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카몬 1
요시노 사츠키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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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어릴 때 만화를 많이 보고 나이가 들면서 잘 안 본다는데, 나는 어릴 때보다 지금 더 많이 보는 것 같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로 보는 건 아니다. 일단 판타지물은 안 보고(영화도 소설도 판타지물은 안 보는 주의), 폭력이 난무하는 범죄, 전쟁물도 NG, 내용이 지나치게 무겁거나 가벼운 것도 별로다. 문제는 이렇게 이것저것 빼고 피하다 보니 볼 만화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주인공이 열심히 노력하여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만화가 취향인데, 이런 만화는 왜 많지 않은 걸까.



그러던 중에 발견한 만화가 바로 <바라카몬>이다. 스물셋 젊은 나이에 벌써 상당한 경지에 오른 서예가 '한다 세이슈'는 '글씨가 평범하다'는 지적을 받고 문제를 일으켜 일본의 서쪽 끝 섬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 곳에서 밝고 활기찬 섬 소녀 '나루'를 비롯해 순박하고 인정 많은 섬 사람들과 어울리게 된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도시 사람인 한다는 처음엔 섬 사람들과 지내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차츰 그들의 문화에 적응하면서 도시에서 서예만 할 때는 몰랐던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된다. (주인공 한다의 츤데레+네거티브한 성격이 폭발한 고교 2학년생 시절은 최근 출간된 외전 <한다 군>에 잘 나와 있다.) 



<바라카몬>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나루다. 시원하게 웃는 얼굴이 매력인 나루는 하루 종일 선머슴처럼 뛰어다녀 한다를 비롯한 어른들을 귀찮게 하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적적하고 서운하터다. <요츠바랑>의 요츠바가 좀 더 크면 나루 같을 것 같다. 2권에서 관심을 끈 캐릭터는 열네 살의 안경 쓴 소녀 '타마코'. 만화를 좋아해서 만화가가 되는 게 꿈이지만, 자신이 오타쿠, 동인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고, 그걸 들키고(?) 싶어하지도 않는 꽤나 복잡한 캐릭터다. 섬 아이들의 눈을 피해 겨우겨우 출판사에 원고를 보낸 그녀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까? 어제 막 3,4권을 구입했으니 얼른 봐야겠다.





대원씨아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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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덩크 오리지널 박스판 1~5 세트 - 전5권 슬램덩크 오리지널 박스판
이노우에 다케히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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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는 농구의 시대였다. 농구 대잔치, NBA, 드라마 <마지막 승부> 등 농구와 관련된 이벤트와 콘텐츠가 농구 팬들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다. 그 시절 농구 인기의 중심에 만화 <슬램덩크>가 있었다. 농구는커녕 만화도 잘 모르는 아이였던 나조차 슬램덩크를 봤다. 당시 친구네 집 책장에 슬램덩크 전권이 있어서 매일같이 동생이랑 놀러 가서 해가 저물도록 슬램덩크를 봤강백호가 바보짓을 하면 배를 잡고 웃고, 강백호가 새로운 기술을 배우면 대견해하고, 시합에서 지거나 안좋은 일이 생기면 같이 울었다. 농구의 농 자도 모르는, 어린아이 주제에 말이다. 


그렇게 만화 슬램덩크를 1권부터 마지막 권까지 최소 다섯 번은 읽고, TV 만화도 보며(당시 가요 프로그램 1위를 휩쓸었던 가수 박상민이 주제가를 불렀다.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너에게 가고 있어~") 나이를 먹었지만, 슬램덩크에 대한 사랑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어린 시절 나와 함께 친구 집에서 만화를 보았던 동생은 성인이 되어 돈을 벌자 제일 먼저 슬램덩크 애장판 세트를 구입했고, 슬램덩크의 작가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책도 샀다. 몇 년 전 일본 여행을 갔을 때 우리는 슬램덩크의 배경인 에노시마, 가마쿠라 지역을 일부러 일정에 넣어 만화 속 북산고 학생들이 타고 다니던 전차인 에노덴에 타보기도 하고, 만화에 나오는 장소들을 탐방하기도 했다.  


만화 <슬램덩크>의 위대함은 나중에 더 많은 만화를 보고 일본 문화에 대해 알게 되면서 더욱 확실하게 느꼈다. 슬램덩크의 일본 누계 판매 부수는 무려 1억 2000만 부. 일본을 대표하는 만화잡지 '소년점프'의 빅히트작 <드래곤볼>, <원피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후 출간되는 스포츠 만화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슬램덩크는 만화를 넘어 대중문화 전반에도 영향을 주었다. NBA의 인기와 맞물려 농구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일본에 농구 붐을 일으켰으며, 처음 나온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유명인들의 애독서로 거론된다. 


얼마 전 <슬램덩크>가 오리지널 박스판으로 돌아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너무 기쁜 나머지 소름이 돋았다. 그도 그럴 게, 2001년 완전판 발매와 함께 절판된 오리지널판은 어린 시절 나와 동생이 친구네 집에서 보았던 슬램덩크와 똑같은 형태다. 디지털 편집을 통해 명장면과 대사를 고스란히 살렸다. 완전판을 소장하고 있으면서도 어린 시절에 봤던 슬램덩크와 똑같은 형태가 아니라는 사실이 내심 아쉬웠는데, 이번에 오리지널판으로 나온다고 하니 참 반갑다. 다른 점이 있다면 90년대에 출간된 오리지널판에서 시대 분위기상 삭제될 수밖에 없었던 장면들과 완전판에서 빠졌던 코믹한 컷들을 모두 살렸다는 것. 이 또한 슬램덩크를 오리지널판으로 다시 만나야 할 이유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 다시 슬램덩크 오리지널판을 읽으면서 명작은 처음부터 명작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나온 지 20년이 훨씬 지난 작품인데도 부족한 점이 보이지 않는다. 연재 초기와 이후의 그림이 확연히 다른 작품이 부지기수인데, 슬램덩크는 작가의 초기작이고 시리즈의 시작 부분인데도 그림이 아주 좋다. 심지어는 나중에 더 좋아진다. 인물 설정이며 대사, 장면 하나하나도 완벽하다. 어설프거나 쓸데없는 것이 없다.  


1권부터 3권까지 후다닥 읽고 든 아쉬움은 단 하나. 나의 최애캐, 불꽃남자 정대만의 에피소드가 아직 안 나왔다는 것(ㅠㅠ)!! 애장판이 있으니 이어서 읽으면 되긴 하지만 아무래도 오리지널판으로 읽는 맛은 다른 것 같다. 오리지널판에 추가되는 장면도 있다고 하고. 올 추석 선물은 슬램덩크 오리지널판으로 할까. 남에게 주는 선물 말고, 나에게 주는 선물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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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9-24 1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티를 안내려고 했는데 박상민의 슬램덩크 주제가에서 무너지고 말았어요!
저도 모르게 `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 너에게 가고있어~˝가 막 흥얼거려 지는거예요 ㅎㅎㅎ
저는 티비 만화로만 봤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 정말 재밌게 봤던 만화라는 기억이 납니다.
특히 강백호란 이름이 왜 이리 친근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어요 ㅋㅋㅋ
저희 신랑이 저보다 1살 많은데 옛날에 봤던 만화책 정말 좋아하거든요
저도 이 책 사다가 신랑이랑 봐야겠는데 ,, 추석이 끼여서 추석 지나고 봐야할거 같아요 ㅋㅋㅋ
택배아자씨들에게 미안해서 요즘은 알라딘 구매를 자제하고 있어 슬프답니다 ㅎㅎ
무튼 키치님 덕분에 추억도 돋아나고 참 행복해지는 글이였습니다 ^^ 잘 읽었어요

앗 그리고 일본 여행! 정말 부럽습니다.
어릴적 좋아했던 책의 장소를 찾아가 즐기시는 모습! 저도 꼭 한번 해보고 싶어요!

키치 2015-09-24 19:49   좋아요 0 | URL
뜨거운 코트를 가르며 너에게 가고있어~ 그 노래 너무 좋죠 ㅎㅎ 저도 종종 흥얼거려요 ㅎㅎ
저도 TV만화로도 보고 애장판으로도 봤는데 맨처음 봤던 오리지널판으로 보니 정말 좋더라구요.
택배 기사님들 너무 고생하셔서 추석 지나고 주문하신다는 마음 씀씀이도 멋지십니다.
남편 분이랑 함께 만화 보시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ㅎㅎ 좋은 선물 될 것 같습니다.

슬램덩크의 무대인 에노시마, 가마쿠라 지역은 도쿄에서도 가깝고
일본에서도 유명한 관광지라서 기회 되시면 가보시길 권해드려요 ^^
강백호를 비롯한 북산고 선수들이 타고다니던 기차도 탈 수 있고,
선수들이 훈련하던 바닷가도 볼 수 있답니다 ㅎㅎ 저도 참 좋았어요!
 
중쇄를 찍자 1
마츠다 나오코 지음, 주원일 옮김 / 애니북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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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만화 <중쇄를 찍자>가 출판사 만화편집부에 입사한 신입 편집자의 이야기를 다룬 만화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 <시로바코>를 떠올렸다. <시로바코>는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에 입사한 지 1년 밖에 안 된 직원 미야모리 아오이가 회사 안팎에서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그린, 일본 애니메이션 계에서는 보기 힘든 '여성 회사원 물'. 무대는 달라도 이제 막 사회로 나온 젊은 여성이 직장을 무대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에서, 그것도 만화 출판과 애니메이션 제작이라는 비슷한 업종을 다룬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중쇄를 찍자>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막상 읽어보니 <시로바코>보다는 한국 만화 <미생>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여자 유도 선수 출신으로 우여곡절 끝에 대형 출판사 '코토칸'의 만화 편집부에 입사한 쿠로사와 코코로. '구리구리한 남자집합소에 여자 하나'인 삭막한(?) 업무 환경에, 일상 언어와 전혀 다른 업계 용어와 낯설기만 한 업무 절차 등 배울 것 투성이지만, 쿠로사와는 선수 시절에 다진 체력과 타고난 근성을 바탕으로 한 사람 몫을 해내는 편집자가 되기 위한 과정을 헤쳐 나간다. 이는 바둑 기사를 꿈꾸다 엉겁결에 상사에 입사한 장그래의 입사 초기 모습과 비슷하다. 



그 과정에서 쿠로사와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어쩜 그리 <미생>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개성적인지. 일본의 프로 야구팀 한신 타이거즈의 광팬인 편집장 와다, 하나뿐인 여자 직원 쿠로사와에게 열심히 일을 가르쳐주는 직속 상사 이오키베, 제자의 배신으로 작가 생활의 위기를 맞은 만화가 미쿠라야마, 치밀한 준비와 기획력으로 영업부를 이끌어가는 오카, 존재감이 없어서 별명이 '유령'인 영업부 직원 코이즈미, 이제 막 세상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만화가 핫탄 등 누구 하나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가 없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코토칸의 사장 쿠지 마사루. 탄광촌에서 태어나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다가 어느 노인을 만나 변한다. 



"돈은 없지만 좋은 걸 알려주께. 운은 모을 수가 있사. ... 운이란 거는, 좋은 일 하면 모이고 나쁜 짓 하면 금세 줄거든다. 사람이라도 죽이면 마카 끝장이야. ... 세상은 말이다, 더하고 빼면 남는 게 없는 법이다.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재. 갖고 태어난 거는 차이가 있어도, 패를 몇 장을 받는지는 다 똑같아. 운이 니 편을 들어주면 복은 수십 배로 부풀어 오르는 게 된다. 문제는 '어디서 이기고 싶은가?' 그기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한번 생각해 보라. 생각하고 생각하고 토악질이 나올 정도로 생각해서, 선택해라. 운을 잘 써야 해." (pp.92-4) 



노인의 말을 듣고 고심한 끝에 마을을 떠난 그는 상경해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다가 감동적인 책 한 권을 만나 출판사에 입사한다. 운의 힘을 깨달은 그는 일에서 이기겠다는 결심을 하고 모든 운을 히트작에 쏟아붓는다. 술도 담배도 도박도 끊고, 집도 차도 팔고, 틈만 나면 남을 도우며 '운 모으기'를 했다. '내가 관여한 책은 전부 히트했으면 좋겠'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공헌하고 싶'다는 일념으로 말이다. 밥이 나오길 하나 떡이 나오길 하나, (작가나 출판사 직원이 아닌 한) 살림살이 나아지는 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 책. 그런 책을 읽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와중에도 누군가는 책 한 권과 운명적으로 만나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준 책에 대한 보은으로 책 만드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어디 만화나 책뿐인가. 세상에 나온 상품은 무엇 하나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거나 앞으로의 삶이 바뀌길 원하는 '사람'이 만들지 않은 것이 없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노트북 컴퓨터도, 앉아 있는 의자와 책상도, 마시고 있는 음료수도, 시장에 나온 그저 그런 상품 중 하나이기 이전에 어떤 사람의 삶과 혼이 담긴 분신과도 같은 것이다. 그렇다면 편집부 직원들이 입을 모아 외치는 '중쇄를 찍자'는 말은 단지 회사의 매출을 올리고 업무 성과를 높이겠다는 이해타산적인 생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의 흔적을 가능한 한 더 많은 사람에게 보이고 싶고 사랑받고픈 순수한 열정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일본의 여성 만화 편집자 버전 '미생'이라 할 수 있는 <중쇄를 찍자>. 앞으로의 전개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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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사랑, 가족
최석태.최혜경 지음 / 디자인하우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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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처럼 뜨겁게 살다 간 화가 이중섭의 이야기를 담은 책 <이중섭의 사랑, 가족>. 서점에서 보고 한 눈에 반해 구입해 아끼고 또 아껴 읽다 마침내 다 읽었다. 


일반적인 화첩이나 그림 에세이와 달리 이중섭이 1940년 말부터 1943년까지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와 연애할 때 쓴 100여 점의 엽서와 결혼 후 1953년부터 1955년까지 일본에 있던 아내와 두 아들에게 쓴 편지글과 그림을 모은 귀중한 이 책. 돈도 명예도 이념도 국경도 개의치 않고 자유롭게 그리고 사랑하다 떠난 그의 이야기와, 그런 그의 삶과 사랑을 그 무엇보다 강렬하게 표현한 그림을 보며 여러 번 눈시울을 붉히지 않을 수 없었다.






1916년 평안남도 평원군에서 태어난 이중섭은 어릴 때부터 그리기와 만들기에 관심과 재능을 보인 천부적인 화가인 동시에 오산학교 재학 시절 일제에 저항하는 내용의 그림을 그려 그해 학교 사진첩이 발행되지 못하게 할 정도로 민족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스물다섯 분카가쿠인 유화과 연구생 시절 사랑에 빠진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은 야마모토 마사코. 식민지 출신의 가난한 남자가 식민지를 지배하는 나라의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얄궂은 운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중섭은 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마사코에게 글 없는 그림엽서를 3년이나 보냈고, 마사코는 그가 보내주는 비밀스런 러브레터에 감동해 이 순탄치 않을 것이 불 보듯 뻔한 사랑을 받아들였다.






이들의 사랑은 아름답지만 비참했고 풍요롭지만 가난했다.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겨우 결혼했지만 징병을 피하기 위해 이중섭은 마사코의 곁을 떠나 고향으로 피신해야 했고, 광복 직전 마사코를 조선으로 불러 겨우 신혼 생활을 시작했지만 가난과 첫 아이의 죽음 등으로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으나, 그런 중에도 마사코의 이름을 이남덕(남남북녀 대신 남녀북남이라며 '남', 더덕더덕 아들딸 많이 낳아서 한오백년 후엔 대향남덕국을 만들자며 '덕'이라 붙인 이름이었다)이라 바꾸고, 닭과 소를 그리며 사랑과 예술의 힘으로 버텼다(아내를 "나의 소중한 특등으로 귀여운 남덕"이라고 칭하는 남편이라니. 이보다 더한 사랑꾼은 오늘날에도 없다!). 


그런 그들 앞에 또 한번의 시련이 닥쳤으니 그것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어머니와 형수, 조카들과 생이별하고 겨우겨우 원산을 떠나 부산의 피란민 수용소에 도착했으나, 수용소에서 번 돈을 어린 소년에게 고스란히 줘버리거나 헌병들에게 몰매를 맞아 몸져눕는 등 고난이 끊이지 않았다. 정부 정책에 의해 제주도로 보내진 가족은 먹을 것이 없어 바다에서 게를 잡거나 해초를 뜯어먹는 생활을 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가 이 가족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1952년, 극도의 생활난을 조금이나마 덜고자 남덕과 두 아들이 일본인 송환선을 타고 일본으로 떠나면서 이중섭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졌다.







가족과 헤어진 이중섭은 1952년 말 또는 이듬해 초부터 1955년까지 아내와 두 아들에게 부지런히 편지를 썼다. 

아내 남덕에게는 '나의 살뜰한 사람. 나 혼자만의 기차게 어여쁜 남덕군. 이상하리만큼 당신은 나의 모든 점에 들어맞는 훌륭한 미와 진을 간직한 천사요.' 같은 찬사를 남발하고, 두 아들에게는 '호걸 씨 태성아! 잘 있었니? 아빠도 몸 성히 그림을 그리고 있단다. 태성이는 늘 엄마의 어깨를 두드려드린다고? 정말 착하구나. 한 달 후면 아빠가 도쿄 가서 자전거 사주마. 잘 있어라. 엄마와 태현이 형하고 사이 좋게 기다려다오.' 같은 애정 어린 응원과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이중섭이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며 나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 나오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유일한 낙이자 평생의 소원인 소박한 남자. 이 소박한 남자의 꿈을 야만적인 세상이 민족이니 이념이니 전쟁이니 권력이니 제도니 하는 이름으르 짓밟는다. 그럼에도 남자는 희망을 잃지 않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짓고 가까스로 웃어보인다. 단 하나,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다. 결국 그는 평생 자신을 괴롭힌 시대와 사회라는 괴물 앞에 스러지지만, 그가 해준 이야기와 그가 웃어보인 미소를 기억하는 가족은 꿋꿋이 삶을 이어간다. 어떤가. 비슷하지 않은가.







더욱 놀라운 것은 이중섭이 가족들을 생각하며 엽서며 담배갑에 그렸던 그림이 고스란히 그의 화풍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아내 남덕과의 연애시절 그녀를 생각하며 그린 꽃이며 풀이며 때로는 그녀의 몸이며 손이며 발 같은 것, 제주도로 피란 갔을 때 바닷가에서 어린 두 아들이 벌거벗고 게를 잡던 모습, 좁은 방에 네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주린 배를 채우던 것이나 몸을 겹쳐가며 잠을 청하던 모습이 그의 그림과 겹쳐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각이 아닐 것이다. 


최고의 예술은 삶이 예술이 되고 예술이 삶이 되는 것이라고 배웠다. 아내와 두 아들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 사랑을 화폭 위에 펼치다 삶을 마친 화가 이중섭. 아름다운 그의 삶과 예술을 보며 내 마음에도 무한한 송이의 꽃이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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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5-07-05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주의 이중섭미술관에 그의 손편지들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되살아나요.

라젠카 2015-07-05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읽어봐야 겠네요
 
날씬미녀를 따라했더니 5kg 더 빠졌어요
와타나베 폰 글.그림,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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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날씬 미녀를 따라 했더니 5kg 더 빠졌어요>는 와타나베 폰의 만화 <너, 살 빠졌지?>의 후속편이다. <너, 살 빠졌지?> 이후의 일을 그리지만 다이어트 방법 자체는 바뀌지 않으므로 한 권만 읽든 두 권 다 읽든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에는 지장이 없다. 나는 <날씬 미녀를 따라 했더니 5kg 더 빠졌어요>를 먼저 읽고 재미있어서 <너, 살 빠졌지?>를 뒤늦게 구입해 읽었는데 둘 다 좋았다. <너, 살 빠졌지?>가 다이어트 자체에 중점을 둔다면 <날씬 미녀를 따라 했더니 5kg 더 빠졌어요>는 다이어트를 하는 도중에 자신에게 보상을 줌으로써 모티베이션을 유지하고 인생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과정을 그린 점이 흥미로웠다.


 


전편에서 95kg에서 65kg으로, 총 30kg 감량에 성공한 저자는 여전히 '약간 뚱뚱한' 상태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애초 목표인 60kg 달성을 위해 다시 한번 다이어트에 돌입한다. 다이어트 방법은 전과 같이 '날씬 미녀의 생활 습관 따라하기'! 30kg 감량에 성공하고 사람들로부터 살 빠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예쁘다, 미인이다 라는 말은 들은 적이 없었던 저자는 이번에야말로 자신 있고 당당한 날씬 미녀가 되기로 결심한다. 감추는 것 없애기, 먹은 음식 사진으로 찍기, 아침형 인간 되기, 워킹 재점검 등 이전 다이어트에서 미처 실천하지 못한 날씬 미녀의 습관을 하나씩 터득하면서 정체기를 극복하고 체중을 감량해가는 저자. 마지막에는 그동안 생각만 하고 실천하지 않았던 보컬레슨 받기, 나 홀로 해외여행 등을 다이어트 보상으로 정하고 성공함으로써 50kg대 몸무게 진입을 달성한다.




전편의 장점으로 다이어트라고 해서 살만 빼면 다가 아니다, 다이어트의 '진짜' 목적은 미인이 되는 것이다 라는 점을 강조한 걸 들었다면, <날씬 미녀를 따라 했더니 5kg 더 빠졌어요>의 장점은 다이어트의 또 다른 '진짜' 목적은 인생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이다 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저자에게 보컬레슨이나 해외여행이 그랬던 것처럼, 누구에게나 생각만 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목표나 도전 과제가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를 다이어트와 연결해 목표한 체중 감량에 성공하면 보컬레슨을 받고 해외여행을 가는 식으로 다이어트와 삶의 행복이라는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았다. 나도 살 빼면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운전을 배우든 여행을 가든 뭐라도 해볼까? 살 빼기 전부터 마음이 들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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