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슬 - 제주4·3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김금숙, 오멸 원작 / 서해문집 / 201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끝내려면 시작해야 한다

지슬? 아직 끝나지 않은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책의 제목이라고 한다. 제주4·3사건을 다룬 책의 제목이다. ‘지슬은 제주 말로 감자를 가리키며 땅에서 나오는 열매라는 뜻을 담아 한자어로지실(地實)’이라고도 한다. 암울하고 무거운 사건을 다루는 책의 제목을 땅에서 나오는 열매라는 의미를 담은 단어로 결정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제주4·3사건은 무엇일까? 제주4·3사건은‘194731일을 기점으로 19484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9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라고 한다. 한국 현대사에는 제주4·3사건과도 같은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다. 아니 시작도 못한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아직 시작하지 못한 이야기의 서두를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꺼내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 문학, 그림, 만화 등 무엇으로 시작하건 시작의 방법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야 못 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것이기에 말이다.

 

대부분의 제주4·3사건과 같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시작은 권력에서 출발하는 경우는 없었다. ‘민간인 학살이라는 배경에 권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여,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시작은 당한 사람들에게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그들에겐 시작할 만한 힘이 없기에 이를 동조하는 재주를 가진 사람들에게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것이 문학이며, 영화이며 또 다른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책 사건인 제주4·3사건도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문학으로 영화로 다시 만화라는 수단을 통해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다. 이 책의 시작은 영화 지슬에서 출발하고 있다. 영화 지슬한국영화 최초 선댄스영화제 최고상 수상, 브졸국제아시아영화제 황금수레바퀴상, 이스탄불영화제 특별언급상, 부산국제영화제 4개 부문 수상, 국내 독립영화 최다 관객 동원등 다양한 수식어로 대중들의 주목을 받았기에 그림으로 만나는 이 지슬에 기대하는 바가 클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고 책은 책이며 특히, 작가가 다르기에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주목하는 바는 다를 것이다.

 

영화 지슬이 한 폭의 수묵화로 펼쳐지다는 괜한 광고문구가 아니다. 흑백으로 펼쳐지는 그림들이 어둡고 거칠며 삭막하다. 제주4·3사건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허허로운 마음을 옮겨놓은 듯 급기야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느낌을 그대로 가슴에 안게 만들고 있다. 제주4·3사건의 한 장면을 담아 제주4·3사건에 대한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권력의 명에 의해 죽이고 죽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일선상에 놓음으로 해서 가해자 위에 존재하는 명령하는 자들에 대한 주의를 환기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무엇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일까? 2014년 사건이 발생한지 66년 만에 43일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정부가 주관하는 국가적 위로 행사로 격상되었다고 한다. 19805.18광주항쟁도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어 보훈청에서 주관하고 있다. 하지만, 추모노래 하나 가지고도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막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고 진보한 이야기를 되돌리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5.18 광주항쟁보다 훨씬 긴 침묵의 시간을 강요받았던 제주4·3사건은 이보다 더 했을 것이다. 이는 피해자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상처를 치유 할 무엇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풀리지 않고 남아 있는 그것을 이제는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죽어가면서도 남은 가족들을 위해 지슬을 가슴에 안고 있었던 엄마의 마음을 이제는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삼오식당
이명랑 지음 / 은행나무 / 201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학의 시대정신

작가에게 부여된 시대정신은 어떻게 발휘되어야 할까? 작가가 작품에 담고자 하는 것이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를 관통하는 정신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작가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을지언정 그 작가를 있게 한 일상에서 영향 받아 살아가는 작가로써 의연 중에라도 반영될 수밖에 없다. 작가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무엇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그려지는 작품은 천지차가 날 것이다. 한때 많은 작가들이 가진 자와 대척점에 서 있었던 사람들에 주목하여 그들의 삶의 희로애락을 담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소통하는 매개가 되기도 했었다.

 

시대가 달라졌다고 한다. 한때, 주목했던 그들에게는 달라진 것이 있을까? 달라진 것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입고 먹고 다니는 것과 같은 보이는 모습은 달라졌다. 하지만, 삶의 본질을 이루는 부분에선 그다지 변화를 발견할 수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 변하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 대다수의 작가들이 외면한 사람들의 일상을 주목한 작가가 있다. ‘삼오식당의 이명랑이 그다.

 

작가 이명랑은 고개 돌리지 않고, 정면에서, 똑바로. 나를 들여다봐야 한다. 태어나서 한 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는 나의 고향. 내 현실을 들여다봐야만 한다라고 말하며 소위 문화산업, 멀티미디어 시대의 도래와 함께 너무 빨리 소설사에서 밀려나버린 사람들. 이들은 누구인가? 왜 이들의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가? 내 두 발이 딛고 서 있는 곳은 대체 어디 인가?에 주목한다. 당연한 결과로 자신이 성장했던 시장 통의 사람들의 일상으로 모아진 것이라고 한다.

 

그 이야기를 삼오식당으로 모았다. 연작소설이라는 형식을 취한 이 작품은 영등포 시장의 한 식당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형성된 가게들의 사람들의 일상을 세밀하게 그려가고 있다. 시장 통 삼오식당의 둘째딸이 시장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어머니가 있는 골목’, ‘까라마조프가()의 딸들’, ‘엄마의 무릎’, ‘보일러실 쟁탈전’, ‘잔치’, ‘결승선에서’, ‘우리들의 화장실등 각각의 이야기 주인공들은 삼오식당과 어던 형식으로든 연결이 되어 있으며 시장 통 사람들의 구체적 삶을 적나라하게 그려간다.

 

작가의 관심사는 시장 통 사람들이라고 하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인생에 히든카드 하나 없는 사람들은 무엇으로, 어떻게 이 생을 견뎌낼까?’에 있다. 하여 그들의 일상을 숨김없이 내 보인다. 사용하는 언어나 행동에서부터 하는 일에 따른 그들의 사고방식까지 여과없이 드러내 보이는 솔직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시장사람들의 일상을 통해 그들의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으며 이 솔직함이 소박하고 친근한 이웃들의 눈물과 함께 따스한 시선이 담겨있다. 영등포시장 식당 집 둘째딸이었던 작가의 체험이 녹아 있어 더 생동감 있게 그려질 수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는 사회에서 문학이 외면한 사람들의 모습에 주목했다는 점부터 남달리 느껴진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 그들로부터 외면당한 사람들의 삶에 주목하여 시대가 해결해 가야할 공통 문제에 대한 공감을 불러와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당공부, 오래된 인문학의 길
한재훈 지음 / 갈라파고스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공부, 분명 다른 길이었다

공부(工夫)라고 하면 우선 영어단어 외우고 수학문제 풀며 쌓여있는 학습지를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되는 현실이다.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힘이라는 공부(工夫)의 사전적 의미에서도 공부의 본질적 의미를 찾기가 어려워 보인다. 살아보니 우리가 공부라고 여겼던 것들이 삶을 살아가는데 그렇게 많은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이 살아가며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배우는 것을 공부라고 한다면 그러한 공부는 사라진 것일까?

 

요사이 한국 사회는 인문학을 빼놓고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 인문학이 이런 열풍의 중심에 선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는 인문학의 본질적 의미에서 출발하는 것과 우리의 현실이 인간의 본질적인 삶과 동떨어진 결과로 무엇인가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만 현실의 팍팍함으로 점철된 삶의 문제를 해결해 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어우러진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인문학의 본질이 사람의 삶에 관한 이해를 넓히고 그 지향점을 찾아가는 것이라면 우리시대 인문학 열풍은 분명 의미 있고 반드시 필요한 것이며 이제라도 인문학이 그동안 떠나 있었던 사람의 곁으로 다가온 것이어서 반갑기 그지없다.

 

우리에게도 공부가 사람의 삶의 본질을 찾아가는 것으로 존재했던 때가 있었다. 역사 속 선비들의 학문이 바로 그러했으며 가깝게는 서당이라고 하는 곳에서 공부의 시작을 했던 선배들의 경험이 있다. 하지만, 교육제도가 바뀌고 서양의 물질문명을 가치판단의 기준에서 우선시하면서부터 이러한 공부의 의미가 바뀌었으며 길을 잃고 헤매는 현실을 불러왔다고 보인다.

 

이러한 시대를 살면서도 옛날 선배들이 공부했던 방식으로 서당이라는 곳에서 공부한 사람이 있다. 우리시대에 흔치않은 사람이지만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도 현실이다. ‘서당공부, 오래된 인문학의 길을 펴낸 저자 한재훈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한재훈은 모두가 정규학교에 갈 나이에 서당공부를 시작했다. ‘서당에서 15년 동안 한학을 배우고 다시 대학에 입학해 철학을 공부했다. 50대 중반 사람에게나 가물가물한 기억 속 남아있을 그 서당에서 옛공부를 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서당의 커리큘럼, 일과, 공부의 평가 등을 생생하게 보여줌과 아울러 서당공부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방점은 오히려 서당공부가 지향하는 것에 있다고 보인다. 그것이 현재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인문학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고 본다.

 

진정한 인문학의 길이 서당에서 했던 공부에 있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현재 우리가 하는 공부가 무엇인가 본질에서 조금은 벗어난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서당공부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의 본질적 측면에 대해 주목하며 공자와 이황의 경우를 들어 스승과 제자가 걸어야 할 길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공부의 본질적 측면에서 스승과 제자의 만남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한다.

 

사자소학, 추구 등으로 시작한 서당공부가 소학, 대학, 논어, 맹자 등 경전 공부와 암송으로 그 과정에서 함께하는 붓글씨, 한시 짓기 등 서당공부가 지향하는 점은 위기지학으로 모아져 위인지학으로 나아가는참 공부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참 공부는 결국 현재의 인문학이 해결해야 할 것으로 이어진다고 본다. 저자는 서당을 통해 인문학적 전통이 있었음을 확인하며 우리의 현실인식과 해결방안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불러오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혼
배명훈 지음 / 문예중앙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연인사이의 거리는?

사람관계에서 시간과 거리는 어떤 작용을 할까? 꼭 물리적인 시간과 거리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의 경우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을수록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함께 한 시간에 의해 가까운 사이가 될 가능성이 많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시간과 거리는 두 사람의 관계에 종류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흔하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라면 함께하는 시간이 많을수록 두 사람의 친밀도는 더 가까워질 것이며 거리가 멀다면 함께하는 시간의 제약으로 인해 예기치 못한 다양한 문제를 노출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의 거리가 적당할까? ‘서로가 사로에게 별이 되는거리는 어떨까? 밤하늘의 별을 보며 그 별에서도 지구를 별로 인식할만한 거리라면 시공을 초월한 시간이 거리일 것이다.

 

배명훈의 청혼은 우주와 지구라는 두 공간의 거리를 두고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중력이 존재하지 않은 곳에서 태어난 사람과 지구에서 태어난 사람 사이의 사랑이니 서로 처한 조건의 상이함만큼 상상을 초월한 시간개념이 등장한다.

 

우주공간에서 전투 중한 남자가 지구의 여자에게 자신이 치룬 전투와 처한 환경을 적어 청혼편지를 보내는 형식의 이 소설은 중심무대가 우주공간이다. 광속이라는 단위에 의해 시간을 계산하고 공기가 없어 소리가 전달되지 않은 환경이다. 그 속에서 우주전함을 타고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저자의 상상력이 빛을 발하여 우주공간에서의 전투일상이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진다. 무한한 공간이 우주에서 서로의 존재를 별로 인식하는 거리만큼 떨어진 고립상태를 겪어가며 전쟁 중인 남자의 마음이 지구라는 공감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와도 같다. 이는

빛으로 딱 30초 거리만 떨어져 있어도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이 30초 뒤에도 그대로일 거라고는 확신을 못해. 이미 진실이 아닌 거지. 거리가 멀수록 모든 게 왜곡돼서 결국 그 어느 것도 투명하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오는 거야. 빛의 속도로 30. 그게 얼마나 먼 거리인지 실감이 나니?”

 

라는 문장에서 드러나고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별이 되는라는 물리적 거리감이 두 사람에게 어떤 작용을 할지 주인공의 고백을 통해 담담하게 탐구해 가고 있다. ‘사랑이 가져오는 두려움과 외로움, 애틋함서로가 서로에게 별이 되는곳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우주공간의 적막함을 통해 그려간다. 우주와 인간, 사랑과 외로움, 시간과 존재와 같은 사랑에 대해 본질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우주와 지구라는 물리적 거리는 결국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거리를 이야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중력의 지배를 받는 것과 같은 동일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일지라도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서로가 서로에게 별이 되는 거리만큼의 상실감을 느낄 때도 있다. 전투를 벌이지만 적이 누구인지도 확실치 않은 것과 같이사랑과 외로움이 동시적으로 작용하는 보통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어떤 해결방법을 찾아야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와 딸, 바람의 길을 걷다 - 고비사막에서 엄마를 추억하며 딸에게 띄우는 편지
강영란 지음 / 책으로여는세상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리사랑이라고 했던가?

내 엄마도 그러셨을 것이다. 방법이 다르고 서투르지만 자식을 향한 마음은 모든 부모가 같기에ᆢ 말이다. 내 엄마는 시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 팍팍하고 일상을 살아야 했기에 자식을 향한 애뜻한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방법도 찾지 못하고 눈치만 보았을 것이다. 겨우 아이들이 다 커 독립한 후에야 비로소 아들, 딸을 돌아 볼 수 있었을 것인데 그때는 이미 손자들에게 그 사랑을 나눠줄 때라 자식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불쌍한 우리들 부모세대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안쓰러움이 앞선다.

 

부모가 되어 자식인 딸에게 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딸아이에게 남겨줄 것이 별로 없는 아빠로써 세상과 자연 속에서 동시간대에 같은 것을 보고 가슴에 담을 무엇인가 있길 바란 것이다. 아빠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길 바랬다. 함께했던 딸과의 어릴 적 그 시간이 고스란히 가슴에 쌓여 살아가는 동안 조그마한 추억이라도 되길 바라면서 커가는 걸 지켜보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중학생부터 집에서 독립했던 그 딸이 대학생이 되었다. 딸과 아빠사이 차츰 무엇을 더 할 시간은 줄어들 것이고 그 만큼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그 시간을 채워갈 것이다. 지금까지는 아빠와의 거리가 더 가깝게 느껴지지만 점차 엄마와 가까워질 것이고 또 그러길 바란다. 딸아이와 엄마가 친구처럼 든든한 마음 붙잡고 삶을 살아갈 수 있길 바란다.

 

부러운 모녀 관계를 책에서 만난다. 내 딸과 그 딸의 엄마가 꼭 이런 사이가 되었으면 싶다. 엄마와 딸이 고비사막을 함께 여행하는 동안 엄마는 자신을 키워준 엄마를 그리며 엄마에게 못다 한 마음을 자신의 딸에게 넘겨준다. 딸아이가 성장하는 동안 여행을 통해 소통했던 모녀사이의 간절한 소망들이 따스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향하고 있다. 엄마와 그의 엄마 그리고 딸이 고비사막의 풍경 앞에서 하나가 된다. 지평선으로 둘러싸인 고비사막과, 고비사막과 하나가된 게르에서 맛본 칼국수, 낙타를 매어놓은 밧줄 하나, 황금빛 모래사막과, 황홀경과 같았던 사막에서의 달밤은 모두 엄마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진다. 초원과 사막을 함께 걷고 별들이 쏟아질 듯한 밤하늘 아래서 엄마와 딸은 속내를 나눈다. 엄마에게서 딸로 다시 그 엄마의 딸에게로 전해는 것은 자신이 다하지 못한 엄마에 대한 사랑을 담아 딸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여행이라고 한다. 일상을 벗어나 낯선 곳에서 느끼는 해방감이 세상과 자연 그리고 사람들에게 가슴을 열 수 있는 기회를 주기에 누구나 여행을 선망한다. 일상을 함께하는 가족이라면 더욱 이런 소중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들이며 엄마와 딸 사이인지 모르겠다. 그 딸도 시간이 흘러 엄마가 될 것이기에 다시 그 엄마의 딸에게로 이어지는 마음이 내리사랑으로 이름 붙었을 것이다.

 

엄마와 딸, 바람의 길을 걷다을 읽으며 필연적으로 내 엄마를 생각한다. 아버지를 먼저 보내고 홀로 남은 엄마의 속내가 어떨지 짐작만 할 수 있지만 여전히 서툰 표현이 안타깝다. 아들 향한 그 마음 짐작할 수 있기에 서러운지도 모르겠다. 홀로 봄을 맞고 있을 엄마의 마음에 봄꽃이 함께하길 바래본다. 또한, 내 딸과 그 딸의 엄마도 이런 소중한 시간을 꼭 갖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