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박현찬, 설흔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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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연암 박지원의 글은 무엇이 다를까?

조선후기,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중 오늘날 유독 회자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사회가 활발하게 움직이며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경향성이 강하게 노출되는 시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전 시대의 사회적 역량이 때에 이르러 그 힘을 발휘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자의 성리학이 사회 전반에 걸쳐 무시무시한 권력을 행사하다 그 운명을 맞이할 징조가 보이는 것도 이 시대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진 이유 역시 이 시대 사회적 역량의 결과일 것이다.

 

홍대용을 선두로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이서구 등 실학을 필두로 한 영, 정조시기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그 선두에 당연 박지원이 있다. 연암 박지원에 대해 이름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익히 알려진 사람이지만 그것은 ‘열하일기’라는 작품의 저자 정도에 머무는 경우도 그에 못지않게 많다. 실체에 접근하지 못하고 이름만 알고 있는 경우라면 그의 사상이나 삶은 물론 작품 역시 올바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많을 것이다. 그의 대표적 저작인 열하일기도 다양한 형태로 출간되었지만 완역본을 읽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실학적 사상이나 인간적 매력, 다양한 소설들의 작가 등과 같이 연암 박지원이 주목받는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와는 달리 명문장가로써 주목하여 그에 글쓰기를 배우려는 측면에서 주목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조선 최고의 문장가라는 측면에서 새롭게 부각되는 경우가 아닌가도 싶다. 연암 박지원의 글쓰기에 관한 책으로는 이 책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를 비롯하여 ‘박지원의 글쓰기법’(주니어RHK, 2012), ‘고전문장론과 연암 박지원’(태학사, 2010), 비슷한 것은 가짜다(태학사, 2000), ‘연암 박지원의 글 짓는 법’(돌베개, 2013) 등이 있다.

 

이 중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는 소설이다. 박지원의 말년에 다시 찾은 연암협에서 만난 김지문이라는 사람을 제자로 받아들여 그에게 글쓰기 방법을 주제로 과제를 내고 그에 대한 글을 지어 연암에게 답을 제시하는 방법으로 연암의 ‘문장론’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박지원의 아들인 종채를 등장시켜 아버지의 글을 정리하고 아버지의 일생을 정리한 ‘과정록’을 집필하는 과정과 결합하고 있다. 단지 글쓰기 방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당시 시대적 상황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에 시대상황을 이해할 수도 있다. 연암 박지원과 그의 글쓰기 그리고 시대상황까지를 포함하여 한 편의 소설화한 특이한 접근방식이 눈을 끈다.

 

제자 지문을 통해 박지원의 글쓰기 진수를 추려내고 이를 통해 글 쓰는 이가 주목해야할 사항들을 추려내고 있기에 단순히 글 쓰는 원칙만을 제시하는 방법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글을 쓰는 이가 글 쓰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당연하게 여길 것이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 글에는 무엇이 담겨야 하는지를 우선 주목하게 만드는 박지원의 글쓰기는 글쓰기와 다소 멀어진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아는 바를 타인에게 제시하고 그 글로 교훈과 방향을 제시코자 하는 것이 일차적 목적이겠지만 박지원은 그 이전에 갖추어야 할 무엇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사색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사색은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자연, 사람들과의 소통이며 이를 바탕으로 내면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쓰여진 문장이야 말로 진정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라는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되기까지 두 저자인 설흔, 박현찬은 연암 박지원에 대한 연구를 얼마나 했을까 짐작을 하고도 남는다. 시나 소설같은 문학에 뜻이 있는 사람뿐 아니라 생활문으로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고 싶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글에는 담아야 할 ‘무엇’이 있다는 점을 알게 하는 기회가 될 책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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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
강판권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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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로 보는 조선

한 때, 자연과 친숙한 삶에 관심을 가지며 유행처럼 번지던 부류가 있었다. 웰빙에 대한 열풍과 맞물려 숲이야기, 들꽃이며, 야생화, 나무 등 자연의 일부를 소개하고 이를 통해 잔연과 사람의 공존을 모색하며 그 속에서 건강한 일상을 누리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흐름이라 모두가 반가움으로 맞이했다. 한발 더 나아가 자연휴양림을 비롯하여 둘레길이나 올레길과 같은 산책 겸 나들이를 할 수 있으며 자연의 품에 자신을 내 맡겨 쉼을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어 수많은 사람들이 누리고 있다. 그러는 사이 자연에서 언제든 만날 수 있는 나무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보다는 조금 더 이른 시기에 나무에 관심을 갖고 도감을 준비하며 직접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고 있는 사람 중 하나이기에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보면 언제나 반갑다.

 

이런 과정에서에서 나무에 관심을 가진 다른 사람을 만나는 행운도 있었다. 주된 관심사인 역사와 나무를 동시에 학문의 주된 관심사로 연구와 강의 그리고 집필에 열중하는 학자인 강판권이 그 사람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막상 접하고 보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지만 저자의 역사와 나무의 관심은 특별한 주목을 끌었다. 어색한 조합이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낯선 학문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나무와 역사를 두루두루 섭렵하고 있는 저자의 세책은 늘 반갑기만 하다. 역사를 전공한 학자가 나무에 빠져 역사 속 다양한 매체와 나무가 만나는 공간을 찾아내고 만난다. 그 결과물로 탄생한 책들이 나름 독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으며 저자의 관심이 어디까지 미칠지 몹시 궁금해 한다.

 

한창 나무에 빠져 책들을 찾던 중 만나 저자의 책들이다. 나무열전(글항아리, 2007), 나무사전(글항아리, 2010), 은행나무(문학동네, 2011),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효형출판, 2011), 중국을 낳은 뽕나무(글항아리, 2009), 어느 인문학자의 나무 세기(지성사, 2010) 이쯤하면 나무를 전공한 식물학자로 볼 수 있지만 저자는 역사를 전공하고 가르치는 사람이다. 얼마나 흥미로운 조합인가? 이건 흥미를 넘어선 학자의 학문에 대한 열정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조선을 구한 신목, 소나무’는 그런 강판권이 낸 최근 책이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역사와 나무가 만난다는 것이다. 이는 ‘미술관에 사는 나무들’나 ‘중국을 낳은 뽕나무’와 같은 이미 저자의 다른 책에서 보여주듯 역사와 다른 분야의 접촉에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듯 나무를 중심으로 역사를 살피고 있다. 그것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소나무를 중심으로 조선의 역사 일부와 만난다.

특히, 소나무로 만든 배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신석기 시대로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기간동안 한반도에 나타난 배의 역사를 비롯하여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의 활약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우리 수군의 함선에 이르러 그 관심사가 무엇인지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소나무가 조선 시대에는 어떤 가치를 가졌는지 그 내막을 조선왕조실록을 바탕으로 상세하게 살피며 조선의 소나무 보호정책과 소나무에 대한 사대부를 비롯한 당야한 계층에서 어떤 쓰임세가 있었는지를 알아가는 맛이 보통이 아니다.

 

주제 사이사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에 대한 저자의 소개글과 멋진 자태를 보여주는 사진은 소나무가 가진 진정한 가치가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가늠케 해주고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곳과 가까운 곳에 있다면 한번쯤 찾아보고 그 소나무의 역사와 자태를 경험해 볼만한 것으로 생각된다.

저자는 새로운 학문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내고 있다. ‘생태역사학’이 그것이다. 이는 자연의 산물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을 이해하는 것이며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의해 만들어진 다양한 문화유산을 올바로 이해하는 바른 길이라는 것과 통한다고 보고 있다. 많은 학자들이 관심 가져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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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라 문서
파울로 코엘료 지음, 공보경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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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근본에 대한 질문,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운명의 순간을 맞이하는 때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이는 역사이래 사람들과 함께한 근본적인 질문일지도 모른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어가는 과정이 어쩌면 삶이라고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기에 말이다. 그동안 수많은 학자나 종교인 현자들이 내 놓은 각종 처방이나 해답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많은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며 다독이고 내일을 살아가게끔 하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 많은 답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딱 맞는 처방은 아니기에 각자는 자신의 처지와 조건에 맞는 처방을 지침으로 삼아 힘을 얻는다.

 

현재 지구상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삶의 지침으로 삼을만한 작품을 통해 공감을 얻고 있는 작가가 있다. 브라질 출신으로 신비주의 작가이며 극작가, 연극연출가, 저널리스트, 대중가요 작사가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파울로 코엘료가 그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이지도 하며 그의 수많은 작품들이 번역되어 한국의 독자들과 친근하게 만나고 있으며 나 역시 그런 독자 중 한명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에는 그만의 독특한 주제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있다. 특정한 종교라고 할 수는 없어도 신적인 존재를 인정하며 인간의 적극적인 의식 활동에 주목하며 이 양자사이의 관계를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는 그 매력이 수많은 독자들을 이끄는 힘이 아닌가 싶다. 독자마다 접근하는 방법이 다르고 주목하는 바도 역시 다르기에 그 모두를 만족시키는 매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크라 문서’는 최근 발간된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이다. 작가의 이름에 의해 선택한 책이기에 그동안 작가에게서 얻은 매력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이번에 무엇을 어떻게 그려갈까 하는 기대감과 호기심을 바탕으로 말이다.

 

이번 작품은 문서로 시작한다. 1974년, 영국의 고고학자 월터 윌킨슨은 이집트에서 고대 문서로 아랍어, 히브리어, 라틴어로 쓰였으며 이‘아크라 문서’에는 11세기 말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기 직전, 콥트인 현자와 예루살렘 사람들 사이에 오고간 대화가 기록되어 있었다. 이 문서에 의하면 1099년 7월, 기독교인, 유대인, 이슬람교인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예루살렘을 십자군이 공격을 감행하는 절대 절명의 순간에 예루살렘 군중을 모아 놓고 삶의 의미와 인생의 보편적 가치에 대해 묻고, 현자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한다. 이 질문에는 삶의 본질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며 질문과 대답의 형식으로 전체를 구성하고 있다.

 

패배와 패배자, 고독, 삶의 방향, 자신의 가치, 변화, 아름다움, 성교, 통합, 가족, 사랑, 지나가 버린 과거, 운, 불안, 기적, 미래, 충심, 무기, 적 등이며‘지혜의 목소리’로 주목받고 있는 파울로 코엘료의 그간 작품을 접했던 독자들에게 낯설지 않은 질문들이다. 연금술사, 오자히르, 브리다. 순례자 등에서 보이듯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작가가 발표한 작품의 주제를 한 작품으로 총망라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작가의 작품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친숙함으로 다가서는 장점이기도 하지만 이 익숙함은 신선함이나 다른 기대감을 가지고 이 작품을 대하는 독자들에게는 그리 반가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느낌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기에 다른 독자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얻을지 궁금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러한 느낌은‘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은 소중한 결론들을 집대성한 작품’이라는 설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모든 것이 파괴된 후에도 사라지지 않을 인생의 지혜’를 얻고자 하는 것은 작가나 독자나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작가가 그동안 작품으로 만났던 독자와 자신이 겪는 현실적 고민을 통해 공감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 이 작품의 주된 목적이라면 조금은 다른 방식이어야 하지 않았을까? 요사이 접하는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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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3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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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조정래의 관심은 어디에 있을까?

작가 조정래는 대학시절 대하소설로 만났다. 세상이 어지럽고 그 어지러운 세상을 살아가기 힘들었던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의 목소리로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던 시기였고 그들이 맞서는 세상은 권력의 주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과 그런 권력을 용인하는 제도와의 싸움이엇다. 사람들의 삶을 억압하는 제도는 견고해서 좀처럼 돌파구를 찾기 힘들 때 작가의 작품들은 그나마 숨을 쉬게 만들어주는 생명수와도 같았다. 인간, 철학, 정치, 경제학, 사회와 같은 묵직한 서적들이 중심인 당시의 책읽기에서 문학은 보다 깊은 자기성찰을 요구하는 반성의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이다. 그렇게 만난 조정래의 작품은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으로 작가가 다루는 작품은 시기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이어서 작가 역시 그 제도적 장치에 의해 억압을 받기도 했다. 그렇게 역사와 민족, 자유, 인간의 본성 등을 중심으로 한 작가의 작품이 당시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며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갈 등불 역할을 한 것이다.

 

한동안 찾지 않았던 작가의 작품은 다시 만난 것은 작가 관점을 달리해서 집필활동을 한 작품이 출간되면서부터다. ‘허수아비춤’은 자본을 대상으로 한 본격적인 자본주의에 의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재벌들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렸다. 이 작품 ‘정글만리’도 그 연장선상에 있어 보이며 한발 더 나아가 중국과 한국의 현주소를 확인하며 미래를 열어갈 방향을 모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소재의 변화는 어쩌면 달라진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자본의 논리에 의해 삶 자체가 버거웠던 지난 시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달라진 오늘날 사람들의 모습은 많이도 변했다. 그 변화로 인해 혹 간과하는 것이 안니가 싶은 자본과 그 자본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의와 인간의 관계는 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골이 깊어지면 더 다양한 모습으로 인간의 삶을 구속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

 

‘정글만리’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유형이 몇 가지로 분류되지만 전대성과 김현곤의 이미지가 중복되고 정글이라고 하는 극단의 표현에서 느껴지는 치열함과는 다소 거리감이 있는 이야기의 전개도 그 허전함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다. 이는 골드그룹의 고의부도처리에서 인위적인 처리로 이야기의 단절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주인공 전대성은 어쩌면 정글에서 살아가는 전사의 모습처럼 완벽한 모습으로 보인다. 경쟁의 현장에서 어쩌면 한 발 떨어져 있는 것 같이 인간성은 좋고 중국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지식을 바탕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후계자 수업에도 충실하다. 같은 한국인에 대한 전대성의 태도는 올바른 모습으로 정의된다. 그가 명퇴를 결정하고 중국에 남아 펼칠 사업의 성패가 어떨지 다 그려진다는 것이 그것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정글만리’가 인터넷에서 연재되는 동안 1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접했다고 한다. 물론 그 사람들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할리도 없겠지만 책으로 출간되면서 그 인기는 여전하다. 한 사람의 독자로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느끼는 허전함은 무엇일까? 그 허전함은 허수아비춤과 정글만리 두작품 모두에서 느껴지는 동일한 감정이다. 이는 기대가 큰 만큼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 느끼는 그런 허전함이다. 그렇더라도 ‘14억 인구에 14억 가지의 일이 일어나는 나라’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시각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로써 충분히 주목받아야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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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만리 2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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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 속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나?

중국은 돈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며 생존에 필요한 수단으로 돈을 벌려는 사람을 포함 돈에 노예가 된 사람들이 전쟁을 벌이는 현장이다. 한국, 중국, 일본, 미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각국의 사람들은 각기 그 특색을 보이며 중국과 접근하다. 가장 대별되는 나라로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서양의 나라들이다. 우선 일본을 비롯한 서양나라들은 중국어를 하지 않는다. 중요한 이유로 경제대국 중국에서 돈을 벌려고 하지만 여전히 중국은 이류인 나라로 치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은 다르다. 가장 먼저 중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만드며 중국 역사를 비롯한 다방면에 걸쳐 중국을 이해하지 위한 노력을 필수적으로 한다. 이러한 차이가 중국인들이 한국인들을 대하는 태도로 나타나고 있다.

 

정글만리에는 그러한 모습을 대표적인 인물형으로 그려지는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종합상사 직원이면서 중국 밀착형으로 보이는 전대성을 포함한 김현승과 같은 사람이다. 중국 사람들과 돈이 아닌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형성하여 중국인들의 사고방식에 가장 접근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당연하리만치 이러한 것은 사업의 성공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른 부류로는 중국의 관리다. 공산당원이라는 권력을 중심으로 자본주의 속성에 가장 먼저 접근하는 사람들이다. 온갖 이권에 끼어들며 돈을 움켜쥐려는 모습은 과연 중국의 미래가 밝은 수 잇을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오게 한다. 그러나 그들은 늘 당당하다. 어쩌면 중국의 경제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해온 것인지도 모를 신흥 부자들이 그 다음이다. 이들은 돈이라면 불나방이 불을 향해 달려들듯 물불을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 돈이 돈을 부르는 자본주의의 생리를 가장 잘 이해한 사람들로 중국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리완싱과 같이 그야말로 졸부들 모습 그대로이다. 여기에 관료주의가 한 몫 하는 ‘꽌시’ 특수한 관계를 형성된다. 윈윈하자는 것이지만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결국 돈 없고 빽 없는 일반인과 노동자들의 땀을 통해 얻어지는 것을 당연시하게 자신들의 주머니로 챙기는 것이다. 중국이 개방정책을 하면서 수많은 한국기업들이 중국으로 갔다. 그곳에서 성공한 기업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기업들은 실패를 한다. 실패의 이유야 많겠지만 한 사람의 기업인을 통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 있다. 바로 하경만과 같은 비교적 양심적인 기업인이다. 그들은 중국 사람들과 인간적 교류를 중심으로 사업을 펼친다. 당연히 성공적으로 기업을 성장시키고 있다.

 

중국과 한국, 어떤 미래를 상상할 수 있을까? 서로 필요에 의해 주고받는 사이가 보통의 국제관계이지만 이런 관계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무엇인가 부족함이 있다. 동북공정과 같은 정책은 분명 양국 사이에 걸림돌이 되지만 어디 이러한 것이 현실적인 이익 앞에서 맥이나 출 수 있을까? 작가 역시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느낌이다. 혹 작가는 송재형과 리옌링이라는 베이징 대학생 연인을 통해 그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걸림돌이 한 둘이 아니지만 그들의 사랑이 결실을 맺어 보기 좋은 결과를 만들 때 어쩌면 중국과 한국의 미래를 그렇게 상상해 보는 것이 아닐런지...

 

정글만리의 인물형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다. 사람들의 삶과 관련된 이야기지만 그 중심에 분명하게 경제를 두고 전개되는 것 때문일까? 아니면 자본주의의 속성을 이미 다들 알고 있기에 복잡하지 않게 그려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동일한 한자문화권 속에서 수천 년 함께해온 중국이기에 사고의 근거에 동일한 무엇이 흐르고 있어 더 쉽게 이해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쉽게 상상하듯 정글의 모습은 분명 정글의 모습인데 이야기 전개는 치열함으로 읽히지 않으니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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