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9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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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열고 들어갈 용기가 없는데 문을 통과해야 하는 모순. 결국 문밖에 서 있어야 할 운명으로 여기고... 어떤 새로운 일도, 욕심도 없이, 절간처럼 살아가는 이유는 욕망에 휩싸였던 문앞에서의 기억, 거역했던 도덕에 대한 죄책감. 우리는 자주 과거의 일에 사로잡혀 있고, 바로 잡을 용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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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9-14 15:5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래이스님 글 읽으니 뜨끔 ㅠㅠ

그레이스 2021-09-14 16:14   좋아요 4 | URL
^^

새파랑 2021-09-14 16:1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100자평이 시적이네요. 소세키가 쓴 느낌이 나요 💯

그레이스 2021-09-14 16:28   좋아요 4 | URL
감솨합니다 ~! 100점^^

붕붕툐툐 2021-09-14 23: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과거에 사로잡히는 일을 안하려고 하는데, 쉽지 않네요~ ‘문‘ 궁금해지네요😊

그레이스 2021-09-15 08:12   좋아요 2 | URL
그런 일을 안 할수는 없는것 같아요.
자유로울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죠.^^
제 생각엔 사죄와 용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자신에게도.

2021-09-15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15 08: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두 개의 사진이 있다. 뇌리에 박혀 오랫동안 가슴아프게 했던 사진 중 하나는 첫 페이지에 나오는 어린 남자아이의 사진이다. “1934년 독일 청소년의 날에 포츠담에서 찍은 나치 돌격대 제복을 입은 한 꼬마가 나치식 경례를 하고 있는 모습”(7p)이다


두 번째 사진은 막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16세의 히틀러 청소년단 단원의 사진이다. 1945년 초 라인 강에서 미군에 포로가 되었다. 두 사진 간의 시간의 차이는 11년, 어쩌면 저 아이가 이렇게 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많은 히틀러 청소년단 단원들은 포로가 된 데 대해 갈등을 느꼈다. 끝까지 싸우고, 포로가 되느니 죽음을 선택해야 한다고 교육받아 왔다. 하지만 전쟁의 패배가 돌이킬 수 없다는 점을 깨달은 많은 청소년단 단원들은 전쟁 포로수용소가 제공하는 안전과 온기, 배급을 갈망하기도 했다”(170p)고 한다.

다음 장의 제목은 나는 그저 울 수밖에!” 


이 책은 히틀러청소년단(히틀러유겐트 Hitlerjugend. 히틀러가 청소년들에게 나치당의 신조를 가르치고 훈련하기 위하여 만든 조직-옮긴이) 에 가입했던 소년소녀들의 이야기이다. 1926년 공식 출범한 히틀러청소년단은 독일의 미래를 약속하며, 청소년들을 끌어들이고, 나치당에 대한 열성과 충성심을 끌어낸다. 가입한 청소년들은 우수한 혈통을 입증하는 것으로, 가입하지 못한 아이들은 반대하는 부모를 고발하거나, 자신의 의사만으로 가입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 소년단 아이들은 소집되어 집단생활과 캠프를 통해 강한 정신을 키우는 교육과 혹독한 신체훈련과 군사훈련을 받는다. 유태인과 나치에 비판적인 사람들을(부모들조차도) 색출하고 고발하고, 나치를 선전하는데 앞장선다. 10대에 가입했던 아이들 중 성적이 뛰어난 아이들은 친위대가 되어 히틀러의 비밀경찰과 포로수용소에서 인종청소를 하는 최전선에 서게 된다. 그들의 인종청소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유태인과 집시들을 대상으로 했었다. 하지만 그 칼날은 독일인 사회 내부로 겨눠지고 장애인도 그 대상이 되었다.

8만 여명에 이른 이 히틀러청소년단원들은 1938년 뉘른베르크에서 나치당의 고위급 인사, 나치 돌격대, 노동 감시단과 함께 거리를 행진한다. 전쟁을 다짐하는 행진이었다. 자랑스러운 일이었고 그들은 더욱 히틀러에 열광한다. 전쟁의 최전선에서 게르만족의 위대함과 히틀러를 위해 싸우던 아이들, 어려서부터 오로지 삶의 목표를 세뇌 당했던 아이들은 전장에서 목숨을 바쳤다. 독일이 패전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들은 폐허가 된 곳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포로가 되어 그들이 저지른 범죄를 영상으로 보며, 자신들의 실체를 확인하면 괴로워한다. 일부는 아직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얼굴을 하고 있다.


 

히틀러의 아이들에 수록된 사진 중에 유사한 모습을 학교사로 읽는 일본근현대사라는 책에서 보았다. 일본패망소식에 엎드려 울고 있는 아이의 사진이다.


“1872(메이지5) 메이지 정부는 학제를 발포하여 근대적 학교제도를 발족시켰다.”(159p)

근대 교육제도와 학교의 모습은 근대 국가의 국민만들기의 일환이었다. 이 책에는 일본이 근대 교육을 위해 만든 학교 건물, 학생모집, 교육의 의무화 과정, 급식, 교복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수업시작 신호, 수업 시작 전 차렷, 경례구호등에 대한 상세한 기록도 보여준다. 그 안에 담겨 있는 군국주의의 정신을 보게 된다. “학생복이 교복이 되는 계기는 중학교에 병대식(兵隊式) 체조가 도입되어 군사교련이 시작된 데 있었다. 그 내용은 각개교련, 부대교련, 사격, 지휘법, 군사강연, 전쟁사 등”(196p)이다. 메이지헌법하의 국민개병 시대에 중학생 때부터 복장면에서도 학생을 장차 병사에 어울리는 인간으로 기르려는 교육적 의도가 있었다. 이 시기 여학생의 세일러복 역시 영국 해군의 수병복에서 온 것이고, 러일전쟁을 통해 일본에 들어왔다.


 

히틀러유겐트의 그림자는 모든 전제국가에서 볼 수 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 학도호국단, 교련, 전방입소를 기억해보면 이 그림자는 우리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제 강점기의 잔재와 그를 답습했던 독재시절의 군사문화는 여전히 우리의 학교와 조직문화에 남아있다.

 

요즘 D.P라는 웹 드라마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서 보이는 장면들에서 군복을 평상복으로 바꾸면 군사문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조직문화의 단편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대학교의 잔재가 남아있는 학교 교육과 폭력을 묵인하는 군대의 비윤리적 경험이 우리 일상에서 떨쳐질 리가 없다.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내용이지만 지그프리트 렌츠의『독일어 시간이 떠오른다. 다시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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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12 22: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우 ㅠㅠ 사진 꼬마 ㅠㅠ
.˚‧º·(´ฅωฅ`)‧º·˚.

그레이스 2021-09-12 22:23   좋아요 4 | URL
슬픈 사진!

그레이스 2021-09-12 23:18   좋아요 2 | URL
오늘 아이들하고 하는 독서모임 중 한 학생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취지의 글을 써서,,, 넘 인상적이었어요.*****

청아 2021-09-12 22:2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넷플릭스에서 D.P.인상깊게 봤어요! 히틀러청소년단을 일본 군국주의와 연결해 이 드라마로 마무리하시다니 슬픈역사와 비극이지만 완벽한 조합이네요👍

그레이스 2021-09-12 22:45   좋아요 3 | URL
포스터가 인상적이어서요
군복이 반쯤 벗겨진 모습이 상징하는 의미가 있다는 생각에...^^

붕붕툐툐 2021-09-12 22: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비극이 있나... 가해자는 가해자대로,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다 아픔이 있는 거 같아요. 그리고 그 폭력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고요..ㅠㅠ
요즘 D.P.가 그렇게 뜬다는데, 저도 보고 싶네용~

그레이스 2021-09-12 22:46   좋아요 4 | URL
넷**스에서...!

막시무스 2021-09-12 22: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요즘 20대쯤되면 국민이 아니라 시민으로 성장해 있지 않았을까요?ㅎ 저는 여전히 국민의 때를 벗지 못하고 있는것 같은데!ㅠ 직장서 윗사람들 조직생활 편해졌다고 비아냥되지만 여전히 군사적 관료문화는 잔존하고 변형된 형태로 세습되고 있는것 같고, 특히 남자들이 심하죠! 글고 저같은 경우는 가끔 멍 때리다가 국민교육헌장이 뜽금없이 떠오를 때가 있어 깜짝 놀랍니다!ㅠ

그레이스 2021-09-12 22:57   좋아요 4 | URL
국민교육헌장 ㅎㅎ
저도 떠올릴때 있어요
그런데 바뀌었다라구요!^^

저 고등학교때 학도호국단 방학 프로그램중에 공수부대 입소가 있었어요
몇년전 진짜사나이라는 티비프로그램 보면서 막타워, 사격훈련 했던, 이유를 모르고 기합받던 기억이...ㅠ

새파랑 2021-09-12 23: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전쟁의 광기는 끔찍한거 같아요. 사람들을 세뇌 시키고 미치게 하고 ㅜㅜ 정말 사진들이 끔찍하네요. 역시 그레이스님의 종합 페이퍼는 인상적입니다. 오늘도 많은걸 알아갑니다 😄

그레이스 2021-09-12 23:13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님의 독서 스피드는 제 독서순서를 바꿔놓으시구요~~^^

희선 2021-09-12 23: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맨 앞 사진 저렇게 어린 아이한테 저런 옷을 입히다니... 청소년도 전쟁에 나가기도 했군요 그거 몰랐던 것 같습니다 포로가 되면 죽으라고 하다니, 그 말 보니 일본 생각나기도 했는데... 군복 하니, 탈레반이 한국 군인 군복을 입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사진이 있었다고 하더군요


희선

그레이스 2021-09-12 23:47   좋아요 4 | URL
귀엽다고 웃었겠지요
어린나이에 용감하다고 박수쳐줬을거구요
행진하는 아이들사이에 들어와 자랑스럽다고 안아주고 볼에 입을 맞춰주었대요.
무비판적으로 상황을 보고 있는 어른들의 책임이 크죠!

봄밤 2021-09-13 00: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페이퍼 잘 보고갑니다. 이래서 깨어있어야 한다는 다짐이 늘 필요한 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1-09-13 00:26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늘 깨어있기를...!

초딩 2021-09-13 0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둘 다 슬픈 사진이네요 ㅜㅜ
좋은 밤 되세요
서평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9-13 00:39   좋아요 1 | URL
저도 감사드립니다~♡
깊은밤 평안하세요~♡

독서괭 2021-09-13 13: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휴 아이 사진에 마음이 아프네요.. 군사문화의 잔재 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ㅠㅠ

그레이스 2021-09-13 13:22   좋아요 1 | URL
맞아요
우리 모두 그렇게 생각하는데 왜 이렇게 더딘지...!
독서괭님 화창한 가을날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NamGiKim 2021-09-13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틀러의 아이들> 이것도 정말 감명깊게 읽은 책입니다. 저 애기의 나치경례와 저 청년의 눈물흘리는 사진이 유난히 생각나게 한 책이죠.

그레이스 2021-09-13 13:21   좋아요 1 | URL
같은 생각 ... 같은 감동...!
마음이 뿌듯합니다.
이래서 리뷰를 올리고 나누죠!
남기님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시길!

NamGiKim 2021-09-13 13:24   좋아요 1 | URL
안전과 온기 좋은 배급을 포로수용소가 제공하기를 바랬다는 부분에서, ˝나라도 그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레이스 2021-09-13 13:25   좋아요 0 | URL
마음은 더 아프구요

라로 2021-09-13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디피 드라마 보고 있어요. 이제 2회 봐요. (딴 얘기 죄송;;;)

그레이스 2021-09-13 18:05   좋아요 1 | URL
저는 드라마 보다 중단했어요
너무 드라마속 상황이 답답해서, 나중에 이어가러구요^^
기생충 보는것도 힘들어 해서...ㅎㅎ
글은 힘들게 읽어도 영상만큼은 예쁘고 힘들지 않은것 좋아해서요^^
딴 얘기 아닌데요^^
라로님!

초딩 2021-09-18 1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주간 북플/서재 뉴스레터
선정 완전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09-18 16:3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항상 말씀드리지만 플친님들 덕분!
오늘 폰 집에두고 나가서 돌아다니다가 지금 들어와서 확인했습니다 ^^;;
만보는 훨씬 넘게 걸었는데 폰은 100보네요 ㅠㅠ
초딩님 명절연휴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세요~~
 

낙화
유치환


뉘가 눈이 소리 없이 내린다더뇨

이렇게 쟁 쟁 쟁
무수한 종소리 울림하며 내리는 낙화

아 길이었다
손 하나 마주 잡지 못한 채
어쩌지 못한 젊음의 안타까운 입김 같은
퍼얼펄 내리는 하아얀 속을
오직 말없이 나란히 걷기만 걷기만 하던
아아 진홍 장미였던가

그리고 너는 가고
무수한 종소리 울림하는 육체 없는 낙화 속을
나만 남아 가노니

뉘가 눈이 소리 없이 내린다더뇨


유치환의 <낙화>와 <그 후>의 첫페이지가 닮았다.
눈이 떨어지는 소리가 마음의 소리인지, 동백이 떨어지는 소리가 심장소리인지...!






베갯머리를 보니 겹꽃잎동백 한 송이가 다다미 위에 떨어져 있다.
다이스케는 지난밤에 이 동백꽃이 떨어지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그의 귀에는 그 소리가 천장에서 고무공이 떨어지는 소리만큼 크게올렸다. 물론 밤이 깊어 주변이 고요한 탓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확인이라도 해보려는 듯 오른손을 심장에 얹고 늑골 끝에서 정상적으로 뛰는 맥박 소리를 확인하면서 잠이 들었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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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09 17: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독서노트지만) 1등~!! 아침부터 멋진 시를 읽으셨네요 이 책하고 너무 잘 어울리네요 ㅜㅜ 저 이책 아주 좋더라구요 😄

그레이스 2021-09-09 17:59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읽으셨군요
저도 빨리 읽어야겠네요
책 놓고 놀고 있었는데...
다시...!

서니데이 2021-09-09 21: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치환 시인은 깃발이 먼저 생각나는데, 제목이 낙화라서 조지훈이나 다른 시인의 시가 먼저 생각났습니다.
그레이스님 좋은 밤 되세요.^^

그레이스 2021-09-09 21:18   좋아요 2 | URL
조지훈님 낙화도 좋아요 😀

scott 2021-09-10 0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세키[ 그후]겹꽃잎동백 한 송이가 유치환 시인의 [낙화]로 이어지다니
깊어가는 가을 그레이스님의 소세키 옹 완독 응원 합니다!!

그레이스 2021-09-11 00:4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모두 풍성한 독서로 가을을 타시길...!

희선 2021-09-10 01: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후에 나온 동백꽃 떨어지는 소리가 나오는 부분을 보시고 유치환 시 <낙화>를 떠올리시다니... 유치환 시인은 이름은 알아도 시는 많이 모르는군요 저도 <깃발>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행복>이란 시도 있지요 그 후에는 다른 꽃도 나옵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1-09-11 00:46   좋아요 0 | URL
소리에 주목했습니다.
사무치는 무엇인가가 있어서...^^
가을인가봐요

han22598 2021-09-10 02: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왜 전 술잔이 소리없이 쏟아져내리는 것만 보이나요 ㅋㅋㅋ

그레이스 2021-09-11 01:14   좋아요 0 | URL
^^
다들 낙화에 취하셨군요

페크pek0501 2021-09-11 1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뽑아 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이달의 당선작, 진심 축하드립니다. ^*^

그레이스 2021-09-11 11:1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산시로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7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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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를 향해 기차 여행을 하고 있는 청년 산시로. 그가 고향을 출발했을 시점에는 자긍심과 설레임 같은 감정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낯선 곳을 향해 가는 사람에게는 당연히 있을 불안감과 함께. 이 불안감은 도쿄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더욱 커져가고 실체화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불안의 불씨는 여인들의 얼굴 피부색을 보는 산시로의 생각에서 보인다. 고향에서 멀어질수록 그 얼굴색이 밝고 희어지는 것을 보며, 낯선 느낌이다. 고향의 색을 가진 여인, 친근함을 느끼지만, 그녀의 대담함에 위축되는 느낌, 낯선 곳으로 향하는 그에게 시작된 난처함이다. 뭔가 대범한 모습으로 기분을 떨쳐보려고 한 그는 기차 옆자리 사내(히로타 선생)의 무심함, 시니컬함에 다시 무색해진다. 그는 드디어 구마모토를 떠났다는 것을 실감한다. 여행자가 아닌 것이다. 이제 이런 사람들이 수두룩한 도쿄에서 살아야 한다.

 

개화된 도쿄에 도착해 아주 많은 것에 놀란다. 도쿄는 메이지 유신 이래로 서양의 300년을 40년 동안 되풀이 하며 엄청난 속도로 변화되었다. 그는 자신이 호라가토게에서 낮잠을 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호라가토게: 교토와 오사카 경계에 있는 고개, 1582년 야마자키 전투때 이 곳에 진치고 어느 편에 가담할지 형세를 관망했다는 쓰쓰이 준케이의 고사에서 나온 말) 그는 도쿄 한복판에 갇혀 혼자 울적해 한다.”(37p)

 

어머니가 편지로 소개해 준 노노미야에게서 도쿄의 지식인, 기차에서 만난 사내의 모습을 발견한다. 어쩌다 그의 집에 혼자 있게 된 산시로는 집 옆의 철로에서 이름 모를 여인의 죽음을 목격한다. 이 장면은 산시로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몸의 반쪽이 잘라졌는데도 온전한 여인의 얼굴, 죽음이 지나간 자리에 여전한 아름다움이 존재하는 부조리는 유미주의적 표현이다. 그 밤에 산시로는 노노미야와 아는 여인일까?’ ‘일부러 여기까지 와서 목숨을 끊은 것일까?’ ‘그래서 노노미야가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하는 의심을 한다. 불안이 극대화 되고 신경쇠약의 증세까지 보이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소세키가 영국에서 불안 증세로 신경쇠약을 앓았다고 한다. 그 경험에서 나온 글이라 추측된다.

 

병원 앞의 연못가에 서있는 미네코를 보게 된 산시로는 모순이다라고 중얼거린다. 낯선 여인에게 느낀 설레임이 낯선 도시에서 느끼는 자신의 외로움과 불안함과 모순이라는 뜻일까? 이제,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다 그녀와 연결되어 있고, 그가 가는 장소 또한 그녀가 지나간 자리다. 욕망이 자랄 때 불안도 커가는 법. 미네코를 향한 마음이 커갈수록 노노미야와 미네코를 바라보는 불안함은 커져간다. 청춘은 서툴다. 미네코의 태도나 말투에서 독자는 어렴풋이 느낀다. 그녀의 마음이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을 향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교태를 흘리는 여인의 마음이라고 해서 가볍게 여길 수는 없겠으나, 그녀에게 있는 이중적인 욕망 때문에 산시로도 그녀도 어쩌면 또 다른 한 남자도 길을 잃게 된다. ‘스트레이 쉬입(stray sheep)’이다.

 

청춘은 서툴다. 욕망과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마치 도쿄의 한 복판에서 개화의 바람을 맞고 있는 지식인들의 마음을 비유하는 듯하다. 빗나가는 마음의 방향을 알아채지 못하고 부질없는 희망에 들뜬다. 23세의 청년 산시로의 첫사랑은 근대화의 희망과 불안감 속에서 열병처럼 들떴다가 끝이 난다.

 

 

이 소설에서는 회화적인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연못가 언덕에 서있는 미네코의 모습과 그의 옆을 지나치는 순간도 그림 같다. 그가 받은 느낌은 아름다운 색채라는 것뿐이었다”(45p)고 한다. 바닥에 떨어진 하얀 꽃과 화려한 색에 흰 참억새 무늬가 새겨진 오비”(46p) 역시 미적이다. 이 오비(기모노의 허리 부분을 감싸는 띠)를 보는 시선은 조지훈의 승무에서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버선을 떠올리게 한다. 국어 참고서(고등학교때)에서 해설했듯, 버선이 관능미를 보인다는 해석이 맞다면, 아마 오비를 본 산시로의 느낌이 그렇지 않았을까 한다.

 

여자들 바로 아래가 연못이고, 연못 맞은편이 높은 절벽으로 된 숲이며 그 뒤에 붉은 벽돌로 지은 고딕풍의 화려한 건물이 있다. 그리고 저물어가는 해가 그 모든 것들 너머에서 비스듬히 빛을 비추고 있다. 여자는 그 석양을 향해 서 있었다. 산시로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낮은 그늘에서 보면 언덕 위는 무척 환하다. 한 여자는 눈이 부신 듯 부채로 이마 위를 가리고 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기모노의 색, 오비의 색깔은 몰라도 조리를 신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두 여자가 산시로 앞을 지나갔다. 젊은 여자는 지금까지 향기를 맡고 있던 하얀 꽃을 산시로 앞에 떨어뜨리고 갔다.” (44~46p)

 

산시로 앞에 있는 세 개의 세계, 한 세계는 메이지15(1882) 이전의 향기가 나는 세계이고, 돌아가고자 하면 당장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다. 두 번째 세계는 이끼 낀 벽돌 건물이 있는 대학이다. 2·30년에 걸쳐 조금씩 쌓인 귀중한 먼지(지식)가 있는 곳이고, 그것은 미래를 이겨낼 만큼의 조용한 먼지다. “그 안에 들어가는 사람은 현세를 모르기에 불행하고 화택을 벗어나니 행복”(106p)하다. 그들은 히로타 선생이고, 노노미야이다. 세 번째 세계는 봄처럼 찬연히 흔들리고 있다. 은수저, 환성, 우스운 이야기, 샴페인이 있고, 특별히 아름다운 여성이 있는 곳이다. 청춘의 욕망이 있는 곳이다. 산시로에게는 이 세 번째 세계가 가장 의미심장하고 자신이 속해야 할 세계인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자신을 속박하여 자유롭게 출입해야 할 통로를 막고 있어서 이상하다고 생각한다.(106~107p)

산시로는 어느 세계에 속하게 될까?

 

대학 새내기 시절, 아직은 싸늘한 바람 속에서도 캠퍼스는 들뜨게 했다. 세상은 불의에 앓고 있었고, 둘러 앉아 우리가 배워왔던 허상을 씻어내고 진실을 마주하며 토론하던 자리들이 기억난다. 찬란한 꽃그늘 아래 하얗게 서린 최루가스 냄새, 그 와중에도 마음을 설레던 청춘의 들뜸, 어김없이 찾아오는 시험과 불의한 세상 사이에서 결단을 요구받던 불안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히로타의 철학, 노노미야의 학문, 요지로의 잡지발간과 연극상연은 개화라는 시대적 자극에 적극적으로 또는 소극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현대일본의 개화) 소설의 중간중간 나오는 히로타의 사상 노악가(露惡家)’(200p)하이드로타피아(268p)에 대한 이야기는 소세키의 생각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개화에 대한 욕망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는 세대가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답은 그의 개인주의 자기본위사상에 있다. 이후의 작품들과 연설, 에세이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될 것이므로 여기서부터 언급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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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8 23:4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1등.🖐 @^^♡ @

그레이스 2021-09-08 23:56   좋아요 5 | URL
저는 scott님 페이퍼에서 언제 1등 해보나...^^

그레이스 2021-09-09 00:19   좋아요 4 | URL
했어요!

scott 2021-09-09 00:44   좋아요 5 | URL
오! 그레이스님의 산시로는 정말 소세키옹의 산시로 스물 세살의 향기가 담겨 있네요.
[청춘은 서툴다. 욕망과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다. 마치 도쿄의 한 복판에서 개화의 바람을 맞고 있는 지식인들의 마음을 비유하는 듯하다. 빗나가는 마음의 방향을 알아채지 못하고 부질없는 희망에 들뜬다. 23세의 청년 산시로의 첫사랑은 근대화의 희망과 불안감 속에서 열병처럼 들떴다가 끝이 난다.]
이 문 단 밑줄 쫘악!!

실제로 일본에 산시로 기행 여행 일정이 있을 정도 ㅎㅎ

산시로에 나온 은수저는 이후 후배 작가들의 창작의 모티브가 됩니다

가을, 소세키의 작품 읽는 맛!

이렇게 플친님들 리뷰 읽는 재미와 기쁨도 있네요 ^ㅅ^





막시무스 2021-09-09 00:11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그러네요! 저도 청춘시절에 욕망과 불안이 있었는데!ㅎ 지금도 있지만 왠지 욕망은 열정적이거나 순수하지 못한것 같고, 불안 은 미래의 불안보다 현재의 흔들림에 방점이 있는듯 합니다!ㅠ 우울해지기도 하는데요!ㅎ 편한 밤되시구요!ㅎ

그레이스 2021-09-09 00:19   좋아요 6 | URL
우울하시면 죄송한데요.
전 지금이 더 좋아요~^
막시무스님도 편안밤 되세요~

mini74 2021-09-09 00:3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혼돈과 변화의 시기를 살았던 젊음은 조금 더 불안할거 같아요. 저도 그 시절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진 않아요 ㅎㅎ 안녕히 주무세요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1-09-09 08:57   좋아요 5 | URL
^^
불안하고 서툴렀던 모습보다는 지금이 편안하죠.^^
예 미니님 좋은 꿈 꾸세요~♡

새파랑 2021-09-09 08:0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리뷰만 봐도 책이 아름다우면서도 슬플거 같아요. 미네코를 바라보는 산시로의 마음을 빨리 읽어보고 싶네요. 전 산시로가 갈 수 있는 세계 중 세번째 세계가 마음에 드네요 😆

그레이스 2021-09-09 08:56   좋아요 3 | URL
저도 세번째,
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관조적 자세인 두번째가 끌리기도 해요.
사실 더 편할것 같고 선택은 두번째로 하게 될듯.^^

새파랑님 리뷰 기대합니다

희선 2021-09-10 02: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처음에 《산시로》를 읽고 꽤 옛날 소설인데 그렇게 옛날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지금 읽어도 괜찮다니, 했어요 그건 한국말로 잘 옮겨서 그랬겠습니다 그렇다고 소세키가 아주 옛날 말을 쓰지는 않지만...


희선

그레이스 2021-09-10 10:51   좋아요 1 | URL
희선님은 원서로 읽으시죠?
저는 일어는 정말 몰라요
한자 문화권에 살면서...ㅠ
접할 기회가 없었어요
부럽습니다

희선 2021-09-11 01:27   좋아요 1 | URL
부끄럽습니다 그렇게 잘 못 봐요 어쩐지 아는 척한 듯합니다


희선

파이버 2021-09-13 11:5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산시로 앞에 있는 세 개의 세계에서 세번째 세계가 그레이스 님 말씀처럼 욕망이라면 정말 청춘일때만 속해있을 수 있는 곳이겠네요... 저는 책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누구나 한번쯤은 세번째세계에 이끌려본적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레이스 2021-09-13 12:01   좋아요 2 | URL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할수 없는 산시로의 상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지 않을까요?
저는 그랬던 것 같습니다^^

scott 2021-10-08 15: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관왕 축!!

주말 맛나게 마니,마니~~

그레이스 2021-10-08 17:4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mini74 2021-10-08 16: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당근 그레이스님 뽑힐거라 ㅎㅎ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10-08 17:4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1-10-08 16: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산시로로 당선이네요 ^^ 이 책 너무 좋네요 ㅜㅜ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10-08 17:43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님 산시로 다 읽으셨죠?
아직 북플 못 봐서...!
벌써 올리셨나요?^^

새파랑 2021-10-08 17:47   좋아요 3 | URL
점심때 다 읽고 리뷰는 아직 ㅜㅜ 너무 좋았어요~!!

서니데이 2021-10-08 18: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그레이스 2021-10-08 19:19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10-08 18: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의 글을 읽으며 자신이 가야할 길과 가고 싶은 길이 다를 때의 갈등과 고민을 떠올리게 됩니다. 소세키에게 개인주의는 그에게 그런 고민을 던져주는 어떤 것의 총체라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10-08 19:1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소세키 책 읽어가면서 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고, 왜 그런 글을 쓰게 됐는지 알 것 같아요.💗

독서괭 2021-10-08 20: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소세키 마니아! 당선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1-10-09 01:2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마니아^^
부끄럽네요 ~~

모나리자 2021-10-08 22: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그레이스님~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1-10-09 01:2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bookholic 2021-10-08 23: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앞으로도 쭉 이달의 당선작 개근하시길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1-10-09 01:2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러블리땡 2021-10-09 0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당선작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1-10-09 01:27   좋아요 0 | URL
감사드려요~~^^

페넬로페 2021-10-09 01: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가을의 나쓰메 소세키, 좋은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1-10-09 01:2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희선 2021-10-09 01: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또 축하합니다 나쓰메 소세키 소설 거의 다 보셨겠습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1-10-09 01:29   좋아요 0 | URL
현암사 전집으로는 두권 남았어요^^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1-10-09 06: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이 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그레이스 2021-10-09 08: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서재 회원들 덕분에 항상 좋은 자극 받고 있습니다~~^^

하나의책장 2021-10-19 23: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늦었지만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1-10-19 23: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드디어 다 마쳤다아이들과 매주 도시 2개씩 읽어왔다.(부연: 아이들과 책읽기는 경제활동과 상관없는 독서 활동이다.) 오래전, 문학을 읽다가 지리와 역사에 부딪칠 때마다 맥이 끊기고, 찾아보고는 그것이 아주 일반적인 지식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좌절했었다. 다행히 구글 맵이 등장하고, 검색기능이 좋아지면서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고막막하고 답답한 기분은 덜 느꼈지만, 이런 지식의 빠른 휘발성은 또 한번 좌절을 맛보게 했다. 지중해와 세계지도를 손으로 그려보고, 중요한 지명을 표시해가며 암기한 끝에 지중해변은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항상 느끼지만 어린 나이에 습득해야 시간이 덜 걸리고 잊어버리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나의 간절함을 전달하는 일도 쉽지는 않다. 사회과목 시험 볼 때조차 아이들은 페이지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지도를 쳐다보지 않는다. 식사 자리에서 지나가는 말로 지도 꼭 봐라.” 하면 아이들은 선생님이 안 중요하댔어.” 한다. 아이들에겐 이거 시험에 나온다.” 하고 별표를 쳐줘야 중요한 지도다. 이해한다. 나도 그랬으니까. 로마인 이야기를 읽으며 들여다 본 지도를 다시 또 돌아가서 확인하고, 고대 해전사를 읽으며, 지중해를 보고 또 보고, 나중에 이런 수고 안 하려면 지금 봐야한다는 것을 어찌 납득시킬까 고민만 하다가 이제 모두 대학생이 되었다. 역사를 전공하는 막내만 조금 내 말을 이해하는 듯하다. 뭐 몰라도 사는 데 지장은 없을 테니까.

 

나와 함께 책읽기를 하는 초등학교 6학년 4학년 형제, 그리고 중학생 아이들. 처음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하며, 지중해 지도를 내밀었을 때, 무심한 얼굴들이 떠오른다. 마침 이 책 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을 보고 적당하겠다 생각하고 시작했다. 내 아이들을 이렇게 가르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보지만, 불변의 진리!- 일타 강사도 자기 아이는 못 가르친다.



 

이 책에는 고대 도시들이 등장한다. 바빌론, 예루살렘. 아테네, 알렉산드리아고대 도시가 생겨난 당시의 역사와 그 곳을 차지한 부족과 나라들과 왕조들에 대해 설명한다. 이들 중에서는 지금까지 중요한 도시로서 살아남은 곳도 있고, 흥망성쇠를 거듭하면서 지역을 조금씩 이동한 '장안' 같은 곳도 있다. 또한 지금은 유적만 남아있는 '바빌론'이나 '테오티우아칸'도 소개된다. 또한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들도 있다. '튀니스'의 카르타고의 유적지에 대한 설명을 읽으며 나는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살람보를 찾아보기도 했다.

각 도시에 대한 분량은 10페이지 정도이다. 지도와 사진자료들도 들어있고, 전달하는 내용은 간결한데 충실하다. 뼈대가 잘 갖춰져 있고, 핵심을 잘 전달하고 있어서, 더 알고 싶은 내용을 찾아서 살을 붙여도 복잡해지지 않는다. 정리하기에 유익한 책이었다.

 

마지막 장은 두바이다. 버즈칼리파더 월드섬이 있는 사막위의 인공도시 두바이와 함께 아랍에미리트의 역사, 구성, 정치, 경제를 소개한다. 두바이에 인공도시를 조성한 동기와 목적, 과정, 위기,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도 간략한 설명이 붙여진다. 고대도시에서 시작된 여행은 현대의 인공도시 두바이에서 끝이 난다.


나의 감상은 자연스럽게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Le citta invisibili)>로 옮겨 갔다. 이 소설은 우리에게 동방견문록으로 알려진 마르코 폴로와 타타르제국의 황제 쿠빌라이 칸의 대화다. 주로 마르코 폴로가 여행한 도시들의 단상을 그리고 있다. 파편화된 도시들의 기억으로 이루어진다. 이 55개의 도시에 대한 내용은 공간과 시간이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다. 고대 도시는 가상의 공간처럼 보이기도 하고, 현대의 도시의 모습을 반영한다. 도시는 소멸과 생성을 거듭하며 시간 속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담아내고 있다. ‘기억’, ‘욕망’, ‘기호’, ‘교환’, ‘’ ‘이름’ ‘죽은 자’ ‘하늘’ ‘섬세한’ ‘지속되는’ ‘숨겨진으로 은유되고 수식되는 도시들이 순환하며 등장한다.

 

가장 주목하게 된 내용은 도시가 상징하는 기호.

 

시선이 머무는 경우는 그 사물을 다른 사물의 기호로 인식했을 때뿐입니다. ……

마침내 여행자는 타마라 시에 닿습니다. 폐하는 벽마다 간판들이 튀어나와 있는 좁은 거리들을 따라 도시를 가로지릅니다. 눈은 사물이 아니라, 다른 사물들을 의미하는 사물의 형상들을 바라봅니다. 펜치는 이() 뽑는 사람의 집을 가리키고, 큰 잔은 술집을, 미늘창은 수비대의 막사를, 저울은 채소 가게를 가리킵니다.……상인들이 판매대 위에 진열해 놓은 상품들도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다른 사물에 대한 기호로서 가치를 가집니다. 수놓은 머리띠는 우아함을, 금도금한 가마는 권력을, 이븐 루슈드의 책들은 학식을, 발찌는 관능을 뜻합니다. 책장을 넘기듯 시선이 거리를 훑고 지나갑니다. ……

도시가 이와 같이 조밀한 기호의 껍질 속에 있기 때문에 여행자는 타마라에서 나올 때에도 도시가 정말 어떤 모습인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혹은 숨기고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도시 밖에는 텅 빈 땅이 지평선까지 길게 뻗어 있고 그 위에 펼쳐진 하늘에는 구름이 떠갑니다. 우연과 바람이 만들어낸 구름의 모습들 속에서 여행자는 어느새 범선, , 코끼리의 형상들을 구별하는 데 열중해 있습니다.” (22~23p)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기호는 무엇인가? 그 기호가 환원되고 있는 정신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었다. 서울의 어느 곳에서나 보이는 잠실의 마천루, 유명인들만 산다는 한강변의 고층아파트, ‘경축재건축조합이라는 현수막, 새 아파트들과 변해버린 거리들은 자본주의가 치켜든 기호다. 그 피켓을 따라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가고 있다. 차를 타고 강남대로를 지나면서 계속해서 보이는 성형외과 간판은 외모지상주의, 여성의 몸, 그리고 돈이라는 기호가 보인다. 대형 전광판 뉴스 오늘 확진자 수는 도시가 앓고 있는 전염병의 기호, 끊임없이 땅 밑으로 들어가고 빠져나오는 사람들의 행렬은 생기 없는 실내노동자들의 극단적인 삶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들어가는 사무실 빌딩과 아파트 건물마다 설치된 차단기들은 우리들 사이의 경계가 있음을 알려주는 상징물이다.

 

도시들의 순환은 마지막 대화에서 지옥과 유토피아라는 은유로 마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지옥은 미래의 어떤 것이 아니라 이미 이곳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지옥에서 알고 있고 함께 지옥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지옥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 방법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을 받아들이고 그 지옥이 더 이상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그것의 일부분이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방법은 위험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계속 배워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지옥의 한가운데서 지옥 속에 살지 않는 사람과 지옥이 아닌 것을 찾아내려 하고 그것을 구별해 내어 지속시키고 그것들에게 공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208p)

 

우리의 도시에서 찾아내고 지속시켜야 할 것은 무엇이며, 저항하고 맞서 싸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물론 사냥꾼의 사회에서 사는 것이 지옥에서 지내는 것처럼 느껴지느냐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다. 대부분의 노련한 사냥꾼들은, 사냥꾼의 대열에 끼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순간이 있기 마련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수다수에게 쉬운전략을 선택할 것이며, 결국 그 사회의 일부가 되어 더 이상 그 사회의 괴상한 논리에 어리둥절해 하거나, 어디서나 제시되는 강압적이고 대체로 허무맹랑한 요구에도 자극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분명한 것은, ‘누가 그리고 무엇이 지옥이 아닌지를 알아내려고 고투하는 사람이라면, 자신들이 고집스럽게 지옥이라 부르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온갖 종류의 압력에 맞서 용감하게 싸워야만 할 것이라는 점이다.” 

(모두스 비벤디: 유동하는 세계의 지옥과 유토피아지크문트 바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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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9-07 21:53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책 찜! .🖐

그레이스 2021-09-07 21:56   좋아요 5 | URL
하이파이브! 🙌 😁 ~♡

scott 2021-09-08 00:39   좋아요 3 | URL
지도를 사릉하는 1인!🖐
어렸을때부터 세계 도시 퍼즐 맞추는 재미로(실은 아부지가 돈을 베팅하셔서 ㅎㅎ) 살았고 구글이 영리 해지기 전에는 도시에 첫 발을 디딜때마다 지도를 손에! ㅎㅎ

지금도 벽 한쪽은 세계 지도를 붙여 놨습니다
지구본은 LED조명 ㅋㅋㅋ

저도 이책 살펴보다가 보이지 않는 도시 떠올렸는데! 보르헤스의 알렙과도 맞닿았네요
그레이스님의 깊이 있는 독서 광할한 지식에 탐복 합니다. ^ㅅ^

그레이스 2021-09-08 09:28   좋아요 2 | URL
어릴때부터 환경이...!
보르헤스 알레프, 제 독서 리스트에 있는 책이예요. 조금 앞으로 데려와야겠네요.
감사합니다 ~

새파랑 2021-09-07 22:0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제가 학교다닐 때 이런 책이 있었으면 세계사 공부가 재미있었을텐데 😅

그레이스 2021-09-07 22:11   좋아요 5 | URL
맞아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중학교 역사선생님이 수업 전에 칠판 한가득 세계지도를 그리고 시작하시던 기억이 나서 지금도 그 쌤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초란공 2021-09-07 22: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앗 <보이지 않는 도시들> 꼭 읽어보고 싶네요~ 찜해두었습나다~

그레이스 2021-09-07 22:45   좋아요 5 | URL
리뷰 기대해요~

초란공 2021-09-07 22: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엉뚱하다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 어떤 계기로... 개인적으로 쿠빌라이칸의 유물하나를 찾고 있어요~ 하지만 제 생애에 이룰 수 잇을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마르코폴로와 쿠빌라이 칸은 이 여정에서 제게 중요한 인물이지요^^ 재미있겠는데요~

그레이스 2021-09-07 22:58   좋아요 5 | URL
초란공님 혹시 고고학자세요?
북플 하면서 눈이 휘둥그레 커지는 순간 많이 경험합니다.@@ 놀람

초란공 2021-09-07 23:02   좋아요 5 | URL
ㅎㅎ 전혀 아닙니다^^ 그냥 어떤 계기로... 흥미가 생긴 것이 있어서 자료를 모으고 하는데 훈련받은 바도 없어서 갈피도 못잡고 더디기만 하네요~ 아마 한 10년 쯤 후에 발표를 할 수 있을까요~ ㅋㅋ

그레이스 2021-09-07 23:07   좋아요 5 | URL
그래도 일단 그런 꿈을 갖고 계시다니 놀랍습니다.^^
역사랑 고고학에 관심이 있어서...ㅎㅎ
실크로드 관련된 책은 조금 읽었구요
강인욱 작가 책도 세 권정도 갖고 있어요
다 모으면 읽는게 제 버릇이라서...ㅋㅋ
초란공님 소원 꼭 이루시길 바랍니다

초란공 2021-09-07 23:16   좋아요 5 | URL
감사합니다~^^ 일단 코로나 때문에 여행도 못가고 그동안 쿠빌라이 칸의 외손자에 해당하는 충렬왕 전후의 고려사도 찾아보고 있지요. ^^;; 흥미로운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scott 2021-09-08 00:40   좋아요 4 | URL
아! 이런 이야기, 주제 넘ㅎ 좋습니다!

다큐 비비씨 샅샅이 보고 있지만 이 분야에 권위자들은 전부 옥스퍼드에 있어서
혹쉬 초란공님 자료는 영쿡에 아주 많습니다 ^ㅅ^

청아 2021-09-07 23:26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요즘 지구본 사려고 알아보던 중이라 솔깃합니다~♡저도 찜!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그레이스님 멋지심! 알라딘 굿즈로 세계사 분야별 인물, 사건, 전쟁, 미술사, 음악사 연대기표 테이핑 나왔으면 좋겠어요. 쭉 펴서 여러개 나란히 놓고 같은 시기 미술사는 뭐였고 등등 비교해봐도 재밌을듯🤭

그레이스 2021-09-07 23:30   좋아요 5 | URL
제가 갖고 있는 큰 책 연표가 있긴한데 미술사 음악사 전쟁사 함께 펼쳐놓고 보면 좋겠네요^^
만들기에는 항목이 넘 많네요
같은 간격으로 나와 주면 비교 가능하겠네요
저도 미미님 의견 찬성!

붕붕툐툐 2021-09-07 23: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런 책을 아이들과 함께 읽어내시다니 존경을 보냅니다!! 진짜 대단하셔요~~

그레이스 2021-09-07 23:42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
응원과 격려로 받을께요~!

희선 2021-09-08 03: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세계 지도를 그려보시다니... 지도 같은 거 보기는 해도 그렇게 잘 알지는 못하는군요 그곳을 잘 몰라도 지도를 그려 보면 어디쯤 있는지는 알겠네요 그러고 보니 만화에서 지리를 아주 잘 아는 아이가 나왔는데, 뭐가 어디 있는지 잘 알더군요 시간이 많이 흘러서 지구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희선

그레이스 2021-09-08 07:08   좋아요 4 | URL
그 만화가 궁금하네요

다락방 2021-09-08 09: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어보고 싶어지네요. 학교 다닐 때 세계사, 국사, 한국지리, 세계지리 이 네 과목 점수가 제일 낮았거든요. 너무 못했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걸어서 세계속으로>보면서 지구본을 돌리는 사람이 됐죠. 저도 이 책 읽어보겠습니다.

그레이스 2021-09-08 09:23   좋아요 2 | URL
요새 지구본은 축척대로 고도랑 해저 깊이를 입체적으로 보여주던데 언젠가 그거 하나 장만해보려고 해요^^~♡

단발머리 2021-09-08 0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덕분에 좋은 책 소개받았어요. 저는 역사, 지리를 좋아하지만 꼭 기억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아합니다 ㅎㅎㅎ 읽고 바로 잊어버리는데도 읽는 그 순간이 좋아요.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기호는 무엇인가? 이 문단 너무 좋네요. 지리와 역사와 문화가 우리 삶과 딱 닿아있는 부분을 꼬집어 주셔서요.

그레이스 2021-09-08 09:2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코로나가 지나가고 나면 이 도시는 어떤 기호를 갖게 될지...!
두렵네요!

mini74 2021-09-08 09: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재미있겠어요. 저도 찜! 그러네요. 진짜 중학교 사회책이나 역사책은 참 재미없는데 ㅠㅠ

그레이스 2021-09-08 10:16   좋아요 2 | URL
어투 이런걸 좀 재밌게 하면 안됄까요?
요즘엔 말풍선으로 된 대화나 삽화도 들어가던데...^^

bookholic 2021-09-08 13: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이들과 함 도전해 봐야겠어요~~^^

그레이스 2021-09-08 14:10   좋아요 1 | URL
화이팅 하세요
˝🤜🤛˝

steal0321 2021-09-14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두스 비벤디: 유동하는 세계의 지옥과 유토피아‘의 한 구절로 마무리하는 기승전결이 돋보이는 그레이스 님의 글 덕분에 세계와 지도와 도시와 현재와 지옥과 용감함에 대해서 다시 한번 골몰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9-14 10:3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반갑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