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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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말이 막히면 사회는 죽는다. 

말이 살아야 사회도 산다.  

이렇듯 말은 사회의 건강 척도를 알려주는 지표가 된다. 

우린 얼마나 말의 자유를 향유하고 있는가? 

혹, 말에 대한 자기 검열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자기 검열이 이루어지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말에 대한 자기 검열, 이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뜻을 거스를 수 없는 상태, 즉, 내 말이 아닌 남의 말로 살아가는 사회를 말한다. 

이런 사회에서는 논쟁이란 없고, 오직 사활만이 있을 뿐이다. 말로 인해 더 좋은 방안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말에서 지면 자신과 자신의 집단이 몰락한다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 그런 사회에서는 발전이란 생각할 수도 없다. 

말들과 말들이 서로 부딪히고, 서로를 다듬고, 보듬어 더 좋은 말들을 생산해내도록 해야 하는데... 

윤휴... 

난, 이 사람 이름을 박세당과 같이 사문난적(斯文亂敵)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사문... 유학자들이 자신들을 일컫는 말.. 그러면 사문난적이란 유학을 어지럽히는 사람이라는 뜻인데... 유학을 어지럽힌다는 말이, 결국은 주자의 해석을 반대하면서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려는 사람이라니... 

공자도 아니고, 맹자도 아닌, 주자를 절대적인 자리에 올려놓고, 주자의 해석만이 바른 공자,맹자 해석인양 하고, 다른 해석을 내놓는 사람들을 사문난적이라 하여 배척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했으니... 

윤휴가 중용을 자신의 뜻대로 해석했다고 송시열이 그렇게 미워했다니... 원... 다름을 받아들이지 않고, 어떤 하나의 해석에만 매달리는 사회는 경직된 사회, 더이상 발전할 수 없는 사회임을 이 책을 읽으면서 더 실감하게 되었다고 할까. 

그냥 성리학에 대한 다른 학설을 주장한 사람만으로 알고 있던 내게 이 책은 윤휴의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오히려 이 책은 윤휴의 사문난적의 모습보다는 정치가로서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윤휴가 뼛속까지 북벌을 주장하고, 북벌을 하기 위해서 여러 사회 개혁, 국방 개혁을 시도했다는 면을 부각시키고 있으며, 이로 인해 윤휴는 정적에게 미움을 사고, 결국은 이런 일들로 인해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에 한몫하는 것이 바로 당쟁이니... 서인이면 서인, 남인이면 남인, 그리고 서인에서도 노론과 소론으로, 남인은 청남과 탁남으로 갈리고 있고, 이들은 자기 당의 일이라면 왜곡도 서슴지 않았으니... 당론이면 개인은 따라야 한다는 지금의 모습과 별다른 점이 없다. 

윤휴의 개혁방안은 놀라운 것이다. 이런 정책이 시행이 되었다면 아마도 우리나라는 일제시대를 겪지 않았을 것이다.  

호패대신 지패를 쓰게 해서 사람들은 평등하다고 인식한 그, 그리고 서얼도 등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그. 또 그가 제시한 '호포제는 양반 사대부가도 모두 군포를 납부하자는 방안인 반면, 구산제는 양반 개개인의 숫자를 조사해 모두 군포를 내게 하자는 법(222쪽)'이라고 이 법이 시행이 되면 우리나라 세금이 늘고, 그러면 재정이 풍족해지고, 이는 백성들에게도 좋은 일이었을텐데... 백성에게는 좋았겠지만, 권력자들에게는 좋지 않았을테니... 

양반들이 들고 일어난 일은 당연한 일. 결국 양반들, 아니 권력가들의 반발에 이 정책은 제대로 시행도 되지 않고 폐지되고 만다. 

지금도 말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고 외치지만, 이것이 말뿐임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 이런 말로만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이 때부터 유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우리나라 사회지도층이 권리는 가지되, 의무는 가지지 않는 역사적인 연원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런 윤휴는 아마도 제거대상 1호였을 것이다. 그는 정치를 당략에 따라 하지 않고, 옳음에 따라 했으며, 정치의 기본을 백성에게 두었지, 권력자들에게 두지 않았기에...그 시대에 용납이 되지 않았으리라. 

다만 나는 윤휴의 북벌론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런 이유든 저런 이유든 전쟁이 일어나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일반 백성일진대, 어떻게 백성을 위한다면서, 수비형이 아닌 공격형 무장을 주장했을까. 

청나라에 치욕을 당했다치더라도, 이미 그 치욕은 전의 일이고, 나라의 부강과 백성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전쟁이라는, 북벌을 추진하기보다는 내실을 기하는 정책을 펼치도록 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 시대적 한계이긴 하겠지만... 

이 책은 재미있게 읽힌다. 글쓴이의 글솜씨가 어렵게 될 수 있는 역사책을 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왜 숙종이 윤휴를 그리도 중용하다가, 죽일 정도로 미워했는지에 대해서 이 책은 깊게 추적하지 않는다. 다만 숙종이 서인의 쿠테타를 두려워해 그러했으리라고 추측을 하고 있다. 또 이 책에서는 윤휴의 사상이, 도대체 어떤 면에서 다른 성리학자들과 다른지가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다만 주자의 해석만이 옳으냐 하는 말과, 중요의 장구를 바꾸어 놓은 것 정도만 나오는데... 어떤 점에서 다른지가 더 구체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점에서 이 책 내용과 제목인 침묵의 제국이라는 말이 잘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윤휴가 죽게 되는 이유가 몇몇 단어 때문이라, 말로 인한 화이기에, 윤휴가 처형됨으로써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되지만... 

얼마나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 다른 생각들이 어떻게 탄압을 받았는지를 중심으로 썼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제목하고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고 말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윤휴에 대해 이렇게 쉽게 읽히게 쓴 책은 찾아보기 힘들지 않을까 한다. 

침묵의 세계... 어쩌면 지금 우리도 침묵의 세계에 살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닫힌 말의 세계에 살면 안된다. 말은 해방되어야 한다. 그 점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덧말 

식년은 자(子), 묘(卯), 오(吾), 유(酉)자가 들어가는 해라고 했는데... 한자어들은 서로 통한다지만, 우리들이 알고 있는 십이간지는 오(吾)가 오(午)이어야 하지 않나... 오자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대중들이 읽는 책이라면 대중들이 많이 쓰는 한자어로 써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207쪽의 병오(丙吾)는 병오(丙午)로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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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셀레브리티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17
조약골 지음 / 텍스트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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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에 이렇게 쓰여 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아나키스트 조약골

그래서 제목이 운동권 셀레브리티인가 보다. 운동권의 유명인사쯤 되나?  

아니, 그는 결코 유명인사가 아니다. 그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유명 연예인 이름은 알아도, 그들의 신상은 알아도 조약골이라는 이름을 보통 사람들이 들어보았겠는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조약골은 운동권 내에서 유명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런저런 현장을 다녔던 사람에게 조약골은 '아, 그 사람' 하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온갖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누구? 이름이 왜 이래?'할 사람이다. 

이런 조약골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쓴 책이 이 책이다. 우리 시대 젊은 만인보 17번째 책으로 나왔다. 고은의 만인보, 민중의 소리에서 펴내는 만민보와는 달리, 이 만인보 시리즈는 해당하는 사람이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  

젊은이들 중에 이 사회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젊은 만인보를 기획했으리라 추측을 하고, 이 책들을 읽으면 이렇게 다양하게 이 사회에 반응하면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만나게 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되리라.  

이 책을 읽으면 조약골이 꽤 유명한 사람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리라. 그리고 자신의 시야가 더 넓어지리라.

조약골은 아나키스트라 칭해진단다. 아나키스트는 굳이 자신을 아나키스트로 한정하지 않는다. 조약골도 마찬가지다. 그 자신이 아나키스트라고 내세우지 않고, 어떤 때는 생태주의자이기도 하고...어떤 때는 뭐이기도 하고, 그 때 그 때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의 삶은 어린 시절, 배봉산, 중랑천에서부터 생태적인 싹이 틔워졌고, 학창시절에는 건대사태(우리는 이렇게 부른다)를 목격하면서 국가권력의 폭력성을 깨달았으며, 학교 교육을 통해서도 억압된 현실만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대학생활을 하면서 강경대, 김귀정 열사의 일들을 겪으며 국가의 폭력성을 몸으로 체득하고, 이를 거부하는 행동으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 국가의 폭력을 거부하는 몸짓이 바로 아나키즘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아나키즘을 공부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의 행동을 만들어 나간다.  군대 거부 운동, 반전이 아닌 비전(非戰) 운동을 해야 한다는 깨달음도 얻고...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들에 그가 참여하게 된다. 대추리, 용산참사, 성미산 개발 반대, 두리반 등 그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늘 함께 한다. 그런 행동들이 그를 '운동권 셀레브리티'로 만들어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이 책의 앞부분에서 이렇게 말한다.  

"무엇을 위해, 내 삶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새로이 거듭나는 실험들을 통해 차근차근 나의 일상을 재미있게 구성해 보자. 그게 내 깨달음이자 혁명이었다." (11쪽) 

그렇다. 

그는 운동권이라고 희생을 한다는지, 무슨 종교적인 엄숙성을 띤다든지 하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서 한단다. 재미있게 살려고 하고, 활동하는 일이 고통스러운 부분들도 있지만, 그것을 해방으로 여긴다고, 아니 그것이 자신에게는 해방이라고(227쪽) 한다. 

그가 이렇듯 힘든 현장에 계속 있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삶을 자신의 삶이라고, 그런 삶 밖에 있는 자신을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이는 희생도, 대가를 바라는 어떤 것도 아니고, 그냥 자신의 삶이니까, 이 삶 외에는 다른 삶을 생각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리라.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이 조약돌이 활동하는 시간과 겹치고, 아직도 우리나라는 이러한 사건들의 연속이니, 불행하게도 아직도 그가 더 활동을 할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여기서 내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도 분명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있으니, 우리가 아무리 눈 감으려 해도 우리 눈 앞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으니, 단지 눈 감고 회피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런 청춘들의 이야기를 읽고, 들으면서 어떻게 눈감고 모른체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만큼 이 책은 직접 내세우지는 않지만,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자신의 삶에 가장 충실한 행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고 말하고 있다. 단, 자신을 희생한다는, 남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한다는 그런 마음을 지니고 행동을 하면 안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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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모던뽀이들 - 산책자 이상 씨와 그의 명랑한 벗들
장석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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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라는 단어를 한자로 바꾸면 많은 뜻이 있다. 그래서 조영남은 "이상은 이상 이상이었다"는 책을 통해 이상의 시를 해석하지 않았던가. 조영남이 쓴 제목에서는 이상(理想)이라는 말은 쓰이지 않았는데... 

우리에게 이상은 이상(理想)이다. 아직도 그는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치고 이상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김해경은 몰라도 우리는 이상은 알고 있다. 사실 이상의 본명이 김해경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냥 우리에게 이상은 김해경이 아니라 이상일 뿐이다. '오감도'라는 도대체 뭔 뜻인지도 모르는 시의 작가로, 아니면 '날개'라는 아주 유명한 소설의 작가로 말이다. 사실, '오감도'나 '날개'는 시험을 위해서 공부했지, 그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는 못했던 작품들이다. 그러니 이상이란 작가는 우리에게 이상한 작가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이상을 고등학교 때 '거울'이란 시를 통해 간신히 알고, 참 어려운 시인이네 하고 말았는데, 대학에 들어가서 김윤식의 "이상연구"를 읽고는 참 흥미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김윤식이 쓴 이상 관련 책들은 읽어보았는데... 김윤식의 화려한 글에 아, 하고 감탄만 하고...  

그를 연구하고 싶은 욕구는 있었으나, 워낙 수학, 과학 쪽에는 관심이 없는 관계로, 그가 건축을 했다는 사실은 수학, 과학 쪽의 지식이 있으며 그의 시를 해석하는 어떤 단초들을 얻을 수 있을 거란 생각에 이상은 내 관심의 저 편으로 밀려나 있었다. 

그러다 작년에 조영남의 책을 읽었다. 대중가수로 우리에게 친숙한 조영남이 이상을 자신이 죽기 전에 꼭 한 번 연구해야 하는 작가로 삼고 있었다는, 그의 시를 청춘의 욕망으로 해석하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역시 이상은 어떤 해석을 입혀도 제 나름의 구실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지니게 되었고. 

이상이 우리나라 국문학자들을 참 많이도 먹여살려주는구나 하는 생각도 더불어 하게 되고. 그러다 또 잊고 있었던 이상을 이 책 "이상과 모던뽀이들"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이상의 시나 소설을 해석한다기보다는 이상이라는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문적인 이상연구서라 해도 좋지만, 일반인들이, 그동안 이상은 너무 어려운 사람이라고 제쳐두었던 사람들에게 이상이란 이런 사람이야, 이래서 이상은 의미가 있어, 그의 친구들은 이런 사람들인데, 이런 면에서 중요해 하고 알려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책의 편제는 이상의 생애사와 일치하게 구성되어 있다.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시간 순서대로 담되, 그 사이사이에 작품과 친구들, 그리고 사회, 문화까지 담고 있다.

책의 중심은 이상인데, 이상을 중심으로 1930년대 근대 서울의 모습과, 그 서울에서 근대를 살아가는 지식인들(모던뽀이들)을 다루고 있어서 옛이야기를 접하는 듯한 친숙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특히 이상과 더불어 그를 가장 잘 이해해줬던 사람들인 구인회 사람들 중에서 이태준, 박태원, 김기림, 김유정을 자세히 다루고 있으며, 또한 이상의 후견인이자 친구인 구본웅까지 다뤄주고 있어서 이상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생부와 양부 사이, 근대와 현대 사이, 조선과 일제 사이, 삶과 죽음 사이에서 자신의 삶을 걸고 문학활동을 해나갔던 이상. 

그의 고민과 그 고민들이 어떻게 작품으로 나타나는지를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이상, 그가 아직도 이상(異常)한가? 아니, 그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같은 사람이되, 그 시대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간 사람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이상은 이상(理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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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준 평전 - 지성과 역사적 상황
김용직 지음 / 일지사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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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태준... 그의 이름을 대학에 들어가서 처음 들었다. 조선소설사를 쓴 사람이라는 사실. 

그 전까지는 그가 누구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우리 역사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좌익활동을 한 죄목으로 1949년에 총살을 당했고, 그에 대한 언급은 금기시되었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그에 대해서 연구하고 언급하는 것이 허용되었지만 말이다.

그 때 그의 이름을 듣고, 그의 책 이름을 듣고, 그것이 20대에 쓰여진 책이라는 얘기를 듣고, 와, 나는 언제 저렇게 되나? 과연 나는 20대에 그럴 수 있나? 하는 생각, 부러움을 가졌었다. 

우리의 20대는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는데, 지금의 20대도 역시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들고, 진정한 공부가 무엇인지 생각할 여력도 없으니, 그 때나 지금이나... 그렇다고 그런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없지도 않으니...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김태준이 살아갔던 그 시대도 공부에만 집중하기엔 상당히 문제가 있었던 시기였다. 일제시대, 조국을 상실한 상태에서 공부에만 집중한다면 그건 무언가 문제가 있는 상태이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업적을 남겼다면 그는 이런 시대 상황속에서도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하고 있었단 얘기가 된다. 

사회에 굴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일을 개척해나가는 모습, 그것이 바로 진정한 지식인의 모습이지 않겠는가. 

그가 국문학계에서 큰 업적을 남겼지만, 그 업적은 그가 장년이 되어서 더 발전되지 않는다. 발전시킬 사회적 상황도 아니었고, 그의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이 그런 사회의 모습 속에서 학문에만 안주하게 하지도 않았으리라. 

김용직이 쓴 이 김태준 평전은 더이상 자료가 유실되고 전해지지 않을까 걱정하여, 김태준에 관한 온갖 자료들을 수집하고, 분석하여 간단한 인물의 이야기라고 하기보다는 그에 관한, 또 그가 살았던 시대, 함께 했던 인물들에 관한 총체적인 정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시대 순으로 내용을 전개하되, 김태준 주변의 이야기도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한 평전이라기보다는, 예전 김윤식의 이광수와 그의 시대처럼, 이 책도 김태준과 그의 시대라 할 정도의 방대한 책이다. 

초반기 국문학자로서의 업적과 한계를 나름대로 자료를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또 현대 이론의 성과까지 참조하여 내용을 전개하고 있으며, 그가 학자로서 활동을 하지 못하고, 남로당의 핵심인물로서 활동하는 후반기에는 그의 주변 인물들까지 다룸으로써 그 시대를 생생하게 살려내고 있다. 

이 책에는 김태준의 공과가 고스란히 실려있다고 봐도 좋으니, 국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현대사를 공부하는 사람도 읽으면 좋겠다. 굳이 이런 전공분야가 아니더라도, 이 시대에 지식인으로서, 아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역사에 부끄럽지 않을까 고민하는 사람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한 시대, 그 격랑의 시대를 온몸으로 살다 간 김태준...  

우리는 한 지식인의 더 큰 업적을 그의 죽음으로 보지 못했고, 이데올로기에 희생당한 한 사람의 죽음이 결국 우리나라 문화 수준, 지적 수준을 가리킨단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다른 이념을 지녔다는 이유로 사장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덧말 

김태준에 관한 전문서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눈에 거슬리는 구절들이 있으니... 

47쪽 4번째 줄 학생들은 고종의 인산날... 6.10만세 운동은 순종의 인산날이니... 고종을 순종으로 바꾸어야 하지 않나? 

160-161쪽 조선한문학사를 설명하고 있는 부분인데... 160쪽의 밑에서 8번째 줄 조선소설사에 임한 의식은 조선한문학사에 임한 의식으로 바꾸어야. 또 161쪽의 6번째 줄 조선소설사 역시 조선한문학사로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212쪽 10번째 줄 도남은 1983년 중반기부터... 이건 도남은 1938년 중반기부터여야 할 거고 

322쪽 44년 3월 백철 부부가 ...이육사를 발견했다 고 했는데... 328쪽에 보면 1943년 당시의 경성에서 체포된 다음... 다음해...1월 16일 ..감방에서 절명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백철 부부가 육사를 만난 것은 43년이 아닌가. 44년에 죽은 이육사를 만났을 리도 없고...이 두 쪽에서 연도가 헷갈린다.    

뭐.. 소소한 오탈자야 그렇다치더라도, 이런 문제는 바로잡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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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향기에 취하다 - 만민보 민중의소리 알다문고 2
강경훈 외 10명 지음 / 민중의소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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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희망버스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희망버스를 타고 간다. 

희망을 찾아서, 아니 희망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이 사람들이 보내는 향기는 물대포로도 씻을 수가 없다. 세상을 향해 이 향기는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날아가고 있다.

그러나 참여는 하지 않더라도 이 희망버스에 마음을 실어보내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단지 버스에 타고 있지 않을 뿐, 버스에 탄 것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눈에 보이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볼 수 있을 때 세상은 조금 더 좋아지지 않을까 한다. 

이러한 희망버스에 탄 사람들이 내보내는 향기와 비록 버스에는 타지 못했지만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면서 세상이 조금씩이라도 바뀌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내보내는 향기가 합쳐져 우리 세상을 조금 더 좋은 쪽으로 변하게 하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 우리가 주변에서 만날 수도 있지만 언론에서, 그것도 주류언론에는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 그 사람들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특히 이번 만민보 2권에서는 문화 쪽에 종사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있는데, 각자가 제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찾아 하는 모습에서 이들의 향기에 마음에 즐거워진다. 

이번에 나온 사람들을 보자. 

아나운서 고민정, 시사평론가 김종배, 정윤주, 권범철, 고 이진원, 김보경, 최현, 이아린, 김대주(1박2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이다), 송기정, 김태현(개그맨 아니다), 이종연, 김정현, 조희경, 박준성, 김옥진, 김종영, 최진혜, 김태형, 꿀벌마을 사람들, 박대정, 김선경이다. 

각자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냥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사유하면서 일을 하는 사람들. 

결국 생각없는 최선은 차라리 하지 않느니만 못한데, 이들은 생각하면서, 사회를, 역사를, 민중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일을 하기에 그들의 일에서는 향기가 난다. 

그리고 이 향기는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읽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또 이런 삶을 나도 살아야지 하는 마음을 먹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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