다'라는 말은 어떨까. 기만은 위선과 위악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속성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연예인이 기부를 하거나 선행을 했다는 소식이 들리면 다 자신을 홍보하려는 속셈이라고 비난하면서, 범죄를 저지른 연예인이 방송에 복귀해 경제적 어려움이나 가족들의 고통을 호소하면 불쌍하다며 넘어간다. 이렇게 위선보다 위악에 관대함을 베푸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위선의 결과가 선, 위악의 결과가 악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이 밖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좋은 글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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