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에 핀 꽃들 - 우리가 사랑한 문학 문학이 사랑한 꽃이야기
김민철 지음 / 샘터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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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담긴 문학은 사람의 가슴을 따스함으로 채워준다

한 동안 야생화를 찾아 들로 산으로 다닌 적이 있다. 늘 다니던 길에서 마주하던 초본과 목본의 꽃들을 보며 무심할 수 없었던 것은 누구의 강요가 아닌 마음이 먼저 반기는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연한 기회에 숲해설가 교육에 참가하면서 그저 보기에 좋았던 꽃들에게도 자신만의 특징을 잘 표현하는 이름이 있으며 그 이름과 식물의 일생을 알아가며 참으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김춘수의 시 꽃에서처럼 나와는 상관없는 대상에서 이름을 알고 불러줄때 비로서 나에게 의미 있는 사물로 다가옴을 느낀 것이다.

 

야생화의 계절 봄이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긴 겨울을 이겨내며 봄을 기다리는 이유는 이른 봄부터 시작되는 야생화들의 꽃 잔치를 마음껏 즐길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긴 겨울을 이겨낸 자연의 힘이 꽃으로 피어나는 경이로움은 도감이나 책을 통해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 하여, 때 이른 시기부터 마음은 이미 산골짜기와 들판으로 나가 야생화들을 마중하곤 한다. 봄구술붕이, 노루귀, 꿩의다리. 산자고 등 식물사전이나 도감에서 본 야생화들을 직접 눈으로 마음으로 만날 때 그 흥분과 설렘은 가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아 버거운 일상을 살아가는데 커다란 힘으로 작용하곤 한다.

 

야생화를 좋아하는 한 사람 김민철은 자신이 누렸던 그 행복한 시간과 감동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 책을 발간했다. 샘터가 발행한 ‘문학 속에 핀 꽃들’이 그것이다. 이 책의저자 김민철은 딸아이의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야생화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많은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지만 저자처럼 직접 뛰어드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의 야생화 탐방엔 딸아이들과 가족이 동행하고 있다. 야생화를 통해 함게 나누는 가족 사랑이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문학 속에 핀 꽃들’을 통해 저자 김민철은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 문학과 야생화를 접목하여 새로운 눈으로 양자를 만나게 한다. 일찍 문학에 빠져 다양한 작품을 접해온 저자가 문학 속에 담긴 야생화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문학을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우리들이 익히 아는 문학작품 속에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가 등장하며 그 이야기 흐름에 야생화가 담아내고 있는 상징성이 상당한 부분에서 문학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꽃과 문학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저자가 선택한 문학작품으로는 김유정의 동백꽃, 정채봉의 오세암, 박범신의 은교, 황순원의 소나기,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최명희의 혼불, 김훈의 칼의 노래, 박완서의 아주 오래된 농담, 박경리의 토지, 조정래의 태백산맥 등 서른 가지가 넘는 작품들이다. 물론 저자는 이 문학작품 속에 등장하는 꽃을 또 같은 숫자만큼 이야기 하고 있다. 문학작품 속에 꽃이 등장하는 부분을 찾아내고 그 꽃이 문학작품 전체 이미지를 형상화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꽃의 생태와 비슷한 꽃들의 구분법에 이르기까지 아주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다. 김유정의 작품 동백꽃의 동백이 사실은 생강나무였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다. 이처럼 꽃과 식물에 대해 제법 많은 책을 접했다고 자부했던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문학과 꽃의 어우러짐에 주목하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절묘한 결합이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 책은 문학과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꽃이 문학작품 속에 얼마나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는지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문학 속에 핀 꽃들’이라는 책이 더 흥미로운 것은 꽃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다. 저자 자신이 직접 경험한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문학작품과 꽃의 이야기에 생생하게 펼쳐놓고 있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오고 때론 사회적 존재로써 책임을 떠올리게도 한다. 특히 정이현의 ‘삼풍백화점’에 대한 이야기를 끝내 접지 못하고 책의 마무리에서라도 이야기하고자 한 저자의 마음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꽃은 문학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문학은 꽃의 빛깔과 향기를 더욱 진하게 한다’는 문장에 ‘꽃이 담긴 문학은 사람의 가슴을 따스함으로 채워준다’고 더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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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의 하루 - 여인들이 쓴 숨겨진 실록
박상진 지음 / 김영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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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지평을 넓힌 ‘궁녀의 하루’

역사의 지평이 넓어진 걸까? 기존의 역사를 보는 흐름에서 벗어난 역사해석이 심심찮게 보인다. 그동안 역사를 보고 해석한다는 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이 그 권력으로 쟁취했던 자신의의 성과를 기록한 역사를 그들의 시각에서 보아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역사인식은 사물의 본질을 이루는 양면을 보지 못하고 힘을 가진 한 쪽에 치우쳐 주목하여 마치 그것이 전부인양 보편화, 일반화 시켜온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제 그런 흐름에서 벗어나 권력의 중심부에서 벗어난 곳에 눈을 돌리고 소홀했던 다른 한 쪽에도 시선을 주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혹은 일부러 외면했던 다른 쪽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반가운 것은 우선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려는 정당한 시도라는 점도 의미가 있지만 그동안 외면 받아온 사람들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 우리사회의 성숙한 역사인식의 자세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보여 그것이 더 가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권력의 주변부 혹은 권력과는 상관없는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를 묵묵히 행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만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관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흐름이 우리가 역사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하는 관점에서 볼 때 매우 긍정적인 결과로 나타나리라고 기대해 보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 여인들이 쓴 숨겨진 실록 ‘궁녀의 하루’도 주목 받기에 충분하리라고 본다. 우리 역사에서 특히 조선사회에 이르면 남성중심사회, 왕의 일인권력자를 중심으로 한 사회에서 여인들의 삶은 신분이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절대적인 차별 속에서 살았던 것이 사실이다. 사회구조적 차별과 억압 속에서 살아온 여인들과 그 여인들 속에서도 더욱 더 갇힌 일상을 살아왔던 궁녀들의 일상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부분은 그리 많이 않았다. 텔레비전 역사 드라마에서 빈번하게 등장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그들에게 눈을 돌려 그들의 삶에 대한 조망을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는 점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내시와 궁녀, 비밀을 묻다’, ‘베일 속의 한국사’등의 저자로 기존 역사가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역사의 지평을 넓혀온 저자 박상진의 연구 결과물이다.

 

저자의 ‘궁녀의 하루’는 궁궐 내 생활전반에 걸쳐 다양한 분양에서 활동한 궁녀들의 면모를 살피고 있다. 굳이 제목 하루에 억매이지 않고 궁녀가 궁궐에서 어떤 일을 해왔고 그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궁녀가 되었으며 갇힌 궁궐에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 하나 둘 밝혀 나가고 있다. 우선 궁녀하면 상궁, 나인, 무수리, 생각시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려져왔는데 이는 침방, 수방, 세수간, 소주방, 세답방, 방자 등과 같이 자신들이 맡은 임무에 따라 하는 일이 달랐으며 그들도 다른 일반인들이 사는 모양과 별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책은 ‘하루로 읽는 조선 궁녀의 일생’, ‘하루 일과에서 스캔들까지 궁녀의 모든 것’,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궁녀 이야기’ 등으로 3부로 구성되어 있지만 일관되게 흐르는 것은 궁녀들의 삶에 추적하는 것이다. 사료에 등장하는 궁녀들과 관련된 사건들을 추적하고 그 과정에서 궁녀들이 궁궐에서 어떤 일상을 살았는지 살펴보는 것이 그 중심 흐름이라고 할 수 있다.

 

세답방이나 소주방처럼 드라마에 등장하여 익숙한 이름들도 있지만 침방, 수방과 같은 다소 생소한 것들도 보인다. 더욱 관심을 끄는 것은 궁녀들의 근무형태와 급료지급과 같은 사항이다. 또한 부를 축적한 궁녀 모습이나 궁녀라는 신분으로 만나 운명을 함께하거나 나인에서 하루아침에 귀인이나 숙빈 등 권력의 중심부로 신분상승한 그들의 모습이 비교적 상세하게 나타나고 있다. 궁녀들 사이에서도 직급의 차이에 따라 생활의 차이가 엄청났다는 점도 주목된다.

 

궁녀, 어쩌면 특별한 신분을 살았기에 그들을 보는 시각이 ‘왕의 여자’라는 한정된 한 측면으로 고정된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이 책 ‘궁녀의 하루’는 궁녀들의 실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다양한 실례를 통해 궁녀들의 삶에 구체적인 접근을 시도한 것으로 보이는데 책 속에 등장하는 궁녀들의 모습이 다소 산만하게 그려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주목하고 그들의 삶의 실체를 밝히고자 한 저자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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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여행 - 당신에게 주는 선물
이한규 지음 / 황금부엉이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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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선물 같은 여행안내서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하루라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까? ‘딱 하루만 내가 뭐든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좋겠다’는 말은 현실의 무게와 반복적인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버릇처럼 하는 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정말 그런 하루가 주어진다면 생각을 현실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평소 이런 바람을 가진 사람들 중에 아마도 열 명 중 아홉 명은 망설이다 그 소중한 하루를 그냥 보낼 사람들일 것이다. 그만큼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무엇을 해본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자신을 둘러싼 다양한 조건에 얽매어 억지스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 중 하나가 여행일 것이다. 하지만 음식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고 또 무엇이든 해본 사람이 잘한다는 말처럼 여행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들에게 선물처럼 행복한 시간을 갖게 만들어 주는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 있다. 황금부엉이에서 발간한 이한규의 ‘하루여행’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에 나오는 여행지로는 늦은 가을의 산책-이화 벽화마을, 부암동에 닿은 커피의 향-클럽 에스프레소, 철길 따라 걷기-항동철길, 추억이 묻어나는 골목의 일상-홍제동 개미마을, 동네 서점의 안부를 묻다-이음책방, 이웃과 공감하는 예술동네-행궁동 벽화골목, 나미나라공화국에 가고 싶다-남이섬, 오늘 마신 커피가 가장 맛있습니다-예산 카페 이층, 김광석의 노래가 흘러나오는-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여러 가지 빛깔의 집들이 넘치는, 감천 문화마을 등 서울 및 서울 인근 그리고 서울에서 출발하여 몇 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는 곳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곳들이다.

 

 

모처럼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안내자와 같은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책이다. 책 몇 권과 오래된 카메라 두 대, 이름 모를 앨범 몇 개까지 챙기고 훌쩍 떠나는 여행을 주로 하는 저자 이한규의 경험을 바탕으로 ‘낯선 당신에게 나의 친숙한 하루를 건네고 싶다’며 저자의 의도를 밝히고 있다. 그만큼 실용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행을 떠나고 싶지만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것 등이 귀찮은 사람도 막상 떠나려 해도 혼자여서 망설여지는 사람도 이 책에 포함된 QR코드를 이용해 여행코스도 짜고, 가는 길도 미리보고, 교통편도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소스를 참고한다면 쉽게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어쩜 우리들은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한다는 이름으로 자신을 혹사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충실하다는 미명아래 자신을 둘러싼 가족이나 회사, 친구 또는 시간, 돈 등 이런 주변 환경에 휘둘리는 동안 삶의 주인공인 자신은 어떤 존재인지 조차 알 수 없는 혼돈에 빠지기 마련이다. 이런 조건을 벗어나 자신이 행복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스스로를 찾는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그 여행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소중한 경험을 한다면 그 하루는 선물처럼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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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 삶.사람.사물을 대하는 김정희의 지혜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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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피는 봄날 추사 김정희를 만나다

마당한 쪽에 수선화가 한창이다. 꽃을 좋아하는 마음에 씨를 뿌리긴 했지만 수많은 꽃들 중 수선화를 선택한 것은 순전히 한사람 때문이다. 조선 후기를 살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그 사람이다. 추사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추사를 거론을 책을 보면서 추사 김정희가 수선화를 특별히 좋아하고 제주도 유배당시 머물던 곳에 많이 심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 수선화를 찾아보았고 또 구하기까지 해서 지금 내 집에 꽤 많은 수선화가 있다. 당시로써는 귀한 꽃이었던 수선화가 중국으로부터 들어와 이 땅에 뿌리내리고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은 이유가 뭘까?

 

어쩜 나의 추사 김정희에 대한 호기심은 그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권문세도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총명함을 나타내며 이른 시기에 출새가도를 걸었던 김정희는 당시 사대부들이 관심을 가졌던 시, 서, 화에 금석문까지 자신이 가진 장점을 한껏 발휘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세상 넓은 줄 모르며 그 자신을 뽐냈다. 그런 그가 인생 말년에 나락으로 떨어져 두 번에 걸친 유배를 가야했다. 유배길을 그에게 무엇을 말해줄까? 그토록 당당했던 사람이 세상 사람들의 손가락을 받을 처지로 전락한 그의 마음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추사 김정희에 대한 연구는 역사학계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심도 깊은 연구가 이뤄졌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이 추사 김정희에 갖는 관심사는 그가 이뤄냈던 학문적 업적도 물론 이겠지만 당시 그의 삶에서 보여준 지식인의 삶의 자세와 태도에 있지 않을까 싶다. 몇해 전 푸른역사에서 발간한 이상국의 ‘추사에 미치다’와 같은 책들은 그동안 추사 김정희를 다뤘던 시각을 달리하며 김정희의 삶을 조망한 것이었다. 위즈덤하우스에서 발간한 설흔의 ‘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 역시 비슷한 시각으로 김정희의 삶과 사상에 접근하고 있는 책으로 보인다.

 

제주도로 유배가 아버지 추사 김정희가 자신을 닮고 싶어 하는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 형식의 이 책은 김정희가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그가 관심 가졌던 다양한 분야뿐 아니라 특히 그가 지향한 삶의 자세와 가치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롭게 추사 김정희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설흔이라는 저자의 살상력의 무한함이 돋보이는 글 속에서 평소 김정희의 삶에 대한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꽤 많은 부분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전개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잘 알려진 겉모양의 김정희가아니라 자신이 처한 조건에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속내를 유추해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나이되, 내가 아니었다. 내가 곧 가문이었고, 가문이 곧 나였다. 그것이 바로 나라는 사물이 있어야 할 제대로 된 위치였다.’ 이 말에 담긴 김정희의 속내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당시 권문세도가의 촉망받는 아들로 태어나 자신보다는 가문이 더 크게 보였을 무게감이 이해될만하다. 이 책을 이런 부분뿐 아니라 저자의 상상력은 그와 인연을 맺었던 당시 사람들을 불러와 김정희가 추구했던 삶의 바탕에 무엇이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 이 점이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 아닌가도 싶다. 세한도에 담았다던 이상적을 비롯한 중국의 스승과 벗들 박제가, 정약용, 권돈인, 김유근, 조인영 그리고 초의와 소치에 이르기까지 당야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텅한 김정희의 속내를 보여줌으로써 김정희가 김정희이겠끔 만드는 매력적인 점이다.

 

또한, 저자의 바람대로 인생이라는 천리 길을 떠나는 아들에게 삶의 지침이 될 만한 이야기를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이며 심도 깊은 이야기를 전개하는 내용도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혹독한 관리의 손을 기억하라, 사물의 위치를 올바로 기억하라, 아랫목이 그리우면 문부터 찾아서 열어라, 맹렬과 진심으로 요구하라, 너의 세한도를 남겨라 등 다섯 가지 가르침이 김정희가 살던 그 시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님을 강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현대인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삶의 지침으로 삼아도 충분히 좋을 것들로 세겨 둘 만 하다고 본다.

 

관리의 차가운 손으로 자신의 삶을 살았던 김정희의 감춰진 따스한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이 책은 수선화가 한창인 봄날 삶의 지혜를 얻고자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봄바람처럼 훈훈한 기운을 불어 넣어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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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 허준
이재운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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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보감이 편찬된 이유는 백성이다

구암 허준의 동의보감이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193점의 기록 유산 중에 의학 서적으로 유일한 것이 동의보감이라고 한다. 동의보감이 이렇게 등재된 이유는 동의보감이 가지는 탁월한 의학적 내용과 세계 최초로 발간된 공중 보건안내서라는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몇 해 전 텔레비전에서 허준의 이야기가 드라마로 많은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허준과 동의보감 또한 새롭게 주목받았다. 동의보감처럼 우리 민족이 가진 문화유산들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정작 우리들로써 그러한 문화유산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한번 돌아볼 일이다.

 

최근 다시 공중파 텔레비전에서 허준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했다. 대중들의 관심사를 반영하는 것이 대중매체의 속성이라면 허준과 동의보감이 새롭게 주목받는 이유가 분명 잇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아직은 모르겠다. 드라마의 영향인지 허준과 동의보감 관련 서적의 발간도 잇따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책이있는마을에서 발간한 이재운의 구암 허준이다.

 

허준의 동의보감은 조선의 임금 선조의 명으로 펴내게 되었다. 동의보감은 편서국이라는 기구를 만들어 당시 어의 출신인 양예수와 허준 등 총 여섯 명이 1596년부터 시작하여 1610년 광해군 때 완성되었고 1613년 훈련도감에서 간행됐다. 동의보감은 25권 25책으로 구성된 의학서로 내용은 5개 강목으로 나뉘어 있는데, 내경편 6권, 외형편 4권, 잡병편 11권, 탕액편 3권, 침구편 1권으로 구성되어있다. 동의보감의 특징은 각 병마다 증상과 처방을 기록한 것과 더불어 병을 치료하는 측면보다는 미리 병을 예방하는데 주목했다는 점이다. 이는 당시 조선의 대부분 백성들이 처한 처지를 반영한 것이다.

 

이 책 이재운의 구암 허준은 허준의 일대기를 쫓아간다. 신분사회 조선에서 서얼로 태어난 조건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의원의 길을 선택한 허준의 일대기다. 소설 속에는 허준의 의술에 대한 집념과 가난한 백성들에 대한 애민정신 등이 줄거리의 대강을 이룬다. 또한 스승 유의태와의 관계, 일생을 바쳐 허준을 위해 고스란히 내조한 아내와 가족, 내의원이 된 이후 선조와 광해군까지 임진왜란을 겪고 동의보감을 서술하고, 백성들을 위해서 동의보감을 집필하는 허준의 일생이 담겨 있다.

 

일반적으로는 동의보감이 허준의 독자적인 작품으로 생각하지만 이 소설을 통해 동의보감이 집필되는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또한 동의보감의 출발이 병자를 치료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병과 환자에 보다 적극적인 대안으로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이 점이 무엇보다 큰 강점이 아닌가 싶다.

 

소설로써 이 책 구암 허준은 별로 매력이 없다는 점이 솔직한 마음이다. 이야기의 긴장감도 떨어지고 줄거리의 탄탄함도 별로고 그렇다고 독자의 관심을 끄는 흥미로운 사건의 진행도 없다. 그저 먼 산 너머로 구름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냥 흘러간다. 개인적인 느낌이 지나쳐 저자의 작업에 대한 열정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구암 허준이 주목받는 현실에서 저자만의 시각이 확실히 드러나야 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커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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