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문장을 따라가다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두 세줄 사이를 계속 오가지만 아무 의미도 읽어낼 수가 없다. 더운 여름이라 베란다 문은 열려있고, 한 시간째 아파트 옆 동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고성 소리에 불안해서 집중을 할 수가 없다. 음악을 틀거나 이어폰을 끼고 책을 읽어도 좋지만 들려오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아서 온 신경이 그리로만 향한다. 결국 불안한 마음에 창가로 가서 내다보고 귀를 기울인다. 광기에 가까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여중생 정도로 들린다. 저러다 쓰러지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악을 쓰는데 그 목소리의 내용은 ‘왜’와 10대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욕설이다. 물건을 집어던지는 소리와 악을 쓰는 소리 사이에 간간히 섞여서 어른의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겠지.
상황을 잘 모르는 입장이지만, 고성소리가 2시간가량 지속되면서 그 소리에 담겨있는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옆에서 보고 있는 부모의 심정이 어떨까하는 생각에 저절로 한 숨이 나왔다. 어쩌다 한 사람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한 사람은 그저 말리는 것 밖에 하지 못하는 상황을 맞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우울하기까지 했다. 두 사람의 불안과 고통을 상상하게 되었다.
이제 그들의 상황을 떠나 우리 시대 아이들의 불안과 공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학교에 적응 못하고, 게임 중독에 빠지고, 야단치는 어른들의 말에 귀를 닫는 아이들. 세상은 이 아이들을 부적응이라고 규정짓고 벌써부터 실패한 사람으로 낙인을 찍는다. 자신의 미래는 없는 것처럼 보이고 지금 빠져있는 상황에서는 점점 헤어 나오기 힘든 아이들. 그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조차 배우지 못한 상황에서 아이들은 불안함에 휩싸이게 된다. 실제로 게임 중독에 빠져 물건을 부수고 미친 듯이 날뛰던 아이에 대해 이야기하던 엄마를 기억한다. 그 아이를 사로 잡았던 감정은 불안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아는데, 끊을 수 없고 그런 자신이 실패한 것 같아서 불안함에 몸부림을 치는 것이다. 괜찮다고, 늦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무서울 것이다. 맘먹은 대로 안되는 단계를 넘어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
나도 부모의 입장이라 이런 자식을 바라보고 있는 부모는 얼마나 지옥 같을까를 생각하며 마음이 내려앉는다. 속마음을 알고 싶고 차근차근 이야기를 듣고 싶어도 그들 사이에 언어가 없다. 말을 해도 알아들을 수 없는 단절된 언어가 되어 버렸다. 자신이 속한 세계의 언어로 하고 있어서 그것은 알아들을 수 없는 이방의 언어가 된 것이다.
소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움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다.
수천만 년 말을 가두어 두고
그저 끔벅거리고만 있는
오, 저렇게도 순하고 동그란 감옥이여.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
소는 여러 번 씹었던 풀줄기를 배에서 꺼내어
다시 씹어 짓이기고 삼켰다간 또 꺼내어 짓이긴다.
- <소> 김기택 시집
김기택 시인에게 소는 시의 소재로서 관찰의 대상이었다. 그는 ‘소’라는 제목으로 여러 개의 시를 썼다. 어느 날 시인이 소의 눈을 마주하면서 소는 하나의 관찰의 대상이 아닌 말을 하는 주체로서 다가왔다. 그런데 소에게는 시인에게 전달할 언어가 없고 시인에게는 들을 귀가 없다. 결국,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앉는다. 하고 싶은 말을 가득 담은 눈, 그래서 눈물이 떨어질 듯 그렁그렁 하다. 그 그렁그렁한 눈은 말하기를 체념한 것으로 보인다. 침묵하고 되새김질만 하면서.
소의 눈을 가진 아이들. 말을 하고 싶은데 들을 귀가 없는 우리 앞에서 질문과 요청 분노 항변을 가득 담은 아이들의 눈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게 오랜 시간 말하지 않고 듣지 못해서 소통은 단절되고, 언어가 사라진 것이다.
비록 그럴지라도 때로는 상황에 맞지 않는 감정과 말들이 쏟아져 나오고 분절된 단어들일지라도 소리를 냈으면 좋겠다. 두 사람 사이의 언어가 생길 때까지...
제발 내가 들었던 소음이 그런 시작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