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세자 독살사건 - 조선 여 검객 이진의 숨 막히는 진실 게임
이수광 지음 / 산호와진주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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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밝혀져야 할 의문의 죽음

역사에서 가정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에 역사를 가정하게 한다. 그렇다면 왜 지나간 과거에 가정을 하는 것일까? 가정을 세움으로써 아쉬움을 달래며 다가올 미래를 희망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 그 출발이지 않을까 싶다. 근래 들어 이러한 역사에 대한 가정을 자주 하는 것이 문학이 아닌가 싶다. 정통 학문에서는 할 수 없는 것이기에 문학이라는 장르를 통해 못 다한 아쉬움을 담아내고 싶은 것이 사람들의 마음이 아닌가도 싶다.

 

‘나는 조선의 국모다’나 ‘정도전’ 등 다수의 역사소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익숙한 저자 이수광의 신작 ‘소현세자 독살사건’으로 다시 독자들과 만나고 있다. 역사소설은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역사와 만나게 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역사를 보는 또 다른 통로가 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중심은 소현세자(1612~1645)다. 중국의 새로운 강호 청나라가 조선을 침범한 병자호란에서 청나라에 굴복한 비운의 왕이라고 일컬어지는 인조시대의 이야기다.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8여년을 살다가 조선으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이 소현세자의 죽음이 바로 이 작품의 중심이다. 이 죽음이 주목받는 이유는 아버지인 인조와 소현세자 사이가 원만하지 못했다는 점과 소현세자가 볼모로 있었을 때 행적, 인조의 권력욕구, 사체에서 나타나는 증후 등을 들어 정상적인 병사로 볼 수 없는 정황 등이 그것이다.

 

이 소현세자의 죽음이 왕인 인조의 개입으로 벌어졌다는 점을 저자는 주목하면서 여기에 무인들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중심인물은 여인인 이진과 이요환 모두 무술의 달인들이다. 이 지점에서 저자의 상상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 궁궐 내에서 벌어지는 권력의 투쟁과정에 서로 상대편에 선 것 또한 이야기의 흥미를 끌어가는 요소로 작용한다.

 

소현세자가 학질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세자빈 민회빈 강씨는 불안하다. 조정이 돌아가는 모양새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강씨는 정적인 조소용과 더불어 궐내 힘의 역학관계에서 절대적 약세에 있다. 이것이 남편인 소현세자를 비롯하여 자신과 아이들을 지켜내지 못한다. 이 작품은 소현세자가 죽고 나서 이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세력들 간의 움직임을 그려나간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내용전개가 빠르고 여 검객이 등장하는 등 한 편의 무협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독자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맛이 좋다. 하지만, 역사소설이 자칫 범할 수 있는 오류를 발견하게 되는 흠이 있다. 여 검객 이진이 검술을 설명하는 대목에 시대적 배경이 되는 인조보다 훨씬 후대인 정조 때 쓰인 ‘무예도보통지’가 등장하는가 하면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볼모로 있던 기간이 9년과 8년으로 달리 표현되고 있다. 또한 내용에서도 문제점이 노출된다. 정명수에 대한 이야기다. 이진의 부탁으로 이요환에 의해 죽음을 당한 것으로 나오는데 그 후로도 다시 살아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문학의 생명력은 작가의 상상력에 달려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사소설에서는 그 상상력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잘못 묘사된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물론 소설이다라고 하면 면죄부를 가질 수는 있겠지만 작가의 상상력은 역사적 사실에 앞설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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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 돌베개 왕실문화총서 3
심재우 외 지음 / 돌베개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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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회를 바라보는 한 통로, 왕

인간에게 권력 욕구는 무한한 것일까? 살아있는 생명체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목숨이지만 권력은 때론 이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경우를 빈번하게 접한다. 그만큼 권력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권력의 최고 정점은 민주제에서는 대통령이며 왕조 국가에서 왕이다. 무수한 사람들이 그 정점을 향해 뛰어들었지만 성공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권력은 다수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조선을 사대부의 나라였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여기서 사대부의 나라였다는 점은 왕조 국가에서 왕고 더불어 권력의 한 축을 사대부들이 차지하고 있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 권력의 한 축이었던 사대부들에 관한 연구는 많은 책들을 통해 접했지만 다른 한 축이었던 왕에 대한 접근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권력의 최고 정점에 있었기에 그만큼 베일에 가려진 부분이 많았을 것이고 ‘왕’이라고 하는 단어가 주는 카리스마에 의해 지래짐작하는 것이 사실상 전부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나마 왕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은 대부분 나라의 정책을 좌지우지 하는 공적인 측면에 치우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렇게 왕을 이해하는 것으로는 뭔가 부족함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연구진들이 모여 연구한 결과를 엮은 책이다. 한마디로 왕과 관련된 모든 것을 살피고 간추려 권력의 최고 정점에서의 왕으로부터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해 망라한 연구 결과의 총화라고도 볼 수 있다. 왕은 곧 국가라고 보았던 측면에서 왕의 존재와 존재방식 그리고 그들이 일상적인 삶의 모습을 통해 구중궁궐 속 왕의 진면목을 살피기에 아주 적절한 텍스트로 여겨진다.

 

‘조선의 왕실과 궁중문화는 유교 통치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핵심이며,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의 중심축이었다.’고 평가는 왕과 궁중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것은 절름발이 식으로 조선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말로 들린다. 이 점이 왕을 주목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 책에서 왕에 대해 살피는 것에는 ‘왕의 권위와 역할’, ‘국왕의 하루 엿보기’, ‘왕의 사생활’, ‘한시漢詩로 보는 국왕의 문학’, ‘국왕의 건강관리’ 등으로 구분하여 접근하고 있다. 이는 조선의 공식적인 기록물인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를 바탕으로 왕이 남긴 여타의 기록물을 통해 조선 왕의 일상생활로 안내하고 있는 것이다.

 

유교를 국시로 하는 조선사회에서 왕은 온전히 권력을 향유하는 존재만은 아니었다는 점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권력의 정점에 오르는 순간부터 왕은 수많은 의무를 다해야 하는 존재다. 유교의 가르침에 의해 올바른 군주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점에서 누구보다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했으며 관료의 임명에서도 절차에 따라야 하고 천재지변에도 책임을 져야 함과 동시에 백성을 위해서 끊임없이 민정을 살펴야 했다. 또한, 대부분의 왕들은 은밀한 사생활까지 정해진 법규에 따라 간섭을 받아야 했다.

 

국가의 상징, 최고의 권력자로써의 왕에 대한 단순한 이미지를 넘어 유교국가에서 왕의 존재근거와 방식 그리고 삶에 관한 전반적인 부분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묘호가 정해지는 과정, 관료 임명에 거쳐야 하는 수순, 경연을 통한 공부, 먹고 입는 문제에서 잠자리 등의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일반적인 설명에서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설명해 주는 것이 독자들로 하여금 단순한 부분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사람들은 가끔 왕으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 하지만 왕은 그리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없을 것 같다. 이 책을 읽어가는 동안 왕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삶인지를 알아가는 과정과도 같다. 권력에는 책임과 의무가 반드시 수반됨을 왕도 비켜가지 못한 것이다. 이는 오늘날 권력을 향해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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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활용 긍정 사전
장 피에르 마뉴.뤽 테시에르 도르푀유 지음, 이세진 옮김 / 부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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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에 담긴 긍정성을 찾아서

삶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미지의 세계다. 비슷비슷한 일상의 연속이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현재를 어떻게 꾸려가는 가에 따라 많은 차이를 나타내게 된다. 하여, 일상을 돌아보며 미래를 예측 가능한 요인들로 채워가고 싶어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러한 자기계발 방법들이 제시되었지만 어느 것 하나 자신에게 딱 맞는 방법을 찾아내기 쉽지 않다. 이럴 때 내가 사용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생각을 바꿔보는 것이다.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때 의외로 쉽게 문제를 해결한 방법을 찾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는 일상에서 사용하는 단어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에 의해 사용되며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게 되었다. 이럴 때 우선 그 말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살피고 자신이 처한 조건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또한 그런 말들 속에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 말고도 다른 의미로도 사용가능한 것들이 많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런 시각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담고 있는 것이 지금 살피는 ‘일상 활용 긍정 사전’이다.

 

‘일상 활용 긍정 사전’은 사전은 사전이되 일반적인 사전의 의미와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사전이라고 하면 ‘어떤 범위 안에서 쓰이는 낱말을 모아서 일정한 순서로 배열하여 싣고 그 각각의 발음, 의미, 어원, 용법 따위를 해설한 책’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일상 활용 긍정 사전’은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로 해석하지 않고 있다. 단어가 사용되는 일상에서의 의미를 넘어 때론 전혀 다른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도 함께 담고 있다.

 

결과 - 끝까지 가야 얻는 것, 개선 - 내 마음의 책상 정리, 기다리다 - 기다림은 약속을 믿는 행위, 돈 - 돈의 사용처가 나를 말한다, 미덕 - 참된 아름다움 갖추기, 미래 - 오늘은 남은 생의 첫날, 보편 - 너와 내가 믿는 것, 쏘다니다 - 모든 것에 열려 있는 사람, 이제 - 과거를 매듭짓는 말, 주다 - 기대하지 않고 베풀기, 행복 - 자신과 잘 지내는 것, 휴식 - 더 달리고 싶을 때가 쉴 때, 휴가 - 시계를 보지 않는 시간

 

일상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환경을 표현하는 용어를 선정하고 이를 일정한 순서로 묶었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에서 시각을 달리한 방법으로 자신의 기분과 생각을 바꿀 수 있게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단어를 통해 자신을 잘 이해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기발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게 한다. 한 단어에 한 장을 할애하여 유명한 문학작품이나 사람들의 이야기로 정리하여 그 뜻을 전하고 명언이라고 할 수 있는 말들을 통해 자신의 일상과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있다. 또한 마지막에는 일상활용법을 담아 구체적인 적용방법을 제시해 준다.

 

흔히 사용하는 단어를 통해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는 것, 시각을 바꾸어 긍정적인 마인드로 전환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이를 자기계발로 이어지게 만들어 주는 기획이 돋보이는 책이다. 단어 속에 무한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자신을 성찰 할 수 있고 또 삶을 긍정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운 시각이다. 늘 곁에 두고 순서에 관계없이 펼쳐 보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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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말이 있다 샘깊은 오늘고전 13
이경혜 지음, 정정엽 그림, 허균 원작 / 알마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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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인간 허균의 속내로 다가가다

조선의 역사에서 비극적인 삶을 살다간 사람을 찾으려 한다면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위로는 왕으로부터 일반 백성 그리고 노비에 이르기까지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억울하다는 죽음은 대개 시간이 흘러 상황이 바뀌면 그 억울함이 풀리기도 한다. 억울함이란 때론 상황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임을 당하곤 난 후 아주 오랫동안 거론조차 금기시된 사람이 있다. 조광조나 허균이 그런 사람들에 포함된다.

 

허균(許筠, 1569~1618)은 우리에게 홍길동전의 저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동생으로도 허난설헌의 시집을 간행하게도 했다. 양천 허씨로 당대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과거에 장원급제하고 관직에 나아가 벼슬을 하였으나 세 번의 파직과 광해군 때인 1618년 역모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처형을 당했다. 관직생활 중 중국에 원접사 종사관으로 다섯 번이나 다녀왔다. 그는 무엇보다 시문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으며 당시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자유스러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가 남긴 작품으로는 ‘교산시화’, ‘성소부부고’, ‘성수시화’, ‘학산초담’, ‘도문대작’, ‘한년참기’, ‘한정록’ 등이 있다.

 

사람을 보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것도 자연인이 아닌 정치적 삶을 살다간 사람은 더욱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허균에 대한 시각은 대부분 정치인으로써 허균의 활동과 그의 문학에 집중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 ‘할 말이 있다’는 시인으로 그가 남긴 시를 통해 한 인간인 허균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이다. 책의 제목은 그가 형장에 끌려갈 때 할 말이 있다고 외친 기록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을 결국 하지 못하고 죽었다. 그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저자는 허균이 남긴 시를 통해 그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찾아간다. 허균이 살았던 조선 중기의 시대상황에서는 용납되지 않았던 그의 자유분방함은 사대부들의 질시와 탄압에 의해 좌절을 겪게 된다. 또한 일찍 부모를 여의고 형의 보살핌 속에서 살다 형과 누나마저 떠나고 일본의 침략에 의한 전쟁과정에서 부인마저 잃게 되면서 심리적인 좌절을 겪게 된다. 이런 상황이 허균의 성격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짐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으로 당시로써는 선진적인 사고와 개혁적 성향을 보여주며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펼치며 행동으로 옮겨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저자가 선택한 시를 다섯 분야로 나누고 각 시를 통해 시가 담고 있는 허균의 마을을 유추해 보는 형식을 취했다. 좌절된 자신의 삶의 모습이 반영되는 것들이 많으며 해학과 풍자적인 시와 당시 궁궐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시들도 있다. 사대부들의 시각에 의해 유교사상과 배치되는 모습을 보였던 허균이지만 그러한 사대부들의 시각에 대해서 변명하거나 피해가지 않고 정면 승부를 펼치는 모습이다. ‘너희가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나는 내 삶을 살아갈 것이다.’ 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싶다.

 

명문 사대부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서얼들과 어울리며 평등의 세상을 꿈꾼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시대적 규범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스러운 행동, 자신에게 닥친 시련에 정면 대결을 하는 모습, 일찍 천주학을 받아들이는 등 그의 삶은 이해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 오늘날까지도 명쾌하게 설명되지 못한 부분들이 많다. 그 중심에 허균을 죽음으로 몰아간 역모 사건에 어떤 관련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모함인지 적극적인 허균의 행동인지에 대해 설명되지 못하는 것이 그의 삶을 평가하는데 해결되어야 할 부분이다.

 

이 책은 그런 정치인으로써 허균의 삶보다는 시 속에 담겨 있는 인간적인 모습에 주목하여 ‘인간 허균’의 참 모습에 접근하려는 저자의 시각이 중심이기에 죽음의 현장에서 할 말이 있다고 외친 그의 말이 무엇인지 유추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더라도 인간 허균의 모습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그가 남긴 작품이기에 이 책을 통해 허균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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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다, 내 인생 - 이 시대 최고 명사 30人과 함께 하는 한 끼 식사
신정선 지음 / 예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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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은 삶의 특별한 기억이다

사람에게 기억되는 것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한 시간일까? 모든 것은 바로 기억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누구를 그리워하는 것도 입맛을 사로잡았던 음식도 그 기억이 있어 추억할 수 있고 추억은 곧 삶의 원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라는 점을 나이 들어가면서 더욱더 깊이 알게 된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좋아하지 않는 사람, 맛에 목숨 건 사람, 관심 없는 사람 중 나는 어디에 속할까? 겉으로 보기에는 관심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나에게도 기억하나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을 무료하게 보내던 어느 날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바닷가 친척집을 찾아가는 기차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때는 먹을 것이 풍부하지 못한 시절이기에 마땅한 간식거리도 없었다. 처음타보는 기차와 집을 떠나 어딘가에 가고 있다는 설렘으로 들뜬 내 손에 쥐어준 삶은 계란과 사이다 한 병은 아버지를 떠올리면 자동으로 함께 생각나는 것이다. 삶은 계란이 어떤 맛이었는지 보다는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기에 특별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서른 명의 각기 다른 기억들이 있다. 그 기억의 중심에 음식 한 가지를 둘러싼 추억과 더불어 지금 자신을 있게 한 그 무엇이 동시에 어울리는 모습이다. 일간지 신문에 ‘내 인생의 맛’을 연재하던 기자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만의 특별한 맛, 기억을 찾아 나섰다. 사회 각 분야별로 알만 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맛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기반으로 엮은 책이 ‘맛있다, 내 인생’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라고 평가받는 사람들에겐 맛에 대한 어떤 기억이 존재할까? 책을 읽지 않고 책 이야기를 하거나 영화를 보지 않고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없는 것처럼 맛에 대한 이야기는 음식을 먹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여, 저자는 그들의 기억을 사로잡고 삶의 한 때를 추억할 수 있는 음식과 마주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꺼낸다.

 

이순재와 비빔냉면, 신경숙과 깻잎장아찌, 이승철과 간장게장, 에드워드권과 순댓국, 김대우와 초밥, 윤대녕과 고등어회, 패티김과 물냉면, 배병우와 민어찜, 김수영과 좁쌀미음, 황주리와 짜장면, 강수진과 양념갈비, 박찬일과 우동, 이원복과 돈가스, 하성란과 콩국, 이지나와 낙지볶음, 배한성과 인절미, 서상호와 물회, 이진우와 볼락구이, 진태옥과 잔치국수, 문훈숙과 오믈렛, 이왈종과 복맑은탕, 장석주와 호박젓국, 조태권과 홍계탕, 이희와 막회, 승효상과 김치죽, 전무송과 라면, 정끝별과 팥칼국수, 안효주와 핫도그, 김윤영과 만두, 조은과 수수부꾸미

 

생애 잊을 수 없는 맛이라는 코드에 제법 잘 어울리는 조합도 있고 이 사람과 이 음식이 과연 어울리기나 할까?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조합도 보인다. 이런 느낌은 유명인들에 대해 생긴 이미지가 크게 부각되어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수많은 음식이 있고 그 음식들에 대해 느끼는 맛에 대한 감각도 천차만별이기에 같은 음식에 대한 느낌도 각기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욱 삶의 한 순간에 특별한 사건과 밀접한 관계를 이룬 맛에 대한 기억이기에 더 그럴 것이다. 서른 명의 맛에 대한 기억은 맛 자체에 머물러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삶의 추억과 동일시되는 맛에 대한 기억은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 훌륭한 매개로 남는다.

 

맛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다는 것은 어쩜 삶을 추억하는 매개가 없다보고 여겨진다. ‘맛이 아니라, 삶과 추억’을 나누고 싶었다는 저자의 소망이 실현되는 순간이 아닌가 싶다. 서른 명의 사람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삶의 진한 맛을 추억하는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맛은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기에 그런 기억을 가진 사람들의 삶은 특별한 삶이었으리라. 나 역시 맛에 대한 기억이 아니라 그 속에 녹아 있는 삶에 대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는 나만의 특별한 삶을 추구해 갈 희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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