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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 - 오지은의 유럽 기차 여행기
오지은 지음 / 이봄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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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하는 뮤지션이자 작가인 오지은의 신간 <이런 나라도 즐겁고 싶다>를 읽었다. 기차가 좋아서, 틈날 때마다 외국의 철도 사이트를 둘러본다는 '철도 덕후'답게 이번 책의 주제도 유럽 기차 여행이다. '유럽 최고의 기차 풍경 베스트 10'이라는 제목의 <론리플래닛> 기사를 보고 무작정 계획한 여행.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네덜란드를, 좋은 계절 다 놔두고 칼바람 부는 겨울 비수기에 둘러보는 여행. 이따금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지만(TPO에 맞지 않는 유니클로 점퍼라든가, 갑자기 찾아온 편도염이라든가) 대체로 여유롭고 편안했다. 


사실 나야말로 여행을 정신개조 부트캠프로 이용하는 사람이었다. 첫 책 <홋카이도 보통열차>에서 나는 무려 '마음의 각도가 1도 바뀌었다'는 문장으로 책을 끝맺었다. 그 말은 당시의 진심이다. 그리고 '그러다 360도 빙 골아서 제자리로 돌아온다우'하고 입을 삐죽이는 것은 지금의 진심이다. (10쪽) 


저자는 여행을 하면 인생이 바뀌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변화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그야 여행지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고 영혼이 떨리는 경험을 하면 인생이 바뀔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 복귀하자마자 여행지에서의 만남이나 깨달음 따위 모두 잊고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저자도 한때는 여행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여행을 하면 우울증이 낫고 '더 나은 자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지금은 다르다. 더는 여행을 통해 자신이 바뀔 거라고 기대하거나 억지로 의미를 붙이려 애쓰지 않는다. 그저 푹 쉬고 잘 먹고 멋진 풍경 감상하며 놀다 오면 그뿐이다. 


그런데 이 또한 수차례 여행을 다녔기에 - 홋카이도도 일주해봤고 유레일패스로 유럽도 돌아봤기에 - 얻은 깨달음이 아닐까. 여행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여행이 인생을 바꾸는 체험을 해볼 수 없지만 여행이 인생을 바꾸지 못하는 체험 또한 해볼 수 없다. 그러니 부디 아무 의미 없고 가치 없(다고 저자는 생각하)는 여행일지라도 계속 여행하며 글 써주셨으면. 홋카이도 보통열차 여행과 유럽 기차여행이 제 버킷리스트 최상위권에 있는 건 전부 오지은 저자님 덕분입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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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진가
모데라타 폰테 지음, 양은미 옮김 / 문학세계사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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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데라타 폰테는 16세기 베네치아의 시인이자 작가다. 폰테가 태어난 건 엘리자베스 1세가 왕위를 계승하기 3일 전, 셰익스피어와 말로가 태어나기 9일 전이다.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 수녀원과 외할머니 집에서 성장한 폰테는 일찍이 탁월한 명석함으로 주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일찍부터 글을 썼고 1981년 26세가 되던 해에는 첫 책 <플로리도로>를 출판했다. 하지만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급격히 생산력이 저하되었고, 이 책을 끝으로 1592년 서른일곱의 나이에 네 번째 아이를 분만하던 중에 사망했다. 


이 책 <여성의 진가>는 1980년대 전까지 사실상 읽히지도 않고 알려지지도 않았다. 이 책은 알려지자마자 무서운 속도로 전 세계에서 출판되고, 연극으로 만들어져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과 미국에서 상연되었다. 이 책이 그토록 단기간 내에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은 것은, 이 책에 나오는 여성들의 대화와 관심사가 놀라울 정도로 현대 여성들의 그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드리아나, 버지니아, 레오노라, 루크레티아, 코넬리아, 코린나, 헬레나 이렇게 일곱 명의 여성이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는 상황에서 시작된다. 이들은 나이도 신분도 결혼 여부도 저마다 다르지만, 아버지, 남편, 아들, 형제를 포함하는 남자라는 존재에 대해 적지 않게 실망했다는 것은 동일하다. 이들은 아버지들이 왜 같은 자식인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지, 남편들이 왜 자신들의 배우자이자 자식들의 어머니인 아내를 무시하거나 학대하는지, 아들들이 왜 자신들을 낳아주고 길러준 어머니를 증오하거나 냉대하는지에 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눈다. 이는 마치 현대의 여성들이 커뮤니티나 SNS에서 자신들의 아버지와 남편, 아들, 남자 형제를 비난하는 대화를 나누는 것을 연상케 한다. 


"우리는 이미 과거에 너무 많이 닥치고 살았어요. 더 많이 닥칠수록, 더 고약한 것만 얻게 됐죠." (18쪽) 


"남자들은 결혼하고 나서야 비로소 몇몇 장점들을 갖게 되죠. 즉 그들이 자신들의 아내와 연합하게 될 때만 말이에요." (19쪽) 


"아직도 많은 남성들이 이 세상을 편협한 방식으로 바라보고 있어요. 자신들이 여자들보다 우월하게 창조되었다는 근거 없는 오류에 단단히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독재자처럼 야만스럽게 여자들을 다루는 것이 정당하다고 믿고 있죠. 하지만 스스로의 오류를 납득할 수만 있다면, 자신들이 고수해 왔던 방식들을 바꿀 수밖에 없을 거예요." (22-3쪽) 


저자는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그릇되고 어떤 식으로 여성의 삶을 좀먹는지를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나아가 저자는 남자들이 스스로를 여자에 비해 우월하다고 믿는 것이 군주제를 비롯한 독재 체제와 관련이 있다는 점도 지적한다. 남자들이 여성들을 향해서만 흉포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며, 남성들 사이에서조차 살해나 절도 같은 온갖 악행들이 저질러지는 것으로 보아 이는 남성과 여성의 권력관계로 인한 문제가 아니라 남성 자신의 문제라는 지적도 통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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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 우주인
야로슬라프 칼파르시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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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봄. 체코의 과학자 야쿠프 프로하스카는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관측된 적 없는 혜성 하나가 태양계로 진입하면서 거대한 먼지 폭풍을 일으킨 '초프라' 현상을 연구하는 사명을 띠고 체코 최초의 우주비행사로 선발된다. 900만 킬로그램이나 되는 우주왕복선 얀후스 1호가 하늘을 향해 폭발적으로 솟구치자, 함께 카운트다운을 하던 사람들은 만세를 부르고 환호성을 지르는데 정작 야쿠프는 '내가 어쩌다 이 빌어먹을 우주선에 타게 된 거지?'라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하다. 대체 그는 어쩌다 이 '빌어먹을' 우주선에 타게 된 걸까? 


체코계 미국인 작가 야로슬라프 칼파르시의 장편소설 <보헤미아 우주인>은 똑같이 우주가 배경인 소설 <마션>이나 영화 <그래비티>, <인터스텔라> 등과는 결이 다르다. 체코 역사상 최초의 우주비행사로 선발된 야코프는 실상 우주를 탐사하는 것에도, 탐사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해 영웅이 되는 것에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야코프는 우주로 떠난 지 며칠 안 되어 사랑하는 아내 렌카가 자신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영원히 함께 하기로 약속한 남편이 자신과는 상의도 하지 않고 자살이나 다름없는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자신을 떠난 아내 렌카를 원망하면서도 여전히 원하는 야쿠프는, 급기야 '하누시'라는 우주인을 만나 그와 함께 끊임없이 대화한다. 


야쿠프는 자신이 왜 그토록 어리석고 무책임한 선택을 했는지 사실 잘 알고 있다. 야쿠프의 아버지는 체코가 공산주의 국가가 되는 데 일조한 부역자이자, 독재에 저항하고 자유를 꿈꾸는 이웃들을 고발한 밀고자였다. 야쿠프는 체코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됨으로써 역사의 죄인으로 기록된 아버지의 이름을 바로잡고, 아버지로 인해 몰락한 집안을 일으켜 세우려 하지만 쉽지 않다. 과연 야쿠프를 괴롭힌 건 타인일까, 자기 자신일까. 우주에서 펼쳐지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코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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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일상은 안녕한가요 - 그저 좋아서 떠났던 여행의 모든 순간
안혜연 지음 / 상상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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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립풀 후쿠오카>, <이지 시티 방콕>, <버스 타고 주말 여행>, <버스 타고 제주 여행> 등 다수의 여행서를 집필한 여행 작가 안혜연의 여행 에세이 <당신의 일상은 안녕한가요>가 출간되었다. 


저자가 여행 작가가 된 지는 올해로 6년째다. 서른까지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저자는 책을 한 권만 쓰고 다시 회사에 몸담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책이 두 번째 책으로 이어지고, 두 번째 책이 세 번째, 네 번째 책으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전업 작가가 되었다. 저자로선 뿌듯하고 남들에겐 부러움을 살 만한 상황이지만, 때로는 소속이 없는 프리랜서로 산다는 게, 그것도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도는 여행 작가로 산다는 게 불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길 위에 서면 행복하고 즐겁다는 저자의 이야기가, 마찬가지로 소속 없이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으로서 - 저자만큼 유명하지 않고 잘 벌지도 않지만 - 공감이 되고 위안이 되었다. 


이 책에는 저자가 그동안 수많은 나라와 도시를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에 관한 짧은 글과 사진이 담겨 있다. 저자는 어느 도시든 낯선 여행지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시장으로 간다. 파리에 도착해 제일 먼저 발 들인 곳도 시장이다. 시장에는 멋들어진 여행 가이드북에는 나오지 않는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다. 그들이 무엇을 먹고 사는지, 어떻게 물건을 팔고 흥정하는지, 발길 닿는 대로 둘러보다 보면 자기도 모르는 새에 그 풍경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저자는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해보고 싶은 여행자에게 에어비앤비를 강력히 추천한다.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면 낯선 여행지에 우리 집이 생긴다. 로비와 복도에 지켜보는 눈이 없어 드나들기 편하고, 부엌살림이 갖춰진 주방이 있어 요리하기도 좋다. 100여 개의 도시를 에어비앤비로 여행한 에어비앤비 '덕후'로서 저자가 터득한 에어비앤비 고르기 꿀팁도 나온다. 첫째는 자연광이 끝내주는 환한 집일 것. 둘째는 지하철역이나 버스정류장이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있을 것. 이 밖에 몇 가지 팁이 더 있는데 그건 책에서 직접 확인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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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라이즈
J. G. 밸러드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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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히들스턴,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영화 <하이 라이즈>는 영국을 대표하는 SF 작가 J.G. 발라드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원래는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영화를 보려고 했는데,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영화를 먼저 보고 나서 소설을 읽게 되었다. 구성과 내용이 워낙 독특한 작품이라서 원작 소설이 영화에 거의 그대로 반영되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다른 구석이 많아서 놀랐다. 


영화는 로버트 랭(톰 히들스턴)이 화자인 데 반해, 소설은 로버트 랭, 리처드 와일더(루크 에반스), 앤서니 로열(제레미 아이언스)이 거의 동등한 비중을 차지하는 화자다. 호화로운 초현대식 고층 아파트 건물에서 일어나는 계층 간 갈등과 폭행, 살인, 치정 등을 그린 이 작품에서 앤서니 로열, 로버트 랭, 리처드 와일더는 각각 상층부, 중층부, 하층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목도하며, 각각 상류층, 중류층, 하류층의 입장을 대변한다. 각각 다른 계층인 사람들이 한 건물 안에서 얽히고설키면서 발생하는 지옥도 내지는 수라도는 영화나 소설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영화에서 로버트 랭은 리처드 와일더의 아내인 헬렌, 앤서니 로열의 정부인 샬롯과 정을 통하는 데 그친 반면, 소설에서 로버트 랭은 친누나 앨리스와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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