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루시 바턴 루시 바턴 시리즈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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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우골리노와 아들들>의 조각상, 이 소설을 장악하고 있는 이미지다. 왜 주인공 루시는 이 조각상에 마음이 붙들려 있었던 것일까? 처음 이 조각상이 눈에 들어온 순간 그녀는 , 하고 속으로 외쳤다.”(103p) 13세기 이탈리아, 권력싸움 끝에 아들들과 함께 탑에 갇힌 우골리노와 아들들은 굶어 죽었다. 고통을 견디다 못한 아들들이 자신들을 먹어달라고 애원하는 장면이다.(이 이야기는 각색된 것으로 그의 시체에서는 육식의 흔적이 없었다고 한다.) 루시는 그 조각을 보기 위해 몇 번이나 그 미술관을 일부러 찾아갔다.

<Ugolino and His Sons>, Jean-Baptiste Carpeaux(French, 1872-1875), 대리석, 1865-1867


두 번째 이미지는 병실 창밖 밤이면 환한 불빛이 기하학적으로 밝혀지는 크라이슬러 빌딩의 풍경”(9p)이다. 병실을 찾아온 어머니와 4일 동안 병실에서 기억의 아픈 파편들과 대비를 이룬다. 가난한 유년 시절에 무지할 수밖에 없었던 화려한 세상, 자신에게 꽂히던 사람들의 무심하고 차가운 시선을 상징하고 있다고 느껴진다. 지독한 가난, “너희 식구들한테서는 냄새가 나”(18p)하고 달아나던 아이들, 배고픔, 방임과 체벌, 유기와 폭력의 기억들과 겉도는 대화의 대조는 아직 치유되지 못한 상처가 있음을 알려준다.

 

이따금 예고 없이, 부모님이 충동적으로 사정없이 우리를 때리기도 했는데때리는 사람은 대체로 엄마였고, 대체로 아빠가 보는 데서였다지금 생각해보면 우리의 푸르죽죽한 피부와 침울한 태도를 보고 그 사실을 눈치 챈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19p)

 

고립되고 지적 성장에 있어 자극과 도움을 받지 못했던 그녀는 예절, 말의 뉘앙스, 눈초리의 의미들에 대해 스스로 터득해 갈 뿐이었다. 그녀는 그런 일에 무지했었다. 시간이 흐른 뒤 길을 걷다 떠오른 기억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음과 자신의 유년이 얼마나 어두웠는가를 깨닫는 순간의 묘사는 가슴이 저리도록 아름답다. 역설적이다.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어쩌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거라고. 하지만 햇살이 내리쬐는 보도를 걷거나 바람에 휘는 나무 우듬지를 볼 때, 또는 이스트 강 위로 나지막이 걸린 11월의 하늘을 바라볼 때, 내 마음이 갑자기 어둠에 대한 앎으로 가득 차는 순간들이예기치 않게찾아오기도 한다. 그 앎이 너무 깊어 나도 모르게 소리가 터져 나올 것 같고, 그러면 나는 가장 가까운 옷가게로 들어가 낯선 사람과 새로 들어온 스웨터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21p)

 

사람들도 이런 기억의 방문을 받으면서 통과해나가겠지만 그들은 공포라는 감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것처럼 보인다. 자신은 타인을 잘 알지 못하고, 삶은 많은 부분이 추측으로 이루어진 듯하다는 그녀의 생각이 슬프다.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지 조차 알지 못했던 소녀가 유년의 루시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전쟁의 고통스런 기억으로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도 가둬두었다. 그녀가 갇혀 있곤 했던 트럭에서의 기억은 모호하고 희미하지만 존재의 그림자로 남아있어 순간순간 두려움으로 튀어 나온다. 그녀의 기억 속의 집은 갇힘, 돌아가면 다시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아 두려운 장소였다.

 

추수감사절이라 집에 돌아온 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대학생활이 꿈일까봐 두려웠고, 눈을 뜨면 다시 이 집에서 영원히 머물게 될까봐 두려웠다. 그렇게 되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생각했다. 안 돼. 그 생각을 한참 하다 나는 겨우 잠이 들었다.”(35p)

 

외로움은 루시가 맛본 인생의 첫 인상이었고, 그것은 숨어 있다가 존재를 일깨워주곤 했다. 그런 그녀는 나는 늘 낯선 사람들의 친절에 의지하며 살았어요”(98p)라고 한 블랑시 뒤부아의 대사를 기억한다. 그 대사처럼 그녀는 사람들의 친절에 위로를 받고 눈물을 흘린다. 헤일리 선생님, 제러미, 몰라, 세라 페인, 그리고 매일 병실을 찾아오는 친절한 의사.

 

우연히 만났던 소설가 세라 페인의 워크숍에서 참여하고, 세라페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루시를 격려한다. 그것은 학대이야기가 아니라 사랑 이야기이고 전쟁에서 저지른 일 때문에 평생을 하루도 빠짐없이 괴로워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124p)라고 하며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 흔들리지 말고 쓰라고 한다. 그러나 세라 페인의 글 역시 뭔가를 피해 빗겨 서있는 느낌을 준다. 그렇게 사람들은 스스로를, 자신의 상처를 직면하기 어렵다. 작가 엘리베스 스트라우스 자신의 고백이기도 하다.

 

작가가 되려면 냉혹해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진정 냉혹함은 나 자신을 붙잡고 놓지 않는 것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게 나야, 나는 내가 견딜 수 없는 곳일리노이 주 앰개시에는 가지 않을 거고, 내가 원하지 않는 결혼생활은 하지 않을 거고, 나 자신을 움켜잡고 인생을 헤치며 앞으로, 눈먼 박쥐처럼 그렇게 계속 나아갈 거야!”(204p)바로 이것이 그녀가 생각하는 냉혹함이다.

 

<우골리노와 아들들> 조각을 바라보던 그녀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도 알고 있겠구나하고 그 조각가 말이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103p) 라고. 무엇을 알고 있었다는 것일까?

 

딸에게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절대로 하지 못하는 엄마, 과거에 딸에게 했던 잘못을 입에 올리지 조차 못하는 엄마는 지인들의 실패한 결혼과 불행에 대해서만 이야기 한다. 겉도는 이야기 속에서 엄마의 진심은 무엇일까? 엄마가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찾아간 딸에게 제발 가달라는 애원을 하는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죄의식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게 된다. 조각가가 알고 있었던 것은 그것일까?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며, 입을 찢고 있는 우골리노의 고통을! 조각을 바라보는 은밀한 순간 그녀가 조각상에서 얻은 사실은 우린 모두 불쌍한 인간”(104p)이라는 것이다.

 

누구나 상처를 갖고 있다고 말하면 너무 상투적일까? 하지만 누구나 상처를 갖고 있다. 치유 되었는가 아닌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가족으로부터 전혀 사랑과 돌봄을 받지 못했던 그녀가 의지한 것은 오히려 낯선 사람들의 친절이었다. 루시의 치유는 자신을 바라보는 냉혹한 시선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자신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냉정함이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다.” 이제 병실 창밖의 크라이슬러 빌딩의 불빛처럼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도 당당할 수 있다.

자신을 가두었던 기억들로부터 자유를 얻은 사람은 고백한다.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2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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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28 00: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서 루시의 마음이 느껴져서 힘들었던 기억이 나요. 배움의 발견이란 책 속 주인공과 닮았단 생각도 했었지요. 문장들 다 좋지만 특히 마지막 두 문장 넘 와닿습니다 그레이스님 ~~

그레이스 2021-12-28 00:31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저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문장들이 아름다워서 더 슬프구요ㅠ

scott 2021-12-28 00:3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우리 모두 상처 받은 인간 ㅠ.ㅠ
루시 바턴 작가님의 자전적 스토리!
그레이스님 리뷰는 언제나 내게 감동을 ^ㅅ^

그레이스 2021-12-28 00:46   좋아요 4 | URL
자려고 하다가 댓글 달아요.^^
감사해요 ~~♡

새파랑 2021-12-28 06: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자전적 느낌이 강하게 드네요. 상처 없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받아들이는 정도는 다 다를 것 같아요. ‘모든 생은 내게 감동을 준다‘ 너무 공감가고 멋진 말이네요~!!

그레이스 2021-12-28 06:57   좋아요 5 | URL

새로운 풍경 속에 있는 그녀의 말에 감동했습니다.
작가는 루시 바턴이기도 하고 세라 페인이기도 한듯요.

다락방 2021-12-28 09:4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루시 바턴을 두 번 읽었거든요. 그런데 그레이스 님의 이 리뷰를 보니 완전히 새로운 루시 바턴을 읽은 느낌이에요. 이 리뷰를 읽은 후에 읽는 루시 바턴은 또 새로울 것 같아 다시 루시 바턴을 보고 싶네요. 그러고보면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야말로 정말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독한 가난에 대해서 썼지만 그것에 대한 작가 개인적 감정이나 관심은 떨어뜨려 둔 것 같아서요. 아 또 읽고 싶네요, 정말.

그레이스 2021-12-28 10:10   좋아요 3 | URL
다락방님 읽으신 감상을 보고 싶어요
서재에서 찾을 수 있겠죠?
제가 워낙 늦게 읽어서...^
감사합니다 🍊

공쟝쟝 2021-12-31 15:30   좋아요 2 | URL
저도... 동감해요... 제게는 올해의 발견이었던 <루시바턴>
루시바턴에 나오는 이미지들을 이렇게 그레이스님의 소개로 읽으니까, 정말... 감동이네요... ㅜㅜ 그리고 진짜.... 아...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까 싶고, 이렇게 멋지게 독해해내는 이웃이 있어 좋고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12-31 16:28   좋아요 1 | URL
공쟝쟝님의 말씀이 더 감사합니다.
몇시간 남지 않은 2021년 책읽기로 마무리하시겠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레이스 2021-12-28 11:1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지금 보니 오타와 비문 작렬!
수정하면서, 역시 밤에 쓴 편지는 부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ㅎ
이런 글을 읽고 댓글 달아주신 분들께
感謝萬萬입니다. ;;

희선 2021-12-29 02: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상처없는 사람은 없겠지요 어릴 때부터 사랑 많이 받은 사람도 있겠지만, 살면서 다른 사람한테 상처받기도 하겠습니다 그런 걸 마주하면 모든 삶이 감동을 주는군요 그런 걸 느낀다면 좋을 텐데...


희선

그레이스 2021-12-29 19:56   좋아요 3 | URL
직면하는게 쉽지 않으니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많겠죠. 저도 쉽지 않은것 같아요. 글을 쓸때 저 자신을 보면.

scott 2022-01-07 17: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 추카!!
탑에 갖힌 우골리노가 용돈을 줌요 ^ㅅ^

그레이스 2022-01-07 18:55   좋아요 3 | URL
굶주린 그에게서?^^ㅋㅋ
감사드려요~

mini74 2022-01-07 17:2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래이스님 축하축하 ~ 무슨 책 사실지 궁금해요 ㅎㅎ

그레이스 2022-01-07 18:56   좋아요 4 | URL
살 책이야 많죠!
고민해야할듯요 ㅋ
감사합니다

새파랑 2022-01-07 17: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축하드려요~!! 그레이스님 글은 뭔가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어요 ^^

그레이스 2022-01-07 18:54   좋아요 4 | URL
감사해요~^^

청아 2022-01-07 18:5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장바구니 담았어요~!!당선 축하드려요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2-01-07 19:02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물감 2022-01-07 20: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해요 ㅎㅎ
기회되면 이 책도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당

그레이스 2022-01-07 21:45   좋아요 2 | URL
물감님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1-07 20: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전 지금 올리브 키터리지를 읽기 시작했어요.읽고 나면 이 책도 읽어 보려구요^^

그레이스 2022-01-07 21:45   좋아요 2 | URL
예~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22-01-07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과 기분 좋은 금요일 되세요.^^

그레이스 2022-01-07 21:45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

thkang1001 2022-01-07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1-07 21:4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초란공 2022-01-07 21: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이제 리뷰 쓰기 활활 불타실듯요^^

그레이스 2022-01-07 21:44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러블리땡 2022-01-08 00: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좋은 밤 되세요 ~

그레이스 2022-01-08 09:16   좋아요 2 | URL
감솨합니다
좋은밤이었습니다^^
북플도 못 들여다보고 잤네요~
좋은 주말 되세요~♡

페넬로페 2022-01-08 00: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축하드려요.
같은 책 2권의 투혼입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2-01-08 09:19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연말연초에 넘 바빴는데 리뷰 상금주시니 감사하고 ㅎㅎ
책 사들이고 더 바쁠듯요 ㅋㅋ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1-08 09:18   좋아요 3 | URL
아아!
같은책?!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한 권은선물해서 리뷰상금 받았나봐요.~♡

희선 2022-01-08 01: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축하합니다 어쩐지 살면서 자신과도 화해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레이스 님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2-01-08 09:38   좋아요 2 | URL
끝이없죠 ㅠ
우리는 계속해서 자신에게 잘못하니까...!
감사합니다~~♡

bookholic 2022-01-08 18: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2022년 쭉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2-01-08 22: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제 알라딘 서재 글쓴지 1년 됐으니(1년적 쓴 글들 알라딘에서 알려주는데 못읽겠더라구요^^)
새내기는 벗었죠ㅋㅋ
감사합니다~
북홀릭님 2022년도에도 함께 쭉 이어가요~♡

독서괭 2022-01-09 23: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2-01-09 23:15   좋아요 0 | URL
감사드려요 ~♡

하나의책장 2022-01-10 00: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2-01-10 05: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독서괭 2024-10-08 2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앙 저 루시바턴 읽고 그 조각상이 대체 뭔지 궁금해서 검색해봐도 못 찾았는데! 여기 딱 적어두셨었군요. 이제야 뭘 알았다고 한 건지 좀 이해가 됩니다. 뒤늦게 감사합니다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4-10-09 10:31   좋아요 1 | URL
도움이 되셨다니 기뻐요~
감사합니다 ~~♡
 
목신의 오후 (앙리 마티스 에디션)
스테판 말라르메 지음, 앙리 마티스 그림, 최윤경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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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욕망, 슬픔...을 상징적인 언어로 그려낸 말라르메의 시 위에, 말을 덜어내고 압축하듯 마티스는 색과 선들을 제거하고 에칭한 곡선들로 변주한다. 상징계의 언어로 전달할 수 없는 상상계의 이미지를 전하듯 곡선과 곡선이 마주치고 빗겨가며 의미를 생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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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23 10:1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드디어 받으셨군요 그레이스님 *^^* 축하드려요 ~ 상징계와 상상계라 넘 멋진 비윤데요~

그레이스 2021-12-23 12:02   좋아요 1 | URL
^^
받았습니다.
읽어보니 마티스의 그림에 더 눈이 가네요.
잠시 라깡에게 양해를...!^^

바람돌이 2021-12-23 10: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100자평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지금 느낌요!!!

그레이스 2021-12-23 12:02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ㅎㅎ

scott 2021-12-24 11: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행복 가득 !
메리 크리스마스!!

🎄 ℳ𝒶𝓇𝓇𝓎 𝒞𝓇𝒾𝓈𝓉𝓂𝒶𝓈 🎅🏻
  ∩ ∩  / ̄`>O
  い_cノ (ニニニ)
 c/・・ っ (>∀<* )
 (˝●˝ )___とと )
  ヽ  ⌒、 |二二二|
  しし-し ┻━┻

그레이스 2021-12-24 13:08   좋아요 2 | URL
스콧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 🎅

페크pek0501 2021-12-24 1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목신의 오후가 있는 시집 읽은 적 있어요. 말라르메 맞아요. 그때 설레며 시집을 펼쳤던 기억이 있어요. 좋은 시간 많이 가지시길 바랍니다. ^^

그레이스 2021-12-24 13:10   좋아요 3 | URL
예~
감사합니다.
페크님도 좋은시간 되시길 바래요
메리 크리스마스 🎄 🎅

서니데이 2021-12-24 2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표지의 그림이 마티스 라서 앙리 마티스 에디션인가봅니다.
그레이스님,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
날씨는 많이 춥지만, 가족과 함께 따뜻하고 좋은 크리스마스 보내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그레이스 2021-12-24 23: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말라르메의 시 중에서 마티스가 선집을 만들면서 판화를 넣었어요. 수록된 시 중 목신의 오후를 시집의 제목으로 붙이고..

서니데이님도 메리 크리스마스 🎄 ~

서니데이 2021-12-25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크리스마스 잘 보내셨나요.
날씨는 오늘 더 추운 것 같아요.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메리크리스마스.^^

그레이스 2021-12-25 21:14   좋아요 0 | URL
서니데이님도 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
메리 크리스마스 😁 🎄
 
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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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청원의 대상이 된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드라마 여주인공의 이름이 원래 영초였는데 영로로 바뀌게 된 이야기까지. 집에 꽂혀있던 영초언니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몰입되었으나 피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부채의식 같은 감정이 삐죽삐죽 살아나서 불편하고 괴롭기 때문이다.

 

고려대 교육학과 76학번 서명숙은 제주도 출신이다. 4·3을 겪은 변방의 섬에서 긴급조치 9호를 발동한 이듬해에 서울의 대학에 합격했다. 학교 신문사에 입사한 당시 휴교령이 내려지고 학교 안에는 그들을 감시하는 사복경찰들이 상주하는 상황이었다. 기사는 검열을 거쳐 수정되고, 대체를 반복하며 스스로 자기검열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홍보관 건물에서 자주 마주치곤 했던 낯익은 중년 남자의 정체를. 그 남자는 중앙정보부에서 업무 협조차 신문사로 파견 나온 요원이었다. 그 말고도 자주 눈에 띄었던 또다른 중년 남자는 우리 대학 관할인 성북경찰서 정보과 형사였다. 일개 대학신문사 주변이 이럴진대 방송사나 신문사의 검열은 오죽할까 싶었다. 우리에게 전달되는 뉴스들은 과연 얼마나 진실된 것일까?”

(44p)


첫 여성편집국장을 꿈꾸던 그녀는 끊임없는 자기검열을 경험하면서 대학 내의 기득권이자 귀족 집단으로 스스로 타협하고 안주하는 건 아닌지 자문하며야학과 편집국장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던 시점에 천영초라는 선배를 만난다. 그녀로부터 본 회퍼의 옥중서신과 시몬 베유의 평전 불꽃의 여자와 전태일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받는다. 서명숙은 야학에 투신한다. 영초선배와 함께 살면서 그녀의 따뜻함과 역사의식과 정의감에 젖어갔다. 여자들의 모임이 형성되고 박경리의 토지를 읽고 우리 민족이 걸어온 길을 되짚기도 하고, 시몬 드 보부아르의 2의 성을 읽으면서 한국의 여성이 맞닥뜨린 현실을 통탄하기도 하고,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을 읽으면서 유신체제를 깨뜨리지 못하는 자신들을 되돌아보기도 했다.”(58p)

 

그들 모두 투사로 태어난 것은 아니었다. 경찰간부의 딸, 의사의 딸,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딸, 고단한 삶을 사는 반공주의자 어머니의 딸이었다. 자신이 살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모른척 외면하고 살고 싶은 캠퍼스의 사랑을 꿈꾸던 학생들이었다. 그때를 돌이키며 저자는 <오래된 정원>에서 주인공이 딸에게 말하는 장면을 떠올린다.

그때는 자기만 행복하면 왠지 나쁜 놈이 되는 시대였거든, 그래, 바보 같았던 거지……

(73p)

그 시절의 그들이 그랬다. 아니, 혼자만 행복해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시절이었다고 한다.

 

유인물을 팔이 아프도록 인쇄해서 교정에서 뿌리며 독재타도를 외치던 그들은 잡혀가서 모진 고문을 받고 풀려나고 다시 잡혀가기를 반복했다. 그들이 풀려나와 들려주는 고문이야기는 너무 두렵기만 하다. 영초가 체포되고, 교생실습을 위해 제주에 내려와 있던 서명숙은 서울의 안가로 끌려가 육체적 정신적 고문을 당한다. 그리고 1년의 수감생활을 한다. 유신이 막을 내리고 잠깐의 서울의 봄은 끝이 나고, 광주에서의 비극적인 뉴스를 접하는 영초는 다시 이 소식을 알리기 위해 유인물을 찍어내고 도피와 체포, 수감 생활을 거듭한다. 결혼을 한 후에도 여전히 불행한 삶을 살던 영초는 기자로서 바쁜 삶을 살고 있는 서명숙과는 달리 한국에 적응하지 못하고 캐나다 이민을 가지만, 행복은 잠깐이고 육체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운동권 출신 소수 인사들의 뒤에 가려진 천영초, 그녀의 남편 정문화와 같은 많은 사람들은 불행한 역사를 끌어안고 함께 불행한 삶을 살았다. 모진 고문을 받고 출소 후에 서명숙이 회복되기까지의 시간 동안 그녀의 어머니가 겪은 아픔 역시 그들의 가족들의 겪었을 고통을 말해주고 있다.

 

감옥 간 것보다 돌아온 뒤가 더 힘들었저. 감옥은 겅해도 언젠간 나오겠지 하는 희망이라도 있어신디, 정작 돌아와보난 몸도 마음도 다 망가져부난. 창도 어멍한티 큰소리는 쳤지만 네가 장차 사람 구실 제대로 헐 건가 걱정했주.” (228p)

 

풀각시 같던 영초언니에게 하는 헌사로 글을 마무리 하며 고대에 글 잘 쓰는 4대 문장가 중의 하나라고 자화자찬하며 웃던 얼굴을 떠올리는 장면에서 마음이 아팠다. 그들이 선택했고 갔던 그 길에 대한 긍지마저 앗아가지 않기를. 그저 잠시라도 행복했던 시간들만 남기를.

 

드라마와 관련된 논쟁들을 읽으며, 강경하게 방영중단을 외치는 쪽도, 그들을 비난하는 쪽도 아픈 역사를 품은 우리의 비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논쟁이 있는 것 자체가 아직 치유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지닌 역사의식, 세계관을 드러내게 되어있다. 그저 소설일 뿐이야, 영화일 뿐이야, 드라마일 뿐이야 라고 한다면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읽을 것이고, 볼 것이기 때문에 의식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작가가 책임질 일이다.

 

제주에 가면 서명숙이 만들었다는 올레 길을 걷고 싶다. 그녀가 고향에 내려가 치유를 경험한 자연이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다.

 

그 시절 내게 가장 큰 위안을 가져다준 건 고생했다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이 아니라 말없는 자연이었다. 지금은 올레 7코스로 유명한 외돌개 주변의 솔숲은 가장 사랑했던 공간, 오래 머물던 곳이었다.”

(2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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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20 20:43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모진 고문끝에 영양실조로 돌아가셨죠 남편분이. 동참하진 못했지만 그 시대룰 살진 않았지만 그래도 감사한 마음 가집니다.

그레이스 2021-12-20 20:45   좋아요 5 | URL

맞아요!

얄라알라 2021-12-20 23:03   좋아요 2 | URL
저는 그레이스님께서 올려주신 리뷰 읽고 바로 ‘서명숙 이사장‘ 검색했습니다. 예전부터 이분의 기사는 접할 기회가 많았고 읽었지만 이런 역사는 알지도 상상도 못했네요,

감사한 마음 가지겠습니다.

그레이스 2021-12-20 23:08   좋아요 2 | URL
저도 집에 있었어도 안 읽고 있다 우연히 듣고 몇시간만에 읽었어요
서명숙님도 당시 모든 분들도 고초가 대단했다는 생각입니다.
그 위에 현재의 시간이 있구요

scott 2021-12-20 20:52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그 올레길 걸어 봤는데
이런 사연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ㅠ.ㅠ

그레이스 2021-12-20 20:54   좋아요 5 | URL
그러게요
저도...!

청아 2021-12-20 21:3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어제 kbs에서 오래된 영상을 잠시 봤는데요 전두환씨가 방송국에가서 담배피우며 이야기하고 국장?은 옆에서 쭈그리가되어 굽신굽신하더라구요. 말없는 자연이 위안이 되었다는 말에 올레길이 슬프게 떠오릅니다.

그레이스 2021-12-20 21:35   좋아요 4 | URL
저도 올레길을 서명숙씨가 만들었다는 사실을 보고 새롭게 다가왔어요. 슬프기도 했구요
많은 사람들의 치유의 길이 되는데는 누군가의 경험이 있기때문이라는 생각입니다

새파랑 2021-12-20 22:27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안타까운 이야기네요 ㅠㅠ 올레길의 명칭 유례도 저런 사연이 있군요. 드라마 관련 논쟁이 있는지도 처음 알았네요. 관심을 가지고 지켜 봐야 겠습니다~!

그레이스 2021-12-20 22:52   좋아요 5 | URL
미리 시놉시스가 나왔는데 안기부 미화와 운동권 폄훼 내용이 있다고 하네요

희선 2021-12-22 0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이야기 조금 봤는데, 그 드라마인지... 그 글 대충 보기만 했군요 역사왜곡이 있다는 말이 있다는 말과 꼭 그렇지 않다는 말도 있었어요 자신만 잘 살기 어려운 시대였다니, 지금은 정치는 아니지만 코로나19로 그런 시대가 됐네요 예전에 싸운 사람이 있어서 지금 같은 세상이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1-12-22 06:32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드라마 역사왜곡 논쟁을 보며, 여전히 건드리면 성이 나는 상처를 확인했습니다

han22598 2021-12-29 04: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마..유시민이 추천해서.. 저 이거..몇 년전에 읽었던 것 같은데, 우리나라 70-80년의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제대로 평가 받아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드라마로 나왔나 보네요..

그레이스 2021-12-29 07:19   좋아요 0 | URL
이 소설이 드라마로 나온게 아니라 민주화 운동을 했던 학생들중 간첩이 있었다는 메시지를 전달받을 수 있는 드라마가 방영되고 있나봐요
그 주인공 이름이 영초였다가 영로로 바뀌었다고...
 


연민은 그의 윤리적 어젠다 맨 앞줄을 차지한다.”고 석영중 교수는 말한다. (매핑도스토예프스키)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연민(compassion)이란 주제로 통합된다. 1846년 벨린스키와 결별 후 페테르부르크의 급진적인 젊은 지식인들의 모임에 참석하고 있던 시기, 1848년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젊은 시절에 쓰여진 이 작품들에서 연민은 노골적이고 불안정한 방식과 흥분된 감정으로 전달되고 있다. 시베리아 유형(流刑) 시절을 지난 후, 그 주제(主題)는 가라앉아서 작품 저변을 묵직하게 흐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모스크바에서 자라고 청소년기 이후 줄곧 페테르부르크에 살았던 도시의 작가이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투르게네프와 톨스토이, 막심 고리키와 같은 체취를 느낄 수 없다고 E.H.카는 말한다. 그의 공간감(空間感)’은 그들과 다르다.

닫혀진 방 안에서는 생각조차 닫혀진 것이 된다고 그의 작품 속의 한 인물이 말하고 있지만 이 말은 그의 많은 소설의 모토로 쓰여 진다. 톨스토이 소설이 독자에게 주는 지배적인 인상은 공간감(空間感)이라고 최근의 한 비평가는 말한 바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효과는 거의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닫혀진 느낌을 주는 데 있다. 자연의 넓은 시야에 결코 눈을 두지 않는 그의 관찰력은 무한한 인간의 기상에로 더욱 응축되어 간다. 대부분의 위대한 작가에게는 일종의 사색적 거리감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생활에서도 작품에서도 대도시의 협소한 구속적인 긴장의 희생자였던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이러한 거리감이 전혀 없다.”

(14p, 도스토예프스키 평전E.H.카)

 

한편, 석영중 교수는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흐르지 않는 시간과 막힌 공간은 정체된 인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돈, 죽음 같은 삶에 대한 환유라고 말한다. 유년기 아버지가 의사로 재직한 모스크바 빈민병원 인근에 거주하며 목격했던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삶과 17세에 페테르부르크에서 홀로 살게 된 경험들이 미친 영향으로 본다. 그의 작품 죄와 벌에서 수없이 배회하는 페테르부르크의 거리가 주는 숨 막히는 폐쇄성을 떠올리게 된다.

 

약한 마음에서 사랑에 빠진 바샤 슘코프와 그의 절친 아르까지 이바노비치, 이 젊은이들의 불안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지극한 행복감을 느낄수록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는 바샤와 그가 떠난 후 삶의 허무를 느끼는 아르까지가 살고 있는 페테르부르크는 철권 황제 표트르가 조국 러시아를 선진 문명 수준으로 격상시키기 위해 건설한 도시다

다른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묘한 매력이과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지어진 거대한 바로크·로코코·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 유유히 흐르는 운하에 반사되는 다리와 가로들, 거기에 발트해에서 몰려오는 짙은 안개와 눈보라, 여름이면 며칠씩 계속되는 백야까지 더해지면 환상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53p 매핑 도스토예프키석영중)

그러나 석영중 교수가 말하듯, 환상적이라는 것이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 때에는 곧 최대의 약점이 된다.

 

강 양쪽 기슭의 모든 지붕들로부터 연기의 기둥이 교차하기도 흩어지기도 하면서, 마치 거인들처럼 차가운 하늘을 따라 위로 올라갔는데, 이 모습은 옛 건물 위로 새로운 건물이 세워지는 것처럼, 허공 위에 새로운 도시가 세워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강한 자든 약한 자든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의 움막이든 이 세계 강자들의 기쁨인 금으로 장식한 궁전이든 그들의 모든 집들과 함께, 이 황혼녘 이 세계 전체가 환상적인 마법의 세계, 꿈의 세계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환상적인 마법의 세계, 꿈의 세계는 곧 사라지고 연기가 되어 어두운 푸른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이런 기괴한 생각이 가엾은 바샤의 혼자 된 친구에게 찾아 들었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심장은 마치 이 순간 그가 이제껏 알지 못했던 어떤 강력한 느낌으로 인해 갑자기 끓어오른 뜨거운 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그는 이제야 이 모든 불안감을 이해하고, 자신의 행복을 견뎌 내지 못한 가엾은 바샤가 왜 정신이 나갔는지 알 것 같았다.”

(144~145p 약한 마음」)

 

오늘날 마천루가 세워지는 거대도시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불안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혼까지도 끌어들여서부동산 투자를 하고 전전긍긍하는 세태 속에서 이상주의자들은 길을 잃게 마련이다. 결이 다르지만 양쪽 모두 불면의 밤을 지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지구상에서 가장 추상적인 도시에서 젊은 몽상가들은 불안과 분열된 감정을 안고 길을 잃는다. 백야가 찾아오고 사람들이 동시에 여행을 떠난 후, 텅 빈 도시에서 몽상가의 불안은 더욱 극대화된다.

 

불안감이 꼬박 사흘 동안 나를 괴롭혔고 나는 그동안 줄곧 그 불안감의 원인을 알아내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았다. 집밖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고 (이 사람도 없고, 저 사람도 없고, 또 그 사람은 어디로 가버렸나?) 집 안에서도 도무지 좌불안석이었다. 이틀 밤을 나는 고민했다. 대체 나의 작은 공간에 무엇이 부족하단 말인가? 어째서 이 공간에 남아 있는 것이 이다지도 거북한가?…… 바로 그거다! 사람들이 나를 떠나 별장으로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들에게 나는 이방인인 것 같았고 실제로 나는 이방인이었다!”

(228~230p 「백야」)

 

이런 주인공이 거리에서 나스젠까와 같은 슬픈 여인을 만난다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낭만주의가 그렇듯, 네 번째 백야의 밤 그의 사랑은 보상받지 못하고 아프게 끝이 난다. “나의 밤들은 끝나고 아침이 되었다는 주인공의 독백은 환상이 끝나고 차가운 현실 속으로 돌아와 있는 젊은이에 대한 연민을 일으킨다. 그리고 , 천만에, 천만에!”로 시작되는 절규는 이상주의자의 운명과 같은 아픔을 전한다.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는 여인의 행복을 빌어야 하는 것은 몽상가가 짊어져야할 불행이다.

 

, 천만에, 천만에! 너의 하늘이 청명하기를, 너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행복과 기쁨의 순간에 축복이 너와 함께 하기를! 너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어느 외로운 가슴에 행복과 기쁨을 주었으니까.

, 하느님! 한순간 동안이나마 지속되었던 지극한 행복이여! 인간의 일생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310p「백야)

 

지극히 낭만주의적이지만 이런 마음이 흔하지 않은 요즈음 마음 한편을 흔드는 아픔을 느꼈다.

 

꼬마영웅에서 보여주는 11세 소년의 감수성과 유년시절 사랑의 감정은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유년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말하는 그 소년의 눈물, 크리스마스트리와 결혼식에서 원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16세의 신부, 정직한 도둑에서 아스따피 이바니치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에멜랴의 이미지에서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가 거칠지만 솔직하게 전달하는 연민을 읽는다.

 

연민은 가장 중요한, 어쩌면 유일한 인간 실존의 법칙이다

연민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전부다

-도스토예프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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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16 17:5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예프스키룰 표현하는 단어 중 하나가 연민인거 같아요. 글이 참 좋아요 그레이스님 *^^*

그레이스 2021-12-16 18:03   좋아요 5 | URL
항상 공감해주시고 칭찬해주셔서 감사해요~♡

새파랑 2021-12-16 18: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제가 애장하는 <백야>네요~!! 도선생님은 정신분석도 잘하시지만 이런 연민의 글도 너무 잘쓰셨더라구요 ㅜㅜ
소세키에 이어 도선생님 전작 하시는군요 ^^

그레이스 2021-12-16 19:01   좋아요 4 | URL
이미 읽었던 작품이 있어서 전작 리뷰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1-12-16 19: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젠 도스토옙프스키!!!!^^
묵직합니다.
연민.....
읽어봐야할 작가인데 말이죠^^

그레이스 2021-12-16 19:23   좋아요 4 | URL
언제 읽어도 좋은 작가입니다
많은 작가들에게 그림자를 드리운...
위대하면서도 연민을 자아내는 작가라는 생각입니다~♡

러블리땡 2021-12-17 00: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21년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 내년에도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그레이스 2021-12-17 07:5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러블리땡님도 한해 잘 마무리하시고 건강하세요
내년에는 더 행복하시길...!

희선 2021-12-17 02: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도스토옙스키 하면 도박으로 돈을 다 날려서 글을 썼다 생각하기도 했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군요 그때 사람을 가엾고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글을 썼네요 오래전에 쓰인 소설이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이 보는군요 저는 아직 못 봤지만...

그레이스 님 서재 달인 축하합니다 오늘부터 춥다고 하니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1-12-17 07:57   좋아요 3 | URL
희선님 감사합니다~
예술가들의 양면성이겠죠? ^^

고양이라디오 2021-12-17 10: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연민‘ 도스토옙스키를 잘 표현하는 단어네요! 도선생님 전작 읽고 싶었는데, <백야> 꼭 읽어볼께요.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12-17 10:53   좋아요 2 | URL
😀
초기작을 읽는 즐거움이 있어요~~!

파이버 2021-12-17 11:2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 도스토옙스키 작품은 단 한 작품도 읽지 못했는데, <백야>가 궁금해지네요 책의 분위기가 요즘 날씨와 어울려 보입니다.

그레이스 2021-12-17 11:30   좋아요 3 | URL
감사드려요~
백야 함 경험해보고 싶은데 🤔 언제쯤 가능할까요?!

thkang1001 2021-12-17 14:1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2021년 서재의 달인!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2022년에도 건강하시고, 하시고자 하는 모든 일이 잘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레이스 2021-12-17 15:00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구단씨 2021-12-17 14: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도끼 작가님의 책이 너무 어려워서요. 가지고 있지만 완독을 못했어요.
어제 겨우 일러스트로 재탄생한 죄와 벌을 읽었답니다.
근데 작품들 다 궁금하긴 해요. ^^

그레이스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1-12-17 15:01   좋아요 2 | URL
일러스트 리뷰 본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모나리자 2021-12-17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1-12-17 17:4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초란공 2021-12-17 2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죄와 벌>을 두 번째 읽을 때야 비로소 소설의 여기저기에서 ‘1아르신의 공간‘이 언급되고 있는게 눈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무덥고 질식할 것만 같은 여름 날씨가 시베리아와 대비되는 기후 같이 느껴졌구요.
사람에 대한 ‘연민‘에 주목하신 부분이 특히 공감이 됩니다. 문학전문가가 쓴 책들에는 <죄와 벌>이 공리주의니 무신론/유물론 같은 거창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저는 정작 ‘외로운 인간들의 모습‘이 줄곧 보였던 것 같았거든요. 제가 아직 소설을 읽는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가보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그레이스님의 글이 반갑구만요^^

‘사람에게는 공기, 공기가 필요하단 말이지요! ㅋㅋㅋ‘

그레이스 2021-12-17 22:28   좋아요 1 | URL
저도 반갑습니다 ^^
죄와 벌에 대한 감상 공감합니다.

han22598 2021-12-18 0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민. 그것이 그리스도교의 전부다˝
아........연민 요즘 제 마음에 그 마음이 사라져버린 것 같아요. 아 ㅠㅠ (그레이스가 필요한 것 같아요..22)

도끼옹 책....이제는 정말 읽어야 할지도요. ㅎㅎ그레이스도 서재의 달인!! 달인들의 축제의 날이네요 ㅋㅋ

그레이스 2021-12-18 08:52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연민,,,^^
함께 읽어요~~

페크pek0501 2021-12-19 14: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석영중 교수의 문학 강의를 유튜브로 듣곤 해요. 도스토에 대한 강의도요.
신문에도 기고하는데 멋진 분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1-12-19 14:06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저도 한번 들어봐야겠어요
 
매핑 도스토옙스키 - 대문호의 공간을 다시 여행하다
석영중 지음 / 열린책들 / 2019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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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예프스키가 성장했던 모스크바, 청소년기 이후로 계속 머물렀던 페테르부르크, 시베리아 유형지, 여행지들에 남긴 족적을 머릿속에 그린다. 도시의 역사와 작가의 공간, 생애, 작품들을 함께 병행시킨다. 이 도시들에서 그는 왜 멈춘 시간과 닫힌 공간 안으로만 들어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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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15 22: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별 다섯개 라니.ㅎㅎ 도스토옙스키를 따라 여행하는 글인가봐요. 저도 담아갑니다*^^*

그레이스 2021-12-15 22:34   좋아요 3 | URL
평전읽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어도 사진과 지도, 역사, 생애가 함께 병행하니 좋은데요?!

scott 2021-12-15 22:38   좋아요 3 | URL
석영중 교수님이 중앙선데이 연재 하셨을 때도 잼나게 읽었네요 ^^

그레이스 2021-12-15 22:39   좋아요 3 | URL

맞아요
그 잡지에 연재하셨다고 머리말에 써있어요^^

새파랑 2021-12-16 06:4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왠지 저는 읽어야 할거 같은데 ^^
갑자기 도선생님의 책이 읽고 싶어지네요~! 내년에는 도선생님 재독해야겠어요 ㅎㅎ

그레이스 2021-12-16 15:23   좋아요 4 | URL
재독까지!
응원합니다

쎄인트saint 2021-12-16 15: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2021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1-12-16 15:40   좋아요 4 | URL
감사합니다 ~^^
노란 앰블럼 ...♡

스텔라 2021-12-16 16:1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 ~♡
행복한 연말 되시고 내년에도 함께 즐독해요^^

그레이스 2021-12-16 18:1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스텔라님도 행복한 연말 되시길 바래요~

이하라 2021-12-16 16: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

그레이스 2021-12-16 18:1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독서괭 2021-12-16 16: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님도 저처럼 올해 처음이시군요^^

그레이스 2021-12-16 18:18   좋아요 1 | URL

방금 서재에 페이퍼 쓰느라 들어갔다 왔는데 노란 애블럼이 너무 뿌듯하네요 ...^^
감사합니다

모찌모찌 2021-12-16 17: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정말 재밌게 봤어요^^

그레이스 2021-12-16 18:19   좋아요 2 | URL
좋은 책을 같이 아는 기쁨!
감사합니다

얄라알라 2021-12-16 17: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축하드립니다^^ 북플 친구분들 이름을 한꺼번에 한 페이지에서 보니까, 굉장히 흐뭇하고 기분이 좋아집니다.

나 이런 사람이야. 이런 분들이 다 내 북플친님들이시라고~~~~!!

그레이스 2021-12-16 18:19   좋아요 1 | URL
맞아요
너무 좋은 분들을 만나 감사해요

서니데이 2021-12-16 17: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올해의 서재의 달인과 북플마니아 축하합니다.
행복한 연말과 좋은 하루 되세요.^^

그레이스 2021-12-16 18:34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행복하세요~

새파랑 2021-12-16 17: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달인의 달인 그레이스님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1-12-16 18:34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

고양이라디오 2021-12-17 10:3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재의 달인 축하드려요^^b

행복한 연말되세요^^

그레이스 2021-12-17 10:5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페크pek0501 2021-12-19 14: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거 한 권 들고 여행 가면 멋진 여행이겠어요. ^^

그레이스 2021-12-19 20:16   좋아요 1 | URL
그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