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두 번째 이야기 - 마음이 외로운 당신을 위한 따뜻한 위로
A.G 로엠메르스 지음, 김경집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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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돌아온 왕자에게서 찾은 희망은 사랑이다

혼란스러운 세상이다. 앞날에 대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점과 현실이 주는 암담함이 그 주요한 요인이 아닐까 한다. 이러한 현실은 극단적인 두 방향의 길을 제시하기도 한다. 지극히 현실화 되어 물질적인 삶에 치중할 수 있다는 점과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며 옛 시절 훈훈했던 향수를 그리워 한다는 점이다. 이런 사람의 마음은 부활을 꿈꾸곤 한다. 행복했던 지난 시절이나 그 시절을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을 다시 불러와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아가는 힘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 속에 존재했던 숱한 영웅들의 이야기가 주목받게 된다.

 

문학작품은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주기에 적절한 도구로 활용된다. 수많은 영웅전이 그렇고 순수함을 간직했던 주인공들이 그렇다. 그 중 세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향수를 불러오게 만들며 자신의 삶의 순수성을 일깨워 준 주인공이 있다. 어린왕자가 그 주인공이다. 어린왕자는 제2세계대전이라는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피폐해진 사람들의 삶과 마음에 위안을 준 작품이다. 이 작품의 저자 생텍쥐페리는 프랑스 출신의 소설가로 비행기 조종사로도 활동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인간의 대지’, ‘야간 비행’, ‘전투 조종사’ 등이 있다.

 

그 어린왕자가 지구상에 다시 나타났다. 저자 로엠메르스는 사라진 어린왕자를 현실로 불러왔다. 사막을 관통하는 고속도로 위에서 갑자기 만난 어린왕자를 통해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저자는 사람들의 마음이 혼란스럽고 피폐해져 살아갈 희망을 잃어버린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한 것이다. 어린왕자가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남아 오랫동안 친구로 존재한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그런 어린왕자를 불러 온다면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여, 그 어린왕자를 불러온 것이 아닐까 싶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여행길에 저자는 혼자였다. 혼자 여행길에 오른 사람은 자신을 돌아보며 지금 현재의 자신을 마주하는 시간을 갖게 만들어 줄 것이다. 그때 어린왕자가 나타난 것이다. 어린왕자의 두 번째 이야기는 제목에서 연상되듯 어린왕자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내용뿐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형식도 이어간다. 하여 자연스럽게 나와 어린왕자 주고받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어린왕자가 겪었던 비행사나 양, 살던 행성의 잡풀 등에 관련된 이야기 속에서 남아있던 흔적이 이어지며 풀리지 않은 의문을 제기한다. 나름의 인생을 살았던 ‘나’는 어린왕자의 질문에 경험 속에서 얻은 지혜를 바탕으로 살아갈 날들에 대한 희망을 찾아낼 수 있는 혜안을 밝힌다.

 

여행길에서 주고받던 이야기는 ‘나’가 ‘어린왕자’에게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여행길 마지막에 이르러 알게 된다. 삶의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상실감, 혼란스러움, 잃어버린 희망 등으로 지칠 때 한 가닥 온기를 전하며 미소 짓게 한다면 그 순간 어린왕자는 자신의 곁에 머물러 있음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어린왕자의 귀환은 현실을 살아가며 사람들이 잃어버린 순수함과 진실 그리고 사랑 등 인간의 기본적인 감성을 되살리는 임무를 맡기고자 하는 저자의 부름으로 보인다. 추억 속에 존재하는 어린왕자에 대한 동경은 현실의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희망으로 귀결된다고 본다. 지구를 떠난 어린왕자를 다시 불러와야 될 만큼 현실의 무게는 사람들이 감당하기에 버거움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리라.

 

삶은 때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성찰은 솔직한 자신의 내면과의 만남이다. 이 내면의 만남에서 자신만의 어린왕자의 존재를 확인한다면 사랑이 기본인 삶의 희망은 현실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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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보는 중국의 본심 - 이성적 친구 감성적 타인
정덕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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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적 친구, 감성적 타인

이웃나라 중국이 심상치 않다. 역사적으로 한국과 중국은 떨어트려놓고 생각할 수 없는 관계를 맺어왔다. 고대시대에는 대륙의 광활한 영토를 두고 다투기도 했지만 이후 거대 중국과 한국은 상호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여왔다. 일제 침략기에는 한국의 항일운동 중심지가 중국 땅에 있었고 현대에 들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념의 대립 과정에 국교가 단절되기도 했다. 2012년은 한국과 중국의 국교수교 20년을 맞는다.

 

그사이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묘한 흐름이 형성되었다. 한류의 출발점이 중국이었으며 한류는 이제 동남아시아를 비롯하여 전 세계적인 문화현상으로 펴져나갔다. 국제정치에서 밀고 당기기는 외교관계에서 기본원칙일 것이다. 자국의 이익을 더 확보하고 지켜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중국과 한국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수용에서 일찍 성장한 한국의 기술적 우위가 있어 그동안 한중관계는 경제적 분야에서 양자의 이해관계를 충족시켜왔다고 봐도 될 것이다. 이 사이에 정치적 문제에 관해서는 자국의 이익을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대립관계를 보여 온 것도 사실이다.

 

이제 중국은 G2의 위치에 올랐다. 세계의 중심에 서 있는 미국에 의해 부여된 지위다. 중국은 경제대국 일본이 주춤하는 사이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한 이후 꾸준히 성장을 거듭하여 이제는 경제대국으로도 굳건한 자리매김을 한 것이다. 미국, 일본, 중국 등 경제대국 사이에 있는 한국의 미래는 그래서 더 불투명하게 되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강대국들의 각축전에 어떤 외교정책으로 살아남고 성장을 해가야 할지 남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더욱 중요한 지위를 갖는 나라가 중국이다. 경제적으로는 거대한 시장인 중국은 수출 위주의 정책이 중심이 되는 한국의 중요 교역국으로 이미 교역량에서 미국을 넘어섰다. 또한 정치적으로 북핵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동북아 정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날로 그 위위를 높여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천안함 사건이후 중국의 시각은 불편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이 미국과 더 가깝게 지내고 있어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한국정부로써 이 지점이 딜레마가 아닐까 싶다. 역사적, 지리적, 경제적으로도 훨씬 가까운 사이 중국이 한국에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바로 이 시각에 주목하여 현재 중국의 시각을 드러내 놓고 있다. 한류 이후 반한감정이 점차 고조되고 있는 현상이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등으로 일방적인 불편함을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어 보이는 중국의 시각을 따라가 보자.

 

중국은 실사구시적 시각를 바탕으로 현 체제와 국정 상황에서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외교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는 중국만의 외교 전략은 아닐 것이다. 자주외교를 표방하는 모든 나라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여 실리를 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외교를 보면 친 미국외교에 치중하고 있다고 보는 국내외적 시각이 존재한다. 특히 중국은 한국을 미국의 동아시아 전진 캠프쯤으로 여긴다는 점을 눈여겨 봐야할 것이다. 중국이 세계강대국으로 자리를 굳건히 다지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해야할 것인지도 한국과 중국, 한국과 미국 사이의 관계만큼이나 중요한 사항이다. 중국의 속내는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에 중요도를 높여 미국 일방도에서 벗어나길 희망하는 것이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이는 한국과 중국의 외교관계를 대표하는 말이다. 양국정부의 공식적 입장이 그것이라는 말이다. 애매하고 자의적인 해석이 충분히 가능한 이 말이 어쩌면 현실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경제적 이해관계에서는 이성적 친구로 서로의 이익을 지켜나가고 정치적 사안에서는 북한과의 관계가 더 중요한 것이기에 양자를 저울질하며 친구와 타인 사이를 넘나들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세계는 그 중심이동을 하고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세계에서 중국을 중심으로 동양으로 중심이동은 세계판도를 바꾸는 것이기에 각국의 이해관계는 충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중국이 있다면 한국은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 가야할지 방향을 이미 나왔다는 것이다. 저자가 중국의 본심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중국을 대하는 전략적 관점, 현실적 대처방안에 허술한 점이 있다고 본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를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하자는 말이다.

 

중국과 한국, 양국은 다양한 측면에서 서로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필요는 자국의 이해요구에 따라 충돌할 수밖에 없다. 이 충돌지점에서 우리의 태도 여하에 따라 양국의 관계가 우리에게 유리한 측면으로 충분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미래를 함께 열어갈 파트너, 동반자로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깊이 있는 성찰을 불러오게 만드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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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이는 승부사 제갈량 - 승부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삼국지 리더십 2
자오위핑 지음, 박찬철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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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술의 귀재, 제갈량

동남아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한국 드라마를 선두로 이제는 한국 대중음악까지 한류열풍이 대세를 이룬다고 한다. 이러한 한류열풍은 특정한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한국알기로 번지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강했던 과거 역사를 무색하게 만드는 일이 아닌가 싶어 흐뭇한 마음까지 있다. 그렇더라도 한국에서 중국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다. 특히 역사서를 비롯한 한자문화와 관련된 부분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보여 진다. 이는 한국 사람치고 사기나 삼국지 등 중국 역사서를 읽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깊은 관계를 갖는다.

 

삼국지가 한국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전쟁이라는 무대에서 흥미진지하게 펼쳐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선된다고 봐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 , 오의 삼국이 걸출한 영웅들을 앞세워 중원의 패권을 다투던 이야기인 삼국지에서 권력의 정점에 오른 영웅들 사이에서 책사의 임무를 충실히 했던 사람을 꼽으라면 제갈공명을 선두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삼고초려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이기도 한 제갈량은 유비를 도와 천하통일의 대업에 뛰어든 사람이다. 제갈량이 이처럼 주목 받았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두고두고 사람들의 관심 대상이 되는 이유를 찾아낸다면 현대의 조직화된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인재의 상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공간을 찾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고 현장에서 펼쳐야 하는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마음을 움직이는 승부사 제갈량은 권력의 정점에 올랐던 유비의 입장에서 제갈량의 능력을 살피는 것이 아니라 제갈량의 시각에서 최고 권력자의 책사로 활동하는 모습에 주목하고 있다. 중국 국영방송 CCTV의 한 프로그램에서 방영된 강의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이라고 한다. 나이 스물일곱에 중원의 싸움터에 진출하여 강자들을 꺾고 중심으로 등장하는 과정을 살펴 제갈량의 특성을 밝혀나가고 있다. 저자는 제갈량의 특성을 아홉 가지로 선별하고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담았다.

 

저자가 책사로써 제갈량의 특성을 살피는데 있어 주목한 점은 사람을 중심에 두었다. 제갈량의 탁월한 능력의 중심에 조직이나 군사, 행정 등의 물리적인 여타 요소보다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 사람을 얻는 것이 천하를 얻는 것이라고 할 정도로 용인술에 탁월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 점을 중심으로 제갈량 스스로 어떻게 유비의 마음을 사로잡아 발탁되었는지를 시작으로 세를 움직여 연합을 책략하다’, ‘인재를 움직여 조직을 꾸리다’, ‘기강을 다스려 조직을 바로잡다’, ‘자신을 낮추어 신임을 얻다’, ‘조직을 정비해 위기를 관리하다’, ‘엄숙하게 간부를 관리하다’, ‘마음을 다스려 정세를 바로잡다’, ‘혜안으로 인재를 키우다등으로 분류한다. 제목만 봐도 어떤 모습일지 짐작이 되는 내용이다.

 

저자는 책 속에 묶인 제갈량을 현대사회에 적절한 인물형으로 현실화 시켰다.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구체적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하지만, 사건을 중심에 둔 해설이 아니라 그 속에 용인술이 중심이다. 또한 현대 조직사회의 요구에 걸맞게 내용을 준비했기에 현실 속에 살아 숨 쉬는 제갈량을 만날 수 있게 만들었다. 조직 사회에서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발휘하고 인정받을 수 있을까?, 능력과 특성이 다른 조직원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 시킬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와 같은 자신이 처한 조건에 따라 달리 읽힐 수 있는 내용들을 함께 해설해 주고 있어 그 유용성이 배가되고 있다고 보인다.

 

이 책의 특성 중 하나는 역자가 본문에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각 장을 들어가는 초입에 그 장에서 설명하고 있는 강의 내용을 요약하고 독자들로 하여금 어떻게 읽을지 방향제시를 하고 있다. 이는 내용을 이해하는데 직접적인 도움을 준다는 점이다. 더욱 부록에 실린 삼국지 제갈량전은 제갈량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나 익숙하지 않은 사람 모두에게 제갈량에 대한 이해를 돕기에 충분한 자료로 보인다. 이 역시 책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제갈량의 리더십은 용인술이 핵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용인술은 간사한 임기응변식의 술책이 아닌 적재적소에 사람을 쓰는 문제의 본질에 무엇이 있어야 하는지를 알게 한다. 바로 사람을 중심에 두고 그 사람의 마음 크기를 살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 까지를 포함한다. 막연히 자신을 선택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능력 있는 사람임을 포장하고 적극적으로 대안을 마련하여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방향과 구체적 방법을 알게 하는 자기 계발서로 손색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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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필 - 역사와 해학의 글씨를 만나다
김남인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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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감상하듯 글씨와 만나다

손 글씨가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의 개성을 살려주고 나름의 멋을 한껏 살려주는 것이 손 글씨다. 컴퓨터가 일상화 되고 E-mail이나 SNS(Social Networking Service)와 같은 수단이 발달하면서 편지도 사라졌다. 필기도구를 가지고 손으로 글씨를 쓸 수 있는 환경이 변했다는 것이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 정을 이어주는 수단이 없어지는 것 같아 못내 아쉬움이 있다.

 

필적은 사람의 DNA처럼 특수한 성격을 나타낸다고 하는 점을 주목하면서 발간되었던 책이 있다. 강력범죄 전문 검사가 친필 분석을 통해 항일 운동가들의 삶과 관련된 이야기를 담아 놓은 책이 ‘필적은 말한다’(중앙books(중앙북스), 2009)라는 책이다. 십여 년 넘게 전국의 고서점과 미술상을 돌아다니면서 수집한 글씨를 바탕으로 글씨가 곧 사람이라고 하는 것에 주목한다. 필적은 말한다의 저자 구본진은 ‘사람의 성정과 기질이 글씨에 반영되어 있어서, 글씨를 들여다보면 마치 관상을 보듯이 그 사람을 훤히 꿰뚫어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글씨에 주목하는 또 한권의 책을 만난다. 역사와 해학의 글씨를 만나다라는 부제를 단 ‘명필’이 그 책이다. 이 책 저자 역시 전국을 발품 팔아 돌아다녔다. 사찰과 서원, 정자 등 현판과 편액, 주련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간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한학을 배웠다고 한다. 일단, 한자에 익숙한 세대라는 점이 글씨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점은 현대인이 한자를 바탕으로 된 글씨에 접근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에 반해 장점이라는 것이다.

 

한자를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저자는 글씨를 보는 방법에 대해 친절한 안내를 하고 있다. 글씨를 그림처럼 보라고 한다. 한자를 모르면 글씨와 만남에 두려움을 느끼고 친근함이 떨어져 글씨가 주는 맛과 멋을 알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현실을 감안한 방법이다. 예술작품을 감상하듯 자신만의 눈으로 스스로 느껴보는 것이 글씨와 친해지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우리 문화재는 불교와 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 글씨를 이야기 할 때도 마찬가지다. 저자가 사찰 건물의 현판과 편액, 주련 등에 남아있는 글씨들을 찾아가는 이유이기도 한다. 그렇기에 글씨에는 역사와 종교가 공존한다. 삼각산 화계사에서 금정산 범어사까지 사찰을 찾아다니는 저자의 발걸음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대 명필들의 삶과 정치적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부침을 거듭했던 상황을 함께 살펴야 글씨에 담긴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불교라는 종교의 교리를 담고 있는 사찰의 경내를 둘러보는 것도 마찬가지다. 일주문부터 시작하여 대웅전과 산신당까지 건물배치와 각 건물의 의미를 알았을 때 전각의 편액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의 발걸음은 사찰에 머물지 않는다. 이이나 이황, 송시열, 최치원의 흔적이 있는 정자들을 찾고 화양계곡의 돌에 새겨진 글씨를 찾아 나선다.

 

글씨는 개인의 특성을 나타내지만 역사를 담고 있기도 한다. 서체는 그림처럼 유행이 있어 흐름이 있고 당대의 정치와 경제, 생활상이 담겨 있다. 글씨 한 점에 주목하고 그 속에 깃든 예술성과 역사성을 함께 경험한다. 저자는 명필 속에 숨어 있는 역사와 풍류, 해학, 문화, 예술의 세계를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역사전공자가 아니라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적 쟁점이 논란 없이 받아드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이의 십만 양병설을 기존 학설에 의거하여 자세하게 설명하는 부분이다. 우암 송시열의 영향으로 당시의 사료에는 없는 이이의 양병설이 사실화 되고 무게가 실렸다고 보는 시각은 무시된다.

 

저자는 글씨는 세 번 태어난다고 한다. 붓으로 쓴 글씨와 나무판이나 돌에 새긴 글씨 그리고 이것을 볼 때 감상자가 보는 글씨다. 한자가 일상에서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감상자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져 글씨가 갖는 매력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저자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것이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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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시간 - 로마 4대 바실리카로 떠나는 시작을 위한 여행
김지환 지음, 전화식 사진 / 고즈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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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내면과 만나 울림으로 다가오는 바실리카

종교에서의 믿음은 단순하고 절대적이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나는 무신론자에 가깝다. 도무지 그 믿음에 확신이 없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이것은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듯하고 종교적 체험이나 그것도 아니라면 감동이라도 있어야 믿음에 다가가는 계기가 될 듯 싶기도 하다. 종교의 눈으로 본다면 분명 한계를 가진 것으로 보이지만 시각을 달리하면 모든 종교에 열려있다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종교는 나에게 남아있는 문화로 다가온다. 우리나라의 경우 불교의 영향으로 수많은 문화재가 불교와 관련이 있다. 그 문화재를 답사하는 과정에서 불교를 접했고 불교문화재를 더 잘 알기위해 교리를 공부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다른 종교 역시 독특한 건축물이 먼저 다가왔다. 성당이나 교회를 비롯하여 종교마다 자기만의 특색을 가지는 건축물에 담긴 의미를 알아가는 과정이 곧 그 종교와 만나는 지점이었다. 모든 종교 건축물은 나름의 특색이 있기 마련이다. 바로 그 종교가 가지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정서상 조금은 낫선 이야기로의 여행에 동참한다. ‘순례자의 시간’은 로마시대 건축된 바실리카 성전을 순례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실리카(basilica)란 고대 로마제국에서 도시에 세워진 법정, 집회 등에 사용되는 큰 홀 형식의 공공건축을 의미한다. 저자 김지환은 성 베드로 대성전, 성모 마리아 대성전, 라테란의 성 요한 대성전, 성 바오로 대성전을 찾는 순례길에 사진작가 전화식과 동행했다.

 

가톨릭 신자인 저자와 무신론자인 사진가의 눈에 비친 고대 로마시대 성당들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저자는 혼란스러웠던 일상에서 답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났다. 성지순례라고도 할 이 순례길에 오른 것이다. 순례길은 무엇인가 찾아가는 길이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신과 인간이 만나는 지점인 특별한 장소로 가는 길은 종교적 의미에서는 신과의 만남의 과정이겠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과의 만남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기에 순례자의 발걸음은 일반 여행자의 발걸음과는 구별되는 특별함이 있을 것이다.

 

네 곳의 성당은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에게 신과 만나는 장소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서양사에서 보여주듯 종교는 특정한 시대에는 삶, 권력, 정치 등 이 모든 것에 우선되었다. 한마디로 사람들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막대한 힘을 가졌다는 말이다. 그러한 종교의 막강한 힘이 정치권력에 의해 탄압받고 때론 권력에 붙어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온 과정이 바로 건축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고도 보인다. 물론 이것은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종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벗어난 견해가 될 수 있다.

 

로마시대의 역사나 이후 중세 역사에 대해 깊은 이해가 없이 바실리카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 성당들이 역사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느냐 보다 우선하는 것은 저자가 성당을 방문하며 자신의 내면과의 깊은 대화를 하는 그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종교적 삶은 결국 인간 내면의 부족한 점을 인식하고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이성적 가치와도 떨어질 수 없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삶에서 자신을 늘 돌아보는 저자의 글과 바실리카가 내포하는 함축적 의미를 담아내고자 한 사진가의 마음이 모여 하나를 이룬다. 글과 사진이 만나 하나를 만들어 가는 이런 종류의 책은 종종 글이든 사진이든 한쪽으로 치우쳐지는 것이 있다. 글을 쓴 저자의 마음이 사진가의 눈에 담긴 사진 속에 녹아 있다고 본다면 사진만 따라가도 충분할 만큼 사진이 주는 매력이 강하다.

 

‘대성전의 성화나 성물을 보면 그 시대 예술가들의 깊은 영성이 느껴져요. 수많은 언어와 성징,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하나의 그림 안에 담아 낸 것을 보면......’

 

거의 모든 종교적 건축물은 화려하다. 그 화려함은 인간의 개인적 욕망을 표출하고자 나타내는 화려함과는 구별된다. 화려함 속에 경건함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전화식의 눈으로 담은 사진들 속에서 느껴지는 느낌과 다르지 않다. 이는 사진가의 고백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으며 형태도 없는 존재를 절대자라 믿고 저토록 매달릴 수 있는 간절함은 어떤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에서 느껴지는 그 무엇과도 같은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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