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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아들
박목월.박동규 지음 / 대산출판사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 왜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없는걸까?
도서관에서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검색을 해 보았다. 466권이라는 숫자가 나왔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검색해 보았다. 271, 그중에서 아버지 행동에 대한 비판하는 책, 이름만 아버지인 책, 할아버지로 검색되어진 책을 빼 버리고 나니 50권 안팎이 되었다. 어버이날에 보여지는 프로그램을 생각해 보아도, 아버지의 헌신적인 모습보다는 어머니의 숭고하고 인내의 모습을 많이 본 기억이 난다.
아버지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지 생각해 보았다. 어머니의 살갑고 따뜻한 모습과는 반대인 엄격한 모습, 가깝게 다가가고 싶지만 왠지 모르게 다가서기 힘든 어려운 뭔가가 있었다. 아주 가까운 개울이지만 쉽게 넘을 수 없는 거리감이라고 할까. 매일 아침이 되면 뜨거운 햇살을 가져주는 태양과 매일 끼니때마다 챙겨주는 밥, 그리고 항상 공기중에 떠 있는 산소처럼 고맙다기 보다는 당연히 내 옆에 있어야 한다는 당연한 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그네', '하관' 등의 작품을 펴낸 박목월이라는 시인의 뒷이야기에 대한 호기심과 함께, 이제는 아버지가 되버린 아들이 바라보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사랑, 잘 보여지지 않는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싶은 마음에 끌려 책을 집어 들었다.
# 가정을 가장 소중히 했던 아버지의 따스한 기록.
아내의 수술, 새로운 집의 신축결정, 자식의 입학, 졸업, 생일잔치 등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겪을 수 있는 작은 일상에 담긴 아버지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영화처럼 극적이고 쉽게 감동을 주는 부분은 그다지 없지만, 잔잔하면서도 따뜻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아버지의 마음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아내와 화투를 치다가도 자식이야기가 나오자 자식일에 전념이 없는 모습, 두 아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고민하는 모습, 바르지 못한 행동을 했을 때 크게 나무라지만, 밤에 아들이 잠들었을 때 다가와 머리를 쓰다드므며 위로해 주는 모습등. 아들의 눈에 잘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담겨있는 가장의 고뇌와 가정에 대한 소중함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모습.
아버지의 가정에 대한 사랑을 박목월시인의 글에서 느낄 수 있었다면, 박동규 교수의 글에서는 아버지인 박목월 시인의 따스한 부정을 느낄 수 있다. 삼촌의 노트에 적힌 아버지의 시를 보며, " 찔레꽃처럼 쑥대밭처럼 살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기억해 다오"라는 이야기를 남들이 보지 않아도 강한 생명력으로 자라는 삶의 태도를 배우고, '자전거 사건'을 통해서 참다운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고, 진로결정에 대해 무관심하지만, 지나친 간섭을 하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한 아버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넉넉한 삶은 아니었지만, 비싸고 귀한 선물이 아닌, 작고 소박한 조금은 다른 일상을 통해서 특별한 날을 축하했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물론 아버지의 따스한 마음과 함께 어머니의 헌신적인 모습또한 느낄 수 있다.
"그래, 내가 아버지에게 딱 한가지 잘해드렸다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돈이 없어 끼니를 걱정해도 아버지가 월급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돈을 떼어내어 책을 사와도 나는 한 번도 책 샀다고 불평해본 적이 없었다." 라고 남편의 삶을 지원해 준 아내가 있었기 때문에 따스한 가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 덤으로 더 얻을 수 있는 것.
1950년대의 삶의 모습과 그당시 문학가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의 주는 작은 선물이다. 전차가 다니던 모습, 예전에도 걱정했던 입시과열의 열풍, 가난한 작가의 생활을 알 수 있다. 또한 박목월 시인이 다른 글을 쓸 때는 펜으로 쓰지만, 시를 쓸 때에는 연필을 직접 깎으면서 마음을 다잡고 썼다는 것, 너무 가난해서 비닐하우스 안에서 자리를 펴고 누웠지만 집을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밤하늘의 별과 달을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 그 마음을 잊지 않았기에 현실이 어려워도 시인으로서의 삶을 꾸준히 살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생각해 본다.
# 사랑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에 대해서 낯설고 어려웠던 딱딱한 마음이 조금은 부드러워졌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아버지가 우리 가족에게 해 주었던 사랑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아버지의 꿈도 포기하고 힘들고 고된일도 맡아서 성설히 일하시고, 어떤 일을 선택하던지 마음 가는대로 생각하지 않고 꿈을 정하고 그 길을 향해서 도전해 나가라는 말씀, 내가 조금이나마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건 가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마음으로 느끼지 못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올해 가을에 어머님 수술을 보면서 처음 보았던 아버지의 눈물, 항상 야단치시지만, 새벽 4시에 일어나셔야 해서 일찍 주무셔야 하지만 11시 너머 밤늦게 들어올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려주시는 마음, 항상 오후 9시가 되면 할머니에게 전화하시는 마음, 할머니집보다 외가집에 더 자주가고 어머니보다 더 외가를 챙기는 모습들. 어머니의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에 대해 투정을 부리면, "다른 사람은 뭐라고 해도 우리 아들은 그러면 안 돼." 라며 어머니의 편을 들어주시는 모습, 어쩌면 아버지가 술에 취해서 집에 들어온 모습또한 마시고 싶지 않았지만 사회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가져야 했던 술자리와 아내와 자식에게 들어오지 못하는 마음을 이름을 부르며 취한 상태에서 말하고 싶었던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까지 해 보게 되었다.
돈이 해 줄 수없는 걸 제외하고는 따뜻한 마음과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바르게 산다는 게 어떤건지 보여준 모습들을 보다 다른 사람들은 쉽게 하지만 난 꿈조차 꾸지 못했서 원망하던 마음만 바로보았던 내 모습을 반성할 수 있었다. 어디 한 번 여행을 가지 못할 만큼 넉넉하지 못한 삶, 학원 및 운동을 배우고 싶어도 갈 수 없었던 형편들 그저 속으로 속상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그 대신에 생활이 여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작아 보이는 돈 뒤에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이 스며있는지 알게 되었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더 많이 보게 되었으며, 책을 통해서 마음으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어려서 그러면 안된다는 걸 배웠다.
감동을 억지로 유도하지 않는 따스한 마음들이 나를 다시 돌아보게 해 준 책이었다.
어렸을때의 엄격했던 아버지도 이제는 조금씩 삶의 어려움을 나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하신다. 이제 성인이 되었다고 인정해 주시는 듯한 느낌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이제껏 혼자서 지었던 그 짐들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랑한다는 말, 어색하고, 쉽게 말하기 아까운 소중한 말이라는 생각에 아껴주었던 말.. 이제는 이야기 할 수 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