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자키 하야오 반환점 1997∼2008 미야자키 하야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황의웅 옮김, 박인하 감수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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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점에 이어 반환점이다. 이 책이 반환점이라는 제목이 어울릴지는 모르지만, 이미 하야오는 원로 대우를 받는 감독 아니던가, 그가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점에서는, 또 하고 싶어하는 일이 많다는 점에서는 반환점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 아직도 현역으로, 하긴 감독은 죽을 때까지 현역이다. 그들에게는 '전(前)'이라는 말이 붙지 않는다. 활동하고 있으니 말이다. 올해 또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도 할 예정이니... 이런 말하기가 뭐하지만 한참 뒤에야 '종착점'이라는 제목을 단 책이 나올 듯하다.

 

이번에는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라는 네 가지 제목을 달고 나왔다. 이 넷은 출발점 이후 그가 만든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순서대로 그가 한 말들, 그가 쓴 글들을 엮었다고 보면 된다.

 

글로 묶일 것을 생각하지 않고 '문필가라면 짧은 문장을 쓸 때에도 언젠가 책이 될 것을 각오하고 있겠지만 나는 그런 각오도 없습니다.'(431-432쪽)라고 했으니, 이 책에는 그 때 그 때 하야오의 진심이 섞인 말들이나 글들이 모여 있다고 보면 된다.

 

그렇다는 얘기는 그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그의 내면에 있는 풍경들이 우리에게 드러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얘기인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가 어떤 자세로 영화를 만들었는지(그는 애니메이션이라는 말보다는 영화라는 말을 쓴다. 애니메이션 하면 영화보다는 한 단계 낮은 급으로 보는 인식이 있는데, 그를 피하기 위해서도 또 실사 영화든, 그림 영화든 영화임에는 틀림없다는 생각에 여기서는 영화라는 말을 쓴다)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단지 짐작만 할 뿐이다. 그의 글이 그를 다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근거 역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야자키 하야오 자신도 자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렇게 과거의 문장이나 발언이 모인 것을 보면 그곳에 있는 사람이 진짜 미야자키 하야오인가 하면, 그건 나도 절대 보장은 못 합니다.'(432쪽)

 

뭐, 사람이 단일한 요건으로 이루어진 존재는 아니고, 사람이라는 존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지 알 수 없을 때가 더 많은, 그렇게 많은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고, 이들이 때와 장소에 따라서 다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니, 우리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런 사람이다라고 단정할 수 없다. 아니 단정해서도 안된다. 그렇게 단정하는 태도가 얼마나 많은 독단을 낳았고, 갈등을 낳았는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복합적인 존재, 그를 인정하는 태도. 이것이 바로 이 책을 읽으면서 지니게 되는 태도이지 않을까 한다.

 

책 아무 곳이나 손이 가는대로 펼쳐 본다.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부분들이 도처에 있다. 그 부분들을 다 살펴볼 필요는 없으니...

 

사람도 짐승도 나무도 물도, 모두 동등하게 살아갈 가치를 지니고 있어요. 그러니까 인간만 살아가지 말고 짐승에게도 나무에도 물에도 살아갈 장소를 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 사상이 일찍이 일본에는 있었습니다.

  이번 영화 [모노노케 히메]는 그런 사고방식으로 만들려고 했기에 꽤 번거로운 일이 되어버렸어요. 이제 다 만들었는데 어떤 작품이 됐는지,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40쪽)

 

아이들이 세상의 입구에 서는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 아이들이 움직이지 않으니, 먼저 움직이게 할 필요가 있어요. 유치원에서 입구를 옥상과 밑에서 양쪽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합니다. 운동장에서 언덕길을 기어 올라가면 위에 있는 입구로 들어올 수 있죠. (146쪽)

 

이렇게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태어나는 아이들한테 "참 대단한 때에 태어나버렸구나"라고 말하고 싶어지지만, 역시 "잘 태어나줬다"란 마음이 강하니까요. "축하해"나 "어서 와"같은, 그런 마음이 솔직한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 힘든 현실세계와의 사이에 어떻게 다리를 놓을지, 간단히는 다리를 놓진 못하겠죠. 그래도 역시 아이들한테 "태어나서 다행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323쪽)

 

영화 만들기에 최선을 다한다. 특히 아이들이 볼 수 있는 영화, 보고 싶어하는 영화, 좋아하는 영화를 만든다. 그래서 아이들이 변할 수 있다면 더욱 좋고, 단, 그가 만든 영화를 수십 번씩 반복해서 보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때에만 보는 아이들이면 더욱 좋다고 한다.

 

이런 생각이 그에게서 영화를 만들도록 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또한 미술관을 운영하는 힘이 되게도 하지 않을까 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미술관. 정돈되어 있는 미술관이 아니라, 무언가 뒤죽박죽이 되어 아이들 스스로 체험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스스로 얻어갈 수 있는 미술관을 꿈꾸는 사람. 그래서 부모들도 하여금 미술관 내에서는 사진촬영을 하지 못하도록 한 사람.(3부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지만, 이 영화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이 3부에서 중심을 이루는 이야기는 미술관 이야기다. 이 미술관을 만드는 이야기. 미술관에서 상영하는 영화에 관한 이야기. 제목이 좀 바뀌었으면 더 좋았을 듯하다)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아이들이 중심에 서 있다. 미래를 현재에 살아가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로 아이들이기에 그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다.

 

그가 앞으로도 아이들이 꿈을 가질 수 있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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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출발점 1979∼1996 미야자키 하야오
미야자키 하야오 지음, 황의웅 옮김, 박인하 감수 / 대원씨아이(단행본)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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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에게 열광하게 했을까? 처음에 본 애니메이션 영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였나? 아니, 미야자키 하야오란 이름을 알지 못했지만,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방영해 준 "미래소년 코난"부터였을까?

 

어른이 되어, 무언가 생각할 수 있고,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나이가 되어서야 보게 된 애니메이션, 아이들이 보는 장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어른이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 작품은 아무래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인 듯하다.

 

이 작품으로 하야오도 자신의 스튜디오를 마련할 수 있게 되었을테고.

 

이 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도 역시 '나우시카'다. 그가 나우시카에 대해서 보게 되고, 또 영화로 만들게 되고, 만화로도 그리게 된 일들이 이 책에 잘 나와 있는데...

 

단지 나우시카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이웃집 토토로"에 얽힌 이야기도 많고.

 

무엇보다도 그의 애니메이션 역사에 대한 자료들이 모여 있다는 점이 이 책의 장점인 듯하다. 그러니까 어떤 작품이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빠져들게 했는지 찾기보다는 그의 작품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그가 어떤 식으로 작품활동을 해왔는지를,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기록들을 통해서 읽는 사람이 스스로 확인해가도록 하는 방법을 이 책은 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은 이거다라고 단순하고 명료하게 해석이 되지 않는다는 점, 그에게 계속 작품의 주제를 물어도 속 시원히 대답해주지 않는 모습이 이 책에 나와 있고, 그 자신도 무엇이다라고 정하고 작품 활동을 했다기보다는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그것이 자연스레 이루어졌다고 하고 있기에 결국 작품에 의미를 채우는 일은 우리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500여쪽의 방대한 책이다. 그런 분량 속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했던 대담들과 작품 기획서, 또 어떤 작품을 보고 난 뒤의 느낌을 쓴 글 등 정말로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다양한 글들이 나와 있다.

 

그가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던 1979년부터 1996년까지의 활동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래서 미야자키는 이렇다라고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기보다는, 그의 글들을 직접 읽고 그를 알아가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한 생각 두 가지.

 

하나는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이들에 대해서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 '인간은 가능성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도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있는 그는, 그런 사회에서 그나마 가능한 것은 어쩌면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아이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하고, 시사회에서 아이들이 좋아했을 때 그도 기뻐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작품, 그것은 거짓이지만 진실인 작품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다. 그는 대놓고 이야기한다. 그의 애니메이션은 거짓이라고. 거짓인데, 있을 수 있는 거짓, 영화 속에서 그럴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거짓.

 

작품을 만들 때 작품이 현실성을 띠게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주변의 풀들도 하늘도, 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또 걷는 모습, 뛰는 모습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이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이것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이기도 하다. 여기에 덧붙이면 3살 이전의 아이들이 "이웃집 토토로"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그의 태도. 세 살 이전의 아이들은 자신의 몸으로 움직이면서 촉각을 최대한 활용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그런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이나 영화를 보여주고 움직이지 못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이 나이 때의 아이들은 직접 손으로 만지고, 맛보고 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고. 우리들은 어떤지, 반성하게 하는 말이고... 이런 단계를 넘으면 이제 아이들은 시각을 활용하는 영화를 봐도 된다고. 그 때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수 있는 영화. "이웃집 토토로" 같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점에서 그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영화를 만들었고, 그 아이들 뿐만이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영화를 보고나서 감통을 하고, 자신들의 행동을 되돌아보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또 하나는 일제 시대 김동인이 한 주장. 어느 글인지 정확히 생각이 나지 않는데,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말은 그가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비교하면서 자신은 '톨스토이'가 좋지 '도스토예프스키'는 싫다고 한 점. 아니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가로서 실패했다고 한 점인데... 

 

이유가 톨스토이는 신의 입장에 서서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을 자신이 조정하면서 소설을 썼다고 한다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에 자신이 끌려다니고 말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이책을 읽다보니 미야자키 하야오는 톨스토이보다는 도스토예프스키 쪽에 가깝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왜냐하면 그는 작품의 전체적인 구상을 다한 다음에 작품을 만들지 않고 직관적으로 생각이 떠오르면 작품 활동을 시작하고, 작품을 만들어가면서 인물들이 이끄는 대로 나아간다고 하니까 말이다.

 

따라서 그에게 어떤 의도로 작품을 만들었습니까? 이 작품의 주제는 무엇입니까?란 질문은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영화로 만들어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만화로 완결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그래서 엄청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

 

작품에 나타나는 주제의식이나 의미 역시 우리가 작품을 보면서, 읽으면서 스스로 찾아나가야지 작가에게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사실.

 

이런 점에서 그의 작품은 다양하게 해석이 될 수 있고,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으며 이 다양함이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방대하다. 그러나 재미있다. 그의 작품을 어느 정도 본 사람이라면 그 작품을 떠올리면서 이 책을 읽을 수 있기에 작품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떠올릴 수도 있고, 또 그 작품에 얽힌 이야기, 그를 만든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생각들도 다시 할 수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읽으면 좋을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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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과의 전쟁 - 시사인물사전 18
이휘현 외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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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라는 프레이리의 말이 있다. 프레이리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중국의 루쉰이 한 말에도 결국 사람이 걸어가야 길이 된다는, 그 길이 바로 희망이라는 말도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하고, 그 길은 길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남들의 눈에 띄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남들의 눈에 띤다는 얘기는 남들과 많이 다르다는 얘기가 되고, 남들과 많이 다르다는 얘기는, 자신의 삶이 독창적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 독창성을 인정받았다는 얘기도 되고.

 

이름없는 사람들, 독창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남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냥 그들은 남들에 묻혀 있다. 여기에는 어떤 창의성이나 상상력이 작동할 수가 없다.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만, 그들의 길은 너무도 작고 짧아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삶. '장삼이사'들의 삶.

 

그러나 한 사람의 삶이 그저 그렇게 묻혀서만 존재하면 삶의 의미를 찾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 세상에 왔으니 이 세상에 자신의 발자국 정도는, 자신이 간 길을 남들이 갈 수 있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러한 길을 내는 일은 '전쟁'보다도 더 힘든 일이라고 해야겠다. 물론 전쟁보다 더 힘들 수는 없겠지만, 대량살생을 하는, 파괴와 죽음을 부르는 그 전쟁보다는 건설과 삶을 부르는 삶이 더욱 힘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을 할 수고 있다.

 

여기에 그러한 건설과 희망의 길을 만든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상상력과의 전쟁에서 승리해서 자기 나름대로의 길을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김기영, 미야자키 하야오, 월트 디즈니, 이철수, 이현세, 제임스 카메론, 데이비드 오길비, 양영순, 폴 버호벤, 잉그마르 베리만, 이명세, 리들리 스콧, 심형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이다. 주로 영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만화가, 판화가, 광고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이런 업종이 상상력과 긴밀한 관련이 있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이들 업종에서는 상상력을 자본으로 환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즉, 이름없이 자신의 세계를 묵묵히 추구한 사람보다는, 자신의 세계를 자본의 힘으로 전환시킨 사람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 중에 가장 자본의 힘으로 약하게 전환시킨 사람이 이철수인데, 이철수 또한 자신의 작품을 대중들에게 인정받고 있으며, 이는 어느 정도 그의 작품 활동을 지속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여 자본의 힘으로 전환시킨 사람들 얘기가 많아서 조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또 이 사람들에 대해서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들은 자신들의 세계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며, 누가 뭐래도 자신만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 삶의 태도가 바로 상상력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 지금 시기는 지식만을 습득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되고 그 지식을 다른 것으로 전환시킬 수 있는 상상력, 창조력을 지녀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이들의 삶에서 배울 것이 많다.

 

이들이 상상력과의 전쟁을 통해 만들어낸 길을 우리는 볼 수 있기에 그 길을 바탕 삼아 우리들만의 길을 만들 수 있고, 또 갈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우리에게도 우리들만이 길이 있을테므로.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

 

이 말은 바로 나에게도 해당하는 말이다. 그런 내 길, 그 길을 만드는데, 상상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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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좌절 - 노무현 대통령 못다 쓴 회고록
노무현 지음 / 학고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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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대붕역풍비 생어역수영(大鵬逆風飛 生魚逆水泳)"

 

김구 선생이 했다는 말을 정치인 노무현이 부산에서 출마할 때 다시 썼다는 말이다.

 

시류에 굴복하지 않고 시류를 거슬러 옳음을 추구하는 모습. 그것이 바로 대붕이고, 살아 있는 물고기라는 얘기다.

 

그래서 그는 지역구도의 타파를 위해 당선이 가능한 종로를 포기하고 부산으로 내려간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그럼에도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우리들의 뇌리에 깊숙히 박히게 된다.

 

그는 이 책에서 말한다. 자신이 대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고. 하지만 그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걸었다는 데는 다른 말을 할 사람이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제목이" 성공과 좌절 "이듯이 그리고 자신이 나중에 할 수 있는 일이 자신의 일생을 되돌아보고 회고록을 쓰는 일밖에는 없다고 했듯이 자신의 삶을 반추하면서 무엇이 성공이고, 무엇이 실패였을까 되짚어보는 일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결국 이 책은 노무현의 손에 의해 쓰여지지 못했다.

 

그의 사후 그의 글들을 모아 다른 사람들이 펴낸 책이긴 하지만, 그래도 노무현의 마지막 육성이 담긴 글이라는 점, 자신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한 책이라는 점에서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 표지에는 '나의 실패가 여러분의 실패는 아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갈 길을 가야 한다. 여러분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세상을 살 수 있을 것이다.'고 쓰여 있다.

 

노무현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자, 당부의 말일텐데..

 

그가 대통령이 되어 한 일 중에 잘한 일과 못한 일이 있고, 성공한 일과 성공하지 못한 일이 있을텐데, 그것에 대한 엄정한 평가는 역사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그는 정치에서 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실패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의 정권이 실패했다고 규정하는 것은 언론이고, 언론은 참여정부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보다는 실패 쪽에 무게를 두고 그를 과장하여 보도하였다고 생각한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으며, 특히 언론은 그들만의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다고 한다. 언론과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던 노무현은 그의 정책이 언론의 지지를 받지 못해, 언론을 통해 정보를 얻게 되는 일반 국민들에게도 오해를 받았다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 진보진영의 분열이 치명적이었으며, 심지어는 그를 지지하던 정당조차도 분열되어 버렸으니, 그의 정책이 제대로 펼쳐지기는 힘들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가 대통령이 되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이제 우리나라 정치를 한 단계 끌어 올려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정치 풍토가 되게 하는 것이었고, 한반도에는 평화가 정착되게 하는 것이었으며, 노동자도 사람대접 받으면서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을텐데...

 

한 개인인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은 처지가 다르기에 생각도 다르게 해야 하고, 행동도 다르게 해야 한다는 주장. 그렇겠단 생각이 든다.

 

대통령은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고, 더 많은 것에 대해 고민해야 하고, 더 많은 것이 걸려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과연 서민 경제가 더 나빠지지 않았을까. 그는 중산층이 괴멸되어서 그렇다고 말을 하는데, 그리고 중산층의 괴멸은 과거 정부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왜 그 중산층이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갔는지를 고민해봐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이미 지난 일이지만...

 

서민들이 과연 언론의 보도만을 믿었을까. 그들이 체감하는 경기가 바로 언론에 나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많은 생각들이 든다.

 

그럼에도 그는 우리나라 정치를 한 단계 끌어올린 정치가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가 어렵사리 끌어올린 정치 수준이 다시 과거로 회귀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있는데, 민주주의를 경험한 사람들은 독재를 인정할 수 없듯이 한 단계 끌어올려진 우리나라 정치, 다시 밑으로 곤두박질 치게 국민들이 내버려두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는 애증이 교차하는데... 인간 노무현에게는 무한한 애정을, 정치인 노무현에게는 애정에서 미움으로 변했었는데...

 

이제는 아니다. 이미 그는 갔고, 그가 원했던 세상은 오지 않았으며, 그런 세상은 이제 온전히 우리 몫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대붕이었든 아니었든, 판단을 못하겠지만, 그가 살아 있는 물고기였음은 확실하다는 생각. 우리도 대붕이 되지는 못하더라도, 살아 있는 물고기는  되어야겠다는 생각.

 

그렇게 되려면 역사인식이 있어야겠고, 우리 사회를 파악하는 눈을 지녀야겠고, 또한 행동하는 실천력도 지니고 있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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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내가 있다
하근찬 / 엔터 / 199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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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난이대.

 

국어시간에 배운 소설. 지금도 학생 때면 어김없이 읽어야 하는 소설.

우리나라 현실을 소설에 잘 담아냈다고 하는 소설.

한자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수난이대'라는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소설.

 

이대에 걸쳐 수난을 당했다는, 아버지는 태평양 전쟁 때, 아들은 6.25전쟁 때 각각 부상을 당해 불구의 몸이 되었으나 시련으로 상징되는 외나무다리를 함께 협력하여 건너는 모습으로 형상화함으로써 고난을 극복하는 의지를 표명한 작품이라고 배웠는데...

 

헌 책방 순례를 하다가 우연히 눈에 띈 책이다.

 

하근찬 하면, 우선 수난이대가 떠오르고, 그 다음이 흰종이수염이 떠오른다. 왜 그러냐 하면 이들은 교과서에 실려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단편이라는 특성이 교과서에 실리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또 하근찬 하면 '내 마음의 풍금'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여제자가 교사를 짝사랑하는 이야기. 영화로도 만들어져 더욱 잘 알려져 있는 작품. 아마 영화가 되기 전에는 '여제자'란 단편소설로 먼저 발표가 되었으리라.

 

이렇게 보면 하근찬의 작품이 많이 알려져 있다고 해야 한다. 이 정도면 문학사에서 빠지지 않고 이름이 나오는 작가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는데, 물론 작가의 삶을 안다고 해서 작품을 더 잘 이해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작가의 삶에 대해서 알면 작품에 대해서 더욱 친숙하게 다가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지니고 있으니.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 "내 마음의 풍금"이 작가의 초등학교 교사 시절과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이 산문집에 그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또 6.25로 인해서 아버지를 잃는 아픔을 겪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한 비극을 겪은 사람으로서, 순박한 사람들이 전쟁으로 인하여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를 작품으로 표현해내었는데, 그럼에도 그는 어떤 이념적 편향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다만 사람들이 사회적 격랑 속에서 어떤 고통을 겪는지를 작품으로 보여줄 뿐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좋았던 점은, 사실 이 책을 망설이지 않고 집어들게 만든 이유는 이 책에 '수난이대'의 창작과정이 나와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자신의 창작과정을 밝히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 책에도 '수난이대'를 어떻게 쓰게 되었는지가, 어떤 의도로 쓰게 되었는지가, 결말을 왜 그렇게 만들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살 필요가 있었다고나 할까.

 

그밖에 많은 점에서 하근찬이라는 사람을, 작가로서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왔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이 책이 나온지 10년 뒤 그는 타계하고 말았지만, 이 책에서는 그의 목소리의 울림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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