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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화가들의 반란, 민화 정병모 교수의 민화읽기 1
정병모 지음 / 다할미디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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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 대중들의 꿈의 표현이다
최근 개인적 관심사 중 하나인 ‘중요무형문화재’에 대한 검색을 하다가 웃지 못 할 현실을 접하게 되었다. 중요무형문화재는 ‘연극, 음악, 무용, 공예기술 등 무형의 문화적 소산으로서 역사적, 예술적 또는 학술적 가치가 큰 무형문화재 가운데 그 중요성을 인정하여 국가에서 지정한 문화재’를 말하며 이때 그 대상이 되는 기·예능을 보유한 사람을 인간문화재(人間文化財)라고 부른다. 반드시 지키고 전승해야 한다는 당위성에서 출발했을 이 중요무형문화재에 인간문화재를 선정하지 않고 있는 부분이 거문고 등 12 분야가 있고 그렇게 공석으로 비어있는 기간이 10여년이 훌쩍 넘었다는 것이다. 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렇게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고 의미와 가치도 충분하지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에서 출발한다. 우리 손으로 만들고 우리의 소중한 삶이 스며있는 우리의 것이 우리들에게서는 그 가치를 잃어버리고 버림받았지만 오히려 외국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거꾸로 우리에게 들어와 뒷북을 치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다. ‘안타깝다’는 말로는 다 표현되지 못하는 그 무엇이 있어 슬픈 현실임을 느끼게 된다. 

그런 것들 중 하나가 이 책의 주제인 민화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의하면 민화는 한 민족이나 개인이 전통적으로 이어온 생활 습속에 따라 제작한 대중적인 실용화며 일반적으로 민속에 얽힌 관습적인 그림이나 오랜 역사를 통하여 사회의 요구에 따라 같은 주제를 되풀이하여 그린 생활화를 말한다. 비전문적인 화가나 일반 대중들의 치졸한 작품 등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직업 화가인 도화서의 화원이나 화가로서의 재질과 소양을 갖춘 화공이 그린 그림도 포함시켜 말하고 있다. 

이런 민화가 우리들에게 주목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조선시대 출발한 민화는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성리학에 의해 규정되어 있었으며 정통회화나 도화서 화원들에 비해 떨어진다는 것에 의해 상대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다가 일본이나 미국 등 외국 사람들의 주목에 의해 비로써 국내에서도 주목 받게 된 것이라고 한다. 주객이 전도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민화의 가치에 주목한 사람이 이 책의 저자 정병모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현대인의 각광을 받고 세계화의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전통미술이라는 믿음’으로 민화를 찾아 이곳저곳을 다녔다. 그 결과가 이 책에 고스란히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민화를 전통과 규정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이며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대중문화로 주목한다. ‘정통화가들이 아무리 격조가 있고 능란한 화풍을 구사하더라도 보이지 않는 전통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던 반면, 무명의 서민화가들은 어떤 권위에도 구애되지 않고 어떤 규범에도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움을 구가했다. 또한 서민의 진솔한 감성과 자유로운 미의식이 담겨 있지만, 양반도 함께 즐겼던 민화는 조선시대의 대중문화다.’라고 민화가 가지는 가치를 밝히고 있다. 

책거리, 문자도, 까치호랑이, 운룡도, 십장생도. 이것은 저자가 민화에 대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담고 있는 민화의 분야다. 조선이라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가슴속에 담겨있던 삶에 대한 바람이 극적으로 표현된 부분이다.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길흉화복에 대한 염원, 재앙을 물리치고자 했던 바램 등을 담아 공유할 수 있었던 문화라는 점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저자가 국내외 박물관 등을 발품 팔며 접했던 민화를 생생한 도판을 통해 보여주고 설명하며 유사한 것들과 비교분석한다. 

정조의 책거리에는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있었다는 점이나 이것이 시간이 흘러 에로틱한 책거리가 등장하기에 이르는 시대적 상황을 통해 민화는 그 시대를 이야기해 주고 있다. 또한 까치호랑이가 우리만의 독특한 분야라고 생각했던 것이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더불어 다양한 부분에서 중국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조선이지만 조선 사람들은 이를 자신들만의 독특함으로 변화시킨 창조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민화 속에 다 담겨 있다고 본다. 

시대에 따라 주목받는 것은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은 그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민화가 다시 주목받는다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주인공들이 자신의 삶에서 희망을 찾을 실마리를 찾고자 함이 아닐까? 조선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애환을 민화에 담았듯 현재 우리들도 미래를 희망으로 바꿀 무엇인가를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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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꾼 29통의 편지 - 스물아홉, 이제는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마지막 인생 조언
후쿠시마 마사노부 지음, 유윤한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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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들의 손을 잡고가자
나를 둘러싼 세상은 늘 나만을 배신한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싫어하는 일은 언제나 내 몫이고, 무엇 하나 생각대로 되는 것도 없고, 하는 일도 재미없고, 무엇 때문에 사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제법 많다.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해도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며 원래 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좌절도 한다. 그런 일상이 싫어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데 막상 떠오르는 것 하나 없다. 

이런 생각으로 일상을 보내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선배나 상사의 조언도 귀 기울이지 않을 상황이다 보니 그런 사람과 함께 있는 주변사람들조차 늘 불안한 일상을 보내게 된다. 살다보면 일순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면 이를 극복하는 대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일이다. 하여, 그 많은 자기개발과 관련된 책이나 프로그램이 등장하지만 자신에게 꼭 맞는 방법을 제시해주는 것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모처럼 용기를 내 생각을 바꿔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고 만다. 

이런 모습의 전형적인 인간형을 보여주고 있는 책이 바로 ‘내 인생을 바꾼 29통의 편지’의 주인공 스물아홉 살의 ‘츠요시’다. 일어나기 싫은 아침 억지로 눈을 떠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며 회사에 출근하지만 즐거운 일은 하나도 없다. 그나마 이직한 친구와 술 한 잔하며 울적한 기분을 토로하는 것이 위안거리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발신지가 적혀있지 않은 편지를 받는다.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 같지만 그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는 문구가 적힌 편지를 받고 의아해 하며 계속해서 전달되는 편지에 대한 궁금증이 더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말썽 많은 후배와 더 이상 함께 일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듣던 상사가 고객용 프리젠테이션을 맡기면서 더 깊은 좌절에 빠지게 된다. 하는 일마다 꼬이기만 한 주인공은 그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기에 이른다. 이런 일상 속에서도 의문의 편지는 계속되고 더군다나 발주를 했던 회사에서 문제제기를 하기에 이른다. 이런 난관을 어떻게 해결할지 난감하기만 한 주인공은 고객회사로 찾아가지만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지 못한 상황이라 더욱 당황하게 된다. 

‘내 인생을 바꾼 29통의 편지’는 이처럼 특정한 주인공을 내세워 누구나 직면할 수 있는 현실을 실감나게 그려가고 있다. 주인공 ‘츠요시’는 나일수도 있고 내 동료일수도 있다. 굳이 30대를 눈앞에 둔 청년이 아니라 삶의 어느 순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난관을 경험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주인공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직면한 사람들에게 무엇이 문제인지, 어떻게 그 난관을 해결해 갈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그 성찰의 매개로 편지를 활용하고 있다.  

‘어떤 일이든 자기답게 하면 꿈이 된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무엇을 얻을지 생각하라’, ‘보려고 하는 대로만 보인다’, ‘비오는 날에도 구름 너머에는 태양이 빛나고 있다’, ‘지금 하지 않으면 평생 할 수 없다’, ‘꿈이 있으면 싫은 사람도 필요한 사람이 된다’ 

절망의 순간에 해답을 손에 쥐어줘도 그것이 답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의 주인공도 그런 경우다. 하지만 주변 사람의 애정 어린 관심과 격려로 스스로 가지고 있는 한계가 무엇인지를 알아가며 편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바로 자신이다’라는 것은 확인하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겪지만 막상 그것을 알더라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하는 현실 또한 잊지 않고 있다. 

아버지의 후배인 직장 상사와 그 상사의 친구 그리고 동료의 노력이 있었기에 주인공은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 편지에는 특별한 처방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알고 있지만 나와 관련 없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편지를 통해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게 된 계기가 된 것이다. 나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외면하지 않고 어쩌면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는 주변의 손길과 더불어 삶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길 희망을 찾아가게 하고 있다. 

이 책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를 탄탄한 스토리 구성과 편지라는 소재를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문제의 중심으로 독자들을 안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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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프
파울로 코엘료 지음, 오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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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담보하는 내 삶의 중심이다
살다보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을 겪을 때도 있다. 어린 시절 익숙한 길모퉁이를 돌아 집으로 가는 길에 뒷목이 서늘해지는 듯 한 느낌이 들었거나 처음 가는 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언젠가 이곳에 와 봤다는 묘한 감정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일들이다. 또한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알고 지내왔던 사람처럼 느껴지는 그런 느낌 등 이성적인 생각으로 설명하기에는 뭔가 해결되지 못하는 그런 일 말이다. ‘데자뷰’라고 부르는 이런 현상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기 마련이다.  

‘순례자’나 ‘연금술사’로 기억되는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새롭게 선보인 이번 작품 ‘알레프’는 바로 그런 현상을 모티브로 자신이 겪은 환생이라는 경험을 토대로 지향하는 바를 이끌어 내며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작가지만 그 자기만의 세계로 세계 많은 독자들과 공감하면서 사랑받고 있다. 독특함이라는 것은 때론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요인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공감하는 사람들에게는 강한 끌림의 요소가 된다. 

코엘료의 모든 작품의 이야기 전개는 길 위에서 벌어진다. 순례자를 비롯하여 다수의 작품이 여행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의해 동기부여를 받았거나 주인공이 자아를 찾아 여행자의 신분으로 등장한다. 작가는 그 길 위에서 얻은 동기부여가 자신이 찾아가는 영적인 탐험의 길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 있다.  

일상에 묻혀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흐려지는 것은 자아를 찾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새로운 순례길을 나서도록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이번 작품 알레프의 출발도 역시 여행이다. 스승 J의 강압적인 권유에 의해 시작되는 여행길에서 언제나 스스로를 갈 길을 안내하는 표식을 만나고 그에 따라 스스로의 길을 정하며 나선 길이다. 그 길이 바로 시베리아 횡단 철도로 이어지는 유럽에서 태평양에이 이르는 9288kM에 이르는 대장정인 것이다.  

사람들에게는 때때로 태어나면서부터 갖고 있는 원죄라는 것이 있다. 이 이야기에서 주인공 역시 자신이 전생에 저질렀던 여인들에 대한 배신으로 인해 자아를 찾아가는 길에서 단절된 무엇을 경험하게 된다. 그 단절된 고리를 찾고 자신의 왕국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서고자 하는 열망이 대장정의 길에 오르게 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그 길에서 운명 같은 여인을 만나 알레프를 경험하고 두 사람이 각자의 왕국으로 가는 길에 필요한 무엇을 발견하게 된다.  

“가까이에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때로는 먼 길을 떠날 필요가 있다”는 말은 결국 익숙해진 일상과 삶의 근거지에 있지만 자신을 가리고 있는 무엇에 의해 발견하지 못하고 한 참을 돌고 돌아 다양한 경험을 하고서야 비로써 찾았는데 그것이 내 이웃에 있었다는 옛사람들의 경험이 진실임을 알게 해주는 말로 다가온다. 코엘료 역시 자신이 찾아가는 영적인 길에서 주춤거리는 시기를 겪게 되면서 내면의 힘을 믿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를 극복하고자 9288Km에 달하는 길을 다 하고나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작가가 말하는 시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지금 이 시간 동시에 존재한다는 그 말이 또한 삶은 열차가 달리는 레일이 아니라 그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이며 객차의 칸마다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시간은 그렇게 있는 것이다. 

“시작도 끝도 없이, 무한한 우주 속을 여행하듯 각자의 생을 살아가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자아의 신화가 무엇인가를 발견해 나아가는 것이 우리 생의 이유라는 것”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의지에 의해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세상에 나왔을 때는 분명하게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를 찾아 수많은 시행착오와 끝날 것 같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삶이 아닐까? 그 여정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고 걸어가는 사람을 알게 되며 그 사람과 함께 갈 수 있다면 삶의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롭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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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 - 절망의 섬에 새긴 유배객들의 삶과 예술
이종묵.안대회 지음, 이한구 사진 / 북스코프(아카넷)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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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찾은 조선의 역사
역사의 현장엔 어제와 오늘이 함께 공존한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역사의 흔적이 사라지기도 하고 때론 사람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기도 하지만 현장엔 그 뿌리가 어떤 형태로든 남아 후손들에게 당시 사람들의 삶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문화유적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든 기록문화의 형태로 남아 사람들 사이에 떠돌던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역사적 현장과 그에 얽힌 사연 그리고 그 사람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역사적 현장은 오늘과 밀접하게 관계 맺으며 건재하게 살아 있음을 안다. 

순전히 타의에 의해 그것도 정치적인 이유로 삶의 터전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강제로 쫓겨난 사람들이 있다. 유배자라는 이름을 달고 정치의 중심이었던 한양을 떠나 가깝게는 강화도 멀리로는 제주도, 흑산도 등 육지에서 떨어진 섬으로 밀려나 한양을 바라보며 유배에서 풀러날 만을 기다리다 죽어간 사람도 있고 운이 좋게 풀려나 보란 듯이 재기한 사람도 있다. 유배신분에 억울해 하며 암울한 시간을 살았던 사람도 있지만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학문과 시문에 열중하여 후대에 남을 성과를 올린 사람도 있다. 

이 책 ‘절해고도에 위리안치하라’는 바로 그런 유배자들의 흔적을 찾아보고 그들이 살아왔던 현장에서 그들을 다시 기억하고자 하는 후대사람들의 발자취를 기록한 책이다. 조선에서 유배는 대부분 지극히 정치적인 행위였다. 간혹, 정치적인 이유와는 상관없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당파의 세력 판도에 의해 권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 벌어진 일이기에 옳고 그름의 차원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유배를 가는 죄인의 신분이지만 당당하게 현지에서도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짧게는 수십 여일에서 길게는 수십 년까지 섬에 갇혀 지내야했던 유배자들의 삶은 세월의 무게에 의해 대부분 사라졌다. 저자 이종목과 안대회가 주목했던 것은 그들이 남긴 기록이다. 유배객의 신분으로 울적한 마음을 시와 그림으로 남겼던 사람이나 지역의 지리지를 작성한 사람도 있고 자신의 학문적 업적을 남긴 사람들도 있다. 바로 그 기록에 근거하여 유배자들이 머물렀던 섬을 찾아 현재의 모습에서 당시 흔적을 따라가 보는 일정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저자들이 찾은 유배의 섬은 위도, 거제도, 교동도, 대마도, 진도, 백령도, 제주도, 흑산도, 녹도, 남해도, 신지도, 임자도, 추자도를 찾아, 그곳에 머물렀던 유배객 이규보, 이행, 연산과 광해군, 이건명과 조관빈, 최익현, 노수신, 이대기, 조정철, 정약전, 신헌, 신기선, 김만중, 이광사, 이세보, 조희룡, 안조원, 이진유 등이다. 주로 남해안 인근의 섬으로 한양과는 멀리 떨어진 곳이다. 정치적 이유가 대부분이었기에 정치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 당연하게 유배지로 선택된 것이다. 섬은 그때의 모습에서 크게 달라졌다. 연륙교가 놓여 이제는 더 이상 섬이 아닌 곳도 있다. 또한, 정치적 상황이 변해 당시 죄인이었던 사람에 대해 평가가 달라지기도 했다.  

그들 중에는 편안하고 대접받은 유배객이 있는가하면 먹을 것을 구걸하며 구차하게 삶을 이어가야 했던 유배객도 있었다. 정쟁의 피바람 속에서 유배된 섬에서 한탄 속에 숨을 거둔 객도 있었고, 유배에서 돌아와 다시 죽을 때까지 높은 벼슬을 한 이도 있었다. 벼슬아치로 살 때는 결코 이룰 수 없는 학문적 성과를 거둔 이가 있는가하면, 외로운 섬에서 예술혼을 불사른 이도 있었다. 역사 속에서 사라질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 기록에 의해 기억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남긴 기록이 있었기에 섬 또한 사람들 사이에 기억되었다.  

저자들이 유배의 현장 섬을 찾아 섬의 자연풍광과 사람들의 삶을 담았다. 유배객의 심정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사진에 담긴 섬들의 모습은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경지를 보여준다. 하지만, 유배객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내용 중 확실한 사실을 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 듯 하다. 조희룡 편에서 김정희의 수하로 이야기 된 부분이 그것이다. 저자들의 전공이 역사가 아니라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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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역사를 뒤집다 - 문명을 이끈 50가지 식물 역사를 바꾸다
빌 로스 지음, 서종기 옮김 / 예경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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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식물은 공동운명이다
생태계에 심상치 않은 변화의 바람이 있다. 멸종위기의 동식물이 늘어나고 다음세대에서는 다시는 볼 수 없는 동식물들이 많을 것이라는 불안한 전망을 내놓는 학자들이 많다. 그 원인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산림훼손이나 환경파괴, 화석연료의 사용 등으로 인한 지구온난화 등 다양한 요소를 들 수 있다. 이렇듯 인간의 삶 속에서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오며 인간의 목숨을 살렸거나 삶의 질을 풍성하게 만들어온 동식물과 인간의 관계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흥미 있는 분야가 아닌가 한다. 

지구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동식물의 역사는 길다. 그 긴 시간동안 사라지거나 새롭게 나타난 동식물들 또한 많았을 것이다. 자연적인 환경의 변화에 의한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인류의 역사와 맥을 함께해온 동식물들이 사람들의 인위적인 요인에 의해 멸종되거나 사라지는 상황은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일 것이다. 

이 책 ‘식물, 역사를 뒤집다’는 인류의 역사와 맥을 함께하며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던 식물들의 역사적 기록을 살피고 인간과 식물이 어떻게 공생관계를 맺어왔는지 그 필연적인 이유를 찾아보고 있다. 저자 빌 로스(Bill Laws)는 사회사학자이자 전문적인 정원사이며 명성 있는 원예학 저술가로 활동하며 ‘예술가의 정원’, ‘들판 현장 안내서 : 풀밭, 초원 그리고 목장’ 등 다수의 책이 있다. 저자가 이러한 관점에서 주목하는 식물로는 용설란을 시작으로 양파, 파인애플, 대나무, 차나무, 삼, 오렌지, 커피, 사프란, 마, 코카나무, 벼, 담배, 양귀비, 로부르참나무, 사탕수수, 옥수수, 장미, 포도 등 50여 가지 식물들로 인류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던 식물들이 주종이다. 

벼를 비롯한 식물들은 인류 역사가 시작되는 시기부터 인간의 생존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식물들은 지역적 환경을 반영하며 식물 성장의 특성에 적합한 한정된 지역에 분포되었다. 그렇기에 그 식물이 주는 혜택은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지역과 사람들의 문화에 의해 다른 성질과 특성으로 관계 맺어왔다. 식물들의 이러한 상황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 있었다. 바로 신대륙발견 등 인류가 다른 대륙으로 삶의 영역을 넓히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이동하게 된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사람에 의해 인위적인 환경으로 옮겨지게 되면서 다른 지역의 사람들에게까지 식물 특유의 성질을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특정한 식물에 대한 지배적 권리를 가진 집단이 생겨나며 경제적 이득과 관련되어 식물의 성질까지 변화시켜가며 변종과 개량화가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커피나, 차와 같은 식물들에 의해 전쟁이 일어나는 사건으로까지 확대된다. 아편전쟁이나 미국의 독립전쟁 등이 그것이다. 또한 사탕수수나 고무나무, 면화 등의 재배에 노동력의 필요한 상황에서 식민지 노예 등의 노동력 착취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처럼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식물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인간이 생태계 먹이사슬의 최정점에서 식물을 지배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시각을 바꿔 식물의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식물은 움직이지 못한다. 그래서 자기의 종족을 번식시킬 다양한 방법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인간이 이 과정에 개입하면서 특정한 식물은 별다른 노력 없이 인간에 의해 종족을 번식시키며 우수한 품종으로 개량되어 생존에 필요한 환경을 만들어 왔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인 식물이 사과, 장미, 튤립 등이 그것이다. 

이 책은 각 식물들의 상세한 그림과 관련 자료, 식물의 어원과 유래, 비슷한 유의 식물에 대한 설명까지 구성되어 식물의 역사뿐 아니라 다양한 역사적 사실까지 알려주고 있어 더 흥미로움을 느낄 수 있다. 인류보다 긴 시간동안 지구의 주인공으로 살아왔을 다양한 식물들이 인간의 인위적인 간섭이나 작용에 의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은 곧 인류의 미래도 불투명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현실의 심각성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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