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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 연옥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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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Divina Commedia : Purgatorio

 

연옥을 믿지 않지만 연옥편은 신곡의 세 편(지옥, 연옥, 천국)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다가온 부분이다.

 

연옥에 이른 베르길리우스와 단테는 지체하지 않고 산을 오른다. 카토는 머뭇거리는 그들에게 호통을 치며 서둘러 오르라고 재촉한다. 달아나듯 서둘러 올라간 것과는 달리 길은 험하고 몸도 무거워 속도가 나지 않는다. 연옥의 아래쪽은 길이 비좁고 험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평탄해진다. 이 산을 오르는 영혼은 엄청난 무게 때문에 발걸음이 힘들다. 연옥은 7개의 죄의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음란으로, 영혼들은 오르며 그의 죄를 씻는다.(영화 세븐을 떠올렸다.) 각 단계마다 단테의 이마에서 P라는 글자가 한 개씩 떨어지며 몸이 가벼워진다. P는 라티어의 죄(Piccati)의 첫 글자이다.

 

그러자 그분은 나에게 이 산은,

아래의 시작 부분은 아주 험하지만

위로 오를수록 덜 험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위로 오르기가 한결 가벼워져

마치 물결을 따라 배를 타고 가듯이

이 산이 아주 기분 좋게 느껴질 때면,

너는 이 길의 끝에 도달할 것이고

그곳에 고달픔의 휴식이 기다리니,

더 말하지 않겠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연옥488~96)

 

어딘가 현세의 삶을 닮았다가벼워지고 기분 좋아 질 때, 그 길의 끝에 다다른다는 것이. 그들은 영원히 한 장소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지옥의 영혼들과 달리 이동하고 있고 상승하고 있다. C. S. Lewis의 환타지 소설 천국과 지옥의 이혼에서도 이런 장면들이 연출된다. 세상의 마지막에 사람들은 천국을 향해 걸어간다. 같은 길을 걸어도 세상에 얽매여 있는 사람들은 더 험하게 느껴지고 발걸음도 무겁다. 그래서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연옥의 영혼들에게는 육신의 모습이 새겨져 있고, 현세에서의 마음과 삶의 경향을 그대로 갖고 있다. 그 경향은 잡아당기는 듯 영혼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그것들로부터 가벼워지기 위해 산을 오르며 씻어내야 한다. 현재의 삶은 사후세계의 예표이다. 마찬가지로 연옥은 현세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런 예표적 리얼리즘(피구라 리얼리즘)으로 그려진 연옥은 현재의 내가 살아가는 삶의 결과로서 평행하는 세계처럼 다가왔다. 그렇다면 나의 삶은 그곳의 어떤 모습을 가리키고 있을까? 그 연속성에 두려운 현기증을 느낀다.


단테는 저승을 여행하면서, “영혼들의 궁극적 운명을 표시하는 저승의 각 단계에서 그가 예전에 친히 알았던 혹은 그 생애에 대해서 들어 알았던 사람들의 영혼을 만난다. 그들이 살아있는 사람(단테)를 만났을 때 자신의 은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곡에 대해서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사람이라도 그 상황을 잘 생각해보면, 그 만남이 환기하는 정서를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또 그 만남이 가장 진실하고, 가장 강력하며, 가장 인간적인 표현의 자연스러운 장이 되겠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다. 그 만남은 이승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승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우연하게 만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들의 삶의 본질이 부분적으로만 표출된다. 또 활기차게 살아가는 일상생활의 강렬한 속도 때문에 자기 자신을 의식한다는 것이 어렵고 그래서 인간 대 인간의 진정한 만남을 이루기가 쉽지 않다. 또 단테와 영혼들의 만남은 죽음의 그림자에 의해 개인들의 개성이 말살되어 버린 그런 저승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다. 그 저승은 이승에 대한 기억이 희미한 베일에 가려진 기억 혹은 아무래도 상관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런 곳이 아니다.”

(271p 단테에리히 아우어바흐)


기억이 현세의 생활로부터 어떤 이미지를 불러일으키든 간에 그것은 본질을 드러내 주는 포괄적이면서 결정적인 이미지이다. 심지어 자신의 내밀한 존재를 감추고 싶어하는 영혼들도 살아 있는 사람과의 만남을 통하여 본심을 털어놓게 된다. 그들이 찾아내는 표현을 아주 날카로우면서도 아주 개인적인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자신과 지상 생활의 의미를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저승의 궁극적 리얼리티 속에서 그들은 아무런 모순도 없이 자신의 개성과 일치하는 존재가 된다.”

(289p 단테에리히 아우어바흐)


그러므로 이승의 삶을 감출 수도 감출 필요가 없는 것이다.

 

등 뒤에서 붉게 타오르는 태양은

내 모습 앞에서 부서졌는데, 나로

인해 햇살이 차단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앞에서만 땅이 그늘진 것을

보았을 때, 혼자만 남은 것이 아닌가

두려워서 깜짝 놀라 옆을 돌아보았고,”

(316~21)

연옥의 영혼들은 빛이 투과하는데, 살아있는 단테에 햇볕이 부딪쳐서 부서지고 그림자가 지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자신의 그림자만 보고 홀로 있는 줄 알고 옆을 돌아보았다가 함께 동행하는 베르길리우스를 발견하고 놀란다. 연옥산을 올라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영혼들과 풍경을 그리는 단테의 묘사들은 탁월하다.

 

그리워하던 베아트리체의 눈을 바라보는 단테는 그녀의 눈에 비친 그리피스의 형상에 놀란다.

불꽃보다 뜨거운 수천 가지 욕망이

나의 눈을 빛나는 그 눈에 묶었는데,

그녀의 눈은 그리프스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태양이 거울 속에 비치듯 그녀의

눈 속에서는 이중적인 동물이 빛났는데,

때로는 이런 모양 때로는 저런 모양이었다.”


단테는 돈호법으로 독자를 부르며 경이로운 광경에 초대한다.

독자여, 생각해 보시라, 사물 그 자체는

그대로 가만히 있는데, 반사된 모습이

변하는 것을 복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31124~126)

환타지 소설 같은 환상적인 장면이다. 그의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연옥편에서 단테는 7가지 죄악과 병행시킨 성경과 신화, 역사, 신학, 과학, 예술 등을 추가하며 상상력의 베틀로 씨실 날실을 엮어간다. 사랑, 과학, 역사, 정의, 진리, 신앙, 심리 등의 모든 주제를 포괄하는 단테의 천재적 능력을 읽게 된다.

 

천국 문을 통과한 후 베르길리우스와 이별한 단테는 베아트리체의 안내를 받아 천국의 하늘들을 오를 것이다.

 

새로운 잎사귀로 새롭게 태어난

나무처럼 순수하게 다시 태어났으니,

별들에게 오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33143~144)


성 조반니 세례당은 단테가 세례를 받았던 곳이다.

당시 피렌체 경제의 중심축을 이루던 협동조합 길드 조직들(Arti) , 가장 막강한 힘을 자랑하던 양모 제조업자 길드와, 이와 쌍벽을 이루던 양모 무역업자 길드 조직 Arte di Calimala의 후원을 받고 있었다. Arte di Calimala1401년 새로운 세례당의 문(북문)을 만들기 위한 콩쿠르를 열겠다고 발표한다. 45x38의 동일한 사이즈, 재료는 청동, 그리고 이삭의 희생이란 성경주제로 샘플 작품을 제출하면 평가해서 1등을 정한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토스카나 출신의 뛰어난 예술가 7명이 참가를 했는데 파이널까지 간 두 명의 예술가가 바로 브루넬레스키와 기베르티였다. 23, 24살 비슷한 또래의 혈기 왕성한 예술가들이었다.

……

우열을 가릴 수 없어 고민하던 감독관들은 기베르티의 손을 들어 주었다고 한다.……

1401년 콩쿠르에서 승리한 로렌초 기베르티는 25년 만에 피렌체인들이 고대하던 세례당 문을 완성했다. 엄청난 찬사와 함께 콩쿠르도 필요 없이 나머지 문도 기베르티가 27년 동안 완성하게 된다.……원래 천국으로 가는 문인 동쪽 문은 신약 성경을 담는 것이 정석이다. 사실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구약성서의 내용)은 원래 다른 쪽에 달려야 하는 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문의 아름다운 문을 동쪽 천국의 문으로 놓자고 결정했다.”

(20~27p 피렌체 미술산책강화자)

 

피렌체에 갈 기회가 있다면 이 문 앞에서 신곡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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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5-23 22: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성 조반니 세례당 문(복사판) 전시를 파리에서 본적이 있습니다

막상 피렌체에 가면 구경할 것들 먹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정작 단테의 신곡, 연옥의 문 찾아 다니기 힘드러여 ㅎㅎㅎ

피렌체는 오월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ㅅ^

그레이스 2022-05-23 22:44   좋아요 3 | URL
ㅎㅎ
볼게 많을것 같긴 해요
이런 도시는 한달쯤 살아야하는데...^^

새파랑 2022-05-23 22: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연옥이 뭔지 몰라서 검색해봤습니다 😅 7개의 죄의 단계를 보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ㅋ

그레이스 2022-05-24 00:54   좋아요 3 | URL
댓글 달았는데 왜 사라졌을까요?
암튼 저도 반성 많이 했습니다 ㅋ

얄라알라 2022-05-24 11: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단테] 겁없이 달려들었다가 뒷걸음질 쳤는데 지금 읽는다고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레이스님께서는 평행세계, 우주, 시공을 넘나들며 상상하고 흡수하셨네요. 그레이스님의 멋진 리뷰로, [신곡] 맛 보기라도 다시 하고 갑니다.

˝산을 오르며 씻어내야 한다.˝ 이 문장, 오늘 종일 생각 날 것 같아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레이스 2022-05-24 12:33   좋아요 3 | URL
^^
감사합니다.
욕망하고 소유에 매여있는 마음 때문에 무거운 발걸음.
산을 오르며 씻어낼수록 가벼워지죠.

저는 얄라알라님 댓글을 읽으니 산을 오르며 늘어난 체중을 덜어내야한다로 읽히네요. 늘어난 제 몸무게가 요사이 불편하게 느껴지고 있어서 그런지. ..😂

얄라알라 2022-05-24 1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ㅎㅎ 곧 여름이니 절로 몸이 가쁜, 가벼워지지 않을까 저는 몸도 안 움직이면서 그런 막연 기대를 합니다. 실제, 엊그제 책 읽다가 마음이 힘들어 산을 오르면서 숨 쉬고 읽고 그랬더니 좀 가벼워지더라고요. 지금 이 댓글을 달고 있는 공간에서도 50미터만 가면 바로 산이랍니다! 자외선이 어마무시하지만 않았던들!

그레이스 2022-05-24 12:41   좋아요 3 | URL
50미터!
산속에 사시는 군요 ^^
부럽습니다.
저도 썬크림 두껍게 바르고 도전해야겠어요 ㅋ

mini74 2022-05-25 08:5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어릴적 지옥 참 무서웠어요. 할머니가 밥 남기면 나중에 죽어서 다 먹어야 된다. 혀를 쭉 빼서 자른다 등등 완전 고어영화 ㅎㅎ 유럽의 지옥도 만만찮더군요. 지금은 지옥이란 그저 신의 은총이 없는 곳 , 그래이스님 말씀처럼 연옥같은 모습일거란 생각들어요.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 이야기 재미있어요 *^^*

그레이스 2022-05-26 07:34   좋아요 2 | URL
^^
맞아요 할머니들은 왜그렇게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셨는지...??

저는 연옥은 없다!
이승의 삶이 저승과 연속된다는 생각!
가보지 않았으니 죽음 이후는 믿음의 영역이란 생각입니다. 그 근거는 성경!

자크 르 코프의 <연옥의 탄생>은 그 배경을 잘 설명해줄 듯요^^

브루넬레스키가 열받아서 로마로 갔다가 피렌체로 돌아와 피렌체의 르네상스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당시 피렌체 미술가들 이야기 재밌어요^^
 
신곡 : 지옥 열린책들 세계문학 93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김운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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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Divina Commedia : Inferno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 얼마나 거칠고 황량하고 험한

숲이었는지 말하기 힘든 일이니,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되살아난다!

죽음 못지않게 쓰라린 일이지만,

거기에서 찾은 선을 이야기하기 위해

내가 거기서 본 다른 것들을 말하련다.”

(지옥편 제11~9)

 

신곡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단테가 말하고 있는 어두운 숲이란 베아트리체의 죽음일수도 있고 피렌체로부터 추방일 수도 있다.(보카치오의 단테의 생애에서는 신곡을 망명 이전에 시작했다고 한다.) 어쨌든 그의 절망이 얼마나 깊었는지 전달하고 있다. 여러 번 반복해서 읽다보면, 곧 그 숲이 깜깜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거기에서 찾은 선을 이야기하려고 글을 쓰겠다는 의지에서 희망의 빛을 본다. 신곡이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를 어렴풋이 짐작한다.

 

표범과 사자와 늑대에 쫓겨 어두움으로 곤두박질하는 그의 눈앞에 베르길리우스가 나타난다. 글에 대한 영감을 받은 순간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 당신은 베르길리우스, 그 넓은 언어의 강물을 흘려보낸 샘물이십니까?”(지옥편 제179~80)하고 외치는 단테의 이어지는 고백에서 베르길리우스는 오랜 동안 그의 문학적 스승이었음을 알 수 있다.

, 다른 시인들의 영광이자 등불이시여,

높은 학식과 커다란 사랑은 유익했으니

나는 당신의 책을 열심히 읽었지요.

당신은 나의 스승이요 나의 저자이시니,

나에게 영광을 안겨 준 아름다운 문체는

오로지 당신에게서 따온 것입니다.”

(지옥편 제182~90)

 

베르길리우스는 이 어두운 곳에서 구해달라고 하는 단테를 인도한다. 마음 둘 곳이 없던 단테가 베르길리우스를 읽다가 다른 길신곡에 대한 영감을 얻는 순간을 상상해 본다. 베르길리우스는 단테를 지옥문 앞으로 데려가고, 그들의 저승여행은 지옥문을 통과해 지하의 세계를 향하면서 시작된다.

 

지옥을 여행하며 등장하는 영원한 형벌을 받고 있는 죄인들의 모습은 참혹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지지만 한편 단테의 천재적인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죄에 해당하는 형벌의 매칭은 놀라울 정도로 적절하다. 신화의 이미지들이 만든 환상적인 분위기 속에, 현세의 이미지로 비유하고 있는 묘사들은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한 생생함을 경험하게 한다. 에리히 아우어바흐는 단테에서 이것을 단테의 미메시스 효과라고 지적한다.

18(canto)에서 뚜쟁이와 유혹자들이 악마들의 채찍에 맞으며 몰려다니는 모습을 희년이 선포된 로마에서 목격한 장관(壯觀)으로 비유한다. 이것은 생생한 그림을 전달하고 동시에 종교 지도자들을 비판하는 두 가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 채찍은 그들이 휘둘렀던 거짓과 폭정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첫째 구렁은 그런 자들로 가득하였다.

벌거벗은 죄인들이 바닥에 있었는데,

이쪽으로는 우리와 마주 보며 걸어왔고

저쪽에는 같은 방향이지만 걸음이 빨랐다.

마치 희년(禧年)에 수많은 군중 때문에

로마 시민들이 다리 위로 모여든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도록 배려하여

한쪽으로는 모두 성쪽을 바라보며

성 베드로 성당으로 가고, 다른

한쪽으로는 언덕을 향하는 것 같았다.

이쪽저쪽의 검은 바위 위에서는

뿔 난 악마들이 채찍으로 그들의

등을 잔인하게 후려치고 있었다.

……

(지옥1824~36)

 

이 장면에 대한 난하주를 보면 더욱 실감난다. 희년은 대사면을 선포하는 해를 말하는데, 희년에 로마를 방문하고 참회와 보속을 하면 사면을 받을 수 있었다. 100년마다 돌아오던 것을 25년으로 줄였다. 1300년 보니파키우스 8세는 자신의 권력 강화를 위해 희년을 선포하고, 이에 수십, 수백만의 순례자들이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그 군중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성 안젤로 다리를 통과할 때 한쪽은 성 베드로 성당으로, 한쪽은 로마 방향으로 가도록 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지점에서 주석의 도움을 받으며 눈이 밝아지는 경험을 했다. 이런 경우 각주(脚注, footnote)가 편리하다.)

 

먼 친척, 친구, 풍문의 주인공 여인, 영웅들, 철학자들, 지도자들 등 그들 영혼의 모습은 형체를 잃어버리거나 비틀어져 있다. 거꾸로 땅에 박혀 있거나, 나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가 소개하지 않으면 알아볼 수 없다. 끝까지 익명이기를 고집하는 영혼들도 있다.연옥편을 읽게 되면 아이네이아스가 저승여행에서 만났던 영혼들과 다르다는 것을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된다. 『아이네이스』 속 영혼들은 존재가 아닌 지나치는 영상처럼 보인다. 그러나 단테가 만난 영혼들은 존재하고, 지상에서의 삶의 기억을 갖고 있다. 그 기억을 통해 전하는 말들은 본질적이고 강하다. 무리들 속에서 마주친 한 영혼과의 대화는 몽타주 기법을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지옥 여행을 마치고 지상으로 나오게 되는 구조를 보며 단테에게 다시 감탄하게 된다. 아래로 계속 내려가다 보면 거꾸로 박힌 사탄의 다리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게 된다. 지구의 3차원적 개념을 지옥도에서 실현시키고 있다.

 

휴식을 취할 생각도 없이 그분은

앞에서, 나는 뒤에서 위로 올라갔으며,

마침내 나는 동그란 틈 사이로 하늘이

운반하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고,

우리는 밖으로 나와 별들을 보았다.”

(지옥편 제34135~139)

 

그가 지옥을 통과해 드디어 바라본 별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칠흙같이 어두운 숲은 생성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베르길리우스와 같은 안내자를 만난다면 그것은 구도의 숲이다. 빛은 구원이고  베아트리체는 그 빛에 가까이 있는 존재다. 장차 단테를 그 빛으로 이끌 안내자이다.

 

그가 그린 저승은 삶으로부터 단절된 세계가 아니라 연장선상에 있는 곳이며, 현재의 삶이 가리키는 방향이라는 생각이다. 이 생각은 연옥편을 읽으면서 더욱 분명해졌다. 삶의 이편과 저편을 오가는 단테의 사유! 로댕의 <지옥의 문>은 이것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로댕은 이탈리아 여행에서 산조반니 세례당의 청동문과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생각에 잠긴 사람을 보고 깊은 영감을 받은 뒤, 지옥의 문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단테의 형상을 가져와 6미터 높이의 <지옥의 문>을 제작했다. 중앙 상단에 단테를 상징하는 생각하는 사람이 앉아 있고, 그 밑으로는 지옥으로 향하는 인간들의 고통과 번뇌가 표현되어있다.

지옥의 문 위에 걸터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는 자세의 핵심은 발끝에 모인 긴장감에 있다. 잔뜩 구부린 발가락들은 지옥으로부터 받는 중력을 견디는 상황임을 알려준다.”

(15p 단테 x 박상진, 클래식 클라우드)

 

, 첫 매질에 그들은 얼마나 발뒤꿈치를 들어 올렸는지!”

(지옥182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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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2-05-21 20: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단테가 그리는 지옥의 모습은 저런 모습이군요~!! 왠지 평소에 생각하던 지옥모습이랑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ㅋ

그레이스 2022-05-21 20:32   좋아요 4 | URL
예~
지옥의 모습은 낯설지 않아요^^
그런데 그 묘사에 탁월한 점이 있어요
천재적이라 생각되죠

희선 2022-05-22 01: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죽으면 지옥이나 천국에 간다 하지만, 지옥에 살 때도 있는 것 같아요 단테는 살아서 갔으려나 싶은 생각도 듭니다 살아서 가면 더 힘들지... 그래도 거기에서 찾은 걸 많은 사람한테 전하려고 이걸 썼군요

그레이스 님 남은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희선

그레이스 2022-05-22 10:47   좋아요 2 | URL
사는게 지옥같다는 말 많이 듣지요.
그것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형벌이겠죠.
죽음 이후 연속성이 있다는 것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희선님도 주말 행복하시길!

scott 2022-05-22 12: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 인생길의 한중간에서

나는 올바른 길을 잃어버렸기에

어두운 숲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아, 얼마나 거칠고 황량하고 험한

숲이었는지 말하기 힘든 일이니,

생각만 해도 두려움이 되살아난다!

죽음 못지않게 쓰라린 일이지만,

거기에서 찾은 선을 이야기하기 위해

내가 거기서 본 다른 것들을 말하련다.]

가장 좋아하는 구절,,,

그레이스님에게 5월은 단테의 신곡이 열어준
천국 같은 독서의 나날을 보내 실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2-05-22 12:58   좋아요 2 | URL
너무 좋은 것도 오래 지속되면 천국같지 않다는 아이러니!^^;;
왜 그럴까요?
지상에서의 영원은 그렇다는 점에서 테레비시아의 샘물이 생각납니다. ㅋ

레삭매냐 2022-05-22 13: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속세의 방황하는 영혼인
단테는 우리 자신을,

가이드인 베르길리우스
같은 이를 속세에서 만나
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
지 않나 싶습니다.

정점에 있는 베아트리체
는 뭐랄까 구원의 상징
이 아닐까 싶네요.

시작은 했으나 냅다 팽개
쳐 버리고 다른 책들만
줄창 파고 있습니다.

그레이스 2022-05-22 15:43   좋아요 2 | URL
^^
언젠가 적절한 타이밍이 있을거예요
책 읽는것도 그런 것 같아요 ~^^

mini74 2022-05-25 08: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 블레이크의 그림들이 눈에 쏙쏙 들어오더라고요. 좀 덜 무섭기도 하고 ~~ 그레이스님 글 읽으니, 베아트리체를 가슴에 별처럼 품고 베르길리우스란 안내자와 함께 어두운 숲을 걸은 단테는 어쩌면 운 좋은 사내같단 생각도 드네요 그레이스님 글 읽으니 다시 신곡 읽고싶네요. 아 이런 구절이구나 이런 의미구나 ㅎㅎㅎ

그레이스 2022-05-25 15:54   좋아요 3 | URL
미니님 혹시 <투모로우 바이 투게더> 아시는지요? 노래 중에 0×1=lovesong(I know I love you)이란 노래가 있는데, 얘네가 신곡을 아네?!했어요^^
작년에 나온 노랜데 애들이 좋아해서 저도 들어왔거든요. 가사도 달리 들리는 독서의 효과라고 해야할까요?

mini74 2022-05-25 09:59   좋아요 3 | URL
노래제목이 ㅎㅎ 저 찾아서 들어볼게요 ~

mini74 2022-05-25 10:06   좋아요 3 | URL
헉 잘 생기고 노래도 좋고. 그레이스님 말씀 듣고나니 오!!! 그렇네 싶고 ㅎㅎ 저 이 나이에 입덕하는건가요 ㅎㅎㅎ

그레이스 2022-05-25 10:13   좋아요 3 | URL
빅히트 영업했네요^^

scott 2022-05-25 15:53   좋아요 3 | URL
0×1=lovesong
듣고 왔습니돠
오늘 부터 팬 할레여 ㅎㅎㅎ

그레이스 2022-05-25 15:57   좋아요 3 | URL
이번에 나온 곡들도 좋아요 ㅋ
춤이 예술이예요 ㅎㅎ
opening sequence

노래는 trust fund baby 넘 슬프구요 😢 😭
 

신곡을 읽으면서 가지를 친 책들이 또 쌓였다. 열린책들에서 나온 신곡··하권을 갖고 있는데, 구스타프 도레의 판화와 상중하권이 합본으로 재출간된 신곡을 샀다. 도레의 판화 때문에! 다른 책에서 보던 판화하고는 다르게 선명하고 디테일한 선들이 살아있다. 벽돌 책이어서 패복(佩服)하며 읽을 수 없다. 갖고 있던 작은 책에는 마음껏 줄도 긋고 메모도 했다. 이제 소장 책이 따로 있으므로.

신곡에 수록된 구스타프 도레의 판화


명화로 보는 단테의 신곡을 먼저 구입했었다. 이 책은 시를 이야기 형식으로 쉽게 풀어쓰고, 신곡을 소재로 한 그림들을 함께 소개하고 있어서 이해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도 구스타프 도레의 판화가 소개되고 있다. 윌리엄 블레이크나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들도 많이 수록되어 있어 후대의 예술작품에 많은 영향을 준 단테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단점이라면 도판에 대한 소개가 상세하지 않은 점이다. 지옥과 연옥 천국의 구조도를 잘 그려 놓아서 텍스트를 통해 상상할 수 없던 지점들을 이미지화해서 이해할 수 있다.


아르떼에서 나온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단테는 민음사 신곡을 번역한 박상진씨가 단테의 생애와 사랑, 정치 활동, 망명, 작품에 관하여 기행문 형식으로 쓴 글들이다. 다른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단테와 관련된 지역을 여행하며 그의 삶의 자취를 그린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과 그가 세례를 받았던 산 조반니 세례당, 그가 공부했던 산타크로체 성당과 산타노벨라 성당, 베아트리체를 마주쳤던 아르노 강변, 도시의 성곽과 베키오 다리 등 피렌체의 풍경을 스케치 하고 있다. 망명시절 머물렀던 도시들과 지났던 길들, 특히 마지막 머물렀던 라벤나를 여행하며 단테에 대한 이탈리아인들의 자부심을 느낀다. 단테의 가문과 당시 피렌체의 경제, 정치, 외교적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단테의 죽음과 그의 유해를 되찾아 오려는 피렌체 후손들의 노력과 빼앗기지 않으려는 라벤나 시민들의 모습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왔다.


단테 알리기에리의 새로운 인생을 영어로 번역했던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는 신곡에서 베아트리체의 역할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새로운 인생에 대한 지식은 필수적”(14p 새로운 인생민음사)이라고 말한다. 아홉 살 때 만나 몰래 사랑을 키운 단테는 그녀에 대한 사랑을 시로서 적고 작가의도를 함께 적어 놓았다. 정혼자가 정해진 그에게 베아트리체는 이루어질 수 없는 희망이었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없는 그의 안타까움이 때로는 치기와 같은 행동으로 감출 수 없는 슬픔으로 시의 곳곳에 묻어나고 있다. 그녀의 죽음 이후 마지막으로 시를 쓰면서 그녀에 관해 좀 더 훌륭하게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이 더없는 축복을 받은 사람에 대해 더 이상 아무 얘기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그리고 내 목숨을 몇 년 더 연장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다면, 그녀에 관해 여태껏 어느 여인에 관해서도 써진 적이 없는 바를 쓰는 것”을 희망한다. 아마도 그것이 신곡에 나타난 베아트리체의 모습일 것이다. “은총의 주인이신 주님의 선하심으로 내 영혼이 이곳을 떠나 그 여인의 영광, 즉 세세 만세토록 축복을 받으실 주의 얼굴을 끝없이 바라보고 있는 그 복된 베아트리체를 바라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107p 새로운 인생민음사)

이 책에 함께 수록되어 있는 조반니 보카치오의 「단테의 생애」에 대한 글은 열렬한 찬양으로 바쳐지고 있다. 피렌체의 르네상스 전성시대의 작가 보카치오는 단테의 삶과 금서가 되었던 작품들이 전해지는 과정에 대해서 보다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시간적으로 단테의 시대와 가까웠던 인물의 글이라 귀한 근거 자료가 되는 반면 열광적인 태도 때문에 과장된 면이 있지 않을까하는 우려감을 갖게 한다. 신곡을 쓰기 시작한 시점에 대해 조금 상이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로마의 가장 아름답고 가장 유명한 딸 피렌체의 시민들은 나를 그 달콤한 품안 밖으로 내동댕이치는 것이 즐거웠으니(나는 그 품 안에서 태어났고 내 삶의 절정기까지 부양되었으며, 진심으로 나는 그곳의 좋은 평화와 함께 그곳에서 피곤한 내 영혼을 쉬고 내게 남은 시간을 마무리하고 싶다), 나는 순례자로 거의 구걸하면서, 이 언어가 퍼져 있는 거의 모든 지방들에 갔으며, 내 의지와는 달리, 종종 부당하게 상처받은 자의 탓으로 돌려지는 운명의 상처를 보여주었다. 사실 나는 돛도 없고 키도 없는 배였으며, 고통스러운 가난에 불어오는 메마른 바람에 이끌려 여러 항구와 포구들, 해변들로 옮겨 다녔다.”(23p 향연단테)

귀향에 대한 소망과 망명자의 외로움이 묻어나는 이 글이 수록된 작품은 향연이다. 그의 작품들의 바탕이 되는 사상이나 작품의 동기를 읽을 수 있다. 성찰의 깊이가 느껴지는 글들이 담겨있다.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단테는 그의 생애와 작품들에 대해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보다는 무겁고 학적인 글들로 채워져 있다. 에리히 아우어바흐가 미메시스에서 말하는 현실의 모방이라는 관점에서 단테의 글들을 분석하고 있다. 미메시스를 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와 그 역사를 기록한다. 베르길리우스와 단테가 창조한 저승의 차이를 논한다. 단테가 중세의 미메시스를 뛰어넘고 있는 점을 지적한다.

특별히 단테의 스틸 누오보(청신체) 시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는데, 프로방스의 연애시로부터 이탈리아 북부의 스틸 누오보 시가 영향을 받았고, 그 길목에 귀니첼리와 카발칸티가 있었으며, 단테는 완성했다. 라틴어에서 벗어나 이탈리아 속어로 쓰여진 이 시들은 이탈리아 문학에 큰 기여를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셰익스피어를 떠올리게 된다. 단테는 이 작업에 대한 의지를 향연이나 신곡에서 여러 번 강조하고 있다.

하늘과 땅이 도움을 주었으며

여러 해 동안 나를 야위게 했던

이 성스러운 시가 혹시라도,

싸움을 거는 늑대들의 적으로서

어린 양처럼 잠들어 있던 나를 우리

밖으로 몰아냈던 잔인함을 이긴다면,

이제 나는 다른 목소리, 다른 모습의

시인으로 돌아가, 내가 세례 받았던

샘물에서 월계관을 받을 것이다.”

(216p 천국251~9)

그리고 단테의 초기 시와 그 이후의 변모에 대해서, 신곡에 담겨진 주제와 역사, 과학, 심리, 예술, 철학, 신학을 총망라하는 지식의 향연에 대하여, 등장 인물들이 전하는 메시지, 알레고리 등을 분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도움을 많이 받은 책이다. 피구라 리얼리즘에 대한 설명은 신곡을 이해하는 창이 되었다.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와 이탈리아의 역사를 참고하기 위해 꺼낸 책이 민혜련의르네상스이다. 미술사를 공부할 때 읽었던 책인데 피렌체와 단테를 중심으로 읽으니 새롭게 다가왔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교황의 세력다툼, 겔프와 기벨린으로 양분된 권력투쟁, 이탈리아 도시들의 이합집산의 흐름을 읽었다. 단테가 피렌체에서 추방되는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프리드리히 1세와 교황 알렉산데르 1세의 권력다툼, 시칠리아 공주와 하인리히 6세의 정략결혼으로 강해진 황제의 세력에 대한 교황의 견제, 강력한 중앙집권 정치를 하려했던 황제에 맞선 북부 이탈리아 도시들의 연맹 등, 200년 이상 흘러온 정쟁의 골은 깊어진다. 상업과 수공업으로 부를 축적하고 있던 중립도시 피렌체는 황제와 교황이 서로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야 할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단테는 정치에 입문하면서 도시의 당파를 통합하고 피렌체를 자치 도시 국가로 세우는데 힘을 썼으나, 교황의 야욕에 맞서 반대파인 백당의 일원이 된다. 결국 그는 교황에 의해 피렌체로부터 추방당하고 망명자의 신분이 된다. 아펜니노 산맥을 넘지 않고 계속 귀향을 시도하지만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산을 넘게 되는 그의 생애는 이탈리아의 당시 상황을 알지 못하고는 생생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피렌체와 그 도시의 풍경, 예술을 알기 위해 주문한 책이 이다. 신곡을 읽다보면 미술가들도 여러 명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단테는 지옥편에서 피렌체의 건축물이나 아르노강, 다리, 성벽 등을 비유로 사용하고 있다. 화가 조토와는 가까이 지낸 것으로 알려지는데 신곡에 나타난 이미지들은 조토의 그림에서 받은 인상이라고 한다. 신곡의 곳곳에 나타난 단테의 회화적 표현은 그가 보고 영감을 받은 그림들의 영향이라는 생각이다. 조토의 종탑, 기베르티의 천국의 문, 브루넬레스키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돔, 베키오 다리, 천정화 등을 보면 피렌체 여행을 꿈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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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05-20 02: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단테 클래식 클라우드 책 한권만 봤어요 그것도 보고 시간이 지나서 잊어버렸습니다 그레이스 님 단테 《신곡》에서 다른 책으로 뻗어갔군요 멋지네요 구스타프 도레 판화가 들어간 《신곡》도 사셔서 좋으시겠습니다 여러 책이 단테와 《신곡》을 보는 데 도움이 되었겠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2-05-21 08:45   좋아요 4 | URL
예~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ㅋ
어제 토론하고 끝내서 뿌듯하고 시원해요 ㅎㅎ

새파랑 2022-05-20 07:5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요새 단테에 빠지셨군요 ^^ 전 어려울거 같아서 시작도 못하고 있습니다 ㅋ 가지치면서 읽는 책읽기 재미있을거 같아요~!!

그레이스 2022-05-20 08:23   좋아요 4 | URL
이제 리뷰쓰고 벗어나려구요 ㅋ

거리의화가 2022-05-20 09: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역시 단테 읽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깊이 들어가면 수렁에 빠지는 듯~? 그 와중에 향연과 르네상스라는 책이 관심이 갑니다. 저도 서양사 중에는 르네상스 시기가 가장 관심이 가더라구요. 언젠가 한번 공부를 열심히 해보고 싶은 시기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2-05-20 10:19   좋아요 5 | URL
벼르고 있던 책들이라 다 읽고 나니 마음은 편해요 ㅋ
한 번 읽어서는 읽었다고 할 수 없는 책이라는 결론^^을...!
왜 사람들이 단테 단테 하는지 알았어요 ㅋ
감사합니다

책읽는나무 2022-05-20 09:4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와!!!!👍👍👍
늘 느끼는 거지만 그레이스님은 드릴형 독서인이세요.
한 번 잡으면 확장하고, 깊이 파고드는..^^
몰입형 독서라고도 하죠??
특히나 어려운 단테!!!^^
대단하십니다.
나중에 단테 읽을 때 그레이스님의 글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그레이스 2022-05-20 09:47   좋아요 4 | URL
드릴형^^
정신차리고 보면 여기까지 왔네! 할 때가 있긴 해요 ㅋㅋ
이제 신곡 리뷰를 본격적으로 해야하는데...
조금 지쳐셔... 이렇게 가볍게 페이퍼로 시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미미 2022-05-20 11:2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단테에 치이셨다는 표현이 너무 재밌습니다ㅋㅋ
저도 이 책 저 책에 자발적으로 이리저리 치이고 사네요ㅋ
무엇보다 다양한 자료 가지고 계신점 부럽습니다.
저도 조만간 단테에 치이고 싶네요. 아르떼 하나 있지만요^^::

그레이스 2022-05-20 18:37   좋아요 4 | URL
^^ 미미님 이책 저책에 치이시는건 제가 알죠 ^^~♡

그레이스 2022-05-20 18:38   좋아요 3 | URL
죄송!
오타였어요 ㅋ

햇살과함께 2022-05-20 11: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래이스님 대단하세요!! 존경 존경

그레이스 2022-05-20 12:33   좋아요 5 | URL
부끄럽습니다!
감사하구요~

페넬로페 2022-05-20 15: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단테에 치여도 단테에 대해 완벽히 공부셨네요.
역시나 👍👍👍

그레이스 2022-05-20 16:25   좋아요 5 | URL
페넬로페님도 같이 치이셨잖아요~^^

서니데이 2022-05-20 19:0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신곡은 미리보기 나오는 것도 상당히 두꺼운 책 같아 보여요.
실제로 보면 표지가 예쁠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님, 즐거운 주말과 기분좋은 금요일 되세요.^^

그레이스 2022-05-20 19:18   좋아요 4 | URL
사전두께 예요^^
책장에서 폼나는 종류^^

레삭매냐 2022-05-20 19: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명품 페이퍼이면서 동시에
나도 <신곡>을~ 절로
강제하는 글이었습니다.

그레이스 2022-05-20 19:31   좋아요 3 | URL
😊 감사합니다 ~^^

mini74 2022-05-20 21: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와 그레이스님 단테 신곡 제대로 읽으셨는데요 👍세 권이 겹치는데 그레이스님 리뷰 읽으니 ㅠㅠ 나는 뭘 읽은건가 하는 ㅎㅎ 피렌체 미술산책이랑 도레의 신곡 탐납니다 그레이스님 *^^*

그레이스 2022-05-20 21:48   좋아요 3 | URL
피렌체 미술산책 좋아요
피렌체에서 활동하시는 분이라 그런지 설명이 너무 잘 되어 있어요^^

단발머리 2022-05-26 14: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처럼 이렇게 읽고 싶어요. 완벽한 단테 읽기인데요!!!
전 <단테의 신곡> 그림이랑 쉽게 엮인 황금부엉이판을 읽었는데요.
와!! 비싸고 두껍고 근사하고 아름다운 재출간된 <신곡> 꼭 사고 싶네요. 언젠가 읽을테니 사 두어도 괜찮겠지요? ㅋㅋ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2-05-26 14:58   좋아요 3 | URL
그냥 소장용으로도 딱! 이구요
도레의 판화 삽화가 도움도 많이 됩니다. 일단 열린책들이 이해도 잘되고 주석도 친절해요,
벽돌책들 사이에 꽂혀있는 자태!
기분 좋습니다.
한번씩 뽑아서 삽화만 감상해도 좋아요~~

희선 2022-06-10 02:0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두달 동안 단테를 보신 보람이 있었네요 이게 아니어도 단테를 알고 그밖에 것을 아셔서 좋은 시간이었겠습니다 그런 건 오래 기억할 것 같아요


희선

mini74 2022-06-10 08: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아서 혼자 몇번이나 읽었던 글 ㅎㅎ 그레이스님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2-06-10 09:29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

미미 2022-06-10 12:2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단테에 치이시고 멋진 페이퍼에 당선까지👍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2-06-10 14:51   좋아요 3 | URL
ㅎㅎ
감사합니다

청년 2022-06-10 12:3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덕분에 단테에 대해 더 알고 싶어지네요 ^^

그레이스 2022-06-10 14:51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6-10 12:5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라는 말이 절로~ 그레이스님 덕분에 단테에 도전의식이 생기게 되었어요! 당선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2-06-10 14:51   좋아요 3 | URL
도전!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 2022-06-10 21: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6-11 07:40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주말 되세요

scott 2022-06-14 0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관왕 추카 합니다
이제 단테의 흔적을 찾아
이딸리아로 가기만 하면 됩니다


.       _
   ⋀⋀   / |
 _/(・ω・)/●. |
!/ .} ̄ ̄ ̄   /
i\_}/ ̄|__/≡=
  ` ̄ ̄~❤
      ~❤
        ~❤
          ~❤
            ~❤그레이스님 탑승 수속중 ㅎㅎㅎㅎㅎ

그레이스 2022-06-14 13: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감사합니다
꼭 가보고 싶네요 ㅎㅎ

alummii 2022-06-17 13: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 저 지금 단테 신곡 파랑이벽돌책으로 잼나게 읽고 있는데 저도 이렇게 몰입독서 하고파요 책탑 리스펙^^ 그레이스님 리뷰보고 단테에 대해 좀더 알게 됬네요

그레이스 2022-06-17 14:16   좋아요 2 | URL
^^
감사합니다 🍊
 
아이네이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베르길리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7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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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들과 한 전사를 나는 노래하노라.”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유명한 첫 문장이다. 무기들(or武具)은 전쟁을 뜻하고, 한 전사(남자)는 아이네아스를 의미한다. 서두는 일리아스오뒷세이아와 닮아있다.

 들려주소서, 무사 여신이여! 트로이아의 신성한 도시를 파괴한 뒤 많이도 떠돌아다녔던 임기웅변에 능한 그 사람의 이야기를로 시작하는 오뒷세이아는 지금부터 오뒷세우스의 방랑을 노래할 것이라는 예고를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일리아스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아카이오족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었으며 숱한 영웅들의 굳센 혼백들을 하데스에게 보내고 그들 자신은 개들과 온갖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한 그 잔혹한 분노를!”이라고 시작하면서 많은 영웅들이 죽어간 전쟁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리고 있다.

 아이네이스1~6권은 아이네아스가 트로이를 탈출하여 이탈리아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7~12권은 이탈리아 라티움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기까지의 전쟁을 다루고 있다. 앞부분은 오뒷세이아, 뒷부분은 일리아스』참조하고 있.

 

로마의 공화정을 끝내고 황제의 시대를 열어가려 했던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죽고, 양자였던 아우구스투스가 황제를 계승하면서 그에게는 정통성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베르길리우스에게 건국신화를 쓸 것을 요청했고 그는 전승되는 신화 중 가장 유력한 내용을 선택해서 서사시를 썼다. 트로이 왕족인 아이네아스는 트로이를 떠나 히페리아에 새로운 트로이를 건설할 것이라는 신탁의 내용을 받는다. 여정 중 아버지 앙키세스의 조상은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것을 신탁의 내용과 함께 알게 된다. 그가 항해 중 도착했던 델로스나 크레테 시칠리아, 카르타고 등 모든 곳에서 이 예언은 좀 더 구체화되고 로마의 미래까지로 진전된다. 이 예언에는 로물루스가 알바 롱가에 로마를 세우는 것과 미래에 있을 정복전쟁, 아우구스티누스의 악티움 해전의 승리가 등장한다. 베누스가 아들 아이네아스를 위해 불카누스에게 부탁해 만든 방패에는 미래 로마제국 역사에 등장하는 영웅과 승리가 새겨져 있다. 이 예언의 의미들은 앙키세스와 베누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네아스가 세운 로마를 아우구스투스가 계승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이 서사시는 아이네아스 일행이 카르타고에서 디도를 만나면서 시작하고 있다. 그는 여왕 디도에게 트로이의 패망과 탈출, 카르타고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을 이야기한다. 환대를 받은 아이네아스는 카르타고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것을 돕는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이 피어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아이네아스에게 유피테르는 전령 메르쿠리우스를 보내 경고한다. 이탈리아로 받은 신탁을 성취하도록 명령한다. 고민하던 아이네아스는 이탈리아를 향해 떠나고 디도는 슬퍼하며 죽음을 선택한다. 그녀는 아이네아스를 향해 저주한다. 카르타고와 운명적으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신화적 배경이다. 그만큼 포에니 전쟁과 한니발은 로마에 있어 큰 위기였다.


<아이네아스, 앙키세스, 아스카니우스>, 17세기 베르니니, 보르게세미술관 


트로이 유민들과 트로이를 떠날 당시 아이네아스는 다리를 저는 아버지 앙키세스를 어깨에 앉히고, 아들의 손을 잡고 긴박하게 탈출한다. 아내는 뒤에 떨어져서 따라오다가 죽게 된다. 프리아모스의 딸인 그녀를 잃고 그는 항해를 시작한다. 그 방랑 기간 동안 동행하던 용사들을 잃는다. 유노의 분노 때문이다. 베누스는 위험한 순간마다 등장해서 아들을 보호한다. 카르타고를 떠나는 아이네아스에게는 여전히 죽음의 위협은 남아있다. 카르타고에 도착하기 전 죽은 아버지 앙키세스를 기념하기 위한 운동경기를 하고, 그와 함께한 용사들은 저마다 승리를 위해 바다에서 질주한다. 일리아스에서 운동경기가 오버랩 되는 순간이다. 물에서의 경기는 지중해를 장악한 로마의 해군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라고 한다.


이탈리아에 도착한 그는 쿠마이에 있는 무녀 시뷜라를 찾아가고, 저승으로 아버지를 찾아간다. 앙키세스는 아들에게 앞으로 그가 세울 도시국가와 미래의 일들을 알려준다. 트로이 탈출 시 앙키세스를 동행했던 이유일 것이다. 그는 죽어서도 아들의 보호자가 된다. 로마의 파트로누스(patronus 보호자)와 클리엔스(cliens 피보호자) 관계의 전통을 강조하는 모습이다.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 관계의 정통성을 여기에서 찾으려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한편 영웅의 저승 여행은 정화(淨化)의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 제 6권의 저승여행은 단테의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를 안내자로 재창조된다.

 

라티움의 왕 라티누스는 딸 라비니아를 이방인과 결혼시키라는 신탁을 받았다. 라티누스는 아이네아스를 보자마자 예언된 사윗감이라는 사실을 알고 결혼을 추진한다. 하지만 라비니아의 정혼자였던 투르누스는 분노하고 아이네아스의 아들 아스카니우스의 실수가 발단이 되어 전쟁은 시작된다. 일리아스와 닮았다. 명예와 분노, 수치심으로 무구를 치켜든 많은 젊은들이 죽는다. 피 끓는 젊음은 무모한 선택을 하게 된다는 생각, 그러니까 젊음이라는 생각을 했다. 죽음은 모든 것을 잠재우고, 의분조차 차가운 심장과 함께 식어버린다. 하지만 무엇이 현명하다고 말할 수 없다. 시대의 가치는 다르므로.

 

아이네아스는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 11 대결을 제안하고, 부상을 입은 투르누스는 살려달라고 간청한다. 마음이 흔들리던 아이네아스는 투르누스의 몸에 둘려 있는 팔라스의 칼 띠를 발견하고는 격분하여 칼로 찔러 죽인다. 무구가 한 전사의 분노를 자극했다.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들은 아킬레우스의 분노다. 전쟁은 분노와 증오심이 땔감이라는 것을 여러 곳에서 확인한다.

 

이어지는 역사는 플루타르크 영웅전로물루스 편에서도 볼 수 있다. 라비니아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의 후손에게서 실비아가 태어나고 실비아와 마르스 사이에서 난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태어난다. 이 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운다.

 

베르길리우스는 호메로스보다 쉽게 읽히고 훨씬 흥미진진하다. 호메로스보다 더 네러티브가 더 강화되어서 그렇다는 생각이다. 호메로스의 영웅들 아킬레우스나 오뒷세우스는 개인적인 욕망에 이끌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아이네아스는 건국이라는 목표를 향해 출발했다. 델로스, 페르가마, 카르타고는 그에게 있어 안주할 곳이 아니라 라티움을 향한 경유지다. 개인의 욕망을 접는 모습을 여러 번 보여주고 있다. 전쟁에서도 분노를 억제하고 희생을 줄이려고 한다. 일리아스오뒷세이아에서 볼 수 없었던 리더십을 보게 된다. 베르길리우스가 이 책을 쓸 당시 1세기 로마는 이런 가치를 귀중히 여기는 사회였다고 생각된다. 정복전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을 것이다


신탁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에 난관은 있다. 어려운 과정을 이겨내야 한다. 성취와 목적 지향적이다. 호메로스와 베르길리우스의 차이는 중세와 르네상스, 근대와 현대 사상의 차이로 보여 진다.

 

베르길리우스는 오랫동안 유럽인의 정신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망구엘은 그의 저서 독서의 역사에서 베르길리우스가 예언에 사용되었던 역사를 전한다. 책 속의 글귀를 무작위로 짚어 미래를 점치는 행위다. 운명의 여신에게 봉납된 사원 몇 군데에서는 예언을 위해 베르길리우스의 시집 몇 권을 비치해 놓고 있었다. 영국의 찰스1세의 예를 들며 17세기에도 그 이후에도 이런 행위가 있어 왔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베르길리우스는 시가 가지는 모방적인 특징과, 그로 인해 시구가 시대를 초월하여 독자들에게 하나의 신호로 다가오기 때문이라고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말한다.

 

트로이 전쟁과 아이네이스에 등장하는 여성들을 간과할 수 없다. 헤카베, 폴릭시네, 카산드라, 크레우사, 디도 등 전쟁에서 남편과 자식을 잃거나 포로가 되거나 죽임을 당한 여인들이다. 특별히 헬레네와 라비니아를 주목하게 된다. 트로이 전쟁의 발단과 전개 결말에 이르기까지 헬레네의 마음과 의사를 알 수가 없다. 호메로스는 알려주지 않는다. 라비니아 역시 그녀가 신탁을 받았다고 하는데 자신 때문에 라비니움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죽는데도 그녀의 생각은 조금도 알려주지 않는다. 주체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2의 성에서 보부아르가 말했듯이 그녀들을 신성시 하는 것은 그저 오뒷세우스가 트로이에서 탈취한 팔라디움과 다를 바가 없다. 그녀들의 지위는 상징적인 전리품에 불과하다.

 

읽을 때는 수없이 이어지는 주석 때문에 지체되었다. 읽고 난 후의 느낌은 좋은데 언어로 정리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고 함께 토론하고 생각을 정리하면서 이래서 좋았구나 하는 의미들이 건져진다. 젊음이 통과한 바다와 경유한 섬들, 죽음이란 명제 앞에서 정화되고 사라질 것들, 전망들……. 베르길리우스의 라티움을 향할 것인가? 호메로스의 인간으로 살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대답을 기다리며 그물 안에서 펄떡이고 있다.

 

억압받던 유명한 고전 작가들은 우리와는 학교를 통해 가끔은 고통스럽게 익숙해지기도 하는데, 그들은 점진적으로 우리 각자의 피 속으로 흘러 들어와 기억 속에 같은 민족처럼 자리 잡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베르길리우스의 시구는 만토바나 아우구스티누스를 노래하고 있다기보다는 영국의 어느 장소나 독자의 되돌릴 수 없는 젊음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304~305p 독서의 역사알베르토 망구엘)


<아이네아스의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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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01-22 00:26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고전 작품을 읽을 떄 지도와 주석,구글은 필!수 ㅎㅎㅎ

그리스 고전 작품(예를 들면 오딧세이) 학부에서 한 학기 동안 공부 합니다
틈틈히 그룹 스터디 하고 관련 서적 읽고 토론 하고 수업 듣고 리포트 쓰다보면 반년의 시간이 순!삭!^^

그레이스 2022-01-22 00:28   좋아요 5 | URL
그렇게 해야할 것 같아요.^^

mini74 2022-01-22 00:45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인간들의 전쟁인거 알면서도 그 속에 신탁과 신, 운명의 이야기가 섞이면 재미와 깨달음이 더 담기는 거 같아요. 저도 이 책 주문했는데 그레이스님 아렵다니 덜컥 겁이 나요 ~~ 많이 배우고 갑니다 그레이스님 *^^*

그레이스 2022-01-22 00:51   좋아요 5 | URL
이야기는 안 어려워요
주석 읽느라 시간이 간다는 것이지.
미니님은 절대 어렵지 않으실거예요^!~

그레이스 2022-01-22 00:53   좋아요 4 | URL
어려웠다 빼야지 ㅋㅋ
진짜 안어려워요^^

희선 2022-01-22 01: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 아이네이스는 로마 건국 신화였군요 그런 거 하나도 몰랐습니다 아이네이스 봤을 때 여자 이름인가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레이스 님이 쓰신 글 보고 남자였다는 걸 알았습니다 아무 곳이나 펼쳐서 보면 글이 나오는 책도 있더군요 그게 베르길리우스가 하던 거였다니... 아이네이스는 나라를 세우느라 힘들었겠습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2-01-22 02:16   좋아요 4 | URL
^^~♡

책읽는나무 2022-01-22 08:10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오디세이아, 일리아스 저 천병희 샘꺼 가지고 있는데 읽다가 어려워서 포기했었는데 아이네이스는 정말 안어려운가요??
일단 그레이스님의 리뷰를 읽으면 재밌을 것 같습니다^^

그레이스 2022-01-22 08:41   좋아요 5 | URL
호메로스보다는 문장이 쉽게 읽혀요.
그런데 호메로스 트로이 전쟁과 신화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뒤에있는 주서 읽느라 시간이 걸려요;;
만약 베르길리우스를 먼저 읽고 싶으시면 원전이 아닌 쉽게 쓰여진 일리아스, 오디세이를 읽고 시작해보세요
그리고나서 다시 호메로스 원전을 읽는 것도 방법일듯요

새파랑 2022-01-22 08:5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언젠가는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데 쉽게 손이 안가더라구요 😅 이 책 600쪽이 넘네요~! 어려운 책도 뚝딱 읽어내시는 그레이스님~!!

그레이스 2022-01-22 09:34   좋아요 4 | URL
뚝딱은 아녜요!^^
새파랑님은 저보다 빨리 읽어내실 거예요^^

미미 2022-01-22 11:2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이번에 방송대에<신화의 세계>과목이 있길래 신청했어요. 그리스 신화부터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까지 있더라구요. 과목 열심히 이수해서 그레이스님과 이런저런 신화이야기를 마음껏 나눌 수 있는 날이 부디 오길 희망합니다.^^*

그레이스 2022-01-22 11:34   좋아요 5 | URL
강대진 교수님 강의인가요?
저 그 교재 <신화의 세계>있어요
옛날거라 그런지 몰라도 객관식 문제도 있던데...^^
그분 신화를 쉽게 설명해놨던데...^^
위에 지도가 그 책에서 가져온거예요

미미 2022-01-22 11:39   좋아요 4 | URL
아!! 그렇군요. 저자는 강대진교수가 맞아요. 강의는 조금 아쉽지만 이준석 교수예요. 이 과목 신청은 그레이스님,미니님 영향이예요^^* 올해는 꼭 ‘신화 무지‘에서 벗어나고 싶어요ㅎㅎ

그레이스 2022-01-22 11:43   좋아요 3 | URL
저도 비슷해요^^

바람돌이 2022-01-22 17:55   좋아요 2 | URL
일리아스 조금 보다가 질려서 이런 고전 원전들은 나의 능력밖이야 치워뒀는데 그레이스님 이런 글 보면 뭔가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뿜뿜~~~ 근데 뿜뿜만이지 실제로는 여전히 어려울 거 같은 느낌이에요.
방송대에서 강의까지 듣는 미미님도 근사합니다.

그레이스 2022-01-22 18:00   좋아요 1 | URL
몇분이 함께 낭독하는 것도 도움이 돼요 ^^

미미 2022-01-22 18:01   좋아요 1 | URL
북플에서 그레이스님과 미니님에게 물들었죠. 아 이 놀라운 세계~♡ BMK의 노래 ‘물들어‘가 떠오르네요🤭

그레이스 2022-01-22 18:04   좋아요 1 | URL
^^
노래 들으러 갑니다~
서로 물들면 빨간색과 파란색이 섞여 보라가 되듯 어떤 색이 되겠죠?
보라해요~ 갑자기!^^ㅋㅋ

Falstaff 2022-01-22 19:0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영국인, 가운데서도 잉글랜드 인간들이 자신들이야말로 아이네이스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바가 크다고 들었습니다.
그니까, 아이네이스가 이탈리아를 건설했고, 로마가 브리태니아를 정복해서 몇백 년 동안 뭐 성도 쌓고 농사도 짓고, 소도 키우고 했으니, 원래 브리태니아 섬 원주민들, 저 바이킹의 후예거나 빨강머리의 원주민이거나를 부정하고, 자신들은 찬란한 문화, 문명을 이루었던 오리지널 로마인의 후예라고 조잘대고는 한다....라고 영국문학 전공 선생하는 친구가 그랬습니다. 이제는 만난 지 하도 오래라 친구라 하기도 좀 그렇지만... ㅋㅋㅋ 인생이란....
근데 아닌 거 같아요. 오히려 골족이나 저 북구의 깡패들, 스칸디나비아의 피가 더 진한 걸로 말입죠.
<아이네이스>가 이 정도의 영향을, 아직도, 끼치고 있는가 봅니다. ^^

그레이스 2022-01-22 19:00   좋아요 4 | URL
^^
아이네아스의 여행은 끝이 나지 않았네요!
아이네아스의 오딧세이!^^

Falstaff 2022-01-22 19:01   좋아요 3 | URL
아이네이스의 누이동생이 올란도인 걸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레이스 2022-01-22 19:06   좋아요 3 | URL
ㅎㅎ
지하철역에서 만나시면 물어보세요.
^^

서니데이 2022-01-22 21:4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리스, 로마 시대에 쓴 신화는 재미있어요. 같은 신이지만, 로마와 그리스에서 쓰는 이름이 다르다는 점을 알고 읽으면 더 재미있습니다. 잘읽었습니다. 그레이스님, 좋은 밤 되세요.^^

그레이스 2022-01-22 21:42   좋아요 3 | URL
예~
두 이름이 익숙해질 때까지 조금 시간이 걸리죠^^
서니데이님도 좋은 밤요!

mini74 2022-02-10 17: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어려워요 그래이스님 ㅠㅠ ㅎㅎ 당근 될줄 알았습니다 축하드려요 *^^*

그레이스 2022-02-10 18:06   좋아요 3 | URL
ㅋㅋ
감사합니다~♡
미니님도 축하드려요~~

미미 2022-02-10 18: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님에 비해 상대적으로 초라해서 함께 당선된게 민망하네요^^*🌹

그레이스 2022-02-10 19:30   좋아요 3 | URL
아니 무슨 말씀을 ... 저야말로...민망하고 ... 부끄럽게요
축하 감사드려요
미미님 페이퍼랑 리뷰에 저도 많은 정보를 받고 있습니다

새파랑 2022-02-10 19: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드려요 ^^ 신화도 완벽~!! 리뷰도 완벽~!!

그레이스 2022-02-10 19:03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새파랑님도 축하드려요~

서니데이 2022-02-10 2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그레이스 2022-02-11 05:12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페넬로페 2022-02-10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아이네이스‘로 이 달의 당선작 선정되어 제가 더 기쁩니다.
축하드려요**

그레이스 2022-02-11 05:13   좋아요 1 | URL
저두요
함께 읽은 보람이!
😊 😊 😊
감사합니다 ~♡

독서괭 2022-02-10 2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전 마니아 그레이스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2-02-11 05:15   좋아요 2 | URL
고전 마니아! 라고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
감사합니다 🍊

scott 2022-02-11 00: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신화의 바다는 그레이스님 것!ㅎㅎ
이달의 당선 이관왕 추카해유 ^ㅅ^

그레이스 2022-02-11 05:16   좋아요 1 | URL
그 바다에 엄지발가락 정도만 담갔죠^^
감사합니다 ~♡ 😊

러블리땡 2022-02-11 00: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 2관왕 축하드려요~ 캬~~

그레이스 2022-02-11 05:1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닷슈 2022-02-11 01: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관왕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2-02-11 05:17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thkang1001 2022-02-11 01: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2관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레이스 2022-02-11 05:1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윌리엄 포크너의 소리와 분노는 맥베스의 독백을 연상시킨다. 후에 포크너는 무심코 지은 제목이지만 이 독백이 자신의 소설에 아주 적합하다 말했다고 한다.

 

맥베스 55장에 나오는 내용으로 왕비가 죽었다는 세이든의 보고를 듣고 절망가운데 하는 독백이다.

 

내일, 또 내일, 그리고 또 내일이

매일 이렇게 꾸물꾸물 기록되는 시간의 마지막 순간까지 기어갈 것이며

우리의 모든 지난날들은 바보들에게 흙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밝혔다.

꺼지는구나, 꺼지는구나, 잠시뿐인 촛불이!

인생은 엑스트라의 그림자, 서투른 배우,

무대에 올라 뽐내며 걷고 안달하다가는 더 이상 들리지 않지.

그것은 백치가 떠드는 이야기,

소리와 분노로 가득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

Creeps in this petty pace from day to day

To the last syllable of recorded time,

And all our yesterdays have lighted fools

The way to dusty death. Out, out, brief candle!

Life’s but a walking shadow, a poor player

That struts and frets his hour upon the stage

And then is heard no more. It is a tale

Told by an idiot, full of sound and fury,

Signifying nothing. Macbeth 5.5.19~28.


스코틀랜드의 글래미스의 영주인 맥베스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에 마녀들을 만난다. 그 마녀들은 맥베스가 코도의 영주가 될 것이고,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한다. 그 예언을 듣자마자 코도의 영주로 임명받았다는 왕의 명령을 받게 된다. 맥베스는 동요하는 마음을 감추지만 마음속에서 욕망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느낀다. 이 이야기를 들은 맥베스부인은 맥베스가 속히 이 일을 이룰 것을 재촉한다. 맥베스는 주저했지만, 마침 자신의 성을 방문한 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오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역모를 숨기고, 반대하는 세력을 없애기 위해 또 다른 살인을 사주한다. 맥베스는 죄의식으로 괴로워하고 뱅코의 유령을 보고 이성을 잃는다. 결국 맥베스의 살인은 들통이 나고, 달아났던 맥더프와 왕의 아들 맬컴이 잉글랜드 군대의 도움을 받아 성으로 쳐들어오면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유령을 보고 겁에 질리는 맥베스, 그 맥베스를 몰아붙이는 맥베스 부인, 맥베스부인을 주목하게 된다. 그녀의 대사들은 생각을 많이 하게 했다맥베스는 길에서 마녀들의 예언을 듣고 부인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 편지를 그녀가 읽고 맥베스에 대해 하는 말이다.

 

맥베스 부인 ……

당신은 글래미스, 코도이고, 약속받은 것 또한 될 겁니다𝍠하지만 그 성품이 걱정돼요.

최고로 빠른 길을 택하기엔 너무나 인정미가 넘쳐요.

당신은 위대해지고 야심도 없지는 않지만 그에 따른 사악함이 없어요.

꼭 하고 싶은 것을 경건하게 바라지요. 속임수는 안 쓰지만 부정하게 얻고 싶죠.

(31p, 1516-23 맥베스)

 

이렇게 자신의 남편에 대하여 아니,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에 대하여, 갈등하는 마음에 대하여 너무나 잘 파악하고 있는 맥베스부인은 영악하다. 그녀는 냉철한 판단을 가지고, 주저하는 맥베스를 몰인정하고 잔인한 말로 몰아세운다.

 

맥베스 이 일을 더 이상 추진하지 맙시다. 그는 나에게 영예를 내렸고, 난 온갖 사람들의 금빛 찬사 받았는데 새롭게 반짝이는 지금이 입을 때라 빨리 벗고 싶진 않소.

맥베스 부인 당신이 입고 있던 그 희망은 추했어요? 그 후로 잠잤어요? 이제야 깨어나 자진해서 했던 일을 창백하게 바라보고 있나요? 지금부터 당신 사랑 그런 줄 알겠어요. 욕망만큼 행동력과 용맹심을 같이 가진 사람이 되는 게 두려워요? 금상첨화라고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을 가지고 싶지요? 그런데 속담 속의 불쌍한 괭이처럼 하고 싶어.” 그 말에 감히 못해.” 대꾸하며 스스로 비겁자로 살 거예요?

(38-39p, 1731-44 맥베스)

 

왕을 살해한 현장에서도, 그녀는 담대함을 보입니다.

 

맥베스 더 이상 못 가겠소.

내가 한 그 일을 생각하기 두렵고 감히 다시 못 보겠소.

맥베스 부인 의지가 약하기는! 그 단검 이리 줘요.

자는 사람 죽은 사람 그림 같을 뿐인데, 그림 속의 악마는 애들의 눈에나 무섭지요.그가 피를 흘리면 시종들의 얼굴에 발라줄 거예요, 그들 죄로 보여야 하니까.

(47-48p, 2249-56 맥베스)

 

맥베스가 유령을 보며 두려움에 떨고, 귀족들 앞에서 헛소리를 할 때도 그녀는 담대한 태도로 그 상황을 잘 넘긴다. 그러나 결국 그녀도 죄의식 앞에 무릎을 꿇는다. 패색이 짙어가는 상황 속에서 그녀는 몽유하며 시종들과 전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중얼거리며 드러낸다.

 

맥베스의 욕망과 갈등과 죄책감도 흥미롭게 보았지만, 맥베스부인에게 더 주목하게 되었다. 남편의 숨겨진 욕망을 꿰뚫어 보는 눈과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어떤 인정에도 굴복하지 않는 차가운 심장을 가진 그녀가 결국은 죄책감 앞에 무력하게 무너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어쩌면 욕망보다 죄책감이 더 강한지도 모르겠다.

 

안현배의 미술관에 간 인문학자라는 책은 루브르 미술관에 소장되어있는 그림을 문학과 역사와 관련해서 설명하고 있다. 헨리 푸셀리의 그림 몽유병에 걸린 맥베스부인꿈과 현실의 경계를 넘어라는 장에서 소개한다. 화가들이 이 장면을 그림의 소재로 삼을 만큼 맥베스부인의 몽유병은 극적인 반전이라고 볼 수 있다.


맥베스부인이 최고로 빠른 길을 택하기엔 너무나 인정미가 넘쳐요.”라고 재촉을 되새긴다. 인정을 버리고 빠른 길을 택하느라, 자신을 내몰고,그래서, 후회, 불안, 걱정으로 몽유하는 세상을 돌아보게 된다.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작품들-햄릿, 리어왕, 오셀로, 한 여름 밤의 꿈, 템페스트, 로미오와 줄리엣, 베니스의 상인 등-을 하나씩 읽어나가면서, 셰익스피어에 대해 궁금해지고, 그의 삶과 시대, 희곡의 원료가 된 이야기들, 런던의 극단, 출판이야기들을 찾아보게 된다.


스티븐 그린블랫의 세계를 향한 의지,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 황광수의 셰익스피어가 그와 관련된 책들이다. 스티븐 그린블랫빌 브라이슨의 책은 셰익스피어의 삶과 당시의 역사와 생활상, 런던의 연극계와 그의 희곡집 출판 등과 관련된 내용이다. 황광수의 책은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과 관련된 장소를 여행하며 쓴 내용으로, 조금 가볍게 볼 수 있는 책이다. 다각적인 시각으로 셰익스피어와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유익한 책들이었다.

 

이 세 작가는 셰익스피어의 알려진 삶에 대해서는 견해가 비슷하지만, 알려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한다. 예를 들자면, 아내 해서웨이에 대한 셰익스피어의 태도이다. 셰익스피어가 고향을 떠나 10년 동안의 행적에 대해서도 조금씩 다르다. 연상인 해서웨이와의 결혼과 홀로 고향을 떠난 이유와 관련하여 아내에 대한 관계를 거론하는데 세 사람의 의견에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가 고향에 저택을 짓고 가문의 문장을 만드는 과정과 그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망에 대해 이야기 한다. 죽기 전 딸에게 많은 재산을 상속하지만, 아내에게는 두 번째로 좋은 침대를 가구와 함께 준다.”라는 유언을 남긴다. 연극 같은 유언이란 생각이 든다. 이 유언을 통해 아내와의 관계를 추측하는 논쟁들을 이끌어냈었다.

 

셰익스피어가 죽음을 목전에 두고 누워 있을 때 그는 아내를 잊으려고 애썼고, 그다음에는 두 번째로 좋은 침대와 함께 겨우 그녀를 기억해 냈다. 그리고 내세를 생각해볼 때 그가 가장 사양하고 싶었던 일은 자신이 결혼했던 여자와 함께 묻혔던 것이었다.” (251p 세계를 향한 의지스티븐 그린블렛)

 

그린블랫과 달리 빌 브라이슨은 몇 연구자들의 견해만 밝힐 뿐 셰익스피어의 아내에 대한 마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추측을 하지 않는다.

그의 개인적인 삶을 읽으며, 사회적 욕구, 권력에 대한 방향성을 엿보았다. 햄릿, 맥베스, 리어왕 뿐 아니라 역사 속 왕들의 이야기를 쓴 그의 평범한 인간으로서 신분 상승을 위해 노력했던 자취들은 권력지향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그의 인생에 드리워진 살아있는 권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창작자로서의 그늘을 보여주기도 한다.

 

두 사람은 그의 사후 그의 희곡들이 출판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퍼스트 폴리오 판으로 시작해서 많은 판본들이 존재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그리고 많은 희곡이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아니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들을 펼친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연구가 많은 만큼 한 가지 책만 참고하는 것은 균형을 갖기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평가해볼 때, 우리는 물론 한 사람이 그렇게 많고 현명하고 다양하고 재미있고 또 언제나 기쁨을 주는 작품들을 생산해냈다는 데 대해서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 자체가 천재성의 증거임은 말할 것도 없다. 오직 한 사람만이 우리에게 그런 위대한 작품을 남길 수 있는 환경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바로 스트렛퍼드 출신의 윌리엄 셰익스피어였다.”(215p 빌 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빌 브라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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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08-16 21:0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면 말의 힘이 큰 것 같아요. 주술이나 예언 주문이 왠지 무서워지는 ㅎㅎ 셰익스피어가 죽을 당시 아내가 정신적문제 혹은 치매설도 있던데요. 사이가 그닥 좋지는 않았군요. 우와 빌브라이슨이 쓴 셰익스피어도 있군요. 맥베스에서 그림에서 생애까지 ~~많은 걸 배우고 갑니다. 책도 찜! 하고요*^^*

그레이스 2021-08-16 21:12   좋아요 4 | URL
워낙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서 설이 많나봐요.^^

그레이스 2021-08-16 21:1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이미지 방향이 조정이 안되네요 ㅠ

scott 2021-08-16 21:16   좋아요 4 | URL
카메라로 찍었을때 회전을 시키고 구글 통해서 북플 앱으로 전송해보세요 정상으로 이미지가 나옵니다.

그레이스 2021-08-16 21:19   좋아요 4 | URL
사진찍어서 컴으로 받아서 파일 용량도 줄여서 올렸는데...자기 맘대로 가로본능 ㅠ

그레이스 2021-08-16 21:42   좋아요 5 | URL
가로본능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편집해서 다시 올렸습니다. ㅋ

scott 2021-08-16 21:1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 작품은 읽어도 읽어도 마르지 않는 샘물 처럼 재미 흥미 교훈 시대와 세대를 훌쩍 뛰어넘죠.
맥베스는 제가 셰익스피어 희곡 중 가장 사릉하는!!
그의 삶이 상당히 미스테리한 부분이 많다는 것도 학자들에계 끊임없는 연구와 논쟁 상상 거리를 가득 주고 있죠 !

그레이스 2021-08-16 21:16   좋아요 5 | URL
그러게요
몇번을 읽어도 읽는 사람마다 시기마다 다 다르게 읽히는...!

새파랑 2021-08-16 21:48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얼마전에 맥베스 다시 읽었었는데 너무 좋아요 ㅜㅜ 주인공은 맥베스 부인이 확실한듯 😆
‘소리와 분노‘라는 문장도 최고인듯~!!
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영문 표현이 더 와닿는거 같아요~!!

그레이스 2021-08-16 21:57   좋아요 4 | URL
맞아요
영문으로 읽을 때가 더 와 닿는데 영문과 번역본을 함께 놓고 읽으면 읽는 속도가 느리지도 않더라구요.

레삭매냐 2021-08-16 22:17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제가 맥베스를 다시 읽은 게
지난달이었네요.

구해 놓은
맥베스 영화도 봐야 하는데...

그레이스 2021-08-16 22:18   좋아요 4 | URL
요즘 알라딘서재에 맥베스 후기가 자주 올라오더라구요^^

서니데이 2021-08-16 22:50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빌브라이슨의 셰익스피어 순례는 재미있을 것 같네요.
오래전에 읽은 책들은 번역도 오래된 번역이고, 오래전이라서 기억도 적어서
새로 읽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오래되면 기억하는 것이 실제로 달라지기도 하니까요.
그레이스님 좋은밤되세요.^^

그레이스 2021-08-16 22:52   좋아요 4 | URL
빌 브라이슨이 페이지도 적당하고 잘 읽히기도 해요. 워낙 글을 위트있게 잘 쓰는 작가라..!

바람돌이 2021-08-17 02:1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애증의 셰익스피어!
저는 세익스피어 희곡이 왜 재미가 없을까요? 누군가 얘기하는대로 민음사판을 봐서 그런걸까요?

그레이스 2021-08-17 05:17   좋아요 2 | URL
열린책들이 더 이해가 잘 되긴 해요. ㅎㅎ

희선 2021-08-17 03: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셰익스피어는 오래전 사람이고 그때 쓴 희곡이 많아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기도 하군요 셰익스피어일지도 모른다고 한 작가도 있던데... 희곡만 쓰다니 다른 건 하나도 안 썼을까요 편지나 일기가 남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듭니다 거의 희곡으로만 셰익스피어를 알아야 하니... 아니 그 시대 사람이 셰익스피어 이야기를 쓴 것도 있을지... 아주 없는 건 아니겠습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1-08-17 15:30   좋아요 1 | URL
미지로 남아 있는 것이 더 좋은 면도 있는 듯요^^

서곡 2023-02-03 17: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레이디 맥베스 몽유병 그림 포스팅했는데 그레이스 님의 예전 이 페이퍼를 조금 전에 보고 반가워서 뒤늦은 댓글 답니다 ㅎ 퓌슬리(푸셀리)가 맥베스 그림을 많이 그렸더라고요 위 그림 말고도요

그레이스 2023-02-03 17:34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서곡님 읽으신 책 보고, 지금 장바구니에 넣고 왔어요
푸셀리는 인간의 심리를 그림에 잘 묘사하는 듯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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