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 죽고, 시에 살다 - 요절한 천재 시인들을 찾아서
우대식 지음 / 새움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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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시로 말해야 한다

한때 문학기행이 산불처럼 번지던 때가 있었다. 그 여파로 여기저기 내노라하는 문인들의 문학관이 들어서고 작가와 작품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 모았다. 이미 고인이 된 문인들도 있지만 살아서 자신의 이름을 붙인 문학관을 가진 사람들도 있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그런 문학관이 제 기능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인근에 있는 조태일문학관은 찾을 때마다 한산하기만 하다. 그렇게 이름을 남긴 문학인들은 제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것으로 봐도 될까?

 

문학의 범주에서 시만큼 독자와 거리감이 덜 느껴지는 분야는 없을지도 모른다. 오늘도 치열한 삶을 통해 습작을 하며 시와 시인의 대열에 합류하고자 애쓰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등단도 비교적 쉬운 편이다. 이러한 현실이 어쩌면 시와 독자의 사이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등장한 것은 아닐까? 그만큼 넓어진 문호로 인해 시다운 시를 찾아보기 힘든 경우가 이를 반증해주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이런 안타까운 현실에서 시에 대한 불꽃같은 열정으로 짧은 생을 살았던 천재시인들의 삶과 작품을 만나는 것은 시를 독자들 곁으로 다시금 우뚝 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 본다. 우대식의 시에 죽고, 시에 살다는 바로 시에 목숨 걸었지만 지극히 짧은 생으로 인해 독자들과 공유할 기회를 상실한 시인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연주, 신기섭, 기형도, 여림, 이경록, 김민부, 김만옥, 김용직, 원희석, 임홍재, 송유하, 박석수시인이 그들이다. 기형도 시인을 빼면 낯선 이름들이 대부분이다. 그만큼 멀리 있었다는 것이리라.

 

책을 읽는 동안 한 명 한 명의 시인들을 만나는 일이 버겁기만 하다. 짧은 생애에 함축된 삶의 언어인 시를 접하는 것이 달달한 연애시와는 많이 다르기에 정호승 시인의 이 책은 일찍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삶 자체가 한 편의 위대한 시가 된 시인들의 이야기추천서처럼 무겁게 다가온다. 저자 우대식 역시 시인이다. 시를 쓰는 시인으로 살면서 동료시인들의 짧지만 강렬하게 살았던 삶을 추적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으리라. 시인들의 발자취를 찾아 고향이나 학교, 시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발품도 만만치 않았겠지만 시인들의 시를 가슴에 품고 시인들의 삶을 추적하는 우대식 시인의 가슴도 시퍼렇게 멍이 들었을 것만 같다.

 

시 의식이란 어느 날 갑자기 솟아나오는 것이 아니라 생래적인 기질과 스스로를 단련해가는 역동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피어나는 꽃이라 할 수 있다원희석 시인의 삼을 추척하며 저자가 한 이야기다. 어디 이 말이 원희석 시인에게만 국한된 이야기일까? 시인들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시는 그래서 시인의 삶은 화살로 꿰뚫리는 심장을 가진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호칭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의문의 죽음이었거나 병사였거나 그것도 아니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시인들의 시에는 오늘이 있다. 치열한 오늘이 있었기에 시인에게 시가 운명이었을 것이다. 시인은 시로 말해야 한다. 이때 시는 시인의 삶이 반영된 시여야 한다. 시인들이 시에 담고자 했던 그 무엇이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시인들이 간과하며 지나치는 그 무엇이며 사람들이 살아가며 반드시 깨달아야할 그 무엇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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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 스티븐 제이 굴드 자연학 에세이 선집 3
스티븐 제이 굴드 지음, 김동광 옮김 / 현암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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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과 친해지기 위해서

일정한 빠르기로 무한히 연속되는 흐름을 시간이라고 한다. 이 시간은 멈춤을 모른다. 그렇기에 지구나 인류가 지나온 시간에 대해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주 작은 단위의 시간이야 늘 빠름과 느림에 안타까워하지만 그 단위를 조금씩 늘리다보면 점점 감각이 없어진다. 하여, 지구가 생긴 이래 어떤 변화의 과정을 겪었는지 라든가 인류가 살아온 지난 시간을 추정하는 것과 같은 것에 이르면 그 감각은 단지 숫자에 불과한 것에 머물고 만다. 시간은 모든 것을 간직하지만 더불어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한다. 그렇게 사라진 것들의 흔적을 찾아내 앞뒤좌우의 맥락을 찾아 이야기를 구성하는 것이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며 어쩌면 인류의 역사를 연구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분야에서 과학적 방법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맥락을 맞춰가는 것이 자연과학이 아닌가 싶다. 이러한 자연과학은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과학으로 밝혀낸 자연법칙은 인류가 삶을 영위하여 온 그 과정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삶에 도움을 받으면서도 자연과학과 친화적이지 않은 이유는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자연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의 힘내라 브론토사우루스는 자연과학 분야에서 제기된 다양한 사회적 이슈를 진화론의 입장에서 탐구하고 해석하여 대중들과 소통하려는 의도에서 집필된 과학에세이 모음집이다. 이야기의 주요 무대는 유럽을 비롯한 미국과 서양세계에서 벌어진 사회적 이슈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저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로는 진화 속의 역사, 공룡, 적응, 열광과 오류, 예술과 과학,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의 동물이야기를 비롯하여 진화와 창조, 숫자와 확률, 행성탐험에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이런 주제들과 관련된 이슈들의 진위와 관련되어 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다툼의 지난한 과정을 따라가기도 하고 자연과학사에서 논쟁이 되었던 이슈의 전개과정 등을 저자는 진화론의 입장에서 밝혀간다. 이 책의 제목에 등장하는 공룡의 이름 브론토사우루스는 동물이름을 붙이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화를 담았고 홍학이 노를 속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는 현상에 대한 해석, 보이저호의 우주탐험과정에서 밝혀진 과학의 단면, 진화론과 창조론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 그 논쟁과 관련된 재판과 같은 이야기들이다. 이렇게 밝혀가는 과정이 독자들로 하여금 얼마나 공감을 얻을지는 의문시되지만 굳건히 매진하고 있다.

 

훌륭한 사고를 거쳐 도달하는 위대한 과학도 결국은 사회적인 맥락과 그것이 놓인 시대의 지적인 배경 속에서 발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맥락은 사고를 제한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통찰력을 증진시키기도 한다. 진보만을 거듭하는 일방적 방향으로 역사가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란 항상 극복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갖는 어쩔 수 없는 구시대적 특성으로 인해 우리에게 거부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사회를 바라보는 기본 시각이다. 진화론을 기반으로 하는 자연과학자이지만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학문과 학자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지극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한국의 과학자들도 이런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익숙하지 않은 분야의 내용을 읽어가는 데에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내용도 어렵지만 문장을 이해하는데도 읽고 또 읽어야 파악된다. 번역의 문제인지 문장을 따라가기가 버겁기도 하다. 친하지 못하는 자연과학 분야의 이야기를 대중과 친숙하게 이어주는 이야기로서 이 책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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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참 늦복 터졌다 - 아들과 어머니, 그리고 며느리가 함께 쓴 사람 사는 이야기
이은영 지음, 김용택 엮음, 박덕성 구술 / 푸른숲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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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복도 만들어가는 사람에게 온다

별 따라 가신 아버지를 보내고 홀로 남은 엄마는 눈물과 친구하나 보다. 이런 저런 이유로 눈물 마를 날이 없는 듯싶다. 낮이야 평생 하던 일로 잊기도 하겠지만 홀로 있는 집 안에서는 눈 가는 곳마다 아버지와의 함께 보낸 시간이 머물고 있기에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모처럼 시간을 내 엄마를 보려 가면 그 눈물로 인해 멍한 가슴을 안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기가 더디다. 앞으로도 수많은 날을 그렇게 보내다 어느 순간 눈물마저 마른 날이 오면 그때는 어떨까? 엄마는 아직 보내지 아버지를 보내지 못한 것이다. 아직은 기운이 있어 농사도 하지만 그보다는 더 사람관계에서 창창한 그 기운이 발휘된다. 그 기운이 발휘되는 주요대상은 며느리다. 엄마와 아내 사이에서 난 어쩔 수 없는 벙어리가 되고 만다. 그렇게 이십년이 넘는 시간동안 말이다. 이런 일이 어찌 나 만의 문제일까?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고 있는 현실일 것이다.

 

누구나 당면한 문제이지만 누구도 그 해답을 실천하기에는 어려움을 느끼는 이러한 문제를 남다른 방법으로 해결한 사례가 있다. 섬진강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시인 김용택의 부인 이은영과 어머니 박덕성의 경우가 그렇다. 억척스럽게 가정을 일궈오고 자식들을 키워 가정을 일구도록 온 마음을 다 쓰신 어머니는 나이 들어 몸의 기운이 떨어져 활동에 제약을 받으면서 마음도 어느 사이 자식들에게 의지하게 된 상황이 각자에게 부담으로 다가온 현실이다. 이를 어떻게 해결해 내느냐의 여부에 따라 남은 인생은 달라질 것이다. 그 사례를 김용택의 부인과 어머니를 통해 한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평생을 살아온 집을 떠나 병원을 집삼아 살아야 하는 처지로 전락한 어머니와 그 어머니를 간병해야 하는 며느리는 둘 사이 벌어진 간극을 메울 수 있는 방법으로 며느리는 어머니에게 바느질과 글쓰기를 제안한다. 망설임을 넘어서 하나 둘 바느질을 통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찾아가는 어머니는 바느질보다 더 어색한 글쓰기를 통해 지난 삶 속에서 가슴에 담아두었던 한스러운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이는 어머니에게만 해당한 사항이 아니다. 며느리 역시 마음속 부담감을 글쓰기를 통해 공감하며 지난 흘러간 시간 속에 묻어 두었던 마음의 생채기를 치유해 간다.

 

며느리 이은영의 글에는 솔직함이 돋보이며 독자의 공감을 불러오는 무기로 작용한다. 나이 들면 어머니나 며느리라는 규정 보다는 친구와 같은 사이가 된다는 말이 있다. 마음의 장벽을 허문다면 더없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음을 이 둘 사이의 변화를 통해 확인하게 된다. 마음의 벽을 허물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있을 때 공존이 가능하며 자신의 삶 또한 빛날 수 있는 것임을 상기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김용택의 고백처럼 그동안 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아들이자 남편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일부러 모른 척 한 것도 있겠지만 어머니와 아내가 남편인 자신에게 한마디도 안했다는 것이다. 이것으로 책임이 면햐지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아들이며 남편인 우리 모두가 외면하고 있는 이 문제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분명 어떤 방법이 있을 것이고 그 방법을 실천한다면 또 다른 해결방안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닫혔던 마음이 열리니 함께하는 현재가 그리고 다가올 미래가 예전과는 분명 다른 시간으로 채워질 것이다. 절대다수가 노년층에 이르는 인구구조에서 노후대책이나 노인문제는 노년층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노년층과 함께 살아갈 모든 사람들의 문제이며 이를 어떻게 해결해 가야 하는지의 여부에 의해 가정의 행복을 담보하는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무엇을 어떻데 할까? 지금 당장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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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평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다산 정약용 평전 -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박석무 지음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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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가

조선의 역사 518년 중 으뜸 학자를 꼽으라면 그 선두에 정약용이 있을 것이다. 정도전(1762-1836)하면 떠오르는 것은 우선 18년에 걸친 긴 유배생활을 한 비운의 학자로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여유당전서 등 5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책을 저술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업적이 인정받아 2012년 유네스코에서 기념해야 할 인물로 선정했다. 세계적인 학자 반열에 오른 것이다. 이렇게 세계적인 학자로 인정받은 정약용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단지 외우는 역사교육으로 인해 정약용의 이름과 그가 지은 책 제목 정도만 기억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정약용의 편지을 모아 해석하고 소개하는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창비 2009)를 발간하며 다산 정약용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일반에게 소개한 저자 박석무의 노력으로 다산 정약용에 대한 평전이 발간되었다. 저자는 이 책에서는 정약용이 과거에 급제하여 성균관 유생으로 생활하면서 정조 왕과의 만남과 왕의 적극적 후원으로 승승장구하며 정치의 일선에서 민생과 관리들의 실상을 확인하는 정치생활을 하다 반대파의 모함을 받아 유배에 처해지는 상황을 살핀다. 이를 통해 이후 전개되는 정약용의 삶의 근간이 되는 학문, 사상, 정치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실천적 활동을 전개한 정약용의 일생을 탐구해 간다.

 

정약용의 일생을 수학기, 사환기, 유배기·저술기, 정리기로 구분하여 살피고 있다. 여기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공정과 청렴을 바탕으로 세상을 일으키고자 했던 정약용의 실천적 의지다. 방대한 그의 저서의 밑바탕에는 당시 사회의 누적된 모순과 혼란을 극복하고 바로 세우기 위한 노력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결과로 집약된 것이 그의 저서라는 것이다. 또한 정약용하면 천주교와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데 저자는 이 부분에서도 학문과 종교라는 구분으로 정약용이 천주교와 인연 맺은 것이 새로운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더불어 정약용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개혁군주 정조 왕과의 인연도 살핀다. 정약용의 실력을 인정하여 확실하게 밀어주었던 결과 짧은 정치활동에서 눈부신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군신관계의 한 모범적 모습의 전형을 볼 수 있다.

 

정약용을 이해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다른 부분은 그의 시다. ‘애절양과 같은 당시 백성들의 삶의 실상을 반영한 시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감성적이고 자연을 노래한 시도 많다. 시를 매개로한 인적교류, 지방의 백성들의 진솔한 삶의 언어를 적극 반영한 점 등이 주목되지만 아쉬운 부분도 있다. 이는 모든 시가 한문으로 지어졌다는 점이다. 정약용의 외가 쪽 선조인 윤선도는 그보다 훨씬 앞대를 살았던 사람이지만 한글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측면과 비교하여 한글에 대한 정약용의 인식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이와는 다른 부분이기는 하지만 같은 맥락으로 정약의의 시대적 한계를 지적하는 부분은 그의 노비들에 대한 시각이다. 백성들의 비참한 처지를 개탄하고 혹독한 관리들의 잘못을 지적하며 사회개혁에 대한 강한 실천을 강조하면서도 보비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언급이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정약용이 갖는 개인의 한계이자 시대적 한계로 그 역시 좋은 집안 출신의 기득권자였다는 것이다.

 

다산 정약용 학문의 의미는 그가 남긴 저작물의 제목에서도 살필 수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 경세유표의 유표는 유언으로 남기는 정책건의서의 성격이며 목민심서와 흠흠심서에서의 심서는 당장 실행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속으로 실행하고 싶어서 지었던 이름이다. 이는 다산이라는 호를 사용하기 전 정약용의 호 사암과도 같은 맥락으로 먼 뒷날 알아주고 이해해 줄 때가 올 것이라는 기다림이라는 의미가 공유된다. 이렇게 살얼음판을 조심스럽게 건너는 마음으로 살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의 실천적 시각의 학문과 현실 적용의지라고 볼 수 있다.

 

목민관이자 학자, 시인이자 경세가였던 다산의 전 면모를 살펴 저자가 내린 결론은 공직자의 공렴(公廉)’, 즉 공정과 청렴만이 나라를 일으킬 수 있는 기본이며 실천에 옮기는 행동만이 학문의 근본 목적이라던 다산의 철학으로 모아진다. 다산이 살았던 시대와 지금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차이점은 얼마나 될까? 권력이 백성을 대한느 태도도 백성들의 혼란스러운 일상도 한 치도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이런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다산의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만이 타락한 세상을 바꾼다 는 그 마음을 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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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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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을 구성하는 요소에서 주체로 전환을 꿈꾼다

어떤 정경이나 상황을 지칭하는 말이 풍경이다. 이러한 풍경을 구성하는 요인으로는 인식하는 주체와 대상이 있다. 풍경을 구성하는 요인이면서 그 풍경을 바라보는 주체에 따라 풍경이 전해주는 이미지는 다양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시각으로 풍경을 인식해야 하는가에 따라 풍경에 속해 그 존재를 잃어버리거나 아니면 풍경과는 유리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풍경을 구성하는 요인의 일부이지만 달리 바라보면 풍경의 성격을 규정하는 요인이 주체가 될 수 있다. 우리들의 삶도 이러한 풍경으로 규정할 수 있다. 하여, 풍경의 구성요인이자 주체인 우리들이 어떤 시각으로 삶을 바라보며 살아가는가에 주목하게 된다.

 

자신을 둘러싼 삶의 환경을 풍경으로 대입한다면 우리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각기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각기 다른 풍경들의 주인공일 것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풍경들이 모여 세상을 구성하지만 그러한 풍경들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가의 여부가 어쩌면 삶을 살아가는 중요한 기준이며 근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박범신 작가의 새로운 작품인 소소한 풍경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 모습에 주목하여 우리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작가가 주목한 사람들의 한 모습은 사랑에 있다. 독특한 사랑의 한 모습을 그렸던 은교이후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을 담은 소소한 풍경은 한 남자와 두 여자 사이에 벌어졌던 삶의 단면을 그려가고 있다.

 

소소한 풍경은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가이며 대학교수와 그 대학의 대학생이었던 여자, 그 여자와 다른 두 남녀가 등장하는 이야기에는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대신하는 남자1, , , 등으로 기호화 한다. 마치 풍경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을 나열하는 듯하다. 남자1, , , 으로 이름 붙여진 요소들이 화자인 이 남자1과 결혼 후 1년 만에 이혼하고 돌아온 고향집에서 혼자 살아가다 자신의 집에 들어온 남자 과 여자과 사이에 벌어졌던 일상을 그려간다. 남자와 두 여자 이렇게 셋 간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한 남자와 두 여자가 있다. 정확히는 한 여자와 한 남자 그리고 또 다른 여자가 있다. 이 셋이 서로를 사랑한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한 남자가 다른 여자와, 한 여자가 다른 여자와 그리고 셋이서 함께 사랑한다. 삼각관계인 듯 하지만 그렇지도 않다. 한 집에서 두 여자와 한 남자 사이에 서로가 삶에서 치유하지 못했던 트라우마를 서로 보듬고 다독여 간다. 하지만, 이 세 사람 모두 각기 다른 시각에서 출발하기에 풍경을 구성하는 요인들로 볼 수 있다.

 

혼자 사니 참 좋아에서 둘이 사니 더 좋아로 이어 셋이 사니 진짜 좋아로 이어지는 풍경의 변화는 화자 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 , 모두에게 해당하며 관계가 종료되는 시점에 자연스럽게 각기 요소로 돌아간다. ‘정좌(正座) 풍경’, 풍경이 멈춰선 모습일 수는 없다. 늘 움직이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간다. 등장하는 한 남자와 두 여자가 겪어온 삶의 여정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은교에 이은 사랑이야기라고 하지만 독자인 내가 주목하는 점은 풍경에 있다. 삶의 풍경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이합집산하는 과정에 사랑 또한 한 모습이 아닐까 싶어서이다. 풍경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자신을 소멸해가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가면서도 주인공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풍경을 구성하는 요소로만 존재할 때 소소한 풍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트라우마가 형성되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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