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통과한 사람은 역사, 현상,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항상 깨닫게 된다. 특별히 수용소나 학살의 피해자였던 사람들의 경우 그 상처는 풀어가야 할 과제가 되어 인간됨이란 존재의 문제에 천착하는 것을 보게 된다. 때론 그 경험이 굴레가 되기도 하고, 철학의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홀로코스트는 반복되는 문학의 한 소재가 되었고, 여전히 적응할 수 없는 역사의 장면이다.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가장 충격적이었던 책은 엘리 위젤의 벽 너머 마을새벽이었다. 아침에 교수형을 당한 소년이 저녁까지 숨이 끊어지지 않은 모습을 보며 신은 어디에 있는가?’라고 했던 누군가의 분노에 찬 신음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무리 중 누군가가 저 교수대에라고 했던 대답은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엘리 위젤이 194416살에 홀로코스트 수용소에서 경험한 내용이다. 지금도 게토, 인종청소, 수용소와 관련된 소설을 섣불리 잡지 못하게 한 책이다.

1945년 당시의 부헨발트 수용소 (아래쪽에서 2번째, 왼쪽에서 7번째가 엘리 위젤)




엘리 위젤보다 한 해 늦게 태어난 임레 케르테스 역시 1944년 15살에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가 다시 부헨발트로 이감되고 거기서 1945년에 풀려난다. 자전적 소설인 운명에 담은 이야기는 엘리 위젤과는 결이 다르다. 엘리 위젤의 기록은 기사를 쓰듯 자세히 묘사되어있다. 반면, 임레 케르테스는 15살 소년의 시선으로 기록하고 있다. 개인적인 고민에 빠져있던 십대 소년이 세상을 보는 가치관을 갖기도 전에 수용소와 같은 비참한 현실을 맞닥뜨리고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너무나 잘 표현했다. 사유보다는 감각으로 수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종전과 함께 부다페스트로 돌아간 소년의 혼란, 그제야 어렴풋이 인식하게 되는 모습으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임레 케르테스는 이 운명을 시작으로 4부작을 썼다고 한다. 좌절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 그리고 청산. 결국 나는 『좌절』을 펼칠 수밖에 없었고, 잊혀진 기억의 조각들을 이어붙이는 듯한 이야기 속에 갇혀버렸었다. 감당할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지닌 작가가 외부로부터 자신을 차단하고 내면의 자아와 끝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과 그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이들이 작가의 자아인 듯하다. 읽다가 앞으로 가서 다시 읽기를 반복한 끝에 읽기를 마치고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운명은 감동적이다. 좌절을 읽는다면 운명은 다시 새롭게 다가온다. 좌절을 읽지 않았다면 운명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없다. 자연스럽게 세 번째 책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를 펼치게 된다.



6월이라 그랬나? 의도하지 않았는데 전쟁관련 소설을 이어서 읽었다. 시작은 하인리히 뵐의 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였다. 아마도 그 전에 읽은 다다와 초현실주의봄의 제전이 그 시작을 만들었을 것이다. 독일군으로 2차 대전에 참전했던 하인리히 뵐의 경험이 담겨있는 소설이다. 그가 전범으로 비판 받을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는 전쟁 중 탈영과 같은 전쟁터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도들을 했다고 한다. 징병되어 원하지 않는 전쟁을 해야 했던 그의 삶은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까지 이르게 한다. 전후(戰後) 그는 전쟁 경험과 폐허를 주제로 한 작품들을 썼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읽어야 했고, 다시 열차는 정확했다를 주문했다. 어느 어릿광대의 전설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까지 읽을 계획이다.


엘리 위젤과 임레 케르테스, 하인리히 뵐과 귄터 그라스, 피해 집단과 가해 집단의 문학가들이다. 같은 시대를 통과했지만 서로 다른 경험을 했다. 엘리 위젤은 노벨 평화상을 나머지 세 사람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들은 글의 결은 다르지만 같은 질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왜 이런 고통에 놓이게 되는가? 이런 비참함은 어디에 근원을 두고 있는가? 인간은 본래 선과 악 어디에 속하는가?


만일 유대인과 독일군 신분이 서로 바뀌었다면 어땠을까? 임레 케르테스가 좌절에서 징집당한 군인과 간수(看守)로서의 경험을 통해 던진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어떠한 위치에 있든지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당신은 사형집행관입니까, 사형수입니까?"(417p,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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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6-26 21:0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저는 몽상가ㅎㅎ🖐
이 글을 읽으니 <좌절>을 읽고<운명>을 재독해 봐야겠다 마음먹게되네요.
어제 로맹가리의 글을 읽었는데
게토에서 탄생한 유대인들의 유머에 대해 공격적이기도하고 고통스런 현실을 누그러뜨리는 일종의 혁명이라고 하더라구요. 거기선
솔 벨로,아이작 바셰비스 싱어,맬러머드,브루스 제이 프리드먼, 필립 로스를 언급했어요.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갖게하는 끔찍한 전쟁이었음에도 이런 유머와 그들의 문학적 기록을 통해 인간의 무너뜨릴 수 없는 숭고함또한
보여주고 있는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2-06-26 21:13   좋아요 8 | URL
예!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문학은 인류의 놀라운 발명품이고, 위대한 유산이란 생각입니다.

그레이스 2022-06-26 21:31   좋아요 4 | URL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시군요.^^
저도 로맹가리 읽어야하는데...^^

페넬로페 2022-06-26 21:1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똑같은 경험이라도 국가, 나이, 성별등에 의해 다 다른 결과가 나올 것 같아요.
그렇지만 모두 다 피폐해지고 트라우마가 평생 간다는 것은 공통적이겠죠~~

그레이스 2022-06-26 21:21   좋아요 7 | URL
그래서 폐허문학이라고 이름 붙였나봐요 ㅠ
15살 16살이 이런 사건을 어떻게 담았겠나 싶어요;;
하인리히 뵐만 9살 많고 세사람은 비슷한 나이예요. 다른 예술가들도 있겠지만 이 네 사람이 연결이 되네요.

새파랑 2022-06-26 21:2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임레 케르테스의 <좌절>은 꼭 읽어야 한다는 말이군요~!! 첫번째 사진 너무 슬프네요 ㅜㅜ 그래도 왠지 저 속에서도 삶이라는게 느껴집니다~!!

그레이스 2022-06-27 08:05   좋아요 6 | URL
그리 잘 읽어지는 작품은 아니지만, 읽길 잘 했다는 생각입니다.
곧 리뷰하려구요^^

사진 너무 참혹한데 거기 엘리위젤이 있었다는 사실에 소름 돋았습니다.
수용자번호로만 불리던 존재가 자기 이름을 다시 갖게 되는 순간이죠.

그레이스 2022-06-27 08:12   좋아요 4 | URL
새파랑님 <운명>을 먼저 읽어야하고 <좌절>을 읽으셔야 하는데,,,, 아마 <운명>은 읽으셨죠?

새파랑 2022-06-27 08:28   좋아요 4 | URL
운명은 읽었습니다~!!

mini74 2022-06-27 09:0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도덕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ㅠ 소년이야기 너무 끔찍하네요 ㅠㅠ 운명 읽고 좌절 사놓고 읽다가 덮었다가 ㅠㅠ 덮밥도 아니도 ㅠㅠ ㅎㅎ 다시 힘내서 읽어봐야겠어요 그레이스님 ~~

그레이스 2022-06-27 09:09   좋아요 5 | URL
저도 <좌절> 오래 걸렸어요.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기도>는 수월하게 읽히네요. 작가의 생각이 넘 가슴아프네요

레삭매냐 2022-06-27 10: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엘리 위젤의 케이스는...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이스라엘
이 벌이는 폭압적인 통치에 대
해 옹호한 전력 때문에 선뜻
손이 가지 않네요.

하인리히 뵐의 <아담> 리뷰를
써야 하는데 선뜻 손이 나서질
않네요...

그레이스 2022-06-27 11:31   좋아요 4 | URL
그러게요
그래서 슬퍼요
인간은 자신이 지나온 시간과 상처안에 갇혀서 세상을 보게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돼요.
그래서 묻게 되는것 같아요.
나는 사형집행관인지, 사형수인지...!

바람돌이 2022-06-27 12:1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후 문학들의 중요 지점은 피해자 가해자가 아니라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하느냐, 그리고 그것을 개인적인 경험의 차원에만 두는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인간애 또는 보다 근원적인 사유로 발전시킬 수 있느냐 하는거라고 생각해요.
저 작가들이 그런 성취를 어느정도 이루었을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저는 지금 그동안 독일인의 입장에서 쓴 글들은 못읽어봐서 하인리히 뵐 부터 한번 읽어보려구요.

그레이스 2022-06-27 12:34   좋아요 4 | URL
예 맞습니다.
바람돌이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사유로 발전시키는 것!
작가의 일이기도 하고, 독자의 일이기도 하단 생각입니다.
👍

서니데이 2022-06-27 21: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 속 사람들 너무 말랐어요.
수용소라는 설명을 읽으면서 공포심을 느낍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좋은밤되세요.^^

그레이스 2022-06-27 21:36   좋아요 3 | URL
예!
비참하죠!
서니데이님도 좋은밤 되세요.

scott 2022-06-27 23: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임레 케레데스가 전쟁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직시 하는 관점이 좋았는데
막상 헝가리에서는 대다수 인들이 임레를 좋아 하지 않다는 거에 놀랐습니다
홀로코스트의 흔적을 이렇게 끊임없이 전세계에서 문학과 음악 영화로 재 탄생 시키는 문화의 힘이
부럽고
한 편으로 우리의 아픔은 잊혀지고 있는 것 같아
슬픈 ㅜ.ㅜ

그레이스 2022-06-28 10:38   좋아요 2 | URL
홀로코스트는 아무래도 더 오랫동안 예술의 주제가 되겠죠?
저마다 생각이 다르긴 하겠지만....
독일가서 소녀상 철거하라고 시위하시는 분들 ㅠ
집에 가서 더 배우라고 말을 들었다고 바뀔것 같지는 않고,,,
마음이 답답합니다.

희선 2022-06-28 03: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피해자와 가해자 처지는 바뀔 수도 있었겠지요 어릴 때 그런 일을 겪고 살아 남은 게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나이를 먹은 사람도 그때 일을 다 잊지 못하더군요 지금 사람은 그때 일을 소설이나 다른 글로 보기도 하네요 그 사람들이 썼기에... 썼다고 해도 그게 쉬운 일은 아니었겠습니다 그런 걸 보고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하는데...


희선

그레이스 2022-06-28 05:16   좋아요 3 | URL
한 세대 모두가 겪는 트라우마죠
모든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그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말아야하는데 반복되는 슬픔!
안타깝습니다

서니데이 2022-06-28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편안한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오늘도 비가 오고 습도 높은 하루네요.
건강 조심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6-28 17:52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건강하세요 ~~^^

2022-06-29 0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9 1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07-08 1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임레 케르테스 =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

그레이스 2022-07-08 19:4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이 페이퍼였네요
저도 뭔지 몰라서...
노트북 켰습니다. ㅎㅎ

건수하 2022-07-08 20: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축하드려요 ^^

전 2차대전이 한참 전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그렇게 유대인 홀로코스트 관련한 문학이 많은가 했는데.
그걸 직접 겪은 사람들이 아직도 많이 살아있더라고요. 그분들이 지구상에서 다 사라진다 해도 문학 덕분에 후세 사람들이 그 일을 기억할 수 있겠죠..

그레이스 2022-07-08 21:40   좋아요 1 | URL
예 그렇겠죠
오랫동안 문학과 예술의 주제가 되어 왔으니...

mini74 2022-07-08 20: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ㅎ 축하드려요 그레이스님 ㅠㅠ 제가 좀 그래요 ㅎㅎ *^^*

그레이스 2022-07-08 21:42   좋아요 1 | URL
ㅎㅎ
아녜요
저도 몰랐는걸요
ㅋㅋ
덕분에 정신차렸습니다

alummii 2022-07-08 2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2-07-08 21:4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7-08 23: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 중 두 개의 축인 독일과 일본의 역사 인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과거의 사실을 철저하게 해부하고 그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는 한 편과, 그런 사실의 존재조차 은폐해버리려는 다른 쪽. 이러한 상이한 대처들 또한 어떻게 보면 거시적인 폐허문학의 소재가 되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2-07-09 22:43   좋아요 1 | URL
예, 그렇죠
문학의 기능이 바로 그런 것일텐데,,,
일본의 경우 그런것 조차 자유로운 사회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일본의 전체주의, 군국주의의 뿌리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희선 2022-07-09 0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쟁도 잊지 않아야죠 그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잊지 않아야 할 텐데... 전쟁이 세계에서 아주 사라지지 않아서 안타깝네요 그래도 그레이스 님 축하합니다 그레이스 님 글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할 겁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2-07-09 22:39   좋아요 0 | URL
감사해요.
전쟁과 함께 찾아온 여러가지 힘든 상황이 있죠. 어서 끝나길 바래 봅니다.

bookholic 2022-07-09 07: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즐거운 주말되시고요~~^^

그레이스 2022-07-09 22:3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이제 봤네요^^
북홀릭님도 즐거운 주말과 휴일되시길 바랍니다~

scott 2022-07-11 0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 더블 당선 축하 합니다

이곳은 폐허가 아닌
그레이스님 표 리뷰 맛집 ^ㅅ^

페넬로페 2022-07-11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2관왕 축하축하!
임레 케르테스의 작품도 읽어야 하는데 언젠가는 읽겠죠~~

독서괭 2022-07-11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2관왕 축하드려요!
이 글 못 읽었었네요. 임레 케르테스 작품들, 저도 읽어보고 싶어요.. 언젠가..ㅠㅠ
 

도서관 책이다.
추상표현주의 공부중이라ㅠ
강신주 지음으로 되어 있는데...
그 말 많은 코바나 컨텐츠 기획으로 2015년도에 서울에서 열린 로스코 전시를 기념으로 나온 책이다.
그런줄 알고 있었지만 미술이 돈과 권력으로 전유하는 대상이 된 현장을 목격한듯, 시선을 돌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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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6-25 22: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크 로스코 전시가 코바나 주최였엇군요. 그 때는 몰랐는데...
그래도 마크 로스코 전시는 굉장히 좋았습니다. ㅎㅎ

그레이스 2022-06-25 22:52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러게요.

2022-06-27 23: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2-06-28 00:00   좋아요 1 | URL
어쩐지 절판되었더군요.
강신주씨는 왜 그랬을까요?;;
암튼 봉하마을 방문한 일때문에 코바나 컨테츠가 또 거론되고 있더군요 ㅠ
 
행성어 서점 마음산책 짧은 소설
김초엽 지음, 최인호 그림 / 마음산책 / 2021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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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생명의 가능성이고, 모든 생명이 소통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 이 책 소설들의 방향성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SF의 이질감을 낯설지 않은 현재의 정서로, 행성간의 먼 거리는 소통으로 좁히고 있다. 

 

「선인장 끌어안기」

수술 후유증으로 접촉 통증을 앓고 있는 파히라를 돕기 위해 보내진 AI로봇 는 이전에 보내진 보조 로봇들이 회복불가능 상태로 파괴되어 돌아왔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의 임무는 파히라를 돕되 파괴되지 않는 것. 모든 동선이 접촉으로부터 차단하기 위해 미로처럼 설계된 이 집에서 가 할 일은 선인장을 돌보는 것이다. 접촉통증을 앓고 있는 휠체어 장애인 파히라가 가시가 돋힌 선인장을 키우는 것은 상징적이다. 통증 때문에 날이 서있는 파히라를 가리키는 것일까?

파히라가 휘두르는 폭력을 피하는 를 향해 그는 불만스럽게 말한다. 주인을 그렇게 피해도 되는 거냐고, 어차피 너는 닿아도 안 아프고 부서져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지 않느냐고. 여기에 대한 의 대답이 인상적이다.

아프지는 않죠. 하지만 부서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느껴요.”(20p)

두려움을 느낀다면, 그것도 일종의 고통인가? 내가 겪는 것과 비슷해?”라고 파히라는 묻는다. 파히라가 타자, 보조로봇의 고통을 인식하는 소통의 순간이다.

결심한 듯 선인장을 껴안고 쓰러지는 파히라의 고통이 곧 사랑이라는 깨달음은 안타깝다. 마음의 상처로 가시가 돋혀 서로를 찔러대는 사랑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타인을 끌어안는 것은 선인장을 끌어안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일이다.

 

「#cybog_positive」

사고로 눈을 잃고 기계 눈 아이보그를 장착한 리지의 이야기는 작가의 전작 사이보그가 되다를 떠올리게 한다. 리지 눈이 조명에 따라 다양하게 색이 바뀌고 빨려들 것 같은 아름다운 눈을 보며 사람들은 찬사를 보낸다. 아이보그 사는 자사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제안하고 리지는 고민에 빠진다. 사람들은 오히려 인공 눈이 더 아름답다고까지 말하지만, 사실 그 눈에 자신의 생체에 적응하기까지 힘든 기간이 걸렸다. 더 좋은 제품이 나올 때마다 진물이 나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녀는 모든 사이보그는 아름답다는 말이 정말로 사이보그들을 더 행복하게 말들 것인지”(40p) 확신이 없었다.

사이보그들에게 생체와 잘 조화를 이루는 기계보다는 아름다움에 더 치중하고 있는 개발사들과 사람들을 보며,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본다.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에 의해 결정되고 있나? 그 기준과 가치는 불변의 것인가? 이런 질문들을 떠올리게 된다.

 

「행성어 서점」

사어가 되어가고 있는 언어로 기록된 책을 파는 어느 행성의 서점, 범 우주 통역 모듈이 인류의 뇌에 설치되어서 소통이 가능한 시대에도, 행성어 서점의 책들에 쓰인 행성 고유의 언어는 해석되지 않는미세 패턴이 새겨진 글자로 인쇄되어 있다. 여기의 책들은 읽히기 위해서가 아닌 관광 상품으로 팔리고 있다. 그곳에 나타난 여교수는 전뇌 통역 모듈 부적응자다. 이 행성어가 모국어인 화자와 교수는 모듈을 통해서가 아닌 자신이 습득한 언어로 소통을 한다. 데이지와 이상한 가계에서처럼 기계를 통해서 또 다른 결의 타자를 만나는 것이 아닌 직접 보고 듣는 타자와의 소통을 경험한다. 화자인 는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데이지와 이상한 가계에서처럼 기계를 통해서 또 다른 결의 타자를 만나는 것이 아닌 직접 보고 듣는 타자와의 소통을 경험한다. ‘는 춤을 추고 싶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소통은 그런 것이리라.

는 생각한다.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하더라도, 나는 그를 만나서 기뻤다.”(73p)

언어는 그런 것이리라. 언어는 생각을 만들고 말이 되어 나가고 타자의 말이 들어오는 길을 만들며 전율하게 한다. 니컬러스 에번스의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가 생각난다. 지구상에서 사라진 언어에 대한 이야기.

 

소망 채집가의 내용은 상징적이다. 과거의 인류가 꿈꾸어 온 미래의 의 모습은 데이터로 이루어져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모습은 빠른 속도로 변모했고, 그들이 소망하고 지금까지 만들어 온 것이 바로 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는 그 속에 있는 오래 전 사람들의 소망을 발견하고 그들과 소통한다.


애절한 노래는 그만에서 미래의 수지와 현희는 주기적으로 유행한 발라드를 통해 과거 사람들이 정서를 공감해 보려고 한다.

로맨스는 시대의 발명품. 모든 사랑이 애절한 건 아니지만, 함께 공유할 애절한 사랑의 기억이 사람들에게는 필요한 모양이다.”(91p)

완전하게는 아니지만 이해한 듯하다. “근데 …… 잘 부르긴 하네.”(91p)

 

포착되지 않는 풍경에서 리키는 행성 뮬리온-849N을 사진에 담기 위해 며칠 동안 온갖 시도를 해보지만 실패한다. 그 행성의 신비로운 안개를 고스란히 담을 방법을 강구해보지만 방법을 찾지 못한다. 행성의 생태보존 담당자는 여기저기 들쑤시고 다니는 리키에게 경고한다. 더 이상 행성 환경을 교란시키지 말라고. 여기서 이 안개는 단지 물질이 아닌 생태계를 이루는 생명 현상임을 추측하게 된다. 리키는 촬영을 중지하라는 경고에 항의한다. “그건 미학적 낭비”(103p)라고.

오늘 읽은 신문기사가 떠올랐다. [작품 사진으로 보이십니까?조류 학대현장입니다]라는 기사였다.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새 둥지의 은폐물을 제거하고 둥지 입구를 넓히고 심지어 둥지를 옮기는 등 조류사진작가들의 횡포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http://naver.me/xbL11mSC

자연과 소통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모습이다.

 

도망나온 클론 소년이 늪지의 균사체와 특별한 방식의 대화로 생존하는 이야기(늪지의 소년), 위험등급 구역으로 파견된 과학자가 그 지역의 사람들의 삶에 공감함으로 파괴될 위험으로부터 그 구역을 구하는 이야기(오염구역), 어느날 우연히 들어간 음식점에서 만난 지구에 정착한 외계인 사장과의 대화(지구의 다른 거주자들) 등은 서로 다른 존재들의 만남과 소통 기억을 소설의 소재로 삼고 있다. 불편하다거나 위험하다고 생각된 존재와 존재 방식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래도 어느 순간 다현은 인생의 쓴맛이라는 비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어디선가 그런 맛이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 때면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인 사장과 나누었던 기묘한 점심을 떠올리곤 한다.”(206p)


시몬 사람들의 얼굴은 감염으로 인해 가면을 쓴 것처럼 되어 버렸다. 그들의 얼굴은 표정을 알 수가 없다. 이것 때문에 불편하거나 불행할 것이라는 짐작을 깨고 그들은 치료를 거부한다. 오히려 표정을 감출 수 있어 그 얼굴을 선택한다. 어차피 우리는 본래의 얼굴로도 가면을 쓴 것처럼 가장된 웃음과 표정을 갖기 때문이다. 가면 뒤에 진짜 얼굴이란 없다그들의 선택이 이해되면서도 여전히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마음을 숨기기 위해 가면을 선택하는 이들을 이끌어낸 작가의 생각이 짐작이 되어서. (「시몬을 떠나며」)


우리는 당황스러운 표정이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는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가면 쓴 듯 속을 모르겠는 타인의 얼굴을 보면 벽을 느끼고 무섭기까지 하다

마스크 벗은 맨얼굴이 당황스러운 순간이 잠시 걱정된다.


곧 파괴될지도 모르는 구역의 버섯으로 뒤덮인 아이들에게 공용어를 가르쳐야한다고 말하는 청년의 말이 라트나에게 기이하게 느껴지지만(173p) 그 언어는 외부와 소통하기 위한 생존수단이다. 잠시동안의 마주침과 짧은 대화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다른 존재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확장의 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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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6-22 08: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선인장 끌어안기 넘 좋았어요. ~ 인공적인 것에 적응하는 건 소머즈나 육백만불사나이처럼 쉬운게 아니란걸 전 이 분 통해 처음 생각하게 됐어요. ㅠㅠ 행성어서점에 대해 쓰신 글 좋아요 ~ 그리고보면 에스키모의 눈을 지칭하는 많은 언어들이 다 사라졌다고 ㅠㅠ

그레이스 2022-06-22 08:27   좋아요 3 | URL
저도 육백만불의 사나이, 소머즈 생각했어요.^^
김애란님 언어의 멸종에 대한 단편도 생각났어요^^

레삭매냐 2022-06-22 1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냥 문득 로봇이 있어서
가사 생활에 도우미로 활
동한다면 나의 삶의 질이
과연 나아질 것인가 생각
해 봤습니다.

귀차니즘은 좀 덜어지겠
지만, 그 시간에 무언가
생산적이거나 창조적인
그것도 아니라면 독서 대
신 너튜브를 더 보게 되
는 건 아닐까요? ㅋㅋㅋ

그레이스 2022-06-22 11:47   좋아요 2 | URL
ㅎㅎ
시간이 많다고 잘 선용하는 것도 아닌듯요 ㅋㅋ

새파랑 2022-06-22 13: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단편중에 <행성어 서점>이 젤 인상적이네요. ‘언어‘를 ‘책‘으로 바꿔도 왠지 뜻이 통할거 같아요~!!

그레이스 2022-06-22 13:53   좋아요 4 | URL
그러네요^^
언어가 소통의 매개라는면에서 제목으로 할만했다는 생각입니다.
인상적인 단편이 많았죠.
저는 <시몬을 떠나며>도 좋았어요^^

바람돌이 2022-06-22 18: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저 행성어 서점에 나오는 얘기 다 좋았어요. 김초엽작가 열심히 응원하면서 읽고 있는 작가입니다.
다른 것을 다른 것으로 볼 수 있게 끊임없이 노력하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레이스 2022-06-22 19:02   좋아요 2 | URL
예 맞아요
제 딸들도 좋아하는 작가예요
요새 너무 자주 출판되서 혹시나 하고 걱정했는데, 제 걱정이 쓸데없었네요^^

scott 2022-06-23 00: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그레이스님이 별 🖐을 주셨네요! ㅎㅎ

전 그레이스님이 추천하신 니컬러스 에번스의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찜! 👆^^

그레이스 2022-06-23 00:15   좋아요 2 | URL
김애란님 책에서 소개받고 사서 읽었어요. 그때 기억이 나네요. 좋았던 ...!

서니데이 2022-06-23 00: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반년이 더 지났네요.
작년엔 김초엽작가와 정세랑 작가의 책이 많이 나왔던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레이스님, 요즘 날씨가 많이 덥고 습도가 높은 시기예요.
건강 조심하시고, 편안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6-23 09:17   좋아요 3 | URL
예~
그러네요
이 책 말고도 두권이 더 있죠?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도 건강하세요~

희선 2022-06-25 02: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읽었어요 이런 말부터 하다니... 우연히 알고 봤군요 지금도 어딘가에서 사라지는 말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국말은 괜찮을지... 사람이 줄어드니 조금 걱정도 됩니다 남과 관계를 맺는 데는 아픔이 따르기도 할 텐데... 적당한 거리도 중요하고 어떤 때는 그 거리를 좁히기도 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2-06-25 08:51   좋아요 3 | URL
문자만 남은 사어들을 생각해보면,,,상상할 수 있을듯요. 한동안 세계공용어를 만들자는 이야기가 있었죠 아마! 이런것들을 생각해보면 앞으로도 가능한 일일것 같아요;;;
예 맞아요, 적당한 거리!
감사합니다 희선님~♡

2022-06-25 0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5 09: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5 1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5 1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5 10: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25 1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
하인리히 뵐 지음, 곽복록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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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는 범죄하고 죄의식 때문에 숨어있던 아담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질문이지만 최초 인류에게 죄를 선언한 선고문이다. 작가는 이 제목을 통해, 전쟁을 일으킨 자들, 거기에 가담한 자들, 집단 광기의 범죄자들, 그것을 목격하거나 방관한 자들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그때 어디에 있었느냐고. 그 범죄와 당신은 무관하냐고.

 

실패만 거듭한 사람만이 갖는 생기 없고 엷은 입술, 누렇고 쓸쓸한 듯한 얼굴로 사열하는 장군을 보는 1000명의 병사들은 비통, 연민, 불안, 불안과 같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다음 장면은 피로와 허기와 또 이 저주스러운 전쟁에 울화통이 터져 못 견딜 지경이지만 조용히 서 있는”(7p) 333명의 병사들 앞을 지나가는 창백하며 무서운 눈, 악문 입술, 긴 코를 한 대령의 순종(純種) 얼굴이다. 그리고 다음, 105명뿐인 병사들은 먼지를 뒤집어 쓴 상처투성이의 발과 땀이 밴 얼굴을 한 채 지친 행군을 계속하고 있다. 이제, 1000명 중 오직 혼자 남은 파인할스는 상사 앞에 서있다.

 

과정을 생략하고 시간을 건너뛴 장면의 변화는 패색이 짙어가는 전쟁이 막바지에 왔음을 암시한다. 이 소설은 전장으로부터 퇴각해서 고향으로 향하는 독일군인 파인할스의 여정을 그리고 있다.

 

병사들은 어둠 속에서 행군을 계속했다. 파인할스는 낙오할 생각이었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앞으로 걸어갔다. 전투 장면과 소리는 다시 후송되는 차량으로 옮겨진다. 파인할스는 부상을 입고 야전병원으로 옮겨진다. 병상에 누운 마비상태로 누워있는 브레센의 기억과 생각이 조명된다. 계속해서 파인할스가 고향을 향해 가면서 만나는 군인들이나 점령지의 사람들을 조명한다.

 

전쟁은 부조리극이다

군복을 팔러 나온 그레크는 많은 군인들은 무엇이든지 팔아먹고 있고 자신은 이제야 그 대열에 합류했을 뿐이라고 마음속으로 항변한다. 군복을 판 돈으로 사먹은 살구 때문에 그레크는 복통을 앓는다. 폭격이 쏟아지는 한 가운데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그를 죽음에 이르도록 한 것은 적이 아닌 육체의 반란이다.

독일군 파인할스가 사랑하게 된 헝가리 유태 여인 일로너그녀는 가족을 만나기 위해 게토로 갔다를 기다리며, 선술집에서 고향을 생각하는 장면은 아이러니의 극치다. 상관의 명령을 받고 전선을 넘어 포도주를 구해 가던 중 폭격으로 죽음을 당하는 핑크, 독일군과 이별한 점령지 여인의 통곡 역시 마찬가지다. 종전에 대한 희망은 수용소 사람들의 죽음을 더욱 앞당긴다


유태인 수용소에서 학살을 지휘한 소장 필스카이트의 합창에 대한 사랑은 기괴한 느낌을 준다지휘자에 의해 화음을 맞추는 합창이라는 특성이 필스카이트의 광기와 오버랩되며 전율하게 한다.

수용소로 끌려간 일로너는 도착 당일 필스카이트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광기에 가득한 필스카이트가 그녀를 죽였지만 그 학살의 장소를 세운 것은 독일이고 파인할스는 그 독일을 위해 싸웠던 군인이다. 일로너의 죽음과 관련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가 연인 일로너의 죽음에 가담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조리의 절정이다. 그에게 그녀가 죽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느냐고, 그녀의 죽음에 당신의 군복과 훈장과 무기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가 하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까?


고향에 가까이 간 파인할스는 미군들이 점령한 이웃마을에서 자신의 집 쪽을 바라다보며 안식을 꿈꾼다. 농부 복장을 하고 집을 향해 걸어가는 파인할스는 눈에 들어오는 동네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짓는다.

이 좁은 골목을 지나 왼쪽으로 큰길을 조금만 내려가면 된다. 호이저의 집도 나무 곁에 흰 목책을 해 놓고 있었다. 그는 웃었다.”(249p)

그때 폭탄이 떨어지고, 그는 유탄에 맞고 집 쪽으로 기어간다. 그는 생각한다. “바보 같은 짓이다라고. 문 앞까지 굴러간 그의 몸 위로 흰 깃발이 떨어진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걸려있던 그 깃발은 미군에 대한 항복의 표시였을 것이다. 울부짓는 파인할스의 위에 떨어진 흰 깃발은 인류의 범죄에 대한 항복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이 소설의 제목이 던지는 메시지를 오랜 시간 생각해봤다. 그 질문은 하인리히 뵐 자신에게도 하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류조작과 탈영 등 전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기도 했지만 참전했던 독일 군인으로서 양심에 계속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의 생전의 사회 참여와 평화를 위한 저항 활동에 주목하게 된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을 통해 항상 우리가 배우는 것은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것, 다시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교훈을 잊은듯 전쟁은 반복된다. 욕심과 증오가 그치지 않는다면 계속될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알고 있어도 막지 못하는 인류의 상황은 모두가 그 원죄에 가담하고 있고 그 책임을 묻는 질문에서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함께 했던 전장에서 죽어간 핑크가 고향의 이웃마을에 살았고, 사랑하는 여인이 자신의 국가가 만든 참혹한 수용소에서 죽어간 것처럼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모두가 작게든 크게든 그 영향을 받고 있다. 전쟁이 지속되는 한 어두운 내일을 전망할 수밖에 없다. 

아담, 너는 어디에 가 있었나?”는 내게 이렇게 읽힌다

그 전쟁의 영향 아래 있는 우리는 그 책임에서는 벗어날 수 있는가?

 

나는 작가 하인리히 뵐의 책 두 권을 또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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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2-06-17 00: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잘 모르지만, 작가는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해서 찾아보았더니
전에 선물받았던 책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의 하인리히 뵐 이었네요.
전쟁을 겪은 세대라서 그 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잘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잘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좋은 하루 되세요.^^

그레이스 2022-06-17 00:34   좋아요 4 | URL
예 맞습니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작가
그 책도 읽으려구요
작가의 생애와 활동에 관심이 생겼어요.

희선 2022-06-17 00: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작가 이름 보고 처음 본다고 생각했어요 서니데이 님이 쓰신 책 제목은 보기도 했군요 그 소설 쓴 사람이었네요 아담은 모든 사람이군요 전쟁을 해서 얻는 건 없는데 그게 사라지지 않다니... 서로가 욕심을 덜 부리면 좋을 텐데, 사람이어서 그게 잘 안 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2-06-17 01:47   좋아요 4 | URL
그러면 전쟁이 그치겠죠.
인류의 대표인 아담이 실패한것처럼 우리는 매일 실패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죠
굿밤되세요. 희선님!

han22598 2022-06-17 06: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아직 시작 안했지만, 하인리히 뵐 책들....리스트에 있어요!! 으흐흐흐흐

그레이스 2022-06-17 08:18   좋아요 2 | URL
^^
리스트에 올릴만한 작가입니다.~♡

새파랑 2022-06-17 08:2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일인이 쓴 전쟁에 대한 부조리여서 인지 더 공감이 되는거 같아요. 한권밖에 안읽어봤지만 하인리히 뵐은 글을 참 잘 쓰는거 같아요. 전쟁은 누구에게도 절대 이익을 주는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

그레이스 2022-06-17 08:23   좋아요 3 | URL
카타리나 블룸... 읽으셨을 듯!^^
그 책도 기대가 되고 제가 사 놓은 책도 기대 중이예요.

바람돌이 2022-06-17 16:0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진짜 읽고 싶어지네요. 방금 전 거리의 화가님 글에서 이 책 발견하고 앗 읽어야지 하면서 보관함에 쏙 넣었는데 그레이스님 벌써 읽으시고 이런 훌륭한 리뷰까지..... 리뷰 읽고 나니 더더욱 안읽을 수 없겠구나 싶어요.

그레이스 2022-06-17 16:44   좋아요 3 | URL
생각할 지점도 많고 구성도 문장도 탁월했습니다.
요새 전쟁 관련 소설을 많이 읽게 되네요^^

독서괭 2022-06-17 17: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호 카타리나블룸 작가군요! 그책 재밌었는데. 날카로운 현실비판을 잘하는 작가인가 봅니다. 그레이스님 리뷰 읽고 보니 정말 제목이 양심을 막 찌르는 것 같네요..

그레이스 2022-06-17 17:35   좋아요 2 | URL
하인리히 뵐 작가 책 오늘도 주문했습니다. ㅋ
또 모으기 시작했어요^^;;

얄라알라 2022-06-21 03:45   좋아요 1 | URL
아! 그렇군요! 그레이스님께서 더 주문하신 2권이 궁금해지는데
독일어 원전이니, 아무래도 번역본일거라 추측 ㅎ

근데 계속 모으시면 서가가 뚱뚱해지겠어요^^ 행복한 증량이네요

mini74 2022-06-17 19: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5도살장이 문뜩 떠올라요 주전자 훔쳤다고 사형당했던. 전쟁은 부조리 맞는 말입니다 ㅠㅠ 이 책 담아갑니다 그레이스님 *^^*

그레이스 2022-06-17 19:30   좋아요 2 | URL
제 5도살장 저도 읽었어요
그것도 장면이 획획 바뀌었죠 아마
과거와 현재의 사건들이 교차하면서...!
^^

페크pek0501 2022-06-18 13: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코로나19도 그렇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을 보듯이 정말 세계는 하나예요. 이 사실이 무섭게 느껴집니다.
우리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그레이스 2022-06-18 13:56   좋아요 2 | URL

모두 연결되어 있죠
경제도 환경도 전쟁도.
관계없다 말할 수 없죠!

서니데이 2022-06-18 22: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생각했던 것보다는 많이 덥지 않아서 좋은 토요일입니다.
그레이스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6-18 23:34   좋아요 3 | URL
예~~
습도가 높아서 그런지 우리집 식구들은 덥다고 하네요
서니데이님도 주말 잘 보내세요

scott 2022-06-18 23: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쟁을 일으킨 자들, 거기에 가담한 자들, 집단 광기의 범죄자들, 그것을 목격하거나 방관한 자들]
이 문장 속에 현재 자행 되고 있는 지구촌 곳곳의 전쟁터, 살육의 현장을 떠올리게 하네요

아담도 실패한 평화!

어서 빨리 러시아 전쟁 끝내기를 ,,,

그레이스 2022-06-19 08:40   좋아요 2 | URL
정말 빨리 끝나기를 기도합니다.

레삭매냐 2022-06-20 10:3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사서 읽다 말았는데...

다시 처음부터 정주행 들어가야
겠습니다.

다른 출판사에서 좀 더 갠춘한
표지로 내주었으면 하는 그런
바램을 가져 봅니다.

그레이스 2022-06-20 10:51   좋아요 4 | URL
맞아요.
표지도 정말 중요한데...^^
나름 권위있는 시리즈가 되어가고 있긴 한데...
이유가 있겠죠?
이런 표지에 조금 더 비싼 느낌!^^
 
달력으로 배우는 지구환경 수업 - 세계 51가지 기념일로 쉽게 시작하는 환경 인문학, 2022년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도서
최원형 지음 / 블랙피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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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렁이의 날? 책장을 넘기다 발견하고 읽기 시작했다. 작가의 책은 두권째! 자칫 교과서같은 느낌을 주기 쉬웠던 이전 책과 달리 재미있는 지식이 많았다. 이런 기념일들이 많다는 것은 생존을 위협받는 생물들이 많다는 의미함이겠지. 제목에서 ‘수업‘이란 단어가 없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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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6 12: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6-06 1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mini74 2022-06-06 13:5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지렁이의 날도 있나요. 예전 어떤 선생님이 나무젓가락 갖고 다니면서 비온후 나왔다 돌아가지못하고 죽어가는 지렁이 풀밭으로 옮겨준다는 생각나네요. 손으론 차마 못 잡고 ~~

그레이스 2022-06-06 13:55   좋아요 4 | URL
있더라구요^^
그거 말고도 특별한 날이 많았어요
비온후 하천변 산책로 걸을 때마다 달팽이랑 지렁이 피하느라 제대로 걷지를 못하는데....
젓가락 갖고 다니시면서 옮기시는 분이 계시더라구요^^

새파랑 2022-06-06 16: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수업이 있으니까 교과서 기분이 듭니다~!! 지렁이의날이 있으면 알라디너의 날도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ㅋ

그레이스 2022-06-06 18:58   좋아요 4 | URL
ㅎㅎ
언제로 해야 하나요??^^

scott 2022-06-06 2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지구 환경 수업!
하는 날은
교실 밖을 벗어 나는 날!ㅎㅎ



그레이스 2022-06-07 00:25   좋아요 2 | URL
😀

서니데이 2022-06-09 2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매일 달력을 보면, **의 날, 이라는 표시가 많이 있는데, 환경 관련된 기념일이 상당히 많았네요.
이 책을 보고 나면 달력과 포털 사이트에서 나오는 **의 날을 조금 더 가깝게 느낄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님, 좋은 하루 되세요.^^

그레이스 2022-06-10 00:06   좋아요 3 | URL
그냥 넘어가기 일쑤였는데, 조금은 관심있게 볼듯요
감사합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서니데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