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년, 잠시 멈춤 - 나를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한 여자들을 위하여
마리나 벤저민 지음, 이은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마리나 벤저민의 에세이. 자궁 수술로 인해 갑작스럽게 폐경(완경)을 맞은 저자가 겪은 신체적, 정신적 위기와 성숙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서술한다.
저자는 폐경이 순조롭고 매끄럽게 진행될 줄 알았다. 초경 이후 26일 주기로 400번 이상 치러온 출혈이 멈추는 것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생리도 임신도 출산도 유난히 힘들고 괴로웠기 때문에 이 같은 경험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면 차라리 후련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폐경을 맞으니 신체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생리가 끝나면 그동안 잘 작동하던 내분비 체계가 작동을 멈추고, 이로 인해 일과성 열감, 불안정한 지방대사, 난소 위축, 골밀도 감소 등의 증상이 발생하게 된다. 심한 감정 기복과 우울증, 상실에 대한 불안감, 자아의식의 손상 등도 수반한다. 정신적인 고통도 상당했다.
저널리스트로서 작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저자는 폐경 이후 급속도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더 이상 예전처럼 자신감이 넘치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학교, 직업, 집, 아이들, 인간관계 등 그동안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해온 모든 것들이 별안간 덜 소중하고 덜 의미 있게 여겨졌다. 이는 노화와 죽음에 대한 공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저자는 여성이 폐경을 겪으며 중년의 위기를 실감하는 것처럼, 남성 역시 비슷한 위기를 겪으리라고 짐작한다. 다만 남성은 폐경이라는 명확한 경계가 없을 뿐, 삼십 대 이후부터 테스토스테론 감소로 인한 성욕 감퇴와 신체 부진 등의 증상을 겪으며 노화를 체감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노화를 늦추거나 감추기 위한 호르몬 대체 요법이 여성 혐오와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시간이 흐르면 누구나 나이 들기 마련인데 왜 유독 여성에게만 노화를 감추고 의료 기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젊음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부과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또한 부모의 병과 죽음을 지켜보는 자식의 마음, 자식의 성장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올가을, 계절의 흐름과 시간의 무상함을 느끼며 찬찬히 읽어보면 좋을 책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