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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여신 백파선
이경희 지음 / 문이당 / 2013년 6월
평점 :
불꽃으로 살다간 조선 서기장 백파선
텔레비전 장수 프로그램이 있다. 우리 조상들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다양한 물건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돕고 거기에 감정가를 매겨 흥미를 더해주는 내용으로 구성된 프로그램으로 꾸준한 인기를 보이고 있다. 소위 골동품이라는 이름으로 자산 가치를 더해주는 이러한 유물들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청자, 백자 등을 비롯한 갖가지 자기류다. 이러한 자기들은 수 백 만원에서 때론 억대를 넘는 자기들이 출품되어 자기가 갖고 있는 예술성과 조상들의 지혜가 현대인들의 잠자고 있는 예술성에 잔잔한 파문을 불러오기도 한다.
자기를 비롯한 조상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이러한 유물들은 조상들이 살아가던 시대의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로 태어난 것들이다. 대표적으로 조선의 사회를 보더라도 시대에 따라 분청사기, 백자 등으로 시대의 요구에 따라 다른 성질의 자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이러한 과정에 직접 참여해 자기를 만드는 사람들 대부분이 남자들로 이 역시 조선이라는 사회가 갖는 남녀구별 등의 사회상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남자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으로 자신의 재능을 펼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제약을 받는다는 것이 전재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회에도 예외가 있다. 바로 여성으로 자기 생산의 중심 역할을 하는 사기장으로 활동한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백파선'이 그 사람이며 그는 광해군의 뒤를 이어 인조가 왕위에 올랐던 "1623년경 심해종전(深海宗傳)의 미망인 백파선(百婆仙)이 동족인 조선 사기장 960명을 이끌고 아리타의 히에고바에 가마를 열었다는 기록이 있다." 역사상 실존인물로 일본의 자기산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보인다.
이 책 '불의 여신 백파선'은 바로 그 백파선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다. 임진왜란 후 조선의 사기가 일본에서 인기를 끌면서 당시 '왜'로 불렸던 일본의 조선 해안지역을 침략하며 약탈을 일삼는 과정에 조선의 사기를 만들던 사람들을 강제적으로 데려가 일본 내에서 자기를 생산하게 한 것이다. 이 소설은 바로 그 과정에서 끌려간 도공들에 대한 이야기며 그 중심에 있던 사기장의 남편이 죽자 부인 백파선이 어떤 과정을 통해 사기장으로 활동하게 되는가를 그려가고 있다.
말과 풍습, 생활환경과 자연조건이 다른 왜국에서 조선의 자기생산 선진기술을 바탕으로 사무라이로 대표되는 무사집단에 이끌어가던 왜국에서의 생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백파선은 여성의 신분으로 도자기를 만들며 아리타 영주 무사 다다와의 사랑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삶이 슬프게 그려진다.
작가는 백파선의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위해 다른 현재시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일본에 유학하던 중 현실적인 요구와 사랑 사이에서 타협한 사람이 남편이 죽고 시아버지와 사이에 다시 타협점을 찾아 백파선이 만들었다는 마지막 자기를 찾아 나선다. 백파선의 중심적인 이야기와 다른 이야기의 전개가 두 이야기의 사이를 한층 강화시켜 주는 역할이라면 좋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두 이야기가 상호작용하여 중심을 이끌어가기 보다 부수적인 이야기의 구성도가 흐릿하여 중심으로 향하는 집중성을 방해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쉬운 점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로 역사드라마가 있다. 요즘 '불의 여인 정이'라는 조선 도자기의 중심에선 한 여인의 일생을 그려가는 내용의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백파선이 400여년의 시간을 훌쩍 넘어 우리 앞에 등장하고 있다.
"조선의 당찬 여자 백파선. 지금은 아리타에 있는 작은 사찰인 호온지 뒤꼍에 수많은 도공비 하나로 검은 이끼를 뒤집어쓴 채 초라하게 남아 있다."는 것은 한국에서 도자기의 현실이 조선의 그 찬란함을 이어가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