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수업 - 이별이 가르쳐주는 삶의 의미
폴라 다시 지음, 이은주 옮김 / 청림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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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힘겨운 여정을 이겨내는 힘. 사랑..


  타인과 관계를 맺는데 서툴고, 폭력으로 자신의 의사표현을 했던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를 가졌던 심리치료사 폴라 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 아이를 첫 아이를 낳고 행복한 생활을 하였지만, 둘째 아이의 임신을 알고 여행을 다녀 오다가 음주운전사로 인해 자신의 남편과 딸을 잃게 된다. 임신중이였던 둘째가 열살이었던 때 재혼을 결심하였지만, 5년만에 다시 결심해야 하는 이혼의 상황. 삶의 절박하고 힘겨운 여정에서 자신을 잃어가기 힘든 상황에 내면의 힘을 발견하고, 사랑하는 이에게 도움을 구하면서 어려움을 하나씩 사랑의 힘으로 극복해 가는 과정이 책에 담겨있다.



#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 맺어준 인연.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로 유명한 모리 교수가 죽음을 앞두고 매주 금요일에 자신의 치료와 관계없이 인간대 인간의 만남으로 선택했던 폴라 디시. 모리 교수가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면서,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변화시키는 계기와 폴라 디시 역시 모리와의 만남으로 아버지와의 관계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알 수 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 책을 만나기 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저자인 폴라 디시가 자신의 아픔을 이겨내는 과정과 재소자 교화시절에 다니면서 자신과 재소인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기술하면서 책은 시작된다. 바쁜 스케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내키지 않았던 일에서, 마음을 열어가며 그들에게서 지금의 삶의 소중함을 배워가는 과정은, 그녀의 마음이 깨어있는 사랑이 넘치는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과 부딪치면서 많은 관계를 맺어가지만, 어떤 눈길과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개인의 삶과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오만하고 자신감이 넘쳤던 모리교수와의 첫 만남과 그를 한 번 더 만나기 위해 1.5Km의 거리를 왕복해야 하는 수고와 돈을 벌 수 있는 시간을 버리면서 그 와의 만남을 선택하기로 결심하게 된 스콧과의 만남과 그와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그들은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영성지도자로서의 저자의 경험을 차지하고라도, 모리 교수와 폴라 다시의 두 사람이 서로의 만남을 통해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마음이 뭉클했던 일이었다.
 

# 이별과 눈물이 주는 힘..

 
  종교에 대한 견해도, 삶을 살아온 방식도 달랐지만, 아픔을 감싸안고 소중한 순간들을 감사해하며, 하나씩 자신의 오감이 주었던 소중한 추억들을 고마워하고 떠나보내는 시간, 그러면서 이별을 맞이하는 과정에 마음이 움직였다. 오래전 기억하던 유안진 님의 글이 생각났다.
 

  눈물을 흘려본 이는 인생을 아는 사람입니다.
  살아가는 길의 험준하고 뜻있고 갋진 피땀의 노력을 아는 사람입니다.
  고독한 영혼을 아는 사람이며 이웃의 따사로운 손길을 아는 사람이며
  가녀린 사람끼리 기대고 의지하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귀하게 평가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눈물로 마음을 씻어낸 사람에게는 사랑이 그의 무기가 됩니다.
  용서와 자비를 무기로 사랑할 줄 압니다.
  눈물로 씻어낸 눈에는 신의 존재가 어리비치움니다.
  강팍하고 오만하고 교만스러운 눈에는 신의 모습이 비쳐질 수 없지만
  길고 오랜 울음을 거두고 모든 존재의 가치를 아는 눈에는
  모든 목숨이 고귀하게 보이고
  모든 생명을 고귀하게 볼 줄 아는 눈은 이미 신의 눈이기 때문입니다.
 

  출전 : 유안진의 <그대 빈 손에 이 작은 풀꽃을> 중에서


#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 사랑.


  신의 존재를 부정했던 모리 교수가 '사랑'에 대해 신에 대해 관대하게 다가설 수 있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저자의 영적 체험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사랑'의 소중함을 인정하게 된 가장 큰 연유는 매주 먼 길을 그를 위해 다녀주었던 수고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음에 동의한다. 신의 언어를 믿지 않지만, 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그의 모습에서, 다른 종교와 함께 어울리는 그녀의 행동을 보며 사랑의 힘과 신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주는 과정을 책으로 지켜보며,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사랑임을 알 수 있었다.

  '비전'을 믿고 영적체험을 하는 그녀의 에피소드는 '영적 신앙'을 가진 이에게는 특별한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신'에 대한 큰 기대를 하지 않는 내게는, 신의 뜻을 '사랑'으로 실천하는 그녀의 모습이 좋아보였다. 그와 모리와의 만남이 있었기에 많은 이 책을 읽을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사랑만 하기에도 짧은 인생, "사랑할 수 있는데도 사랑하지 않는 쪽을 택하는" 일이 많지 않았는지 내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조건을 감사하고 고마워 할 줄 아는 일, 내 자신안에 모든 해답이 있고, 살아갈 힘이 있다는 믿음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내면의 힘'과 저자와 모리교수의 아름다운 만남을 볼 수 있어 기뻤다. 따스한 마음을 가진 이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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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인삼색 미학 오디세이 1 - 진중권.현태준과 함께 떠나는 원시~근대 미와 예술의 세계
진중권 원작, 현태준 글.그림 / 휴머니스트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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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학'이 어렵게 다가온다면.. 이 책으로 시작하세요.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라는 책을 찾다가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원작보다 이 책을 먼저 읽기로 결심한 것은 책이 만화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만화에는 편하게 다가설 수 있는 친근감이 있다. 11명의 큰 줄기의 등장인물이 나온다.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루벤스, 칸트처럼 이름을 들어 보았던 인물도 있고, 플로티노스, 빙켈만, 푸생, 바움가르텐처럼 처음 듣는 인물도 있다. 빙수쟁이, 칙칙폭폭, 컨닝대장 등 각 인물마다 이름을 패러디해서 재미있게 다가설 수 있게 한 점이 이 책의 장점이다.

 


# 원시예술부터 근대 예술까지.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던 구석기시대의 벽화와 아는 대로 바라본 신석기 시대의 '개념적 사유'의 차이를 알 수 있다. 놀이로써, 일로써,주술(상상력)으로써 살펴보는 미술이 만들어지는 계기, 진짜와 가짜의 차이의 살펴보는 미술, 그리스 예술의 특징과 중세예술의 특징들을 즐겁게 배우고, 그 지식들이 교양으로 쌓이게 된다. 유명한 철학자들이 생각했던 미의식의 특징과 그 특징들이 잘 드러난 작품들을 살펴보며 쉽게 저자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 
 

  유머가 넘치는 만화가의 개성과 잘 만들어진 원작의 즐거운 만남이라고 할까. 무엇을 아름답다고 말할 것인가부터, 언제, 어떻게 아름답다는 점까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미학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각 시대마다 각기 다른 미의 관점을 알고 있다면, 작품을 이해하는데에도 더욱 즐거운 기분으로 감상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플란다스의 개의 네로가 보고 싶어했던 그림이 루벤스였다는 새로운 사실도 알 수 있었고, 한장으로 전체내용을 정리한 돌고 도는 원시 ~ 근대 미학 오디세이로 전체 흐름을 살펴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원작의 저자의 학창시절을 알 수 있는 인터뷰도 재미있었다.

 
# 생활에서 찾아보는 미학.


  진중권이 쓴 <미학 오디세이>와 <삼인삼색 미학 오디세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생활미학산책 코너라고 생각한다. 만화가가 생각했던 우리 일상 주변에 남아있는 미학의 흔적들을 보는 즐거움이 좋았다. 생활속에서 미학의 지식을 복습할 수 있었다고 할까. 80년대 우리나라 미술계의 화두였던 민중미술이란 존재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진짜와 가짜의 구별이 없던 시대를 그린 반지의 제왕이 <요술 반지>의 이름으로 1979년 동화책으로 나왔다는 사실과 아직도 마술사의 역할을 하고 있는 '도'를 닦거나, '신'이 내린 분들의 거처를 보며 일상속에 숨어있는 미학들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미학에 문외한인 내게는 친근감 있게 다가온 부분이었다.

 
  처음에는 재미로 읽고, 두 번째부터는 지식을 쌓는다는 느낌으로 읽다보면 재미와 교양을 함께 잡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미학은 미술 영역뿐 아니라, 사회와 정치, 철학 등 여러분야를 알아야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다 한다. 멀게만 느껴졌던 미학에서 살짝 가까워진 느낌이다. 2편인 모더니즘편도 서둘러 읽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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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개미지옥 - 2007년 문학수첩작가상 수상작
서유미 지음 / 문학수첩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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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주 잠자리, 개미귀신 그리고 개미지옥

 
  명주 잠자리의 유충은 개미귀신이라 불린다. 양쪽 더듬이로 개미 또는 벌레를 잡아먹으며 1년 내지 2년간 생활하다가 명주 잠자리가 된다. 날개가 명주처럼 곱다고 해서 붙여진 명주잠자리의 유충인 개미귀신은 원뿔을 뒤집어 놓은 듯한 구덩이를 만들어, 그 안에 개미나 벌레들이 들어오면 잡아먹는다. 개미들이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인 개미지옥처럼, 바겐세일 중의 백화점 쇼핑의 유혹에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 없다.


# 화려한 백화점 내부의 모습, 화려한 빛깔 이면의 어두운 긴 그림자.

  
  전문대를 졸업하고 딱히 취직할 곳은 없고, 등록금 대출금과 생활비 때문에 장기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는 소영, 고졸 백화점 직원이라는 학력을 떼고 싶어 악착같이 공부하는 미선, 4년제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1년반째 휴학하며 일하고 있는 윤경, 미선과 고등학교 친구였고 가난한 형편에 허덕이는 정민은 백화점 옷 매장에서 근무한다. 상품권 깡으로 발품을 팔며 생활하지만, 매점 노인에게 밥목이 잡혀 악마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선영도 백화점 근처에서 배회한다. 백화점의 화려한 풍경과 그 뒤 어두운 그림자에서 허덕이는 인물들의 모습의 사실성 있는 묘사가 눈에 들어온다.  백화점 바겐세일 3일째 화장실에서 살인사건과 과도한 다이어트가 원인인 지영의 탈진사건이 벌어진다.


 3일간 있었던 일들을 옷 코너의 직원의 시선과 범행자 피해자의 시점에서 다시 보여준다. 추리소설의 형식으로 소설이 전개되는 듯 하지만, 사회성 강한 메세지에 더욱 관심이 갔던 작품이다.  쇼핑의 덫에 빠져, 카드를 긁으며 개미지옥처럼 빠져나오지 못하는 덫에 빠져가는 소영, 윤경, 정민의 모습과, 개미지옥의 모습들은 허영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크나큰 돈으로 사람을 매수하기도 한다. 구매능력으로로 사람을 평가하고, 매출에 의해 평가받는 자본주의 사회의 꽃인 백화점과 그 백화점의 허실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할까.


# 공감가는 표현들에 끌리다.


  다섯 명의 여인들의 개인사와 사건들이 얽혀들어가면서 이야기들의 전개가 하나로 집중되는 것보다 여러가지 풍경의 단면들을 보는 느낌이 강했다. 하나의 사건들이 잘 연결되었다기 보다는, 각개의 사건들의 풍경들이 지금 현실의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고 할까. 첫 직업을 고를때 망설이던 "처음 시작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말, 백화점 내 풍경을 보면서 '자꾸만 갖고 싶은게 생기는 마음', 존중받는 기분을 얻고 싶어 백화점을 찾아간다는 말과 "여행하고 싶은 곳의 사진을 한 쪽 벽에 붙여둔 채 하루에도 몇 번 씩 쳐다보면서 자질구레한 업무를 해결하는 것이 일상이다"는 말, 어른이 되면서 가면무도회에 쓰는 가면을 쓰면서 생활하는 것 같다는 표현에 공감이 갔다.

  선량하고 약해보이는 백화점 근처 매점 노인의 얼굴 뒤에, 악덕 포구와 거간꾼의 뒷모습이 있다는 건 자본주의에 경도되어 돈에 물든 어두운 인간의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아래를 보며 잘 걷지 않으면 어느새 개미지옥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만 결국 파멸을 맞이하는 개미처럼, 화려한 쇼핑의 풍경과 자본의 유혹에 빠져 빚의 수렁에, 인격이 무너져내려가는 모습을 쓸쓸하게 잘 담아냈다. 

 

# 자본주의의 개미지옥, 그리고 무기력..


  무기력한 인물들의 모습에 마음이 아프지만, 그 또한 현실 사회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컴플렉스와 외모를 중시하는 세태를 비난하면서도 그 잣대에 익숙해진 내 모습을 보았을 때 정신이 번쩍 든다. 의식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현실의 모습에 적응하면서 자신을 합리화 하고 만다. 초라한 거울속의 우리 사회의 풍경을 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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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동물원
츠츠이 야스다카 지음, 양억관 옮김 / 북스토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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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F 블랙 유머의 진수를 보여준다. - 츠츠이 야스타카가 선사하는 세상 비틀기.
 

  <최후의 끽연자>를 통해 츠츠이 야스타카의 SF 소설을 접하게 되었다. 재미있고, 시간과 공간을 비틀면서, 지금 사회의 문제점을 웃음으로 고발하는 그의 소설을 읽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 <헐리웃 헐리웃>까지 이제까지 3편의 소설을 만났다. 네 번째 만나는 <인간 동물원>은 40년 이전에 쓴 1969년 일본에 출간된 작품이다. 40년의 세월이 무색하게 현재에도 생생하게 살아숨쉬는 사회를 바라보는 문제의식과 문제점이 지금 현재 사회에도 유효하다. 로봇이 집안일과 생활속에 조금씩 침투하고 있고, 정신분석과 장기이식 등의 문제점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시선에 현재의 세태를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 心理學 * 社怪學

 
  이 작품의 일본어판 제목은 <心理學 * 社怪學>이다.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는 심리와 괴이한 사회라는 단어에서 현대인의 내면의식과 사회현상에 대한 풍자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나르시시즘>, <욕구불만>, <우월감>, <사디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최면암시>라는 제목들에서 마음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겠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 이전에는 순결을 중요시하지만, 결혼 이후에는 성적 능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성지와 사회의 시선을 비꼬는 <욕구불만>,  주택단지 사는 가구와 아파트 단지 사는 가구의 대립을 풍자한 <우월감>, 자신의 모습과 똑같은 모형 로봇이 나타났을 때의 자신의 단점을 부정하는 모습과 지나치게 인간를 닮아버린 기계와 기계와 인간을 착각해버려 생기는 에피소드가 담긴 <사디즘>, 정신분석의 모습을 보여주며, 한번 더 웃음을 선사해주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쉽게 걸리는 최면에 공간을 이탈해버리는 <최면암시> 등 작은 상상력 하나만으로 재미있게 일상을 비틀어 내는 작가의 글솜씨에 반해버렸다.   

  후반부에는 실제 일본 대학에서 투쟁했던 전공투와 제도에 노예가 되어버린 세태를 고발한 <원시공산제>, 총리, 부총리, 장관등이 사고를 당해 동물의 장기를 이식했을 때의 모습을 그린 의회제 민주주의, 매스미디어에 의해 좌우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매스 커뮤니케이션>, 기차에서 오물을 투거와 개인의 권리에 관한 <근대도시>, 지하 20층 넘게 살고있는데, 공사가 진행중이여서 집이 굴삭기에 밀릴 위험에 처한 <미래도시>, 개의 심장, 말의 간, 돼지의 위장을 이식하고 본능을 억제하지 못했을 때 생겨나는 <조건반사> 등 기발한 상상력 속에서 현재 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인문학에서 이야기하는 어렵고 딱딱한 이야기들은 머리에 잘 들어오지 않지만, SF 소설로 상상력과 재미가 가미된 글을 읽으며, 즐거움과 함께 현대 사회의 모습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답답하고 무기력한 일상에서 작은 활력소를 얻기위해 책을 읽었는데, 덤으로 지금 사회가 걸어가는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고 할까. 로봇이 개발되고, 편리한 생활이 진행되더라도 인간의 인격과 심성이 높아지지 않는다면, 도리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생히 알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자위, 순결, 불륜, 살인 등 거침없는 묘사에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블랙유머를 좋아하지 않는 이라면 과도하게 느껴질 수 있는 표현에 마음이 불편할 수 있다 생각한다. 블랙유머를 좋아하거나, 문학에서의 표현에 관대한 사람이라면 즐겁게 소설을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고전의 매력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생생하게 전해지는 문제의식이라 생각한다. 고전의 기준은 잘 모르겠지만, 재미로 읽는 시간을 지겹게 만들지 않고, 읽은 후에 곰곰히 책의 내용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두 가지 기준에 만족하는 책을 만났다. 여운이 길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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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 김열규 교수의 열정적 책 읽기
김열규 지음 / 비아북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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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함께 지내온 77세의 인생. 책에 대한 최고의 예찬서.


 
  어렸을 적 할머니에게 들었던 옛날 이야기, 목사님이 들려주었던 만화교실 등 이야기를 좋아했던 소년은 책에 흠뻑 빠지고 만다. 일제 강점기 때문에 조선어 대신 일본어로 공부해야 하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지만, 낭독의 매력과 책에 빠진 소년은 책과 함께 77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함께 생활하고 공존하며 자신을 지탱해 주었던 책, 서문의 마지막에 적힌 '책님들이시여, 고맙습니다!'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일 만큼, 저자는 다양한 방법으로 책을 읽고, 책 읽는 삶을 즐겼다. 책과 함께 한 평생을 지내온 저자의 독서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생의 곳곳에 실린 책과 함께 그의 삶을 살펴볼 수 있다. 힘겹고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던 그 마음, 그리고 책과 함께 생활하는 즐거움의 향기가 책 곳곳에 스며있다. 

 시, 소설, 비극, 희극 등등 장르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책을 읽어냈던 방법과 자신만의 장르읽기의 방식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속독과 통독, 징검다리 읽기, 누워서 책읽기, 부모님 몰래 책읽기 등 책에 관한 많은 에피소드들에게 저자에 대한 인간적인 친근감을, 책읽는 다양한 방법과 방식을 통해 수준높은 독서의 방법의 비결을 엿볼 수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책 예찬론을 책을 통해 만나는 일, 즐겁고 신나는 일이다.

 
 

# 인간에 대한 이해, 작품에 대한 공감!

 

  책은 2부로 나뉘어져 있다. 제목인 讀書에 어울리게 1부는 서, 책에 얽힌 저자의 한 평생의 시절을, 2부에서는 요령, 의미, 장르, 작품 읽기로 나누어 책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요령과 책을 읽어내는 저자만의 방식이 소개되어 있다. 

  어리고 병약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책에 빠져지냈던 책에 빠진 저자의 유년시절과 일제시대, 광복 이후 등 저자가 살아온 생의 흔적과 함께 얽혀있는 책의 이야기를 즐겁게 만날 수 있다. 읽는 것 자체를 좋아했던 유아와 소년 시절, 고독과 고통과 죽음에 관한 책들을 읽어가며, 생과 죽음의 의미를 찾아갔던 청년시절, 노년이 되어 능숙한 달인처럼, 산책하듯이 편안하게 책을 읽고, 책과 하나가 된 듯한 책읽기까지, 저자가 살아왔던 삶과 그 삶을 걸어가는데 변화의 계기가 되었던 책들과의 만남이 1부에 실려있다. 당신이 이제껏 읽어온 책들을 말해준다면, 당신이 누군지 말해주겠소 라고 말했던 옛 사람의 이야기처럼 책이 저자의 인생을 변화시켜온 과정을 알 수 있다.

   2부에서는 꼼꼼하게 책 읽는 방법, 속독과 숙독의 차이와 경계, 클로즈 리딩 등의 책을 읽는 요령과 책에 담긴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게임과 물고기, 금을 캐는듯한 즐겁게 책을 읽어가는 방법, 시와 소설 논설문, 등의 다양한 장르를 읽는 저자만의 노하우와 저자의 삶이 되어버린, 도스토예프스키, 체호프, 토마스 만, 릴케 등의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다. 토마스만과 도스토예프스키를 좋아했던 지인이 생각나기도 하고, 지인과 다른 저자만의 작품이해와 깊이있는 책과의 추억도 좋았다. 

   맛있는 사과를 먹고, 맛있다 라고 말을 하는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어떻게 맛이 좋은지 표현하는 건 개개인의 능력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했던 책읽기의 매력의 흔적을 1부에서 느끼면서 공감할 수 있었고, 다양한 책 읽기의 방식과 그 매력을 2부를 통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되었다. 다양한 책읽기가 있었지만, 한 가지 방식에 편독되어 읽던 나의 책읽기 습관을 돌아 볼 수 있었던 건 책이 내게 준 작은 덤이었다.

  책을 읽고 나자, 저자의 다른 책이 궁금해졌다. 많이 듣고 있었지만, 아직 읽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던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와 <한국인의 자서전>을 읽는 것부터 저자에 대해 알아나갈 기회를 만들 계획이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그 책이 다시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기억하고 있다. 좋은 책은 좋은 사람을 만들고, 좋은 사람은 좋은 책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계기를 얻는다고 믿는다. 책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사람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비교하는 건 의미가 없다 생각한다. 나쁜 책에서도 좋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는 반면교사의 능력을, 좋은 책을 만났을 때 그 의미를 잊지 않고 찾으려 노력하는 독서의 자세의 중요성을 다시 절감했던 시간이었다. 꾸준히 한 글자씩 읽어나간다면, 어제보다는 나은 독자가 될 수 있을거라 기대해 본다. 독서의 '매력'과 저자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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