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와 관련된 미시사(微視史)라고 생각하고 책을 폈으나, 식탁 위에는 세계사가 펼쳐졌다. 어떻게 이렇게 방대한 지식을 엮어서 쉽고 간단하게 얇은 책으로 펴낼 수 있을까? 더 놀라운 것은 세 페이지에 걸쳐 적혀있는 65권의 참고문헌 목록이다. 안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자기가 습득한 지식을 누군가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경지.
감자로 만든 프렌치프라이나 포테토칩의 기원으로 시작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일랜드 대기근, 거슬러 올라가 유럽에 전해진 경로와 감자 경작을 장려했던 프리드리히2세와 루이16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식탁 위에는 아일랜드와 영국의 근현대사가 펼쳐진다.
다 알고 있던 내용이라는 생각으로 읽게 되면 이 책의 가치를 놓치게 된다. 문단과 문단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있는 세계사의 중요한 장면들과 인물, 단어들을 건성으로 읽어서는 보화를 캐낼 수 없다. 작가는 음식 미시사를 소재 삼아 중요한 역사지식과 관(觀)의 전달을 의도하고 있다. 실로 밥상머리 교육이다.
“너희는 소금 하면 뭐가 떠오르니?(31p)”하고 던지는 화두는 인도의 소금행진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있었던 착취와 전쟁의 역사로 나아간다. 인도의 역사에서 건져 올린 소금의 중요성은 ‘대항해 시대’로 넘어가는 말머리가 된다.
후추는 ‘대항해 시대’를 이끌었던 나라들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 중국의 정화를 포함하는 대륙의 발견자들을 식탁 위에 등장 시킨다. 돼지고기는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 빵은 유대인의 유월절, 로마의 식사법, 마리 앙투와네트를 소환한다. 앙투와네트와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프랑스에 들어온 초승달 모양의 크루와상은 이슬람국가와 기독교 국가들의 국기 모양의 분류를 보여주는 자상함에까지 이른다. 서민들의 빵 바게트, 앙투와네트에 대한 오해들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는다.
백성들이 일요일이면 닭고기를 먹게 하겠다던 앙리4세와 희망적인 경제 청사진을 그렸던 미국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의 비교는 경제와 관련된 복잡한 변수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미국을 방문해서 옥수수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흐루쇼프의 사진은, “40년 동안이나 공산주의를 실시했는데 어떤 사람이 한 잔의 우유나 한 켤레의 구두조차 가질 수 없다면, 사람들이 그에게 어떻게 말하든 간에 그 사람은 공산주의가 좋은 것이라고 믿지 않을 것입니다.(125p)”라고 했던 인상적인 그의 말과 함께, 그가 어떤 지도자인지를 엿보게 한다. 이데올로기와 냉전이 가리고 있었던 진실이다. 그리고 덧붙여, 케네디와 흐루쇼프의 시기, 터키와 쿠바의 미사일 기지로 인해 전쟁의 위기까지 갔던 상황을 폭로한다.
바나나를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들(돌, 델몬트, 치키타)이 ‘바나나 리퍼블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서 벌이고 있는 착취와 폭력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옷을 입은 제국주의의 또 다른 형태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100년의 고독』까지 소환하다니 놀랍기만 하다. 바나나의 재배, 수확, 포장, 수출, 판매 과정에서 사용되는 화학품의 종류와 가공할 양은 ‘푸드 마일리지’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한다.
칠레와의 FTA로 싼 값에 먹게 된 포도와 관련해서, 아이들과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에 관해 찬반토론을 하며, 우리는 주장에 대한 근거의 빈약함을 절감했다. 아는 것이 많지 않음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책으로부터 얻는 유익이다.
미국 독립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차(茶), 영국과 중국의 두 번의 아편전쟁, 불평등 조약인 ‘난징 조약(1842)’과 ‘텐징 조약(1856)’, ‘난징 조약’의 결과 영국령이 된 홍콩, 현대사의 한 장면이 된 1997년 홍콩의 반환과 2019년 민주화 운동에 대해 살피며, 계속해서 토론 주제는 던져진다.
지식은 또 다른 지식으로 이어지고 가지 치는 작업을 계속한다. 안다는 것은 그 가지치기 작업과 서로 연결된 이야기들을 글로든 이야기로든 풀어내고 설명하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 아닐까. 더 나아가 그 지식들로 내가 사는 세계를 통찰하고, 어느 편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주경철의 『대항해 시대』와 마귈론 투생-사마의 『먹거리의 역사』를 뽑아 책상으로 가져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