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박물관 - 글누리의 모음
박창원 지음 / 책문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한글, 우리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

작은 땅, 적은 인구, 그것도 부족해 세계 유일의 분담국가인 한국이 경제적 성장을 이뤄내 당당히 강대국들과 어께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 힘의 근저에는 무엇이 있을까? 열악한 자연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눈부신 결과를 가져온 것에 대해 다양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한국인들이 가지는 창조성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는 역사적 유물이나 기록유산을 통해 여실히 증명되는 문제다. 하여,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다양한 우리의 역사적 문화유산이 선정되어 온 것이리라.

 

그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문자인 ‘한글’일 것이다. 최근 텔레비전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를 통해 한글이 창제되는 과정에 대해 다소나마 알게 되면서 우리글인 한글이 가지는 의의와 가치를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이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었다는 것은 세종대왕에 대한 관심도 있겠지만 한글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왕과 학자들의 열정을 보면서 더욱 더 글자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한글은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560여 년 전 조선의 제4대 왕인 세종대왕이 재위 25년부터 26년 사이(1443~1444년)에 완성한 것이다. 세종의 명에 의하여 집현전 학자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한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깊이 있는 이해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 세종이 독자적으로 만들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깊은 이해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박창원의 ‘한글 박물관’은 바로 이러한 필요성에 적절한 이해를 담보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총 4부 15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글이 가지는 언어학에서 차지하는 의의와 가치는 물론 한글이 만들어지게 되는 과정과 이후 한글과 관련된 당시 정책을 비롯하여 한글로 번역되었거나 한글로 써진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한글이 지나온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즉, 한글이 만들어진 시기부터 분단국가에서 통일 이후 한글에 대한 전망에 이르기까지의 내용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언어학자나 전공자가 아니기에 다소 어려운 내용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글자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법칙부터 한자 문화권에 있었던 주변나라들의 문자와 비교하며 한글이 만들어지는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부분에서는 한글이 가지는 우수성은 이미 출발부터 담보한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접하기 어려운 훈민정음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설은 한글에 대한 이해로 넓혀져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글자의 가치를 더울 빛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은 인류가 만들어온 모든 문화유산과 과학적 업적 등에 두루 통하는 말일 것이다. 글자 역시 어느 날 불쑥 한 사람의 독창성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이는 한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삼국시대 이후 말과 글이 달라 표현하기 힘들었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한 향찰, 이두 등과 같은 다양한 노력들의 결과가 모아져 세종대왕에 의해 꽃피운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세종 왕이나 집현전 학자들의 업적을 평가절하 하고자는 의미는 아니다.

 

노엄 촘스키, 로버트 램지, 펄벅 등 세계적인 언어학자나 석학, 작가들이 한글에 보내는 과학성과 우수성에 대한 찬사는 있는 그대로의 한글을 나타내는 표현일 것이다. 과학화되는 현대사회에서 더욱더 주목되는 한글이 정작 우리에게 홀대받고 있다는 인상이 깊은 성찰이 필요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드라마에서 세종 이도는 문자를 알게 된 백성들이 자신들에게 닥칠 문제에 대해 스스로 잘 대처할 것으로 믿었다. 때론 지기도 하고, 목숨을 잃기도 했지만 여전히 살아 다음을 준비해온 것처럼 그들은 살아서 자신의 몫을 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것이 백성을 어여삐 여겨 글자를 만든 왕 세종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인터넷 시대에 한글의 변용이 문제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어떤 시각으로 봐야 할까? 개념 없는 청소년들의 불장난으로 치부하기엔 변화되어가는 사회에 언어나 문자 역시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글 한글이 가지는 우수성과 과학성을 이후 어떻게 계승하고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해 종합적인 시각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색에 미친 청춘 - 한국의 색을 찾아서
김유나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나의 삶을 어떤 색으로 채워갈 것인가

내게 삼원색은 친근하다. 색과 색의 조합으로 새로운 색을 만들어 글자와 바탕을 채워가는 일은 자연스럽게 색이 주는 느낌을 일상으로 전환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색을 만들고 상용하다보니 색에 대한 선호도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시로 변하는 색의 주목도를 따라가다 보면 못내 아쉬움이 남는 경우가 발생한다. 고객이 원하는 색과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의 색이 다른 경우가 그것이다. 이럴 때는 많은 사람들이 무난하게 생각하는 색으로 선택하지만 색이 담고 있는 고유한 이미지와 멀어 진다는 생각에 이르면 이런 차이를 좁힐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에서 만난 색이 오방색이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나라 전통 색상으로 오방색은 황색, 청색, 백색, 적색, 흑색을 말한다. 이는 동서남북과 중앙의 방위를 나타내는 것에 색을 대입하고 각각의 색이 가지는 의미를 더하여 일상생활에 활용하여왔다. 왕이 입는 옷에서 사는 궁궐의 장식이나 일반 사람들의 삶의 깊숙한 곳에 이르기까지 밀접하게 관련되어진 것이며 그렇기에 우리의 삶과 떨어져 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사람들은 이러한 색이 주는 느낌과 멀어진 생활을 하게 되면서부터 색과 사람들의 삶은 점차 멀어지게 된 것이다. 하여,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하고 색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색과 멀어지면서 현대인의 생활은 점차 메말라 간 것이 아닐까?

 

이 책 색에 미친 청춘20대의 젊은이가 우리나라 전통색인 오방색과 이를 구현하는 천연염색에 관심을 가지고 전국에서 천연염색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배우고 느낀 것을 담고 있다. 자신만의 색을 찾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보면 어쩌면 구도자가 깨달음의 길에서 스스로를 찾는 것과 흡사한 느낌을 전해주기까지 한다. 부모님을 따라 이민을 가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다 만난 색, 그 색이 천연 염색이었고 그 색을 찾아 다시 한국으로 와서 자신만의 색을 찾아 나선 것이다.

 

오방색과 오간색은 모두 자연에서 얻어진 색이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온 사람들의 삶에서 얻는 귀중한 체험이 이러한 색을 만들어 온 것으로 보인다. , 치자, , 황토, 잿물, 홍화 등 우리 주변에 늘 존재하는 것들로부터 무한의 색을 만들어 내서 삼베나 명주 등 옷감에 염색을 하고 그 옷감으로 의복을 만들어 입었다. 옷감뿐 아니라 일상생활의 각종 소품들도 이렇게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사라진 듯 보였던 이러한 전통이 다시 주목받는 것은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니다. 기능을 가진 장인들 사이에 간신히 이어져 오던 것이 사회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다시금 주목받고 젊은 청춘들이 그 일에 의미와 가치를 찾으면서 점차 생활공간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은 무척이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저자처럼 색에 대한 탐구를 넘어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전통색인 오방색과 오간색을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전국에서 그 일을 직접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 있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그들의 공통점은 자신이 하는 일을 즐긴다는 점이다. 전통과 현대를 이어주는 작업인 동시에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 경제적인 가치만을 따지지도 않지만 이제는 자리를 잡아 이 둘을 동시에 해결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이들과의 만남에서 자신이 찾아 나선 자신만의 색을 발견하는 과정으로 삼고 있다. 그렇기에 천연염색의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그들이 천연염색을 해오던 과정에서 발견한 삶의 가치와 지혜를 배운다.

 

뉴욕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한 젊은 청춘이기에 책을 구성하는 사진도 전통 오방색을 이야기하는 느낌과는 조금 다른 이미지를 담고 있다. 하늘을 따라 높아만 가는 도시의 건축물의 사진을 그래서 다소 어색함을 전해준다. 하지만, 이러한 점은 전통과 현대의 어우러짐을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면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도 있겠다. 자신만의 색은 구체적인 색깔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이 전해주는 이미지 곧 자신과 타인의 삶을 구별해 주는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것이기에 스스로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동반하게 만들 것이다.

 

오방색이 자연에서 오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간을 더하는 것이기에 삶 또한 그것을 닮아가는 것이 순리가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배, 권력의 뒤안길 - 삼국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정치 쟁점 읽기
전웅 지음 / 청아출판사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정치적 묘수, 유배에 얽힌 정치인의 얼굴들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정치가들이 위임받은 권력을 개인의 치부나 더 많은 권력을 가지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를 빈번하게 보게 된다. 바로 우리 정치권의 현실이 그것인 셈이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힘에 의해 이들을 단죄하지 못하는 것 역시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앞에 지난 역사에 있었던 유배라는 제도를 떠올려 본다. 권력형 부정부패나 정경유착 등으로 죄를 지은 사람들을 그들이 근거하는 정치권이나 경제적 근거지에서 강제적으로 단절시켜 유배를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 말이다.

 

유배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이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 정약용에게 유배의 기간이 없었다면 그의 학문적 업적은 존재할까? 거의 20여년에 이르는 유배기간 동안 여유당전서를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걸쳐 수많은 서책을 완성하고 그 성과가 오늘날에 이르러서까지 주목받고 있다. 정약용처럼 이렇게 정치적 수단에 의해 현실로부터 단절을 강요받았던 유배라는 형벌은 우리 역사에서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이 책‘유배, 권력의 뒤안길’은 우리 역사에서 유배라는 형벌이 시행된 과정을 따라가고 있는 책이다. 삼국시대부터 조선말에 이르는 기간 동안 유배와 관련된 정치적 사건을 추적하고 이를 살펴 유배를 간 사람들의 흔적을 담았다. 그렇다면 유배란 어떤 것을 이르는 말일까? 죄를 지은 죄인을 벌주는 형에는 다섯 가지가 있었다. 이를 오형이라고 하는데 중국 대명률에 근거하여 태형, 장형, 도형, 유형, 사형 등을 말한다. 이중에서 유형에 해당하는 벌을 부과하는 것을 유배라고 말하고 있다. 유배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내포된 형벌로 인식되는 것은 유배를 당한 사람들이 대부분 정치적 사건에 관련되어 유배를 갔다는 것에 의한 것이다.

 

유배와 관련된 이야기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는 이 책에서 삼국시대 이후 시대마다 굵직한 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로 꾸며지고 있다. 유배가 주로 왕족이나 권력자들의 정치적인 이유로 행해졌던 형벌이나 보니 한 왕조의 흥망성쇠와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왕권 중심의 나라에서 왕과 신하의 권력을 중심에 둔 사건들은 끊이지 않고 벌어졌다. 왕위 계승과 관련된 왕족의 경우나 때론 신하들 사이에 권력을 나눠가지는 과정에서 붕당의 이해요구에 의해 상대방을 무고하여 정치적 생명을 단절시키는 일환으로 벌어진 사건들에 의해 유배형에 처해진 것이다. 그러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치적 사건에 대한 서술이 중심이 되고 있다.

 

하여, 이 책의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역사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건들과 직면하게 된다. 멀리는 백제 의자왕에서 고려의 무신들의 란에 의해 혼란스러운 정치적 상황을 맞이한 경우 그리고 조선시대의 갖가지 사화에 연루되어 목숨을 잃거나 겨우 목숨은 부지하면서 유배길에 올랐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다양한 이유로 유배를 떠났던 사람들은 또 다양한 모습으로 유배생활을 했다. 그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정치적 단절을 당한 마음을 다잡아 학문에 몰두하거나 시문학에 그 마음을 담았다. 이후 유배문학이라는 말이 나타나게 된 것이 이러한 사정과 관련되어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저자 전웅은 역사의 사건들을 통해 유배에 처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기존의 역사적 해석에 의존하여 정치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평가를 단정적으로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조심스러운 시각을 나타내고 있어 보인다. 사료의 새로운 발견이나 발굴에 의해 새로운 역사적 평가가 진행되는 상황을 적극 반영하여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유배형은 원래 고급 관리용으로, 법을 만드는 사람들이 중죄인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기막힌 아이디어이다. 바둑이나 장기에서 사용되는 ‘묘수’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제도이다.’

 

저자가 유배를 규정하며 하는 말이다. 2000년대 우리나라 현실정치에서 보여주는 정치적 배려와도 통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정된 밥그릇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아웅다웅 싸우기는 하지만 그 밥그릇이 통째로 없어지게 될 상황에서는 한목소리로 밥그릇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역사 속에서 정치인이나 지금 현재의 정치인이나 그 밥에 그 나물인 것일까?

 

그렇더라도 때론 목숨을 걸고 왕이나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상대방에게 직언을 했던 모습도 함께 나타난다. 그들이 목숨을 담보로 직언을 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출발하는 것일까? 현대를 살아가는 정치인이나 지식이면 한번쯤 깊게 생각해 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은 책이다 - 시간과 연민, 사랑에 대하여 이동진과 함께 읽는 책들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답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질문

밤을 기다리는 마음에는 밤이 주는 마음의 안정감과 더불어 외부로부터 일정정도 단절되며 얻게 되는 집중력이 아닌가 싶다. 창밖으로 달빛이 스며드는 밤 차 한잔 마련하고 책 한권 손에 들고 있다면 소소한 행복을 느끼기에 충분한 조건이 아닐까? 이러한 운치와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주변에 제법 많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동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 다행이라는 것과 사회적으로는 희망을 찾는 이들이 많아 미래가 그리 암담하지는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의 다름 아닐 것이다.


밤이 주는 그 어떤 느낌을 적절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가장 잘 어울리는 것으로 무엇이 있을까? ‘밤은 책이다’의 저자가 공감하는 바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책에 관한한 쇼핑중독자라고 고백하는 저자는 허영투성이며 고집불통이라는 점을 책을 사랑하는 저자의 방식이라고도 한다. 그런 저자의 책을 사랑하는 방식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나를 포함하여 제법 많을 듯하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밤은 거대한 한 권의 책이라고도 한다. 그가 어둠 한가운데 놓여 있는 밤중에 그와 함께했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놓은 것이 이 책이다.


영화평론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저자의 또 다른 특기는 책읽기인가 보다. ‘밤은 책이다’에 담아 놓은 책은 무려 일흔일곱 권에 이르고 있다. 소설, 시, 인문, 과학, 예술 분야를 포괄하는 다양한 범주의 책들이다. 저자는 이러한 책을 통해 ‘시간과 연민, 사랑에 대하여’이야기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수많은 독서에세이와 다른 점은 욕심내지 않고 저자의 감정을 차분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점이 아닌가 한다. 또 다른 점으로는 대상이 되는 책의 본문을 상당한 부분 옮겨 독자들과 함께 읽어간다는 점이다. 특정한 이야기를 저자와 독자가 함께 공유하고 그 속에서 저자가 펼쳐내는 이야기로 집중하게 만들어 가는 방식이 독특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점은 저자의 감정과 독자의 감정이 만나 공감을 불러오기도 하고 때론 다른 느낌을 전해주기도 하는 것이다.


‘모든 물음이 답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지요. 어쩌면 질문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고통에 직면한 인간이 내뱉은 작은 신음소리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제5도살장(커트 보네거트 지음)을 읽는 저자의 시각은 ‘질문’이 주는 의외의 작용과 효과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살면서 겪게 되는 많은 문제는 질문을 잘못 던질 때 생긴다고 전재하면서 이유가 없는 일에 ‘왜’를 묻거나, ‘왜’를 물어야 할 일에 ‘어떻게’를 질문할 때 문제는 꼬이고 커져만 간다고 한다. 질문의 방향이 잘못되어 고통이 커지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는 점을 도출해 내고 있다. 이처럼 저자는 책에서 얻는 느낌을 자신과 사회를 깊이 들여다보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책을 왜 읽는가? 매번 듣게 되는 질문 중 하나이지만 때론 질문하는 사람도 질문을 받는 사람도 굳이 답을 요구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도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으로 삼아 본다면 책과 더불어 함께하는 시간이 위안이 될 때가 많다는 점이다. 구어체로 서술된 이 책은 상대방과 마주앉아 이야기하듯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어 저자의 감정을 전달하기에 유리한 방식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책이 담고 있는 주제를 독자들에게 강요하듯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강점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지식인의 위선
김연수 지음 / 앨피 / 201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식인의 위선과 역사적 책임을 묻는다

학문의 본질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조선 후기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왕 정조는 배움과 실천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신하들에게 묻는다. 어떤 이는 아는 것을 실천하기가 더 어려우니 실천이 중요하다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올바로 배우지 못해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니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도 했다. 이에 정조는 배우는 것에 방점을 찍으며 학문하는 자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피력했다. 올바로 배우게 된다면 이는 반드시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각으로 본다면 배우는 것이 그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학문의 본질은 실천에 있을 것이다.

 

 

지식인(知識人)이란 어떤 사람을 이르는 말일까? 국어사전에 의하면 지식인이란‘일정한 수준의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 또는 지식층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식인에 대한 좁은 의미만을 담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다. 반면, ‘지식계급에 속하면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규정이 더 적극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지식인을 거론하게 될 때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바로 ‘사회적 임무를 수행하는’에 큰 의미를 두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지식인의 사명이라고 하는 말이 성립되는 것이리라.

 

 

조선의 역사를 살펴볼 때 위와 같은 기준을 적용하여 조선 사회를 이끌었던 사대부를 중심으로 한 지식인층에 부여할 수 있는 사회적 기대가 무엇이고 그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는 일상과 정치적 활동을 했는지를 통해 조선 시대를 이해하는 한 축으로 삼는다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닐까 싶다. 요사이 각광받고 있는 선비에 대한 시각이 다양화 되는 것도 이렇게 지식인층에 속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임무에 대해서 시각을 달리한 평가가 그 주요한 관점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연수가 쓴 ‘조선 지식인의 위선’은 왕권의 나라에서 왕과 대립하거나 협조하면서 조선을 이끌었던 사대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조선을 지탱한 사상인 성리학의 도입과 변화과정, 조선 건국과정이후 훈구세력에 반대하는 정치세력으로 사림이 등장하는 배경 그리고 사림들의 정치적 역할과 붕당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 주목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준경, 이황, 이이, 정철, 기대승 등 성리학의 대가들이 정치일선에서 보여주었던 행적을 통해 당파적 이해관계가 어떻게 작용하고 그 파장이 어떤 정국을 만들었으며 이후 일본의 조선 침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 그들에 대해 한발 나아간 해석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해 준다.

 

 

저자가 주목하는 시대는 선조왕의 시대다. 선조왕은 조선왕조를 이어온 계보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출발했다. 그 근저에 어머니가 후궁이었다는 점이다. 사가에서 태어나 명종 사후 왕위에 오르기까지 왕의 후계수업을 받지 못했고 왕위에 올라서도 대리청정의 기간을 거치는 동안 인순황후와 대신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선조시대를 주목하는 이유로 사림 세력이 정치의 주도권을 차지하면서 조선 역사의 정치권력에서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을 들고 있다. 사림 세력의 확고한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조선을 이끌어 왔던 사상적 핵심인 유교가 선조시대에 이르러 주자학 일변도로 정착되면서 사상적으로 일방통행이 이뤄지고 그 주자학으로 인해 정치가 시비의 문제로 바뀌고 타협과 조정은 실종되었으며 생사를 건 투쟁만 남게 되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었지만, 이를 돌보고 구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은 실종되었던 시대가 바로 선조시대였다는 것이다.

 

 

교과서에 배웠던 조선 유학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이 사라지고 그들이 보여주었던 정치행보의 다른 면을 알게 된다. 무엇이 올바른지에 대한 판단은 일단 미뤄두고서라도 시대를 이끌어간 선각자, 지식인들이었던 사람들이 걸어온 행보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황, 이이, 기대승 등 유학의 큰 어른으로 조선 최고의 선비로 꼽히는 사람들이 살았던 시대가 앞날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한 사회였다는 점 등 상식의 눈으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점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학문은 현실세계와 떨어져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학문은 현실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그 해결책을 내 놓아야 하며 그것이 학문의 기본자세가 될 것이다. 하여, 출발점에서 다시 봐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해 본다. 이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문제와 결부되어 역사를 보는 근본 이유와도 맥을 같이한다는 점을 상기하게 만들어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