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이 있었다 - 그리고 다시 한 사람...
김종선 지음 / 해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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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사람..

 
  사랑에 빠진 남녀는 자연스레 연애를 시작한다. 밀고 당기면서 설레는 마음을 간직하기도 하고, 헌신없이 주기도, 이유없이 사랑을 많이 받기도 한다. 눈에 씌워졌던 콩깎지가 벗겨지는 권태기에 좀더 냉정하게 자신과 상대와의 관계에 대해서 고민하기도 한다. 여러가지 여건에 의해 이별을 하고 나면, 다시 혼자가 된다. 이별후에, 찾아온 혼자라는 느낌, 이별하기 전 느끼게 되는 감정의 변화의 풍경들을 이야기한다. 깊은 밤 새벽녁에 감미로운 목소리의 DJ가 들려준다고 생각하고 글을 소리내어 읽어보면 느낌이 참 다르게 느껴진다. <지현우의 기쁜 우리 젊은 날>에서 반응이 좋았던 이별이야기가 묶여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날까봐, 그 추억들이 다시 생각날까봐, 그 사람과의 추억이 얽힌 곳에 마음은 가고 싶지만, 발걸음을 울리지 못하기도 하고, 이별 후에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그 사람의 감촉, 기분전환을 위해 머리를 바꾸고, 지나와서 예전의 추억을 떠올리기도 하면서 이별의 감정에 젖어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스스로를 자책해 보기도 하고, 지난 후의 그이의 큰 사람에 감사하기도 하고, 이별을 예감하면서 두려워하는 그 모습들을 한 장의 글로 느낄 수 있다. 그를 위해서, 나를 위해서 하는 수많은 거짓말들은 이별 후에 사람들이 많이 하게 되는 행동이라는 점도 느낄 수 있었다.


 
# 99편의 이야기가 모여서..

 
  소리내어 읽으면 2분 정도 걸리는, 짧은 이야기들이 99편이 모였다. 이별을 예감하면서 흔들리는 마음, 이별후에 다시 깨닫게 되는 회환, 기분을 전환하려 소개팅을 했다가 그의 친구를 조우했을 때, 멋지게 차려입었지만 아무런 약속이 없을 때 등등 공감을 원하는 저자의 바램처럼, '이럴 땐 이런 마음이였겠구나'하는 장면들이 많았다. 질투가 사랑보다 더 강해서 상처받을까봐 먼저 헤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애인이라는 말 대신, 친구라고 소개했을 때 느껴지는 서운함, 헤어짐의 원인이 자신에 대한 컴플렉스였다는 것을 발견한 순간 등 많은 장면과 그 속마음들이 나타나 있다. 순서에 관계없이 아무때나 짧게 하나 읽을 수 있어 편리하기도 하고, 한 편을 읽으면 전체 내용이 어떻겠구나 다 알 수 있어 식상하기도 했다.

  책을 읽어가며, 이별 후의 이야기들은 사랑을 시작하기 전의 싱글이나 사랑중인 연인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다 읽고 난 후, '있을 때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할 수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해도 남는게 아쉬운 마음이지만, 마음껏 사랑하지 못했을 때 마음에 남아있는 빚과 같은 무거운 마음들이, 흐린 날씨나 기분이 쳐질때 더욱 스스로를 힘겹게 한다고 할까. 사랑때문에 아파한 이에게는 공감을, 다른 이들에게는 경계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글들이 많다.

 

# 연애는 함께 내딛는 2인 3각게임.

 

  친구와 연애의 차이는 관계의 종료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는 멀어졌다가도 다시 가까워질 수 있지만, 연인 사이는 서로 헤어짐을 경험하고 나면, 다시 재결합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사이로 되돌아가기도 어려운 것 같다. 이별의 아픔과 상대와의 헤어짐을 인정하는 시간이 지나고 다시 편안해지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과 정성이 필요하다고 할까. 쿨하게 만나고 헤어진다지만, 역시 연애는 피가 뜨겁기 때문에 쉽게 냉정하게 하기 힘든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초심을 기억하고, 서로 노력해야 하는 일이 중요한만큼, 더이상 진전이 없는 정체된 사이에서 마음도 없는데, 나쁜 사람이 되기 싫어 질질끄는 일을 피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타인의 연애에는 쉽게 답이 보이지만, 내 문제에서는 왠지 주춤할 것 같은 이 기분.. 사랑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닌, 가슴으로 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연애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되는 시간이었다. 스케치북과 물감을 동일하게 주어도 각자의 생각에 따라 다른 풍경들이 나오듯, 연애 역시 둘이 함께 그려가는 그림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때로 마음이 맞지 않아 그림을 찢고 다시 그리는 경우가 있어도, 헤어짐은 순간 서로 함께 그리는 순간들을 즐거운 기억이 될 수 있게 노력하는 일은 멈추지 말아야 할 것 같다. 다 찢어버린 후에, 다시 테이프로 이어 붙이려 해도 그때는 이미 늦은 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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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웃 헐리웃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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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날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 츠츠이 야스타카

 
  <시간을 달리는 소녀>와 <최후의 끽연자>로 츠츠이 야스타카를 알게 되었다. 일반적인 상상을 뛰어넘는, 생각의 틀을 뛰어넘는 소재와 발상의 전환으로 즐거운 SF세계를 만나게 해 주었다. 처음에는 즐거운 재미를, 두 번째는 자유로운 상상을, 세 번째는 사회와 현실에 대한 강한 메세지를 만날 수 있다. 30편의 짧은 장편(掌篇)이 모여있는 <헐리웃 헐리웃>에서는 세 번째 메세지를 다른 소설에서 보다 좀 더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머리속이 복잡하고, 재미있는 것을 찾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지만, 한바탕 웃고 난 후에는 저자의 글 뒤에 숨어있는 강한 메세지를 느낄 수 있다. 날카로운 사회풍자와 재치있는 상황들, 일본 소설의 가벼움을 좋아하지 않지만, 이 작가만은 독특하게 다가온다.
 

# 현실을 잊게 해 주는 독특한 상상력.


  얼굴도 못생기고, 공부도 못하는 무력한 나. 유일한 취미는 헐리웃 영화를 보는 것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영화잡지에서 나온 '영화의 신'은 무력감에 빠진 나에게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다고 하고, 난 얼굴 예쁘고 몸매좋은 여배우를 얻게 된다.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는 그녀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학교로 데리고 가게 되고, 친구들의 시선은 달라지게 된다. 다른 학생들도 사정을 알게 되고 영화의 신에게 다들 부탁을 하게 되는데... <헐리웃 헐리웃>

   때론 키우던 강아지 불독의 생각을 알게 되기도 하고<불독>, 도산 직전의 회사를 살리기 위해 악마와의 계약을 시도하기(악마를 부르는 자들)도 한다. 전화를 하나 최초의 전화기가 일본에 들여온 궁내성과 통화<최초의 혼선>를 하기도 하고, 학생인 척 끼여드는 도깨비와의 추억<다다미 도깨비>을 만들기도 한다.  모두가 소멸해버리고 넷만 남아버린 페허의 시대, 여자를 발견하지만 놓치기도 한다<폐허>.

 이제까지 만났던 SF 소설들은 현실을 뛰어넘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 화성이라던지 목성이라던지, 2000년 후의 첨단 과학 세대등을 배경으로 했다면, 츠츠이 야스타카에 등장하는 단편들은 현실을 기반으로 작은 하나를 비틀어 놓은 느낌이다. 세상은 그대로인데, 내가 UFO와 소통을 한다면, 갑자기 강아지와 대화를 하게 된다면, 소소한 현실에서 살짝 바꾸어 놓은 하나로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시각을 전해준다. 일상을 지겹고 지루하게 생각이 드는 이유는 내가 바라보는 현실의 시각을 고정되어 바라보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즐겁게 웃은 후, 느껴지는 밝지 않은 사회의 모습.  



   소설의 책무는 읽고싶게 만들어야 한다 생각한다. 어렵고 딱딱하고 진지한 내용은 철학, 인문서적을 읽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재미없지만 유익한 소설이 인기없는 건 독자의 탓이 아니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야스타카의 소설을 읽고나면, 즐겁게 웃고 난 후 보여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의 느껴진다. 과학기술이 발전해가면서 더 이상 상상을 하지 않는 사람들 <피투성이 토끼>에서 만날 수 있고, 인생의 계획보다 빨리 승진하고 돈을 많이 벌게 되어 할 일을 잃어버린 부부<마이 홈>에서는 직장사회에서 계급에 매여 생활습관과 타인의 생활을 의식하며 생활해야 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암 치료약을 개발했지만, 아버지의 죽음이 연장될까 두려워 출시를 두려워하는 약학박사와 회사의 회장과 마누라의 죽음을 기다리는 사장과의 대화<특효약>를 통해 돈에 지나치에 매여있고 그런 사람들이 특별한 존재가 아닌 현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지나친 경쟁에 빠져있는 모습<타쿠 건재한가>, 남자가 아이를 낳는다면<산기>, 유행에 따라 그날 하루가 달라지는 상황을 보여주며, 유행에 빠진 일본사회의 모습<유행>, 일시적 스트레스가 쌓여가며 이상행동을 보이는 현대인의 모습 <어떤 죄악감> 등을 볼 수 있다.

  재미와 함께 현대사회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건, 츠츠이 야스타카 특유의 매력이다. 즐겁고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즐거운 소설이다. 일상의 틀을 넘은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작가를 만날 수 있는 건 독자가 책을 읽는 기쁨 중 하나이다. 그의 다른 책도 한국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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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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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의 시대, 그래도 걸어야 하는 이유

 
  시계들은 '1:17'에서 멈추었다. 세상은 다 불에 타버렸고, 남아있는 건 페허된 건물들 뿐이다.
남쪽을 향해 길을 떠나는 아빠와 어린 아이의 생존기가 이 책의 큰 줄거리이다. 경찰도 거래도 사라져버린 절망의 현실에서 쇼핑 카트와 배낭을 가지고, 떠나는 여행. 아이의 엄마는 노상에서 인신매매하는 강도들 등  자신에게 다가올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러 떠나버리고, 먹을것이 떨어져가는 절망의 상황에서도  사내는 아이를 위해 공포탄 두 알을 꼭 지닌 채 계속에서 남쪽으로 여행을 떠난다. 사람을 잡아먹는 노상 강도들과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할 수 없는 공포의 상태에서 사내와 아이는 계속해서 길을 떠난다. 

  차라리 죽는게 더 나을거 같은 절망의 시대, 먹을 걸 살 수도 없고, 잠을 편하게 잘 수 있는 공간도 없다. 간혹 편하게 쉴 수 있는 자연의 공간을 찾았다고 해도 오래 머물수가 없다. 내가 편한곳은 다른 이도 편한 곳이기에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스스로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그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다. 주(state), 통조림 등 모든 게 멈추기 이전의 문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는 낯선 사람들에게 호의적이다. 하지만 사내는 타인을 쉽게 믿을 수 없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며 겨우겨우 생을 이어가며,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계속해서 여행을 떠난다. 상상 그 이상의 절망의 시대를 보여주는 작가의 메세지는 무엇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 절망의 늪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다.

 
  실제 코맥 메카시는 인생의 많은 시기를 궁핍과 은둔의 생애에서 보냈다는 역자 후기를 보았다. 팔년 동안 헛간 같은 곳에 살며 목욕은 호수에 나가서 하곤 했지만,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강연을 해 주면 상당한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 할 정도로 자기만의 고집이 있는 작가이다. 정말 굶어죽을 경지에 이르면 꼭 어딘가에서 살 방도가 나타났다는 말과 책을 쓰게 된 계기가 9살난 아들과 함께 떠난 여행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다 산위에 불이 타오르고 모든게 다 타버린 세계를 생각한 후 집필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절망인 아무것도 기댈 수 없는 상황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면 살아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린 유년시절의 집터를 둘러보는 사내와 그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는 아이, 문명의 혜택과 화려했던 시기를 보았던 사내와 그 문명에 대한 기억없이 파괴된 세상을 자신의 세계로 인식하며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아이의 모습을  머리속에 그려볼 수 있었다. 화려했던 시기를 머리속에 염두해 두고, 지금 세상 살기 힘들다는 언급이 얼마나 무의미하는지 모든게 파괴되어 버린 세상을 머리속으로 살아보며 역설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생의 순간이 예전보다 살기 좋아졌든지 나빠졌든지는 나의 인생에 관계가 없다. 풍요로운 황금빛 이삭이 보이는 논길 사이를 걷던지, 모든게 무너져버린 황폐한 광야를 걷던지 생존의 이유는 분명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 또 그렇게 인간은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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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산의 냇물에 송어가 있었다 송어가 호박빛 물속에 서 있는 것도 볼 수 있었다. 지느러미의 하얀 가장자리가 흐르는 물에 부드럽게 잔물결을 일으켰다. 손에 잡으면 이끼 냄새가 났다. 근육질에 윤기가 흘렀고 비트는 힘이 엄청났다. 등에는 벌레 먹은 자국 같은 문양이 있었다. 생성되어가는 세계의 지도였다. 지도와 미로. 되돌릴 수 없는 것, 다시는 바로잡을 수 없는 것을 그린 지도. 송어가 사는 깊은 골짜기에는 모든 것이 인간보다 오래되었으며, 그들은 콧노래로 신비를 흥얼거렸다.(323p)

  지구 상에서 가장 폭력적인 생물체가 인간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다른 종들은 그들 스스로 멸망하고 자연에 피해를 주지 않지만, 인간은 지구 자체의 생명체 모두를 멸망시킬 수 있는 힘과 무기를 가지고 있다. 모든 생명체가 사라지고, 인간만이 남은 비극적인 상황. 하지만 다시 지구는 생성될 것이고, 또 그렇게 인간은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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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
고병권 지음 / 그린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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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수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의 사회. 

  국가의 시대에 추장의 마음으로 대한한국을 읽는다.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고추로 담은 장과 관련된 책인줄 알았다. 고추장으로 세상을 어떻게 말하지? 라는 의아한 생각으로 책을 보았었는데, 저자의 성에 부족사회의 추장이 결합된 단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대표라는 직함대신에 부족사회의 명예직이자 권력을 늘 가지고 있지 않았던 추장이란 단어를 좋아하는 저자가 소수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의 모습과 그가 읽은 책에 대한 소개가 2부로 나뉘어 실려있다.

  머리말에 등장하는 그가 책을 구분한 4개의 잣대에 동의한다. 세상을 변혁하는 책과 세상을 해석하는 책, 세계를 반영하는 책과 세계를 낭비하는 책으로 나누는 구분속에서 이 책은 양극화, FTA, 이라크전쟁 등의 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그 뒤에 숨겨진 함의를 해석하고, 작은 외침으로 세상을 변혁하는 책이다. 2003년부터 06년까지 저자가 매체에 기고한 글과 책을 엮으면서 새로 추가한 글이 모인 책이다. <수유 + 너머>의 집단을 좋아하거나, 주류의 시선이 아닌 소수의 관점을 받아들일 여유가 있는 독자에게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책이다.


 

# 고추장! 책 속으로 뛰어들다.


  그린비에서 나온 리라이팅 클래식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저자이기 때문일까. 자유, 행복, 도덕, 기억, 역사, 사실, 여성, 기술, 화폐, 선물, 사회, 인권, 국가, 혁명 14개의 주제와 연관된 저자가 읽어낸 책 이야기가 실려있다. 인문학에 무지한 내게는 저자가 소개한 책들이 생소했지만, 저자의 논리적인 글솜씨에 저자가 이야기하는 주장에 동의하고, 저자가 소개한 책을 읽어싶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현실을 살아가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지만, 생을 살아가는 자신의 가치관에 큰 틀을 잡아줄 수 있는 주제와 관련된 책들, 그리고 책의 본문의 내용이 좀 더 많이 소개된 고추장의 독서메모 를 마지막에 붙여 저자의 이야기를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의식에 직접 주어진 것들에 관한 시론>, 에피쿠로스의 <쾌락>,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 등 그냥 책의 제목만 들었을 때는 읽을 엄두도 나지 않는 책들이다. 하지만 저자의 메시지 안에서 그의 글에 공감이 가면서, 소개된 책들의 내용도 이해할 수 있는 틈을 얻게 된다. 자유는 선택이 아닌 능력이고, 인간은 행복조차 배워야 하는 짐승이며, 건강한 신체와 멀쩡한 정신만 있다면 누구도 행복에 대한 스승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 선과악이란 인간 자신의 생각과 이익에 맞추어 판단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자연 전체로는 선악이 존재할 수 없다는 말, 기억력과 함께 기억증도 있다는 말, 치열한 '기다림'의 실천의 중요성, '사실'을 추려내는 역사학자들의 작업과 한 목소리의 위험성, 여성을 대하는 남자의 미숙함 등과 저자가 추구하는 코뮨주의의 근간을 살펴볼 수 있다.
 

# 고추장,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다.

   세상의 소수자와 연대하기.


  제목이 명확히 기억나지 않는 책에서 지식인이란 노동자 등의 생활인들의 욕구를 대변하는 존재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노동자가 생존의 시위를 하기 이전에, 현실을 읽고 부조리한 부분을 글로 세상에 알리고 소통하는 책무가 지식인에게 있다고 할까. 지식사회로 가면서 지식과 개인의 안위가 연결되고, 세상과 유리되어 세상을 게임처럼 객관적 시선에서 풀려고 하려는 이들이 많은 가운데, 고추장, 저자는 지식인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 최저생계비의 현실화를 요구하다 쓸쓸히 죽어간 최옥란씨, 비가 통계적으로 오지 않아 장애인의 날이 된 4월 20일을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로 주장하자는 목소리, 폭력을 조장하는 언론과 경찰,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의 현실, 빈곤의 투쟁과 빈민들의 정치세력화의 당위성, 한미FTA를 반대하는 이유, 마을이 무너지고 있는 농촌사회의 현실, 학자와 교수의 관계, 미국 대학원으로 전락한 서울대의 모습, 국가보안법 철폐, 이라크 전쟁, 한일 극우주의의 해법 등 주류의 시선에서 벗어난 소수의 시선에서 바라본 한국 사회의 모습을 글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신문에서 소개되어 양쪽의 주장을 살펴보지만 마음속의 울림으로 다가오지 않던 이야기들이 저자의 글을 읽으니, 소수자의  불편한 현실들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원인 뒤의 철학에 대해 살펴볼 수 있었다고 할까. 실제 보이는 현실의 지표들이 아닌, 좀더 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 이런 시선들을 외면하고 그냥 내 안위를 위해 살아가다 보면, 주류들의 시선에 의해 무기력해지고, 한탄만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던 사안들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 것만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던 점에 만족한다. 깊이있게 다가서고  싶지만, 부족한 지식으로 어렵게 다가왔던 철학적 내용들도 저자의 글을 통해 편하게 다가설 수 있었다. 현실의 문제를 외면해 버리면 결국 피해보는 이는 서민과 비주류일 뿐이라는 현실도 느껴진다.
 
  에필로그에 실린 '돈 없이 살 궁리'를 하는 저자의 모습에 색다른 감동을 느꼈다. 연구자들이 서로 각출해서 연구도 하고 마음의 정도 나누는 관계. 70년대 다들 없이 살았던 시대의 따뜻한 인정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라 할까. 연대를 하기 위해서는 모두의 연대의 필요성과 그에 걸맞는 노력과 책무가 필요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돈을 벌려 노력하는게 아니라, 더 적게 자본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삶, 꿈처럼 생각은 몇 번 해 보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존재할거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온 세상에 돈만 없는 부자들로 가득 찬 세계, 나 역시 그런 날이 오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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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 고병권이 쓴 '민주주의'
    from 그린비출판사 2011-05-25 14:56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무엇인가’를 묻는 책들이 태풍처럼 출판계를 흔들어놓고 있다.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바람이 채 가라앉기 전에, 뒤를 이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 바람이 불고 있다. 이제 여기에 다시 고병권의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바람을 추가해야 한다. 그러나 고병권이 몰고 올 바람은 일시적으로 불고 지나갈 바람이 아니라, 끊임없이 반복해서 되돌아올 바람이다. 그것은 한국의 정치·사상 지형에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파열을 내는 이...
 
 
 
우연한 축복
오가와 요코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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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망의 삶의 한가운데 찾아오는 우연한 축복.

 

  무기력한 나날이다. 무료한 일상에 마음이 지쳐가도, 막다른 골목길에 서 있는 느낌이 드는 날이 있다.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도서관에 갔다 이 책을 발견하였다. <우연한 축복>이라는 제목보다는 <박사가 사랑한 수식>으로 이전에 만났던 즐거운 경험으로, 작가의 책을 선택했다. 아기 침대에서 아들의 숨소리가 들려오고, 침대 아래에는 레트리버 종의 개 아폴로가 잠들어 있다. 온 세상이 내게 등을 돌리고 있다 느끼는 여류 소설가의 절망속에 찾아오는 어린 시절의 추억에서 글은 시작된다.

 힘겨움에 빠졌던 첫 소설을 집필했을 때의 일화, 아버지에게 선물받은 만년필과 관련된 일화, 첫 월급으로 레트리버를 만났을 때, 아이의 아버지와의 첫 만남, 그리고 이별까지... 7편의 단편소설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연작소설은 절망에 빠진 주인공에게 찾아오는 소소한 우연한 축복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소소한 축복,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축복을 통해 주인공을 생의 더 살아나갈 힘을 얻게 된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나 역시 생의 희망을 얻는다.


# 소소한 일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다.


  심오하고 깊은 갈등을 직면하고 고난을 헤쳐내거나 괴로워하는 주인공을 통해 고난을 극복해 내는 힘을 얻어거나, 현재의 문제에 대해 인식하는 소설을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작고 소소한 아이템 하나를 통해 긴장감있게 이야기를 끌어내는 소설은 많지 않았다. <실종자들의 왕국>에서는 고모의 <구토봉투>와 유년시절의 추억으로, <도작>에서는 재활병원에서 만난 여인과의 에피소드, <기리코의 실수>에서는 글쓰기에 힘을 실어준 만년필, 리코더와 관련된 그녀의 배려, <에델바이스>에서는 그녀의 동생이라고 자처하는 스토커와의 하루와 사랑하는 이가 전해준 축전의 노래가, <누선수정결석증>은 아폴로의 병과 첫 월급이 , <시계 공장>에서는 섬에서 과일일 가득 싫은 노인과의 만남과 자신의 작업공간과 아이의 아버지인 이별과 임신소식이, <소생>에서는 아이와 자신의 주머니 제거수술과 병실에서 아나스타샤와의 만남을 통해 우연히 찾아오는 축복과 그를 통해 생의 희망을 얻는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잔잔한 행동들 속에 펼쳐지는 진한 감동이라고 할까. 이런걸 감동이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들이기에 더욱 마음이 움직인다 생각한다. 저자의 인생의 여러 순간 순간에 찾아온 우연한 축복 처럼, 나의 인생 속에서도 많은 우연한 축복이 있었지만 내가 돌아보고 살펴보지 않아 그냥 지나치고 있었던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료할 수도 있는 인생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틈을 주었다고 할까. 깊게 고민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나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진 책이라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다. 책을 읽는 순간 내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에 더욱 위안이 된 부분도 있다.


# 생의 희망을 전해주는 우연한 축복


  이 책을 읽기 전 <임신 캘린더>와 <박사가 사랑한 수식>, <호텔 아이리스>를 읽은 기억이 있다. <에델바이스>의 단편에서 작가가 소개한 책의 내용에서 <호텔 아이리스>의 내용이 소개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실제 작가가 집필한 작품이 미묘하게 섞여 있어 작가 자전적 이야기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좀 더 생생하게 작품을 읽을 수 있었다. 묘하게도 역자 역시 종이 시추인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강아지와 딸 아이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한다. 번역자와 작품의 주인공의 상황이 묘하게 겹쳤다고 할까. 번역자에게 우연한 축복을 안겨준 책은 일상에 지친 나에게는 삶은 소소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우연한 축복으로 다가왔다.

 
  첫 단편에서 여류소설가가 이야기하는 소설의 정의처럼 소설은 숲을 떠올린다는 말에 공감한다. 깊지 않지만 서늘한 동굴이 있는 숲을 헤쳐나온 느낌이다. 어둠과 절망의 순간에 찾아오는 우연같은 축복을 잃지 않는다면, 생을 더욱 감사하게 살아갈 수 있을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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