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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어 서점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초엽 지음, 최인호 그림 / 마음산책 / 2021년 11월
평점 :
모든 것이 생명의 가능성이고, 모든 생명이 소통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이 책 소설들의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SF의 이질감을 낯설지 않은 현재의 정서로, 행성간의 먼 거리는 소통으로 좁히고 있다.
「선인장 끌어안기」
수술 후유증으로 접촉 통증을 앓고 있는 파히라를 돕기 위해 보내진 AI로봇 ‘나’는 이전에 보내진 보조 로봇들이 회복불가능 상태로 파괴되어 돌아왔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의 임무는 파히라를 돕되 파괴되지 않는 것. 모든 동선이 접촉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미로처럼 설계된 이 집에서 ‘나’가 할 일은 선인장을 돌보는 것이다. 접촉통증을 앓고 있는 휠체어 장애인 파히라가 가시가 돋힌 선인장을 키우는 것은 상징적이다. 통증 때문에 날이 서있는 파히라를 가리키는 것일까?
파히라가 휘두르는 폭력을 피하는 ‘나’를 향해 그는 불만스럽게 말한다. 주인을 그렇게 피해도 되는 거냐고, 어차피 너는 닿아도 안 아프고 부서져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지 않느냐고. 여기에 대한 ‘나’의 대답이 인상적이다.
“아프지는 않죠. 하지만 부서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느껴요.”(20p)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것도 일종의 고통인가? 내가 겪는 것과 비슷해?”라고 파히라는 묻는다. 파히라가 타자, 보조로봇의 고통을 인식하는 소통의 순간이다.
결심한 듯 선인장을 껴안고 쓰러지는 파히라의 “고통이 곧 사랑”이라는 깨달음은 안타깝다. 마음의 상처로 가시가 돋혀 서로를 찔러대는 사랑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타인을 끌어안는 것은 선인장을 끌어안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이다.
「#cybog_positive」
사고로 눈을 잃고 기계 눈 아이보그를 장착한 리지의 이야기는 작가의 『전작 사이보그가 되다』를 떠올리게 한다. 리지 눈이 조명에 따라 다양하게 색이 바뀌고 빨려들 것 같은 아름다운 눈을 보며 사람들은 찬사를 보낸다. 아이보그 사는 자사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제안하고 리지는 고민에 빠진다. 사람들은 오히려 인공 눈이 더 아름답다고까지 말하지만, 사실 그 눈에 자신의 생체에 적응하기까지 힘든 기간이 걸렸다. 더 좋은 제품이 나올 때마다 진물이 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녀는 “모든 사이보그는 아름답다는 말이 정말로 사이보그들을 더 행복하게 말들 것인지”(40p) 확신이 없었다.
사이보그들에게 생체와 잘 조화를 이루는 기계보다는 아름다움에 더 치중하고 있는 개발사들과 사람들을 보며,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본다.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고 있나? 그 기준과 가치는 불변의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떠올리게 된다.
「행성어 서점」
사어가 되어가고 있는 언어로 기록된 책을 파는 어느 행성의 서점, 범 우주 통역 모듈이 인류의 뇌에 설치되어서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도, 행성어 서점의 책들에 쓰인 행성 고유의 언어는 ‘해석되지 않는’ 미세 패턴이 새겨진 글자로 인쇄되어 있다. 여기의 책들은 읽히기 위해서가 아닌 관광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 그곳에 나타난 여교수는 전뇌 통역 모듈 부적응자다. 이 행성어가 모국어인 화자와 교수는 모듈을 통해서가 아닌 자신이 습득한 언어로 소통을 한다. 「데이지와 이상한 가계」에서처럼 기계를 통해서 또 다른 결의 타자를 만나는 것이 아닌 직접 보고 듣는 타자와의 소통을 경험한다. 화자인 ‘나’는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데이지와 이상한 가계」에서처럼 기계를 통해서 또 다른 결의 타자를 만나는 것이 아닌 직접 보고 듣는 타자와의 소통을 경험한다. ‘나’는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소통은 그런 것이리라.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하더라도, 나는 그를 만나서 기뻤다.”(73p)
언어는 그런 것이리라. 언어는 생각을 만들고 말이 되어 나가고 타자의 말이 들어오는 길을 만들며 전율하게 한다. 니컬러스 에번스의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가 생각난다. 지구상에서 사라진 언어에 대한 이야기.
「소망 채집가」의 내용은 상징적이다. 과거의 인류가 꿈꾸어 온 미래의 ‘나’의 모습은 데이터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모습은 빠른 속도로 변모했고, 그들이 소망하고 지금까지 만들어 온 것이 바로 ‘나’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나’는 그 속에 있는 오래 전 사람들의 소망을 발견하고 그들과 소통한다.
「애절한 노래는 그만」에서 미래의 수지와 현희는 주기적으로 유행한 발라드를 통해 과거 사람들이 정서를 공감해 보려고 한다.
“로맨스는 시대의 발명품. 모든 사랑이 애절한 건 아니지만, 함께 공유할 애절한 사랑의 기억이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모양이다.”(91p)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이해한 듯하다. “근데 …… 잘 부르긴 하네.”(91p)
「포착되지 않는 풍경」에서 리키는 행성 뮬리온-849N을 사진에 담기 위해 며칠 동안 온갖 시도를 해보지만 실패한다. 그 행성의 신비로운 안개를 고스란히 담을 방법을 강구해보지만 방법을 찾지 못한다. 행성의 생태보존 담당자는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리키에게 경고한다. 더 이상 행성 환경을 교란시키지 말라고. 여기서 이 안개는 단지 물질이 아닌 생태계를 이루는 생명 현상임을 추측하게 된다. 리키는 촬영을 중지하라는 경고에 항의한다. “그건 미학적 낭비”(103p)라고.
오늘 읽은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작품 사진으로 보이십니까?…‘조류 학대’ 현장입니다]라는 기사였다.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새 둥지의 은폐물을 제거하고 둥지 입구를 넓히고 심지어 둥지를 옮기는 등 조류사진작가들의 횡포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http://naver.me/xbL11mSC
자연과 소통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모습이다.
도망나온 클론 소년이 늪지의 균사체와 특별한 방식의 대화로 생존하는 이야기(「늪지의 소년」), 위험등급 구역으로 파견된 과학자가 그 지역의 사람들의 삶에 공감함으로 파괴될 위험으로부터 그 구역을 구하는 이야기(「오염구역」), 어느날 우연히 들어간 음식점에서 만난 지구에 정착한 외계인 사장과의 대화(「지구의 다른 거주자들」) 등은 서로 다른 존재들의 만남과 소통 기억을 소설의 소재로 삼고 있다. 불편하다거나 위험하다고 생각된 존재와 존재 방식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래도 어느 순간 다현은 인생의 쓴맛이라는 비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어디선가 그런 맛이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 때면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사장과 나누었던 기묘한 점심을 떠올리곤 한다.”(206p)
시몬 사람들의 얼굴은 감염으로 인해 가면을 쓴 것처럼 되어 버렸다. 그들의 얼굴은 표정을 알 수가 없다. 이것 때문에 불편하거나 불행할 것이라는 짐작을 깨고 그들은 치료를 거부한다. 오히려 표정을 감출 수 있어 그 얼굴을 선택한다. 어차피 우리는 본래의 얼굴로도 가면을 쓴 것처럼 가장된 웃음과 표정을 갖기 때문이다. 가면 뒤에 진짜 얼굴이란 없다. 그들의 선택이 이해되면서도 여전히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마음을 숨기기 위해 가면을 선택하는 이들을 이끌어낸 작가의 생각이 짐작이 되어서. (「시몬을 떠나며」)
우리는 당황스러운 표정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는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가면 쓴 듯 속을 모르겠는 타인의 얼굴을 보면 벽을 느끼고 무섭기까지 하다.
마스크 벗은 맨얼굴이 당황스러운 순간이 잠시 걱정된다.
곧 파괴될지도 모르는 구역의 버섯으로 뒤덮인 아이들에게 공용어를 가르쳐야한다고 말하는 청년의 말이 라트나에게 기이하게 느껴지지만(173p) 그 언어는 외부와 소통하기 위한 생존수단이다. 잠시동안의 마주침과 짧은 대화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다른 존재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확장의 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