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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답게 산다는 것
안대회 지음 / 푸른역사 / 2007년 2월
평점 :
# 비이.. 자기 색깔을 지닌, 진짜 '선비'를 만나다.
내 머리속에 관념적으로 남아있는 선비의 모습을 생각해 보았다.
'딸깍발이'에 나오는 신이 없어 맑은 날에도 나막신을 신지만, 곁불은 절대 쬐지않은 신념을 가진 이가 먼저 생각났다. '양반전'에 나오는 무능한 인물도 떠올랐다. 벼슬에 오르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보인다. 갓과 서당에서, 또는 자신만의 공간에서 등잔에 불을 켜서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도 스쳐갔다. 기생을 끼고, 좋은 정자에서 풍류를 즐기는 모습, 탐욕과 권력에 눈이 멀어 다른 사람들이 고생하는 건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만의 부를 챙기는 탐관오리의 모습, 그런 탐관오리를 잡는 암행어사의 모습까지.. 선비에 대한 좋은 이미지와 나쁜 이미지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난 개화기 이전의 옛 공부하는 양반의 모습을 선비로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옛 사람이 모두 '선비'는 아닐텐데... 그래서 사전을 찾아보았다.
1 예전에,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
2 학문을 닦는 사람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3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이르는 말.
역사서에 단편적으로 나오는 전형적인 인물이 아닌, 인간미와 자기 색깔을 가진 선비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비답게 산다는 것'이라는 책을 골랐던 데에는 '선비'에 대한 무지에서 조금은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들어있었다. 그래서 선택한 이 책, 자기 색깔을 지닌 '진짜' 선비를 만나게 되었다.
# 4부로 드러난 인물과 에피소드..
책은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인 '인생과 내면'에서는 스스로 쓴 묘지명과 13년간 꾸준히 쓴 일기 <흠영>, 한가한 삶의 여유를 느낄 줄 아는 이경전과 김정국식 여유, 절식의 철학을 가진 이익의 글, 권세가와 선비를 갈라지게 만든, 역사가 평가한 두 문인, 김안로와 유몽인에 대해 나와있다. 묘비에 새겨진 비문을 스스로 짓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오늘날의 유서의 다른 형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자화자찬묘와, 조선시대의 꾸준한 기록정신에 빛나는 공식문서에 못지않는 그 당시 생활사를 잘 알 수 있는 13년간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삶의 기록 <흠영>, 자신의 신념을 가지고, 일상생활의 여러가지 모습을 잘 포착한 유만주를 만날 수 있어 행복했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아야 한다는 철학을 몸써 생각하고 밥을 조금씩 덜어 십시일반으로 배불러 먹지 못하는 이들에게 주자고 주장한 이익의 글에서 선비의 따뜻한 마음을, 신념을 지키는 자는 역사가 다시 재평가해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김안로와 유몽인의 생애를 보면서 선비들이 지켰던 절개에 대해서,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중요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2부에서는 '취미와 열정'으로 오늘날로 말하면 매니아,에 해당하는 어느 하나에 푹 빠진 '치'들을 만날 수 있고, 예술가와 후원가의 멋진 모습, 벼루와 시전지에 빠진 선비들의 우아한 열정과 산수의 멋을 지닌 선비, 신분의 벽을 뛰어넘은 시인 삼대와 천민시인의 모습도 함께 살펴볼 수 있었다.
3부에서는 글이 전하는 마음의 울림인, '글과 영혼'으로 자신의 불우한 삶을 위로한 나에게 부치는 편지와 선비들의 척독, 재능이 있고 꾸준히 문학에 면려하여도, 권세가의 졸필이 인정받고 가난하고 이름없는 작가의 솜씨는 인정받지 못하는 이옥이 문학의 신에게 바친 제문,
연애편지와 팬레터 처럼 그리운 이에게 부쳤던 박제가와 조희룡의 회인시,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글에 드러난 동몽시, 글에 도덕적 재단으로 필화사건을 일으켰던 피비린내 나는 검열과 글을 통한 권력의 횡포를 알 수 있는 '필화사건', 동북공정과 함께 생각나는 중국의 역사 바로잡기에 힘쓴 종계변정과 조선역사 뒤집어보기, 야사를 다듬어 역사를 구성한 어숙권과 김려와 김택영을 만날 수 있다.
4부 공부와 서책에서는 글을 통한 세대를 초월한 스승과의 만남이 기록된 옛글 읽기,
선비라면 반드시 읽어야 했던 그 당시의 베스트셀러들, 공부하는 법과 글쓰는 법, 지식에 앞서
학문하는 자세를 배웠던 퇴계 이황과 다산 정약용이 남긴 글들, 과거를 포기하고 금강산으로 떠난 신념있는 선비 신광하도 만날 수 있다.
단편처럼, 주제 별 짧은 모음이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부분부터 골라 읽어도 좋고,
사소한 일상사에 관심있는 성향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글을 읽어도 흥미 있는 도입부로 인해 글을 읽는데 지루하지 않았다. 다양한 삶을 살았던 그들의 방식와 지금의 현실과 예전의 같았던 점과 달랐던 점들을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에피소드와 철저한 고증으로 나오는 산문 글의 묘미를 느낄 수 있던 따스한 글이 모인 책이다.
# 잊혀지고 잘 보이지 않던 우리 선비들의 개성을 잘 드러낸 책..
개인적으로 마이너리티를 좋아한다.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일상화 되던지 보편적인 된 것이 아닌, 조용히 한적한 곳에 자신만의 뜻을 세우고,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면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을 존경한다. 글을 배운 후, 3700여일동안 일상을 기록하지 않다가 21살 되던해부터 13년간 삶의 원칙을 세우고, 일상과 사건, 그리고 여러가지 생활사를 기록한 유만주와 시전지를 만드면서 글을 담았을때 그 편지를 보는 이의 기분까지 배려한 이덕무의 시전지 탄호전의 정성은 내가 배워야 할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자기 색깔을 지닌 멋진 '선비'를 일상에서 만날 수 있기를, 그런 이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한 멋진 책이었다. 정민 선생님의 '책읽는 소리'에 비추어 못지 않게 구성과 글에 공을 들인 흔적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저자의 다음 책을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