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1 (리커버 특별판)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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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 베르베르 소설을 처음 읽은 게 아마도 초등학교 고학년 때다. 그 때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났는데 어쩌면 이렇게 여전히 재미있고 통통 튀는 소설을 쓸까. 새삼 반했다. 


이야기의 화자는 파리에서 살고 있는 암컷 고양이 바스테트다. 스스로를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라고 여기는 바스테트는 어리석은 인간 '집사' 나탈리를 은근히 깔보지만 나탈리 없이는 하루도 못 사는 연약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바스테트의 눈에 이웃집에 사는 한 수컷 고양이가 들어온다. 그의 이름은 피타고라스. 바스테트는 똑똑하고 말이 잘 통하는 피타고라스에게 첫눈에 반하고, 점점 더 그를 원하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바스테트는 자신처럼 예쁘고 우아한 고양이에게 반하지 않는 수컷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데, 알고 보니 피타고라스는 그냥 수컷 고양이가 아니라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인간의 기술을 사용하는 아주 특별한 고양이었다! 


바스테트가 고양이의 생활을 영위하는 동안, 인간들은 테러와 내전을 벌이며 서로 죽고 죽이는 데 여념이 없다. 애초부터 인간에 대한 기대가 없었지만, 갓 태어난 자신의 새끼들을 인간이 제 마음대로 살상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부터는 인간에 대한 일말의 애정조차 가지지 않게 된 바스테트는, 화염에 스러지는 나탈리의 작은방을 떠나 피타고라스와 함께 자신들만의 터전을 찾아간다. 하지만 이미 불바다가 된 파리 시내에는 연약한 고양이들이 편안하게 머물 만한 장소가 거의 없다. 쥐가 고양이를 죽이고, 고양이가 인간과 싸우는 끔찍한 상황을 통해, 작가는 자신들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믿는 인간들이 얼마나 오만하고 편협한지 보여준다. 나아가 인간이 스스로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고 믿는 행동들이 인간 아닌 존재에게는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비치는지도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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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잠시 멈춤 - 나를 위해 살아가기로 결심한 여자들을 위하여
마리나 벤저민 지음, 이은숙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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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마리나 벤저민의 에세이. 자궁 수술로 인해 갑작스럽게 폐경(완경)을 맞은 저자가 겪은 신체적, 정신적 위기와 성숙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서술한다. 


저자는 폐경이 순조롭고 매끄럽게 진행될 줄 알았다. 초경 이후 26일 주기로 400번 이상 치러온 출혈이 멈추는 것을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생리도 임신도 출산도 유난히 힘들고 괴로웠기 때문에 이 같은 경험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면 차라리 후련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폐경을 맞으니 신체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생리가 끝나면 그동안 잘 작동하던 내분비 체계가 작동을 멈추고, 이로 인해 일과성 열감, 불안정한 지방대사, 난소 위축, 골밀도 감소 등의 증상이 발생하게 된다. 심한 감정 기복과 우울증, 상실에 대한 불안감, 자아의식의 손상 등도 수반한다. 정신적인 고통도 상당했다. 


저널리스트로서 작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저자는 폐경 이후 급속도로 생산성이 떨어지고 더 이상 예전처럼 자신감이 넘치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학교, 직업, 집, 아이들, 인간관계 등 그동안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해온 모든 것들이 별안간 덜 소중하고 덜 의미 있게 여겨졌다. 이는 노화와 죽음에 대한 공포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저자는 여성이 폐경을 겪으며 중년의 위기를 실감하는 것처럼, 남성 역시 비슷한 위기를 겪으리라고 짐작한다. 다만 남성은 폐경이라는 명확한 경계가 없을 뿐, 삼십 대 이후부터 테스토스테론 감소로 인한 성욕 감퇴와 신체 부진 등의 증상을 겪으며 노화를 체감할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노화를 늦추거나 감추기 위한 호르몬 대체 요법이 여성 혐오와 어떻게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시간이 흐르면 누구나 나이 들기 마련인데 왜 유독 여성에게만 노화를 감추고 의료 기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젊음을 유지해야 할 의무가 부과되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또한 부모의 병과 죽음을 지켜보는 자식의 마음, 자식의 성장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올가을, 계절의 흐름과 시간의 무상함을 느끼며 찬찬히 읽어보면 좋을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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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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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에 조금만 읽다 자려고 했는데 보기 좋게 실패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다 읽고 시간은 새벽 한 시... (덕분에 지금 좀 졸리다 ㅎㅎㅎ) 


사와무라 이치의 <보기왕이 온다>는 2015년 일본 호러소설대상 대상 수상작이며, 오카다 준이치와 츠마부키 사토시 주연 영화 <온다>로 제작되어 올겨울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주인공은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다하라 히데키와 가나 부부. 얼마 전 아내로부터 임신 소식을 들은 히데키는 사랑스러운 아내 가나와 곧 있으면 태어날 딸 치사를 누구보다 아끼며 무슨 일이 생겨도 반드시 그 둘을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그런데 어느 날 히데키의 직장 후배 다카니시가 회사에서 원인 불명의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는 일이 발생한다. 얼마 후에는 히데키의 집으로 정체불명의 전화가 오고, 히데키의 친구가 히데키의 신상에 관한 이상한 문자를 받는다. 


별일 아니라고, 우연이 겹친 것뿐이라고 웃어넘길 법도 하지만, 히데키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어린 시절 히데키는 와병 중인 외할아버지와 단둘이 집을 지키다가 소름 끼치는 일을 겪은 적이 있다. 현관 너머로 정체를 알 수 없는 회색 그림자가 계속 묻는 것이다. "긴지 씨 계세요? 시즈 씨 계세요?" 평소엔 정신을 못 차리고 헛소리를 늘어놓던 외할아버지마저 그 순간만큼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히데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그것이 오면 절대로 대답하거나 안에 들여선 안돼." 몇 년 후 히데키는 외할아버지가 말한 '그것'이 일부 지역에서 민담으로 전해지는 괴물 '보기왕'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과연 보기왕은 히데키의 가족에게 무슨 짓을 벌일까. 대체 보기왕은 왜 히데키에게 이런 짓을 벌이는 걸까. 


<트릭>이나 <링>, <주온>처럼 일본의 전설이나 민담을 토대로 한 괴이하고 스산한 분위기의 호러소설을 좋아한다면 이 소설 역시 마음에 들 것이다. 결혼과 출산, 육아와 가정생활을 둘러싼 오해와 편견, 대립과 갈등이 결국엔 보기왕이라는 끔찍한 존재를 낳고, 비극적인 사건들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보면 단순한 타임킬링용 호러소설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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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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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과>에 이어 읽은 구병모 작가의 신작이다. 경기도 외곽에 위치한 공동주택에 한 가정이 이사를 온다. 이들이 입주하게 될 공동주책의 이름은 '꿈미래실험공동주택'.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출산을 기피하는 젊은 부부들을 위해 정부가 일종의 실험 차원으로 시도하는 공동주택 프로젝트에 네 쌍의 부부가 선발되었고, 이미 입주한 단희와 재강, 효내와 상낙, 교원과 여산 부부에 이어 요진과 은오 부부가 입주를 마친다. 


출신도 다르고 직업도 다르고 재정 사정도 다른 이들은, 비슷한 위치의 직장에 다니며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므로 쉽게 어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각자가 생각하는 최소한의 상식과 도리는 저마다 다르고, 각자가 꿈꾸는 이상적인 공동체 생활의 모습 또한 저마다 다르다. 첫 만남부터 스멀스멀 피어올랐던 불화의 기운은 점점 퍼지고 커져서 파국으로 치닫고, 결국 그 누구도 꿈미래실험공동주택에 입주할 때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결말에 이른다. 


세 자녀를 가지는 조건으로 입주가 허용되는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이라는 설정 자체는 비현실적이지만(서울도 아니고 경기도 외곽에 있는 주택에 입주하기 위해 자녀를 셋이나 낳겠다고 서약하는 부부가 실제로 있을까? 나는 아닐세...), 이곳에서 전개되는 상황들은 기혼자든 비혼자든, 유자녀든 무자녀든 간에 누구나 겪거나 보거나 들어서 알고 있을 법한 상황들뿐이다. 이를테면 공동생활이라는 핑계로 남의 집 일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간섭하는 이웃 여자라든가, 카풀을 핑계로 아내 눈을 피해 추근대는 이웃 남자라든가,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되는 경우라든가...


사람들 간에 벌어지는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벌어지는 개별적인 이야기도 흥미롭다. 개인적으로 나는 프리랜서 동화 작가인 효내와 영화감독 지망생인 남편 대신 약국 보조원으로 일하는 요진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했다. 프리랜서도 직업이고, 여자가 남편 대신 가장 노릇 할 수도 있는 건데, 그걸 곱게 보지 않는 사람들의 시선이 어떤 때에는 그 일 자체보다 힘들다는 걸 왜 다들 몰라줄까. 넘치는 에너지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오지랖과 관심으로 해소하는 단희, 남편이 벌어오는 적은 월급을 알뜰하게 사용하려다 인터넷 중고 거래 카페의 악성 회원으로 전락하는 교원의 인물상도 친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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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9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키치 2018-10-29 18:28   좋아요 0 | URL
아아 정말 그래요 ㅎㅎㅎ 특히 민음사에서 만드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는 한 권 한 권이 표지도 예쁘고 내용도 좋아서 소장욕구를 불러 일으키죠. 이 책도 그렇고요 ^^

얄라알라 2018-10-29 1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소설 <소멸 세계>가 비슷한 설정인가봐요. 국가 주도의 프로젝트, 출산관련한 개입....

‘나는 아닐세‘에서 고개가 절로 끄덕해지는 일인에 저도 포함시켜주세요^^

키치 2018-10-29 18:29   좋아요 0 | URL
비현실적인 설정 같은데 현실이기도 하죠. 출산율 장려라는 ‘미명‘ 아래 시행되는 폭력적인 정책이나 제도들을 보면요. 가임기 여성 지도라든가...

저만 아닌 게 아니었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ㅎㅎㅎ
 
식물 산책 - 식물세밀화가가 식물을 보는 방법
이소영 지음 / 글항아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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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책을 보고 예뻐서 무심코 구입했는데 책 속에 예쁨 그 이상의 세계가 있었다. 저자 이소영은 식물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식물세밀화가이자 식물학자다. 원예학을 전공으로 택한 저자는 학부 3학년 때 우연히 들은 식물 그림 수업에서 처음으로 식물세밀화를 그리게 되었고, 졸업과 함께 국립수목원에 취업해 본격적으로 식물세밀화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 책은 국내에 몇 안 되는 식물세밀화가인 저자가 지난 10여 년간 국내외의 여러 식물원과 수목원, 산과 들, 정원과 공터를 찾아다니며 만난 식물과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식물, 식물학, 식물세밀화... 그 무엇도 나와 별 상관이 없다고 여겼는데 의외로 내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매일 먹는 채소와 과일도 식물이고, 매일 마시는 커피와 약도 식물이다. 식물세밀화를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집에서 사용하는 포트메리온 그릇에 그려져 있는 꽃 그림이 바로 식물세밀화다. 저자는 바로 이런 식물들을 연구하고 관찰하며 이를 그림으로 기록해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무궁화의 원산지는 한국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것도, 싱가포르에는 전 세계에 분포한 생강과 식물들이 전부 식재된 생강정원이 있다는 것도, 유럽의 너도밤나무와 한국의 너도밤나무는 엄연히 다른 종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앞으로 저자가 쓰는 책마다 따라 읽으며 식물을 보는 눈을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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