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고 싶은 기분 - 요조 산문
요조 (Yozoh) 지음 / 마음산책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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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를 읽는 기분은 좋아하는 친구가 보내준 편지를 읽을 때의 기분과 비슷한데, 이 책을 읽을 때의 기분이 그랬다. 그동안 잘 지냈는지 안부가 궁금하기도 하고, 새롭게 만난 사람은 누구인지, 특별히 좋았던 일은 무엇인지 시시콜콜 묻고 싶고 듣고 싶은 기분... 


<실패를 사랑하는 직업> 이후 1년 만에 출간된 이 책에는 뮤지션이자 작가, 방송인, '책방 무사'의 운영자', <아무튼, 떡볶이>를 쓴 자타 공인 떡볶이 마니아, 달리기 중독자, 채식 지향인, 제주와 서울을 오가며 생활하는 노마드인 저자의 일상이 반영된 글들이 주로 담겨 있다. 


생각해 보면 저자는 여러 히트곡을 낸 뮤지션이고 방송에도 종종 출연하는 연예인인데, 팬에게 사인을 해줄 때 눈여겨 보는 점이나 큰 공연의 진행을 맡았던 경험 등을 읽을 때에야 비로소 '아 맞다 이 언니 유명한 사람이지'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ㅎㅎ 그동안 저자의 책을 읽거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친근감을 쌓았기 때문일까. 


채식 지향인이지만 몇몇 고기 요리는 꿈에 나올 정도로 먹고 싶고, 사주를 안 믿는다고 말하면서 종종 사주를 보러 다니고, 책을 읽고 싶은 마음과 눈 건강을 지키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는 이야기 등을 읽을 때는 (그렇게 유명한 사람인데도) 나와 같은 시대, 같은 나라에 사는 평범한 사람이구나 싶었다. 


택시에서 안 좋은 경험을 한 적이 몇 번 있어서 택시 타는 걸 꺼렸는데, 택시 에피소드를 읽고 택시에 대한 인상이 조금 바뀌기도 했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과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일화도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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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토당토않고 불가해한 슬픔에 관한 1831일의 보고서 문학동네 청소년 60
조우리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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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사랑>을 쓴 조우리 작가가 2022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처음에는 <오! 사랑>을 쓴 조우리 작가가 사랑 아닌 다른 주제에 대해 쓰다니 신선하다, 라고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오! 사랑>과 비슷한 면이 없지 않고, 돌이켜 보면 <오! 사랑>도 그저 로맨틱한 소녀들의 사랑 이야기였던 것이 아니라 각자의 원가족에서 상처를 받은 소녀들이 서로를 만나 상처를 딛고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게 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중학교 2학년 남학생 현수는 '센터'에 다닌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바쁘시고 어머니는 몸이 안 좋아서 현수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수네 가족이 이렇게 된 건 5년 전의 어떤 사건 때문이다. 여름 휴가로 찾은 호텔에서 여섯 살 여동생 혜진이 실종되었다. 현수의 부모는 바로 경찰에 신고하고 미아를 찾는 방송에도 출연하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며 딸을 찾았지만 여태 찾지 못했다. 그 여파로 아버지는 직장을 잃고 어머니는 정신을 잃고 현수는 가정을 잃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현수네 가족을 가난하다고 무시하고,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혹시라도 불행이 옮을까 봐 피한다. 현수 또한 사람들에게 마음의 문을 닫은 지 오래였다. 입만 열면 <서프라이즈> 내용을 읊는 센터장 선생님도, 자꾸만 따라 다니는 같은 반 여학생 수민에게도 절대 곁을 주지 않으려 했다. 그런 현수에게 어느 날 아버지가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을 한다. 더 이상 혜진을 찾지 않을 생각이니 현수 너도 그만 혜진을 잊으라고. 


아버지의 말에 '버튼'이 눌린 현수는 그 날부로 혜진 찾기를 다시 시작한다. 혜진이 다녔던 유치원 원장 선생님과도 만나고, 혜진이 실종된 호텔 매니저에게도 연락한다. 혜진의 친구와 친구 엄마와도 만난다. 그런다고 5년 동안 못 찾은 혜진을 바로 찾게 되는 건 아니지만, 덕분에 현수는 5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혜진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고, 아직도 혜진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선생님과 친구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상실과 애도에 대한 책이나 영화가 많지만, 이 책만큼 나에게 위로를 준 책을 만나지 못했다. 제목이 너무 길고 외우기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다 읽은 지금은 일부러 이런 제목을 지은 의미가 있구나(특히 1831이라는 숫자)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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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맛
최유안 지음 / 민음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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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안 작가의 <백 오피스>를 읽고 너무 재미있어서 작가의 다른 책을 찾다가 이 책을 알게 되어 구입했다. <백 오피스>가 일하는 여성들에 관한 이야기였기 때문에 이 책도 일하는 여성들에 관한 내용이겠구나 하는 짐작은 했는데, <백 오피스>보다 훨씬 더 다채로운 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만족도도 훨씬 더 컸다. 최유안 작가의 책이 현재 소설집 1권, 장편소설 1권이 나와 있는데(앤솔로지는 세 권 정도 더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책을 (더 빨리)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에서 좋았던 점 첫 번째는 여성들의 일을 다양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난민 구호 활동을 하는 국제기구에서 일하기도 하고, 경찰 임용 시험해 합격해 지방에 있는 파출소로 발령받기도 하고, 기업 컨설팅을 하거나 학원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다양한 일을 하는 여성들의 애환을 보여준 점이 좋았다. 


두 번째는 일하는 여성들이 겪을 수 있는 상황을 다양하게 보여준다는 점이다. 일하는 여성들이 겪는 문제는 단순히 업무에 관한 것이나 인사고과에 관한 것만이 아니다. 회사 여직원의 성관계 장면을 불법 촬영한 동영상이 인터넷 상에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결혼 몇 년 만에 어렵게 임신이 되었는데 회사에 알려지면 불이익을 받을 것 같을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새로 온 팀장과 내 부하 직원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있는 듯할 때에는...? 


위에 언급한 사례들 말고도 훨씬 더 인상적인 이야기도 있는데,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작인 <내가 만든 사례에 대하여>가 그렇다. 난민 구호 활동에 관한 논문을 쓰는 '나'는 조사를 위해 레스보스 섬에 갔다가 우연히 한 남매와 알고 지내게 된다. '나'는 활동가이자 연구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남매와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하지만, 얼마 후 선배 활동가들로부터 제지를 당하고 연구자로서 이들의 사례를 자신의 논문을 완성하는 데 이용한다. 


좁게는 난민 구호 활동 같은 선행이 일이나 연구의 대상이 될 때 발생할 수 있는 딜레마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넓게는 어떤 사람이 일을 하면서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과 직업인으로서 지켜야 하는 의무, 달성해야 하는 목표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야기로도 읽힌다. 돌이켜보면 <백 오피스>도 일하는 여성들이 공적인 역할과 사적인 자아 사이에서 괴로워하는 이야기였다. 마지막에 실린 <집 짓는 사람>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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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생활자의 책장 - 아주 오랫동안 나에게 올 문장들
김다은 지음 / 나무의철학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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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생활자의 책장>(이하 '혼밥')은 오랫동안 꾸준히 듣고 있는 책 팟캐스트들 중 하나다. 진행자 김다은 님(구 CBS 라디오 PD, 현 시사인 기자)과 관심사나 성향이 비슷하기도 하고(인권, 동물권, 채식 등등) 게스트 분들도 좋고 코너들도 재미있어서, 새 에피소드가 업데이트 될 때마다(업데이트 주기가 일정하지 않고 다소 뜸하지만, 아쉬울 때는 예전 회차를 다시 듣는다) 기쁜 마음으로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2016년 첫 방송 이후 4년 만인 2019년에 출간된 책 <혼밥생활자의 책장>도 오래 전에 구입해 여러 번 읽었다. 이 책은 혼밥에서 소개한 책 이야기가 대부분인데, 개 키우고 산 좋아하는 직장인이었던 저자가 느닷없이 혼밥을 시작한 계기, 소개할 책을 고르는 기준, 방송에서 미처 나누지 못한 책에 대한 감상, 책과 라디오 같은 아날로그 미디어에 대한 생각 등이 나와 있어서, 혼밥을 오랫동안 즐겨들은 애청자인데도 이 책을 읽고 새롭게 알게 된 점이 많다. 


다시 읽고 싶어진 책, 팟캐스트를 들을 때는 못 읽었지만 이제라도 읽고 싶어진 책도 많다. <아주 작은 개 치키티토>는 저자가 혼밥에서 소개한 책 중에 가장 좋았다고 강추하니 꼭 읽어봐야겠고, <필경사 바틀비>와 <모비딕>도 시간을 들여 찬찬히 읽어보고 싶다. 2019년 이전에 다룬 책들 위주라서 2019년 이후에 혼밥에서 다룬 책들에 관한 책도 나왔으면 좋겠다(하지만 작가님이 너무 바빠서 안 될 거야 아마...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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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도관의 눈
요코야마 히데오 지음, 허하나 옮김 / 폭스코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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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빛의 현관> 등으로 잘 알려진 일본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의 미스터리 단편집이다. 요코야마 히데오는 오랜 기자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경찰이나 정부, 법원 등 공적 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 실린 여섯 편의 단편 모두 경찰서, 법원, 관청, 방송국, 신문사 같은 공공기관 또는 언론사가 배경이고, 등장 인물도 경찰, 분쟁 조정위원, 비서, 프리랜서 작가, 기자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미스터리 단편집인 만큼 각각의 단편에 살인이나 자살 방조, 해킹 같은 범죄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범죄 자체보다는 각자의 일터에서 열심히 일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범죄를 의도하지 않아도 어떤 식으로 범죄와 연루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둔다. 대표적인 예가 <오전 다섯 시의 침입자>이다. 현경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중년의 경찰이 어느 날 현경 홈페이지가 해킹을 당한 것을 발견한다. 접속자 수가 적기는 해도 윗선에서 알면 불호령이 떨어질 터. 주인공 경찰은 윗선이 알기 전에 자기 선에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조용한 집>도 비슷하다. 지방신문 편집부에서 일하는 전직 취재 기자가 어느 날 실수로 오보를 낸다. 가뜩이나 회사 분위기가 안 좋은데 자신이 오보를 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심한 문책을 당할 게 분명하다. 걱정이 된 주인공 기자는 남들이 알기 전에 바로 잡으려다가 뜻밖에도 살인 사건에 연루되고 만다. 표제작 <교도관의 눈>에는 형사를 꿈꾸며 경찰이 되었으나 교도관으로 재직한 인물이 나오는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퇴근 후 혼자서 형사 놀이를 하다가 진짜 범죄를 맞닥뜨리는 전개가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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