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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부 ㅣ 현암사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 6
나쓰메 소세키 지음, 송태욱 옮김 / 현암사 / 2014년 9월
평점 :
‘막장 인생’이란 말이 있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 삶을 의미한다. 그만큼 갱도에서 노동하는 삶은, 인생의 막다른 길을 만난 사람들의 희망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 갱부가 되기 위해 주인공은 걸어가고 있다. 19세의 방황하는 청년은 길에서 죽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고 집을 떠났다.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갈 생각이었던”(26p) 그가 “임자, 일할 생각 없나?”(25p)라고 말을 던진 사내 쪽을 돌아본다. 자기도 모르게 그를 향해 가는 발걸음은 “사람의 인력(引力)이 그만큼 강하다는 사실”(26P)과 “자신이 박약한 존재”(27P)라는 것을 입증한다고 생각한다. 19세의 청년은 홀로 길에서 불안했다. 갱부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자신이 그 생활에 적합한 사람인지 상관없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또 다른 불안함으로 향한다.
갱부가 되기 위해 가는 길은 기차를 타고, 걸어서 산을 넘고, 낯설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는 기행문의 페이지가 된다. 역에 내려 마주친 낯선 고장의 경치는 숙취에 시달리는 몸처럼 흐리멍덩했던 영혼을 깨우는 명료한 풍경이었고, 역참을 나서서 큰길 한가운데서 바라본 길은 “한없이 길고 끝까지 외줄기”(79p)로 이어졌다. 인생에서는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강렬한 인상을 받는 그런 순간이 있다.
“임자, 일할 생각 없나?” 조조씨의 제안은 광산을 향해 걸어가는 길에서 계속되고,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을 잘 알아보는지, 그의 시도는 실패하지 않고, 두 사람이 합류한다. 빚을 지고 길로 내몰린 ‘붉은 담요’, 배고픔을 해결하는 본능만 남은 ‘꼬맹이’, 이들은 시선을 의식하거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예의라고는 없는 부류다. 불편하다. 좋은 집안의 도련님인 주인공과는 다르다. 그런데 이들을 만나고 주인공의 갈팡질팡했던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들은 광산으로 안내하는 조조씨를 따라, 거듭해서 다가오는 산등성이를 넘고 밤길을 걷는다. 높은 산 고개를 향해 밀려오는 구름에 휩싸인 네 사람의 풍경은 압권이다.
“네 사람 다 구름에 떠밀리는 듯한, 휩싸이는 듯한 모습으로 구름 속을 올라갔다. …… 산 채 묻힌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일을 말한다. ……내 몸으로 내 몸을 보증할 수 없는, 또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때의 구름은 정말 기쁜 것이었다. 네 사람이 떨어지기도 하고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고 뭉치기도 하면서 구름 속을 걸어갈 때의 경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세계에서 분리된 네 개의 그림자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고 네 개인 그대로 끌리어 합치듯이, 튕겨져 멀어지듯이, 또한 무슨 일이 있어도 네 개가 아니면 안 된다는 듯이 구름 속을 오르지 걷기만 할 때의 경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138p)
동행의 뒷모습은 여행자의 불안을 사라지게 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고, 기억에 각인된다.
마침내 구리광산에 도착한 그가 숙소에서 만난 갱부들은 그를 당황스럽게 한다.
“고개를 들고 보니 조금 전의 그 얼굴들의 눈이 모두 이쪽을 보며 빛나고 있었다. “이봐!”하는 소리가 어떤 얼굴에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얼굴에서 나왔다고 해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어떤 얼굴이나 다 사나웠고, 자세히 살펴볼 것도 없이 그 거친 얼굴에 경멸과 조롱과 호기심이 분명히 새겨져 있다는 것은 고개를 들자마자 발견한 사실이었다.”(169p)
이 장면은 시각과 청각을 사용해서 주인공의 두려움을 극대화시키는 탁월한 유미주의적 표현이다. 나도 “이봐!”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고, 사나운 낯빛으로 일제히 이쪽을 보고 있는 얼굴들의 집합 속에서 당황하는 주인공이 된다. 나쓰메 소세키의 다른 소설에도 그렇듯 이 작품에서도 그림 같은 표현은 탁월하다. 항상 숨을 멈추고 장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그들의 조롱 속에서 갱부가 되겠다는 주인공의 고집은 젊은 날의 치기일지 모른다. 이 광산에서 갱부가 되지 못하고 세상으로 나가면 살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일 수도 있다. 굿길(갱도)을 따라 들어간 주인공의 끝없는 하강도 동행의 뒷모습을 따라가는 길이다. 가이드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굿길의 가장 밑바닥에서 만난 한 사람은 그에게 여행을 끝내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해 준다. “청년기는 정(情)의 시절이야.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 정의 시절에는 실패하는 법이네. 자네도 그럴 거야. 나도 그랬어.”(279p)라고 한 그는 자신의 실패를 통해, 청년기의 괴로움을 공감해주고 조언해줄 수 있는 어른이었다. “야스씨의 훈계가 나의 초지(初志)를 단번에 뒤집을 수 있을 만큼의 힘을 갖고”(283p) 주인공의 귀에 울렸다. 언젠가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지만 당분간은 이 사람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에서 누구와 만나는가 누구와 동행하는가는 중요한 사건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만나고 동행했던 사람들이 다 소중한 사람이었고, 알게 모르게 나는 그들을 의지했다는 사실이다. 19세의 청년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향방이 없는 인생의 길에서도 동행은 잊지 못할 아름다운 순간을 만든다. 그리고 인생의 좌표는 수정된다.
낯선 사내를 무작정 따라 나서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며, 인신매매를 떠올리고 불안한 마음으로 그 여정을 쫓았다. 그가 그 길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을 보며 그가 도착할 곳이 궁금하고 걱정이 되었다. 조조씨의 무심한 듯 능숙한 제안은 도덕 감정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막장인생처럼 보이는 태도는 보는 사람을 더욱 초조하게 한다. 광산에 도착한 주인공의 외로움이 내게로 전이된다. 갱도의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그의 이동은 추락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동행의 존재는 그를 혼자 걷게 하지 않았고, 충동으로 치닫지 않도록 해주었다는 깨달음에 이른다. 갱도의 바닥에서 만난 야스씨가 중요한 의미가 되듯, 우리는 절망의 가장 밑바닥에서 큰 전환을 만나기도 한다. 사람으로 인해서! 그리고 갱도에서 올라가는 것이 더 힘든 것처럼, 삶의 제자리로 가는 길도 멀고 힘이 든다. 그럼에도, 돌아가려는 의지를 갖게 된다. 갱부의 삶을 엿본 주인공은 제자리로 돌아갔을까?
“손을 놓치기라도 하면 시커먼 어둠 속으로 거꾸로 곤두박질칠 것이다. 놓치지 않으려고 하면 어깨가 빠질 것만 같았다. 나는 일곱 번째 사다리의 중간쯤에서 화염과 같은 숨을 내뱉으며 노동의 어려움을 절감했다. 그러자 뜨거운 눈물이 눈 안 가득 차올랐다.”(26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