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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사물들 - 시인의 마음에 비친 내밀한 이야기들
강정 외 지음, 허정 사진 / 한겨레출판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시선을 사로잡는 사물들에 깃든 이야기들
살아오는 동안 부러운 부류의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다만, 두 부류의 사람들만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한 부류는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다. 노래를 하든 악기를 연주하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그들의 재주가 부러웠다. 그 부러움을 부러움만으로 둘 수 없어서 노래는 잘 부르지 못하기에 악기 연주에 도전했고 5년이 넘는 시간동안 우리악기 대금을 배웠다. 또 한 부류는 시인들이다. 시를 접하며 시인들의 가슴이 부러웠던 것이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그들이 쓰는 언어에는 내가 담지 못하는 무엇이 있었고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이 부러웠다. 어찌하다 감정이 담긴 몇 줄 적어보기도 했지만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하여, 여전히 부러운 사람들은 시를 쓰는 시인들이다.
시인이 부러운 것은 그들이 쓰는 시가 부러운 것이 아니다. 그들만의 언어를 만들어 내는 시선이 부러운 것이며 그 시선이 가능하게 만들어 주는 가슴속 깊이 담긴 세상이 부러운 것이다. 내게 한없이 부러운 그들이 누구나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사물을 두고 그들만의 이야기를 쏟아낸 책을 만나는 것은 대리만족 차원에서라도 흥미로운 것이 아닐 수 없다.
강정, 고운기, 권혁웅, 김경주, 김남극, 김성규, 김성철, 김안, 김언, 김태형, 김해준, 문태준, 박상수, 박성우, 박찬세, 박철, 박형준, 박후기, 서효인, 성동혁, 신철규, 안상학, 여태천, 오은, 유강희, 유병록, 유용주, 윤성택, 윤성학, 이승희, 이우성, 이원, 이윤학, 이이체, 이정록, 이현승, 임경섭, 장석남, 전동균, 전영관, 정영효, 정해종, 조동범, 조연호, 조영석, 주원익, 함기석, 함민복, 함성호, 허연, 황규관, 황인찬
52명의 시인들이 52개의 사물을 두고 저마다의 마음에 담긴 이야기를 세심하게 그려간다. 사물에 투영된 이야기는 시인들의 일상과 삶,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그들만의 욕망 등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이 주목하는 사물로는 “타자기, 돋보기, 가로등, 산소통, 공, 가방, 이름, 찌, 간판, 저울, 휴대전화, 시선, 구두, 냉장고, 야구공, 휴지, 성냥, 재떨이, 신문, 사전, 술병, 치마, 세계, 이어폰, 편지, 창, 지도, 연필, 카메라, 크리스마스실, 침대, 석유풍로, 사전, 축적, 국수, 도시락, 가위, 지게, 조약돌, 낫, 위생장갑, 간드레, 진공관 앰프, 정화수, 시계, 엘리베이터, 의자, 담배, 자동차, 먹물, 자전거, 잔, 우산, 카세트테이프, 계단” 등이다. 이미 그 역할을 다하고 사라진 사물이나 여전히 유용하게 쓰이는 사물들로 사람들의 일상에 깊숙이 관련된 사물들이기에 그 사물들 안에 깃든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로부터 다소는 공개되는 이야기라는 전재에서 의도적인 시선이 보이기도 한다.
어떤 사물은 나를 비추는 물건이고, 어떤 사물은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을 꿈꾸게도 한다. 일상에서 만나는 이러한 사물들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시간이 지나오며 달라진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게 만들기도 한다. 시인만의 독특한 시선에 산문이라는 글이 가지는 솔직함까지 포함된 이 글들 속에서 같은 사물을 두고 글쓴이와 독자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차이가 독자들로 하여금 흥미로운 시각으로 그들의 이야기레 기대감을 갖게 만드는 지점일 것이다.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어떤 사물들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렇게 마주치는 사물들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를 투영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시선을 사로잡는 사물이란 이미 내 마음속에 무엇인가가 자리 잡고 있기에 수많은 사물들 중에서 특정한 어떤 사물에 주목하게 된다. 그렇게 주목한 사물 속에 무엇이 담겨 있을까? 사물들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 볼 기회를 제공하는 시인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공감을 불러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