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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2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3년 9월
평점 :
제목 坊っちゃん은 도련님이라는 뜻도 있지만 철부지라는 의미도 있다. 철부지에서 도련님이 되기까지, 유년기를 벗어나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훌륭한 성품을 발견해주고 키워주는 한 사람의 역할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누구에게나 존경할 만한 성품은 있다. 그에 대한 호의와 아름다운 면(성품)을 보려고 하는 수고가 빛나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 이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앞뒤 가리지 않는 성격 때문에 어렸을 때부터 나는 손해만 봐왔다.”로 ‘나’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아버지는 ‘나’를 귀여워해주지 않았다. 볼 때 마다 “어차피 제대로 되긴 틀렸어”(17p)하고 말했고, 어머니 역시 “앞뒤 생각 없이 굴어 앞날이 걱정이라고”(17p) 하며 걱정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나’를 변호해주던 어머니 대신 ‘기요’가 감싸준다. 그녀는 원래 지체 있는 가문 사람이었으나 막부가 와해되고 가문이 영락하여 하녀로 살아 온 할멈이다. “도련님은 올곧고 고운 성품을 지녔어요.”(19p)라고 ‘나’ 칭찬해 주곤 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를 더욱더 애지중지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과 헤어져 홀로 살고 있는 ‘나’를 찾아와 살펴주곤 했다. 특별히 무엇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던 ‘나’는 충동적으로 물리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한 후 시골에 있는 중학교 수학교사로 간다. 이것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충동적인 성격 때문에 하게 된 실수라고 말한다.
‘기요’와 이별하고, 어촌에 도착한 ‘나’는 도쿄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의 말투와 행동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다. 좁은 시골에서 그의 행동은 두드러지고 금방 소문이 나서 마음이 편치 않다. 하숙집 주인, 학교에서 만난 교장(너구리), 교감(빨간셔츠), 교사들(산미치광이, 끝물호박, 알랑쇠 등) 여러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며 충돌한다. 사람들과 불편한 관계를 겪으며 ‘기요’를 기억한다. 교감의 불의에 항의하다가 폭력적인 보복을 당한 후, 산도깨비와 ‘나’는 교감에게 복수를 한 뒤 미련 없이 그 곳을 떠난다. 그리고 도쿄로 돌아와 ‘기요’와 해후한다.
‘기요’는 ‘나’에게 어떤 존재일까? ‘기요’는 따뜻한 할머니와 어머니 같은 존재이다. ‘나’에 대한 ‘기요’의 헌신은 처음에 연민으로 시작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불쌍해서 보듬어주고, 보듬어주다 보니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다 보니 좋은 성품이 보인다. 그렇게 ‘나’가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격려를 해주었고, ‘나’의 앞뒤 안 가리고 행동하는 성격 뒤에 올곧고 고운 성품이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 낯선 시골에서 ‘나’는 ‘기요’가 했던 말들과 친절과 사랑을 그리워한다. ‘나’의 기억 속에 인간됨과 도리의 기준을 심어 준 존재이다. “사람은 이해타산이 아니라 상대방의 따뜻한 마음씨에 감동해서 움직인다고 한다.”(25p 『나쓰메 소세키-인생의 이야기』)
“나는 도저히 견딜 재간이 없다. 그런 생각을 하니 기요가 우러러보였다. 교육도 받지 못했고 신분도 낮은 할멈이지만, 인간으로서는 굉장히 고귀한 사람이다. 지금까지 그토록 신세를 졌으면서도 별로 고맙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렇게 혼자 먼 곳에 와서 보니 비로소 그 친절함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 기요는 나에게 욕심도 없고 올곧은 성품이라면 칭찬했지만, 칭찬받는 나보다 칭찬하는 본인이 더 훌륭한 사람이다. 어쩐지 기요가 보고 싶어졌다.” (58p)
‘기요’와 이별하던 도쿄의 기차역 풍경은 『도련님』을 기억하게 하는 이미지가 되었다.
“나란히 인력거로 역에 도착하여 플랫폼으로 나갔을 때 기요는 기차에 오른 내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나직한 소리로 말했다.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부디 몸조심하세요.”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하마터면 울 뻔했다. 기차가 어느 정도 움직이고 나서, 이제 괜찮겠지. 하고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기요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쩐지 무척 작아 보였다.” (27p)
멀어져가는 ‘기요’가 서있는 기차역 풍경은 ‘나’의 유년기와의 결별을 의미한다. 이제까지 ‘기요’의 보살핌과 따뜻한 말 속에서 외로움과 상처를 달랠 수 있었던 ‘나’는 홀로 세상을 향하고 있다. 이제 자신의 좌충우돌하는 성격을 변호해주거나 곁에서 무조건 지지해주는 사람 없이 살아야 한다. 유년기를 벗어나 한사람의 성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나’의 인생을 가르는 종점과 시점이다.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지만, 이 장면은 주인의 아들과 하녀라는 신분관계를 포함하고 있는 봉건적인 시대와 결별함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작은 어촌의 중학교에 부임해 살면서 ‘나’는 사람들과 좌충우돌 부딪친다. 그의 눈에 이 마을의 사람들은 무식하고, 학생들은 예의가 없다. 처음부터 맘에 들지 않은 교직원은 아첨쟁이에 교묘한 말솜씨만 가진 기회주의자이다. 첫인상이 좋았던 교사는 자신과 사이가 좋지 않다.
“알랑쇠가 정말 싫다. 그런 놈은 단무지 누름돌에 매달아 바다 밑에 가라앉혀버리는 것이 일본을 위하는 길이다. 빨간 셔츠는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건 타고난 목소리를 일부러 그렇게 나긋나긋하게 꾸며내는 목소리일 것이다. 아무리 꾸민다고 해도 그 상판으로는 어림없다.……세상은 참 묘하다. 주는 것 없이 미운 놈이 친절하고, 마음 맞는 친구가 나쁜 놈이라니 사람을 완전히 바보로 만들고 있다.……하지만 산미치광이가 학생들을 선동한다니, 그런 장난을 칠 것 같지는 않은데.”
(79p)
‘나’는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고 배워왔던 독자는 이 생각에 문제의식을 갖게 된다. 그런데 끝까지 읽게 되면 그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이 밝혀진다. 사실, 일반적으로 우리 삶에서도 자주 겪는 현상이다. 이런 판단이 대부분 적중함을 경험한다. 이 직관을 사용하여 우리의 호불호를 따라 함께 할 사람을 자연스럽게 결정한다. 사람에 대한 첫인상이나 이런 판단이 맞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리에게 직관이란 능력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그 사람의 태도, 말, 행동, 습관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충분히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스스로에게 적용하면 두려운 일이다.
‘나’는 이렇게 사람들과 부딪치고 어려움을 겪으며 다른 사람을 헤아리는 마음을 갖게 되고 성장하는 한편, 자신 안에 있는 자존감은 전혀 손상되지 않는다. 여전히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 그의 성장은 ‘기요’가 보여준 인감됨에 대한 모범을 기억했기 때문이고, 자존감을 잃지 않은 것은 ‘기요’의 사랑과 격려 때문이다.
교감에게 폭력으로 복수하는 결말에 통쾌하기도 하고,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 안에서 작가에게 요구되는 윤리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해가 된다. 법의 범위를 벗어난 일탈이지만, 권선징악이 있다면 허용된다는 것이다. 법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교묘히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응징하는 ‘나’의 정의감이 독자를 설득하고 있다.
‘나’는 섬을 떠나 ‘기요’가 있는 도쿄로 돌아간다. ‘나’는 여전히 타고난 천성을 버리지 않았고, 불완전한 모습이지만 성인이다. 눈물어린 해후와 떠나지 않겠다는 약속은 마음을 적신다. 이제 ‘나’는 ‘기요’의 호의를 받는 사람이 아니라 베푸는 사람이 되었다. ‘기요’의 마지막 소원대로 ‘나’의 가족묘에 묻어준다.
나쓰메 소세키는 도련님이라는 인물은 어느 정도까지는 사랑스럽고 동정할 만한 인물이기는 만, 지나치게 단순하고 너무나 세상경험이 부족해서 원만하게 살아가기 힘든 사람이라고 느낀다면 작가의 인생관이 독자에게 가닿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하지만 다들 영리해지고 싶은 마음에 복잡한 사람만 훌륭하다고 여기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보통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의 인물을 그려 내어, 이런 사람도 주의 깊게 보시라, 당신들이 현실 세계에 살면서 콧방귀를 뀌며 무시할 도련님 같은 사람도 꽤나 존경할 만한 자질을 갖고 있지 않은가, 당신들의 눈은 너무 편협하지 않은가, 하고 주의를 환기시키고 또 거기에 독자들이 과연 그렇구나, 하고 동의할 수 있도록 쓸 수 있다면 작가는 지금 현재 보통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인생관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친것입니다.”(143p 『나쓰메 소세키-인생의 이야기』)
결국, 내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눈과 마음이 얼마나 편협한가, 넓은가에 달렸다는 생각이 든다. 타인을 판단하게 되는 직관이 정확하게 작용한다 할지라도 그 직관은 나의 편리에 의한 것이고, 작가의 말처럼 주의 깊게 들려다보는 수고를 하지 않으려는 고집스러움에 대해 부인할 수가 없다. 타인에게서 존경할 만한 자질을 찾아내는 수고를 지속한다면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지는 염려할 것이 없다. 그 수고가 우리를 충분히 아름답게 할 테니까. 이 수고는 호의에서 시작된다.
“나는 호의가 메마른 사회에 존재하는 나 자신이 너무나 어색하게 느껴졌다.”
(87p 「생각나는 것들」『나쓰메 소세키-인생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