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의 탄생 -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매혹적인 스토리의 원칙
윌 스토 지음, 문희경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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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이야기를 창조하고 해석하는 방식을 뇌과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이다. 책이 좋아서 윌 스토의 다른 책들 중에 국내에 소개된 것이 더 있는지 찾아봤는데, 2020년 12월 현재 국내에 번역된 윌 스토의 책은 이 책뿐이라 아쉬웠다(윌 스토의 다른 책들도 국내에 출간되면 좋겠다!). 


책의 전반부에서 저자는 인간이 왜 이야기에 끌리고 이야기를 좋아하는지 설명한다. 인간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만드는 존재다. 소설가나 영화감독 같은 직업적 이야기꾼이 아니라도, 사람들은 일상에서 계속해서 이야기를 생산하고 소비한다. 이야기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가진 근원적인 두려움을 극복한다. 이야기를 읽거나 듣는 순간에는 모든 인간이 늙고 병들어 죽는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다. 인간은 아무런 목적이나 사명 없이 태어나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자기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며, 그 이야기 안에서는 아무리 별 볼일 없는 사람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못지않은 뛰어난 존재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영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웅 신화에 기반한 서사 작품을 접하면 본능적으로 흥미를 느끼고 열광하게 된다. 이때 영웅은 흠잡을 데 하나 없는 완벽한 영웅이 아니다. 어느 정도 성공하고 매력도 있지만 치명적인 단점이나 결함이 있는 존재일 때, 사람들은 더욱 깊은 애정을 느끼고 공감한다. 뛰어난 작가와 영화감독들은 이런 인물, 이런 서사를 기막히게 만들어낸다. 


책의 후반부에는 인류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이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는 특징들에 대한 뇌과학적 분석이 자세히 나온다. <길가메시 서사시>, <리어 왕> 같은 고전 작품부터 <해리 포터>, <레볼루셔너리 로드>, <라라랜드> 같은 최신 작품까지 다양한 예시가 나온다. 소설이나 영화 같은 창작물의 원리뿐 아니라 똑똑한 사람들이 가짜 뉴스를 믿거나 신흥 종교에 빠지는 이유 등도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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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인권 상영관 - 청소년을 위한 영화 속 인권 이야기
최하진.박인숙 지음 / 예미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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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후 마치 내가 영화 속 인물의 삶을 살아낸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무런 공통점이 없는 인물인데도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면, 영화를 통해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해소하는 일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불가능한?) 희망마저 품게 된다. 


이 책 <언택트 인권 상영관>을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영화 칼럼니스트 최하진과 변호사 박인숙이 공저한 이 책은, 영화 이야기를 하면서 아동, 청소년의 인권에 대해 생각해 보고 환경권, 동물권, 행복추구권, 생명권 등 다양한 법 지식도 얻을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책에 소개된 영화는 <칠드런 액트>, <로제타>, <자전거 탄 소년>, <가버나움>, <아름다운 비행>, <청원>, <우리들>, <4등>, <여행자> 등이다. 


영국 영화 <칠드런 액트>는 존경받는 가정법원 판사인 피오나(엠마 톰슨)이 백혈병에 걸려서 3일 안에 수혈을 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운데도 종교를 이유로 치료를 거부하고 있는 소년 애덤(핀 화이트헤드)의 재판을 맡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영국의 아동법은 법정이 미성년자(아동)와 관련한 사건을 판결할 때 '아동의 복리'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도록 되어 있다. 이 경우 애덤이 살 권리와 종교적 신념을 추구할 권리 중 무엇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까. 그것을 판단할 책임이 판사에게 맡겨져 있는 것은 온당할까. 나 역시 이 영화를 보고 한동안 많은 생각을 했던 것을 기억한다. 


한국 영화 <우리들>은 초등학교 4학년인 선(최수인)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는 가운데 지아(설혜인)라는 절친이 생겼는데 어떤 사건을 계기로 사이가 멀어지면서 다시 왕따가 되는 상황을 그린다. 이 작품은 표면적으로는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왕따 문제를 그리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어른들 간에도 종종 벌어지는 권력 싸움과 패거리 문화, 폭력 문제 등을 두루두루 다룬다. 아이들 문제라고 얕보지 말고, 인간의 보편적 문제라는 관점으로 진지하게 바라보고 적극적으로 해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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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의 말 - 평등을 향해 걸어온 대법관의 목소리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헬레나 헌트 지음, 오현아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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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이름은 많이 들어봤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했는지 모른 채 살다가, 작년 6월 긴즈버그의 생애를 담은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을 보고 비로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 올해 9월 긴즈버그가 타계했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이 책을 구입해 읽기 시작했는데, 영화를 볼 때도 느꼈지만, 인류의 절반인 여성을 '소수' 취급하는 비이성적인 세상에서 가장 이성적인 학문인 법과 그것을 체계화하는 언어를 무기로 유례없는 성취를 해낸 대단한 분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이 책은 크게 법, 시민의 자유, 나의 인생 -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긴즈버그가 직접 작성한 법정 의견서와 언론 매체, 강연, 포럼 등에서 한 발언들 중에서 긴즈버그의 사상과 철학의 정수가 담긴 부분을 발췌해 소개한다. 긴즈버그의 생애와 업적을 세세하게 소개하는 책이 아니라서, 긴즈버그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이 책을 읽기가 다소 힘들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나는 긴즈버그의 생애를 담은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을 보고 나서 이 책을 읽었고 내용을 이해하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은 긴즈버그의 다양한 면들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어 좋았다. 긴즈버그는 젊은 시절 스웨덴의 민사소송 사례 연구를 위해 2년 정도 스톡홀름에서 지낸 적이 있다. 이때 스웨덴 여성들이 미국 여성들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사회에 발언하고 참여하는 모습에 큰 자극을 받았고, 여성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국가가 어떤 법적, 제도적 지원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긴즈버그가 오페라를 무척 좋아했고 직접 오페라 무대에 오른(무려 라이벌 대법관과 함께!) 적도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았다. 인간을 사랑했고, 더 많은 인간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애쓰다 간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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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사를 위한 라틴어 수업 - 식물의 이름을 이해하는 법
리처드 버드 지음, 이선 옮김 / 궁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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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팟캐스트를 즐겨듣는 편이다. 식물 팟캐스트를 듣다 보면 진행자의 입에서 식물의 학명이 나올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저런 어려운 이름을 어떻게 외우는지 궁금하고 신기하다. 식물의 학명을 보다 쉽게 외울 수 있을까 싶어서 구입한 게 이 책이다. 책에는 라틴어로 된 수많은 식물 용어의 어원과 역사, 의미 등이 자세히 나온다. 


식물을 부르는 이름은 나라마다 다르지만(예: 한국에선 장미, 미국에선 'rose', 일본에선 '薔薇'), 학명은 동일하다(장미의 학명은 'Rosa hybrida'). 식물의 학명은 18세기에 이르러 체계화되었다. 1753년 린네가 현대적 체계의 명명법을 고안했다. 라틴어로 학명을 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은 이유는, 라틴어가 당시 서양 세계의 공용어이기도 했고 과학의 언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라틴어가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사어(死語)라서 더 이상 변형되지 않는다는 것도 유리하게 작용되지 않았을까 싶다. 


책에는 식물의 학명에 주로 쓰이는 접두사, 접미사 등이 잘 정리되어 있다. 식물의 색깔과 무늬, 형태, 질감, 크기뿐 아니라 자라는 방향, 향기와 맛, 개화기, 서식지, 다른 것들과의 유사성 등에 따라서도 학명이 정해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사람의 이름을 딴 학명도 많은데, 성비는 남성이 여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뛰어난 여성 식물학자였던 율리아 므오코세비치는 페오니아 므로코세윗스키, 프리물라 율리에 등을 발견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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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0-12-15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원사를 위해 라틴어라니 갸웃했는데 학명 얘기군요. 아 정말 책의 세계는 무궁무진하네요.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1
이수정 외 지음 / 민음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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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듣는 팟캐스트의 진행자가 책을 내면 '청취료' 명목으로 반드시 사서 읽는 편이다. 이 책도 그렇다. 같은 제목의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여러 번 정주행해서 내용은 잘 알고 있지만, 나의 생명 및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를 나보다 심각하게 고민하고 나보다 앞에 서서 이야기하고 계신 분들이라 실은 열 권을 사도 부족한데 한 권밖에 못 사서 죄송하다. 


이 책은 영화 속 인물들에 대해 범죄 심리학의 관점에서 이야기하는 같은 제목의 네이버 오디오클립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가스등>을 보고 가스라이팅을, <적과의 동침>을 보고 친밀한 관계에서의 폭력을, <미저리>를 보고 스토킹 범죄를, <걸캅스>를 보고 디지털 성범죄를, <번지 점프를 하다>를 보고 그루밍 성폭력을 이야기하는 식이다. 영화를 보고 즐기는 데 그치지 않고, 영화 속 범죄 상황을 집중적으로 분석해 보면서 현실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떤 식으로 대처하면 좋은지 등을 알 수 있어서 흥미롭고 유익하다. 로맨스,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범죄에 대한 인식을 넓히고 경각심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이런 식의 분석은 불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어떤 영화는 실제 범죄 사건에서 수사관들이 놓치고 있는 맹점을 부각하기도 하고, 어떤 영화는 실제 피해자에게 2차 가해를 하는 식으로 기능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영화를 그저 허구의 즐길 거리로 보는 것은 너무 나이브한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 책에서처럼 영화의 사회적 기능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영화 속 범죄(특히 강간) 장면을 지나치게 선정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방향으로 영화계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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