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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시간 - 로마 4대 바실리카로 떠나는 시작을 위한 여행
김지환 지음, 전화식 사진 / 고즈윈 / 2011년 12월
평점 :
순례자의 내면과 만나 울림으로 다가오는 바실리카
종교에서의 믿음은 단순하고 절대적이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나는 무신론자에 가깝다. 도무지 그 믿음에 확신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이것은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듯하고 종교적 체험이나 그것도 아니라면 감동이라도 있어야 믿음에 다가가는 계기가 될 듯 싶기도 하다. 종교의 눈으로 본다면 분명 한계를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모든 종교에 열려있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종교는 나에게 남아있는 문화로 다가온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교의 영향으로 수많은 문화재가 불교와 관련이 있다. 그 문화재를 답사하는 과정에서 불교를 접했고 불교문화재를 더 잘 알기위해 교리를 공부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다른 종교 역시 독특한 건축물이 먼저 다가왔다. 성당이나 교회를 비롯하여 종교마다 자기만의 특색을 가지는 건축물에 담긴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이 곧 그 종교와 만나는 지점이었다. 모든 종교 건축물은 나름의 특색이 있기 마련이다. 바로 그 종교가 가지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정서상 조금은 낫선 이야기로의 여행에 동참한다. ‘순례자의 시간’은 로마시대 건축된 바실리카 성전을 순례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실리카(basilica)란 고대 로마제국에서 도시에 세워진 법정, 집회 등에 사용되는 큰 홀 형식의 공공건축을 의미한다. 저자 김지환은 성 베드로 대성전, 성모 마리아 대성전,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전, 성 바오로 대성전을 찾는 순례길에 사진작가 전화식과 동행했다.
가톨릭 신자인 저자와 무신론자인 사진가의 눈에 비친 고대 로마시대 성당들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저자는 혼란스러웠던 일상에서 답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났다. 성지순례라고도 할 이 순례길에 오른 것이다. 순례길은 무엇인가 찾아가는 길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신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인 특별한 장소로 가는 길은 종교적 의미에서는 신과의 만남의 과정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에 순례자의 발걸음은 일반 여행자의 발걸음과는 구별되는 특별함이 있을 것이다.
네 곳의 성당은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에게 신과 만나는 장소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서양사에서 보여주듯 종교는 특정한 시대에는 삶, 권력, 정치 등 이 모든 것에 우선되었다. 한마디로 사람들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막대한 힘을 가졌다는 말이다. 그러한 종교의 막강한 힘이 정치권력에 의해 탄압받고 때론 권력에 붙어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온 과정이 바로 건축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고도 보인다. 물론 이것은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종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벗어난 견해가 될 수 있다.
로마시대의 역사나 이후 중세 역사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이 바실리카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 성당들이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느냐 보다 우선하는 것은 저자가 성당을 방문하며 자신의 내면과의 깊은 대화를 하는 그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적 삶은 결국 인간 내면의 부족한 점을 인식하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성적 가치와도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삶에서 자신을 늘 돌아보는 저자의 글과 바실리카가 내포하는 함축적 의미를 담아내고자 한 사진가의 마음이 모여 하나를 이룬다. 글과 사진이 만나 하나를 만들어 가는 이런 종류의 책은 종종 글이든 사진이든 한쪽으로 치우쳐지는 것이 있다. 글을 쓴 저자의 마음이 사진가의 눈에 담긴 사진 속에 녹아 있다고 본다면 사진만 따라가도 충분할 만큼 사진이 주는 매력이 강하다.
‘대성전의 성화나 성물을 보면 그 시대 예술가들의 깊은 영성이 느껴져요. 수많은 언어와 성징,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하나의 그림 안에 담아 낸 것을 보면......’
거의 모든 종교적 건축물은 화려하다. 그 화려함은 인간의 개인적 욕망을 표출하고자 나타내는 화려함과는 구별된다. 화려함 속에 경건함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전화식의 눈으로 담은 사진들 속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다르지 않다. 이는 사진가의 고백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으며 형태도 없는 존재를 절대자라 믿고 저토록 매달릴 수 있는 간절함은 어떤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에서 느껴지는 그 무엇과도 같은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