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먼의 온 가족은 전번제(全燔祭)의 제물로 멸족을 당했다.(사랑의 이야기16p)” 그가 누구인지 강렬하게 알려주는 문장이다. 모든 것을 태우는 전번제로 그가 당한 인류의 비극적 역사를 환유한다. 번제(burt offering), 제물(祭物)을 모두 태우는 것, '()'은 그들이 당한 비극의 참혹함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싱어의 소설 주인공 아론(쇼샤) 허먼(사랑의 이야기) 주위에는 항상 여인들이 존재한다. 적어도 3. 그 사이에서 주인공은 갈등하고 안주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유대인의 관습에 의해 맺어진 여성, 욕망의 대상인 여성,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건 여성, 이념 때문에 그를 떠난 여성 등. 그녀들 사이에 있는 주인공의 갈등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면(꼭 페미니스트적 시각으로 볼 필요도 없이)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른 의미들로 볼 필요가 있다. 그녀들은 그와 신앙, 관습, 이념, 자본, 도의 등으로 묶여 있고, 그것들을 상징한다. 그가 떠나지 못하던 유럽 유대인 공동체, 그에게 구원이 되지 못하는 이념이나 자본, 저버리고 떠나면 배덕을 저지르는 게 되는 지켜야 할 도의, 육체의 욕망을 상징하고 있다. 무너져 가는 공동체, 고립, 전쟁, 수용소, 그리고 이주의 서사를 가진 주인공의 불안과 공포와 정체 상실을 읽는다.

 

쇼샤에서 당시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유럽의 상황과 부패하고 고립되어가고 있는 폴란드의 유대인 공동체를 보여주고 있다. 아론은 항상 금지된 것을 배우고 지키며 살아야 했던 정통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희곡 작가다. 이디시어로 작품을 쓰는 그는 신문에 글을 기고함으로 그의 공동체에 어느 정도 알려져 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유대인 철학자 모리스 파이텔존의 위선적인 모습에서 정통이라고 주장하는 유대인들조차 모순을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눈치 채게 된다.

 

그에게 미국 배우 베티, 어릴 적 좋아했던 쇼샤가 등장한다. 결혼을 종교적 광신주의의 흔적”이라고 말하는 도라와 육체적 관계만을 맺고 있었다. 베티와 샘 드라이만의 호의에 의해 미국에서 올릴 희곡을 쓰지만, 그의 작품은 흥행과 자본이 목적인 제작사를 설득하지 못한다. 히틀러의 점령이 가까워지는 상황에서 미국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쇼샤와 결혼함으로 폴란드에 남는다. 쇼샤의 순수함을 사랑했다기 보다 그가 남아있어야 할 이유를 그녀에게서 만들었다는 생각이다. 그가 미국으로 가지 않은 이유는 그곳에서 작가로서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게 첫 번째 이유였을 것이다. 또한 당시 많은 유대인들처럼 그 전쟁의 성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1918년에 끝난 전쟁에서도 살아남았으니까. 자신의 뿌리를 떠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다.

 

그 순수성을 지키려는 열렬함과 부패가 이율배반적으로 공존하는 민족, 그들을 고립시키는 전쟁의 공포에 휩싸인 유럽, 자신을 오라고 손짓하는 미국, 그 사이에서 갈등하던 아론은 약하고 여린 쇼샤와 결혼하는 것으로 공동체를 선택한다. 그는 과연 선택한 것일까? 당시 유럽의 많은 유대인들의 혼란과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었던 막막함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고 생각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여전히 그 혼란과 막막함은 지속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사랑의 이야기의 주인공 허먼은 폴란드 농가의 헛간에 숨어서 살아남았다. 그를 목숨 걸고 숨겨준 야드비가는 그의 부모의 집에서 일하던 하녀였다. 전쟁이 끝나고 뉴욕에서 함께 살고 있다.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헌신적이다. 미국에 와서 알게 된 마샤와는 육체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마샤와 그녀의 어머니 시프라 푸아 역시 유대인으로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 러시아에서 죽었다고 생각한 그의 전처 타마라도 그를 찾아온다. 허먼 역시 이 세 여인들 사이에서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는 모두에게 배덕자이며 계명을 어긴 배교자다.

 

그가 하고 있는 일은 랍비에게서 돈을 받고 글을 대필하는 것이다. 그가 속한 유대인 사회는 유럽의 그것을 그대로 옮겨온 듯하다. 여전히 하시디즘을 고수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본에 잠식당하고 은밀히 부정에 가담하고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야드비가, 마샤, 타마라 세 여인에 둘러싸인 허먼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 사이에서 질식해 가고 있는 그는 유대인 공동체에도 미국이라는 새로운 사회에도 속할 수 없는 길을 잃은 존재다. 살아있으나 살아 있는 게 아니다. 쇼샤의 아론이 쇼샤를 선택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붙들려고 했던 것과 달리 전쟁 후 사랑의 이야기의 허먼은 사라져버린다. 어느 다락방에서 여전히 자신을 찾고 있는 적에 대한 공포로 인해 악몽을 꾸고 있을 것이다.

 

두 개의 소설에서 싱어는 유대인 사회의 전쟁 전과 후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전후(戰後), 살아남은 자들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 ? 라는 질문에 아무 답도 얻을 수 없는 공허를 본다.

고통에 대한 답은 어디에도 없죠. 특히 고통을 당하는 자들에게는요.(쇼샤396p)

인생에는 무엇을 할 수 없는 때가 있다.


피에 젖은 땅을 읽고 있다.


<『쇼샤사랑의 이야기는 이전 출판된 오래된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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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3-03-03 0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싱어의 신작 <노예>는 안 읽으셨기 바랍니다. 저는 곧 개봉할 독후감에 작가 싱어한테 대고 푸짐하게 욕설을 퍼부어놨습니다.

그레이스 2023-03-03 08:21   좋아요 1 | URL
ㅎㅎ
집에 없어서 읽지 않았습니다. ^^
비판하는 리뷰 보면 이유가 궁금해지는데, 골드문트님 리뷰는 골라서 읽지 않는데 도움이 되요^^
기다리겠습니다.^^

레삭매냐 2023-03-03 09: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득 오래 전에 만난 아트 슈피겔만
의 <마우스> 생각이 나네요.

혹독한 수용소에서 살아 남았지만,
결국 더 살 수가 없어서 극단적 선
택을 했던.

<쇼샤>는 구판으로 구해 두었는데
어디에 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래.

그레이스 2023-03-03 09:04   좋아요 2 | URL
저는 슈피겔만의 쥐 어디다 뒀는지 찾고 있는데,,, ㅎㅎ
쇼샤 새로 출간된 책 부분부분 비교해봤는데, 더 좋은 것 같아요.^^

서곡 2023-03-03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적 그리고 사랑 이야기를 영화로(만) 봤는데 꽤 재미있었습니다~ 여성들의 연기가 대단했던 기억이...헤르만이 왜소하고 불쌍해보일 지경으로요 3월 초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레이스 2023-03-03 13:55   좋아요 1 | URL
아!
영화 봐야겠네요.
소설에서도 허먼(헤르만)이 불쌍해 보이긴 했어요.;;

페넬로페 2023-03-03 23: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대인 공동체에 대한 내용이네요.
피해자로서가 아니라 그들 내부의 이야기인 것 같네요^^

그레이스 2023-03-03 23:49   좋아요 1 | URL

정통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 자본과 영합한 자들 모두 혼란을 겪고 있던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전후에도 역시 비슷한 현상들을 보여주고 있죠.^^

페크pek0501 2023-03-10 1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에 젖은 땅을 읽고 있으시다니 제가 사 놓은 책, 바오 닌의 <전쟁의 슬픔>이 생각납니다. 아직 못 읽음.ㅋㅋ
왜 책은 그때그때 읽지 못하고 한참 후에나 읽게 되는지 모르겠어요... 한꺼번에 많이 구매해서 그런가 봐요.
욕심을 줄여야 할 것 같아요.ㅋㅋ

그레이스 2023-03-10 14:38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요
피에 젖은 땅도 사놓은지 1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펼쳤습니다.
지금은 중단 사태 ㅠㅠ

페크pek0501 2023-03-10 14:51   좋아요 1 | URL
나 웃겨 죽는 줄 알았어요...ㅋㅋ 1년이 넘어 펼치셨다니...
아마 저도 1년이 넘어야 펼칠 모양입니다.ㅋㅋ

그레이스 2023-03-10 14:52   좋아요 1 | URL
ㅎㅎ
그냥 일상입니다.^^

2023-03-19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03-19 0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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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시울이 뜨거운데 웃음이 나온다. 울컥울컥 하다 결국은 눈물을 흘렸다. 웃음인지 울음인지 알수 없는 소리가 나왔다. 정지아! 당신은 누구인지...! <빨치산의 딸>이 내일 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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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02-21 20: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그랬어요
눈물 흘리는거 안하려고 했는데 어쩔수없이 나더군요
저도 정지아의 ‘아름다운 날들‘ 들였습니다~~

그레이스 2023-02-21 20:45   좋아요 2 | URL
전 <자본주의의 적 > 단편도 몇개 읽다가...! 정말 작가가 궁금해졌습니다.

서니데이 2023-02-21 20: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서인지, 이전에 출간되었던 정지아 작가 책이 최근 다시 출간되는 것 같아요.
얼마전에 알림이 와서 알았는데, 다른 내용의 책이지만, 그 책도 이 책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그레이스님, 어제부터 날씨가 조금 차가워요.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3-02-21 20:46   좋아요 2 | URL

다른 책들이 궁금해졌어요
빨치산... 여기저기서 많이 읽은 내용이지만 이런 식으로 글쓰는 작가라면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망고 2023-02-21 20: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저도 울다가 웃다가😂

그레이스 2023-02-21 20:51   좋아요 3 | URL
이 책 읽으시는 분들은 모두 그러실듯요..
행복한 독서였습니다.

책읽는나무 2023-02-21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그런 책이군요?^^;;

그레이스 2023-02-21 23:18   좋아요 1 | URL
예~!
가슴이 먹먹했다가 벅차오르다가 그런 책입니다.^^

레삭매냐 2023-02-23 09: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념 갈등 때문에 두 쪽으로
갈라진 사람들에 대한 서사...

작가 특유의 남도 사투리를
엮고 유머를 가미한 이바구
에 감동 먹었습니다.

독서 모임 때문에 두 번 읽었
는데 여전한 감동이었습니다.

그레이스 2023-02-23 09:13   좋아요 2 | URL
저도 독서 토론 리스트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빨치산의 딸, 자본주의의 적, 아름다운 날들,,, 다 사버렸네요^^;;

얄라알라 2023-02-25 23: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망고님, 은하수님, 레삭매냐님의 독후 반응이 한결같이 뜨겁네요.
읽기 전이라 책 표지 초록색과 제목이 더 인상 뚜렷했는데 그레이스님 말씀 듣고, 정지아라는 이름을 새겨보고 갑니다. 올 상반기 안에는 꼭 읽어야겠네요!^^

그레이스 2023-02-25 23:40   좋아요 1 | URL
예~
강추입니다 ^^
전 작가와의 만남도 신청했습니다.~♡

얄라알라 2023-02-25 2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코로나 주춤하며 젤 좋은 것 중 하나가 작가와의 만남이나 대면 이벤트인것 같아요. 그레이스님 잘 다녀오시고 후기 혹시라도 남겨주시면 꿀 받아 먹는 기분 될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3-02-25 23:44   좋아요 0 | URL
예~
리뷰와 함께 작가와의 만남 후기도 올리겠습니다.
잘 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임승수 2023-06-01 13: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는 작가 임승수라고 합니다. 이번에 제가 쓴 인문에세이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 출간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진심을 담아서 한 글자 한 글자 열심히 썼지만 딱히 홍보할 방법이 없다 보니 답답한 마음에 저자가 이렇게 직접 나서게 되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책 여러 권을 가방에 넣고 무작정 지하철에 올라 승객분들에게 직접 육성으로 알리고 싶은 심정입니다(그래서는 안 되겠지만요). 갑작스러운 댓글에 불편하셨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여러 일로 바쁘시겠지만 1분 정도만 시간을 내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요. 그러고 보니 문득 제 신간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의 내용이 <아버지의 해방일지> 21세기 실사판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 아버지가 빨치산 출신 사회주의자로서 신념을 버리지 않고 살아오면서 생긴 독특한 인간관계와 에피소드가 있듯이, 두 딸의 아빠이자 반백살의 남성인 저도 30년째 사회주의자로 살아오면서 그런 삶을 견지했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평범하지 않은 사건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대학생 때 사회주의자가 된 이후 인생이라는 여행의 경로가 대폭 변경되었습니다. 가치관이 바뀌다 보니 갈림길에서 예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때문인데요. 글치였던 공대생 출신이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서는 느닷없이 마르크스주의 책을 쓰는 작가가 되고, 선거 날 투표할 때면 지지율이 1%도 안 되는 후보에게 거침없이 한 표를 행사하고, 뜬금없이 와인에 홀딱 빠져서는 대한민국 검사뿐만 아니라 노동 조합 간부들을 대상으로 와인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인생 경로는 명승지 투어 같이 잘 차려진 패키지 여행과는 결이 달라서, 오지 탐험에서나 맞닥뜨릴 돌발 장면들이 순간순간 펼쳐졌습니다.

<사회주의자로 산다는 것>에는 제가 사회주의자라는 여행 경로를 선택하게 된 이유, 그리고 이 경로를 선택했을 때만 접할 수 있는 풍경, 경험할 수 있는 사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전히 이 여행이 제법 맘에 들어서 설사 구부러질지언정 부러지지 않고 사회주의자로 살고 있습니다. 모두가 이 이야기에 공감하리라 기대한다면 과욕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오지 탐험 여행서 같은 흥미진진함을 제공하리라 작은 기대를 해봅니다.

이 책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쓴 건 아닙니다. 그저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삶이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썼습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재밌게 읽으셨다면 제 책도 ‘실사판’으로서 무척 흥미롭게 읽으시리라 확신합니다. 혹시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 권의 여행서를 읽는다는 느낌으로 읽어주기를 바랍니다. 아래에는 출판사의 책소개 일부를 발췌해서 옮깁니다. 귀중한 시간 할애해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책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아래의 인터넷서점 링크들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19181643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7534357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2430088

”우리는 과연 사회주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실 사회주의는 생각보다 훨씬 우리의 일상 가까운 곳에 스며들어있다. 일례로 전 세계가 주목한 코로나19 감염병 대처 방식도 지극히 사회주의식이었다. 국가가 앞장서서 공공 재원과 행정력을 동원해 감염병에 대처했으며 코로나 진단 검사와 치료를 누구나 무상 또는 저렴한 비용으로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보건 의료 정책과 더불어 국민건강보험공단, 국공립학교, 국공립어린이집, 무상 급식, 공공 임대 주택, 부자 증세 등등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복지 및 재분배 정책은 모두 사회주의적 성격을 가졌다. 그런데 복지를 확대하길 원하면서도 왜 사회주의에는 유독 반감을 가질까?

저자는 사람들이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사회주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본격적으로 해소한다. 이를 위해 자본주의가 대세이면서 동시에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에서 30년 차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아낌없이 들려준다. 또한 자본주의의 은폐된 착취 시스템이 작동하는 원리를 해설하고, 역사적 관점에서 자본주의의 태생과 최후를 통찰한다.

사회주의로의 강요는 없다. 다만 질문이 시작될 뿐이다. 최악의 빈부 격차, 극심한 이윤 지상주의, 유례없는 환경 파괴, 만연한 생명 경시 풍조가 지배하고 있는 이 땅에서 우리는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며 지켜나갈 것인지. 증오와 배척, 불평등와 불공정 너머의 세계를 꿈꾸며, 우리 삶의 지표에 진중한 화두를 던진다“
 

먹거리와 관련된 미시사(微視史)라고 생각하고 책을 폈으나, 식탁 위에는 세계사가 펼쳐졌다. 어떻게 이렇게 방대한 지식을 엮어서 쉽고 간단하게 얇은 책으로 펴낼 수 있을까? 더 놀라운 것은 세 페이지에 걸쳐 적혀있는 65권의 참고문헌 목록이다. 안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자기가 습득한 지식을 누군가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경지.

 

감자로 만든 프렌치프라이나 포테토칩의 기원으로 시작해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아일랜드 대기근, 거슬러 올라가 유럽에 전해진 경로와 감자 경작을 장려했던 프리드리히2세와 루이16세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식탁 위에는 아일랜드와 영국의 근현대사가 펼쳐진다.

 

다 알고 있던 내용이라는 생각으로 읽게 되면 이 책의 가치를 놓치게 된다. 문단과 문단 사이,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있는 세계사의 중요한 장면들과 인물, 단어들을 건성으로 읽어서는 보화를 캐낼 수 없다. 작가는 음식 미시사를 소재 삼아 중요한 역사지식과 관()의 전달을 의도하고 있다. 실로 밥상머리 교육이다.

 

너희는 소금 하면 뭐가 떠오르니?(31p)”하고 던지는 화두는 인도의 소금행진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있었던 착취와 전쟁의 역사로 나아간다. 인도의 역사에서 건져 올린 소금의 중요성은 대항해 시대로 넘어가는 말머리가 된다.

 

후추는 대항해 시대를 이끌었던 나라들과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도착, 중국의 정화를 포함하는 대륙의 발견자들을 식탁 위에 등장 시킨다. 돼지고기는 마오쩌둥과 문화대혁명, 빵은 유대인의 유월절, 로마의 식사법, 마리 앙투와네트를 소환한다. 앙투와네트와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프랑스에 들어온 초승달 모양의 크루와상은 이슬람국가와 기독교 국가들의 국기 모양의 분류를 보여주는 자상함에까지 이른다. 서민들의 빵 바게트, 앙투와네트에 대한 오해들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는다.

 

백성들이 일요일이면 닭고기를 먹게 하겠다던 앙리4세와 희망적인 경제 청사진을 그렸던 미국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의 비교는 경제와 관련된 복잡한 변수들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미국을 방문해서 옥수수를 들고 활짝 웃고 있는 흐루쇼프의 사진은, “40년 동안이나 공산주의를 실시했는데 어떤 사람이 한 잔의 우유나 한 켤레의 구두조차 가질 수 없다면, 사람들이 그에게 어떻게 말하든 간에 그 사람은 공산주의가 좋은 것이라고 믿지 않을 것입니다.(125p)”라고 했던 인상적인 그의 말과 함께, 그가 어떤 지도자인지를 엿보게 한다. 이데올로기와 냉전이 가리고 있었던 진실이다. 그리고 덧붙여, 케네디와 흐루쇼프의 시기, 터키와 쿠바의 미사일 기지로 인해 전쟁의 위기까지 갔던 상황을 폭로한다.

 

바나나를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들(, 델몬트, 치키타)바나나 리퍼블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서 벌이고 있는 착취와 폭력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옷을 입은 제국주의의 또 다른 형태다.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100년의 고독까지 소환하다니 놀랍기만 하다. 바나나의 재배, 수확, 포장, 수출, 판매 과정에서 사용되는 화학품의 종류와 가공할 양은 푸드 마일리지를 심각하게 생각하게 한다.

 

칠레와의 FTA로 싼 값에 먹게 된 포도와 관련해서, 아이들과 자유무역과 보호무역에 관해 찬반토론을 하며, 우리는 주장에 대한 근거의 빈약함을 절감했다. 아는 것이 많지 않음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책으로부터 얻는 유익이다.

 

미국 독립 전쟁의 원인이 되었던 차(), 영국과 중국의 두 번의 아편전쟁, 불평등 조약인 난징 조약(1842)’텐징 조약(1856)’, ‘난징 조약의 결과 영국령이 된 홍콩, 현대사의 한 장면이 된 1997년 홍콩의 반환과 2019년 민주화 운동에 대해 살피며, 계속해서 토론 주제는 던져진다.

 

지식은 또 다른 지식으로 이어지고 가지 치는 작업을 계속한다. 안다는 것은 그 가지치기 작업과 서로 연결된 이야기들을 글로든 이야기로든 풀어내고 설명하는 데까지 이르는 것이 아닐까. 더 나아가 그 지식들로 내가 사는 세계를 통찰하고, 어느 편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주경철의 대항해 시대와 마귈론 투생-사마의 먹거리의 역사를 뽑아 책상으로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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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2-17 2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소년용의 가벼운 책이라고 생각해서 굳이 안 읽어도 되겠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멋진 리뷰를 읽으니 막 끌리네요. ^^

그레이스 2023-02-17 23:18   좋아요 1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함께 읽고 토론하신 엄마들이 더 좋아하시네요^^

yamoo 2023-02-18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식탁위의세계사와 먹거리의 역사...저도 이거 구매했는데, 책이 없어졌어요...ㅜㅜ
개인적으로 음식에 관한 책 중에서 엔날에 출간된 <음식 잡학 사전>이 가장 좋았네요.
정말 식당에서 먹으면서 책 내용에 대해 주절거리면 사람들이 그런 걸 어떻게 아냐고 했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정말 유익한 책이고 다시 읽어도 역사적 지식으로도 상식으로도 좋은 책입니다. 먹거리의 역사는 이에 비해 너무 밀도가 높아 읽는데 시간이 넘 많이 걸릴거 같아요..^^;;

그레이스 2023-02-18 13:03   좋아요 0 | URL

저도 먹거리의 역사는 핀셋독서가 될듯요.^^
음식잡학사전 찾아봐야겠어요

레삭매냐 2023-02-18 19: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프랑스의 상징이 퍼런색 수탉
이라고 하던데, 그게 앙리 4세
에서 유래된 사정이 있나 봅니
다 ㅋㅋ

바나나의 전 세계 전파에 대해
책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상당
히 흥미로웠던 것으로 기억합
니다.

비건+기후 논쟁에서 육식주의
자 패널이 고기를 먹지 않는
것보다 자신의 식탁에 오르는
아보카도 수송비가 기후환경
에 끼치는 영향력이 더 크다
고 강변하던 장면이 떠올랐습
니다.

건전한 소비하기가 날이 갈수
록 어려워지지 싶습니다.

그레이스 2023-02-18 19:51   좋아요 1 | URL
예~~
건전한 소비하려면 불편하죠.
그래서 불편한 소비라고도 하구요.
한편 그러한 실천도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먼 이야기일거란 생각입니다.

바나나 생산하는 기업 유나이티드 프루트사는 자신의 악명높았던 이미지를 포장하기위해 작은 소녀라는 뜻의 치키타로 이름을 바꿨다고 합니다.
참 알수록 불편해지죠.ㅠ

희선 2023-02-19 0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에서 먹을거리도 빼놓을 수 없겠습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나는 거든 먹을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게 좋은 건지 모르겠네요 처음에는 그런 거 좋아했겠지만... 향신료나 차 커피 이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네요 기후변화로 앞으로 사라질 것도 많은 것 같고... 다른 나라에서 오는 건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과자 조미료 그런 것에도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게 들어가는군요 그 나라에서 나는 걸 제철에 먹는 게 좋다고 하는데...


희선

그레이스 2023-02-19 08:12   좋아요 1 | URL
생존과 욕구, 아주 기본적인 욕망과 관련된 거니까요^^
예, 걱정됩니다;;

희선 2023-03-09 0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또 축하합니다 오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이번주 반이 다 갔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3-03-09 16:0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희선님도요

서니데이 2023-03-13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3-03-14 10: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서니데이님두요~
 
무너지지 않기 위하여 - 어느 포로수용소에서의 프루스트 강의
유제프 차프스키 지음, 류재화 옮김 / 밤의책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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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가 있다고 해도 상관없다. 기억에 의존해서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프루스트 읽기의 정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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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2-15 14: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이 ‘프루스트 읽기의 정수‘라고 하시면
필독서네요!^^*

그레이스 2023-02-15 14:31   좋아요 4 | URL
정말 좋았어요♡
단, 프루스트를 읽기 전보다는 읽는 도중, 아니면 읽고 난 후에 읽으실 것을 권합니다^^

새파랑 2023-02-15 17:08   좋아요 2 | URL
역시 프루스트의 대가들 이십니다~!! 저도 이책 너무 좋았습니다^^

그레이스 2023-02-15 17:14   좋아요 2 | URL
작가가 기억에 의존해서 강의한거라 오류가 있을지 모른다는 염려를 먼저 언급했지만, 그거야 어떻든 방향이 좋았습니다.^^~♡

서니데이 2023-02-17 2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는 책이라서, 책 소개를 읽고 왔어요.
포로수용소에서 프루스트 강의를 한다니, 그것도 기억에 의지해서라니 놀랍네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권수도 많고, 내용도 평이하지 않은 책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놀랍습니다.
그레이스님,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3-02-17 23:03   좋아요 1 | URL
예~^^
통찰력 있고, 무엇보다 수용소라는 환경에서 실존을 위한 지적행위라는데서 경이롭죠.
서니데이님도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yamoo 2023-02-18 1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헐~~~ 프루스트 읽기의 정수라...이건 뭐 구매하라는 압력과 같은 한 줄입니다...으아~~

그레이스 2023-02-18 13:02   좋아요 0 | URL
ㅎㅎ
읽어보시면 아실겁니다.
;;

나무그늘 2023-04-19 1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권만 읽었는데, 나중에 읽어봐야겠네요.

그레이스 2023-04-19 18:17   좋아요 0 | URL
잃시찾 1권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80일간의 세계일주 쥘 베른 베스트 컬렉션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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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철도가 건설되고 운하가 완공되는 등 세계열강은 경쟁적으로 길을 만드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누구를 위한, 무엇을 얻기 위한, 길이었는가는 제국주의 국가들 또는 침략자들이 만들었다는 사실이 시사한다. 1869년에 미국의 대륙횡단철도가 완공되고, 같은 해 수에즈운하가 개통되고, 1870년에 인도내륙관통철도가 개통된 시기가 배경이다. <모닝 크로니클>지에는 세계일주 하는데 80일이면 된다는 기사가 실린다.

 

혁신클럽에서 포그는 80일간 세계일주 할 수 있는가에 관한 논쟁하고, 2만 파운드가 걸린 내기를 한다. 포그와 그의 집사 파스파르투는 1872102일 수요일 오후 845분에 기차를 타고 런던을 출발한다. 브린디시를 경유하여 수에즈와 아라비아 해를 지나고 봄베이에 도착, 거기서 인도를 가로질러 이동한다. 캘커타에서 홍콩, 홍콩에서 상하이를 거쳐 요코하마, 요코하마에서 샌프란시스코로, 샌프란시스코에서 뉴욕으로, 뉴욕에서 다시 런던으로 돌아오는 여행을 한다.

 

필리어스 포그는 영국 신사의 전형적인 모습을 조금 지나쳐 독특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그는 런던의 신사라면 들어야 할 왕립연구원, 러셀협회, 학술협회 등 여러 단체 어느 곳에도 가입되어 있지 않았다. 오로지 혁신 클럽 회원이다. 수학적 정확성, 경제적인 걸음과 동작, 냉정하고 이성적인 태도, 사회적 관계로부터 자유로움 등으로 그를 특징 짓는다.

필리어스 포그는 11시 반에 새빌로의 집을 나와, 오른발을 왼발 앞으로 575번 내딛고 왼발을 오른발 앞으로 576번 내디뎌 혁신 클럽에 도착했다.(24p)”

 

반면, 필리어스 포그의 집사인 파리 출신의 파스파르투는 정반대의 인간형이다. 정직하고, 호감형이며, 정열적이고, 친절하고 다정하다. 체격은 크고 늠름하며 힘이 장사다. 포그가 아폴론이라면 젊은 파스파르투는 디오니소스다.

 

누가 주인공일까? 이 여행을 계획하고 착수한 사람은 영국 신사 필리어스 포그지만 모험은 파스파르투의 몫이다. 그는 자신을 고용한 포그의 여행이 성공하도록 도우려고 최선을 다하고, 그의 인품에 감동하고 진정한 사랑을 보낸다. 그러느라 위험가운데 던져지기도 하고 걸식과 서커스를 하기도 한다. 독자는 포그의 마음은 알 수 없지만, 파스파르투의 마음은 매순간 읽을 수 있다. 결정적으로 그들이 약속된 시간 안에 런던에 도착했다는 소식은 파스파르투가 들고 온다. 작가는 행동하는 파스파르투에게 무게를 두고 있는 듯이 보인다.

 

작가가 프랑스 사람이라는 것을 상기하게 된다. 그의 모험 소설에는 포그와 같은 인물이 등장한다고 한다. 작가가 당시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눈으로 보면, 영국 신사인 포그를 풍자적으로 읽게 된다. 프랑스인의 눈에 비친 신사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들이 지난 수에즈는 프랑스인 레셉스에 의해 건설된 운하다. 영국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수에즈가 완공되었다는 표현은 프랑스인 쥘 베른의 시선을 엿보게 한다. 인도에서는 서티라는 관습의 희생될 뻔 한 아우다 부인을 구하고 그녀는 이 여행의 새 멤버가 된다. ‘서티는 지방 토후들이 죽었을 경우 아내들을 함께 화장하는 제도다. 홍콩의 마약 소굴 묘사는 아편전쟁이란 역사적 사건을 상기시킨다. 홍콩과 함께 작가가 그리는 중국, 일본의 풍경은 오리엔탈리즘을 생각하게 한다.

 

미국의 대륙횡단열차는 1863년 센트럴 퍼시픽 회사와 유니온 퍼시픽 회사가 각각 서와 동에서 출발하여 경쟁적으로 시공한 철로 위를 달린다. 이 철도를 놓는 길이에 따라 정부로부터 재정과 주변 땅을 받기로 약속되어 있어서, 두 회사는 경쟁적으로 공사를 했다. 이 과정에서 센트럴 퍼시픽 지역은 중국인들이 동원되었고, 유니온 퍼시픽은 인디언들의 지역을 지나게 되어 많은 희생이 있었다. 이 사업은 1869년 완공되었다. 이들 포그 일행이 열차여행을 하던 중 인디언의 공격을 받고, 다시 파스트루트는 인디언들의 포로가 되었다가 포그에 의해 구해진다.

 

이들의 여행 중 홍콩까지는 영국령이라는 표현에서 19세기말 영국의 제국주의 상황을 보게 된다. 포그 일행이 여행한 곳 대부분이 태양이 지지 않는 제국의 영토이거나 한때 식민지였던 곳이었다. 그들이 놓은 길은 식민 수탈과 착취, 자국의 번영을 위한 것이었다. 쥘 베른은 이 부분에 각성이 없었던 듯하다. 독자의 비판적 읽기가 필요한 부분이다.

 

어린 시절 읽었을 때는 그들을 은행 강도로 오해하고 쫓으며 발목을 잡는 형사 픽스 때문에 마음을 졸였었다. 결말의 반전 때문에 날짜변경선을 알게 되었고 절대 잊을 수 없도록 각인되었다. 역시 이번에 재독하면서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수에즈를 두고 벌였던 영국과 프랑스와 오스만 투르크의 각축, 문화다원주의와 인권의 문제, 아메리카 원주민, 이민자들의 삶, 유럽의 시선으로 본 아시아의 모습 등을 생각해본다. 19세기 제국주의가 갖고 있는 20세기의 전쟁으로 갈 수밖에 없는 그 욕망을 지나칠 수 없다.

 

여행은 아름답게 끝이 난다. 예상치 못한 장애들을 해결하느라 쓴 경비들 때문에 포그는 금전적인 이익을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명예와 사랑을 얻었다. “사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하찮은 것을 위해서라도 세계 일주를 하지 않을까? (366p)”

 

나는 무엇을 위해 여행할까? 낯선 장소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 지나온 여행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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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2-08 0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쥘 베른 모험 소설을 쓰고 그게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군요 쥘 베른 소설 예전에 봤는데, 달하고 땅속을 가는 거 봤던가 다른 책에서 나온 해저 2만리도 생각나네요 그런 데도 다시 봐야 할 게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지금도 잘 모르고 지나갈 것 같지만, 예전엔 더 몰랐을 것 같기도 합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3-02-08 07:04   좋아요 2 | URL
예!
다시 보이는게 많아요^^
해저 2만리도 봐야할 듯요
열림원에서 나온 쥘베른 모험소설 전집 살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서니데이 2023-02-08 2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책은 김석희 번역이네요. 그러면 번역은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외서는 번역자도 중요한 것 같아요.
잘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3-02-08 22:25   좋아요 2 | URL
예~
번역은 좋아요^^

서니데이 2023-02-11 17: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주말 잘 보내고 계신가요.
날씨가 많이 춥지 않고,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편안한 주말 보내시고, 좋은 오후 되세요.^^

그레이스 2023-02-11 20:10   좋아요 1 | URL
예~
서니데이님도 건강하고 좋은 주말 되세요

페크pek0501 2023-02-12 17: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책을 읽으셨습니다. 유명한 책인데 못 읽었어요.

그레이스 2023-02-12 18:59   좋아요 0 | URL
예~
저도 어렸을때 읽었지만 읽었다고 할 수 없었죠.
이런 책의 맹점인 것 같아요~^^

han22598 2023-02-14 0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엇, 흥미로운 책이네요.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
리뷰 올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레이스 2023-02-14 05:15   좋아요 0 | URL
예~~
감사합니다 ~

레삭매냐 2023-02-15 14: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득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을 즐기던 시절, 왜
여행길에 나섰는지 궁금
하네요.

그레이스 2023-02-15 14:02   좋아요 1 | URL
19세기는 모험소설이 한참 인기 있던 때였다고 하네요^^
탐험이 트렌드였던 시대!

희선 2023-03-09 0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축하합니다 지금은 세계 일주 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가기 어려운 곳도 있어서 세계 한바퀴 돌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3-03-09 21:5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희선님~

서니데이 2023-03-13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3-03-14 10:0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