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품절


원제가 '투우사의 이름'이라고 한다. 이렇게 번역을 했으면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물론 주인공의 이름이 후안 벨몬테인데, 이는 유명한 투우사의 이름이라고 한다. 작중에서 이름을 댈 때마다 사람들은 투우사의 이름을 들먹인다.


주인공이 왜 투우사의 이름을 같고 있을까? 투우가 무엇인가? 소와 정면으로 맞대면해서 결국 소의 등에 창(칼)을 꽂아 소를 죽이는 일을 하는 일 아닌가. 요즘은 동물학대라고 해서 많이 비판받고 있는데, 그 점은 언급하지 않더라도 투우는 한쪽의 목숨을 건 대결이다. 물론 사람이 죽는 경우는 드물다. 한쪽이 당하는 일. 결과가 잘 바뀌지 않는 일.


그렇다면 귀향은 무엇인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일.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예전의 생활을 되찾는 일까지 포함한 장소의 이동이 귀향이라고 한다면, '귀향'도 쉽지 않다. 소설 속 벨몬테 역시 제대로 된 귀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배경은 독일과 칠레다.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이 두 나라가 '나치'에 의해 연결이 된다. 나치 부역자들이 남미로 많이 피신을 했었으니,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소설은 이 두 나라를 연결짓는 고리로 나치 시절에 금화를 훔쳐 달아난 독일인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나치 치하에서 경찰이었지만 나치에 동조한다고는 할 수 없다. 나치가 숨겨둔 금화를 훔쳐 달아나려 한다. 어디로? 남미로...칠레로...


하지만 이들은 성공 단계에서 한 사람만 빠져나가고 한 사람은 잡히게 된다. 잡힌 사람이 끝까지 동료의 행방을 불지 않고 세월은 흘러 흘러 사회주의권이 붕괴되고 사건은 다시 시작된다. 이 금화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각자 자신들을 도와줄 사람을 고용한다.


그러니 소설은 두 축으로 시작한다. 금화를 가운데 두고 이를 찾기 위해 나서는 나치와 관련이 있는, 아니면 구동독 정보부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과 금화를 찾으려는 보험회사. 


갈린스키가 구동독 정보부를 대표한다면 벨몬테는 보험회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갈린스키가 구동독 정보부를 대표하는 것은 맞지만 벨몬테는 보험회사를 대표한다고 할 수 없다. 그는 귀향을 꿈꾸기 때문이다.


남미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게릴라 출신인 벨몬테. 그는 고문으로 말을 잃은 베로니카를 치료해준다는 조건에 일을 맡고 나선다. 그에게는 금화를 찾는 일은 귀향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귀향하는 곳이 독일이든 칠레든 아니면 그가 조건으로 내건 베로니카를 치료할 수 있는 덴마크 건 그것은 상관이 없다.


즉, 갈린스키에게 금화는 자신의 옛 영화를 대변하는 존재라면, 벨몬테에게 금화는 베로니카와 함께 귀향할 수 있게 해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금화를 사이에 두고, 이들은 투우처럼 대치하게 된다.


원제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승자를 예측할 수 있다. 벨몬테가 승자가 된다. 그렇지만 그의 귀향이 이루어지는지는 알 수 없다. 칠레가 민주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완전한 민주화라고는 할 수 없다. 그 점을 세풀베다는 벨몬테를 빌려 이렇게 말하고 있다.


'조국은 민주주의 체제 하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민주주의  체제가 <회복되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분 명 입 밖으로 토해 내지 않았다. 칠레가 민주주의 체제에 <있다>는 말은 그것이 좋은 길로 나가고 있다거나 , 그 반대로 그 길에서 당장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153쪽)  


자, 아직 진행 중이다. 그러니 벨몬테의 귀향도 진행 중이다. 그가 베로니카에게 가는 것으로 소설이 끝나고 있는 것은 그의 귀향이 진행 중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인 사실에서부터 남미의 민주화 투쟁 시기를 금화를 둘러싼 두 인물을 통해서 소설은 긴박하게 전개된다. 


금화를 먼저 찾기 위한 여정, 두 사람에게 다른 의미를 지닌 귀향. 그렇지만 이렇게 긴박하게 진행되는 소설 속에서도 정지된 장면이 등장한다. 아니, 정지되었다기보다는 이런 쫓고 쫓기는 삶에서 한발 비껴선 이들의 삶.


금화를 숨긴 독일인이 숨어 살던 곳, 그곳에 살던 사람들... 이들은 "그 빌어먹을 것들을 어서 가져가시오."(212쪽)라고 한다. 이들에게는 과거의 금화, 또는 현재의 삶을 더욱 부유하게 해줄 금화는 필요없다. 그들에게는 평화롭게 살아가는 자신들의 삶이 더욱 소중하다. 그러니 그 금화를 빨리 갖고 사라지라는 말을 한다.


이들의 구성원이 깜빡깜빡하는 노인이나 듣지 못하는 여인들과 함께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즉 투우처럼 피비린내 나는 일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사람들.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고 남들을 돕고 사는 사람들. 


세풀베다는 작품의 말미에 이런 삶을 보여준다. 결국 베로니카에게 가면서 벨몬테가 생각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니 벨몬테가 베로니카와 만나는 순간, 그의 귀향은 완성될 수 있다.


'나의 사랑 베로니카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삶 앞에서 왜 죽음의 황금빛 섬광들만 바라보았는지를 생각하면서 걸어가고 있었다.'(213쪽)   


그렇다. 여기서 '투우'는 끝나고 '귀향'이 시작되며 완성된다. 죽음의 황금빛 섬광들을 과거로 여기고 이제는 삶에 충실하려는 모습... 벨몬테가 마지막에 만났던 사람들의 삶 아니던가.


세풀베다의 소설,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몇 권 읽을 때마다 좋은 느낌을 받는다. 재미도 있고, 생각할거리도 풍성하고...다른 작품들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2020년에 세상을 뜬 세풀베다를 기리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이미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미루고 미루다가 2023년이 다 갈 때쯤 되어서야 읽은 소설집. 젊은작가상이라는 이름에 맞게 등단한 지 얼마되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집이다. 그런데도 이미 소설집을 여러 권 작가들이 많다. 문단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고 받아들여도 되겠지.


또 최근 소설의 추이를 알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는 점에서 가끔은 의무적으로라도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는데...


시와 소설의 홍수라고 해야 하나? 인문학이 죽어가고 있는 시대에, 문학 역시 인문학의 한 분야이니 죽어가고 있다고 해야 하는데,출판 분야를 보면 인문학이든 문학이든 참 많은 책들이 나온다. 그 많은 책들이 독자들에게 다가가고 있는지 물으면 그렇다라는 대답을 하기 힘들지만.


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도 마찬가지다. 소설의 홍수 속에서 그래도 의미 있다고 여겨지는 작품들을 선정해 책으로 발간했으니 많이 읽혀야 하는데... 많은 소설들이 많은 독작에게 가 닿지 못하고 작가와 평론가들의 세계에서만 머무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이 중요한데, 요즘 학교 교육을 보면 소설이나 시를 수록한 교과서는 별로 없다. 


오로지 대학 입학을 위해서 국어(문학)공부를 한다고 하면 수능에서 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다. 문학보다는 다른 글들이 많이 실리고 문제도 많이 나오니, 이제는 학창 시절에 문학을 공부하는 비중도 적고, 그렇기 때문에 학교를 통해 문학과 만나고, 그 만남을 지속하는 경우도 드물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답은 없다. 소설이 사람들의 마음에 닿아야 하겠지. 요즘처럼 인터넷이 발달한 시대에는 평론가들의 평론보다는 일반 사람들의 말이, 글이 더 소설을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게 한다.


즉, 소설은 전문가들의 홍보가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홍보를 통해서 널리 퍼지게 되는데, 일반 사람들이 홍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려야 한다. 야, 이건 우리 이야기구나! 하거나 완전 내 이야기네 하는 마음이 들게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젊은 작가상'은 일반인들의 마음에 다가갈 수 있는 여지를 더 많이 두고 있다고 하겠다.


첫소설인 이미상이 쓴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은 그런 점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설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된다. 물론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이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하게도 된다. 그들의 삶이 바로 소설이라고 보면서...


목경은 우리와 비슷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즉 목경을 평균적인 삶에 놓고 보면 모래 고모와 무경은 평균에서 벗어난 삶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단편소설이라 무경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자세히 나와 있지는 않지만 무경은 사회 생활을 거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래 이모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변변한 직업을 갖지 않고 가족을 돌보면서 생활을 하는 모래 이모, 그러나 모래 이모는 가끔 가출을 감행한다. 그 가출이 다른 가족에게로 가는 경우가 많지만 나중에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결말로 간다. 무경은 반대다. 무경은 가출을 하지 않는다. 무경은 원가족을 벗어나지 않는다. 원가족이 무경의 삶을 책임지게 한다.


이와는 다르게 목경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그냥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가려는 사람... 그런데 소설은 '모험'이라는 말을 썼다. 어떤 삶이든 모험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의 삶도 하루하루가 모험이다. 이런 평범에서 벗어난 삶 역시 모험이다. 작가는 어떤 모험이 바람직한지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야기할 수도 없다. 우리네 삶 자체가 모험이라면...


그렇다면 소설 역시 이런 삶을 표현해야 한다. 이런 삶이 표현된 소설 역시 모험이다. 어떤 소설이든 모험일 수밖에 없다.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한 모험... 삶의 모험과 소설의 모험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겹쳐졌다.


"단편소설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한 포인트를 융기시킨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 불쑥 솟은 한순간 아래 모든 문장과 장면이 깔리게 되는 거죠. 좀 비민주적이지 않아요?"(41쪽)


소설 속 동생인 작가가 하는 말이다. 그래서 한 포인트가 융기되지 않는 소설을 쓰기 때문에 인기가 없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런 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또는 쓰지 못한다고 하고 있으니, 우리 삶을 대비해 보자.


자신의 삶 속에서 어떤 한 순간이 융기했다면 나머지 삶들은 어떠했을까? 그 삶들은 융기한 한 순간을 위해 존재했을까? 아니다. 삶은 융기했든 평평했든 다 소중한 삶이다. 어떤 삶이든 다 모험이고, 순간순간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긴장된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니 삶에서 어떤 한 순간만을 만들어내려고 할 필요가 없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의 삶도 그렇다. 내 삶과 다른 사람의 삶을 비교하면서 저 사람의 삶은 저렇게 훌륭한데 왜 내 삶은 이다지도 형편없을까 라고 할 필요가 없다. 아니, 해서는 안 된다. 돋보이는 삶과 대비되는 보통의 삶들이 소중하지 않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삶도 소중하지 않은 삶이 없다. 그리고 이 세상에 나왔다는 자체만으로 삶은 모험이고, 누구에게나 소중한 체험이다. 그것을 알아줄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삶의 여정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소설을 비롯한 문학도 마찬가지다. 특별히 융기한 작품이 아니라 쓰인 한편한편이 모두 소중한 작품이고, 그 작품들이 자신을 알아줄 존재를 찾아 모험을 하고 있다는 생각. 이미상 소설을 읽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작품집에 실린 다른 작품들도 여러 생각을 하게 해주고 있으니 이들의 모험을 만나볼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목이 도발적이다. 전쟁과 강간이 한꺼번에 나오는 시집 제목이라니...


  실제 전쟁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로 언론을 통해 소식을 듣게 된다. 사실 강간도 전쟁이다. 한 성이 다른 성에게 일방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전쟁.


  그러니 전쟁 중이나 강간은 나중에 이야기하자?는 말은 성립이 안 된다. 둘 다 전쟁이고 범죄이기 때문이다.


  제목이 된 말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러시아 군인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 국가가 흔들리는데 성폭력 문제가 그렇게중요한가라는 시선에 대한 인나 소우선 우크라이나 의원의 말이라고 한다. (이 시집 29쪽 주 참조)


시인은 그 말을 행을 바꿔 시에 가져왔다. 전쟁 중이라고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으면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전쟁 범죄다. 공소시효를 두어서는 안 되는.


시인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앞부분 생략) ... 전시 강간을 운 없는 개인이 겪은 / 안타까운 작은 일 정도로 치부해선 안 된다. / 분명히 직시해야 할 건 / 러시아가 훼손하고 있는 것이 / 인간이라는 점이다. / 전쟁은 추상적인 그 무언가가 아니다 . / 인간과 세계를 바꾸는 구체적인 사건이다. ... (뒷부분 생략)


- 하종오, 전쟁 중이니 강간은 나중에 이야기하자?. b판시선. 2023년. 28쪽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만이 아니다. 시집에는 세 나라(시를 읽다 보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공격하고 있으니... 이를 전쟁이라 하기에는 좀 그렇다. 전쟁이 아니라 학살이라고 하는 편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명백한 전쟁 범죄다)가 나온다.


우크라이나, 미얀마, 아프가니스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지 시집을 통해 절절히 느낄 수 있다.


시인은 먼나라 사람들이 겪는 일을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지 않는다. 바로 우리가 함께 겪는 고통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우리도 전쟁을 치르지 않았던가. 또한 전쟁이라고 할 수 없지만 학살을 겪지 않았던가. 민주화를 위해 많은 사람이 희생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시인에게는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민주화 운동이라든지, 전쟁, 학살이 남 이야기 같지 않다.


따라서 시인은 4월에 우리의 4월과 외국의 4월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겪는 고통이 바로 우리의 고통임을.


하여 시집의 마지막 시에서 시인이 꿈꾸는 나라가 나온다. 그런 나라, 우리가 원하는 나라여야 한다.


  난민 국가

 

각국 난민이 모여 국가를 세운다면

국호를 난민국이라 지을 것이다


난민국에는 어디에 가도

푸성귀가 포기포기 자라고

과일이 주렁주렁 열리고

곡식이 알알이 익어서

식량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독재자가 나오지 않는다고

내전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장담하는 난민만 살 수 있다


난민국에선 누구를 만나도

좀체 눈치를 보지 않고

일절 말다툼하지 않고

절대 등 돌리지 않아

사람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니

모두모두 이웃이 된다고

모두모두 친구가 된다고

장담하는 난민만 살 수 있다


어느 정도 이상 부유해지지 말고

어느 정도 이하 가난해지지 말자는 약속을

건국이념으로 삼는 국가가 될 것이다


하종오, 전쟁 중이니 강간은 나중에 이야기하자?. b판시선. 2023년. 129-13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노랜드
천선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편의 소설이 묶여 있다. 발표 시기와 지면에 따라 내용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전체적으로 통하는 무엇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읽으면서 그 무엇을 찾는 일이 읽기를 더 재미있게 한다.


읽는 사람마다 '그 무엇'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내게 이 소설집에서 찾을 수 있는 '그 무엇'은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가는 경계'다.


첫소설에서도 그렇다. 물론 천선란 소설이 SF소설이라는 평을 듣는 만큼 외계생명체의 존재나, 지구에서 살아가는 생명과는 다른 존재들이 등장하지만, 그런 존재들이야말로 이 세계에서 저 세계를 인식하게 해주는 문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즉, SF소설 자체가 경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실과 공상의 경계라고 하면 허황된다는 느낌을 주니까, 이 세계와 저 세계의 경계라고 하면 좋을 듯하다. 


처음에 실린 '흰 밤과 푸른 달'에서는 바로 지구를 떠나는 존재들이 나온다. 다른 생명체와 싸우기 위해 더욱 강하게 진화(?)된 인물들. 이들은 전쟁이 끝나자 지구인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외계 생명체가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지만, 외계 생명체가 없는 지구에서 위협적인 존재가 된 이들에게 선택지는 외계로 나가는 것이다.


자, 이들은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나가야 한다. 자발적이든 강요가 되었든 이들은 다른 세계를 향해 갈 수밖에 없다. 지구에 사는 우리들이 지구 밖으로 눈을 돌리는 일... 그런데 지구가 살 수 없어진다면, 당연히 우주로 가야 한다.


지금도 환경, 생태 문제로 지구가 견딜 수 없게 된다면? 하고 화성으로 이주를 꿈꾸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우주로 날아가는 새'라는 소설을 보면 지구를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온다. 이미 인간에 의해서 지구를 떠날 수밖에 없던 새들과 연결지어, 작가는 인간 역시도 그렇게 우주로 나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푸른 점'이라는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을 연상시키는 소설. 그러나 태양계를 벗어나는 보이저호에서 보내온 사진은 푸른 점(지구)는 없다.


소설에서는 지구는 이미 푸른 점이 아닌 보이지 않는 행성일 뿐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푸른 점이어야 한다. 즉, 진실보다 믿음이 중요하다(106쪽)는 인물의 말처럼, 사람은 믿음을 잃지 않아야 살아갈 동력을 지니게 된다.


그렇다면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나아갈 때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진실이 아니라 믿음이다. 바로 자신들의 믿음을 공유하는 것. 그런 믿음의 공유가 인간들을 지구가 아닌 다른 우주로 나아가게 할 수도 있다. 우리가 여전히 우주에서 지구와 같은 행성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듯이. 또 지구와 다른 행성에서도 살 수 있다고 믿고 있듯이.


우주라는 공간만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나아가는 것은 인간 내부에서도 가능하다. 공간이 아니라 인간에게서도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다. 자, 무엇이 그 사람을 결정하는가? 내가 나임을 무엇으로 증명하는가? 나와 남의 경계는 무엇인가? 또 남이 내가 될 수 있는 경계는 무엇인가? 


작가는 '기억'을 말하고 있다. '옥수수밭과 형'이란 소설에서 '사람은 다른데 똑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이란 주인공의 질문에 형은 '그래도 같은 사람이지.'(117쪽)라고 답한다. 그러면서 소설 속의 나는 여러 형을 만난다. 물론 여러 형을 동시에 만나지는 못한다. 같은 기억을 지니고 있는 형은 순차적으로 내게 나타날 뿐이다. 그리고 그 형들은 내게는 형이 된다.


같은 사람인데 '기억'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으면?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옥수수밭과 형'에서는 다른 인물들이 모두 형이 되는 남이 내가 되는 문이 열렸다고 한다면, '제, 재'라는 소설에서는 내가 남이 되는 문이 열렸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육체 안에 있는 다른 기억을 지니고 살아가는 '제와 재'. 이들은 같은 인물일까? '제'에게는 '재'는 다른 사람일 뿐이다. 즉 제의 세계와 재의 세계는 다른다. 그렇지만 이들은 한 몸에 있다. 이 세계와 저 세계가 한 몸에서 공존하고 있는 것.


이를 좀더 확장한 소설이 '두 세계'라는 소설이다. 소설 속 인물이 '밖'으로 나가고 싶어한다. 자신을 옥죄고 있는 환경이 아니다. 그 세계가 아니다. 아예 다른 세계, 즉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넘어가고 싶어한다. 어떻게 해야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넘어갈 수 있을까?


표면적으로 보면 그 문은 바로 '죽음'이다. 죽음은 단절이다. 이 세계의 끝남. 그런데 이 세계의 끝남이 완전한 끝이 아님을 소설은 이야기한다. 소설은 본래 인물이 다른 세계를 찾아 떠나는 배에 타는 것으로 끝났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소설의 결말이 죽음으로 끝난다. 그 세계에서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아예 다른 세계로의 이동을 해야 하는 일... 죽음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전혀 다른 시공간에 나타나게 된다. 다른 존재의 몸을 빌려서. 그렇다면 이 세계에 있는 존재는 또 어떤가? 다른 세계, 즉 밖을 꿈꾸는 인물들은 죽음으로 다른 세계로 간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지 않고...


굳이 육체적인 죽음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 세계의 종교들이 대부분 거듭남이라고 하는 깨달음의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이 세계에서 죽음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저 세계에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런 과정, 이 세계와 저 세계의 경계를 넘는 과정을 거치는 과정이 깨달음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다. 


천선란은 소설을 통해서 그 점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뿌리가 하늘로 자라는 나무'를 보아도 마찬가지다. 다른 세계를 잇는 존재는 이 세계를 넘어서야 한다. 이 세계에 발을 딛고 있으면 다른 세계로 넘어갈 수 없다. 그래서 소설 제목은 '노랜드'다.


'두 세계'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이 근무하는 곳이 '노랜드'인데 땅이 아니다 또는 땅이 없다로 생각할 수 있는 그런 곳. 이곳에서는 현실의 땅이 아닌 소설 속 땅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것을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넘어가는 경계'라고 한다면, 이 세계에 착 발붙이고 사는 존재들이 아니라 떠 있는 존재들이 나와야 한다. 그렇게 소설집에 나오는 인물들은 떠 있는 존재들이고, 이런 존재들이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각 소설들이 흥미진진하다. 재미도 있고, 무언가를 생각할 수도 있게 하고...작가의 말에서 '사랑하고 싶어 소설을 읽고, 삶을 알고 싶어 소설을 읽듯 가끔은 더 지치고 싶어 소설을 읽는,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으리라 믿으며 두 번째 소설집을 엮어 당신께 보낸다'(418쪽)고 하고 있다.


사랑을 하고 싶어, 삶을 알고 싶어 소설을 읽는다는 말에 동의한다. 물론 더 지치고 싶어 소설을 읽는다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소설에 나타나는 삶들을 내 삶들과 연결지으면, 소설은 결국 '이 세계에서 저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경계'라고 할 수 있으니...


이쪽 저쪽을 다 살필 수 있는 소설. 지칠 수도 있겠다. 그것은 끊임없이 자신을 극한으로 몰아가는 일이 될테니... 이런 경계의 체험, 새로운 문을 발견하는 일은 지치기도 하지만, 그 지침이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으니...


작가의 말처럼 소설을 읽자. 이 소설은 작가가 말한 세 가지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전에는 탈북자라는 말을 썼고,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한때 새터민이라는 말을 쓰자고 했던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온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


  그들을 실생활에서는 만나보지 못해서 잘 모르겠지만, 그들이 북한을 떠나오기 전에 겪었던 일을 증언한 증언집을 읽으며 북한의 생활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되었다.


 몇 가지가 기억이 기억이 난다. 우선 북한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월급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 월급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노동에 대한 대가를 주기도 하지만 그것은 쌀 1kg을 살 정도의 돈이라고 한다. 이들에게는 국가가 다 재워주고 먹여주기에 월급 개념이 없다고 하면 되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국가가 줄 수는 없으니... 일하고도 대가를 받지 못하는 생활을 견뎌낼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


  그러니 북한에서는 직장에 가는 대신에 자신이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고 일정액을 직장에 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직장에서도 그 일을 막지는 않고 오히려 장려하기도 한다고 하는데, 공유지의 비극도 아니고, 이것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지.


상당히 폐쇄적이라고 생각했던 북한에 밀수가 횡행하고 있었다는 사실. 직접 밀수에 참여했던 사람의 증언이 있으니 헛말은 아닐테고...


먹고 살기 힘드니 중국과의 밀수를 통해서 돈을 버는 일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뇌물을 주면 만사가 다 통한다고 하니, 사회주의국가를 표방하는 북한에서 돈(자본)이 최고의 가치로 작동하고 있는 모습에 씁쓸함을 느낀다. 개인의 밀수뿐만이 아니라 국가 밀수도 있다는 증언이 있으니, 세계와 무역을 할 수 없는 북한이 자구책으로 선택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소위 보통 국가라면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어릴 적부터 배운 내용들, 쉽게 반란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말을 대부분의 증언에서 만날 수 있는데, 이는 어릴 적부터 들어온 내용이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있어서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이게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고 있음도 증언을 통해서 알 수 있는데...


우선 좀 여유가 있는 북한 사람들은 남한 방송을 많이 본다고 한다. 공개적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암암리에 남한 방송을 보는 사람이 많다는 것. 또한 남한에 와서 정착한 사람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그나마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통해 북한의 통제 사회에도 균열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북한에서는 의무적으로 남녀를 불문하고 군대에 가야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증언집을 보면 그건 명시적인 것이고, 돈을 주고 군대에 안 가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이들의 군대에서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고 보면 되고, 여기에 북한의 대학은 공부를 많이 한다기보다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발판 역할만 한다고... 그러니 대학 성적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수업도 주로 오전에 끝나고 오후에는 노력동원을 나간다는 증언이 많다.


국경을 넘는 일도 예전에는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고 하는데, 요즘은 국경 통제가 강화되어서 예전과 같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국경을 넘거나 밀수를 하는 사람, 남한에서 북한으로 돈을 전달하는 일 등이 완전히 끊기지는 않을 거라는 증언이 있다. 이는 폐쇄된 북한 사회를 개방된 사회로 바꿀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통제되고 폐쇄된 사회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는 그 사회 구성원들의 삶이 여유로워져야 한다. 배가 불러야 딴 생각도 할 수 있는 것. 그러니 북한을 개방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증언집이다. 


이런 증언을 보라. 


"저처럼 한국에 가족이 있는 사람은 남 부럽지 않게 살 수 있었어요. ... 그런데 한국으로부터 돈 받는 사람들은 자기들만 그 돈을 쓰는 게 아니에요. 보위원이 와서 쪼고 담당 주재원이 쪼고 그러니 뇌물을 바쳐야 해요. (중략) '돈은 받아서 쓰되 나라를 반역하진 마라'는 것이죠. 보위부에서도 우리에게 그런 말을 할 정도로 공공연한 사실이에요." (515쪽)


"그런데 미국도 그렇고 여기 한국도 그렇고 뭘 모르는 게, 제재를 하면 할수록 북한은 핵을 더 만들 거예요.  ... 오히려 풀어 놓는 게 더 나을 거라 저는 생각해요. 제재를 하면 할수록 북한은 더 악에 받쳐서 핵을 더 만들 거거든요. 저는 북한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제재가 해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534쪽)


이와 비슷한 증언들이 많으니 참조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통일을 위한 발판으로 서로가 서로에 대해 알 필요가 있으니...


60명이 넘는 북한에서 온 사람들의 증언이 담겨 있는 책인데, 비매품이라 시중에서는 구하기 힘들겠지만, 국제사면위원회 한국지부에 연락하면 구할 수 있을지도... 


책의 뒷부분에 실린 국제사면위원회의 권고는 다음과 같다.



그리고 혹시 읽고 싶은 사람은 이 사진을 참조하면 될 듯하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호시우행 2023-12-27 1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주 일요일 방송하는 채널A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하면 탈북한 분들의 이야기를 통해 북한 주민들의 실상을 더욱 잘 알 수 있어요. 책보다 오히려 더 생생한 증언들이지요.

kinye91 2023-12-27 10:21   좋아요 0 | URL
네. 방송 채널은 모르고 있었는데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호시우행 2023-12-27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즐거운 시간되세요.

루피닷 2024-01-01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kinye91 2024-01-01 07:3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루피닷님께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