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가 푸른빛으로 바뀌며 면도날처럼 날카로워졌다. 깊고 둔탁한 울부짖음이 사방을 온통 불안감으로 채웠다. 나는 죽음이 항상문 앞에 있다고, 즉 가까운 곳에 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죽음은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언제나 우리의 대문 앞에 도사리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가장 좋은 대화는 자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최소한 의미 전달 과정에서 오해의 소지는 없을 테니까.  - P49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하게 될지 몰랐다. 사람이가끔 분노를 실감하게 되면 모든 게 단순 명료해진다. 분노는 질서를만들고, 세상을 간략히 요약해서 인식하게 만든다. 또한 분노는 다른 감정 상태로는 얻기 힘든 ‘선명한 시야‘를 우리에게 확보해 준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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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
콜슨 화이트헤드 지음, 황근하 옮김 / 은행나무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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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는 동안 든 생각은 주인공 코라의 자유를 향한 탈출이 끝이 없다는 것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자유의 길’ 양쪽으로 시체가 매달린 나무가 끝없이 이어진 것처럼. 자유를 향한 죽음의 행렬은 끝나지 않는다. 조지아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 인디애나를 거쳐 캘리포니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이 죽고 그녀 혼자 살아남았다. 지하철도를 통해 캘리포니아에 이르면서 소설은 끝난다. 하지만 그녀의 도주가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함을 남긴다.

그녀의 끝없는 탈출은 조지아에서 노예들의 죽어야 끝날 것 같은 노동의 시간들과 평행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 안에 축적되어 있는 공동의 긴장감, 집단적 불안. 그 불쾌함을 떨쳐내기 위해 생일파티를 한다. 음악이 시작되고 춤판이 시작되나 코라는 춤판에 끼지 않는다. 탈주 중 잠깐씩 얻은 자유의 시간과 장소에서도 춤은 추지 않는다. 완전한 자유를 얻어야 그녀는 춤을 출 것인가?

생일파티 다음에 오는 것은 언제나 노예로서의 일상에 찾아오는 상념뿐이다. 그녀는 이것은 그저 찰나에 인간일 뿐임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춤을 추지 않는 것이리라. 도주 중 잠시 경험하는 자유 속에서도 그녀는 춤을 추지 않는다. 그곳이 자유의 세상이라는 확신이 들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자유를 잃고 밭고랑 한가운데 허리를 구부릴 때, 다시 필사의 탈출을 해야 할 때, 짧았던 자유의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잃을 뿐이기 때문이다.


음악이 끝났다. 원이 깨졌다. 이따금씩 어느 노예는 짧았던 자유의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잃을 것이다. 밭고랑 한가운데서 갑작스레 상념이 밀려들 때, 혹은 이른 아침 신비스런 꿈에 대해 곰곰 생각하는 동안. 어느 따뜻한 일요일 밤, 노래 한가운데. 그다음에 오는 것은 언제나- 감독관의 고함, 일하라는 부름, 주인의 그림자-영원한 속박 속에서 당신은 아주 찰나에만 인간일 뿐임을 상기시켜 주는 것들이었다.
40-41p

이 농장 전체는 코라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었다. 밸런타인 가족은 기적을 만들어냈다. 모라는 그 증거들 속에 앉아 있었다. 아니, 코라가 그 기적의 일부였다. 코라는 사우스캐롤라이나의 거짓된 약속에 너무도 쉽게 넘어갔다. 이제는 코라의 냉소적인 부분이 날마다 축복이 펼쳐지는 여기 밸런타인 농장의 보물들을 거부했다. 코라의 손을 잡고 있는 어린 소녀가 있었기에. 마음이 가는 남자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기에.
283p



노예의 탈출을 돕는 이들은 지하철도의 기관사와 차장과 역장들 그리고 이들을 돕는 점조직원들과 밸런타인 농장의 사람들이다. 시저와 코라는 조지아를 탈출해서 사우스캐롤라이나에 도착한다.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머무르려고 했던 그곳에는 불임수술과 생체실험과 같은 음모만이 있을 뿐이다. 박물관에 전시되는 수치와 모멸감도 맛보았다. 더욱 무서운 것은 도망노예를 잡으려는 노예사냥꾼의 추격이다. 노예뿐 아니라 그들을 돕는 백인들도 죽임을 당한다. 결국 노예사냥꾼에게 사로잡힌 시저는 죽임을 당한다. 코라는 탄로되고 폐쇄 되어가는 지하철도를 따라 노스캐롤라이나로 탈출하지만 결국 사로잡힌다. 테네시에서 다시 탈출하여 인디애나로 인디애나 밸런타인 농장에서 잠시 동안의 자유와 찰나의 행복을 맛보지만, 결국 백인들에 의해 살육을 당한다. 그녀는 노예사냥꾼을 죽이고 지하터널을 통해 캘리포니아에 도착한다.


시골길은 고요했고, 양쪽 길가에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 지붕을 이루고 있었다. 코라는 형체 하나를 보았고, 다른 하나를 또 보았다. 그러고는 마차 밖으로 나왔다.
나무에 시체들이 썩어가는 장식물처럼 매달려 있었다.…
“사람들은 이제 이 길을 ‘자유의 길’이라고 하지.” 그가 다시 마차에 방수포를 덮으며 말했다. “이 시체들이 시내까지 가는 길 내내 걸려 있어.”
173p


아마도 이 ‘자유의 길’은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인들과 그 후손들이 걸어가야 할 끝없는 길이 될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은 노예해방이 오기까지 수많은 주검을 넘어서야 했다. 그리고 자유를 얻은 순간에도 여전히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워야 했다.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니었기에. 코라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자유롭게 백인들이 쓰는 말씨를 배우고 글자를 배우면 그들처럼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밸런타인 농장에서도 책을 읽으며 로열과 함께 할 시간들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


그녀는 세상이 앞으로는 다를 것이라는 농장의 설득에 넘어갔다.
336p


그러나 곧 그 희망의 장소들은 학살의 현장이 되었다. 코라가 탈출을 포기하거나 도중에 죽음으로 끝날 것 같은 불안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너무나 절망적이고 추격자들의 집념이 무시무시해서.


그녀는 가짜 안식처와 끝없는 사슬을, 밸런타인 농자의 학살을 남겨두고 앞으로, 앞으로 갔다. 터널에는 어둠뿐이었고, 저 앞 어딘가에 출구가 있을 것이다. 혹은 운명이 결정한다면, 막다른 골목-텅 빈 무자비한 벽 뿐이리라. 마지막 씁쓸한 농담.
340p


터널이 끝나고 햇빛이 비치는 땅 위로 나올 때마다 찬란한 태양 빛이 오히려 위험하게 느껴진다. 그 땅을 비추는 햇빛은 아직 그녀를 위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터널의 끝에는 캘리포니아가 있고 그녀는 그곳을 지나는 흑인의 마차에 올라탄다. 그리고 생각한다 마차를 모는 올리라는 사람은 도망노예였을까? 어디서 탈출했을까? 얼마나 멀리 오니 그것이 다 잊혔을까 그녀는 궁금했다.


미국의 아프리카인들은 얼마나 멀리 가야 그들의 암울했던 역사가 잊혀질까?
그들의 탈주는 얼마나 오래 계속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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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로열에게서 지하철도를 만든남자와 여자들에 대해 듣지 못했다. 그녀 같은 노예를 옮겨주기 위해 수백톤의 돌과 흙을 퍼 올리고, 땅속 깊은 곳에서 비지땀을 흘린 사람들, 도망자들을 집에 들이고, 먹이고, 마차 뒤에 실어 북쪽으로 옮겨주고, 그들을 위해죽었던 그 모든 영혼들과 함께 서 있었던 사람들, 역장과 차장과 동조자들.
이 어마어마한 것을 완성해낸 당신들은 누구인가 - 이것을 만들면서 당신들 또한 저 맞은편까지 그 안을 통과해 들어갔을 것이다. 한쪽 끝에는 지하로 들어가기 전의 당신이 있고, 맞은편 끝에서는 빛을 항해 발을 내딛는 새사람이 있었다. 위의 세계는 이 밑의 기적, 당신들이 땀과 피로 만든 이 기적에 비하면 분명 너무나도 평범하리라. 당신들이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비밀스러운 승리. - P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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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살 인생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위기철 지음 / 청년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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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엄마들과 함께 하는 독서토론 모임때문에 오래 전 읽었던 이 책을 다시 읽게 됐다. 아이들은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함께 읽는 날보다 이런 책 토론하는 날을 더 좋아한다. 밑줄 긋고 태그 해놓은 부분 위주로 빨리 읽고 논제를 작성하려다가 그럴 수가 없었다.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주제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에.


특별한 아이는 욕망이고 보통아이는 현실이다. 여러분, 혹 알고 계신가. 이 욕망과 현실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바로 우리네 인생인 것이다.
그러나 아홉 살은 아직 인생의 조화를 터득할 나이는 아니었고, 그래서 나는 기껏해야 우림이와 기종이를 맞바꿀 수 있다면 무척 편하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201~202p


여민이의 내우외환이다.^^
친구 기종이는 여민이가 그림천재가 아닌 보통아이로 돌아와 주길 바라고, 우림이는 여민이에게 특별한 아이가 되길 요구한다.
이 문제는 이 소설에 흐르는 하나의 주제이다.

현실에 맞추어 욕망을 바꿀 것인가, 욕망에 맞춰 현실을 바꿀 것인가?
주인공 여민이가 살았던 산동네 사람들 역시 이런 두 가지 선택을 해야 하는 많은 순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의 현실은 꿈을 바꾸도록 한다. 그 중 다수가 이런 선택을 한다. 가난, 중독, 질병, 상실이 일상인 이 산동네 사람들의 다수는. 12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돈을 벌기 위해 공장에 취직하는 검은제비의 선택도 그랬을 것이다.


검은 제비는 그렇게 숲 속 우리들의 영토를 떠났다. 검은 제비가 공장에 취직한 다음부터 우리는 검은제비를 볼 수 없었다. 어쩌다 마주치기도 했지만, 검은제비는 이미 우리들 영토의 사람이 아니었다. 새까맸던 얼굴은 몹시 해쑥해졌고, 맑았던 눈빛은 흐리멍덩해졌다. 그런 모습은 매우 낯설게만 느껴졌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얼굴이 해쓱해지고 눈빛이 흐리멍덩해짐을 뜻하는 것일까? 나는 검은제비의 달라진 모습에 무척 가슴이 아팠었다.
181p


반대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욕망을 좇아 살았던 골방 철학자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현실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꿈은 결국 허상과 망상이 되는 것.


사람이 꿈꿀 수 있는 욕망은 무한하다. 거지는 왕자가 되고 싶어 하고, 왕자는 왕이 되고 싶어 하고, 왕은 신이 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모든 욕망이 현실에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욕망은 어찌 되는가?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고이고 썩고 응어리지고 말라비틀어져, 마침내는 오만과 착각과 몽상과 허영과 냉소와 슬픔과 절망과 우울과 우월감과 열등감이 되어 버린다.
이런 성격 파탄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우리는 두 가지 방법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만 한다. 현실에 맞춰 욕망을 바꾸거나, 욕망에 맞춰 현실을 바꾸는 것이다.
203p


나이가 들어갈수록 우리는 꿈보다는 현실을 선택하게 되고,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은 꿈조차 꾸지 않는다. 토굴할매처럼.

누구에게나 꿈을 꿀 자유와 권리는 있다. 하지만 현실을 인식하고 거기에 발을 디디고 있지 않는 욕망은 분열적인 삶을 가져다 줄 뿐이다. 욕망은 황홀하고 현실은 누추하다면 그 간극을 좁혀야 한다. 간극을 좁히지 못하면 결국 골방의 문턱을 넘지 못하게 되고, 고립되어 버린다. 삶은 더욱 누추해질 뿐이다.

재미있는 부분은 우림이가 보여주는 허영심이다. 9살이면 인생을 다 모를 나이여서 우림이의 마음을 잘 모르겠다고 여민이는 당황스러워 한다. 하지만 우림이의 허영심이 여민이에게는 보인다. 여민이의 당황스러움은 우림이를 좋아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직한 시선을 가진 여민이의 태도는 우림이의 허영심을 순식간에 무장해제 시킨다. 허영심은 자신도 알고 어쩌면 상대도 알고 있는 것이리라. 현실을 외면하고 수치심을 감추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기 때문에 모르는 척 해주는 것이지 않을까?


인간은 험한 세상과 홀로 마주 서 있는 단독자일지도 모르고, 인생이란 주어졌으니 사는 어쩔 수 없는 외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과 인생에 대한 이 모든 실존주의적 정의가 다 옳다손 치더라도, 과연 인생은 단지 죽음으로 가는 길목까지의 외롭고 허망한 여정일 뿐인가.
어차피 죽기 마련이라면, 사는 동안만큼은 사람답게 사는 편이 한결 낫다. 사람들이 서로 기대하고 믿고 사랑하고, 때로는 배신당하고 실망하고 절망하고 증오하고, 또 때로는 지지고 볶고 우당탕퉁탕 싸움박질도 하고 사는 광경에 어느 것 하나 부질없는 짓거리라곤 없다. ……
사람과 사람이 만나 얼마나 강해지는지, 나는 우리 동네 외팔이 하상사의 경우를 보고 일찌감치 깨달을 수 있었다.
215p


두 사람. 욕망과 현실의 조화를 이룬 사람들이 여기 있다. 하상사와 기종이 누나. 그들이 현실을 외면하고 다른 사람이 욕망하는 것을 좇았다면 이런 화합은 이룰 수 없을 것이라 생각된다. 하상사의 고물수레에 가난하고 낡아빠진 이삿짐을 싣고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이 희망을 암시한다. 그들 역시 지지고 볶고 실망하더라도 해피엔딩일 것이라는 행복한 느낌이다. 만나서 힘을 보태고 강해지고, 서로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될 것이므로….


사람들은 대체로 현실보다는 욕망을 더 사랑한다. 대개의 경우, 욕망은 찬란하고 현실은 끔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찍하건 않건 사람은 어차피 현실 속에서 살 수밖에 없으며, 욕망도 현실 속에서만 실현되는 것이다. 현실은 우리를 속이지 않으며, 도리어 우리가 현실을 속이기 마련이다.
260p


아홉 살의 눈으로 본 욕망과 현실의 문제. 어떤 이에게는 현실이 그 욕망을 말라죽게 하는 사막과 같은 것이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여민이의 숲처럼 금지된 것일 수도 있다. 현실과 욕망사이에 놓여 진 낮은 문턱을 넘어설 힘조차 가지지 못한 이가 있는가 하면, 금지된 것을 무시하고 가뿐하게 철조망을 넘는 사람도 있다. 차이는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일까?

여기에는 존재론, 인간의 욕망과 같은 범주에서 생각해볼 철학적 담론이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주인공처럼 정직하게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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